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4

 

제 1 장

4

 

이튿날 아침 김정숙동지께서 구정부로 나가시니 구정부사무실에 사람들이 가뜩 모여앉아 회의를 했다. 김정숙동지께서 들어가시자 모두 우실거리며 자리를 내주었다.

《현공청에서 일하던 김정숙동무입니다. 이번 근거지를 해산할 때 과업을 맡고 내려온 동무입니다.》

리범진이 양기훈에게 소개를 했다.

《알고있습니다. 어제 고동하물가에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상촌신보>의 투쟁실기를 읽었습니다. 앞으로 잘 싸워주십시오.》

양기훈은 인중이 밭은 입가에 우선우선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잘 지도해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게 웃으며 대꾸하시였다. 양기훈의 곁에 앉아있던 한기천이 어서 앉으라고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람들이 죄여앉으며 내주는 자리에 조심히 앉으시였다.

《김정숙동무까지 오니 이 근거지의 지도력량이 괜치 않습니다.》

《괜찮아야지요. 우선 사람부터 꾸려놓아야 난관을 헤쳐나가며 군중을 살려낼것 아니겠소.》

한기천의 말에 양기훈이 흡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한기천이 앉아있는 이쪽편으로도 낯모를 사람들이 여러명 앉아있다. 모두 구정부 간부들인것 같다. 도수 높은 안경을 건 사람도 있다. 다들 담배질들을 하며 새로 들어와 앉은 김정숙동지를 눈을 모아 쳐다보았다.

지금 양기훈은 술기막골근거지 일군들과 상촌근거지 일군들을 모여앉히고 눈섭우에 드리운 많은 문제를 토의에 붙였다. 식량문제, 씨앗문제, 되골 큰벌 능수리땅을 한평도 묵이지 말고 다 파종해넣는 문제, 상촌에서 유격대가 한개 소대 왔으니 이미 있던 검산의 한개 소대는 식량공작을 내보내자는 문제, 원쑤가 분명 주변에 있으니 그걸 잡아내자는 문제, 숱한 안건을 제기했다. 그는 덩지가 작고 볼품은 없지만 일을 치밀히 짜고드는것 같았다.

《어쨌든 상촌동무들이 한몫 단단히 메고들어 해내야 하겠습니다. 물론 여기도 근거지해산방침에 따라 장차 해산은 되겠지만 모여든 군중을 여기 있을 때까지 우선 살려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려낼뿐만아니라 군중을 날이 서게 혁명화시켜서 앞으로 적구에 나가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 과업을 수행해내지 못한다면 장군님 앞에 무슨 보고를 어떻게 올리겠습니까? 그러기때문에 우리는 우선 기아선상에 있는 인민들에게 량식을 해결해주어야 하고 씨앗을 구해다 파종을 끝내야 하고 근거지안에서 준동하고있는 원쑤를 잡아내야 하고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다 해내야 하겠습니다.》

양기훈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나갔다. 말이 조리가 있고 분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양기훈의 이야기에 퍼그나 놀라시였다.

지금 시절이 어느때기에 이제야 파종문제, 씨앗문제를 저렇게 토론하는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농사철에 차이가 있은들 얼마나 있겠는가. 양기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 밭은 한평도 갈아엎지 못한듯한데 그렇다면 온 들판에 묵은 그루를 그냥 놔두고 앉아 이제야 밭갈이요, 씨앗이요 하고 있지 않는가.

양기훈은 한참 더 저저히 이야길 했다.

그리고는 대책을 토의하는데로 넘어갔다. 씨앗과 식량공작대를 파견하자는 문제가 제기되자 좌중에서 도수경을 건 구정부의 부회장 리억겸이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의견을 제기했다.

《아까 회장동무는 상촌소대가 온 조건하에서 검산에 있는 소대를 공작대로 내보내자고 했는데 제 의견은 검산과 이 일대의 지형지물에 통달한 검산소대는 지금 있는대로 그냥 놔두고 새로 온 상촌소대를 식량공작에 내보내는것이 좋다고 봅니다.》

틀지게 한마디 제기하며 코등에 처진 안경을 올려밀었다. 목이 굵고 가슴이 벌어졌는데 양기훈은 그에 비기면 큰 곰곁에 꼬마곰이 앉은것 같았다.

