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6

 

제 6 장

6

 

리준상은 자기의 타산이 정확히 들어맞았다는것을 알았다. 잇세이는 그에게 자기 첩자로 쏘련에 침투하든가 북부조선일대에 널린 혁명조직에 뚫고들어가라고 하였다. 그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그자의 구미를 바싹 당겨놓았다가 불의에 음식접시를 얼굴에 쥐여던졌다.

《이 리준상은 엎어놓아도 뒤집어놓아도 혁명전사다. 죽어도 왜놈의 개노릇은 안한다.》

옆에 있던 센니찌가 아연하여 말리려고 하자 그의 손을 세차게 쳐갈겼다.

《모기다리에서 피 내먹을 간특한 왜놈족속들!》

잇세이는 랭소를 머금고 갈마보며 달려들어온 부하에게 뇌까렸다.

《저자를 지옥의 불가마에 집어던지라. 서서히 말려죽여야지. 후회해도 소용없어.》

지옥이란 다름아닌 비밀잠수함기지공사장이였다. 지옥의 불가마도 이에서 더하랴싶은 생지옥이였다. 악취로 숨이 막히는 굴속에서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유령들이 희미한 간데라불빛에 어른거리고있었다. 로동도구란 함마, 삽, 괭이에 불과했다.

바위를 조금씩 까내서는 등짐으로 지여날랐다. 새까만 몸과 얼굴에서 눈만 반들거리는것이 누가 누군지 분간할수 없었다. 그것도 굴을 파는 갈래가 저마끔이여서 여기서 《북3》을 찾는다는것은 서울바닥에서 김서방찾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범을 잡자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 하는것처럼 《북3》을 찾아 련계를 잇자면 여기에 굴러떨어지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바라던 모든것을 단념하고 여기에 스스로 굴러떨어진다는것은 죽음을 각오한 용단이였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서 사람들과 친숙해지려고 애썼다. 식사는 하루 두번 주었는데 그것으로 아침과 저녁시간을 가늠하였다. 먹는것이란 콩깨묵에 소금국이였다. 잠은 교대로 재우는데 낮과 밤을 구분할수 없었다. 리준상은 식사때마다 자기 몫의 콩깨묵쪼각을 동료들에게 권하면서 물었다.

《고향이 어데요? 혹 신파쪽에서 온 사람이 없소?》

이렇게 탐문해나가던 어느날이였다. 버럭짐을 지여나르는데 웬 사람이 곁에 와서 신파사람을 왜 찾는가고 묻는것이였다.

《신파 물방아간집 아들에게 전할 소식이 있어서···》

《전할 소식이란 뭐요?》

《도천리 옥순아지미가 〈북3〉에게 안부를 전하라고 했는데 어디 찾을수가 있어야지요.》

《등에 업은 아이 찾는다더니 내가 〈북3〉이요.》

그들은 어둠속에서 와락 부둥켜안았다.

리준상은 애타게 그리던 동지를 만난 기쁨을 나누다가 유진의 건강부터 살폈다. 그의 몸상태는 장기간의 영양부족으로 말이 아니였다. 각일각 생명이 꺼져가고있었다.

유진은 눈물도 없이 흐느끼였다.

《믿었댔소.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렸소. 수전공사장의 전민항쟁무장력을 분산소멸하려는 적들의 모략을 사령부에 알리기 전에는 죽을수가 없었소. 이 지옥같은 땅속에도 봄빛이 꼭 스며들리라고 믿었댔소.》

급작스럽게 찾아든 희망과 흥분으로 맥이 빠진 그는 그만 실신하였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힘들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과연 김정숙동지의 짐작대로 유진은 적들의 모략을 속속들이 알고있었다. 문제는 그 정보를 어떻게 밖으로 전달하는가 하는것이였다. 누군가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였다. 좋기는 유진이가 탈출하는것이였다. 서두수수전공사사태를 바로잡는데는 유진이만 한 적임자가 다시 없었다.

