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4

 

제 5 장

4

 

등대봉기슭의 물방아골 막치기, 내물이 돌돌거리는 기슭에는 아담한 귀틀집 한채가 있었다. 이곳을 소부대성원들과 연사지구 비밀조직성원들은 물방아골밀영이라고 불렀다.

연사지구 조국광복회 책임자인 최원봉과 지구당조직 책임자인 윤명환은 이 밀영에 와서 이제나저제나 사령부에서 온다는 공작원을 기다리고있었다.

사령부 경위대원이였던 최원일의 형인 최원봉이나 윤명환이나 4~5년 실히 되게 연사지구에서 혁명활동을 해온 비밀조직원들이였다.

서두수수전공사장사태는 벌써 수습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기울어졌다. 윤명환은 가슴에 재가 앉는것 같았다.

전쟁준비의 일환으로 일제가 《북선개발》에 착수한 후 전력수효의 충당을 위해 장자강과 서두수에 발전소건설을 착수한것은 1941년부터였다. 이듬해에는 벌써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거의 마무리된 허천강발전소건설장에서 천여명의 인부들이 이 지구로 옮겨앉았고 각지에서 수많은 막벌이군들이 밀려들었다. 왜놈들은 이 공사에 북선지방뿐아니라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여러 지방에서 수천명로동자들을 강제로 끌어들였을뿐아니라 지어 징용이나 《보국대》에 징집되였던 사람들까지 이 지구에 몰아넣었다. 이리하여 42년경 이 지구에 5천여명의 로동자들이 밀집되게 되였다.

언제와 취수구공사장이 있는 유평동 원봉마을은 원래 인적드문 한적한 고장이였으나 삽시에 400여호의 판자집이 비집고들어앉아 번잡한 로동자구로 변하였다. 상원봉기슭에는 《북선전력회사 니시마쯔구미 서두수사무소》라는 간판이 달린 벽돌건물이 서고 원봉경찰관주재소를 비롯한 관공서들, 80여호나 되는 꽤 으리으리한 왜놈들의 사택도 새로 들어앉았다. 잇달아 로동자들의 주머니를 옭아낼 각종 음식점, 점포들, 기생집들이 좁은 거리가 미여지게 들어앉았다.

일제는 유평에서 원봉까지 40여리구간에 자동차도로를 신설하고 공사용자재와 설비를 운반하는 한편 원봉에서 광양리에 있는 철도역까지의 구간에 언제막이에 쓸 자재를 운반할 삭도부설공사도 다그치였다.

언제와 취수구공사뿐아니라 수로갱공사장들에도 인력과 설비를 대대적으로 들이밀었다. 여러 갱이 집중된 서안지역에는 수전공사로동자만 하여도 42년초에 벌써 2천명을 넘어서고있었다.

조국광복회 서두수지회는 로동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현실적조건에 맞게 조직정치사업을 따라세워야 했으나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바로 이러한 때 백두산밀영에 계시던 김정숙동지께서 이곳에 오시였었다.

긴 장마끝에 해를 봤다 한들 이보다 더 기뻤으랴.

이태전에 오셨을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조국광복회 서두수지회산하 각 분회책임자들을 불러 그동안의 활동정형과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보고를 받으시였다.

자상한 형편을 듣고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먼저 태평양전쟁과 관련하여 조성된 정세를 분석하신 다음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을 더 적극화하기 위한 과업을 밝혀주시였다.

일제는 침략전쟁수행을 위해 서두수수전공사를 다그치려고 여기에 5천여명의 로동자들을 끌어들였다. 우리는 그들을 교양하고 묶어세워 수전공사를 파탄시켜야 한다. 그것이 곧 일제의 침략전쟁을 파탄시키고 조국해방을 앞당기는 길이다.

핵심청년들로 생산유격대, 로동자돌격대를 조직하여 중요설비파괴공작, 파업과 태업 등 실천투쟁속에서 검열, 단련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생산유격대, 로동자돌격대를 점차 전민항쟁을 위한 반군사조직으로, 무장조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김정숙동지의 명철한 안목과 조직자적능력으로 하여 서두수지구엔 강력한 전민항쟁무장력량이 꾸려지고 울창한 수림으로 기세차게 자라나게 되였다.

