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1

 

제 11 장

1

 

동강회의는 벌써 그 감동적인 서막을 열었다. 카륜회의에서 펼쳐진 주체로선의 대강이 심각한 우여곡절의 거친 파도를 갈라헤치며 남호두를 거쳐 여기 동강에 이르러 힘있게 그 기발을 하늘높이 추켜올린다. 제힘을 믿지 않는자들이 건공 떠서 《세계혁명》을 부르짖기도 하고 암둔한 교조주의자, 사대주의자들은 조선혁명의 성격도 모르고 《조선혁명은 곧바로 사회주의혁명》이라고 떠들기도 하고 혁명의 타락분자들, 안일과 처세를 꾀하는자들, 변질되여 주구로 된자들, 그 어중이떠중이들은 《황민화》요, 《내선일체》요, 《동조동근》이요 하며 망국의 장송곡을 울부짖기도 하는, 이 숨막히고 막막한 질식상태가 검은 구름같이 내려덮여있는 이때 오직 다른 사람이 아닌 조선사람자신이, 조선혁명가들자신이, 바로 조선의 아들딸들이 조선의 찬란한 미래를 두어깨우에 떠메고나가며 세계에 소리쳐 그 본때를 시위하며 억세게 조선혁명의 승리, 조국광복의 승리를 이끌어와야 한다고 하는 그 위대한 기치가 여기 동방의 하늘에 높이 솟아오르는것이였다.

벌써 첫날의 장군님의 감격적인 보고가 끝났다. 그리고 새로운 반일민족통일전선체 조국광복회창건에 대한 위대한 구상과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임무와 과업을 규정한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 발표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 뛰시였다. 처음 이렇게 장군님을 모시고 하는 큰 회의에 참가하는 감격도 크셨고 또 장군님께서 하시는 보고, 그 문제의 크기를 받아안기에 벅차기도 하시였다. 또 그 위대한 사상의 진수를 자신의 수준으로써는 다 리해해낼수 없을것 같은 생각도 드시였다. 너무도 감동이 크고 손이 휘전거리여 노트에 잘 적지도 못하시였다. 국제국내정세에 대한 심오한 분석, 조국광복회를 창건해야 할 내외정세의 성숙, 그 의의, 필요성 그리고 10대강령의 그 조목조목 진리를 담은 투쟁과업, 무슨 말로 자신께서 받은 감동을 다 표현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으시였다. 그저 자신께서는 이런 혁명의 대방침이 결정되는 회의에 혁명의 지휘성원들과 함께 앉아있기에는 아직 준비가 어린것 같은 생각만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두어깨가 낮아지기도 하시였다. 그러는가 하면 무언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지고 부암, 상촌, 능지영, 술기막골, 내도산을 거쳐 바야흐로 자신께서 혁명의 큰 흐름속으로 한발 내디디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드시였다.

그이께서는 복잡하게 뒤흔들린 가슴을 붙안고 하루회의를 끝내고 들끓는 회의참가자들과 함께 이깔나무 듬성듬성 들어선 풀밭을 걸어내려오시였다. 모두 회의에서 제기된 문제를 가지고 떠들었다. 벌써 10대강령을 절반 왼금으로 줄줄 내려외는 사람도 있다. 기세가 충천했다.

인민혁명군지휘성원들이 다 모여왔다. 광막한 들판에서 호랑이같이 날아돌아가며 적을 전률시키고 전멸시킨 싸움을 지휘한 련대장들, 중대장들, 정치일군들이 불깃불깃한 얼굴들로 밀려나온다. 사선을 넘나들며 지하공작을 해온 국내대표들, 만주 각 지역의 지하공작원들, 모두 드높은 기개가 얼굴에 어려 떠들며 아름다운 석양 깔린 골짜기로 내려온다. 태봉에서 공작하던 경식이, 계림시에서 공작하던 한기천이 그리고 어느 목재판으르 들어갔었다는 양기훈이도 다 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문뜩 오빠생각이 나시였다. 동강에 오자부터 기다리시는 오빠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다.

