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5

 

제 6 장

5

 

메꽃이 휘감아오른 나무울바자를 따라 스적스적 걸음을 옮기는 리준상의 마음은 한없이 흥그러웠다. 초여름밤의 대기가 이렇게도 신선하면서도 달큰하고 향기로운줄을 어쩌면 여직껏 모르고 살았던가싶었다. 어느새 불쑥 떠오른 둥근달이 시무죽이 웃으며 뒤따르고있었다.

울타리 건너편에 늙은 노가지나무가 구부정하고 서있는 곳에 다달은 그는 걸음을 멈추고 사위를 휘둘러보았다.

울바자에 휘감긴 애련한 메꽃이며 우중충한 나무들, 자르르한 풀밭의 각가지 들꽃들이 저마끔 말 못할 비밀을 품고있는듯 기기묘묘한 형태와 빛을 띠고 교교한 달빛아래 녹아지고있었다.

리준상은 나무울타리에 기대서서 두툼하게 만 엽초에 불을 붙여물고 한모금 깊숙이 들여마시였다. 금시 목이 꺽 메여오고 기침이 터져나왔다. 그는 눈물이 글썽해가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빛달이 재미있다는듯 생글거리며 내려다본다. 꼭 정연의 환한 얼굴같은 달이였다. 마침내 소중한 모든것을 다시 찾았다는 행복감이 마음을 스르르 녹이는듯 하였다.

돌연히 앞에 나타난 류정연, 순박한 농촌녀자차림새였지만 그는 그 녀자의 본색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였다. 꼭 한마당 꿈을 꾼것만 같았다.

···매달 마지막토요일은 말목장에서 라진부린근 농촌들에서 말먹이공출을 받는 날이였다. 농부들은 군마사육을 하는 이 말목장에 귀밀쌀이나 하다못해 귀밀짚, 콩단같은것을 바쳐야 비누, 신발같은 필수품을 살수 있는 표딱지를 받게 되여있었다.

일제의 공출제가 악독하기 그지없었다. 공출의 미명아래 알곡을 종자까지 깡그리 긁어갈뿐아니라 목화, 아마, 대마를 강제로 심게 하고는 그것도 모조리 빼앗아갔다. 일제는 벼짚과 새끼, 가마니의 공출뿐아니라 송탄유까지 뽑아바치게 하였으니 농민들의 머리우에 들씌워지는 전시부담은 상상할수 없는것이였다. 말목장턱에 이아근 농부들은 군마용먹이라는 명목의 공출부담을 더 들쓰게 된것이였다.

말먹이공출은 토요일마다 목장울타리밖인 늙은 노가지나무밑에서 받군 하였다. 이날만은 리준상도 비록 두서너걸음이지만 목장밖에 나설수 있었다. 그는 왜놈계원의 심부름군으로 받은 말먹이를 마대에 담아 나르는 일을 맡았던것이다.

기근에 시달려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지처럼 강마르고 숯등걸처럼 새까만 농부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말먹이를 바치였다. 준상은 귀밀쌀이며 귀밀짚을 저울에 달아 받고는 수량을 적은 종이쪽지를 내주었다. 농부들은 그것을 가지고 왜놈계원에게서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살수 있는 표쪽을 받군 하였다.

때물이 짜들은 수건을 눈두덩밑까지 내려쓴 촌아낙네가 다닥다닥 기운 자루를 저울우에 올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저 혹시 윈나루 진사댁 리도령 아니시우?》

준상은 깜짝 놀라 아낙을 치떠보았다. 아낙네는 여전히 고개를 수굿하고 제 할말을 한다.

《고마재네 집에서 귀밀쌀을 보냅디다.》

쿵! 하고 가슴에서 북소리가 울리는듯 하였다. 드디여 조직과 선이 이어졌구나! 북소리는 승전고인양 더 잦은 가락으로 쿵쿵거렸다.

리준상은 체연히 저울추를 밀었다당겼다하며 귀밀쌀을 달구었다. 헌자루의것을 마대에 쏟아넣던 그는 마치 이가 서물거리기라도 한듯 괴춤을 긁적거렸다. 그러나 어느결에 감추었던 작은 조가비를 꺼내 헌자루속에 떨구었다. 사개가 꼭 물린 조가비안에 조직에 보내는 자료가 있었다.