《그럴듯싶은 의견입니다. 적이 어느때 달려들지 모르는 형편인데 이 지대에 익숙한 소대를 남겨두는것이 나쁘기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상촌소대장동무, 나갈수 있겠습니까?》

양기훈이 대걸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걸이 선뜻 대답했다. 사람들은 허우대가 크고 믿음직한 대걸이를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양기훈은 이렇게 한문제한문제씩 제기해놓고는 그 자리에서 결정을 지으며 넘어갔다. 속들이 상해서 그러는지 모두 담배를 그냥 피워댔다. 가랑잎 섞인 담배를 안피우겠다고 되초가 불룩하게 든 양기훈의 담배쌈지를 서로 채다가 신문지로 나팔같이 말아물었다. 방안엔 연기가 자욱했다.

회의에선 여러가지 문제를 토론한 다음 간부문제도 보았다. 결원중에 있는 군사부장자리엔 상촌에서 온 리범진을 올려앉혔다.

《그다음 한가지 제기할 문제는 김정숙동무에게 공청사업을 맡겼으면 합니다. 지금 공청책임자가 다른곳으로 조동되고 부책임자가 책임자대리를 하고있는데 산을 허물것같이 뛰고있지만 사업이 치밀치 못합니다. 저걸 좀 뒤채를 잘 잡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기천이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이렇게 제기했다.

《옳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양기훈이와 리범진이 제꺽 찬성을 하고 다들 반대가 없다고 했다.

《전 아직 여기 사정을···》

김정숙동지께서는 얼굴이 붉어져 한마디 건네시였다.

《여기 사정을 무얼 모르겠소? 정숙동무의 솜씨에야 하루이틀이면 무불통지가 되겠는데···》

《옳습니다. 근거지누나 솜씨에야 뭐가 막힐게 있겠소···》

한기천이와 리범진이 주고받고 하는바람에 김정숙동지께서는 다른 말을 꺼내지 못하시였다. 모두 수집게 고개를 숙이고 앉아계시는 김정숙동지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회의는 한낮이 거의 되여서야 끝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언지 모르게 어깨가 무거워진 심정으로 회의장에서 나오시였다.

그길로 부랴부랴 마을앞으로 걸어나오시였다. 씨붙임 못했다는 벌판형편이 어떤가를 알아보시려는것이였다. 골짜기로는 바람이 지동치듯 내려불었다. 마가을바람같기도 했다. 가랑잎이 날려일어나고 갈가마귀떼가 날았다.

언덕우에 올라서니 들판엔 사람들이 널렸다. 띠염띠염 소도 보였다. 한곳에선 청년들이 줄을 지어서서 땅을 쪼아엎었다. 밭머리에선 새빨간 기발이 펄펄거리며 날렸다. 역시 농사시절을 놓친 들판은 들볶고있다. 아마도 기발을 꽂고 땅을 파는 사람들은 공청원들인것 같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삐 그리로 걸어가시였다. 공청을 책임지게 되였으니 우선 공청원들을 만나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시였다.

밭머리로 거의 가셨는데 땅을 파던 청년 하나가 걱실걱실 걸어나온다.

《지도원동무! 이게 얼마만이요.》

《택진동무!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

《야 정말··· 고생이 무슨 고생이겠소. 내 방금 정숙동무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소. 국금동무가 나와서 알려주는바람에 환성을 올렸소.》

청년은 흙손으로 김정숙동지의 손을 그러잡았다. 큰키에 손아귀도 셌다. 눈망울이 디굴디굴 굴고 모자를 넘겨쓴 이마에서부터 눈언저리로 땀이 번지르르 흐른다. 이 청년이 바로 한기천이 일이 치밀치 못하다고 하던 공청의 부책임자 오택진이다.

