제 12 장 3

 

제 12 장

3

 

녀대원들은 모두 충격이 컸다. 잔잔하던 늪에 큰 돌멩이가 하나 떨어져내려 찰랑 흔들어놓은것 같기도 했다. 김정숙동지의 오빠에 대한 가슴을 아프게 긁는 비보, 그것도 그것이지만 그 비보를 받아안고도 흔연히 일을 밀고나가시는 김정숙동지의 그 정신의 높이, 그것이 녀대원들에게 심각한 생각을 하게 했다. 모두 말이 없었다. 롱도 하지 않고 좀해선 웃지들도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서 재봉대실로 나타나시면 은근히 흘끔흘끔 쳐다보기도 했다.

얼굴은 여전히 부드럽고 웃음이 어려있으나 그 한갈피 뒤엔 또 다른 깊은 모습이 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 다른 깊은 모습! 조선녀성으로서의 뛰여난 진국인 모습, 그 모습을 녀대원들은 그 누구도 다 따르고싶었다. 모두 불이든 물이든 더 일하고도싶었다.

땀을 철철 흘리며 일을 죄여나갔다. 불일간 부대가 출동할것 같다는 말도 들려와서 더욱 불이 일게 다그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매일밤 뜬눈으로 새시였다. 장군님께 끼니를 끓여올리는 일에 재봉대 일이 겹쳐 눈붙일새가 없으시였다. 오늘밤에도 그이께서는 허인걸네 집에서 허인걸의 마누라와 둘이 이튿날 아침끼니차비를 다 해놓고 밤이 퍽 들어서 재봉대실로 오시였다. 하늘을 쳐다보시니 검은 구름장들이 달을 덮었다. 달빛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매일밤 녀대원들이 자는 틈에 들어가선 불도 못켜고 달빛가운데 앉아서 일을 하군 하는데 달빛이 없으면 일을 못하시는판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재봉대가 든 집 바깥마당가 수양버들밑에 잠간 서서 구름이 벗겨지기를 기다리시였다. 바람 한점 없는 밤이다.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가지가 무겁게 비껴내렸다. 어째 또 맘속에도 묵중한 무게가 비껴내리는것 같아 바깥마당을 한바퀴 도시였다. 늘 흐려오는 마음의 무게를 이렇게 쫓아버리군 하시였다.

다행히 구름이 벗겨졌다. 하늘 한복판에 푸른 등불이 켜졌다. 이 아까운 등불빛을 한시인들 거저 보낼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리나케 안마당으로 걸어들어가시였다. 모두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억척같이 일을 다그치고있으니 곯아떨어지진들 않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토방에 있는 재단한 천들을 멍석 깐 마당에 한아름 안아내리시였다. 어제밤에도 토방에 가득 재단해놓은 천이 있더니 오늘밤에도 또 그렇게 쌓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기저기 반짇그릇을 찾아보시였다. 어제밤엔 토방에 반짇그릇들도 있었는데 오늘밤엔 그걸 어데다 치워놓았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살그머니 토방으로 올라가서 맞웃방문을 여시였다. 사이방에서 자는 동무들의 숨소리가 들리시였다. 《애개 애개···》 하는 잠꼬대소리도 들린다. 가르륵가르륵 코를 고는것은 아마도 복녀인것 같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반짇그릇을 찾아보시였다. 손을 헛쓸어보시니 재봉틀밑에 반짇그릇이 있었다. 그걸 살그머니 들어내오고 문을 도로 닫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달빛아래 앉아서 시침을 시작하시였다. 한쪽이 이지러질사한 푸른 달이 마당을 대낮같이 비쳐내린다. 실과 바늘대가 환히 보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잽싸게 바늘대를 놀리시였다. 등섶과 등섶을 대고 호기도 하고 소매를 말아붙이고 호기도 하시였다. 군복을 빨리 지어야 한다. 장군님께선 무슨 계획이 있으신지 벌써 군복걱정을 여러번 또 하시였다. 인차 부대가 출동한다는 말씀도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뛰시였다. 장군님께서 슬픔을 힘으로 바꾸라 하시며 큰 싸움이 놓여있다고 하시던 말씀도 떠오르신다. 어디를 치려는것인가, 어느 지역에서 혈전을 벌리려는것인가, 가슴속에 끓는 복수의 붉은 피를 뿌려던져야 할 싸움이다, 기다리고기다리던 조국진군의 물목을 열 싸움에서 오빠의 여한을 풀어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깜빡 졸리시여 바늘을 헛찌르시였다. 역시 잠은 피할수 없으시였다. 소스라쳐 놀라며 하늘을 쳐다보시니 벌써 달이 훨씬 기울었다. 이걸 다 시침해놓고 가야 할텐데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어서 사립문밖으로 나오시였다. 넓은 바깥마당을 아까처럼 또 두어둘레 돌고나니 눈덕이 좀 거뜬해지는것 같으시였다. 다시 들어와 바늘을 잡으시였다. 또 한참 시간이 흘렀다. 군복을 거의 시침하시는데 복녀가 깨여서 나왔다.