이 모든것이 얼마나 큰 사령관동지의 심뇌와 김정숙동지의 희생적인 노력의 대가로 이루어진것인가. 수년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여 키워낸 혁명조직들이 모래산 무너지듯 한다면 사령관동지의 전민항쟁구상에는 하나의 대들보가 허리를 꺾이우는 결과를 초래할것이였다. 이것은 최후결전을 앞둔 이 시각 우리 혁명에 만회할수 없는 치명적손실로 될것이다.

과연 어떻게 해야 조직을 지키고 무장력량을 보호할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태를 박광선소조를 통해 사령부에 보고한 최동무와 윤동무는 눈이 까매서 소식을 기다리고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오래동안 소식이 없다가 봄에 접어들어 기별이 왔다.

김정숙동지께서 오셨으면 좋으련만 원동에서 여기가 어디라고 그이를 바란단 말인가.

밤새 잠을 설친 윤명환은 내가에 나와 세면을 하려다 갑자기 귀를 강구었다.

새벽바람에 숲이 설레이더니 어디선가 은방울꽃이 웃는듯 한 녀인의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듯싶었다. 착각인가 하여 시내물에 손을 담그려는데 갑자기 귀익은 목소리가 머리우에서 울리는듯 했다.

《옥이 아버지 아니세요?》

윤명환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치마폭에 산나물을 뜯어안은 김정숙동지께서 웃으시며 다가오고있었다. 너무도 그이 생각에 옴하다보니 눈에 허깨비가 낀게 아닐가싶어 젖은 손등으로 깔깔한 눈을 비벼댔다.

《옥이 아버지두, 나 정숙이예요.》

어이 그이를 몰라보랴. 39년 김준(리동걸)이 불의에 체포되였을 때 연사에 나오신 그이와 깊은 인연을 맺은 윤동무임에랴.

《아니, 정숙동지! 여기가 어디라구, 어떻게 여길 오셨소?》

윤명환은 달려가 그이의 흠뻑 젖은 행전을 쓸어만지며 어푸러졌다.

《옥이 아버지두, 정숙이 오지 않으면 누가 오겠어요.》

《캄캄한 밤에 등불을 만났다 할소냐. 분명 어둠을 밝히는 해빛을 안고 이렇게 또 오셨소다.》

 

이튿날 물방아골밀영에서 좀 떨어져있는 갈막골 비밀림시근거지에서는 조국광복회 서두수지회 책임자들의 비상회의가 소집되였다.

청청한 푸른빛을 뿜는 이깔과 분비, 가문비나무가 촘촘히 들어선 수림속엔 진한 송진내가 갈피없이 흩어질뿐 짙은 정적이 깃들었다.

서두수지회의 각 분회책임자들이 모여들었다.

여느때같으면 상봉의 기쁨으로 떠들썩할것이였지만 지금은 형세가 하도 급하여 모두 구름장이 잔뜩 낀 얼굴로 말들이 없었다.

김정숙동지께서 최원봉, 윤명환과 함께 모임장소에 나오시자 모두 놀람과 반가움으로 벌떡 일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이께선 모두거리로 인사를 하신 후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셨다. 반수도 모인것 같지 않았다.

《오지 못한 동무들이 많군요.》

최원봉이 죄스러워하며 사연을 설명했다.

《징병과 〈보국대〉로 끌려왔던 사람들은 벌써 어디론가 실어갔습니다. 그래서 1분회와 2분회장은 오지 못했습니다. 지하수로갱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에겐 일체 바깥출입이 엄금되였습니다. 그래 3분회장도 오지 못했습니다.》

벌써 배는 기울어지고있는 셈이였다.

《그새 어떻게들 지냈는지 이곳 소식부터 들어보자요.》

그이께선 밝은 얼굴로 허두를 떼시고 서안분회부터 시작을 하라고 분회책임자 배동무를 바라보시였다.

