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2

 

제 11 장

2

 

장군님께서는 강호련대장을 데리시고 사령부로 넘어가는 이깔나무숲속을 걸어오고계시였다.

《가만, 저게 누굽니까?》

강호로부터 부근일대의 적정에 대한 보고를 들으며 걸으시던 장군님께서 문득 이렇게 말씀하시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여라문 발자국앞에 웬 사람이 이깔나무밑둥에 기대여서서 숲머리를 쳐다보고있었다.

《조동무, 왜 이런데 나와 서있습니까?》

장군님께서 그를 알아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며 성큼성큼 다가가시였다. 저편에서 놀란듯 돌아섰다. 팔구광산조직대표 조덕하였다. 그는 몹시 당황한듯 어쩔줄을 모르다가 손등으로 눈굽을 훔치였다. 조덕하와 마주서신 그이께서는 아직도 이슬기가 슴벅거리는 조덕하의 눈을 바라보시더니 짐작이 가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점심식사나 했습니까?》

그이께서는 측은한 정 흐르는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예, 점심을 푸짐히 했습니다. 그런데 장군님, 이걸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김정숙동무를 보니 너무 절통해서 견딜수 없습니다. 정말 그 동무 오빠는 제가 잘못한탓으로···》

조덕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장군님께서는 다시 한동안 아무 말씀 안하시고 하늘높이 싱싱 푸른 새 아지를 펼치고 선 이깔나무우듬지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더니 조덕하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셨다.

《동무의 심정은 알만합니다. 나두 같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너무 그렇게 괴로와하지 마시오. 기준동무는 갔지만 그가 목숨으로 지킨 팔구광산조직은 동무들이 맡아 꿋꿋이 잘 싸워서 오늘 이렇게 회의에까지 오게 되지 않았습니까. 자, 어서 들어가보시오. 오후에 다시 회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달래시여 조덕하를 돌려세우시였다.

그이께서는 조덕하가 멀리 숲속으로 사라지는것을 보시고서야 사령부가 있는쪽을 향해 다시 걸으시였다. 강호도 따라 걸었다. 사령부 골안으로 넘어오신 장군님께서는 집으로 들어가시지 않으시고 풀밭을 줄곧 걸으시였다.

한참 걸으시던 장군님께선 걸음을 멈추시고 나무사이로 퍼져나간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조덕하동무의 눈에서 눈물을 보니 정말 새삼스럽게 그 동무의 생각이 가슴을 칩니다. 우리가 어떤 혁명동지를 잃었습니까? 그 순박하고 정력적인 동무를··· 정숙동무도 그렇지만 정숙동무 오빠도 우리가 준 과업을 언제한번 소홀히 집행한적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일을 잘해냈습니다. 태봉시에서도 그렇고 팔구에서도 얼마나 잘 싸웠습니까? 침착하면서도 억세고···》

강호는 말씀을 못올리였다.

그이께선 또 천천히 말씀이 없이 가문비나무가 우중충한 밑으로 걸어가시기만 하시였다. 그러시더니 얼마후에야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데 저 김정숙동무에겐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줍니까? 나는 전번에 만났을 때에도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아 이야기를 못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소식을 전해주려고 했는데 아직 말을 못해주었습니다. 그 동무는 지금 회의를 하면서도 눈이 가매서 오빠를 기다리는 눈치입니다.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으나 그의 마음을 우리가 모르겠습니까?》

《저도 여적 살아있는것 같이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 동무 역시 오빠와 같은 동무입니다. 녀성의 몸으로 숱한 불행을 디디고 일어나 얼마나 혁명에 충실했습니까? 술기막골근거지를 지켜낸것도 그 동무가 아니였습니까? 그 어려운 판에서 기아를 극복해나가며 나쁜놈들을 잡아내고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삼도만에서 녀성혁명화문제를 이야기했더니 당장 녀성대오도 꾸려가지고 왔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동무 역시 자기 오빠와 같이 혁명에 모든걸 충실히 바쳐나가는 동무입니다. 그는 조선녀성이 얼마나 강의하다는걸 훌륭히 보여주는 동무입니다. 저런 동무가 또 슬픈 소식을 받아안는다면···》

《사령관동지, 아직 전하지 않는게 어떨가 생각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도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소식을 묻어둘수 있겠습니까? 그가 오빠의 소식을 모르고 오빠는 어데 가서 아무 일없이 싸우고있겠거니 하고 위안을 받고 살도록 영원히 묻어둘수 있겠습니까? 이번엔 소식을 말해줍시다. 내가 전번엔 그 동무의 가슴에 못이 될가봐 말을 못해주었지만 인제 못이야 박히겠습니까? 저만치 큰 혁명가로 성장한 동무가··· 자, 돌아서 걸읍시다.》

장군님께서도 마음을 돌리시려고 애쓰시며 해빛이 깔린 풀밭우에서 돌아서시였다. 바람이 불어오고 숲이 쏴하는 바다물소리를 내였다.