《아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손을 저으시였다. 동무들이 단잠을 자는데 떠들지 말라는 신호이시다.

《어쩜 매일밤 남 다 자는데 와서 시침을 해?》

복녀는 혀아래소리로 중얼거리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복녀가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할가봐 대꾸를 안하시였다. 마당에 내려선 복녀는 그저 우뚝 서있었다. 또한번 되게 후려갈기우는것 같은 충격을 받는것이였다.

《정숙동문 어쩜···》

어쩌면 그렇게도 갈수록 알수가 없느냐는거다. 오늘아침, 아니 인젠 어제아침이다. 어제아침에도 그저께 아침에도 깨여나니 밤새워서 일해놓은것이 토방에 가뜩 쌓여있었다. 모두 일해놓은걸 보고 놀라긴 했으나 그 누구도 복잡한판에 이게 누가 와서 해놓은것인가 하는것은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저 안날저녁 동네아낙네들이 그렇게 해놓은걸 모르고있다가 인제 띠여보는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을뿐이였다. 벌써 이틀아침이나 그렇게 생각하며 동네아낙들 일솜씨가 만만치 않다는 소리만 했었다. 어쩌면 모두들 그렇게도 아득신이였을가. 복녀는 눈물이 날것 같기도 했다. 정숙동지에 대해선 벌써 능지영에서 《민생단》혐의자들을 먹이겠다고 산으로 펄펄 끓는 죽가마를 이고 올라갔을 때부터도 보통녀자가 아니라는건 알고있지만 요새 와서는 더욱 그 속깊이를 알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 크고 깊은 속이 정말 그러지 않고는 못견딜 그 어떤 진정때문에 그런다는것을 알듯싶기도 했다. 그의 가슴엔들 어찌 뼈저린 설음이야 없을가. 하지만 그 설음을 누르는 다른 불같은 진정이 있기에 남이 돋보게 흔연한 모습으로 걸어가지 않는가!

복녀는 자기 미운 생각으로 낯을 붉히며 김정숙동지의 곁에 앉아 시침해놓은 천들을 들어다가 다금다금 쌓아놓았다.

《복녀동무!》

김정숙동지께서 혀아래소리로 부르시였다. 복녀는 대꾸할 경황이 없었다.

《복녀동무는 10대강령을 다 외웠어요?》

《다 외웠어요.》

《그럼 인젠 한조목한조목 뜻을 배워야겠어요. 어떻게 하든지 빨리 머리속에 뜻까지 죄다 파악해넣구 녀성군중속에 들어가 깨우치는 일을 시작해야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여기 오신 이튿날 이어 녀대원들은 물론 동네아낙네들까지도 글 아는 아낙네들한텐 죄다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나누어주고 왼금으로 통달해내라고 이르시였던것이다. 복녀는 대꾸를 안했다. 언제 그 대꾸를 할 경황도 없었다. 자기따윈 김정숙동지께 비기면 륙칠월 울밑에서 봉선화잎 갉아먹는 청매지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재빠르게 기지도 못하고 건드리기나 해야 큰 몸을 구불떡하는 청매지, 어쩜 꼭 청매지같을가. 내가 혁명을 한다는게 다 무언가, 그저 누가 이래라 하면 이러고 저래라 하면 저래서야 무슨 혁명가일가. 무얼 차근차근히 생각할줄도 모르고 그저 벌컥하고는 성내고 힘센 자랑이나 하구. 이 민충아, 정숙동무 하는 본때를 좀 보려무나. 누가 시켜서 정숙동무가 이렇게 할테냐, 누가 시켜서 이렇게 일하고싶은 생각이 가슴속에서 한길한길 솟아오를테냐. 복녀는 제 투실투실한 발등을 주먹으로 윽박았다. 그저 제 몸뚱이가 남같다면 뼈가 부서지게 때려주고도싶었다.