마안산밀림속에 오셨던 장군님께서 오빠가 개척한 팔구광산에서도 사람이 올것이라고 말씀하신것은 의례히 오빠가 온다는 말씀일것이다. 그래서 꼭 참가해서 오빠도 만나보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아직 오지 않는가. 팔구가 멀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회의를 한다는 통지야 아직 가닿지 못했겠는가. 아니 국내대표들도 다 통지를 받고 왔는데 거리가 얼마나 멀기에 아직 통지가 가닿지 못했겠는가. 무슨 신병이라도 있어서 오지 못하는것은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초조하고 안타까운 생각을 하며 풀이 파란 버덩을 한참 걸어내려오시였다.

나지막한 등성이 수림을 넘어서니 사령부귀틀집이 있는 넓은 골안이 나졌다. 약간 언덕진데 사령부의 큰집이 있고 거기서 동안이 뜨게 곬으로 내려와 사령부의 작식을 보장하는 귀틀집이 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달음박질하듯 걸으시였다. 최진련대의 녀대원이 한명 와서 자기와 함께 장군님의 식사를 보장하기 위해 애쓰고있는데 저녁끼니를 어떻게 준비하고있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려오시다가 먼저 샘물터에부터 들리시였다. 강호련대장이 장군님의 작식을 책임지고 보장하라고 이르기에 즉시 그것부터 활짝 파헤쳐 손질해놓은 샘물이였다. 장군님의 작식에 쓰는 샘물이니 그 샘물에 티검불 하나 떨어져 들어가도 안될 일이였다. 샘터로 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샘물주위를 한바퀴 돌며 무슨 다른 표적이 나타나지 않았는가를 살펴보시였다.

혁명군이 꽉 차지하고있는 지역이긴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경계하지 않으실수 없는것이였다. 주위에 자신께서 표적을 만들어놓으신 풀대며 나무잎들이 그냥 있었다. 그제야 그이께서는 안심하고 우물가로 내려오시였다. 맑은 물이 그득 차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우물가 한쪽에 주르르 놓여있는 찬감 담아놓은 그릇들을 하나하나 열어보시였다. 최진련대에서 온 읍별이에게 오후에도 물을 한번 갈아주라고 하였으니 갈아주긴 했겠지만 그래도 물이 더워지지 않았는가싶어 손을 담가보시였다. 차거웠다. 그제야 맘을 놓고 그담엔 바가지로 샘물을 떠서 입에 한모금 넣으시였다. 혀로 다심히 맛을 보며 물을 오래 넘기지 않으시였다. 물맛이 달라지지 않긴 했으나 여전히 어딘가 미흡한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조국땅샘물은 그렇게도 맑고 정갈하고 달기도 하다는데 그런 샘물을 떠서 올리지 못하고 그런 샘물로 밥을 짓지 못하는 일이 안타까우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웃물을 좀 뽑아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들어 바위옆으로 줄줄 흘러나가는 물홈을 좀 더 우벼파던지시였다. 빠져나가는 물발이 굵어졌다. 웃물이 빠지니 빛이 흐렸던것 같은 물이 맑아지는듯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다시 종종걸음을 치시였다.

귀틀집에 오시니 읍별이가 끼니를 끓이느라고 법석했다. 북만원정때 장군님의 끼니를 보장했다는 남대원이 한명 와서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가며 읍별이를 도왔다.

《수고하세요. 늦어서 안됐어요.》

《언니, 회의가 끝났으면 좀 쉬세요. 오늘은 희철동무가 와서 제꺽제꺽 하잖아요.》

《놀려대지 말아요.》

희철이가 읍별이보다 더 색시같이 수집어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부엌으로 내려서서 솥뚜껑을 열어보시였다. 최진련대가 금년봄 이 계선을 차지하는 길로 급하게 달려들어 집들을 지었다는데 이 집은 아주 농가집같이 솥도 걸고 구들도 놓았다. 솥 둘엔 인제 방금 쌀을 안쳤다. 그이께서는 물이 알맞추 부어져있는가 해서 숟가락으로 저어보시였다.

