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1

 

제 10 장

1

 

봄이 돌아왔다.

아름다운 봄빛이 이 내도산 곰골에도 한겹 또 한겹 두터워지기 시작했다. 나무란 나무는 죄다 파릇파릇 새 순을 내밀고 어떤 나무는 벌써 노릿노릿한 잎사귀들이 피여나서 향긋한 봄바람에 나실거리며 춤췄다. 해빛이 깔린 언덕들은 모두 파랗다. 새 풀잎들이 돋아나 푸른 방석을 깐것 같다.

숱한 새들이 날아와 지저귄다. 까막까치가 펄럭이며 난다. 내도산은 높은 산이긴 하지만 아주 험한 산은 아니다. 그래서 야산에 모여드는 새란 새들이 다 모여들고 야산에 피는 꽃이란 꽃이 다 피였다. 방울새, 박새, 딱따구리, 할미새, 어치, 비둘기, 숱한 새들이 모여들어 저들의 왕국을 이루었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며 제 직성대로 지저귀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의연히 전호들은 펑하게 열려져있다. 눈보라가 쳐가던 전호, 붉은 피가 흐르던 전호, 그 전호에도 풀잎들이 돋아나고 작은 꽃들이 피여났다. 그 언제 혈전이 있었던가 하리만치 너무도 조용했다. 세월은 피의 거룩한 자욱우에 긴 정적을 펴고 봄의 향연을 베풀었다. 후세사람들이 이 영원속에 묻히는 피자욱을 더듬기가 어려울만치 봄은 재빠르게도 저들의 아름다운 빛을 덮는다.

바로 이런 때 리범진중대는 시급히 마안산계선으로 진출하라는 사령부의 명령을 받았다. 영광스러운 명령이였다.

이 봄은 조선혁명이 주체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일대앙양에로 넘어가는 봄이였다. 력사적인 남호두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주체로선을 온 세상에 다시금 뚜렷이 밝히신 장군님께서는 전국적규모에서 혁명의 일대앙양을 불러일으키시기 위하여 몸소 조선인민혁명군 일부 부대를 거느리시고 백두산 서남부에로의 진격을 개시하시였다. 승승장구해온 혁명은 큰 파도를 치며 봄의 따사로운 바람과 함께 얼어붙었던 대지를 녹이며 남으로 내리밀리고있었다. 남호두를 떠나신 장군님께서는 미혼진에 이르시여 남호두회의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거창한 사업의 시작으로서 우선 조선혁명의 주력군이며 핵심력량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정세의 요구에 맞게 개편하시고 그 전투력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도 취하시였다. 이어 마안산부근에 이르시여서는 반《민생단》투쟁의 뿌리깊은 후과를 가셔내시며 고아와 같이 의지가지 없게 된 피해자들을 혁명의 뜨거운 품속에 받아들이시였다. 끊임없이 설레이며 도도히 굽이쳐흐르는 혁명의 크나큰 흐름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리범진중대에 내리신것이였다.

리범진을 비롯한 지휘성원들은 들썽거리는 마음으로 온 중대에 출발준비를 시켰다. 이건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가는것과 같은 일이 아니다. 꿈결에도 그리워하던 장군님앞으로 나아가 그 기간에 자기가 장군님의 뜻을 어떻게 받들어왔는가에 대해 보고를 올리러 가는 길이다. 그렇기때문에 매개 대원들은 자기 일생에 가장 뜻깊은 날로 될 그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하여 옷매무시나 행동거지는 말할것 없고 우선 마음의 차비를 갖추기에 바빴다.

출발준비를 앞두고 누구보다 흥분하는것은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장군님을 만나뵈올 생각으로 가슴이 뛰시였다. 삼도만에서 우러러뵈왔을 때의 일이 눈앞에 너무도 선명히 떠오르시였다.

반《민생단》투쟁의 여독을 쓸어내고 혁명력량을 더욱 크고 억세게 묶어세울데 대하여 명철하고도 절절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장군님 그리고 가지가지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일깨워주시던 다정하고 부드러우신 음성, 그 음성 그 영상이 너무도 우렷이 떠오르시였다.

생각하면 혁명의 길에는 그 기간에도 많은 곡절이 있었다. 어렵게 헝클어졌던 그 모든 매듭들을 장군님께서 몸소 다 풀어주시였다. 그러니 장군님께서야 한시인들 심려를 놓으실수 있었을가. 이렇게 생각하니 삼도만에서 그렇게도 절절하신 말씀으로 할 일을 깨우쳐주시던 일과 그때 받아안은 말씀을 실천하노라고 싸워온 술기막골이며 내도산에서의 나날들이 선히 떠오르시였다. 장군님의 그 심려에 비쳐볼 때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떳떳이 보고를 올릴만 한 그 무엇이 없다는 뼈아픈 생각이 드시였다.

