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2

 

제 1 장

2

 

술기막골은 수많은 유격근거지들중에서도 제일 구석진곳이여서 원쑤들이 기여들기 힘든곳이였다. 이곳에는 늘 구름에 가리우는 설령이란 메부리가 높이 솟아있다. 설령밑에서부터 거의 20리되는 긴 골짜기로 내려오며 무슨 되골, 큰벌, 능수리따위 이름을 가진 동네들이 앉아있는데 이 촌락들 앞으로는 넓은 버덩도 펼쳐져있고 설령에 비하면 납작 붙어앉아있는것 같은 야산들도 이 굽이 저 굽이 줄기를 이루고 누워나갔다. 농토도 곡식이 먹을만치는 되였다.

북 긁으면 약간 점토질기운이 있는 검붉은 흙이 뒤번져지는데 거기에 콩, 팥, 수수를 심어넣으면 가을엔 벌 못지않은 수확을 거두었다. 이삭패는 곡식만이 아니고 감자, 무우, 배추도 잘되였다.

이 술기막골 20리골안은 멀찍이 밀림이 우거진 높은 산들로 둘러막히였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어구엔 검산이란 날카로운 돌산이 있고 돌산밑으로는 고동하란 깊은 강물이 흐르고있었다.

여기로 들어오려면 고동하를 건느고 검산을 넘어야 했다. 여기를 뚫지 않고서는 어데도 들어올곳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이 술기막골로는 적의 대《토벌》을 피해서 이곳저곳에서 혁명군중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지금 근거지해산방침을 받들고 당장 적구로 떠나갈수 없는 일부 군중이 여기저기서 밀려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렇게 되여 여기는 유격근거지들중에서 제일 마지막지탱점으로 되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술기막골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 온 근거지가 웅성거리며 분노로 들끓고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촌사람들이 술기막골에 가면 의례 만날것으로 알고 찾아오는 구정부 회장 차응도가 며칠전 밤중 집으로 돌아가다가 비수에 찔리워 희생된 일이였다. 악한은 억대우같은 차응도를 골목길에 메때려넘기고 칼로 열군데도 더 찔렀다. 상처를 입은 차응도는 집으로 업혀가는 도중 절명하고말았다. 그처럼 유순하고 일을 억세게 내밀고나가던 차응도회장을 어느놈이 죽였단말인가. 근거지사람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식량때문에 그렇게도 애쓰며 뛰던 차응도를··· 그날도 식량공작나간 사람들이 안들어온다고 적구에 찾아나가 저 혼자 쌀 네말을 공작해 지고와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 지경이 되였다.

어느놈이 회장을 죽였는가, 이런 통분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근거지사람들은 두눈에 쌍심지를 켜고 원쑤를 잡아내야 한다고 떠들었다. 그러는가 하면 숱한 군중이 각지에서 몰려들어오는데 어느놈이 원쑤놈인지 뉘 알겠는가, 원쑤가 몇놈 될수도 있고 몇십놈 될수도 있다, 함부로 날뛰다간 차응도같이 죽는다, 이런 말이 떠돌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민생단》줄이 뻗어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능지영에 《민생단》이 들어와 그것을 잡아가두는 싸움이 벌어졌다는데 술기막골이라고 멀어서 못들어올테냐, 이동해오는 혁명군중속에 《민생단》이 끼여들어올수도 있지 않느냐, 분명 《민생단》이라고도 떠들었다.

지금 근거지엔 식량문제, 종곡문제가 핍박한 문제로 제기되여있는데 어떻게 되여 이런 불행이 겹치고 겹치는가. 사람들은 분격과 함께 어깨가 낮아져서 한숨들을 내쉬기도 하였다.

능수리한복판에 있는 구정부 사무실은 요새 내내 팽팽한 공기에 휩싸여 들끓었다. 오늘도 사무실에선 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핍박한 량곡문제해결을 위하여 적구로 공작을 나갔던 반일자위대원들이 빈손으로 돌아와 정부간부들을 떡심이 풀어지게 만들고 피줄이 일어서게 만들었다. 이게 바로 죽은 차응도가 찾아갔던 사람들이였다. 구정부간부들은 모두 얼굴들이 새까맣게 되여 앉아있는데 역시 차응도회장과 함께 1년전에 이곳으로 조동되여온 식량부장 한기천이 책상을 두드리며 자위대원들을 몰아세웠다.

