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3

 

제 4 장

3

 

앞상우에는 피에 절어 거무죽죽해진 뜨개옷이 놓여있었다.

뒤늦어서야 김책의 천막에 들어서던 최현은 가슴이 얼어드는것만 같았다. 모두 침통한 낯빛으로 앞상우의 뜨개옷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성원들이였다.

최현은 상우에 있는것이 뜨개옷이 아니라 전우의 시신이 안치되여있는것만 같아 모자를 벗어 움켜쥐였다.

올 사람은 다 왔다고 여겼는지 장내를 둘러보던 김책이 아주 낮은 소리로 말을 떼였다.

《서두수발전소건설이 중지된다는 소문, 뒤이어 그게 헛소문이라는 상반되는 정보를 받자 사령부에서는 정확성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간백산밀영에 훈련교관으로 나가있던 방철룡동무를 급파하였습니다.

부상을 당한채 두만강을 헤염쳐 기슭에 이른 그는 달려온 쏘련국경경비대 군인들에게 〈김일성빨찌산〉이란 말과 함께 이 뜨개옷을 넘겨주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쏘련동무들은 뜨개옷의 의미를 알수 없어 우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모두 그 사연을 이미 알고있는터여서 묵묵히 뜨개옷을 바라만 볼뿐이였다.

호아맨 자리, 천을 덧대고 기운 자리를 쓸어보던 안길이 김책에게 수군거렸다.

《혹 여기에 무슨 암호표식을 한게 아닐가요?》

《정찰국에서 다 조사해보았다오.》하며 김책은 머리를 저었다.

김일이 낯익은 뜨개옷을 끄당겨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입안의 소리로 웅얼거리였다.

《진실동무가 행군의 쉴참에도 극성스레 뜨개질을 하군 했지요. 정숙동무, 이게 그 뜨개옷이 아니요?》

김정숙동지께선 수긍의 의미로 뜨개옷을 받아 말없이 쓰다듬으실뿐이였다.

안길은 눈빛을 번뜩이며 김일에게 물었다.

《철룡동무의 애인이 진실이였소?》

《안해였소. 오진실이라구 오래전에 희생됐소.》

《애인이든 안해든 어쨌든 이게 서두수수전공사가 중지된다는것이 진실임을 전하자는게 아니요?》

안길의 해석은 엉뚱하면서도 그럴사하여 모두 긍정을 표시했으나 김책이만은 날카롭게 반문했다.

《그 반대일수도 있지 않소. 중지된다는 소문이 진실인가, 아니면 헛소문이라는 정보가 진실인가? 어느쪽이요?》

두뇌회전이 비상히 빠른 안길은 랭정하게 응수했다.

《방철룡이 죽음을 각오하고 두만강을 건너온데는 두가지 리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로 박광선소조에 무전기가 고장났다는것을 의미하며 둘째로 방철룡동무가 이미 흉부에 부상당한 몸으로 두만강물에 뛰여든것을 보면 시간이 급박하였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서두수수전공사가 중지되고 그곳에 밀집되였던 로동계급이 산산이 흩어질 위험이 조성되였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김책은 머리를 끄덕였다.

《안길동무의 분석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다른 의견이 없습니까?》

의견이 있을리가 없었다. 최현은 조급해나서 저도 모르게 일어섰다.

《그렇다면 빨리 대책적문젤 의논해야 하지 않겠소.》

《옳습니다. 대책을 토론합시다.》

김정숙동지께서 정색하여 김책의 눈을 마주보시였다. 침착하기 그지없는 김책이였으나 화살을 건듯싶은 그이의 눈길을 황황히 피하였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다소 언성을 높였다.

《동무들도 알겠지만 김정숙동무가 서두수일을 바로잡기 위해 국내에 나가겠다고 루차 제기해왔습니다.

북부조선일대 특히 연사지구는 정숙동무가 개척하고 혁명의 씨앗을 뿌려 갖은 정성과 애를 다 써서 가꾼 혁명전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서두수수전공사장혁명조직들은 정숙동무에게 있어 살점과도 같이 귀중한 산아입니다. 그곳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뿐아니라 능숙한 정치공작원이며 탁견을 가진 조직자이기도 한 정숙동무가 나가면 그곳 일을 누구보다 잘 수습하리란걸 우리도 모르는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동무들, 김정숙동무가 조선혁명에서 맡고있는 몫을 대신할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도 대신할수 없고 감당해낼수 없습니다. 서두수문제가 아무리 중요하단들 혁명의 령도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혁명의 미래를 키우는 크낙한 사명에야 비길수 있겠소?》

김책은 동의를 구하듯 동지들을 둘러보았다.