《그리고 국은 어떻게 하겠어요?》

《국은 고사리국을 끓일가 해요. 그것밖엔 무슨 국감이 있어요?》

《그럼 어서 불을 때세요. 우물에 담가놓은 고사리를 건져와야겠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빈 그릇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오시였다. 샘물가에 와서 고사리를 건져담으려니 문뜩 목이 메는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글쎄 장군님께서 어떻게 이처럼 너무도 소박한 식사를 하시게 할수 있을가, 온 민족이 우러러받들고 온 민족이 높이높이 모시고있는 장군님이신데 이 소박한것이 그 무슨 성의로 될것인가. 내 나라, 내 민족을 대신해서 이 작고 하찮은 존재가 장군님곁에서 시중을 드는 영광스러운 일을 맡았다면 이게 혁명과업인들 얼마나 큰 혁명과업이겠는가!

내가 어떤 성의를 다해서도 음식도 기껏기껏 맛있게 만들어 한숟갈이라도 더 드시도록 해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고사리국밖에 대접하지 못하다니··· 내가 마음속깊이 차고차있는 충성의 한마음을 붙안고 몸부림이나 해서야 무슨 소용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아픈 마음으로 고사리그릇을 들고 집으로 달려오시였다. 그이께서는 국가마에 고사리를 숭덩숭덩 썰어넣으면서도 눈물을 머금으시였다.

한참 저녁끼니를 끓이는데 누가 밖에 와서 김정숙동지를 찾았다. 밖으로 나가시니 뜻밖에도 분임이가 나타났다.

《아니 이게 누구냐?》

《정숙동무!》

《분임동무!》

김정숙동지께서는 마구 부둥켜안고 흔들며 한참이나 말씀을 못하시였다. 이게 정말 얼마만인가. 하긴 세월이야 무슨 긴 세월이 갔을가마는 분임이 저승길 아흔아홉굽이를 돌고나서 여기 이렇게 불쑥 나타났다고 생각하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메여 말이 나가지 않으시였다. 장군님을 만나뵈왔을 때 애들한테서 저저한 이야기를 듣고있다가 만나긴 하지만 오늘 역시 만나는 기쁨과 곁묻어 일어나는 설음이 가슴을 꽉 메게도 하시였다.

《수고를 했어요. 난 벌써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길 다 들었어요.》

《나두 다 알구있어요.》

분임이는 눈물을 씻으며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직도 언 독이 풀리지 않아 푸릿푸릿했다. 볼이 정말 홀쪽해지고 두어깨가 높아뵈였다. 그전날 분임이같은 모습이란 거의 없고 힘센 장정 같아보이기도 했다. 분임이 제먼저 울지 말자고 하며 제 눈물도 닦고 김정숙동지의 뺨에 흐르는 눈물도 닦아주었다. 손도 꽜꽜해서 쇠가 와닿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메게 고마운 생각이 드시였다. 분임이가 죽을 고비를 겪고겪으며 상처가 다지우고 모지라져 이렇게 되긴 했지만 연약한 몸집에 고와진 모습을 보는것보다야 얼마나 좋은가. 인제 분임이를 놓고야 술기막골에서 있었던 그 잊혀지지 않는 비판같은것을 생각할수 있을가.

《그래 마안산에서 곧바로 여기로 오는 길이예요?》

《그럼, 애들 둘도 인젠 다 나았어요. 그래서 그 애들을 데리구 강촌으로 나가는 소대를 따라서 나가던 길에 여기 들렸지뭐. 인제 달이 뜨면 떠나겠다고 하기에 그새 이리로 뛰여왔어요···》

《그럼 좀 들어가자요. 우린 지금 작식을 하는중이야요.》

《나두 방금 들었어요. 사령부의 작식을 한다는 소리를. 그래서 이리루 곧장 찾아왔지뭐.》

이런 소리를 하며 김정숙동지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는 분임이는 웬일인지 귀밑을 붉히였다. 분임이는 방금 리범진중대장을 반갑게 만나 김정숙동지의 소식도 들었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불이 활활 붙는 아궁에 장작개비를 지피시며 말씀하셨다.