장군님께선 녀성들의 힘을 묶어세우라고도 말씀하셨지, 녀성들의 혁명화를 위하여 투쟁해야 된다고 각별히 맡씀하셨지, 그런데 내가 그 말씀을 받들고 무슨 일을 얼마나 했단말인가, 술기막골과 내도산에서 녀성들과의 사업을 그만한 정도로 하고 무슨 보고를 올린단말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또 쑥바치에 갔던 애들의 일이 가슴에 천근만근 무게를 실어오기도 하시였다. 금실이때문에 하동거리에 다녀오신 뒤 얼마 안있어서였다. 뜻밖에도 쑥바치로 갔던 애들 한패가 내도산을 찾아와서 얼마나 기쁘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애들 한패는 눈보라속에서 갈라져 어데로 내뺐는지를 모르겠다는것이였다. 그래서 기쁨에 설레이던 가슴 한구석에는 불안이 더 넓은 그늘을 지워주었었다. 그 잃어버린 애들의 일을 장군님께 무어라고 말씀올린단말인가, 그건 분임이, 리상녀, 확실이들이 책임지고 갔던 일이니 장군님께 말씀을 안올려도 무방하리란말인가, 사태가 그렇게 되여 어쩔수 없이 잃어버리게 되였노라고 말씀을 올린단말인가, 모든게 다 내 잘못이 아니였던가, 누가 어떻게 했든 어린것들 문제야 내가 다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장군님께서 상촌강가에 흩어진 애들을 잘 거두어 길렀다고 얼마나 칭찬의 말씀을 주셨던가, 그런 애들을 인제 와서 더러는 잃어버렸노라고 어떻게 말씀올린단말인가. 어떻게 내가 얼굴을 들고 그 말씀을 올리며 또한 그 말씀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마음속깊이에 얼마나 어두운 그늘을 지으실것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장군님앞에서 말이 막혀 송구스럽게 서있어야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지는듯싶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늘아침에도 이런 생각을 가슴깊이 품으신채 작식대실에서 금실이와 확실이에게 단발을 시키시였다. 모두 녀대원으로 정식 입대를 하게 되였던것이다. 둘이 다 이젠 얼굴에 불깃불깃 혈색도 올랐다. 두달가까운동안 작식대실에 눕혀놓고 온갖 정성을 다해가며 치료를 했다. 완전히 딴 사람이 된 정대환이 기운이 펄펄해서 하루 건너 다니며 진맥도 해주고 화제를 내여 보약도 몇제씩 써주었다. 그래서 아예 일어날것 같지 못하던 금실이가 더 빨리 부기가 내리고 개운해졌다. 그의 죽은 손톱눈은 다 빠지고 새 손톱눈이 해쓱해쓱 내밀기도 했다. 녀대원들이 그 손을 끌어다보고는 새 손톱눈이 보석같아 보기가 좋다고 했다. 그러면 금실이는 눈굽에 이슬을 담고 웃었다. 무슨 보석이 자기에겐 이리도 많을가, 김정숙동무도 하동거리로 자기를 데리러 와선 가슴속의 보석을 보고 데리러 왔다고 했지, 아 그 고난에 찬 시련은 자기의 속에도 겉에도 보석을 주렁지게 만들었단말인가. 금실이는 눈에서만 눈물이 돌지 않고 가슴속 깊은데서도 눈물이 흐르는것 같았다.

어쨌든 금실이도 확실이도 모두 룡이 되였다. 인젠 다부진 어깨에 총들을 메고 나서겠다는 결심도 단단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위로 긴 머리들을 썩둑썩둑 잘라내시였다. 확실이는 아직 단발을 안해본 생머리가 되여 길지만 금실이는 그동안 단발한 머리를 그냥 내버려두어서 태를 땋게 자랐다. 썩뚝썩뚝 가위질을 하자 긴머리가 어깨로 잔등으로 와르르 무너져내린다. 생머리를 자르는 나이먹은 확실이조차도 머리 아까운 생각으로는 한숨 한번 짓지 않는다. 이젠 머리를 잘라야 하고 총을 메야 한다는 생각이 골수에 박혀 언제 아수한 생각을 지닐 여유도 없는것이였다.

《인젠 다 됐어요. 물가로 나가 머리들을 감자요.》

머리를 다 자르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이르시였다. 한편으로는 소리없는 기쁨이 가슴에 찾아들기도 하시였다. 거의 죽게 된 녀인 둘을 량겨드랑이에 하나씩 끼고앉아 내도산을 넘을 때 같아서야 언제 이런 날이 쉬 오리라고 믿었댔는가.

금실이와 확실이는 빨래비누를 들고 개울물로 달려나갔다. 달려가는 길로 물에 첨벙 들어섰다. 그리고는 서로 송낙같이 드리운 단발머리를 마주 쳐다보며 깔깔 웃어댔다. 그들은 무종아리에 구품치는 물을 물이 아니라 저들의 힘이 펄펄 살아서 구품치는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오장륙부가 다 시원해오고 생의 박동이 일어나는것 같기도 하다. 불시에 가슴 두드리는 생각도 많다. 이렇게 변하고 이렇게 좋아지는게 사람 살아가는 일인가. 어떻게 그처럼 무섭고 지독하던 고통과 비애를 훌 가셔내던지고 이렇게 후여 날아가고싶게 가벼워질수 있는가.

둘이 다 맘이 널뛰듯했다. 장군님께서 계시는 사령부가 곧바로 내도산너머에서 금부채살같은 광채를 비쳐올리는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물에 들어선채 머리를 빨기 시작했다. 비누를 문질러 거품이 하얗게 일어난 머리들을 들고 또한번 마주쳐다보며 깔깔 소리내여 웃었다.