《사나이들이 한구들 있어가지구 거기가 어디라구 정숙동물 보낸단 말이요. 내가 가겠소.》

김일이 뚝뚝하게 하는 말이였다. 김정숙동지의 《성화》를 적잖게 받아온 안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김일은 평소에 말이 없고 뚝한 성미이지만 인민들과 마주앉으면 명주고름처럼 부드러워지고 혀에 참기름을 바른듯 이야기도 슬슬 구수하게 잘하는 유능한 정치공작원이였다. 그가 안성맞춤이긴 하지만 이즈음 안길이 3지대 정치위원으로 조동되여 김일이 1지대 정치사업을 맡게 되였으니 그를 보내기는 어려웠다. 누군가 조치삼을 물망에 올렸으나 진중하지 못하다고 모두 도리질을 하였다. 그렇다고 어려운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박광선소조나 오백룡소조에서 그 누구를 떼낼 형편도 못되였다. 희생이 너무나 많았고 앞으로도 적지 않을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소리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선 방철룡이 남긴 유물을 가슴에 꼭 붙안고 쓸어만지며 그들을 옛 추억속으로 이끌어가시였다.

《진실동무가 남 다 자는 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열심히 뜨개질을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우린 그가 남편인 철룡동무를 위해 그렇게도 극성인줄 알고 놀려대군 했습니다. 그런데 진실동문 뜨개옷이 마무리되자 나에게 말하는것이였어요.

〈난 결혼하자마자 〈민생단〉혐의자와 결혼했다는 리유로 추방되였댔어. 사령관동지께서 〈민생단〉혐의자들의 보따릴 불살라버리고 그들로 새 사단을 조직하셨을 때 나와 철룡동문 그곳에서 다시 만났어. 장군님의 은정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살아남아 혁명대오에서 다시 만날수 있기나 했겠어.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셔야 혁명도 승리할수 있고 사랑도 행복도 곡절없는 개인의 운명도 있다는걸 생활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달가. 이 뜨개옷은 찬바람, 눈보라를 대오앞에서 제일 많이 맞으시는 장군님께 드리자고 해.〉

사령관동지께선 뜨개옷을 올리는 진실동무에게 이건 꼭 철룡동무에게 입히라고, 동무네가 서로 사랑하며 잘 싸우면 그게 자신을 위하는것이라고 그예 사양하시였어요. 진실동문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련락임무를 수행하러 가던 길에 적들과 맞다들려 혼자서 싸우다 장렬하게 희생되였습니다. 사후에 그의 배낭에 그냥 남아있던 뜨개옷을 사령관동지께서 철룡동무에게 손수 입혀주시며 진실동물 잊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그이의 음성은 떨리고 눈굽에 맺혔던 뜨거운것이 거무죽죽해진 뜨개옷우에 방울방울 떨어져내렸다. 그이의 젖은 목소리는 마디마디 끊기며 다시 울려나왔다.

《이 뜨개옷의 실코마다엔 진실동무가 우리에게 남기고싶었던 말이 얽혀져있는것이 아닐가요. 방철룡동무가 마지막순간에 하고싶었던 말도 그것이였을것입니다. 하고보면 이 뜨개옷엔 두 혁명동지의 간절한 유언이 새겨져있다고 해야 할것입니다.》

김정숙동지께선 눈을 슴벅이시며 말을 잇지 못하시였다. 그것도 한찰나 그이께선 고개를 번쩍 드시였다. 탁 갈린 음성이 모두의 페부를 찌르며 옹골차게 울려왔다.

《사령관동지를 잘 받든다는게 무엇입니까? 령도자의 로선과 방침을 관철하는 문제를 떼여놓고 수령옹위에 대해 말할수 있겠습니까.

