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9

 

제 6 장

9

 

화려한 유개마차 한대가 워낭소리를 절렁거리며 라진 신시가 일본거리를 달리고있었다.

한폭의 수묵화같던 옛 라진의 모습은 간곳 없고 관청과 상점, 양철지붕의 료리점이 밀집된 생소한 거리풍경이였다. 눈에 보이는것도 왜식건물이요, 귀에 들리는것도 일본군가였고 냄새마저도 《스시》요 《사시미》요 하는 간판이 붙은 음식점에서 풍기는 왜료리의 시큼들적지근한 냄새였다.

번쩍거리는 전등빛에 솔솔 내려붓는 비발이 알쏭달쏭한 빛갈로 아롱거렸다.

보슬비가 내렸다.

사꾸라료정앞에 유개마차가 멈춰서더니 우산을 받쳐든 기모노차림의 녀종의 손에 이끌려 만또형식의 우아한 비옷을 걸친 귀부인이 사뿐 내려서더니 료정안으로 담차게 들어갔다.

료정에선 샤미센소리가 앵앵거리는가 하면 혀꼬부라진 군가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게다를 딸깍거리는 녀급의 안내를 받으며 2층으로 올라간 귀부인은 곧장 끝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리선일이 혼자서 술을 퍼마시고있었다. 그는 흐릿한 시선속에 어른거리는 녀인들에게 소리쳤다.

《누구야!》

귀부인이 비옷을 천천히 벗었다. 그러자 자주색저고리에 곤색목세루주름치마를 입은 조선녀인이 홀연 눈앞에 서있었다.김정숙동지이시였다.

《제법 왜놈행세를 하는군요.》

술기가 올라 얼굴이 불카해진 선일을 거느즉이 내려다보며 비양조로 하시는 그이의 말씀이였다.

선일은 불시에 게슴츠레하던 눈이 퀭해졌다.

《당신 누구요?》

《13도구 순사 리선일,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가?》

그는 얼른 알아본다.

《도··· 도천리··· 엄옥순?!···》

하지만 기연가미연가하여 눈을 비벼보기까지 하였다.

《잊지 않았군요. 도천리 엄옥순이 13도구 순사 리선일을 찾아왔어요.》

비로소 사태를 깨달았는지 게슴츠레 풀렸던 그자의 눈총기가 되살아났다. 단박에 정신이 든듯 목소리가 날카로와졌다.

《리선일이란 없소. 난 요시다 센니찌요.》

《나도 조선인민혁명군 대원 김정숙이요. 하지만 나는 순사로서 량민보증서를 인정해준 그 리선일을 찾아왔소.》

쓰거운 웃음이 피여오르는가 싶더니 그의 입귀가 비주룩이 실그러졌다.

《리선일은 이미 죽었소.》

《선량한 마음은 죽지 않아요. 우리를 위해준 그 량심은 량민보증서와 함께 영원히 남을거예요.》

선일은 숨쉬기가 가쁘다는듯 와이샤쯔목깃을 터놓았다.

《그걸 높이 사주어 고맙긴 하지만 어리석은 13도구 순사 리선일은 엄옥순이 도천리를 떠난 후에야 공산당이며 유격대원이란걸 알았소. 고맙다는 인사는 당신의 귀신같은 변신술에 해야 할것이요. 그 량민보증서를 서뿔리 인정한것때문에 내 운명은 낭떠러지에 떨어졌댔소. 순진한 사람을 기만한 행위는 용서될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아무 정당한 리유도 없이 타민족을 덮쳐먹은 강도행위는 용서될수가 있는가요?》

《그건 정치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게 정치이지요.》

《정치? 우린 제 집에 뛰여든 날강도들과 정식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하고있다.》

《그런데 적인 나한테 무엇때문에 왔소? 또 량민보증서가 필요해서 온건 아니겠지요?》

그는 가당치 않은 일이라는듯 속빈 너털웃음을 터뜨리였다. 짐짓 태연한체 하려고 저가락을 집어들어 안주접시로 손을 내뻗쳤으나 그의 손은 떨리고있었다.