오후회의가 다시 열렸다. 토론이 계속되였다. 벌써 장군님의 조국광복회구상과 10대강령을 지지해서 많은 토론들이 진행되였다. 련대장들, 중대장들, 정치일군들이 불을 뿜는것 같은 열정적인 토론들을 했다. 첫날 10대강령을 받자 이어 대강을 조국건설의 길을 밝힌 위대한 법전이라고 웨친 지방공작원 한사람은 오늘 오전 또 한번 일어서서 연탁을 두드리며 토론했다. 여러명의 국내대표, 지방대표들이 10대강령을 한조목 한조목 풀어나가며 임무와 과업을 놓고 상세히 이야기하기도 했다. 모두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거듭해서 그 리해와 분석이 깊기도 하고 정확했다.

오늘 오후회의에선 희섭이 경식이의 부축을 받으며 연탁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총알에 으깨진 발목이 시원히 낫질 않아서 지팽이 아니고는 걷지 못하는데 장군님께서 앉아계신 앞으로 지팽이를 짚고 나갈수가 없어서 경식이의 부축을 받았다.

연탁앞으로 나간 희섭이는 장군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돌아서서 토론을 시작했다. 두눈에서 불이 일었다. 그도 여기 닿는 길로 강령에 대한 연구를 단단히 했다.

그는 10대강령은 위대한 사령관동지께서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 사회형편과 현실의 예리한 분석에 기초하시여 조선사회, 조선현실에 맞게끔 투쟁강령과 목표를 밝히신 홰불과 같은 문헌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이것은 우리 조선인민의 민족적 및 계급적인 절절한 숙원과 지향을 반영한 찬란한 승리를 가리킨 위대한 문헌입니다.》

희섭이는 강령을 두손으로 높이 받들어올리며 부르짖었다. 우뢰같은 박수가 일어났다. 조덕하도 인젠 가슴이 좀 개운해져서 두손을 높이 쳐들고 박수를 쳤다.

희섭이는 이 위대한 강령은 조선공산주의운동과 민족해방운동대렬을 오직 하나의 기치밑에 결속시키고 그 통일단결을 확고히 보장할것이라고 한참 열변을 토했다. 그러면서 그는 로동자, 농민은 물론 청년학생, 지식인, 소자산계급, 량심적인 민족자본가, 종교인 할것없이 모든 반일애국력량이 이 통일전선체에 집결해서 일제를 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위대하신 장군님께서 계시기에 우리의 조국이 온 천하에 빛을 뿌리며 이처럼 황홀하게 다시 태여나고있습니다.》

희섭이는 장군님께서 앉아계신쪽으로 돌아서며 허리를 구부려 큰절을 올리였다. 또 박수가 일어났다. 폭풍을 휘몰아오는것 같은 열광적인 박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박수를 치셨다.

장군님을 우러러 슴벅거리는 그이의 별같이 빛나는 두눈동자에는 남달리 세찬 영채가 흘러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순간 갑자기 눈앞이 훤히 열려지면서 그 어떤 광휘로운 새 세상이 활짝 펼쳐지는듯한 느낌이 드시였다.

그렇다. 새 세상이 바라보인다. 지금껏 말로만 외워보고 어렴풋한 꿈으로만 그려보던 조국, 왜적을 내쫓은 자유로운 조국, 천대받던 사람들이 잘살게 된 조국, 무권리와 암흑속에서 살던 우리 녀성들의 피눈물이 가셔진 조국, 아득히 머나먼 지평선너머 보라빛안개의 장막속에 안타깝게 가리워져있던 그립고 보고싶던 미래의 조국, 광복된 내 조국이 장군님께서 높이 들어 펼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찬란한 빛발아래 불현듯 그 황홀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회의장에서 그대로 큰 대문을 열어제끼고 그 찬란한 새 세상으로 넘어서는것 같은 느낌도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쿵쿵 울리며 뒤설레이는 심장을 더는 진정할길 없어 박수치던 두손을 모아 가슴을 누르시였다. 그리고 장군님을 우러러 마음속으로 말씀을 드리시였다.

(장군님, 저는 장군님께서 조선혁명의 모든 문제를 깊이깊이 통찰하시고 밝혀주신 위대한 강령을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겠습니다. 정말 이 강령을 자기의 뼈와 살로, 숨결로 만들기만 한다면 누구나 다 혁명의 신념, 승리의 신념이 억척같이 강해지리라는것을 저는 알고있습니다. 저는 꼭 한자, 한구절, 깊이 파고들어가 장군님께서 그 글구절속에 심어넣으신 높고 위대한 사상을 깊이 새기며 정말 뼈와 살로, 숨결로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해가지고 그것을 들고 군중속으로 들어가 선전자, 조직자로 되여 어떠한 투쟁이라도 해내겠습니다.