어느새 김정숙동지께서는 시침을 다하고 일어서시였다.

《빨리 가봐야겠어요. 아주머니가 조반차비를 시작했을지 모르겠어요.》

복녀는 또 《어쩜》소리를 지르며 큰 주먹으로 눈물을 북 씻었다.

이튿날아침 재봉대엔 어떻게 하든지 오늘중으로 군복을 다 지어야 한다는 명령이 내렸다. 그 명령을 리범진중대의 소대장 대걸이가 가지고왔다.

《어마나, 이걸 어쩌나?》

녀대원들이 입을 벌리며 아우성을 했다.

《아니 이건 무슨 벌떼 울듯 야단이요? 군사명령이라면 정중히 접수를 해야지.》

《군사명령이라도 가능성이 없어뵈니까 그러지요.》

《가능성이 없다니? 봄내 달달 소리를 내며 코노래를 불렀는데 가능성이 없다는건 무슨 말이요?》

녀대원들이 모두 소리내여 웃었다. 국금이는 복녀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을 끔뻑했다. 대걸이가 복녀를 보고싶어 이어 돌아가지 않고 시큰둥한 소리까지 한다는거다. 그러나 복녀는 아무도 본척을 안했다. 그저 큰 얼굴이 불그레해져서 무얼 어찌려는것인지 새방구석에 돌아앉아 자기의 배낭을 부리나케 뒤지였다. 그러더니 무엇인가 꺼내서 군복주머니에 찌르고는 정지방으로 내려가 뒤문밖으로 내뺀다.

《언니, 왜 저래요?》

영애가 국금이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내가 옆구리를 찌르니까 부끄러워 그러는가보구나.》

《언니두 참, 부끄럽긴 뭐가 부끄럽겠어요. 나같으면 미끄럽지도 않겠어요.》

《까불지 말어···》

대걸이는 토방에 걸터앉아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소대장동무, 어데로 출동한답니까?》

분임이가 물었다.

《나두 모르겠소.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그런걸 함부로 텅텅 말해서야 되겠소. 군대란 언제나 앞으로 나가라 하면 앞으로 나가고 뒤로 들어가라 하면 뒤로 들어가는 그것밖에 몰라야 하우. 야, 이놈의 강아지 참 이쁘겐 생겼다. 주둥이가 바툼하고 두눈이 동그랗구···》

대걸이는 괜히 흰소리를 하며 발깃가리에 와서 꼬리를 치는 강아지를 한손바닥에 쳐들어올렸다. 강아지는 대걸이의 얼굴을 핥겠다고 얄팍한 혀를 날름날름하며 주둥이를 들먹거렸다.

《야 이놈, 버릇이 없이··· 누구와 입을 맞추겠다는거야? 혁명군 녀대원들이 가뜩한데···》

녀대원들이 또 와그르르 웃었다. 그들 역시 소대장이 복녀와 무슨 말을 해보고싶어 그러는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참, 정지방 뒤문으로 내뺀줄은 모르고 저렇게 떡판같이 앉아있네.》

《정말 뒤문으로 내뺐어?》

《내빼잖구···》

녀대원들이 수군거렸다. 대걸이는 얼마후에야 토방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명령은 실천해야 하오. 내 인제 구장한테 가서 바느질할만 한 동네아낙네들을 다 동원시켜달라고 하겠소. 그러니까 오늘은 손으로 더 많이 하란말요. 재봉기로 박으면 어떻고 손으로 박으면 어떻소, 아무튼 군복이 되면 될것 아니요.》

대걸이는 또 한참 서서 떠들었다. 그는 그러고나서야 힝하니 달아났다.

