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5

 

제 4 장

5

 

비행락하훈련이 진행될 하바롭스크부근 마뜨예브까초원에는 봄빛이 완연하였다. 파란 풀판이 융단처럼 깔린 드넓은 초원에 전개된 흰 야영천막들이 커다란 꽃송이처럼 하늘거렸다.

비행장구역엔 이제 훈련생들이 타게 될 비행기가 정렬해있었다.

남먼저 훈련장에 나온 1지대에선 벌써 몸무게를 달고있었다. 그뒤를 이어 통신대대가 늘어섰다. 동무들이 덜어주는 음식을 다 먹어치우느라고 식탁에서 떨어질줄 모르던 간호중대의 순이는 맨나중에야 할딱거리며 뛰여왔다.

오늘은 비행락하훈련 최종판정을 하는 날이여서인지 아침식사때 빠다를 바른 빵과 고기덩이와 감자가 들어간 양배추국이 나왔다. 녀대원들은 저마끔 제국을 순이의 국그릇에 덜어주며 명령조로 을러댔다.

《무조건 다 먹어. 기준몸무게에 도달하지 못하면 비행길 못 타. 에구 키가 작은데다 빼빼 마르기까지 했으니··· 먹은건 다 어디로 가는지.》

어쨌든 덜어주는 국을 지청구와 함께 다 먹은 순이는 숨가쁘게 뛰여와서 목언저리를 손짓하며 하소연을 하였다.

《국이 여기까지 꼴깍 찼어. 출렁출렁해.》

《순이, 비행기에서 뛰여내릴 때 쏟아지지 않겠니? 그럼 불합격이야.》

옥성이가 롱담을 했으나 순이는 기준몸무게에 도달하지 못할가봐 걱정인지 웃지도 않았다. 몸무게를 달고있는 지휘관이 1대대 류삼손중대장이였던것이다.

장대한 체구를 가진 용감하고 성실한 이 중대장과 키가 작고 체소하여 소녀같아보이는 순이사이엔 야릇한 싸움이 고조에 달하고있었다.

지금도 순이는 까닭없이 온곱지 않은 눈초리로 중대장쪽을 쏘아보며 종알거리였다.

《퇴짜만 놓아보지요. 가만 안있을래요.》

하면서도 순이는 김정숙동지께서 이즈음 몸이 퍽 축갔다고 몹시 걱정하였다. 사업부담, 훈련부담도 컸지만 서두수일로 잠도 제대로 잘수없고 밥도 넘기기 어려웠던 그이이시였다.

《순이, 내 걱정 할 계제가 되나? 오늘은 삼손동무한테 좀 곰상스레 굴어요. 웃는 얼굴에 퇴짜를 놓겠어?》

순이는 가당치 않다는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차례가 되여 김정숙동지께서 저울우에 올라서시였다. 바늘이 좌우로 세차게 요동치더니 기준무게를 넘어서 멎어섰다. 숨을 죽이고 눈금을 들여다보던 순이의 눈이 더 휘둥그래졌다.

《정숙동문 보기와 다른데요.》

《난 뼈속으로 기름이 차거던.》

《에이, 그런 롱담 하지두 말라요. 부대적으로 땀많이 흘리구 늘 애간장 태우는 사람이 누군데.》

하여튼 그이께서 합격이 되였으니 모두 제일처럼 기뻐 기분들이 좋았다. 그이께서 차돌을 촘촘히 박은 배띠를 띠신줄 알리없는 그들이였다.

맨 마지막으로 순이차례가 왔다. 순이는 잔뜩 긴장해서 오똑 저울우에 올라섰다. 저울눈금이 바르르 떨었다. 그가 아무리 기운을 쓰며 내리눌러도 바늘은 기준치에 이르지 못한채 한들거릴뿐이였다.

《불합격이군.》

류삼손이 락담하여 손을 내저었다.

정연이가 다가들어 사정하였다.

《중대장동무, 순이동무가 어떻게 피나게 락하훈련했는지는 동무두 알지요. 키로수가 많이 모자라는것두 아닌데 사정 좀 봐줘요.》

《그런 말 마시오. 그런 무원칙성이 자기 대원에 대한 사랑이 아니요. 기준무게에 도달하지 못하면 설사 락하산을 타고내린다고 해도 바람에 날려나 착지하기 어렵단 말이요. 눈먼사랑에 제 동무를 죽이자고 그러오?》

류삼손은 원칙적이고도 무자비하였다. 그는 보고를 할셈인지 지휘부쪽으로 정겅정겅 걸어가는것이였다.

밤을 새우며 훈련하던 나날들이 되새겨졌는지 정연이가 순이에게 욕을 퍼부어댔다.

《국을 다 먹긴 먹었어?》

《다 먹었다는데두. 에이, 울어머닌 날 왜 조막만하게 만들었을가.》

《걷어치워. 다 먹긴 뭘 다 먹었겠어. 쏟아버렸겠지. 언제 철이 들겠는지.》

정연은 제가 오히려 애가 타서 발을 굴렀다. 순이의 울화는 애궂은 류삼손에게 화산처럼 터졌다.