리준상은 유진을 흔들어깨웠다.

《유진이, 여기서 빠져나갈 방도를 생각했소. 버럭을 내갈 때 시체도 내간다고 했지. 죽은자만이 나갈수 있으니 별수 있소? 시체가 되여 빠져나가봅시다.》

《누가?》

《〈북3〉이지 누구겠소.》

유진은 오래도록 대답이 없었다. 한참만에 그는 밑도 끝도 없이 물었다.

《내 지금 무얼 생각하는지 아오?》

《?!···》

《도천리에서 체포되셨을 때 김정숙동지께서 조직에 보낸 편지를 생각했소. 〈안심하십시오. 나는 죽을것입니다. 그러나 조직은 살것입니다. 나의 재산의 전부인 2원을 보냅니다. 조직의 자금으로 써주십시오.〉

난 기력이 진하였소. 놈들이 시체를 바다에 내던지겠는데 나는 헤염칠줄도 모르고 헤염쳐 뭍에 닿을 기력도 없소. 정보를 전달하지도 못한채 죽는다면 내 삶은 일고의 가치도 없어질것이요. 나는 죽어도 정보는 조직에 가닿아야 하고 전민항쟁력량은 보존되여야 하오. 그래서 우리 서두수수전공사장조직이 김일성장군님의 조국해방구상에 이바지한다면 유진은 죽어도 산 보람이 있을거요.

리동무, 나를 대신하여 정보를 꼭 김정숙동지께 전해주우.

그럼 이제부터 내 재산의 전부를 동무에게 전하겠소. 기억해두시우.》

김유진의 이마엔 흥건히 땀발이 솟았다. 심장이 마지막기력을 다해서 풀떡풀떡 뛰는 양이 어슴푸레 안겨왔다. 준상은 떨어지는 석수를 받아 그의 마른 입술을 적셔주었다. 가까스로 목을 추기고난 유진은 쇠잔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첫째, 여기 라진지구비밀지하공사장에는 연사면 대도와 소도, 수침동, 서안동, 어하면 온천동까지 200여리 지하수로를 뚫던 수전공사장의 기본력량 천여명이 이동해왔다. 비밀잠수함기지를 꾸리려는것으로 예상된다.

천여명 인부중에는 조국광복회 서두수지회, 서안분회, 온천분회 조직원들이 있으며 무장조직성원들 600명이 포함되여있다. 조국광복회조직과 당조직, 무장조직들은 건재하다. 하지만 기아와 병으로 사람들이 시간마다 쓰러지고있다. 빠른 시간내에 구출작전이 필요하다. 원봉언제와 취수구공사장에서 일하던 인부 천여명은 진해해군기지비밀공사장으로, 부윤언제공사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은 제주도비행장건설에 보내게 되여있다.》

유진은 호흡이 가빠지는지 더 숨차서 헐떡거리였다. 리준상은 그의 상체를 받들어주었다. 유진은 그의 손을 끌어다 손바닥을 펴더니 략도를 그려보이며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둘째, 비밀공사장위치인데 말목장에서 밤중에 산을 타고 두시간정도 내려왔으니 라진요새구역이라고 짐작되오. 하대봉쪽인것 같소.》

리준상은 의문나는 점을 물었다.

《비밀잠수함기지굴설이라면 좁은 갱도를 여러갈래로 뚫는게 이상하지 않소?》

《시공기술자의 말을 귀동냥해들었는데 어느 산속의 지하동굴에 비축해놓은 군수물자저장고와 맞굴을 뚫는다는가 보오.》

준상은 번개치는 생각에 그 지하동굴이 어디인것 같은가고 다우쳐물었다. 유진은 도리머리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이제는 마지막인가싶었다. 숨쉬는 기미조차 없던 유진이 눈을 번쩍이였다. 두리두리한 눈에 밝은 기운이 돌았다.