구리빛어깨가 쩍 버그러진 서안분회책임자 배동무는 무슨 말부터 했으면 좋을지 몰라 입만 벙긋거렸다. 손탁도 세고 내밀성도 있으나 말주변은 없는 사람이였다.

《우리야 거 뭐 공작원동지가 하라는대로 하느라고 했소만 신통칠 않소다.》하고 허두를 떼였지만 일단 말문이 열리자 조리있는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공작원동지가 다녀가신 후 일제는 공사를 다그치려구 여간만 극성이 아니였수다. 서두수계곡에 언제를 쌓고 원봉에서 부윤까지 200리구간 굴뚫기공사에 사람들을 막 때려내몰았소다. 암반이 떨어져 죽구 발파사고로 무리죽음이 나구 말그대로 죽음의 고역장이였소다. 로동자들은 이래두 죽구 저래두 죽을판에 일어나 싸우다 죽자구 윽윽했소다. 심지에 불만 달면 활활 타오를판이였소다. 우리 분회산하에는 로동자돌격대, 형제계, 친목회 등이 일제의 태업과 파업에 들어갔소다.》

서안분회장은 너덜너덜한 팔소매로 땀이 질벅한 얼굴을 뻑 문대며 곁의 젊은이에게 계속하라고 눈짓을 하였다. 그 젊은이는 소도분회 회장이였다. 전문학교에 다니던 그는 학도병징집장을 받자 도망쳐 연사의 벌목장에 슴새들었던 책상물림이였다. 그는 학생운동에도 관여하고 일찍부터 사상운동에 발을 들여놓아 리론수준이 있었다.

《우리 분회가 활동하는 원봉언제공사장 로동자들은 기대를 파손하거나 자재를 빼돌리는 등 태업을 해오다가 일제히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임금을 높이라, 대우를 개선하라, 악질감독들을 처형하라는 요구조건을 내들었습니다. 놈들은 코웃음을 치며 요구조건을 거부하더군요. 원봉에 경찰력량을 급히 증강하다니 총칼로 파업을 저지시키려고 날뛰였습니다. 로동자들은 일제히 손에 쟁기를 들고 경찰들과 맞섰습니다.

놈들의 탄압이 언제공사장에 쏠릴 때 지하수로갱의 여기저기에서도 멀기치는 파도식으로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로동자들의 단합된 힘이란 참으로 어쩔수가 없는지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가죽채찍을 휘두르며 승냥이처럼 악착하게 굴던 감독놈이 오히려 로동자돌격대 회장이나 형제계 계장에게 설설 기며 비위를 맞추게 되였습니다.》

《파업투쟁때 공작원동지가 장차 무장조직으로 키우라고 하신 로동자돌격대가 선봉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서두수지회장이 특별히 강조하는 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선 그새 서두수의 혁명조직들이 크게 자라나고 강력한 전민항쟁력량으로 성장하였음을 가슴뿌듯이 느끼시였다. 한창 기세가 오르는 때인데 조직에 뭉쳤던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였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였다. 그이께선 본론에로 들어가시였다.

《공사가 중지된다는데 어떤 대책을 세우자고 합니까?》

지회책임자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공사를 중지한다 어쩐다 소문은 나돌고있지만 아직 정식으로 공포하지는 않았습니다. 기계설비랑은 그대로 있고 감독들도 매일 출근하여 작업지시를 주고있습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도분회장이 날카롭게 반박하였다.

《겉보기에는 변동이 없는것 같지만 인부들의 이동은 시작되였습니다. 며칠전 밤중에 수로갱에서 일하던 로동자들을 차례로 불러내더니 자동차에 태우고갔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데로 갔는지도 알수 없습니다. 로력이동을 비밀에 붙이고 쥐도 새도 모르게 빼돌리고있습니다.》

그이께선 조용히 듣고계시였으나 지회나 분회책임자들의 표정은 질리고 굳어지였다.