리준상은 흔연히 기운 자루와 귀밀쌀키로수를 적은 종이쪽지를 아낙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쥐던 아낙네가 언듯 고개를 들었다.

숯불처럼 이글거리는 눈이 할깃 바라본다. 얼굴에는 때국이 흘렀지만 어찌 그 눈을 몰라보랴. 한시도 잊은적 없는 순정의 파란 불이 이는듯 한 류정연, 그 녀자의 눈이였다.

그 녀자는 벌써 멀어져가고있었다. 헌자루를 든채 할망구처럼 꺼부정하고 어정어정 걸어가고있었다. 한번만 돌아보았으면, 그 검은 눈을 다시한번 더 보았으면, 리준상은 애바르게 갈망했으나 아낙은 끝내 돌아보지 않는다.

서운하면서도 다행스러웠다. 그 녀자는 전혀 다른 녀성이 되여 그앞에 불쑥 나타났다. 혁명의 폭풍우속에서만 인간은 저렇듯 당당하면서도 자제력있고 조화롭게 다듬어질수 있는것이다. 그들은 나라찾는 혁명의 한길에서 다시 만난것이였다. ···

달을 올려다보는 리준상의 눈에는 감개의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제 그는 조직으로부터 새 과업을 받게 된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선원이 다시 배에 오른 심정이였다. 배에는 옳바른 항로를 그어줄 조타를 잡은 선장이 있을것이니 그는 마침내 방황을 끝내고 사령관동지의 뜻을 따르는 정바른 궤도에 들어선것이였다.

리준상은 사명감에 불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나서 다시금 사위를 휘둘러본 후 노가지나무와 일직선으로 교차되는 울바자밑을 더듬어보았다. 그곳은 련락쪽지를 넣어두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풀덤불밑에서 너부죽한 차돌이 만져지고 그밑에 손을 넣으니 크지 않은 조가비가 잡혔다.

순간 그는 정연의 불덩어리같은 손을 잡아쥔듯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마구간옆에 있는 자기의 거처지로 돌아온 리준상은 초불을 켜고 조가비안에 있는 통신쪽지를 꺼냈다. 지전장에 아라비야수자로 된 암호를 바늘끝으로 새긴것이였다.

《사령부의 인사와 임무를 전한다.

라진지구의 비밀지하잠수함기지 위치, 서두수수전공사장 토목기사 유진(대호는 〈북3〉)의 행방을 탐문할것. 열쇠는 리선일, 쟁취할것.

건투와 상봉을 고대하며···

김정숙》

김정숙, 운명의 수호신같은 그 존함을 곱씹어보는 리준상의 가슴속엔 멀기치는 파도같은 격정이 일렁이였다.

먼곳에서 쉬임없이 울려오던 그이의 목소리, 량심을 흔들어깨우던 그 목소리가 아니였더라면 그에게 오늘이 있을법한 일이였던가.

그이께서 이 살벌한 국내에 나와계시다니··· 가까이 계신다는것은 반가운 일이였지만 위험이 사방에서 불을 켜달고 노리는 험지에 나오신것을 생각하면 걱정스럽기 그지없었다. 동시에 이번 임무가 얼마나 중요하면 그이께서 사선을 헤치고 예까지 나와계시랴 하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지였고 맡은 임무를 기어이 잘 수행해야겠다는 결심도 굳어지였다.

초불에 지전장을 태우려는 순간 커다란 그림자가 맞은편 벽에 두억시니처럼 나타나는 바람에 리준상은 와닥닥 놀라 튕기쳐 일어섰다.

리선일이 어느결에 왔는지 그의 뒤에 서있었다.

《련애편질 받았나? 재미있는걸.》

준상이 미처 정신차리기도 전에 그자는 지전장을 나꾸채여 닭을 노리는 삵의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암호쪽지군. 이건 무슨 의민가?》

선일은 야릇한 표정으로 찢어진 지전끄트머리를 씹어삼키는 준상을 째프러뜨리고 보고있었다.

《흥, 리준상, 너 공산당 지하공작원이지? 여기 말목장에도 무장조직 꾸릴셈인가?》

《그렇다고 치세.》

준상은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제 구태여 본색을 숨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차라리 잘되였다.