《난 참 그동안 분임동무의 아버질 만났댔어요.》

《아니 어디서?》

옆에 쪼크리고 앉던 분임이는 눈이 둥그래서 김정숙동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내도산에서 전치근이 만났던 이야기를 한참 하시였다. 분임이는 그저 꿈같은 이야기를 듣는것 같아 두눈이 점점 더 커지기도 하고 커진 눈에 다시 눈물이 그득해지기도 했다.

《그래 집소식이랑두 다 들었어요?》

《듣지 않구. 어머니도 잘 있구 동생들도 탈 없이 잘 있다질 않아요. 정말 그때 분임동무가 쑥바치로 안가고 내도산에 와있었다면 아버지와 한전호에서 적도 쏴눕히고 얼마나 좋았겠어요.》

《참 세상일이란 그냥 꿈같기만 하군요.》

《그리구 우린 박대동의 아들도 보았어요.》

《아니 박대동이 아들은 또 어데서?》

《글쎄 그놈도 경찰대가 되여서 내도산으로 기여들지 않았겠어요.》

《어마나! 그런걸 쏴죽이지 못했어요?》

《녀대원들이 몰방으로 갈겼는데 종시 맞혀내질 못했어요.》

《아이 분해라. 그런놈을 왜 맞혀내질 못해요?···》

분임이는 바르르 떨며 부르짖는다. 그러나 낯은 피빛같이 붉어졌다.

《그까짓거야 우리가 못맞혀낸들 제놈이 얼마나 오래 살겠어요. 혁명과 맞선놈인데 혁명의 불길이 그깟놈을 오래 살라 하겠어요.》

《그렇긴 해두···》

《인젠 분임동무도 속이 환해져서 맘껏맘껏 싸워봐요.》

《참 어쩜···》

분임이는 자꾸 저고리앞섶을 잡아당기여 폈다. 눈엔 눈물이 어리고 입가엔 웃음이 피여났다. 만난고초가 다 물러가고 어쩌면 이렇게 앞이 환해지는 새 세상이 펼쳐질가고 감격이 북받치는것이였다.

얼마후 분임이는 잠간 왔다간다는것이 늦어졌다고 하면서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참 오늘밤 강촌으로 떠나간다면 내가 부탁을 좀 해야겠어요.》

《무슨 부탁이예요?》

분임이는 김정숙동지께 물었다.

《강촌에 가면 우리 녀대원들을 보고 군복을 빨리 지으란다고 좀 일러주세요. 거기 우리 중대도 나가있는데 녀동무들이 그리로 떠날 때 군복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고 갔어요. 그런데 지금 어떻게 하고있는지 모르겠어요. 가는 길로 만나서 그 군복을 빨리 지어야겠다고 말해줘요. 거기 녀성들 힘이라도 동원시키라고 해요. 녀성들을 동원시켜가지구 선전사업두 하구 바느질도움도 받구 그게 나쁘지 않을거야요. 그 숱한 군복을 녀대원들끼리 안고 모대기다간 기일을 보장해낼수 없을것 같애요.》

《알겠어요. 나두 가면 돕겠어요.》

《그렇게 해줘요. 군복때문에 어제두 장군님께서 말씀이 계셨어요. 숱한 대원들이 모두 군복이 해졌다고말이예요.》

《이야길 전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분임이를 따라 밖으로 나오시였다.

《잘들 계셔요.》

분임이는 또 돌아가며 악수를 했다.