위대하신 장군님께 저는 이 맹세를 굳게 다집니다···)

김정숙동지께서 이슬젖은 눈으로 장군님을 우러러보며 이런 맹세를 드릴 때 장내에서는 폭풍같은 박수가 계속되고있었다.

회의는 숲속에 석양이 비껴들무렵 끝났다.

이날 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정숙동지를 사령부로 부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스러이 사령부로 올라가 장군님께 인사를 올리시였다. 사령부엔 전령병들이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한참동안 아무 말씀이 없이 방안을 거닐기만 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두근거리시였다. 무엇때문에 부르셨을가?

얼마후에야 장군님께서는 먼저 자리에 앉으시였다. 안색이 몹시 무거우시고 진중하신것 같아 보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심히 장군님앞에 앉으시였다.

《내가 아무래도 동무에게 이야기를 전해야 하겠기때문에 불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슨 말씀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그저 얼굴을 들고 장군님을 우러러보시였다.

《동무가 그렇게 안타까이 기다리는 동무의 오빠는 못오게 되였습니다. 팔구광산에서 투쟁하다가 놈들에게 체포되여 영웅적인 최후를 마쳤습니다. 나는 그동안 동무를 몇번 만나긴 했으나 가슴이 아파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있다가 오늘에야 전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속으로 훌 스쳐지나갈뿐이시였다.

《나는 이번에도 이 소식을 말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아무래도 전해야 하겠기때문에 불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제야 심장이 떨리며 온몸이 굳어지는것 같으시였다.

《동무야 자기 슬픔을 눌러내지 못하겠습니까? 그런 비애의 중하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 큰힘을 가지고 일어설 동무가 아닙니까, 난 그렇게 믿기때문에 이 이야기를 서슴없이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장군님!》

김정숙동지께서는 새파랗게 된 얼굴을 쳐들며 장군님의 근엄하신 안색을 우러러보시였다. 장군님께서도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잠간 지켜보시였다. 그러시더니 이어 피우시지 않으시던 담배를 피워무시고 연기를 자꾸 내뿜으시였다. 재가 앉지 않은 담배를 재털이에 가져다 털기도 하시였다.

《너무 놀라지 말고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동무의 오빠는 팔구광산에 가서 아주 큰일을 해놓고 떠나갔습니다. 태봉시에서처럼 그곳에 가서도 광산뿐만아니라 광산주변 농촌들에까지 혁명의 불길을 지펴놓고 갔습니다. 지금 그곳 일이 아주 잘되고있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을 못올리시였다. 그저 가슴이 꽉 굳어져서 장군님의 말씀을 깊이 리해해 들을수도 없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재털이에 담배재를 자꾸 터시였다.

《그래 강호동무의 어머님이 기른다던 조카애를 잃었다고 했는데 그 애도 아직 못찾았습니까?》

한참이나 지난후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시였다.

《네, 아직···》

《누가 태봉시에서 술기막골로 데리고가다가 잃었다고 했지요?》

김정숙동지께서 심각한데 빠지지 않게 하시려고 말씀을 다른데로 이끌어가시는것이였다.

《술기막골로 들어오는 아주머니가 데리고오다가 잃었습니다.》

그담엔 장군님께서도 아무 말씀을 안하시였다.

전령병이 조심히 다가와 장군님께와 김정숙동지 앞에 더운물을 따라놓고 물러섰다. 그들도 안절부절못해하는 심정들이였다.

《나도 일신의 사정에는 슬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윽해서야 장군님께서 다시 말씀을 꺼내시였다.

《나도 이 광야에 와서 부모 동생을 다 잃었습니다. 하나 남아있던 막내동생도 지금 어데 가있는지 모릅니다. 정숙동무의 하나 남아있는 조카애가 어데 가있는지 모르듯이···》

《···》

《혁명에는 혁명자체의 우여곡절도 있고 매개인의 우여곡절도 있습니다. 그 모든것을 이겨내지 않고는 혁명이 승리할수 없습니다.》

《장군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해쑥해진 얼굴을 다시 쳐들며 말씀을 올리시였다. 쉽사리 그리고 억척같이 자신을 다잡아내시는것이였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더욱더 억세여져야 합니다. 혁명의 길에서 원한의 피가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의 심장은 더욱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싸움을 이겨냅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가 최후를 마쳤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한다는것을 깨닫자 슬픔보다도 먼저 그 어떤 얼음덩어리같은것이 가슴 비좁도록 들어차는것을 느끼시였다. 그러나 장군님의 뜨거운 심려가 어리신 말씀이 차츰 곡절많은 혁명의 길에서 참답게 살아갈 혁명가의 마음의 자세를 깨우쳐주시며 그것을 위하여 자신께서 겪으신 남다른 숭고한 슬픔까지 터놓으신다는것을 느낄 때 그 얼음덩어리를 녹이며 감동의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였다.