《글쎄 식량공작을 나갔다는게 빈손으로 돌아와? 다섯이 나가서 쌀 댓말을 구해지고 돌아오다가 그것마저도 적한테 빼앗기고 빈 손바닥을 들고와? 온 근거지가 기아선상에 놓인걸 보고 나갔지? 인민들이 굶어서 누워있는걸 보고 나갔지? 그래, 동무넬 그저 소풍이나 하라고 권총까지 채워서 내보냈던가? 량심이 있으면 말 좀 해보라구 응?》

한기천은 제 가슴을 쳤다. 신개동에 있을 때보다 더 드세진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광대뼈가 두드러지고 두눈이 부리부리했다. 옷은 입을걸 못입었다. 헌 로동복을 입었는데 해진덴 제손으로 꿰맸는지 천도 못붙이고 그저 바늘로 여러군데 옭아맸다.

한기천이 격노하는바람에 식량공작을 나갔다온 공작대책임자는 두어깨를 낮추고 서서 말을 못했다.

적구에 나가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의 몰골도 말이 아니였다. 적과 어떤 싸움을 겪었는지 옷이 온통 찢어지고 수염투성이얼굴엔 상처까지 났다. 쌀 다섯말을 지고오다가 죄다 빼앗겼으니 사생결단하는 싸움을 겪었을건 뻔했다.

《글쎄 쌀 닷말이 뭐야? 차회장은 혼자 나가서도 쌀 네말을 얻어지고 돌아왔어. 동무넬 찾아나갔다가 못찾구말야. 그 무거운걸 지고 검산을 넘어와서 어느놈의 칼에 맞았어. 그런데 뼈마디에 피가 동이로 괸 적위대가 다섯이나 나가서 쌀 다섯말이야? 적구인민들의 생활이 아무리 궁상맞은들 다섯말밖에 공작을 못해? 그리군 그것마저도 빼앗겨?》

《인젠 그만하우. 일이 틀려진담에야 목에 피줄을 세워 무슨 소용이 있소?》

곁에 앉아있는 양기훈이 한기천을 달래였다. 그는 차응도가 희생되자 정부회장사업을 보게 되였는데 본시 체소한 사람이 요새 참극을 겪고나서 아주 조마구만해졌다. 작은 눈에선 장 눈물이 지절거렸다.

차응도회장과 함께 발바닥이 닳게 뛰여다니며 량심껏 일해온 사람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차응도회장이 죽었을 때엔 그 피투성이 시체를 붙안고 목이 메여 울었다. 그는 죽은 차응도를 동갑이라고 부르며 설분했다.

《일이란것은 끝장을 보아야 하우. 임무를 맡고 나갔으면 어떻게 하든지 그 임무를 수행해가지고 돌아와야지 가지고오던 량곡을 원쑤들한테 죄다 빼앗기고말았다 하고 빈손으로 돌아와 보고나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소. 혁명임무를 그렇게 수행해서야 되겠소, 응?》

양기훈은 유순한 말로 이야길 했다.

자위대원들은 점점 더 머리를 떨구었다.

《우리는 그래도 동무들이 뭘 좀 구해가지고 돌아오는가 해서 눈이 감도록 기다렸소. 그런데 허탕을 치고 돌아왔으니 이런 섭섭한 일이 어데 있소. 우리가 섭섭한건 또 몰라도 숱한 인민들이 동무네들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섭섭해하겠소? 차후엔 어떤 혁명임무가 맡겨지든지 그런식으로는 일하지 마우. 알겠소?》

《네.》

《어서 나가보우. 나가서 자위대훈련이나 잘하오.》

공작대책임자는 대원들을 데리고 돌아서 나갔다. 모두 긴허리를 휘청거리며 넘어질것 같기도 했다. 량곡도 못구해오고 기만 죽은것 같다. 방금 양기훈은 이 사람들을 다시 내보낼가 하는 생각도 했댔는데 그런 말을 안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위대원들이 나가자 모두들 후 한숨을 쉬였다. 일껏 조직해서 내보낸 일이 이렇게 되였으니 장차 식량과 종곡을 어떻게 구해들인단말인가. 양기훈, 한기천이뿐만아니라 이 자리에 앉아있는 구정부 부장들이 모두 낯빛이 심각해져서 말들을 못했다.

지금 식량부장방에도 농민들이 가뜩 모여들었다. 모두 식량이나 종곡을 달라고온 사람들이였다.