《빌어먹을··· 어데로 내뺀거야?》

대걸이는 두덜거리며 걸었다. 정말 복녀를 만나보고싶어 뒤를 뭉개고 앉아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집앞 큰길을 한창 걸어가느라니 뜻밖에도 복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봐요, 나 좀 보구 가요.》

대걸이가 돌아보니 길옆 버들밭우에 복녀의 얼굴이 솟아올랐다. 해빛을 받은 얼굴이 둥그런 놋양푼 같았다. 대걸이는 그렇게 환한 복녀의 얼굴은 처음 보는듯싶었다.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때까지 방안에 있는가 해서 여겨보며 시답지 않은 롱말도 하다가 나왔는데 언제 저 버들밭에 달려나와 숨어있었는가. 방안에서 처음 피뜩 보이고는 이어 없어졌던듯싶은데 그랬다면 자기를 보자바람으로 여기 달려나와 숨어있은게 아닌가. 얼마나 만나고싶었으면 그랬을가싶었다. 대걸이는 사방을 휘휘 돌아보았다. 누가 오지 않는다는걸 확인하고나서야 그는 언덕밑으로 떨어져 슬금슬금 버들밭으로 걸어갔다. 버들이 한길이나 자랐다. 칭칭 휘여감기는 물버들에 지금 한창 흰개지가 달리고 그 흰개지에서 훗훗 눈가루가 날리기도 했다. 대걸이는 한참 버들을 휘여제끼며 걸어서야 복녀가 있는데 왔다.

《왜 여기 나와 앉아있소?》

《아이참 멍텅구리···》

《멍텅구리라니?》

《그럼 멍텅구리 안야?》

사람의 심정도 몰라주는게 멍텅구리 아니냐는것이다. 대걸이는 씩 큰숨을 쉬였다. 복녀는 얼른 피빛이 약간 낀듯한 눈으로 치떠보았다. 그러더니 이어 와락 엎어지는것 같은 자세를 하며 얼굴을 싸고 울었다. 둥그런 어깨팍이 마구 물결쳤다. 쌓이고쌓인 서러움이 한꺼번에 툭 터지는것 같았다. 그렇게 만나고싶으면서도 부끄러워 못만났던 안타까움, 사랑하고 사랑하기때문에 쩍하면 일그러져 팍팍 쥐여박고싶었던 격정, 그런 격정 뒤끝엔 또 홧홧 불이 타올라 울고싶기도 했던 감정, 그 모든것이 졸지에 터져버린것 같았다.

《왜 그렇게 우오?》

대걸이가 곁에 가앉으며 묻자 복녀는 꽥 소리를 질렀다.

《말 말라구.》

옆구리에 창이 나게 팔굽질도 했다. 대걸이는 허허 웃었다. 그는 부시럭부시럭 담배를 말았다. 그자신도 행복해서 눈물이 날것 같았다. 문득 태봉시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기는 민태설네 마구간 물을 대느라고 물지게를 만들어지고 샘터로 갔고 복녀는 밥집 물을 대느라고 물지게를 지고 샘터로 왔다. 그 샘터에서 둘이 만나선 서로 웃으며 비밀쪽지를 넘겨주기도 하고 고달픈 신세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샘터가 잊혀지지 않는다. 세월이 가고가도 그 모진 세상 한구석에 있던 울분을 가셔내주기도 하고 서러움을 달래주기도 하던 기쁨의 샘터는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내가 정말 얼마나···》

복녀는 말을 하다가 채 못했다. 인젠 물결치던 어깨도 어지간히 잦아들었다.

《요새 재봉대일이 고되겠소.》

《고되긴···》

복녀는 눈물을 이리저리 씻는다. 단발머리를 넘겨쓸기도 했다. 인젠 마음이 좀 누글누글해진것 같다.

《이것 받아요.》

복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무언가를 뒤손질로 내밀어주었다.