금실이와 확실이를 단발해 내보내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랴부랴 마을로 건너가시였다. 정대환네 집에 재봉기가 있어서 거기에서 신입대원들의 군복을 짓는데 그게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오늘밤에라도 출발명령이 내린다면 당장 입혀가지고 떠나야 할것이였다. 초조한 생각이 드시였다. 숱한 신입대원들이 대오에 들어섰다. 녀성대오만 해도 영애, 금실이, 확실이는 물론 수월이, 금실이의 언니 금옥이까지도 다 정식으로 입대가 결정되였다. 이 녀자들을 한사람이라도 입은 그대로 대렬에 들이세울수는 없었다. 장군님앞으로 가는것이니 새 군복을 지어입혀도 품에 맞게 지어입혀야 한다. 단추 하나를 달아도 소홀히 달아서 입혀가지고 갈수는 없으시였다. 모자를 머리에 맞게 잘 만들라고 했는데 그것도 어떻게 됐는지 알수가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마을로 들어서시니 온 동네가 흥성거리며 끓는다. 농사철이 다가와 터밭들을 가노라고 법석했다. 모두 힘이 나서 소를 몰고 재를 뿌리고 했다. 곰골농사가 인젠 정말 신나는 농사로 된것 같았다. 정대환이 목침을 두드리며 피줄을 세웠던, 학교를 세우는 문제도 잘 풀렸다. 아직 교사는 짓지 않았으나 학교가 열리고 온 동네아이들이 다 모여들었다. 풀이 무성했던 버덩에 운동장을 닦았는데 지금 애들은 거기서 오포수가 사다준 가죽뽈을 차느라고 바글바글 끓는다. 어느 다리힘 드센 아이가 찼는지 뽈이 웃마을로 올라가는 등성이우에 선 전나무들과 키동갑을 해서 날아올라갔다. 애들은 뽈이 해와 입맞춘다고 떠들어댔다.

《누나!》

《누나!》

뽈차는 운동장에서 애들이 한무리 우르르 달려나오며 누나를 부른다. 태호가 팔을 휘두르며 앞장에 섰다. 쑥바치에서 적을 꾀여가다가 밀림속에서 없어져버렸다던 애들의 한패거리다.

《누나, 중대가 떠나면 우리도 같이 가요? 또 쑥바치같은데 따로 보내지 않겠어요?》

애들은 김정숙동지의 아래도리를 휘감으며 자기넬 내버리지 않겠느냐고 떠든다. 쑥바치에 갔다가 되게 혼이 난것이였다.

《왜 내버리고 가겠어요? 이번엔 중대와 함께 가게 됐어요.》

《이야아···》

환성이 일어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두눈에 이슬이 어려 아이들을 돌아보시였다. 용케 내도산을 찾아 곰골로 굴러든 애들이였다. 애들이 달려들던 날 일이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그때 그 얼고 굶고 지치고 한 참상을 보시니 마구 붙안고 울고싶기도 하시였다.

《그래 너희들은 어떻게 여길 찾아왔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목멘 소리로 물으시였다.

《우린 대구대구 내도산만 찾았어요. 나무껍질도 벗겨먹구 풀뿌리도 파먹구 하면서··· 누나 보구퍼 엉엉 울면서 왔어요···》

애들은 정말 엉엉 울었다. 누나를 너무 보고파 죽을번했노라는것이였다.

《그담 딴 애들은 다 어떻게 됐니? 철이며 홍갑이는 안뵈는구나.》

《나팔 불다가 왜놈들이 자꾸 뒤따르는바람에 두패로 갈라져 뛰였어요. 우린 버덩으로 내뛰구 철이넨 산을 넘어갔어요. 그담엔 어데 갔는지 몰라요.》

《기애들은 죽었을거야.》

《정말야. 눈보라속에서 꽁꽁 얼어죽었을거야···》

《얼어만 죽었겠니. 굶어서도 죽구 곰한테 물려서 죽을수도 있지···》

쳐다볼수 없게 상한것들이 법석 떠든다. 눈보라속을 굴러왔는데 옷이 온통 온돌쟁이 옷같이 되였다. 오면서 우등불이라도 질러놓고 재투성이가 되여 딩굴었는지 모른다. 어떤 애는 옷이 다 찢어져 너펄너펄했다. 시퍼렇게 언 무르팍이 내놓인 애도 있었다. 애들은 벌벌 기여오다싶이해서 오자바람으로 길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애들도 누나를 만난 일이 기뻐서 누나누나 하며 눈물을 흘리였다.

애들은 앓다가 달려온 확실이를 보고도 또 그렇게 울음을 터뜨렸다. 쑥바치에 같이 있던 어머니라고 해서 그러는것이였다.

그랬던 애들이 오늘에 와선 눈보라속을 굴러온 그 상한 흔적이라고는 거의 다 가셔지고 기운이 펄펄해서 곰골아이들과 섭쓸려 돌아가며 뽈도 차고 뜀박질도 한다. 정말 사람의 힘이란 억센것이다. 글쎄 이 어린것들이 먼먼 눈보라속을 헤치며 어떻게 아무 불행이 없이 이 내도산곰골로 찾아들수 있었을가. 지금 생각해도 이 새별같은 눈들이 고맙고 고마와 눈물이 난다. 산을 넘어갔다는 철이네 패도 이 애들처럼 아무일없이 구원되였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런데 애들을 데리고 씩씩하게 구령치며 쑥바치로 떠나가던 분임이는 또 어데로 갔을가. 그 사나운 눈보라속에 애들을 찾아 혼자 떠나가 없어졌다니 지금 이 하늘아래 살아있으리라고 믿을수 있는가. 어느 눈구뎅이에 가서 엎어져 애들을 부르고부르다가 힘이 진해서 숨지고말았는지 어찌 알랴.··· 내가 무슨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가. 분임이도 살아있겠지. 제발 살아다오···

《왜 이렇게 볼편에 검댕이칠을 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애 하나를 붙들고 볼에 묻은 구재같은걸 닦아주시였다. 웃으며 통통한 볼을 꼭 쥐여보기도 하시였다.

《히히···》

애도 좋아서 웃었다.

《오늘아침 세수는 했어요?》

《하잖구요. 누나가 시켜준대로 웃동을 벗고 목과 가슴팍도 문질렀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다른 애들도 모두 머리를 쓸어주며 옷매무시도 고쳐주시였다.