《허세를 부릴 필요는 없어요. 난 정말 량민보증서를 인정해준 리선일을 찾아왔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을 모퉁이에서 손을 내밀어준 은인을 잊지 못하지요. 난 도천리에서 당신과 마음을 터놓고 얘길 나누어보지 못한걸 늘 후회했어요. 어려울 때 선의를 보여준 당신에게 나 역시 선의를 가지고 찾아왔어요.》

더없이 진정을 담으신 곡진한 말씀이였다. 그러나 상대는 고슴도치처럼 몸을 도사리였다.

《그 선의란 무엇입니까? 면사포를 집어던지시오.》

《난 당신이 불쌍해서 찾아왔어요.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몰라 몸부림치는 인간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리선일의 입가에 껄찌근한 웃음발이 피여올랐다. 그러더니 정색해져 몸가짐을 바로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였다가 입을 열었다.

《남을 구원하는것이 당신의 미덕이고 본령인가 보군요. 그때 도천리에서 당신은 역병을 앓아 한지에 내던져진 계집애를 서슴없이 품어안고 구완해주었지요. 그때 차디찬 내 마음에도 따스한 물이 흘러드는것 같았습니다. 그래 신파물방아간집 아들이 당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찾아왔을 때 나도 당신이 좋은 사람이란걸 보증했지요. 그때문에 지옥에 떨어질번 했지만.》

선일은 굳게 닫았던 마음의 돌문을 빠끔히 열어젖히는가싶었다.

《그런데 거기서 신파물방아간집 아들을 해쳤는가요?》

선일은 급소를 찔리운듯 눈동자가 얼어붙었다.

《당신은 유진이나 리준상을 위한 량민보증서가 필요해서 날 찾아왔구만. 담도 크지. 여기가 어디라구. 난 제국의 경찰관이요. 력대로 〈천황〉의 총애속에 산 요시다가문의 자손이 되였단 말이요. 나는 고국의 반역자가 될 생각이 없을뿐더러 조상에게 죄되는 일은 더욱 하고싶지 않소.》

난쟁이가 키를 솟구어보이려는듯 그는 옹송그렸던 허리를 빳빳이 살구며 숫제 위엄스레 응수하였다.

객기를 부려보는 얼간이같은자를 경멸에 찬 조소의 눈길로 치떠보며 그이께선 측은해하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난 너같은 얼간이를 리용하자고 온것이 아니라 너의 넋을 구원하자고 왔다. 넌 리준상을 다시 체포하였지만 그를 죽이지도 않았구 잇세이에게 넘기지도 않았다. 이건 네가 잇세이의 편에 가붙었지만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모지름을 쓴다는것을 말해준다. 너에겐 아직 갱생할 여지가 있어. 우린 민족의 매 성원들의 운명을 품안고 바른길로 이끌어주려 애쓰는 혁명가들이다. 황차 제 근본도 모르고 민족의 숙적인 왜놈에게 붙어 멸망의 구렁텅이로 굴러드는 사람을 두고 어찌 못 본체 하겠는가. 가장 인간다운 사람들이 혁명가들이다.》

선일은 입술이며 눈두덩을 부들부들 떨며 뇌까렸다.

《무섭지 않소.》

그 말의 의미보다도 그 절망적인 어조가 가슴을 섬찟하게 했지만 그이께선 더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린 가야 할 걸음이 바쁘지만 당신을 그냥 두고 갈수 없었소. 언젠가 김일성장군님께선 도천리에서 인간량심의 한쪼박을 내비친 당신을 두고 순사라고 해도 잘 알아볼걸 그랬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가슴에 맺혀 난 떠날수 없었소. 분명 동족인 조선사람이 음흉하고 교활한 왜놈의 덫에 걸려 신조도 의지도 없이 맹목적인 순종만 하는자에게 분노보다도 아픔이 컸지. 내버려두고 갈수가 없어 되돌아섰소. 당신은 왜놈의 씨가 아니요. 이게 당신의 아버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옷섶에서 사진을 꺼내 그앞에 내놓으시였다.

선일은 별로 놀랍지 않다는듯 시들히 사진을 스쳐보더니 인생을 초탈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이젠 다 피장파장이요. 무엇으로 무참히 주저앉은 내 인생을 떠일구겠소. 잇세이의 옷자락에 매달렸으니 그와 함께 지옥에 갈수밖에. 다같이 죽는건 무섭지 않아. 내 당신을 해칠 생각은 없으니 어서 여기서 피하시오.》

《리선일!···》

추상같은 웨침이 돌팔매처럼 날아갔다.