《그게 뭐요?》

《보구두 몰라요.》

담배쌈지였다. 벌써 오래전부터 만들어가지고 주자주자 하면서도 못주었던 물건이다. 뒤손질로 내밀어주긴 해도 이 담배쌈지 하나에 복녀의 애틋한 정이 담긴 분수로 치면 그저 담배나 넣어서 피우며 손때를 묻힐 물건이 아니였다.

《고맙소. 담배를 말 때마다 복녀동무를 생각하겠소.》

《흥!》

어째 아직도 마음이 깡그리 풀리진 않은것 같다.

《인젠 들어가보우.》

《들어가보겠어요. 난 정말···》

《뭘말이요?》

《내가 잘못한것두 많아요. 혁명을 한다면서 남들처럼 잘하지 못했어요. 오늘새벽 그걸 뼈가 아프도록 느꼈어요. 그래서 동무가 나더러 학습이랑두 잘하라고 하는걸···》

《무슨 일이 있었소?》

《큰일이 있은건 아니야요. 난 오늘새벽부터 정숙동무에 대해서도 고쳐생각하고 나를 놓고도 고쳐생각해요. 정숙동무하구 나하구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라는건 알고있었지만 난 정말 그 동무가 그렇게 속깊은 녀자인줄은 몰랐어요.》

《무얼 어쨌게?》

《오늘새벽 그걸 봤어요.》

《무얼 보았단말이요?》

《글쎄 이야길 들어요.》

복녀는 또 민충이 하는 소리가 나가는걸 입을 닫아물었다. 그자신도 자꾸 마음이 일그러지고 험구가 나가는 버릇을 고치자고 애썼다. 그런것부터 고쳐야 정말 정숙동무 같은 혁명가가 될듯싶었다.

《글쎄 오빠가 희생된 그 슬픈 일을 당하고도 끄떡없지 않아요. 우리가 우는데도 울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녀대원들은 어쩜 그럴가고 모두 머리가 수그러졌댔어요. 그러나 난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괜히 억지는 아닐가고도 생각했어요. 혼자 숨어선 울면서도 혁명을 한다니까 남들앞에선 억지를 가지고 울지 않는다구··· 그런데 오늘새벽에 띠여보고 진짜로 울지 않는 녀자라는걸 알았어요. 그 동무한텐 우는것보다 더 불붙는것 같은 진짜가 있어요. 설음도 이겨내지 않고는 못견딜 진짜가 있어요. 그 진짜가 저혼자 생각할줄도 알게 하고 저혼자 뛸줄도 알게 하고 숱한 일을 다 내 일로 받아안고 나가게도 한다고 보아요. 난 인제야 거기 눈이 갔어요. 그 진짜에 눈이 갔어요. 능지영 죽가마도 왜 그렇게 했겠는가가 짐작되여요.》

대걸이는 가슴이 써늘해졌다. 정숙동무가 그런다는것은 이미 알고있는 일이니 놀랄것 없지만 복녀가 생각하는것에 놀랐다. 머리가 못텄다고 흘겨보며 나무라기도 했지만 인젠 못튼 머리가 아니라 터도 보통 트질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옥맺혀있던것이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옳소. 정숙동무는 바로 그런 동무요. 그걸 배워야 하우.》

《나두 결심했어요.》

《어떻게말이요?》

《혁명을 정말 잘할테야요. 정숙동무처럼 열성을 가지고 차근차근히 생각해가며 무슨 일이든 내일같이 여기며 한번 맘먹은 일은 별일 있어도 내밀고나가고 일이 팍팍 자리가 나도록 내밀고나갈테야요. 못내밀고 나갈게 뭐야요. 학습두 그렇게 하구 쌈두 그렇게 하겠어요. 난 정말 쌈은 자신있어요. 남이 적 한놈 죽이면 난 두놈 세놈은 문제없이 죽일수 있어요. 그까짓 왜놈이나 잡으려면 식은죽먹기예요. 그리구 학습두 지금 10대강령을 다 통달했어요. 인젠 한조목한조목 뜻을 머리속에 새겨넣겠어요. 내가 어째서 혁명하겠어요. 태봉시 민태설의 첩년네 집에서 별별 악다구니를 다 들으며 사람값을 못하고 살던 그런 신세를 면하구 이 박복녀도 사람들 주르르 모여앉은데 가서 어엿이 낯을 들구 앉아 사람값을 하고 살자구 혁명을 하는것 안야요. 날 뭐 녀장수, 가래도치하고들 부추기지만 내가 무슨 힘이나 세서 혁명하겠어요. 난 정말 씨름판군들처럼 힘이 세서 몸부림이 나가선 혁명을 안해요.》

《그만두라구···》

대걸이가 코멘 소리를 했다.