《또 가서 뽈이랑 차며 놀아요. 놀다가 모이라는 구령만 내리면 제꺽 모여야 해요.》

《누나, 정말 우리도 데리구 가야 해요.》

《그럼 누나가 거짓말 하겠어요.》

애들은 또 우야 소리를 지르며 날아올라가는 뽈을 따라 달려갔다. 모두 주먹을 부르쥐고 뛰였다.

지금 정대환네 맞웃방에선 금옥이와 수월이가 부산스럽게 재봉기를 돌리고있었다. 금옥이는 제가 이고 온 재봉침대가리를 꺼꾸로 놓은 개다리소반에 올려놓고 앉아서 돌릴수 있게 만들어냈다. 하동거리에서 내내 삯바느질을 해서 바느질솜씨도 보통이 아니였다. 한참 재봉기 두대가 달달 소리를 내는데 김정숙동지께서 들어서시였다. 금옥이는 설음겨운 생각을 하다가 얼른 눈물을 씻으며 아닌보살을 했다.

《군복이 어떻게 됐어요?》

《이젠 거의 됐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물으시는 소리에 수월이가 대꾸했다.

《금옥언니, 제가 돌리겠어요. 좀 쉬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옥이를 밀어내고 앉은뱅이재봉틀에 앉으시였다. 여기 와서 이때까지는 말이 없던 과묵한 금옥이가 요새와서는 지나온 설음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눈물도 잦았다. 하동거리에 와서 시부모와 남편을 여의고 열살먹은 어린것까지 잃던 하소연을 하며 내내 울었다. 오늘도 그 생각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지 모른다. 인젠 혁명군에 입대도 하고 자기의 앞길이 휙딱 뒤바뀌는판이니 지나온 슬픈 사연이 뒤돌아보이지 않을수 없었다. 재봉틀에서 물러앉은 금옥이는 쉬지 않고 군복에 단추를 달았다. 파르무레한 광대뼈 두드러진 얼굴에서 그늘이 가셔지고 우선우선한 기운이 연신 피여났다.

한창 일을 다그치고있는데 병영에서 국금이가 영애를 찾아 건너왔다. 국금이도 곰골에 와서 활짝 피여났다. 눈이 어글어글해지고 볼이 둥실해졌다.

《아니, 아직두 영애동무를 찾아다니고있어요? 밀 한말은 언제 방아에 찧어가지고 떠나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쳐다보며 물으시였다. 아침에 웃마을에서 내려온 통밀 한말을 영애와 둘이 방아에 가지고가서 찧으라고 했는데 그걸 아직 못찧은것 같아 하는 말씀이시였다.

《밀은 찧어다놨어요. 복녀동무까지 셋이 가서··· 그런데 인제 1소대장이 와서 짐을 꾸리라지 않아요. 작식대엔 짐이 많을테니까 미리미리 꾸려두는게 좋겠다면서···》

《떠날 시간이 결정됐대요?》

《그건 모르겠어요. 그런데 짐을 꾸리자니 복녀동무두 없구, 영애두 없지 않아요. 복녀동무는 가루함지를 내려놓기 바쁘게 남대원들 총꼬느기하는데로 내빼고 영앤 기름쥐 새듯 어디로 새구···》

국금이의 떠드는 소리에 모두들 웃었다.

《정지방에 내려가 물어보라구. 영애는 여기 와서 씽 돌아치더니 정지방으로 내려갔어. 시할머니가 또 한바탕 뭐라고 타이르는것 같기도 했어.》

《그 앤 입대했다는게 왜 자꾸 도둑괭이처럼 시집에만 기여들어?》

국금이는 종알거리며 사이방을 거쳐 정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도 출발을 앞두고 마음이 흥성거려지는것이였다. 그는 인젠 영애를 아예 제 동생처럼 이 애 저 애 하고 불렀다. 영애도 그게 좋아서 그렇게 부를 때마다 발씬 웃군 했다.

정지방엔 영애가 없었다. 오씨가 돋보기를 걸고 앉아서 무슨 전책인가를 보고있었다.

《할머니, 손자며느리가 오지 않았댔어요?》

《인제 왔댔지.》

《그런데 어델 갔어요?》

《글쎄 모르겠구나. 오늘은 군복을 타입는다고 법석을 하더니···》

《아이참, 군복을 오늘 타입는다는건 또 어떻게 알아? 할머닌 손자네 부부가 혁명군으로 가는게 좋아요?》

어쩐지 아직 손자며느리에 대한 불평이라도 있는것 같아 국금이는 할머니에게 한마디 물었다.

《좋잖구, 장군님부대로 나가는데 좋기만 할테냐. 내 그래서 이자 들어온걸 붙들어앉히고 네가 군대에 나가서 장군님을 잘 받들고 매사를 저 웃방에 있는 정숙이처럼 잘하라고 한참 타일렀다. 그러니까 그러겠노라고 하면서 눈물을 씻잖겠니···》

《눈물은 왜요?》

《그것도 아마 시부모 두고 떠나는게 맘에 걸려서 그러겠지. 가만히 보니까 요샌 눈물이 잦아.》

국금이는 얼른 부엌으로 내려가 동이를 들여다보았다. 빈동이였다. 어쩜 애가 이렇게 동떴담. 시집에 들어왔으면 빈동이에 물이라도 한동이 길어다놓고 나가면 어떤가. 시어머니도 부녀회일로 내내 동네에 나가있는데··· 국금이는 얼른 동이를 끼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우물에 가서 물 한동이를 길어서 이고 돌아오는데 새 군모를 쓴 영애가 통탕거리며 마당으로 달려들어온다.