인간의 생명은 정신이다. 정신마저 죽은 이자를 과연 어떻게 살려낼것인가. 눈굽에 분한 눈물마저 핑 어리시였다.

불시에 드센 타격을 받은 리선일은 화등잔이 된 눈으로 그이를 넋없이 바라보았다. 인간세상에서 왕왕 도외시되였던 아비 모르는 사생아, 누가 그에 대해 아파하고 분개하고 매를 안기면서도 두팔 벌려준이가 있었던가. 어머니시다, 죽은 어머니가 환생하여 지금 저앞에 섰는가? 아니면 성모님이 하강하셨는가!

리선일은 몸을 부르르 떨며 그분의 발치에 허리를 굽혔다.

《날 죽여주시오. 당신손에 죽는다면 내 원이 없겠소. 리준상은 남치용의 본댁의 집에 있소.》

김정숙동지께서는 무거운 숨을 내그으시며 그앞에 사진을 밀어놓으시였다.

《아버지사진을 건사하세요. 똑똑히 기억해두시오. 당신아버지를 죽인건 잇세이, 그놈이요. 그 간특하고 사특하고 잔인한 잇세이는 당신을 친아들이라 유혹하여 제 발바닥을 핥는 첩자로 리용하려 하고있소.》

그이의 어조는 여전히 차분했으나 그 어조에 분노와 격분이 어찌나 강렬하게 울렸던지 선일은 온몸이 얼어드는듯 했다. 와들와들 떨던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으나 그이의 맑고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개를 털썩 떨구었다. 그러나 다시 머리를 번쩍 든다. 절망이 어렸던 눈에는 새롭게 살려는 간절한 소원이 어려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에 지르셨던 동비녀를 뽑아 그에게 내미시였다.

《이걸 가지고 청학랭면옥집 고마재를 찾아가세요.》

비녀를 황공스레 받아든 리선일이 머리를 드니 그이께선 벌써 문지방을 넘어서시였다. 동그스름한 어깨를 팽팽히 감싼 자주빛저고리우에 길사한 중발머리가 살랑거렸다.

 

×

 

텅 빈 교회당에선 풍금소리가 구슬프게 울릴뿐이다. 리선일은 한동안 발길을 하지 않았던 이 교회당에 어떻게 오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다. 그는 마음내키는대로 어느 걸상에 주저앉았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조각이 걸려있던 교회당 정면 연단우를 얼없이 바라보던 그는 한식경이 지난 후에야 자기가 참회를 하고싶어 이곳에 왔다는것을 상기하였다.

선일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앞에 예수도 아니요, 성모도 아닌 자주색저고리를 입은 녀인의 모습이 우렷이 솟아올랐다.

(죄많은 이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웨다.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 원쑤놈, 민족의 숙적인 왜놈과 한패당이 되여 돌아쳤으니 그 죄를 무엇으로 씻으리까. 눈먼 등신처럼 살아온 회한 뼈를 부스고 살을 지집니다.

죽어없어지긴 쉬우나 새사람으로 다시 태여나긴 어려운 법. 하지만 그대 성모께서 바라시는것은 소생이거니 내 과거와 결단코 결별하고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두렵고도 목메이는 기대가 가슴의 피를 말리우는듯 하였다.

리선일은 교회당을 나서자 곧장 말목장으로 향하였다.

말목장구내의 푸른 풀밭을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마른 하늘에서 천둥이 울듯 둔중한 폭음소리가 들려왔다. 발밑이 지진이 일어난듯 흔들렸다.

한번··· 또 한번 ···

폭음은 련이어 울리며 먼 우뢰소리처럼 멀어져갔다.

리선일은 자기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쿵- 하고 무너지는 요란한 소리를 들은듯싶었다. 명치에 매달리던 그 무슨 응어리가 뚝 떨어져 박산이 나버려 가슴이 후련해지는것 같았다.

아니다, 이 폭음은 나의 고고성이다. 새 인간으로 이 땅에 새롭게 태여나는 나의 고고성이다. 나는 사생아도 아니고 고아도 아니다. 나에겐 나를 새 인간으로 출산시킨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가 계신다고 생각하니 세차게 가슴벽을 두드리는 감격과 흥분을 걷잡을수 없었다.