《이거 괜히 이렇게 우두커니 와앉아있지들 않소? 공작대가 나가서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면 정부가 무슨 변통이 있겠소. 창고바닥의 흙이나 긁어서 내주면 몰라도···》

《그래도 이 사정을 누구한테 가서 말하겠소. 정부에 재고량이 영 없기야 하겠소. 이렇게 등줄기가 발라질 때를 예견하고 다문 얼마간이라도 비상미를 남겨둔게 있겠지요.》

《쓸데없는 소릴 하지 마우. 전번날 되골 기순령감이 이야길 하는데 창고안에 들어가보니까 휑뎅그렁한게 쥐도 먹을게 없어서 아우성을 치더라고 합데다.》

《그럼 임자는 여기 왜 와앉아있나?》

《공작대가 나갔다가 왔다는 말을 듣고 왔지요. 식량은 못가지고 왔어도 종곡이나 좀 구해가지고 왔는가 해서···》

《흥···》

식량부장방에 모여든 농민들속에선 한심한 대화들이 오고갔다. 모두 밭갈이를 하다가 들어온 농민들이다. 능수리농민뿐만아니고 되골, 큰벌 농민들도 왔다. 다들 컴컴한 얼굴에 수건을 동이고 앉아 담배들을 피웠다.

하긴 지금 이들의 사정은 말할나위없이 급했다. 거의 각구에서 빈손으로 몰려들어온 혁명군중인데 그래도 이곳에 이미 있던 주민들의 낟알과 그동안 식량부가 보유했던 낟알로 겨울동안은 살아왔다. 그런데 인제부터가 문제였다.

식량도 없고 농사를 할래야 땅에 묻을 씨앗도 없다. 씨앗만 있으면 농사지을 땅은 얼마든지 있었다. 씨앗과 식량, 이 문제는 지금 사활적인 문제로 시꺼멓게 두드러져올랐다.

식량부장방에 있던 농민들이 더러는 한숨을 지으며 돌아가기도 하고 새로 찾아오는 농민들이 또 들어오기도 했다.

새로 들어서는 농민들도 모두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에 검버섯이 돋았다. 우묵한 눈확에 눈망울들만 커보이였다.

그들은 누구나 다 조심스러워하며 말들을 꺼내지 않고 먼저 와있는 농민들의 눈치만 살폈다. 눈섭끝에 큰 근심이 드리워 찾아오긴 했지만 차응도의 참사가 있은 뒤로 난가와 같이 돼버린 정부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하는 위구심도 드는것이였다.

얼마후 기색이 죽은 한기천이 자기 방으로 들어섰다. 방안에 있던 농민들이 더러는 일어서기도 하고 더러는 앉은채 머리를 수그리기도 했다. 모두 식량부 문턱이 닳게 찾아오는 사람들이라 식량부장과 낯을 마주하기가 난감한 점도 있는것이였다.

《모두들 돌아가시오. 인젠 량곡때문에 말하기도 힘겨웁소.》

한기천은 자기 자리에 주저앉으며 한기천이답지 않은 푹 꺼진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담배를 부시럭부시럭 말았다.

《여러분이나 내나 다같이 기대를 걸었던 식량공작대가 한톨의 량곡도 가지고 돌아오질 못했소. 내 방금 저쪽 방에서 공작대원들을 단단히 나무라긴 했소만 적구에 들어가 식량을 구해가지고 오는 일이 쉽기야 하겠소. 구해가지고 오던 쌀을 놈들에게 빼앗기기도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지요.》

신개동에 있을 때와는 달리 무척 너그러워진 구석을 엿보이게도 하는 부드러운 말이였다. 혁명속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인품인지도 모른다.

《량곡을 못구해왔다고 공작대를 원망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 준엄한 난국을 타개하는 문제에 대해서야 다같이 책임을 통감해야지요. 이제 정부에서도 다른 대책을 세우기는 하겠지만 여러분도 정부만 바라보아서는 안되오. 여러분도 여러분대로 힘을 내고 일어나 제 문제는 제가 해결한다는 립장에 서서 싸워야겠소.》

누구도 말이 없다. 말같지 않은 말을 한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모두 어깨를 낮추며 한숨들만 쉬였다.

《각자 적구에 있는 친척한테 달려가는 방책이라도 세워야겠소. 우리가 정말 백리, 이백리밖에 가서라도 몇되박씩 얻어들일수 있다면 그런 보탬이 어디 있겠소. 그렇기때문에 각자가 식량공작대원의 립장에 서서 뛰여보잔말요.》

사람들은 수그렸던 시꺼먼 얼굴을 쳐들며 더 큰 한숨을 내분다. 구석쪽에 앉아있는 농민 하나는 목에 피줄이 일어서서 부시를 찍찍 긋는다. 도대체 말이 말같지 않아 못듣겠다는것이다. 농민들은 우실우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밖에도 사람들이 가뜩 널렸다.