선일은 랭소를 머금는다.

《흥, 배포도 유하지. 여긴 제국의 비밀첩보기지야. 자넨 왕거미줄에 걸린 날벌레신세구. 좋아, 공산당공작원노릇을 계속하라구. 그러나 우리 밥을 먹고있으니 우리 일을 해야 돼.》

《우리란건 누군가?》

《대일본제국이지.》

《그럼 너도 알량한 <제국>편이란건가?》

《물론이지.》

《승냥이는 아무리 길러줘두 숲만 쳐다본다더니 에익, 더러운 놈!》

리준상은 그예 왜놈족속에게 가붙은 작자에게 그 어떤 선의를 기대했던 자신이 화가 나서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가물거리던 초불이 꺼져버렸다.

선일은 라이타를 켜서 초에 불을 달며 빈정거렸다.

《달을 쳐다보다 도랑창에 코박지 말게.》

《우린 해를 쳐다보며 걸으니 도랑창에 코박을 념려는 없어.》

《어리석은자는 물을 퍼내고 현명한자는 고기를 잡는다고 했어. 옛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제발 어리석게 굴지 말게.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가 만용을 부려 무슨 소용인가?》

이제는 숨박곡질할 때가 아니였다. 조직에서 지시한바도 있지만 선일을 거머쥐는가 못 쥐는가에 임무수행의 열쇠가 있었다. 리준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정말 잇세이를 애비로 여길텐가?》

《그럼 뭐 난 돌틈에서 나온 사람인줄 아는가? 곰의 자손인가? 아니면 암승냥이 새낀가? 어쨌든 잇세이가 날 아들로 받아들인 이상 응당 일본의 국익을 위해 분투할수밖에.》

선일은 태연히 응수하였다. 그의 눈에 늘 어려있던 우수도, 입가에 인박힌 회의적인 표정도 사라져버렸다. 간교한 잇세이가 이 주대없는 인간을 왜 그러쥐였는지 알수 없었다.

《다시한번 말하는데 똑똑히 알아두라. 네 어머니가 남긴 유물인 머리타래속에 당콩알만 한 남자의 사진이 있었다. 조선바지저고리를 입은 모습이였다. 우리 집 의농밑에 그 유물이 있을게다. 녀인이 아들에게 남겨준 사진의 남자, 그 사람이야말로 너의 아버지가 아니고 누구겠니. 속고있다. 제정신을 차려라.》

태연하던 선일의 눈빛이 헤둥거리고 얼굴빛도 창백해졌다. 그는 숫제 이를 앙다물고 열을 올리였다.

《네 말이 옳다고 하자. 한데 그 조선바지저고리 입은 남자는 어데 갔어? 왜 제 아들을 내버리고 찾아도 보지 않는가 말이야.

너 고독이 무엇인지 알기나 해? 이 세상에 의지할 막대기조차 없이, 품어줄 골도 절도 없이 산다는게 어떤건지 알기나 하느냐 말이야.

그래서 매달렸다. 사진의 남자보다도 어쩐지 애비같진 않지만 아들이라 품어주니 잇세이에게 안길수밖에. 사생아를 면했으니 그것만도 족하다고 여겨야지. 호박이 굴러든셈 아닌가?》

선일은 속이 텅빈 웃음을 껄껄거렸다.

역시 인간에겐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지하여 인간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가 사활적인 문제이다.

이 미련한 인간은 얼마나 어이없는 선택을 하였는가.

리준상은 주먹으로 그자의 펀펀한 상판을 줴갈기며 추상같이 타매하였다.

《더러운 놈, 아무리 외롭기로서 조선민족을 유린하고 제 나라 땅을 통채로 먹어치운 강도놈의 족속을 애비로 삼는단 말이야? 너에게 젖을 물려 키운건 조선의 녀인들이다. 그네들의 살인자가 되겠는가?

일제의 멸망은 시간문제이다. 망하는자들과 함께 제 지른 불에 타죽겠는가? 아니면 정의와 량심의 길에 서겠는가? 너에겐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다. 대답하라.》

그의 목소리는 준절하였고 리지적인 눈에서 거센 빛이 쏟아져나왔다. 그것은 목적과 걷는 걸음이 확고한 인간의 당당한 모습이였다.