《그만두겠어요. 내가 인제 해나가는걸 보라구요···》

복녀도 코멘 소리를 하였다. 둘이 다 큰 눈들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복녀의 신세이야기자 대걸이의 신세이야기였다. 그 험악한 세상에 태여나서 아무렇게나 뿌려던지워 가시밭 피눈물넝쿨을 헤친 사연이야 복녀가 다르고 대걸이가 다를가.

얼마후에야 그들은 버들밭웅뎅이에서 일어섰다.

《몸조심하라구···》

《난 일없어요. 소대장을 잘해요.》

《그런 부탁은 말라구.》

둘이는 눈에 눈물을 담은채 서로 한참 쳐다보았다.

이날 재봉대는 들썩하게 끓었다. 정말 대걸이가 허인걸에게 이야기를 해서 동네아낙네들이 수십명 몰려왔다. 모두 토방과 마당에 가뜩 늘어앉아서 시침한 군복바지를 한벌씩 맡아가지고 바느질을 시작했다. 저고리는 복잡해서 재봉기로 짓게 하고 바지만 맡겼다.

《여기를 이렇게 주르르 내려박으세요. 이 금을 타고 내려가며 촘좀히 박으면 돼요. 바느질에야 모두들 솜씨가 있지 않겠어요. 오늘 하루동안 바지 두벌씩은 만들어내야겠어요.》

오늘은 장군님께서 말씀이 계셔서 김정숙동지께서는 재봉대에 붙박혀있으며 일을 지휘하시였다. 그저 내내 가슴이 뛰시였다. 인제 곧 장군님을 모시고 싸움에로 떠나간다는것을 아시였다. 혈전의 총성은 어디에서부터 울리려는것인가. 원한에 찬 복수의 싸움이 당장 앞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피가 뛰고 몸이 떨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은근히 흥분을 억제하며 아낙네들을 일일이 가르치시였다.

《됐어요. 그렇게 박으세요. 실밥이 작은 물외씨 늘여놓은것 같잖아요. 이건 이렇게 뒤집어대고 박으세요.》

그이께서는 자신께서도 아낙네들속에 한참씩 앉아서 바느질을 하다간 돌아다니시였다. 아낙네들은 김정숙동지께서 일어선동안이면 그이께서 박다가 놓으신 바느질감을 들여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어쩌면 바느질솜씨가 정말 작은 물외씨 주르르 늘여놓은것 같이 잘도 내려박았느냐는거다.

불덩어리같은 해가 비쳐내려 모두 땀을 철철 흘리며 바느질을 했다. 벌써 그런걸 어떻게 알았는지 허인걸이 동네 농민 둘을 휘동해가지고 차일을 메고왔다.

《닁큼 처마 저쪽끝으로 주르르 내려매우. 이쪽은 사립문기둥꼭대기에도 매고 바자말장꼭대기에도 매우. 원 해빛가운데 앉아가지고야 어떻게들 바느질을 하겠소.》

허인걸이 이러며 차일꾸레미를 풀어던졌다. 농민들이 이쪽저쪽에서 잡아당기며 처마끝과 울바자말장꼭대기에 매였다. 차일이 둥둥 떠올라가며 볕을 가리우자 아낙네들은 허아주버니가 제일이라고 떠들었다.

