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2

 

제 6 장

2

 

봉선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온 리준상은 경찰제복을 입은 선일에게 다시 접근하였으며 관곡군마보충부에 취직하여 마구간청소부가 되였다.

이른아침부터 말똥을 쳐낸다, 마구간바닥을 물로 씻어낸다 하며 맥깨나 뽑은 리준상은 해가 한발이나 솟아올랐을 때에야 청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연록빛이 가득찬 풀밭에 해빛이 눈부셨다. 어둑시그레한 곳에서 시큼털털한 말똥내에 절다가 해빛 눈부신 세계에 나온 그는 눈을 새무리고 코를 벌름거리며 신선하고 향기로운 공기를 걸탐스레 들여마셨다.

간밤에 내린 비에 파랗게 씻긴 하늘에선 해님이 방글거리고 들꽃이 다문다문 핀 초록빛풀판에 선 말들이 주억거리며 풀을 뜯고있었다. 나무울타리를 따라가며 생울타리를 두른 찔레꽃덩굴에서인지 아니면 나무울타리의 발대목을 휘감고 오른 메꽃에서인지 달큰한 향기가 풍겨왔다.

불현듯 그는 인간세상과 동떨어진 신선의 세계에 온듯싶어 풀밭에 벌렁 나가누웠다. 이렇게도 심신이 편안하고 흥그러워본적이 언제 있었던가.

감자가는 망돌이 서있던 훈춘의 벌판에서 망돌에 말려들어가 온몸이 으깨여지면서도 김일성장군 만세를 부르며 장군님의 전민항쟁로선을 따르라고 부르짖던 김홍수의 불굴의 모습은 타오르는 홰불처럼 혁명가의 인생좌표를 뚜렷이 비쳐주었다.

김홍수가 가려던 길, 두만강을 건너 온성지구에 나온 그는 온성국수집에서 《고마재》를 만나 조직선을 잇게 되였다. 그는 관곡군마보충부에 뚫고들어가라는 조직의 지시를 받았다. 마구간청소부로라도 이곳에 취직을 하자니 리선일의 도움을 받을수밖에 없었다. 준상은 다시 선일을 찾아갔었다.

갑자기 그림자가 해빛을 가리웠다. 검은 제복을 입은 리선일이 가위다리를 하고 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부서장님이 어떻게?》준상은 벌떡 일어섰다.

《소시적친구방문이지. 뭘 생각하고있었나?》

《목장풍경이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와서···》

《흥, 평화롭다구? 서남태평양전선에선 피의 아비규환일세.》

그는 시어미역증에 개배때기 찬다고 들고온 신문을 내던졌다.

대륙에서도 대양에서도 피가 흐르고 주검이 널리는 세계적동란의 세월이였다.

리준상은 풀밭에서 구겨진 신문을 집어 펼치였다.

력사가 있는 신문들이 거의 페간된 속에 유독 살아남아있는 어용신문 《매일신보》였다.

대동아전쟁 초기만 해도 《제국 영미에 선전을 포고》, 《필리핀의 섬들을 파죽지세로 공격, 수도 점령》, 《무적의 황군 말라이제도를 공격, 전과를 확대하며 련전련승》 등 특대희소식을 요란스레 대서특필하던 신문들이 요즘은 자못 점잖아졌다. 솔로몬제도에서 하나하나의 섬을 두고 미일간에 치렬한 공방전이 계속되고있으나 제국군은 필사적으로 방어하고있다느니, 라바울에서의 공방전에서 일본군은 무비의 영웅성을 발휘하였다느니 하는 애매한 보도들이 계속되더니 이즈음엔 현학적인 말마디들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보도는 극히 간명해졌다.

《마이크섬에서 공방전》

《사이판섬에서 미해병대 야마도정신의 맛을 보다》하는 식이였다. 보도계가 세살난 어린애 얼려넘기듯 패전의 소식은 비밀에 붙이고있었으나 그 정도의 보도만으로도 초기에 승세하던 대동아전쟁의 대세가 이미 기울고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리준상은 흥심을 잃고 신문을 선일에게 내밀었다. 선일은 그것을 와락와락 구겨서 풀밭에 내던지였다.

《에잇, 더러운것들!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왜 시작했담. 일본렬도를 통채로 수장시키고야 살륙이 끝장나겠는지.》

그는 소태처럼 입이 쓴지 게두덜거리며 질근거리던 풀대를 퉤퉤 내뱉는다.

리준상은 무우먹고 체한 놈처럼 찌뿌둥해있는 선일을 흘끔 곁눈질하며 이자가 왜 왔을가 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라진부경찰서 부서장이 소시적친구방문이란 격에 맞지 않는다.

아비, 어미없는 고아로 눈치밥 먹으며 자라서인지 선일은 도가집 강아지처럼 눈치가 빨랐다.

《부서장이 여길 왜 왔을것 같나?》

선일은 길쑴한 한쪽눈을 샙뜨며 준상을 갈마보았다.

준상은 시큰둥하다는듯 대꾸하지 않았다.

《난 내 가슴에 총부리 내대던 자네가 다시 찾아온게 의심스러워.》

선일의 어조엔 서리같은 원한이 불리여있다.