《아니, 언니가 물은 왜 길어요?》

《어디 갔다와?》

《웃말 아버지한테···》

빠르긴 빨랐다. 방아를 찧어다놓고 언제 벌써 그렇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아버지한텐 왜 갔댔어?》

《군모 쓴걸 좀 봐달라구.》

《아니, 군모는 누가 주어서 썼어? 아직 군복도 군모도 내주지 않았는데···》

《누가 주긴··· 내가 맞웃방에 올라가 하나 살짝 쓰고 갔댔지.》

국금이는 웃음이 나는걸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하면 못써. 군모도 군복과 함께 내주는거야. 어서 이걸 받아 이라구. 시할머니 앉아있는데 네가 물동이를 이고 들어가는게 낫겠어···》

영애는 발씬 웃으며 국금이가 동이를 들자 그의 머리우에서 살짝 또아리를 뽑아내여 제 군모우에 올려놓았다.

《군모는 벗구! 새 군모우에 물동이를 올려놓으면 뭐가 돼?》

《아이참, 훈계가 호추알같네.》

그 소리엔 국금이도 빙긋이 웃었다. 영애는 물동이를 이고 활개를 치며 대돌로 날아올라갔다. 여불없는 영금이의 뒤모습이다. 국금이는 때없이 또 가슴에 뭉클하는 정을 느끼였다.

《물동이를 내려놓고 빨리 나와. 인젠 작식대짐을 꾸려야겠어···》

《애개, 그럼 오늘 정말 군복을 타입게 되겠네.》

《넌 그저 군복이구나.》

《호호호···》

영애는 바스러지게 웃으며 대문안으로 사라진다.

내도산밑 작식대실에선 금실이와 확실이가 짐꾸릴 준비를 시작했다. 그들은 그릇이란 그릇을 죄다 물가로 이여내갔다. 말끔히 닦아가지고 떠나려는것이였다. 모두 깨끗이 빨아던진 단발머리에 삔들도 꽂고 날렵하게들 움직였다. 그들은 가마도 죄다 뽑아내갔다. 가마들중엔 동네에 돌려줄것도 있고 이고 갈것도 있는데 어느것이고 다 밑굽에 붙은 구재를 빡빡 닦아내려는것이였다.

둘이는 물가운데 들어서서 가마를 굴리며 짚수세기로 문댔다. 한창 가마를 씻는데 총꼬느기판에 갔던 복녀가 그릇이 가뜩 담긴 망함지를 이고 달려나왔다.

《어떻게 됐어요. 이겼어요, 졌어요?》

금실이가 복녀에게 물었다.

《아이참, 지길 왜 져요. 나를 당해내요? 가래도치가 다 뭐예요?》

복녀는 큰 그릇임을 저혼자 씽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그도 치마를 걷어지르고 절벅절벅 물로 들어섰다.

《어이구 이기고나 이겼다고 하는지 누가 알겠소?》

《아이참, 아주머니 손 좀 내대봐요.》

《손은 왜?》

《글쎄요.》

확실이는 물묻은 손을 내댔다. 그러자 복녀는 냉큼 그 손을 제 큰 손아귀에 거머쥐였다.

《아이구, 얘얘 손가락 부러진다. 놔라 놔라.》

가마를 닦던 금실이가 바스러지게 웃었다. 복녀도 빙긋이 웃으며 놓아주었다.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요.》

《호호호···》

이때 3소대 병영앞에선 대원들이 가뜩 모여서서 우야우야 소리를 지르며 총꼬느기를 했다. 총을 한자루씩 꼬느었는데 인젠 두자루씩 꼬늘내기를 했다. 숱한 대원들이 앞을 다투어나가 두팔을 슬슬 올려걷고는 총들을 잡았다. 그리고는 총 둘을 량손에 거머쥐고 얼굴이 새빨갛게 되도록 힘을 쓰며 꼬느어올린다. 어떤 대원은 얏 소리를 지르며 꼬느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두손에걸 어느 하나도 꼬느어올리지 못하는 대원이 많고 설사 꼬느어올린다 하더라도 왼쪽이면 왼쪽, 바른쪽이면 바른쪽 한손에걸 꼬느어올리지 두손에걸 일시에 다 꼬느어올리진 못했다. 지금 1소대의 가래도치라는 별명을 가진 대원이 다부진 몸집을 흔들며 마당가운데로 나갔다. 그는 힘장수였다.

《보자, 들어내는가? 아깐 한자루씩 드니까 들어내는 사람도 많고 가래도치는 검불가치 꼬느어올리듯 했지만 이번엔 잘 안될걸···》

《몰라, 별명이 가래도치가 안야? 냉큼 들어낼거야. 총 둘도 꼬느어내지 못한다면 무슨놈의 가래도치야.》

대원들이 떠들었다. 모두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근질거려서 가래도치가 있는데로 둘레를 좁히며 다가들었다. 가래도치는 팔을 올려걷으고 한손에 하나씩 총신끝을 거머쥐였다. 팔뚝이 정말 딴 사람의 배는 되게 굵은것 같다. 그 굵은 팔뚝에 시퍼런 피줄이 돋아오르고 거기에 털까지 듬성듬성 났다.

《야, 팔뚝만 보아도 스산하다.》

《그러게 그 팔뚝 휘두르는바람에 왜놈 다섯이 한꺼번에 나가자빠졌다네.》

폭소가 일어났다. 땀난 얼굴들이 성벽을 이루고 서로 갈겨대며 웃었다.

가래도치는 이얏 소리를 치며 들어올렸다. 곁에서 모두 들었다, 들었다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다. 아직 멀었다. 바른손에건 꼬느어올렸는데 왼손에건 제대로 쳐들지 못했다.》

《바른손은 열점이고 왼손은 일곱점밖엔 안된다.》

주위에서 북장가마 끓듯 했다. 정말 가래도치도 그이상 꼬느어올리질 못하고 총 두자루를 털썩 놓았다. 이야- 하고 모두 아쉬운 소리들을 질렀다. 누가 녀장수를 또 붙들어내오라고 소리쳤다.