《버럭처리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고있소. 그 일은 헌병대놈들이 직접 맡아하오. 시체를 내갈 때만 운반부가 한명 따라가는데 돌아오는 경우가 없는걸 보면 시체를 바다에다 던진 후 운반부까지 죽여버리는것 같소. 놈들보다 먼저 선손을 써야 하오. 죽음을 각오해야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죽을 권리도 없소.》

유진은 마지막힘을 다해 그의 손을 꼭 쥐였다. 리준상은 식어가는 시신을 오래도록 붙안고있었다. 자기의 온기로 뼈만 앙상한 그 몸을 덥혀주고싶었다. 그러면 심장이 다시 뛰고 무척 호감을 주었을 어글어글한 눈에 밝은 빛이 떠돌지도 모른다. 이제 그는 몇살이나 되였을가? 그는 머나먼 혁명의 길을 헤쳐오며 많고도 많은 희생을 보아왔지만 이처럼 처절한 최후를 처음 보았다. 나는 죽을것이지만 조직은 살것이라고 하신 김정숙동지의 뜻이 그의 넋으로 되였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혁명가들이 피와 땀, 심혼을 바쳐 키워낸 조국광복회조직들, 전민항쟁의 무장조직들, 그것을 지켜내자고 살을 저며내고 뼈를 깎는 고통속에서도 죽을수가 없었던 《북3》이였다. 그렇게 모질게 지켰던 생명이 자기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자 마치 봄볕에 얼음이 녹아지듯 스러져버린다. 이렇듯 고귀한 삶, 숭고한 희생이 또 어데 있으랴. 그는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으려는 자기의 소원, 민족의 숙원이 김일성장군님의 조국해방3대로선이 관철될 때만이 이루어질수 있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전민항쟁의 하나의 보루라고 할수 있는 서두수수전공사장의 무장력량을 지켜 자기를 서슴없이 바쳤으며 자기의 희생이 헛되지 않음을 확신하였기에 웃으며 갔다.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나니···

 

리준상은 리준이 남긴 시구절을 나직이 읊어보았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리준이나 김유진이나 무엇이 달랐으랴. 하지만 만국평화회의 회의장에서 비분에 떨며 배를 가른 리준의 희생은 슬픈 비애만을 자아냈지만 여기 땅속 깊은 곳 어둠속에서 보는이, 아는이 없이 소리없이 숨을 거둔 새파랗게 젊은 유진의 희생은 조국해방을 안아올 디딤돌이 된것이다. 혁명위업을 완성할 령도자의 구상을 받들어 바치는 삶에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고 참다운 영생이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리준상은 숙연한 감정에 휩싸여 마음속으로 빨찌산추도가를 불러 지하공작원 유진과 영결하였다. ···

 

×

 

시체를 실은 배는 찌꾸덩거리며 굴밖으로 나왔다. 캄캄한 밤이였다. 신선하고도 소금기와 미역내를 품은 바다바람이 불어왔다. 리준상은 페부를 시원히 씻어내리는 공기를 걸탐스레 들이키였다. 쪼각달조차 없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배는 파도가 달려와 기슭을 치는 우중충한 절벽을 끼고 한참이나 찌꿍거렸다.

절벽을 지나자 검푸른 하늘로 연기가 꾸역꾸역 솟구치는 굴뚝이 보였다.

리준상은 그것이 바다쪽에서 보면 암소의 고들개같이 삐죽나온 고들재에 세워진 남치용이네 정어리가공공장임을 알아보았다. 배는 그 공장의 배들이 나드는 간진나루터쪽으로 쑥 빠져들었다가 대초도쪽으로 나가는것이였다. 버럭을 나르는 배들을 정어리가공공장의 배들로 눈속임을 하자고 그렇게 에도는것이라고 준상은 생각하였다. 놈들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비밀기지굴설작업을 하는걸 보면 그게 그저 잠수함기지로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목적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배가 대초도쪽으로 한절반쯤 갔을 때 호송원놈이 하품을 하며 빨리 시체를 내던지라고 윽박질렀다. 졸음이 몰려와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자는 심산이였다. 리준상은 잡았던 노를 놓고 느릿느릿 일손을 놀렸다.