《그저 뒤숭숭해서··· 지금 우리가 할수 있고 또 하는 일이란 몰래 떠나는 사람들이 연사지구를 떠나지 않도록 류벌장이나 숯구이막에 일자리를 알선하는것입니다. 조직성원들은 갖은 구실을 다 붙여 여기 남도록 공사측과 교섭도 하긴 합니다만···》

지회장은 신심이 없는듯 말끝을 가무리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에 연기가 찬듯 더 답답해나시였다. 그런 소극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동이 터진 물을 막을수 있으며 허물어지는 모래산을 지탱해낼수 있겠는가. 5천여명이나 조직에 묶어세워 전민항쟁로선관철의 굳건한 보루로 쌓아올렸는데 졸지에 무너지다니··· 그이께선 분한 생각에 주먹을 부르쥐시였다. 최후결전이 박두한 때에 강력한 무장봉기력량으로 장군님두리에 묶어세운 귀중한 사람들이 흩어지는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거나 소극적인 대책을 취하는것은 혁명가의 사업태도, 사업방식이 아니였다.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고 화를 복으로 전환시켜야 할것이였다.

《동지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급변한 정세에 대처하여 서두수지회가 취한 조치들이 장군님의 의도에 맞는 조치인가, 지금보다 나은 다른 수는 없겠는가. 우리 다같이 연구하고 진지하게 의논해봅시다. 누구든지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모두 고개를 떨구고 말들이 없었다. 서두수지회장이 침울한 어조로 말을 떼였다.

《토론을 거듭했지만 묘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최후결전준비를 전면적으로 다그쳐야 할 때에 장군님앞에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적들이 우리의 파업투쟁으로 궁지에 빠지기도 하고 전쟁에서 막대한 인적, 물적자원을 탕진한것으로 어쩔수없이 공사를 중지하게도 됐지만 내 생각엔 그자들이 우리 내막을 알고 전민항쟁로선을 의도적으로 좌절시키자는 기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고보면 피할 길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도분회장이 덧붙이는 말이였다.

《피할 길이 없다?!》

되뇌이시는 그이의 안광에 거센 빛발이 펑긋거리셨다.

《소도분회장이 측면은 옳게 보았습니다. 적들은 수전공사장의 단합된 혁명력량을 의도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수전공사중지설은 헛소문이라고 하면서 악랄한 음모를 꾸미고있습니다. 그런데 이 음모를 피할수 없는것으로 보는건 위험합니다. 개별적사람들을 연사지구에 직업을 알선해주는건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더우기 엄중한건 수년간의 단련을 거친 혁명군중이 해체되는것을 불가피한것으로 여기는 관점입니다. 우리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제기될수록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깊이 연구하고 거기서 해결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문제를 좁은 테두리에서 생각할것이 아니라 전반적범위에서 생각해봅시다.》

그이께선 영채이는 눈길로 회합참가자들을 둘러보시였다. 고개를 숙이고있던 그들은 머리를 번쩍 들고 기대어린 시선으로 그이를 우러르고있었다. 여전히 부드럽고 차분했으나 신심과 힘이 느껴지는 어조가 숲공기를 뒤흔들었다.