김정숙동지께서 현공청에 올라가 공작하실 때 이곳 공청에서 사업하던 오택진은 능지영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현공청에 들리였다. 그때 인상깊게 본 청년이였다.

《역시 공청을 잘 동원시켰군요.》

《지도원동무, 정말 가슴이 아프오. 아직 씨앗도 못묻었는데 무슨 일을 했다고 할수가 있소. 면목이 없소. 그래서 공청원들로 파종대를 무어가지고 나섰지요. 파종대를 뭇긴 해도 실지 땅이야 몇평이나 파겠소. 허지만 인민들을 들어일구기 위해 기발을 내다꽂고 호소를 하고있지 않소.》

《그게 얼마나 좋아요. 공청은 바로 일을 그렇게 해야 된다구 보아요.》

《정말 눈물이 나서 못보겠소. 모두 씨앗을 묻자고 극성이긴 한데 식량난때문에 사람들이 맥을 못추고있소. 저 구름릉우에선 매일 울음소리가 진동하오. 밤엔 죽은 사람들의 원귀가 우위우위 울구···》

《그만두세요. 또 익살을 하는것 같군요. 갓 들어온 사람더러 겁을 집어먹구 어서 검산너머로 달아나라구···》

오택진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비탈진 밭에서 땅을 쪼아엎는 공청원들도 모두 지친 모습이였다. 괭이와 쇠스랑을 힘겨웁게 들었다 놓았다 하며 퍽퍽 소리를 내였다. 말도 없이 김정숙동지께서 오택진이와 마주서있는 밭머리만 흘끔흘끔 바라본다.

어쨌든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이 좀 훈훈해지시였다. 한기천이 사업이 치밀치 못하다는 소리는 했으나 이마만치라도 공청을 불러일으켜 벌판에 내세웠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공청원들이 괭이질하는데로 다가가시였다. 공청원들속에는 정말 그렇게 빨리 기운을 차리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국금이가 나와서 땀을 흘리며 괭이질을 했다. 하루밤 이야길 해주고 오늘 아침엔 무슨 일이든 시작하라고 타일렀더니 이렇게 괭이를 들고 파종대로 나왔다. 허리를 꼬며 괭이질하는걸 보니 가슴아픈 생각이 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의 곁으로 가서 괭이를 달라고 하시였다.

《언니 난 일없어요. 이 아지미를 좀 도와줘요. 공청원도 아닌 아지미가 벌써 여러날째 공청파종대에 나와서 땅을 판대요.》

국금이는 제곁에서 땅파는 녀인을 가리키며 그 녀인을 도와주라고 했다. 정말 국금이의 곁에선 수건을 푹 내려쓰고 중둥매끼를 동여맨 중년녀인이 땅을 팠다. 몸이 겨릅대같이 가늘고 얼굴이 살핏했다. 슬픔에 치여 넘어졌던 국금이는 그래도 녀인에게 대면 룡이였다. 정말 이런 녀인이 어떻게 되여 공청원대렬에 섞였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아주머니, 괭이를 이리 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녀인의 곁으로 가서 손을 내미시였다. 녀인은 두눈에 눈물이 그득해져서 돌아보았다.

《전 일없다우. 이까짓 괭이질이 뭐게요. 상촌에서 예까지 먼길을 고생하며 왔는데 정숙동무나 오늘은 푹 쉬라구요.》

벌써 국금이한테서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였다. 정숙동무라고까지 부르며 김정숙동지의 손을 밀어냈다. 그는 제힘으로 한사코 괭이질을 했다. 저고리도 변변치 못한 광목겹저고리에 토목치마를 입었다. 피기없는 파르무레한 얼굴에서 땀이 좔좔 흘러내린다.

《글쎄 이리 주세요. 끼니두 변변히 끓여 자시지 못했겠는데 어떻게 괭이질을 하겠어요?》

녀인은 마지못해 괭이를 넘겨주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밭고랑에 들어서서 땅을 파제끼기 시작하시였다. 수수그루가 절은 밭이였다. 지난해 농사가 되게 우거졌던것 같다. 점토질흙에 수수뿌리가 가둑등걸같이 컸다. 그 큰 뿌리가 흙을 함지등같이 물고 일어난다.