복녀를 붙들어내오라는 소리다.

《아니, 방금 나와서 들어올렸는데 어디로 내뺐어?》

《작식대실로 들어갔어. 빨리 가서 끌고나오란말야. 어디 들어내는가 보자구.》

대원 둘이 급하게 달려갔다. 그들은 작식대실이 휑뎅그레 빈걸 보고는 골짜기 물가로 내달아갔다. 복녀는 물가운데 금실이와 마주서서 가마를 문대고있었다.

달려간 대원들은 복녀더러 중대장이 부른다고 물가로 나오라고 했다. 안가겠다고 버틸것 같아서 눈들을 슴벅거리며 속였다.

《중대장동지가 왜 불러요?》

《글쎄 모르겠소. 당장 데려오라우.》

《아이참,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복녀는 물가로 나왔다.

《자, 한번 가서 더 들어보우. 이번엔 두자루씩 들내기요.》

《흥, 그따위 소릴 할려구··· 비켜요. 그릇 닦겠어요.》

복녀는 안가겠다고 버티였다. 대원들은 달라붙어 잔등을 밀고 소매자락을 잡아당기고 했다.

《어서 가라구, 그릇은 우리가 닦을게.》

《그럼요. 남자들 한번 지워먹기가 어디라구···》

물가운데 있는 금실이와 확실이도 맞장구를 쳤다. 복녀는 마지못해 또 이끌려갔다.

《쯧쯧 기운도 좀 세봤으면 좋겠다. 총꼬느기라도 한번 해보게···》

확실이는 끌려가는 복녀를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우리 언니두 복녀동무만큼 기운이 셀거야요.》

금실이는 언니자랑을 했다.

《참말야, 키도 크고 장골로 생겼어. 손가락두 굵고 길쭉길쭉하고··· 참 그 끼고온 말굴레같은 가락지는 어떻게 했다오?》

《배낭속에 있어요. 망해버린 시집생각, 죽은 아이 생각날 때면 그걸 꺼내보군 하지 않아요.》

《쯧쯧 가슴이 얼마나 아플가.》

확실이는 한숨을 지었다.

다시 끌려나온 복녀는 남대원들속으로 들어섰다. 환성이 일어났다. 박수를 치기도 했다.

《어서 들어보오. 녀장수가 꼬느어올린다면 녀장수를 가래도치라고 할테야.》

《그럼 가래도치가 이름을 넘겨주며 절을 하게 하자구···》

웃음이 터졌다. 대원들은 와글와글 끓으며 복녀가 총신 잡는걸 바라보았다. 그런데 대원들뒤엔 대걸이도 와섰다. 그도 빙그레 웃으며 앞사람의 어깨너머로 복녀를 넘겨다본다.

《얏!》

얏소리는 복녀가 아니라 곁에서들 쳐주었다. 복녀는 두자루의 총신을 쥐고앉아 잠간 무얼 료량해보는것 같았다. 왼손에것도 한번 들어보고 바른손에것도 한번 들어보고 했다. 주위에선 조바심이 나서 든다, 올라간다 하며 떠들었다. 복녀는 총신 둘을 잡고 우쩍 일어섰다. 총 두자루가 부들부들 떨며 뚝 뻗친 팔뚝과 거의 수평으로 올라갔다.

대원들이 올라간다 올라간다 소리를 질렀다.

《됐다, 됐다, 다 올라갔다!》

그래도 복녀는 총을 놓지 않고 얼굴이 다홍빛으로 불타며 대원들앞으로 빙빙 돌아갔다.

《이야!》

박수가 일어났다. 복녀는 얼른 총들을 집어내던지고 내뺐다. 대원들이 와글와글 끓었다. 가래도치, 가래도치 하며 부르짖기도 했다.

《거 대단한데, 이거 뭐 남대원들이 얼굴 들고 다니겠어?》

《가래도치가 아주 망신했네.》

《가래도치만 망신이야? 동무도 남잔데 망신 안야?》

대원들은 끓어대며 헤여졌다.

대걸이는 슬금슬금 작식대실로 걸어갔다. 복녀의 딸기빛같이 타던 얼굴을 한번 더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복녀는 작식대실 부엌에서 그릇을 또 한버치 들고나오다가 대걸이가 우뚝 앞에 와 마주서는바람에 《에그머니나》소리를 질렀다.

《짐을 꾸리는중이요?》

《꾸리는게 아니라 지금 물에 내다가 닦아요.》

《그런데 인젠 팔뚝힘을 그만치 기르고 학습을 좀 잘하는게 좋겠소.》

《네?》

《밤낮 총꼬느기나 해가지고야 머리가 트겠소?》

《아니 내가 머리가 못튼게 뭐야요?》

《녀대원들중에서 학습은 제일 꼴찌라면서?》

《아이 참···》

복녀는 얼굴이 시뻘개서 그릇 담긴 버주기를 마당가운데 소리가 나게 놓고는 도로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는 부엌문을 쾅 후려닫았다. 대걸이는 빙그레 웃으며 잠간 머밀머밀하다가 부엌문앞으로 다가가서 문을 잡아당겼다. 열리려는 문을 안에서 잡아닥쳐 꽉 닫는다.

《문 좀 여오.》

안에선 대꾸가 없었다. 문을 잡아당겨보니 그담엔 용수가 없다.

《빌어먹을···》

대걸이는 두덜대며 마당안으로 걸어나갔다.