《슬픔을 극복합시다. 크게 혁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조국으로 나가는 길을 열기 위해 이 광야에서 큰 싸움도 예견하고있습니다. 여기서 회의를 하고는 중요지점들을 틀어쥐는 혈전을 벌려야 합니다. 이 지점들을 다 틀어쥐여야 우리가 마음놓고 조국으로 나가 강도 일제와 큰 싸움을 벌릴수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정숙동무는 더구나 녀성들의 앞장에 섰으니만치 슬픔을 힘으로 바꿔야 합니다.》

《장군님, 명심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선 한참 또 딴 말씀도 하시였다. 회의를 하면서 작식대일을 돌보기가 힘들겠는데 작식대일은 읍별동무에게 맡기고 회의에만 전심하는것이 좋겠다고도 말씀하시였다. 그저 가슴속에 실낱같은 그늘이라도 끼게 하여선 안된다고 그렇게도 다심히 부드러우신 이야기를 들려주시는것이였다.

얼마후 장군님방에서 나온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디를 걷는지도 모르게 이깔나무밑을 걸어나오시였다. 이깔나무사이사이로 푸른 달빛이 흘러내렸다. 어데서 소쩍새가 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소리도 귀에 들려오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걸어나오다 말고 굵은 이깔나무를 꽉 붙안으시였다. 그리고는 한손으로 이깔나무줄기를 어루쓸며 이새로 새여나오는 소리로 오빠를 부르며 우시였다.

장군님께서 그렇게도 간곡한 말씀을 주시였으나 가슴속에서 터져오르는 설음을 눌러낼수가 없으시였다. 그저 앞이 캄캄해진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오직 하나 남아있던 오빠!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는 정, 어머니를 그리는 정, 그 모든 그리운 정도 오빠에게로 날아가는 정이 되여 오빠를 큰 산마루같이만 쳐다보던 그 오빠, 그 오빠가 인젠 이 세상에 없다니 그럼 누가 남아있는가? 회령집에 인젠 누가 남아있는가? 아, 오빠! 오빠!

김정숙동지께서는 흐느끼며 우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어 감차게 설음을 누르고 다잡으며 눈물을 닦으시였다. 입술을 깨물며 매무시를 단정히 하시고 밀영지를 천천히 걸어가시였다.

온 밀영에 인제야 비보가 알려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구나 다 비분을 못참아했다. 모두 김정숙동지께서 받아안으실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감쳐물고 일어서겠지요.》

《이번까지 저렇게 되니 일가가 다 없어졌다질 않소.》

《그렇지만 그 이악한 동무가 넘어지기야 하겠소.》

사람들은 당장 큰 밀영에 하늘거리는 푸른 불꽃이 하나 생겨난듯한 느낌도 받았다. 흐느낌도 없이 타는 비분의 불길! 그 새파란 불길! 모두 제일처럼 가슴이 조이기도 했다.

양기훈이들이 있는 귀틀집에선 사람들이 락심해서 담배질들만 했다. 희섭이도 여기에 들어있는데 그는 밀고자가 어느놈인가고 두눈에 피발이 서서 윽윽했다. 곁에 앉아있는 한기천은 두어깨를 솟구었다내렸다하며 눈물방울을 둘둘 굴리였다. 그 큰 혁명가가 죽었다니 자기가 더 무거운 죄를 지은것 같기도 했다. 사실 그는 계림시에서 품에 부둥켜안고 기르던 인남이를 또 잃어버리고말았다. 어느날 아이가 놀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기에 어데 있는가 해서 찾아돌아다녔는데 띠여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어느 근거지에서 나왔다는 애들과 함께 김일성장군님을 찾아 백두산으로 간다고 계림시 뒤길로 우야 소리치며 달아났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결국 옷자락에 바람결 스쳐간것 같이 애는 왔던 흔적도 없이 가버리고말았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여기 와서 김정숙동지를 만나서도 말을 옮기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의 슬픈 소식이 이렇게 파다하게 퍼질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되고보니 품에 안았던 아이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그것이라도 있었더면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좋겠거니와 정숙동무한테도 얼마나 위안이 되겠는가. 한기천은 제 가슴을 쳤다.

《아니 이건 왜 이러우? 정숙동무를 더 울리노라고 이러우?》

한기천의 일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가슴을 친다고 곁에서 핀잔까지 주었다.

《태, 태봉시 동발막에서 기준동무와 함께 누워 혁명을 토론하던 생각이 나서 그러우.》

한기천은 거짓말을 뱉어던지며 두눈을 슴벅슴벅하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