선일의 이마엔 깊은 주름살이 패였다. 그는 만사가 지겨운듯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이. 어쨌든 나에겐 의지할 사람이란 그밖에 없네. 나에겐 그를 배척할 힘이 없어. 싫든좋든 한동아리에 묶이웠으니 지옥에라도 함께 갈수밖에, 다른 선택이란 있을수 없지.》

《네가 불쌍한건 정의와 등진거다. 불행하게 태여났다 너절하게 죽겠는가. 정신차려라.》

《정의?! 자기한테 유리한게 정의고 진리야. 정의를 지키는건 힘뿐이지. 일본엔 아직 그 힘이 남아있네.》

리준상은 온몸이 서서히 얼어드는듯 하였다. 이자가 리념같은건 생각지도 않고 감상에 빠져있는줄 알았더니 어느새 군국주의독소가 골수에 스몄다는것을 깨달았다. 잇세이가 이 팔삭둥이같은 자식을 끼고 돌아치더니 어느새 사무라이정신까지 주입해넣었는가? 그를 돌려세우기는 힘들게 되였다는 생각이 가슴을 모질게 물어뜯었다. 그렇다면 잠수함기지 위치며 《북3》의 행방을 어디서 알아낸단 말인가. 사령부에서 준 중요임무를 어떻게 해서나 수행해야 한다.

리준상은 제켠에서 숙어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럼 나더러 자네 애비편에 서란 말이지?》

《지금형편에서야 그 길밖에 있나? 아직 일본은 망하지 않았고 자넨 우리 손아귀에 있어. 나중의 꿀 한식기보다 당장의 엿 한가락이 낫다고 했네. 잇세이가 자넬 부르네.》

역시 왜놈족속이 다 되였구나 하는 생각에 준상은 어금이를 으드득 갈았다.

《좋네. 새벽달 보려고 초저녁부터 나앉아보세나. 그런데 한가지만 물어보자구. 자네 서두수수전공사장 니시마쯔구미 서두수사무소에 토목기사로 있던 유진을 알지?》

《알지, 왜 그러나?》

센니찌의 길쑴한 눈이 가느스름히 쪼프러졌다.

《자네가 그를 애비한테 꽂아넣었나?》

《꽂아넣은건 아니구 그저 장백에서 사상운동하던 사람인데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고 했지.》

《같고같은 소리지. 그가 어디 있나?》

《그 사람은 왜 찾나? 처남이라두 되는가?》

《형님벌이 되지. 그가 어디에 있나?》

선일의 쪼프러진 눈에서 야릇한 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입을 비죽이 일그러뜨리더니 이제야 깨도가 된다는듯 머리를 주억거렸다.

《알만하이. 그걸 알자고 날 다시 찾아왔고 여기에 침투했구만. 정 알고싶다면 알려주지. 그자는 비밀공사장에 갔어. 지옥행을 한셈이지. 거기선 죽기 전엔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해.》

《그 비밀공사장이 어디야?》

준상은 이제 그 비밀까지 알아내면 이놈을 제껴버리고 도망치려고 퍼렇게 날을 세워 다리목각반에 찔러넣은 단도쪽으로 손더듬을 하였다.

《서둘러 알 필요는 없어. 너도 우리 말을 안 들으면 그곳에 가게 될테니까.》

《개보다도 못한 놈, 말 안하면 죽여버릴테다.》

시퍼런 단도날이 번뜩이는 순간 리준상은 관자노리에 와닿는 선득한 총구를 느끼였다.

 

×

 

오늘도 류정연은 말목장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약속된 나무울타리밑에는 조가비가 없었다. 벌써 네번째나 헛걸음을 하는 그였다.

빈손으로 돌아온 류정연의 얼굴은 컴컴하게 질리고 귀밑에선 쥐가 풀떡풀떡 일었다. 그는 목안이 말라들고 혀가 안으로 당기우는지 연기에 쏘인것 같은 목소리로 간신히 사업보고를 하였다.