결국 정가는 소리를 던진다는것이 이렇게 튀게 만들었다. 아니 정가는 소리만이 아니였다. 속셈은 어떻게 하든지 복녀더러 학습도 잘하게 하고 빨리 머리속이 환해져 종당에는 훌륭한 녀성혁명가로 만들어내고싶은 욕심이 있어서 한 소리이기도 했다.

대걸이가 나가는 발자욱소리를 들은 복녀는 그제야 문걸쇠를 놓고 부엌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는 시뻘겋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변해갔다. 분하고 분해서 제 가슴을 쾅쾅 치고싶기도 했다. 어쩜 매양 저모양일가. 날 얼마나 무시하면 저따위소리를 할가. 내가 머리가 못텄다면 바보란 말 안야. 멍텅구리란 말 안야. 학습은 좀 떨어졌지만 머리가 못튼게 뭐야. 그런데 제가 날 그렇게 무시할거야 무언가말야. 머리가 못텄다고···

복녀는 너무도 분해서 부엌아궁앞에 쭈그리고앉았다.

대걸이가 왜 만날 선떡 먹은것 같이 나를 가로써해서 보는것인가. 내가 저를 위해서 잘못한게 뭐야. 잘못하기는커녕 태봉시 밥집에 있을 때부터 내내 왼심을 쓰며 뭐든지 도와주고싶어했지. 왜놈의 총에 맞아서 운신도 못하는걸 신개동에 맞들고나가서 밤낮 치료도 해주었지. 그리고 상촌으로 올라오는것두 내가 달구지에 태워가지고 올라왔댔지. 내가 저를 위해서 속을 태운 일이 얼마야. 그런데 날 머리가 못튼 녀자라고 업수이봐. 그럼 내가 맘에 없다는 소리 안야. 맘에 없으면 좋아, 나두 그만둘테야. 복녀는 얼굴을 싸고 앉아 마음을 다졌다. 그러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한창 울고있는데 밖에서 발자욱소리가 났다. 복녀는 얼른 눈물을 이리저리 씻으며 일어섰다. 국금이와 영애가 들어섰다. 복녀는 운 흔적을 나타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술을 감빨며 공연히 머리를 쓰다듬어넘겼다.

《아니 가마랑 빼서 어떻게 했어요?》

《물에 내다 닦아요. 동무들도 그릇을 걷어안고 물가로 나가요.》

복녀는 흔연히 대꾸하며 얼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언니, 눈물을 짰어.》

영애가 국금이에게 속삭였다.

《눈물은 무슨 눈물이겠니?》

《아니야, 눈앞이 펀들펀들 젖었어.》

《듣겠다. 까불지 말어.》

그들은 부엌바닥으로 내려서 그릇들을 한아름씩 걷어안고 밖으로 나섰다.

복녀는 벌써 그릇버주기를 이고 저만치 개울가로 줄달음을 쳤다.

이날밤 바로 온 중대에 출발한다는 긴급명령이 내렸다. 모두 들썽거리며 끓었다. 동네사람들도 혁명군이 떠난다고 함께 끓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정대환네 맞웃방에서 금실이, 확실이, 영애, 금옥이, 수월이들에게 새 군복을 갈아입히시였다.

《저는 중대장동지의 위임에 의해서 이 새 군복을 동무들에게 내드려요. 모두들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된다는 영광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이 군복을 받아주세요. 그리고 우리가 조선녀성으로서 영광스러운 혁명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겠다는 각오를 가슴에 새기며 이 군복을 받아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군복과 군모를 두손으로 받들어 한사람한사람에게 내주시였다.

그이의 눈엔 이슬기조차 어리시였다. 이 내도산에 와서 숱한 쓰라린 생각을 감쳐물고 속에 배여흐르는 눈물로 가슴속도 수없이 썩여내며 사랑의 손길로 아끼고 이끌어 녀성대오에 안아들인 혁명동지들! 그들에게 새 군복을 입히는 일이니 감격의 눈물이 왜 없으실가, 그이께서는 새로 태여나는 다섯명의 아름다운 얼굴을 눈에 한번 소담히 담아보고싶어 거듭거듭 바라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사람한사람 군복을 입혀주시였다. 금실이와 금옥이, 확실이들은 군복을 타입으면서 자꾸 울었다.

《우지들 마세요. 이 기쁜 날 눈물을 보여서야 되겠어요.》

《정숙동무는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주느라구···》

금실이가 종시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부르짖었다. 하기야 하동거리일을 생각하면 꿈만 같지 않을가, 매맞아 죽게 된 몸으로 오두막에 갇혀서 서슬사발을 붙안고 자살할 생각을 할 때 같아서야 이런 군복을 살아생전에 입어보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인젠 몸도 참제비같아지고 군복까지 타입고 총을 메고 나서게 되였으니 왜 실컷실컷 울고싶지를 않을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군복치마저고리를 입혀놓고는 품이 맞는가, 기장이 짜르지 않는가, 길지 않는가, 다심히 잡아당겨보고 쓸어내려보고 하시였다. 금옥이와 확실이의 군복은 더욱 알심을 넣어 지으라고 수월이에게 이르시였는데 요행 품들이 맞고 기장도 알맞았다. 나이먹고 뼈가 거세여진 몸들에 군복마저 품이 맞지 않는다면 볼모양이 있겠는가, 영애와 금실이, 수월이의 군복들도 품이 잘 맞았다. 셋은 군복을 입혀놓으니 더욱 몸들이 날씬해졌다.