《적들이 우리의 단결된 혁명력량을 분산약화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이 기회에 혁명력량을 전국적판도에서 확대강화할 작전을 펴야 합니다.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하자는것입니다. 대담한 공격정신이야말로 장군님께서 유격투쟁의 첫시기부터 일관시켜오신 빛나는 전통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선 이미 국사봉회의에서 무산, 연사지구를 비롯한 북부조선일대를 혁명의 믿음직한 기지로 꾸려야 한다시면서 일제의 강제징발에 의해 서두수와 연면수류역의 산판들과 수전공사장에서 힘겨운 고역을 당하는 로동자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켜 혁명조직에 망라시키고 그들속에서 풍부한 투쟁경험을 소유하고 지하공작에 능숙한 핵심들을 국내 각지에 파견하여 혁명조직을 전국적판도에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안팎으로 곤경에 몰린 적들이 수전공사장의 로동자들을 비밀공사장들에 끌고가 우리의 단결된 력량을 분산약화시키려 하지만 우리는 이 기회에 여기에서 많은 투쟁경험을 쌓은 조직성원들과 로동자들에게 개별적임무를 주어 여러 지방에 내보냄으로써 그들이 다른 공사장들에 가서 대중을 교양하고 선봉적역할을 놀게 된다면 우리는 일거에 전민항쟁준비를 위한 수많은 핵심들을 광활한 지역에 파견하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순간 우렁찬 박수소리가 숲속의 정적을 깨치였다. 핵심성원들은 일시에 막혔던 물목이 확 열리고 가슴이 후련해진듯 손바닥이 깨여져라 박수를 쳐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쁨에 넘친 그들의 얼굴을 미더웁게 바라보시며 한결 청높은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서두수수전공사장에는 몇해동안 혁명조직생활과 반일반전투쟁의 불길속에서 단련되고 준비된 동무들이 많습니다. 일제놈들이 이곳 수전공사를 중단하고 로동자들을 딴곳에 이동시키는 이 절호의 기회에 지하조직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좋은 동무들을 각지에 파견하여 전국적판도에서 혁명조직을 더 많이 늘인다면 전민항쟁을 위한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다지는데서 틀림없이 큰 은을 낼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모임참가자들은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실천적으로는 어떤것인지 표상을 가질수 없어 서로 마주보며 수군거릴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실무적인 문제들은 차후에 조직사업을 하실 예정이였다.

연사나 무산지구의 벌목장들과 류벌장들에 가게 되는 로동자들은 최원봉동무가 책임지고 조직적이동을 시키면 별문제가 없을것이다.

청진지구에 가게 되는 사람들은 일철의 박우현을 찾아가 련계를 맺고 원산지구에는 장백현 천상수에서 교원을 하던 허동무가 원산부두로동자들속에서 사업하고있으니 그를 찾아가면 될것이다. 단천지구에는 리동무가 활동하고있고 신흥지구에는 리준의 아들 리용이 있다.

구월산과 벽성지구에선 민덕원이 활동하고있고 제주도에서는 《한나산》대호를 가진 부부가 맹활약하고있었다. 이들이 합세하면 조국땅 방방곡곡의 혁명조직은 더 강화되고 우리 력량은 백배해질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박력있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조국땅 방방곡곡에는 이미 수많은 혁명조직들이 뿌리내리고 자라나고있습니다. 동무들은 이제 흩어져가 그 조직들을 보강하고 새 조직들을 꾸려 조국땅을 우리 세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화가 복이 되는것이고 방어가 아니라 드센 공격을 하는것입니다.》

핵심성원들은 희열에 넘쳐 우렁찬 박수로 화답하였다.

문제는 사람들의 이동문제를 혁명조직의 의도대로 수나롭게 처리하는것이였다. 적들이 저들의 의도에 따라 로동자들을 빼돌리게 할것이 아니라 조국광복회 서두수지회가 자기의 계획대로 사람들을 전국각지에 파견하게 해야 할것이였다. 이것이 역경을 순경으로 만드는 결정적고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특수지하공작원 《북3》의 도움이 있어야 하였다. 그와의 종적련계는 서두수지회장이기도 한 윤명환만이 가지게 되여있었다. 《북3》은 《북선수력전기회사 니시마쯔구미 서두수사무소》요진통에 깊숙이 잠복하고있었다. 지회장은 그이께서 묻기도 전에 사색이 되여 말씀드리는것이였다.

《우린 적들의 계획을 좀처럼 알수 없게 되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선 지회장의 절망적인 어조에 흠칫 고개를 돌리시였다.

《?!》

《〈북3〉이 실종됐습니다.》

《실종이라니요?》

그이께선 너무도 아뜩하여 한동안 말없이 앉아계시였다.

 

×

 

《서두수수전공사를 중지한다는 뛔뛔한 소문이 돌자 난 〈북3〉동지를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취수구공사장에 문제가 생겼으니 토목기사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사무소에 제기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사이의 접선을 요구하는 암호였습니다. 그런데〈북3〉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였습니다. 하는수없이 나는 취수구공사장 로동자돌격대 대장을 사무소로 보냈습니다. 그는 토목기사를 보내달라는데 왜 안 보내주느냐, 사고가 나서 공사를 더는 할수 없노라고 을러메였습니다.