그리고는 샘물터 앞길을 에돌아 종종걸음을 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굽이 젖어서 그 장한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시였다. 어떻게 분임이 저런 모습으로 될수 있었을가. 원쑤들은 정말 저승길 아흔아홉굽이를 만들어놓고 그 길에 분임이를 몰아넣었댔으나 분임이는 그 길에서 새 모습으로 솟아올랐다. 잊혀지지 않는 그 옛날 서러운 모습이란 지금 어느 한 귀퉁이에도 남아있지 않다. 언젠가 사람은 무엇때문에 이 세상에 태여나는가고 묻던 그 질문을 그자신이 힘차게 대답해주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몹시도 기쁘시였다.

오늘 발표된 10대강령 제7조를 생각해보기도 하시였다. 그 7조가 펼쳐지면 이 세상에 또 다른 저런 분임이야 생겨나지 않겠지. 녀성들은 모두 권리를 가진 운명으로 태여나 자라는것도 비단에 싸여 자라고 이 세상 살아가는것도 웃음꽃 피우며 살아가겠지. 바로 그게 장군님의 위대한 사상이 아니겠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두눈에 맑은 이슬이 괴여 분임이가 넘어간 산등성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이날밤 밀영일대는 웅성웅성 끓었다. 귀틀집마다에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대한 토론들이 벌어졌다. 사령부주위를 둘러싼 이 골짜기 저 옆골짜기 수림속밀영이 끓어번졌다. 숱한 천막들앞에 우등불을 질러놓고 토론들을 했다.

그런데 이날밤 밀영엔 또 하나의 꿈같은 일이 닥쳐들었다.

한밤중 둥그런 달이 비쳐내리는 밀영어구에서는 소를 타고온 장정이 소기르마우에서 내리며 법석 떠들어댔다.

《내가 못걷는다는건 무슨 소리요. 아무리 버릇없는놈이기로 사령부가 있는 골안으로 소를 타고 들어간단말이요? 난 그런 버릇없는짓은 못하겠소. 이놈 누렁아, 네가 날 태워가지고 오느라고 수고를 했다.》

소에서 내린 장정은 비척거리며 물레뿔암소의 큰 뿌다귀까지 쥐여흔들며 치하를 했다. 그리고는 지팽이가 어데 있느냐고 찾았다.

《지팽이는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언덕받이길을 어떻게 올라가겠다고 소잔등에서 내립니까?》

《아니 내가 이때까지 누워있었다구 촌보를 어쩌지 못하는줄 아시오. 이것 보시오. 풋뽈이라도 찰 자신이 있소.》

장정이 다리를 휘둘러대는바람에 소를 끌고온 농민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정말 세상에 꿈같은 일이 있다고 한들 이렇게도 꿈같은 일이야 어데 있을가. 능지영 뒤릉선에서 총에 맞아 낭에 떨어져 물속에서 결투를 하며 숨이 졌다고 소문이 나고 그 소문때문에 피눈물의 풍파를 일으키기도 했던 희섭이 이렇게 펄펄 살아서 동강밀영에 나타날줄이야 누가 상상인들 할수 있었겠는가.

희섭이는 우쩍우쩍 힘을 쓰며 지팽이에 의지해서 걸음을 떼였다. 떠드는 소리를 듣고 근방의 혁명군병영에서 모두 우르르 밀려나왔다. 양기훈이들 있는 병영에 가서 10대강령을 토론하다가 사령부골안으로 넘어오던 김정숙동지께서도 뛰여내려오시였다. 벌써 들려오는 목소리가 유표해서 너무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달려내려오시는것이였다.

《아니 이게 누구예요?》

《오, 정숙동무!》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도 놀라와 움직이지 못하시였다. 병영에 있다가 달려나온 김봉석, 태봉시의 경식이들도 이게 희섭동무 아니냐고 소리를 지르고는 모두 우뚝 섰다.

《다들 모였군. 내가 한발 늦었소. 그놈의 염라국엘 갔다오는 바람에···》

《희섭동무!》

경식이와 김봉석은 량옆으로 달려들며 희섭이를 얼싸 끌어안았다.