《자, 한번 자기 모습들을 비쳐보세요.》

모자까지 다 씌우고난 김정숙동지께서는 조그만 거울을 꺼내주며 모두 제 모습들을 비쳐보라고 하시였다. 자기 한생에 영광스러운 고개마루로 오르는것과도 같은 일인데 제 모습이 어찌되였다는걸 알아보기나 해야 하지 않을가. 모두 제 얼굴을 비쳐보았다. 금실이, 수월이, 확실이들은 제 모습들을 마주보며 수집게들 웃었다. 영애는 군모를 바로잡으며 제 웃음씨 그대로 발씬 웃는다. 다만 단발을 안하고 상댕기 드린 낭자머리우에 군모를 쓴 금옥이만이 제 얼굴을 비쳐보지 않았다. 그는 시부모몽상, 남편몽상을 벗기전엔 단발을 안한다고 고집해서 부득이 낭자머리우에 군모를 씌웠다. 아무러면 어떨가. 조선녀성이 왜적을 치자고 들고 일어난줄 누가 모를가. 이게 설음속에 아름다운 마음씨를 굳게 간직하려는 진짜 조선녀성의 모습이 아닐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낭자머리에 쓸 금옥의 군모는 자신께서 손수 조금 크게 만드시였다. 그래서 머리에 사뿐 들어가맞았는데 금옥이는 제 모습이 우스울가봐 그러는지 거울은 종시 보지 않았다.

얼마후에야 녀대원들은 김정숙동지를 따라 엄숙히 렬을 지어 내도산밑으로 나갔다. 벌써 내도산우엔 둥그런 달이 떠올랐다.

귀틀집을 헐어낸 산기슭에는 대원들이 가뜩 들어섰다. 모두 한아름씩 되는 배낭들을 지고 총들을 메였다. 기관총들은 달빛을 받아 번쩍거린다. 놈돌이 내도산앞 야산에 쳤던 천막들도 죄다 빼앗아서 중대재산으로 되였는데 그 짐도 몇짐이 되는지 알수 없다.

쑥바치에서 온 아동단애들도 벌써 나와서 주런이 늘어섰다. 애들은 누나를 보고 싱글벙글 웃는다. 저들도 인젠 중대의 대원들축에 든다는거다.

모두 배낭도 혁명군대원들 배낭만큼씩 큰걸 졌다. 배낭속엔 별 물건이 다 들어있다. 쌀, 담요, 하불 그리고 오포수가 하동거리에 가서 공책, 연필, 지우개, 지어는 세수비누까지도 한개씩 사다가 넣어주었다. 쌀은 동네아낙네들이 애들 먹을건 근기있는 량식을 줘보내야 한다면서 모두 조찹쌀을 댓되박씩 밀어넣어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의 배낭을 하나하나 살펴보시였다. 끈이 늦지 않는가, 밭지 않는가, 늦은 끈은 죄여주고 밭은 끈은 늘구어주시였다. 사지에서 살아온 애들이라 더욱 불같은 사랑을 퍼부어주고싶으시였다.

녀대원들은 모두 짐들을 내려놓았다. 그들의 짐이 오히려 남대원들 짐보다 많았다. 그들은 등에도 지고 머리에도 이고갈 예정이였다. 금옥이는 낮에 굴리던 자기의 재봉기대가리를 개다리소반채 보에 싸이고 나와서 앞에 내려놓았다.

아래웃말 인민들이 하얗게 밀려나왔다. 모두 중대장, 소대장들의 손목을 붙들고 장군님께 가거들랑 이 내도산백성들이 장군님의 만수를 빈다고 말씀올려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했다. 정대환이, 장윤학이들도 나왔다. 정대환은 군복입은 녀대원들앞에 와서 우뚝 서더니 음 소리를 내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과연 놀랍다는 소리다. 바로 이렇게 만들어내자고 정숙이가 제 목도리에 구멍이 숭숭 뚫어지게 적탄이 날아오는데로 달려다니며 안아들이고 업어들이고 했고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치는것이였다.

《정숙아, 가서 몸조심해라. 네가 튼튼해야 한다.》

《할아버지, 고마와요.》

《내가 너를 잊지 못하겠다.》

《할아버지, 무슨 말씀을···》

정대환이 물러서자 숱한 사람들이 와서 김정숙동지의 손목을 잡고 부탁했다. 우리 내도산에서 새로 입대한 사람들을 잘 거두고 보살펴서 장군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게 만들어달라고 했다. 영애의 시할머니는 영애가 군대로 되였기때문에 제 남편을 남편으로 알지 않을수도 있으니 그런 때엔 채찍을 만들어두었다가 쫙쫙 갈기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어려 웃으시며 그러겠노라고 대답하시였다. 할머니도 눈물을 씻었다.

정말 영애는 오씨가 우스개소리로라도 걱정을 할만치 철없이 굴긴 했었다. 그는 이 순간에도 군모를 썼다벗었다하며 깔깔대고 돌아치다가 제 남편한테 옆구리를 질리웠다.

《애쿠···》

《왜 까불어? 군규를 지킨다는게 뭔지 알아?》

정선일은 후리후리한 키에 군복을 입으니 의젓하길 짝이 없었다.

《애개, 별나켄 구네.》

《별나킨 뭐가 별나? 집안망신시켰다간 없어.》

정선일은 소대가리같은 주먹을 쳐들어 흔들었다. 그제야 영애는 찍소릴 못하고 녀대원들속으로 달아났다.

얼마후 중대는 나팔소리를 울리며 떠났다. 긴 대렬이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붉은 기발을 펄펄 날리며 내도산고개길을 향해 올라갔다.

《잘들 계셔요!》

《잘들 가라구!》

인민들도 손을 흔들고 대원들도 산아래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나팔소리는 더욱 랑랑히 울리고 붉은기는 기세차게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