모두 방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고있는것 같다. 더러는 토방에 앉아 끄떡끄떡 졸기도 했다. 토방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한쪽에선 지난해 가을에 꾸어준 녹두 반말대신에 수수씨앗을 내라는 이야기가 벌어져 법석 끓는다. 어느 얼굴에나 다 기아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피골이 상접하고 검버섯이 푸릿푸릿 돋았다.

농민들이 나가자 한기천은 이어 자기 사무실 한옆에 깔아놓은 널판자우에 장대한 몸을 늘어뜨리고 누웠다. 맥이 빠지고 배가 고팠다. 여기 조동되여와서 1년가까이 있는동안 먹긴 양기훈네 집에서 한술씩 얻어먹고 자기는 바로 이 사무실 한구석 널판자우에서 자며 열정을 쏟아부어온 한기천이였다.

양기훈네 끼니란것이 늘 변변칠 않아 한기천의 큰 배를 채우지 못하군했는데 오늘아침엔 더욱 낟알도 못먹고 나물 무친걸 두어줴기 먹고 나왔다. 그러니 낟알물 못들어간 배속이 순편할리 없다. 쓰리고 아리며 메슥메슥도 하고 눈앞이 어릿어릿 돌아가기도 했다.

한기천은 눈물이 글썽해서 천장을 쳐다보았다. 배가 고파 글썽해지는 눈물이 아니였다. 죽은 차응도생각으로 목이 메고 눈물이 솟는것이였다.

넓은 동가슴을 내밀고 앉아 늘 우선우선 웃던 그 큰 사나이, 기가 급한 자기는 늘 그의 큰산같은 배포가 밉상이여서 충돌이 잦기도 했다.

더구나 그와 가장 안타깝게 싸운 문제가 근거지의 식량문제였다. 자기는 벌써 지난 겨울부터 식량과 종곡문제를 가지고 가슴을 긁으며 들끓었다. 식량부장 직책을 맡자 이어 사람들을 휘동해가지고 농민들의 손에 있는 식량이며 종자의 재고량도 다 조사를 해내고 그 수자에 식량부가 가지고있는 수자를 합쳐 현재 근거지가 보유하고있는 량곡의 총량이 얼마라는걸 알아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농민들이 계량을 하고 파종을 해내겠느냐고 떠들며 뛰였다. 이 술기막골에선 량곡 한톨을 구하자 해도 몇백리 떨어진 적구로 나가야 할텐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테냐, 이렇게 들고 일어나 목에 피줄을 세우며 차응도앞에서 책상을 두드린 일이 몇번인지 모른다. 더구나 차응도가 희생되던 날 밤에 쌀을 지고 들어선 차응도의 땀난 잔등에서 쌀짐을 받아 내려놓고는 회장이 이렇게 제 잔등에 쌀짐이나 지고 다녀가지고 이 근거지의 식량문제, 씨앗문제를 풀수 있을것 같으냐고 곁에서 듣는 사람들조차 낯이 붉어지게 소리를 질렀다. 차응도는 그저 허허 웃고 곁사람들이 오히려 차응도편을 들며 음성을 높이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바람에 자기는 또 그 곁사람들한테까지도 화를 내며 지금 근거지에 조성된 난관을 놓고 구정부간부들이 발편잠을 잘수 있게 됐느냐고 소리쳤다.

그 마지막날 밤 티각태각한 일만 없었어도 가슴이 이렇게 미여지진 않을것 같았다.

그 말다툼끝에 헤여져 돌아가다가 차응도가 그런 참변을 당할줄이야 뉘 알았을가. 꼭 자기자신이 차응도의 생애의 마지막에 못을 박아 보낸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에 와선 그 우선우선한 표정앞에서 자기라는 사람은 그저 주먹을 휘두른것 같은 인상밖엔 남아있지 않다. 몹시도 송구했다. 그 큰 가슴이 량곡문제를 가지고 자기보다 훨씬 더 애쓰는줄은 모르고 무엇때문에 윽윽하며 야단법석을 했던가. 이젠 어데 가서든 그를 못만나볼것 아닌가. 그가 구정부에 앉아있어서 큰산을 의지하고있는듯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했던 한기천이였다.