《이게 정말 살아서 돌아오는거요?》

《아니 살잖구. 그래 이 호랑이가 죽을것 같아보이오?》

희섭이는 쌍으로 묻는 소리에 이렇게 대꾸하며 껄껄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쪽옆에 서서 그저 후둑후둑 뛰는 가슴으로 눈물만 씻으시였다. 꼭 그 무슨 얄궂은 귀신이 장난을 편것 같기도 하셨다. 속도 수없이 태우고 눈물도 수없이 머금은 그 사연, 그 비극과는 관계가 없이 그 어디 멀리에 이런 비밀이 멀뚱하게 감추어져있었단말인가.

경식이와 김봉석은 희섭이를 량옆에서 부축하며 경사진 풀밭으로 걸어올라갔다.

《내 강물에서 한놈 쳐죽이고 나와선 벌벌 기였소. 그때 벌써 장군님께선 북만원정에서 돌아오시여 다홍왜회의를 여시고 또 요영구회의까지 여신줄은 모르고 아직 북만에 계신다고만 생각하며 장군님을 뵈오려고 북만쪽을 향해 떠났소. 장군님을 뵈옵고 말씀을 올려야 능지영바닥에서 피를 가셔낼것 같아서··· 헌데 저놈들이 발목을 쏘아서 결단내는바람에 일어서 걷진 못하고··· 발에 신었던 지하족을 무르팍에 동여매고 기였소. 이를테면 네발 가진 사람이 된 셈이지요. 하하하.》

희섭이는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통쾌한 소리로 웃었다. 말소리도 그전보다 더 우렁차진것 같다.

《그래서 일편단심 장군님을 찾아뵙자는 생각을 하며 기였는데 내가 이번 육체의 위력이란걸 한번 시험해보았소. 몸뚱아리가 강철인가? 의지력이 강철인가? 한데 몸뚱아리두 견뎌내거던, 의지를 받아물고 견뎌내더란말이요···》

《숨이 찬데 이야기를 그만두오.》

곁에서 부축하는 김봉석이 타일렀다.

《숨이 차다니?》

희섭이 눈을 붉히며 소리치는바람에 모두들 웃었다.

《좌우간 대단한 어른입니다. 글쎄 내가 밤에 자다가 대문짝 후려갈기는 소리가 나기에 나가보니 짐승같은게 우뚝 버티고 서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그 소리엔 대꾸가 없이 대문 빨리 안열어줬다고 벽력같이 소리칩디다. 허허허 글쎄 능지영에서 떠나 첨 인가를 만났다는것입니다. 능지영에서 우리네 마한촌이 어뎁니까. 그래서 부축해 들여다놓고 보니 그 험한 모습이란 말로 옮길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참 옷은 온통 꿀매질을 해서 진득진득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꿀은 웬 꿀매질을 했단말입니까?》

뒤따르는 농민의 소리에 경식이가 물었다.

《오다가 산청 든 고목을 하나 발견하고 그걸 뜯어제꼈다는겁니다. 그래서 앉은자리에서 꿀을 실컷 자시기도 하고 옷자락에 꿀개를 뜯어가지고 기여오면서도 자셨다는겁니다. 그러다가 그게 떨어지니 녹았다는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꿀은 수태 마셨겠군요.》

《마시다마다 여부가 있소. 꿀을 먹구는 물을 마시구 호화판이였소. 물을 기껏 먹어 배가 남산만해지니 길수도 없었소.》

김봉석의 소리에 희섭이는 이러며 또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따라 웃었다.

《그렇게 꿀을 먹은 다음에는 아마 한 보름동안 굶으면서 긴것 같소. 무르팍에 댄 지하족이 된욕을 보았소. 어쨌든 이 희섭이는 그렇게 해서 살아났소. 저 털보아저씨네 집에 와선 한 1년나마 맞웃방에 치료실을 척 차려놓고 누워서 치료를 했소.