《아주머닌 어떻게 되여 공청원들속에 섞여서 땅을 파세요. 이게 아주머니네 밭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곁에서 수수뿌리의 흙을 터는 녀인에게 물으시였다.

《무슨 우리 밭이겠어요. 나두 딴 고장에서 이리로 왔다우.》

녀인은 수수뿌리를 탁탁 털었다. 그러더니 털어낸 수수뿌리를 한아름 안아들고 밭머리로 걸어나간다.

저편에서 오택진이 여드레팔십리로 괭이질을 말라고 소리질렀다.

《이 비탈뙈기를 제꺽 파일구고 저쪽 바닥밭으로 내려가잔말이요.》

《제길 씨앗두 없는걸 자꾸 파일궈서는 뭘해. 땅속에 있는 두더지나 잡게?》

오택진의 말에 한 청년이 증을 내였다.

《씨앗이 있고 없는건 상관을 말란말야. 우리 공청파종대의 사명은 우선 땅을 다 파일구는거야. 다 파일군 다음에 씨앗문제는 투쟁하잔말이야.》

오택진이 목에 피줄이 일어서 소리친다. 그담엔 공청원들이 아무 소리없이 퍽퍽 땅을 파일궜다. 오택진이 《결사전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공청원들이 따라불렀다.

《힘을 내서 벌판이 들썩들썩하게, 힘을 내서···》

오택진이 또 소리친다. 노래소리는 높아졌다. 국금이도 땀을 좔좔 흘리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따라불렀다.

《언니 부르지 않아요?》

《왜 안불러?》

김정숙동지께서도 따라부르시였다. 노래소리, 괭이질소리, 일판은 한참 흥성거렸다.

얼마후 김정숙동지께서는 괭이를 도로 녀인에게 넘겨주시였다. 그리고는 큰벌쪽으로 향해 걸으시였다. 능수리앞벌은 이만치라도 들끓으며 땅을 파는데 큰벌, 되골이라는덴 형편이 어떤가고 골고루 돌아보시려는것이였다. 큰벌로 올라가는 산앞버덩에도 농민들이 드문드문 붙었다. 거기도 밭을 한절반 쪼아넘기긴 했는데 역시 씨앗을 못박은 밭이 많았다. 좁은 골짜기길을 빠져 큰벌버덩에 들어서니 소가 한마리 후치로 밭을 째다가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우야우야 소리치며 소를 받들어 일궜다. 소는 사람들의 기운에 들려 몸을 와르르 떨며 네다리를 짚고 일어섰다. 그러나 소는 제 고삐 한기장 밭을 갈아내지 못하고 또 큰배를 땅에 철썩 붙이고 누웠다. 숱한 사람이 달려들어 궁둥이와 등어리를 벼락치듯 짓조겨대도 일어서지 못했다. 큰벌의 버덩도 갈긴 적잖게 갈아제꼈다. 거기도 공청원들 한패가 밭머리에 붉은 기발을 꽂고 땅을 팠다. 이건 아마 큰벌 공청원들인것 같다. 어쨌든 오택진이 손탁이 세게 일을 내모는것 같았다. 그러나 씨앗을 묻고 자귀를 밟은 밭은 얼마 보이지 않고 갈아엎은대로 뿌잇뿌잇 말라가는 밭이 더 많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큰벌에서 십리나 더 들어가있는 되골까지 올라가보고야 저녁때 총총히 능수리로 걸어내려오시였다. 농사형편을 돌아보니 점점 더 앞이 막막해지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근거지안에 군중은 기수없이 몰려들어왔는데 농사를 망치고야 그 군중을 어떻게 살려내는가. 이 군중이 그저 쫓겨들어와 살다가 살면 살고 말면 말아도 좋은 군중인가. 어느 사람이고 다 장군님의 새 방침을 받들고 적구로 달려나가 쇠소리가 나게 싸워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