사무소 소장놈은 토목기사가 발전기인수때문에 도꾜에 출장갔다면서 시끄러운 파리 쫓듯이 그 사람을 내쫓더랍니다.

발전기를 가지러 가는 도꾜출장이라면 공사를 중단한다는것은 헛소문일것이였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에 우리는 더욱 혼란에 빠져 전전긍긍하고만 있었습니다. 아무튼 〈북3〉을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북3〉은 한달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감감무소식입니다.》

지회장이 들려준 유진에 대한 소식은 이것이 전부였다.

김정숙동지께선 벌써 한식경이나 수림속을 오락가락하고계시였다. 총총한 나무줄기들사이로 흘러내리던 시뻘건 노을빛이 어느덧 거멓게 스러져가고 저녁어스름이 자오록이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그이의 두뇌는 추리와 판단, 예리한 분석으로 기민하게 움직이고있었다. 일제가 이미전에 서두수수전공사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극비밀리에 내려보낸 조건에서 그 이후에 토목기사를 발전기인수때문에 도꾜에 출장보냈다는 소리는 거짓이 분명하였다. 그런 소문을 낸데도 주도세밀한 타산이 있었을것이다. 말하자면 토목기사가 발전기인수때문에 출장갔으니 수전공사는 계속된다는 인상을 주려 한것이였다. 토목기사를 놓고 이런 잘 타산된 연극이 벌어진다면 이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였다.

《북3》의 정체가 로출되였는가? 그의 실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진이 로출되여 적들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면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서두수지회앞에 아니, 연사지구와 북부조선일대의 혁명력량앞에 예상할수 없는 위험이 다닥쳤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힘껏 내닫다가 잘 위장된 함정에 풍덩 떨어진듯 눈앞이 아뜩하고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공사지휘부에 든든히 박혀있어 적들의 음모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포착할수 있는 유진이 없다면 서두수수전공사장사태를 수습하는 길, 화를 복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는 작전을 수나롭게 할수 있는 길이 막힌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태였다. 만약의 경우 체포된 유진이 적들의 회유와 고문에 견디여내지 못한다면?! 사태는 수습되기는커녕 어망처망한 파국에 처박힐것이였다.

그이께선 일순 가슴이 섬찟하시였으나 인츰 머리를 설레설레 흔드시였다. 유진을 믿고싶으셨다.

사실 그이께선 유진을 단 두번 만났을뿐이였다.

봉천에 가서 건설전문학교를 다니던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의 아버지인 신파편벌장의 소문난 떼군이고 형제계유사인 김명준로인을 만나러 물방아간집에 갔다가 유진과 첫 대면을 했었다. 김로인이 그이께 제 아들을 인사시켜주었다. 아버지처럼 허우대가 크고 미목이 수려한 청년이였다. 장차 무슨 일을 하려는가고 물으니 배운게 토목이니 길을 닦든가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나 해야지 뭘 더 바라겠는가고 하였다.

《길을 닦고 다리를 건설해도 제 나라를 위해 해야지요.》

그이께서 터놓고 말씀하시자 그는 제꺽 반문하였다.

《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하다면 잃어버린 제 나라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가요?》

《어떻게요?》

《혁명을 해야지요.》

그때 불꽃이 펑긋 튀더니 잉걸불처럼 이글거리던 그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으셨다.

그이께서 정안군놈들에게 체포되셨을 때 그이의 석방을 위해 도천리로 달려와 뛰여다닌 사람도 바로 유진이였다.

13도구경찰서에서 풀려나온 그이께서 포태산기슭의 조밭에 얼마간 은신하셨을 때 유진이 찾아와 그이께 묻는것이였다.