《행여나 해서 울타리주위를 돌아가며 더듬어봤는데도 허사입니다. 토끼풀을 뜯는척 하며 마사쪽을 살펴보았는데 종일 그의 그림자도 볼수 없었습니다. 분명 무슨 일이···》

그는 방정맞는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제풀에 와들쩍 놀라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그새 속을 태우느라 얼마나 축갔는지 눈만 퀭해진 정연이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혁명의 한길에서 다시 만난 기쁨으로 환히 빛나던 그의 얼굴이 이렇게 변모될줄이야.

김정숙동지께선 이번 임무를 수행하고 사령부로 돌아갈 때에 리준상을 데리고가겠다고 그에게 약속하시였다. 그때 정연은 얼마나 기뻐했던가. 울며웃으며 이제 원동기지에 가면 그새 속을 태운 값을 단단히 받아내겠노라고 했었다. 몇밤을 지새워도 다하지 못할 이야기를 품고있는 그들이였다. 그런데 그 기쁨이 삼일도 못되여 또 이렇게 오장이 갈라터지는듯 한 아픔으로 변할줄이야.

문제의 심각성은 두사람의 인연에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리준상과의 련계가 불쑥 끊어졌다는것은 그에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임무수행에서 엄중한 좌절을 의미하였다.

한시가 새로운 때에 속수무책으로 앉아있을수 없었다.

리준상에게 불상사가 생겼다면 그것은 분명 무언가 낌새를 챈 리선일과의 매듭에서 불찌가 튕겼을것이다.

리선일을 결단코 만나야 했다. 13도구순사 리선일, 그와는 필연코 다시 만나야 할 운명인지도 몰랐다.

금창객주집 골방에서 긴급협의회가 열리였다.

조치삼과 류정연, 한창봉과 라진무장대 책임자가 모여앉았다. 객주집 김로인은 마당에서 말덕석을 손질하며 망을 보고있었다.

《아무래도 준상동무에게 일이 생긴것 같습니다. 복선을 쳐야겠어요. 내가 리선일을 만나겠습니다.》

그이께서 말을 떼자마자 류정연이 튕기쳐 일어났다.

《그놈이 아주 고약한 놈입니다. 불쌍한 사생아라고 윈나루 녀인들이 동냥젖을 먹여 키워주었는데 알고보니 왜놈종자였습니다. 한어머니젖을 먹고 자랐는데 준상동물 물어메친걸 보십시오. 벼룩의 가죽 벗길 왜놈족속들은 매모조리 끓는 기름가마에 집어던져야 합니다. 내가 그자를 찾아가겠습니다. 〈북3〉과 준상동무행처를 알아내고는 죽여버리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극도로 흥분한 정연을 곁으로 끌어다앉히시고 골똘한 생각에 잠기시였다. 임무수행이 한시가 새로운 때 문제해결의 요진통이라 할수 있는 리선일을 포기하기도 아쉬웠고 그자를 리용하는것도 극히 위험한 모험이였다. 그자가 발악적으로 나온다면 임무수행도 파탄되고 소조성원들의 생사도 기약할수 없을것이다. 귀중한 동지들의 생명을 내대고 모험할수는 없었다.

그이께선 자신이 혼자서 은밀히 그자를 만날 속구구를 하시며 정연에게 슬며시 물으시였다.

《그자가 결혼했는가요?》

《아니, 그런 말은 못 들었어요.》

《그럼 어디서 만난다는거예요?》

《사꾸라료정에서··· 그자가 그곳에 단골로 다니는것 같습니다.》

《외가인 남치용의 집에는 가지 않는가요?》

《글쎄, 이따금 다니는것 같긴 한데···》

짐작으로 하는 얼빤한 대답이였다.

조치삼이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결연히 반대해나섰다.

《누가 가든 리선일은 안됩니다. 그자가 일본군부에서 거물급이라는 애비를 찾은 후 요시다 센니찌로 둔갑하여 악질적으로 나온다는데 누구도 모험할 권리가 없습니다.

대초도의 량형모선을 리용하는게 나을것 같습니다.》하며 조치삼은 그간 량형모와 련계를 맺은 라진무장대 책임자를 쳐다보았다.

《우리 조직에서 사람을 파하여 알아본데 의하면 량형모는 일제의 철저한 감시를 받고는 있지만 량심은 버리지 않은 사람이였습니다.》

조직책임자의 자상한 이야기를 새겨들으시며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께서 갈 속생각을 굳히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