《젤이구 뭐구간에 일등미인들이 얼굴이 탈가봐 차일을 갖다 치우···》

아낙네들이 소리내여 웃었다. 모두 차일속에 앉아 바늘대들을 번개치듯 놀렸다. 방안에선 재봉기 세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국금이, 분임이, 복녀, 영애 모두 신바람들이 났다. 복녀는 무언지 모르게 또 가슴이 뭉클해왔다. 혁명이 이처럼 좋고 기쁜걸 첨 깨닫는듯싶었다. 어쩜 이렇게 흥과 신바람이 사람을 둥둥 띄울가. 내가 인제 정말 땅속에서 기여나온 매미처럼 허울을 벗고 푸르르 나는건 아닌가.

각 중대들에서 사람이 와서 군복을 나누어주는 일도 벌어졌다. 이때까지 지어놓은 군복이 새방 맞웃방에 천정에 닿게 무지무지 쌓여있다. 그걸 금실이가 어느 중대에 대가 몇벌, 중이 몇벌, 소가 몇벌 하는 식으로 적은 문서를 들고 서서 들여다보며 나누어준다. 이미 각 중대들에서 대중소가 몇벌씩이라는 신청을 받은것이였다.

《넨장 이거야 기철동무가 입으면 허리통이 내놓이질 않겠나?》

군복이 맞지 않겠다는 시비질도 일어난다.

《자 어서어서 물러들 서세요. 맞지 않으면 재봉대로 보내세요. 어련히 맞게 고쳐드리지 않겠기에 그래요.》

금실이는 땀을 흘리며 설유했다. 어데서 땅땅하는 야무진 총소리가 울리였다.

《에그머니나, 저게 또 무슨 소리요? 원쑤가 기여든게 아니요?》

아낙네들이 질겁을 하며 부르짖었다.

《아니예요. 마안산에서 온 아이들이 사격훈련을 하는 소린가보아요.》

김정숙동지께서 알려주시였다. 오늘아침 장군님께선 정말 마안산아이들, 곰골에서 온 아이들에게 총쏘는 련습을 좀 시켜보아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총소리가 분명했다. 총소리는 계속 울린다. 그 숱한 애들이 한방씩만 쏘아보려 해도 총소리가 얼마나 날텐가. 이런 보람, 이런 기쁨이 어디 또 있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글썽거려지기도 하시였다. 인젠 정말 상촌, 술기막골애들로 하여 눈물로 얼룩진 고개우에 꽃이 만발하고있다. 그 쓰라린 추억의 고개턱이 있었기에 저렇게 장군님앞에서 힘찬 총소리가 땅땅 울리지 않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바지 하나를 다 지어놓고는 방안으로 들어가 재봉기를 돌리시였다. 재봉기 돌리는 녀대원들이 땀을 주룩주룩 흘리였다.

《언니, 신바람이 나죠?》

국금이가 함박꽃같은 웃음을 지으며 얼른 한마디 건늰다.

《그래, 자 우리 노래나 불러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며 대꾸해주시였다. 요란한 재봉기소리속에서 혁명가소리가 일어났다. 노래소리는 굵은 합창으로 번져갔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힘차게 따라 부르시였다. 인젠 눈물이 배여흐르지 않는 노래였다. 쓰리고 아픈 그 모든것을 누르고 다지고 억세게 디디고 올라선 영웅의 노래, 랑만의 노래, 멸적의 기세 드높은 노래였다.

이날 밤중에 출동명령이 내렸다. 물기머금은 구름이 짙게 내려누른 캄캄한 밤, 긴 대렬이 발자욱소리를 울리며 서쪽계선을 향해 떠났다. 혈전의 길에 오른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녀대원들과 함께 행군해가시였다. 배낭속엔 동강에서 오실 때처럼 여전히 장군님의 그 소박한 식기와 의복들이 들어있었다. 녀성대오엔 아동단아이들의 작식을 위해서 확실이가 떨어진 대신 김봉석중대에 있던 어린 처녀 순옥이가 와서 새 군복에 기병총을 메고 들어섰다. 두어뽐되는 머리태를 잘라던지고 단발한 머리에 군모를 쓰니 키가 좀 커지기도 하고 숙성해보이기도 했다.

긴 대렬은 어둠을 뚫으며 어느 산기슭을 돌아나갔다. 머리우로는 밤새가 푸륵푸륵 날기도 했다. 어데서 물 흘러가는 소리도 소란히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