《나도 제 나라를 찾는 일을 하고싶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허천강발전소건설에 뒤이어 서두수수전공사가 벌어진다는데 그곳에 토목기사로 취직하세요. 조직선이 닿을 때까진 그저 수걱수걱 맡은 일을 하면 됩니다. 동무의 대호는 〈북3〉이예요.》

김정숙동지께선 두번밖에 만나지 못한 유진이지만 간고한 신파공작과정에서 친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하였던 그의 아버지 김로인에 대한 신뢰가 크고 굳건했기에 신파 물방아간집 아들 유진을 그렇게 선뜻 믿고 중요한 일을 맡겼는지도 몰랐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지만 유진은 혁명의 세파를 겪지 못한 책상물림이였다. 그가 뜻밖에 다닥친 이 시련앞에서 꼭 이겨낼것이라는 담보는 없었다. 수년간 혁명을 해왔다는 사람들도 어쩌면 마지막시련일지도 모르는 이 고비를 이겨내지 못해 변절자의 치욕을 들쓴 례는 적지 않았다.

김정숙동지께선 숲속을 천천히 걸으시였다. 온화한 안색이였으나 그이의 마음속은 풍랑을 만난 배처럼 세차게 뒤번져지시였다. 아무리 폭풍이 사납다 해도 길을 찾아야 했다. 천길나락에 떨어지고 백리진펄에 빠졌다 해도 솟아날 방도를 찾아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뚫고나갈것인가? 아름드리 이깔나무의 터슬터슬한 껍질을 주먹으로 두드리던 그이께선 픽 돌아서시면서 뒤따르던 지회장에게 물으시였다.

《유진동무네 가족이 원봉에서 살고있는가요?》

《아닙니다. 부윤에서 삽니다. 올봄에 니시마쯔구미사무소가 그곳으로 옮겨가면서 부윤골안에다 제놈들이 살 집까지 짓고 다 이사를 했습니다.》

《유진동무의 아버진 여직 신파에 계시는가요?》

《부윤으로 이사할 때 아버지를 모셔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요.》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상싶으셨다.

유진의 아버지는 오랜 조국광복회 회원이였고 혁명군을 제 친자식처럼 여겨온 로인이였다. 그를 만나면 꼭 도움을 받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연기가 꽉 찼던 가슴에 한줄기 시원한 공기가 흘러드는듯 숨이 좀 나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치삼과 류정연을 불러앉히시고 차후행동방향을 말씀하시였다.

《오늘 밤으로 부윤엘 가야겠어요. 유진동무네 집식구부터 만나자고 합니다. 지회장동문 마차를 한대 구해주세요. 귀부인이 타고다니는 고급마차면 더 좋겠습니다.》

조치삼은 입을 딱 벌리였다.

《그건 안됩니다. 섶지고 불속에 뛰여들어도 분수가 있지. 〈북3〉이 적의 올가미에 걸렸다면 그의 집은 함정일것입니다. 범의 아가리란 말입니다. 내가 이밤중으로 갔다오겠으니 여기서 뜨지 마십시오.》

조치삼은 떠날셈으로 일어서더니 바랑을 둘러메였다. 그의 걸음이면 밤중으로 갔다올만도 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선 엄하게 말씀하셨다.

《조동무, 자중하세요. 유진의 집이 함정이라면 생면부지의 동무가 가는건 더 위험합니다. 분명 놈들은 찾아오는 사람을 주시하고있을거예요. 문지방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올가미에 걸릴겁니다. 동문 안돼요. 내가 가는게 낫습니다.》

《왜 위험한덴 유독 정숙동지가 가야 한다는겁니까. 나에겐 정숙동지의 신변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혁명군당위원회가 나에게 준 특별과업입니다.》

《동무두 참, 왜 고집이예요? 난 유진동무 아버님과 잘 아는 사이여서 그 집 딸로 변장하고 수나롭게 다녀올수 있어요.》

《글쎄 안됩니다. 이 조치삼이 살아있는 한 그런 모험을 할 생각 마십시오. 나와 정연동무가 딸, 사위로 변장을 하고 다녀오겠으니 그리 아십시오.》

조치삼이 너무 완강하여 그이께선 생각해보기로 절충안을 내놓지 않을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