《일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뜻과 현실에는 뛰여넘을수 없는 낭떠러지가 있다구. 난 과거에로 돌아갈 끈터구를 찾을수 없었네. 자네네가 흑룡강성신문에 날 너절한 배신자로 만들어놓지 않았나. 딴마음 먹지 못하게 자네 족속들과 한동아리에 묶이였으니 어찌겠나. 울며 겨자먹기로 먹고살 줄이라도 얻어달라고 찾아올수밖에.》

준상은 천연스럽게 주어섬겼다.

그의 몸에서 어쩔수없이 풍기는 말똥내에 코를 찡기며 선일은 이기죽거렸다.

《자네 인격에 말똥치는 역사가 억울하진 않나?》

《인격? 돼지한테 진주목걸이일세. 징병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말똥이 대순가. 똥통에 빠진자 구린내를 마다할소냐.》

그는 만족하다는듯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선일은 다소 의심이 풀리는지 껄껄 웃어댔다.

리준상은 알아볼것이 있어 화제를 돌리였다.

《전선형편은 어떻다던가?》

《방금 신문을 보고서도 그러나.》

《진실을 알고싶네.》

《···》

바람이 건듯 불자 어디선가 애조의 류행가소리가 들려왔다.

군마를 받으러 온 작자들인지 아니면 조선주둔군중에서 서남태평양전선으로 급파되여가는 사병들인지 나무울타리너머 노가지나무밑에 널려있는 누런 무리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잘있거라 라바울이여 다시 올 때까지는

잠시간의 리별인데 눈물에 목메이노라

···

 

라바울은 서남태평양상에 있는 오스트랄리아령 비스마르크제도의 기본섬인 뉴브리텐섬에 있는 작은 도시다. 여덟달나마 격렬한 피의 격전이 벌어졌던 솔로몬해전에서 이 제도의 기본섬인 과달카날섬을 빼앗긴 일본해군은 수세에 빠져 각개격파당하면서 하나하나의 섬을 내놓고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라바울은 비스마르크해전에서 패한 일본군의 여러 부대가 모여든 소굴이였다. 일본군은 해공군기지인 라바울만은 요충지로 틀어쥐고있으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다했으나 미군기동부대의 마샬제도진출로 보급선이 끊어져 완전고립당하게 되자 어쩔수없이 내놓지 않을수 없었다.

《라바울이 떨어졌나?》

《떨어졌네. 야마모도 이소로꾸처럼.》

일본족속들이 《해군의 거울》이요, 《해군의 신》이요, 《군대의 보배》요 하면서 숭상하던 해군사령관 야마모도 이소로꾸의 죽음도 이 라바울과 인연이 있었다. 전선시찰에 나선 야마모도가 처음 도착한것이 여기 라바울이였다. 그때는 일본군이 여기에 비밀리에 방어진을 치고있을 때였다. 이 라바울에서 해군사령관이 어느날 몇시에 라바울을 출발하여 ××로 간다는 긴급전문이 발송되였는데 이 전문을 잡아 암호를 해득하고있던 미군이 그가 탄 비행기를 격추시켰던것이다. 온 일본이 대성통곡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마도 그 애달픔이 잘있으라 라바울이란 노래에 가미된듯 하였다.

애조를 띠였던 노래는 광적인 통곡소리로 번져졌다. 옛 무사들이 적에게 성을 내여주면서도 다시 올 날을 확신하여 웃으며 떠났듯이 야마도족의 기개와 어엿한 모습을 보여주자고 광기를 부리고있었지만 패전의 쓰라림과 쓰디쓴 비애가 어쩔수없이 짙게 풍기고있었다.

《잘있으라 라바울이여! 그것 참 의미심장한 노래일세그려.》

《잘있으라 〈대동아공영권〉의 꿈이여! 이게 진실인지도 모르지.》

선일은 남의 일처럼 빈정거리고나서 진실한 표정으로 그의 귀가에 수군거렸다.

《일본의 패망은 시간문제일세. 사나운 개 코등아물 날 없다고 뼈도 추리지 못하게 얻어맞구 제 지른 불에 타죽게 됐네. 일본은 가라앉은 배야. 준상군, 자넨 이상한 사람이네. 대일본제국이 승승장구할 땐 총부리를 빼들었던 사람이 왜 하필이면 망조가 력연할 때 그 꽁무니에 매달리는건가? 자네처럼 영민한 사내가?》

선일은 그의 마음속을 뚫어보기라도 할듯 송곳같은 시선을 겨누었다.

리준상은 말꼬리를 물고 반격을 가했다.

《일본이 침몰되는 함선이란걸 그렇게두 잘 아는 자넨 왜 잇세이의 옷자락에 매달렸나?》

《나야 다르지. 어쨌든 그는 나의 생부가 아닌가.》

《생부? 다시말하네만 구렝이처럼 음흉하고 여우처럼 교활한 그자는 자네 애비가 아닐세. 자네 어머니가 생전에 자네 강보에 넣어둔 남학생의 사진이 우리 집에 있네.》

선일은 랭소를 머금었다.