그런데 글쎄 이번 북만원정을 끝내시고 남호두에 오시여 회의를 하신 장군님께서 나오시다가 미혼진에서 제 소식을 들으시고 마한촌에 들리시질 않았겠소. 참 감격스럽기란··· 나는 목이 메여 장군님앞에서 가슴을 치며 울었소. 하고싶은 말씀도 올리지 못하고···

그러자 장군님께선 우지 말라고 달래시며 음산한 비바람을 휩쓸어내고 만리광야를 개척해놓았으니 한번 기껏 뛰여보라고 하시질 않으시겠소. 가만 있자. 내가 사령부근방에서 목소리를 이렇게 높이는것 아니요?》

《사령부는 저쪽너머에 있소.》

김봉석이 알려주었다.

《글쎄 그렇다면 몰라도···》

희섭이는 또 끙하고 힘을 쓰며 걸어올라갔다. 인젠 정말 온몸에 다부진 힘이 차넘치는것 같았다. 량겨드랑이가 후끈후끈하고 지팽이를 옮겨짚는 팔뚝과 주먹이 한번 휘둘러치기라도 하면 사람 한둘은 결단낼것 같기도 했다.

《참 저 털보아저씨네 신세를 잊을수가 없소. 내 생명의 절반은 저 농민협회 회장동무가 살려냈소. 내가 여기서 큰 회의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떠났는데 글쎄 날 저 물레뿔누렁소한테 태워다까지 주었소. 그리구 자기는 견마를 들구··· 장가가는 날인들 이렇게 호사를 했겠소.》

또 모두 소리를 내여 웃었다. 뒤따르는 농민협회 회장도 텁석부리턱을 쳐들며 껄껄 웃었다.

《참, 정숙동무 오빠가 회의에 왔소?》

얼마후 희섭이는 한쪽옆에서 걷는 김정숙동지를 쳐다보며 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얼른 대답을 못하시였다.

《아마 이어 도착하겠지요.》

경식이 대꾸했다.

《음, 팔구에 가있다더니, 이번엔 꼭 만나보아야겠는데··· 그리구 참 정숙동무, 우리 집 땡땡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오?》

희섭이의 묻는 소리에 또 모두들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웃으시였다.

《왜 웃소? 그런것한텐 그런 별칭이 필요하오. 그래 지금은 혁명을 잘하고있소?》

《잘하잖구요. 인젠 군복을 입고 총을 메였어요.》

《음 그렇게 되였다면 정숙동무의 노력이 컸겠소···》

희섭이는 은근히 안도의 숨을 내쉬는것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구석에 또 눈물이 핑그르르해지신다. 무시무시한 하동거리로 말파리를 타고 달려가던 때 생각이 나시였다.

금실이는 제 알속이 박이지 못해 뒤흔들린 탓으로 하여 무슨 큰 일을 저지를번했는가. 죽었다고 생각하던 사랑하는 남편은 혁명속에 의연히 장수처럼 버티고 서있는데 저만 홀로 이 세상에서 훌 날아가버리거나 짓뭉개져 없어져버릴번하지 않았는가. 생각만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였다.

희섭이가 어느 천막앞 우등불가에 이르자 언제 소식을 들었는지 한기천이 달려왔다. 그리고 능지영에서 희섭이와 같이 김기도들한테서 졸경을 받다가 살아난 사람들도 여러명 달려왔다. 그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웨치며 희섭이의 목을 끌어안고 볼을 비비였다. 억대우같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둘둘 굴러떨어졌다.

사령부골안으로 넘어오는 김정숙동지께서는 새삼스럽게 솟아오르는 감격을 가슴에 뿌듯이 느끼시였다. 얼마나 가슴 뛰노는 환희의 밤인가. 넓은 전선에 흩어져 사선을 넘고넘다가 장군님의 찬란한 해발속에서 다시 살아나 이렇게 모여와 억세게들 포옹하며 눈물을 쏟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인제 오빠도 저 억센 혁명동지들속으로 훌 날아들어 목도 끌어안고 눈물도 흘리겠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팔구가 있다는 먼 국경계선으로 뻗어나간 찬란한 별무리를 한참이나 바라보시였다. 깜빡 또 깜빡 크고작은 별들이 눈물젖은 눈동자같이 운기에 젖어서 빛을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