숨가쁜 감격과 열광적인 흥분에 목이 타오름을 느끼며 새 인간의 첫걸음을 떼는 심정으로 그는 잇세이가 있는 밀실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비밀지하갱도에서 로동자들이 다 빠져나가고 잠수함기지가 폭파되였다는 절망적인 사태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지 잇세이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실오리같은 입술을 앙다물고 창옆에 말뚝처럼 서있었다.

《비밀이 어떻게 새여나갔는가?》

잇세이는 급히 호출한 졸개들앞에서 눈알이 튀여나올듯, 목젖이 떨어져나갈듯 악을 쓰며 고함을 질러대고있었다.

《공사장비밀을 아는 놈들은 네놈들뿐인데··· 다 죽여버릴테다.》

그자는 허리에서 절거덕거리던 일본도를 뽑아들었다. 서슬푸른 빛이 공중에서 번득이였다. 그예 피를 볼 서슬이였다.

리선일은 태연히 한발 나섰다.

《비밀을 루설한건 나요.》

《뭐라구? 네놈이?··· 조센진이란···》

튀여나오는 뒤말을 꿀꺽 삼켜버린다.

쳐든 칼이 잇세이의 머리우에서 푸들푸들 떨었다. 그것은 맥없이 떨어져 마루에 박히며 아츠러운 신음을 내질렀다.

《요시다가문에서 저런 역적이 나오다니.》

잇세이는 실수를 무마시키려는듯 이를 앙다물고 칼을 서서히 쳐들어 선일의 목언저리로 가져갔다.

《제국의 남아들이 〈가미가제결사대〉로 육탄이 되여 천황께 충정을 다하고있는데 네놈은 역신이 돼? 피로써 죄를 씻어라.》

《흥.》

랭소를 머금는 선일의 입가에 그 특유의 회의적인 표정이 더 뚜렷해졌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사람이 전세계를 얻었다가 그다음에 자기의 목숨을 바치게 될터인즉 거기에 무슨 리익이 나는것이 있는가?〉

부정의의 전쟁이란 적이라고 하는 피침략국민을 학살할뿐아니라 자기 국민들도 파국에로, 죽음에로 몰아넣는 대학살행위에 불과하지요. 로마의 한 철학가는 어느 짐승도 전쟁을 하지 않는데 왜 인간만이 전쟁을 하는가고 인류의 량심에 피맺힌 절규를 남겼습니다. 침략전쟁으로 일본은 약소국가들을 짓밟고 살륙했을뿐아니라 제 나라도 황페화시키고 자기 국민도 기아와 무모한 죽음에로 몰아넣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요시다가문의 공적일가요? 천황의 덕망인가요?

알아두시오, 력사는 다른 민족을 억압학살하고 일시적으로 강점할수는 있어도 나중에는 불피코 멸망한다는것을. 그것은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으로도 전통과 신앙, 문화를 함께 하는 전민족의 항거에 부딪칠 때 그러한 저항에 맞서 이겨본 례가 없기때문이요.

일본첩보의 거물이라고 하는 당신은 입버릇처럼 씨벌였지요, 대업을 위해선 인정사정 보지 말라고.

너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엄옥순이한테 참패를 당했다. 봄빛은 칼부림으로 막지 못하는 법이다.》

이렇게도 당당한 리선일을 보다 처음인 잇세이는 복통이 터지는듯 하여 악을 썼다.

《길러준 개 발뒤축 문다더니 시운이 진했다고 갈앉는 배에서 쥐새끼처럼 빠져나가려는가? 어림도 없다.》

뇌까려대는 잇세이를 갈마보는 선일의 눈찌엔 서리같은 원한이 불리였다.

《입부리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 간사한 놈. 리선일은 어머니도 다시 찾고 아버지도 찾았다. 나 리선일은 조선민족의 한성원으로서 너 일본제국주의광신자들에게 정식 선전포고를 한다.》

선일은 벼락같이 잇세이가 쥔 일본도를 나꾸채여 그자의 가슴에 쿡 박아내치고 뛰여나갔다.

꾸역꾸역 쏟아지는 밸을 주어담으며 잇세이는 단말마의 발악을 하며 소리쳤다.

《저놈 잡아라. 총출동하여 두만강연안을 샅샅이 뒤지라. 엄옥순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