《사진이야 사진이지. 그 사진이 내 아비란 증거가 어데 있나? 잇세이가 나에게 실토정을 하며 용서를 빌데. 외가집령감도 잇세이가 아비라고 했네.》

외가집령감이라면 남치용일것이다. 너절한 인간쓰레기, 남치용은 대세의 흐름에 재빨리 편승하여 벼락부자가 되였다. 아직은 만철회사 사무원으로 자기 집에 왔던 잇세이가 장차 라진포구가 황금소나기를 맞게 될거라고 하던 말을 새겨두고 재빨리 구라진일대의 토지를 사들였고 선주업과 함께 양주업도 차려놓았다. 잇세이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일본경제의 명맥을 틀어쥔 3대재벌의 하나인 다나까가 상주문을 올린데 이어 1932년부터 라진항건설이 시작되였는데 남치용은 사들였던 토지를 비싸게 팔아 일확천금을 하였다. 그는 그 돈으로 정어리공장을 사놓고 군수용기름을 생산하여 막대한 치부를 하였는데 그게 다 잇세이의 뒤받침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일본류학이요 뭐요 하며 고명딸을 망쳐놓고 죽게 만든건 분한 일이지만 팔삭둥이같은 사생아녀석이 값진 진주를 물어온셈이였다. 늙은 본댁은 선일이 잇세이의 소생이 아니라고 야단독장을 쳤지만 남치용은 무섭게 을러메여 로댁의 입에 빗장을 질러놓았다. 원귀가 된 딸이 살아올리 없으니 그가 남긴 사생아의 애비가 누구든 무슨 상관이랴. 내 배 부르고 내 등때기 뜨뜻하고 내 재산이 불어나면 그만 아닌가.

남치용은 개, 돼지만도 못한 놈이였다.

리준상은 선일을 돌려세워야 앞으로 공작에 유리하겠는데 그를 돌려세울 주패장을 내놓을수 없어 속이 바질바질 탔다.

《아,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이렇게도 없는가?》

《진실? 이 세상에 진실이라는게 있기나 하다던가. 진실이란건 애당초 없었거니와 적어도 오늘날엔 없어지고말았지. 나도 그 아비란 사람에게 정이 붙지 않지만 어찌겠나, 내 인생이 하도 불운하니 그에게라도 의지할밖에. 신은 인간에게 리성을 주었는데 그 리성이 지지점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땐 마음속이 빈집처럼 공허해진다고 했어.》

선일은 술취한 사람처럼 넉두리를 늘어놓았다.

《인생이 불운하다면 그 불행에서 벗어나려 애써야 할게구 마음이 빈집처럼 공허하다면 지지점을 찾아야 할게 아닌가.》

선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 대세의 변화에 그렇게 태연한걸 보면 마음속에 지지점이 아니라 강철보기둥이 치받치고있는게 아닌가?》

리준상은 그렇다고 소리치고싶었으나 혀를 지그시 깨물었다.

《준상군, 내 사실 여기로 온건 비밀을 하나 알려주기 위해서야. 자네 윈나루 류사공네 집 조카딸 알지?》

준상은 가슴에서 돌이 철렁 하고 떨어지는것 같았으나 범상스레 대꾸하였다.

《알지. 내 야학선생시절에 그도 내 학생이였어. 그게 어쨌다는건가?》

《그 녀자가 자네를 맘에 두고 서울로 갔었지. 자네가 만주로 간 후에는 또 거기로 찾아떠났구.》

《만주로?》

《김활란의 관동군〈위문단〉에 섞여 만주행을 했는데 체포된 녀자공산당을 구출하자구 함께 도망치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네. 그런데 그후 혁명군이 그 녀자의 의술을 리용해먹다가 죽여내친 사실이 포스터로 나붙었더군.》

《뭐라구?》

《아, 가만, 놀라지 말게. 얘긴 이제부터야. 그런데 얼마전에 윈나루 류사공네 집에 그 녀자가 나타났더군. 어때, 만나보고싶지 않나?》

《난 그 녀자와 상관없네. 만날 필요두 없구. 시집이나 가게 내버려두게.》

리준상은 나무울타리로 기여올라간 메꽃을 만지작거리며 심드렁한체 하였다.

《시집보낼 걱정은 안해도 되겠더구만. 막로동군행색의 서방을 척 달고 나타났더라니까. 그가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났겠나. 공산당이 틀림없어.》

리준상은 벼락이 친듯 와뜰 놀라 선일의 팔을 움켜쥐였다.

《그 녀자는 공산당재목이 못되네. 자네 그를 꽂아넣을셈인가? 그의 어머닌 자네에게 젖을 물려준 윈나루녀인들중의 한사람이야.》

리선일의 늘 침침하던 눈에 이상한 빛이 번뜩이고 회의심이 인찍혔던 입귀가 회심의 미소로 벌어졌다.

리준상은 자기가 실수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리선일은 어제날의 가엾은 사생아, 개구쟁이 죽마고우가 아니였다. 센니찌로 둔갑한 분명 만만치 않은 원쑤였다.

불깃하던 리준상의 얼굴에선 서서히 피기가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