그래서 더욱 그의 앞에서 몸부림치는것 같은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 그런 혁명동지를 어떻게 되여 이렇게도 무참히 잃었단말인가!

한기천의 두눈가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는 그 눈물을 씻으려고도 안했다. 그저 젖은 눈망울로 한없이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바로 이런 때 상촌의 이동군중이 고동하물가에 와닿았다. 사람들은 물가에서 와글와글 끓었다.

아동단원들은 나팔을 불고 붉은 기발도 추켜들어 흔들었다. 모두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검산쪽을 건너다보며 사람을 부르기도 하고 막대기로 물이 얼마나 깊은가를 재보기도 했다. 개역은 물이 그렇게 깊진 않은데 물살이 세여 막대기가 후들후들 떨었다.

《거 검산에 사람이 있소? 배를 좀 건늬우.》

사람들이 목소리를 합쳐서 소리쳤다.

그러자 우죽뿌죽 솟은 검산 허리의 밀림이 울창한속에서 군복입은 사람들이 달려내려오며 마주 소리친다.

《여기 내려갑니다아-》

검산을 지키는 유격대원들이였다. 사람들은 껄껄대며 그러면 그럴테지 기별이 안왔을테냐고 했다.

《상촌사람들이 분명한가요?》

《그렇다마다 여부가 있소.》

사람들은 대답하며 또 웃어댔다.

흥성거려치며 벗어놨던 짐을 도로 지기도 하고 짐은 짐대로 실어건늬고 사람은 사람대로 건느자고 떠들기도 했다.

얼마후 배가 와닿아 사람들이 떠들며 줄을 지어 배에 올랐다. 얼굴이 동글납작한 유격대원이 싱글벙글 웃으며 삿대질을 했다. 그는 근거지안에서야 어떤 일이 있든 그저 내 겨레, 내 민족이 저들 있는 오지로 찾아드니 기뻐서 그러는가싶다.

《술기막골, 술기막골 하더니 인젠 다 왔구나.》

《역시 산천도 상촌보다 나은것 같소. 산이 높고 물은 깊고··· 왜놈들이 아무리 기를 쓴들 저 칼산이야 넘어내겠소?》

《그 산을 넘다니? 그 산을 넘기전에 이 강물은 건너내겠소?》

모두 떠들며 배전의 물을 손바닥으로 처내던져보기도 했다.

애들이 법석이였다. 여름같았으면 미역을 감고싶다느니 고기를 잡았으면 좋겠다느니 별소리들을 다했다. 배를 젓는 유격대원이 애들더러 물에 떨어진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소가 헤염을 치는것도 볼만 했다. 짐도 기르마도 모두 부리운 소를 배 량옆에 한마리씩 달고 물에 들여세웠다.

《월야 월야!》

고삐를 쥔 농민들이 소더러 조심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육중한 짐승은 물에서 펄펄 날았다. 어떤덴 소 키를 넘는데가 있는데 그런데선 소의 헤염치는 네다리가 휑하니 들여다보이였다.

꼭 그 다리들이 물속의 방게다리같이 재게 움직였다. 소를 건늬는 배에도 애들이 탔는데 장난이 심한 꼬마는 배전에 올라서서 소잔등으로 날아 넘어가겠다고 우쩍우쩍 활개짓을 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간 어른들한테 엉덩판을 얻어맞았다. 아낙네들이 이쪽 강가에서도 저쪽 강가에서도 짝장그르르 끓었다. 벌써 숱한 아낙네들이 배를 타고 건너갔다.

먼저 건너간 아낙네들은 이쪽 아낙네들에게 빨리 건너오라고 손을 흔들며 소리친다.

《배가 건너와야 건너가지···》

《물로 헤염치며 건너오라구···》

량쪽 강가에선 웃음소리가 터졌다. 이젠 살곳에 다 왔다고 배속이 흔들리게 실컷들 웃어보는 웃음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흥성대며 강을 건늰 군중은 강을 건너자바람으로 차응도가 잘못되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쪽 강가에서 짐을 받아내리던 유격대원들이 무슨 이야길 하다가 그 소리를 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래였다. 짐곁에 털썩털썩 들어앉았다.

아낙네들도 후려갈기운것 같은 심정이 되여 짐곁에 주저앉았다.