《삼손중대장은 나만 보면 해본다니까. 온 세상에 한을 품은듯이 찌뿌둥해가지구. 꺽다리, 쇠꼬챙이 같은거! 통신대대, 위생중대 할것없이 녀대원들이 왼눈으로나 볼줄 알아. 어디 그래보라지.》

약이 올라 입에서 뭐가 나오는지 모르고 쫑알대던 순이는 류삼손이 달려오자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는 행여나 하는 시선으로 그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얼굴에 번지르르한 땀을 씻으며 류삼손이 순이에게 명령했다.

《장구류를 벗어놓으시오.》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지 순이는 비칠거렸다. 순이를 부축한 류정연이 류삼손에게 을러멨다.

《중대장동무, 군의소나 통신대대에 잘못 보였단 큰코 다쳐요. 장간 다 갈줄 알라요.》

류삼손은 코웃음을 치더니 순이의 배낭과 장구류를 와락와락 벗겨내는것이였다. 순이는 억이 막혀 눈물만 똑똑 떨구었다.

김정숙동지께서 무슨 일인가 하여 달려오시였다. 그이께선 얼굴을 싸쥐고 울고있는 순이를 보자 더욱 놀라시였다.

《무슨 일이예요?》

《고양이와 쥐가 또 아웅다웅이지 뭐겠어요.》

정연은 그이께 류삼손을 혼내주라는 의미로 눈을 끔쩍거렸다. 그러거나말거나 장구류를 손질하고난 류삼손이 그것을 순이에게 제 손으로 메워주더니 저울에 다시 올라서라고 하였다.

순이는 여전히 흑흑 흐느껴울면서 저울우에 올라섰다.

바늘이 휘친거리더니 기준무게를 넘어서 멎어선다.

《합격이다.》

정연이가 소리질렀다. 순이는 꿇어앉아 저울눈금을 넋없이 들여다보았다. 이게 무슨 감투끈인지 알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린것밖에 없는데 제 몸무게가 두키로그람이나 더 늘어나다니?!···

순이는 류삼손이 자기를 놀리느라고 무슨 갑작수를 썼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부르릉거리는 비행기쪽으로 달려가며 순이는 입을 오무리고 류삼손이쪽에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그러고도 속이 풀리지 않는지 김정숙동지께 달려와서 토달거리는것이였다.

《저 동문 왜 나만 보면 눈을 지릅뜨구 저럴가.》

정연이가 어이없는지 김정숙동지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그이께선 웃기만 하시였다. 얼마나 좋은 시절, 좋은 때인가. 정연은 그가 부러운지 나직이 한숨을 내그었다.

순이는 어쩐지 기분이 달뜬듯 했다.

《글쎄 내가 그 동무네 중대에 이동치료를 나갔댔는데 중대장동무가 묻더군요. 〈동무 이름이 뭐요?〉순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때부터 눈을 뚝 부릅뜨고 나만 보면 별나게 굴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 순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시였다.

《순이, 간파하자밀영에서 희생된 허순희동무가 삼손동무 애인이였어. 동무 이름이 순이라니까 각별히 위해주는거야.》

《네?!》

정연이가 눈이 먼 순이를 시까슬렀다.

《네 몸무게가 왜 갑자기 불어났는지 알기나 하니? 류삼손중대장이 어디 가서 돌을 주어다 네 배낭속에 넣어주더구나. 맹추같은게.》

《뭐예요?!》

순이는 우뚝 멈춰서더니 동그란 눈을 깜박도 않고 류삼손이쪽을 점도록 바라보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선 그를 내쳐두고 정연과 함께 비행기쪽으로 걸음을 다우치다 돌아보니 삼손과 순이가 나란히 걸어오고있었다. 순이가 무어라 말했는지 류삼손이 빙긋이 웃는다.

초원 저쪽에서 풍을 벗긴 승용차들이 달려와 주석단으로 꾸민 곳에 와 멎더니 사령관동지께서 원동군과 25집단군의 고위지휘관들과 함께 내리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번거롭던 가슴이 안정되는것을 느끼시며 비행기에 오르시였다.

비행기는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시창으로 내려다보니 땅우의 세계는 아름답기도 하였다.

연록빛으로 물들어가는 숲,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듯한 마뜨예브까초원, 알락달락한 머리수건을 쓴 꼴호즈녀인들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바다쪽은 안개가 자오록하여 푸른 물결은 보이지 않았으나 멀리에 고동색산발들의 륜곽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그 산너머에 조국이 있을것이였다.

조국, 고향 생각만 해도 김정숙동지께선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이 비행기가 동쪽으로 조금 더 날아가면 오산덕기슭, 팔을천의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연분홍진달래와 하얀 백살구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고향산천이 보일것만 같으시였다. 꽃노을속에 뛰놀며 즐겁게 지낸 유년시절은 없었으나 마음속의 고향은 언제나 그지없이 아름다운 선경이였다.