호송원놈은 악취가 풍긴다고 배고물쪽에 돌아서서 코를 싸쥐고있었다. 마지막시체 한구가 남았을 때 준상은 시신의 겨드랑이에 제 팔을 밀어넣어 꽉 그러안은 후 바다에 미끄러져내리며 기겁한 소리를 질러댔다.

《이놈아, 난 왜 끌어당기느냐. 귀신이다. 사람 살리오.》

그는 시체와 함께 물속으로 쩜벙 빠져버렸다. 뒤늦게야 변이 생긴것을 안 호송원놈이 바다에 대고 총질을 하였으나 하늘에 대고 주먹질하는 격이 되고말았다.

리준상은 자맥질하여 바다물속에 해녀들처럼 깊숙이 들어갔다가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윈나루쪽을 향하여 조심히 헤염쳐갔다. 바다물속에 떨어져내린 때로부터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고 생각했을 때에야 그는 물우로 떠올랐다.

밤바다는 고요하였다. 대초도쪽에서 버럭을 쏟아버리는지 물기둥이 솟아오르는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멀리서 불빛이 깜박거렸다.

주낙배인지도 몰랐다. 윈나루사람들은 낙지가 밀려들무렵이면 밤주낙배를 띄우군 했었다. 그는 그 불빛이 윈나루어부의 배에서 비치는것이기를 바라며 불빛쪽으로 헤염쳐갔다. 서켠에서 새벽별이 깜빡이였다. 머지않아 날이 밝을것이다. 날밝기 전에 마을로 슴새들어야 하였다. 그러나 헤염치기가 점점 힘이 들었다. 다리가 뻣뻣해오고 팔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맥을 놓아서는 안되였다. 그는 유진을 생각하며 악을 쓰고 팔다리를 놀렸다.

불빛이 가까와졌을 때 그는 물장구를 쳐대며 죽을 힘을 다 내여 소리를 쳤다. 소리는 나가지 않고 짠물만 입으로 쓸어들었다.

의식이 점점 흐리마리해졌다. 그는 누운 헤염으로 물장구를 쳐대며 《아- 아- 아-》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바다가 잔잔하고 사위가 고요해서인지 자기를 알아보고 배가 오는것 같았다.

주낙을 하던 어부가 재빠르게 노를 저어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리준상은 더 견디기 어려웠을것이였다. 어부는 배안으로 끌어올린 사람을 물을 토하게 하고 인공호흡을 시켜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정신을 차리고보니 날이 훤하게 밝아오고있었다. 그는 간신히 어부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어딘 어디겠소. 원나루 앞바다지.》

《원나루에 사십니까?》

《그렇소. 거긴 어디 사람이게 밤바다에 빠졌소? 죽자고 우정 빠진거야 아니겠지?》

《나도 원나루사람입니다. 혹 아시겠는지, 전 리진사집 아들입니다.》

《엉? 간도에 가서 독립운동을 한다던 야학선생?···》

《네, 제가 야학선생입니다.》

《원 저런, 어쩌다가?···》

포구가 가까와오고있었다. 포구쪽을 바라보던 어부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저길 보라구, 경찰들이 백사장에 까맣게 덮였구만.》

놈들이 어느새 촘촘히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고있었다. 그 그물을 빠져나갈 가망은 없었다.

준상은 선창에서 깨진 토지단지 한쪽을 주어 그 안속에 간략한 보고내용을 낚시끝으로 새긴 후 두쪽을 꼭 맞물려 어부에게 주며 간절히 부탁하였다.