온 강가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다만 소를 헤워가지고 온 농민들이 와르르 떠는 소잔등에 기르마를 털썩털썩 올려놓고있을뿐이였다. 차응도가 잘못되였다는 사실도 타격을 주는 일이지만 어쩐지 죽음의 장막이 드리운 땅으로 살아보겠다고 찾아들지 않았는가 하는 위구가 누구의 가슴속에나 짙게 그늘을 드리웠다. 정부회장을 찔러서 죽이는 무서운놈들이 돌아치는 곳이라면 속에서 무슨 일이 곪고있는지를 뉘 알랴. 침묵이 내려누른 강가에는 어슬어슬 어둠까지 내리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강가 자갈밭에 앉으시였다.

그렇게도 드센 기운으로 애들과 함께 섭쓸려오며 차회장, 차회장 하던 리상녀도 당장 기가 꺾여 어깨를 낮추고 애들속에 들어앉았다. 모두 땀들만 씻었다.

《어느 원쑤가 그따위짓을 했담?》

《글쎄 술기막골에 닿자바람으로 이게 무슨 일이야···》

분임이의 말을 금실이가 받았다. 두사람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그리고는 서로 손을 붙잡고 앉아 이렇게 어수선한데서 어떻게 사느냐고 수군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둘의 소리를 못들은척하시였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애들이 우둑우둑 모여앉아있는곳으로 가시여 배들이 고프지 않느냐고 물으시였다.

《배고프지 않아요.》

《어머닌 시장기가 나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상녀에게 물으시였다.

《시장기가 무슨 시장기가 날테냐? 어허이구···》

《어머니, 힘이 꺾여선 안돼요. 갈수록 스무산이란 말이 있잖아요. 우린 이런 험산준령을 얼마든지 넘을 각오를 해야 돼요.》

《넌 속두 크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애들의 배낭을 하나하나 돌아가며 만져보시였다. 배를 건늬면서 적시지 않았는가 해서였다.

《글쎄 차회장이 저렇게 됐다면 국금이 영금인 지금 어떻게 됐겠니?》

리상녀가 또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했다. 차응도가 애지중지 기르던 딸들의 생각을 하는것이다.

《어머니, 아무렴 산 사람이야 못살겠어요.》

리상녀는 또 어허이구 소리를 질렸다.

저쪽에선 소대장 대걸이와 리범진이 어둠속에 마주서서 담배들을 피웠다. 모두 말이 없다. 통이 큰 그들도 타격이 커서 직방 군중을 이끌고 산을 넘어갈념을 못했다.

이러는데 술기막골 구정부 간부들이 군중을 동원해가지고 우르르 달려나왔다. 양기훈이 한기천이 다 나왔다. 그래도 그들은 방금전에 겪은 참사에 대해선 그닥 내색이 없이 얼마나 수고들 했느냐고 모두 돌아가며 악수를 했다. 그제야 리범진이며 대걸이들의 웃음소리도 일어났다.

《정숙동무!》

한기천은 김정숙동지의 손을 잡아흔들며 목멘것 같은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고생하고있어요? 확실아주머니랑 다 편안들해요?》

《고생이 무슨 고생이겠소. 집사람은 아직 여길 오지 않았소. 태봉시에 가있소.》

신개동에서 떠나 태봉시에 가있다는 소리다.

《그럼 확실아주머니가 따루 떨어져 고생을 하겠군요.》

《고생을 하라고 떼두었소. 고생을 해보아야 혁명을 할게 아니요. 좌우간 반갑소. 현에 올라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이처럼 상촌사람들과 함께 왔소?》

《그렇게 됐어요.》

《그래 상촌근거지는 죄다 해산되였소?》

《예, 거의 다 나가구 당장 어쩔수 없는 사람들만 이리루 왔어요.》

술기막골사람들이 모두 짐들을 받아서 졌다. 한기천이 나서서 이영차 소리를 쳐가며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짐들을 지웠다.

상촌군중은 술기막골사람들을 따라서 떠났다. 우중충한 수림속으로 말없는 긴 대렬이 사라지고있다.

상촌군중은 의연히 무거운 기운에 눌러서 걸었다.

술기막골로 들어간다는 검산어구는 굽이돌아간 수림속길을 한참이나 걸어서 잘룩한 관문을 넘어야 했다. 천연요새로서는 상촌의 상고개보다 몇갑절 더 잘생겼다. 그 무슨 운명의 관문이라 할가 생활의 활기를 집어삼킨 사람들, 침묵속에서 그 무엇인가를 불안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이 그 관문을 넘기 위해 수림속길을 톺아올라간다. 하늘엔 수없이 별이 나뜨고 구슬픈 소방울소리가 딩겅딩겅 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