사래긴 보리밭에 파란 보리가 돋아난 이른 봄날 그이께선 모지랑호미로 돌밭김을 매고계시였다. 보리밭가운데서 빗조르릉 하고 고운 새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종다리가 포르릉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그마한 그 새는 청아한 소리로 아름다운 노래를 읊조리며 가없이 푸른 하늘로 날아갔다.

저 새처럼 고운 노래를 부르며 저 끝없는 하늘을 날아봤으면 하는것이 어린 마음에 품었던 첫 소원일지도 몰랐다.

지금 그이께선 비행기를 타고 푸른 하늘을 날고계시였다. 종다리처럼 고운 노래는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는 투쟁의 노래를 부르며 가없는 창공을 날아내릴것이였다.

《락하준비!》

훈련교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락하준비를 하시면서도 마음속으로 자신과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나는 세상에 태여나 스물일곱해를 살았다. 길지 않는 그 생에 나는 무엇을 하였으며 무엇을 깨달았으며 과연 무엇을 얻었던가.

망국노로 태여난 고향땅에서조차 살수 없어 망양나루터에서 쪽배에 몸을 싣고 두만강을 건느면서 세상에 조국보다, 고향보다 더 소중한것이 없다는것을 어린 마음에 새기였었다. 조국을 찾고 고향을 찾는 길이 혁명을 하는 길이라는것을 생활 그자체가 깨우쳐주었으니 나는 일찌기 혁명에 나섰으며 총잡고 유격대오에 들어섰다.

인민의 별세상이 펼쳐졌던 유격구의 행복한 생활도 맛보았고 반《민생단》투쟁의 미친 바람속에서 조선혁명이 당해야 했던 수난도 체험했으며 처창즈의 무서운 기아도 겪어보았다. 고난의 행군의 모진 시련과 난관도 이겨냈고 청봉밀영의 교훈도 가슴깊이 새기였다.

그 험난한 투쟁의 길에서 나는 하나의 진리를 찾았으니 그것은 혁명의 령도자가 있어야 혁명도 있고 조국도 있으며 령도자를옹위해야 민족도 있고 나 개인도 있다는 철리였다.

그것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겨레, 한 나라 혁명이 송두리채 뿌리뽑힐 반《민생단》투쟁이라는 수난의 해일이 밀려들 때 민족과 겨레를 지켜, 혁명을 지켜 무서운 해일을 막아서는 방파제가 되시던 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에서 받아안은것이였다.

그것은 고난의 행군때 독소금에 전부대가 중독되였던 동대정자뒤산에서 적 대부대의 포위에 들었을 때 철의 신념으로 새긴것이였다.

장군님께서 계시여 부대는 구원되고 혁명은 줄기차게 계속 전진하였으니 장군님을 옹위하는것이 곧 혁명의 옹위이고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것임을 삶과 투쟁이 나의 심장에 새겨주지 않았던가.

나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스스로 민족의 희망인 장군님을 옹위하고 그 뜻을 받드는 길에서 친위전사, 이른봄에 남먼저 피여나는 진달래처럼 선구자로 살리라 마음다졌다. 그것은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사명감으로부터 내스스로 감당한 혁명의 선택, 인생의 의무이기도 하다.

자연계의 태양은 저절로 해살을 뿜어 만물을 품어안지만 혁명의 태양은 한몸을 깡그리 태워 빛과 열을 전해주는 혁명가들에 의해 그 위대함과 생명력이 더욱 뚜렷해진다.

최후결전이 박두한 지금이야말로 사령관동지의 전민항쟁로선관철을 위해 홰불처럼 자신을 태워야 할 결정적순간이 아닌가. 이것이 심혼과 지성과 노력을 깡그리 바쳐야 할 내 인생의 본령이고 직분일진대 내 무엇을 서슴는단 말인가.

김책동지, 이런 때 몸을 내대지 않는다면 이 김정숙이 살아서 무엇합니까?

안길동지, 나에겐 사령관동지의 안녕을 돌보는것과 함께 어머니의 의무가 더 크고 무겁다고 하였지요. 빨찌산의 아들인 어린 장군의 출생이 혁명가들과 전체 인민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안겨주고있는지 아는가고, 미래를 위해서 어머니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지요. 전 바로 그 미래를 위해서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미래를 위해 험한 길을 남먼저 웃으며 걷는것이 어머니가 아닐가요.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자랑으로 여길겁니다. 전 조국으로 갈것입니다. 사령관동지의 전민항쟁의 로선의 불길이 더 세차게 타오르게 할것이며 장군님을 따르고 그 뜻을 받드는 길에 매 개인의 참된 인생이 있으며 조국의 해방도, 민족의 광활한 미래도 있음을 이 한몸을 홰불처럼 불태워 조국산천에 새길것입니다.)

드디여 김정숙동지께서 락하할 시각이 왔다.

결심을 굳히고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침착해지시였다.

그이께선 심호흡을 크게 하시고 아득한 창공에로 몸을 날리시였다. 이윽하여 락하산이 활짝 펼쳐지며 몸은 서서히 대지로 날아내렸다.

조국땅이 발밑에 있는듯싶으시였다. 봄꽃이 다문다문 피여난 푸른 초원이 다가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