《저놈들이 날 잡으려고 저렇게 진을 치고있습니다. 제 부탁을 좀 들어주겠습니까?》

어부는 백사장쪽을 연신 바라보더니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 토기단지를 류사공 네 집에 전해주십시오. 꼭 그 집 조카딸 류정연이한테 보내야 한다구 하십시오.》

준상은 낯모를 그 어부를 믿었다. 원나루에 남치용을 제쳐놓고 일본놈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조선독립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리진사집 아들이 경찰의 추적을 받는걸 보면 누구나 그를 동정하고 그를 도우려 할것이였다. 리준상은 어부의 갈퀴같은 손을 감싸쥐며 뜨거운 눈길을 보내였다.

《나는 배밑창에 쓰러져있겠으니 저놈들이 물으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걸 끌어올렸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저놈들에게 순순히 넘겨주십시오.》

《이 사람, 한고향사람을 어떻게 욕보이겠나. 바다루 도루 나가자나?》

《아니, 고맙습니다. 토기단지를 전해주기만 해두 저는 백번 절을 하겠습니다.》

리준상은 넙적 엎드려 어부에게 절을 올리였다. 그리고는 비린내 풍기는 척척한 배밑창에 죽은듯 너부러졌다.

어부가 나루터에 배를 대자마자 《검은 무리》들이 달려와서 배를 수색하더니 리준상을 보고 웬놈인가고 물었다. 어부는 그가 시키는대로 대답을 하였다.

한놈이 엎드려있는 그의 얼굴을 왁살스럽게 젖뜨려보더니 사기나서 소리쳤다.

《찾았다! 귀신에게 끌려 바다물에 빠졌던자를 찾았다.》

리준상은 고향의 바다가모래불에 네활개를 펴고 쓰러져있었다. 고향의 모래불은 포근하기도 했고 따스하기도 했다. 여기서 뛰놀던 철없는 시절엔 이 모래 한줌이 얼마나 귀중한것인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따가운 모래불에 딩굴다가 흰파도 맞받아오는 바다에 뛰여들 때면 너무 좋아 새된 소리를 지르던 그 시절엔 잃어버린 이 한줌 모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가를 너무도 몰랐었다. 이제 너를 위해 피타게 소리도 쳐보고 피도 흘려보고 죽음의 고비를 몇번이나 넘고서야 너를 다시 찾는 길이 어떤 준엄한 시련의 길인가를 깨달은 그였다. 하여 그 모래불이 살점보다도 귀하고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것이였다. 너를 다시 찾기 위함이라면 내 무엇을 아끼며 무엇을 서슴으랴.

퉁퉁퉁 기계배가 다가오고있었다. 놈들은 그의 팔다리를 맞들어 마치 시체처럼 기계배의 갑판에 내동댕이쳤다. 배는 다시 떠나고 소금기 머금은 바다바람이 그의 찢겨진 몸뚱이를 어머니처럼 어루만졌다. 고향의 바람조차 눈굽이 저리도록 정다웠다. 잘있으라, 고향의 바다여.

징박은 구두발소리가 갑판을 울리더니 해빛이 따갑게 내려쪼이는 잔등에 옷가지가 내려덮였다.

《샤쯔를 입으라구.》

귀익은 목소리였다. 그는 리선일이 곁에 왔음을 알았다. 준상이 죽은듯 까닥하지 않자 그는 제 손으로 옷을 입혀주며 귀뿌리에 대고 수군거렸다.

《도망치게. 정어리공장어귀에서 물에 뛰여들어 남치용을 찾아가게. 설마 고발하겠나? 내가 엄호하겠네.》

리준상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선일을 소 닭보듯 심드렁해서 바라보았다.

《싫다.》

《어째서?··· 난 진심이다.》

《넌 소시적친구 목숨을 구해주고 그 더러운 넋을 위로받자구 하지?··· 그렇게는 안될걸세.

난 깨끗이 당당하게 생을 마무리할테다.》

리준상의 준수한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있었다.

굳센 신념과 아름다운 리상을 지닌 인간의 거연한 모습에서 리선일은 자신이 추악하게 느껴졌는지 꺽두룩한 몸을 옹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