전민항쟁로선관철에서 서두수수전공사장지구는 가장 강력한 보루입니다. 품들여 키운 수천의 무장력량이 졸지에 흩어지는가, 마는가 하는 때에 뭘 이것저것 재고 마르는겁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타시는지 마른침을 삼키고 애원하듯 더 절절히 호소하시였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누가 선손을 쓰는가에 있습니다. 그러자면 제가 가야 합니다. 그건 첫째로, 도천리, 신파지구지하공작때 저는 황수원언제건설장에 파견되였던 김빠이(리창선)로부터 일제가 새 침략전쟁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전력수요를 충당할 목적으로 장자강과 서두수지구의 수력자원을 리용하는 큰 발전소건설을 계획한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큰 수전공사가 시작되면 국내각지에서 인부들이 모여들것이고 그러면 장차 이 지구가 로동계급의 대부대집결지로 될것은 뻔한 일이였습니다. 허천강발전소건설이 끝나면 그곳 인부들도 서두수로 넘어가게 되는데 벌써 측량사업이 시작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 사령관동지께 보고드리고 한 동지를 서두수지구에 미리 파견하였습니다.》

그는 전문학교를 다닌 토목기수인데 측량기술자로 침투되여 지금 수전공사지휘부에 단단히 박혀있었다. 그의 대호는 《북3》이다. 북부조선일대에 파견한 세번째 특수지하공작원이라는 의미였다. 《북1》은 김준(리동걸), 《북2》는 김빠이였다.

그를 통해서만 사태를 수습할수 있고 그와의 접선은 김정숙동지께서 가셔야만 용이하게 할수 있었다.

안타깝게, 절절하게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험지에 기어코 가시려는 그이의 헌신성앞에서 최현은 맑은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는듯 하였다.

그는 사실 김정숙동지를 만나 평생 해보지 않았던 말을 해놓고는 속이 언짢아 스스로 화를 내고있던터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오시기만 해봐라 하고 벼르고있었는데 그이께서 강급처벌에 동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음물을 들쓴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현이 실수를 해도 단단히 했구나 하는 자책에 식은땀이 흘렀다. 더우기 김정숙동지의 말씀과 행동에 자신을 비춰보니 자기 몰골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이 최현이 어떻게 되여 제 감정을 혁명의 요구앞에 놓게 되였는가?)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그는 솔직한 제 성미그대로 벌떡 일어났다.

《내 사내대장부로서 부끄럽기 그지없소. 내놓고 말해서 정숙동무처럼 사령관동지곁을 떠나기 힘든 사람이 어데 있겠소. 그런데도··· 내 이제 당장 자동총대대로 가리다. 전사면 어떻고 중대장이면 어떻소? 사령관동지뜻을 받들면 그만이지.》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이건 또 뭐요? 장사말에 혼사말이라더니.》

안길이 어이없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하는 말이였다. 최현은 호박물주리를 만지작거리며 못 들은척 하였다. 엄숙했던 장내에 껄껄 웃음이 터졌다. 긴장했던 분위기가 너누룩해지자 김책이 얼른 일어섰다.

《오늘회의를 민주주의원칙에서 결속지읍시다.》

김책은 헛기침을 톺고나서 그답지 않게 목청을 돋구었다.

《김정숙동무를 국내에 보내는데 찬성하는 동무들은 손을 드시오.》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다수가결로 정숙동무의 제기는 부결되였습니다. 원동군사령부에 가신 사령관동지께서 돌아오시면 회의결정을 보고드리고 결론을 받겠지만 내 생각엔 박광선소조에 맡겨 대책을 세우도록 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김책은 맺고끊듯 결론을 내렸다.

 

천막을 나선 최현은 구락부를 새로 짓자고 쌓아놓은 통나무무지를 보자 그곁에 펄쩍 주저앉았다. 아까부터 몹시 피우고싶었던 담배생각이 나서였다.

그는 호박물주리에 써레기담배를 말아 쑤셔넣고 불을 붙여물었다.

한모금 깊숙이 들여마시자 담배연기에 숨이 꺽 막혔다. 눈앞이 어질해졌으나 연기를 코로 입으로 굴뚝처럼 내뿜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는 이제 사령관동지께서 오시면 제 잘못을 말짱 털어놓고 개운한 마음으로 자동총대대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울고싶어졌다. 정이란게 이렇게도 끈덕지다구야···

어디선가 간간이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이밤에 우는 사람이 나말고 또 있는가?)

최현은 누굴가싶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범의 걸음처럼 소리없이 다가갔다.

흐느낌소리는 통나무무지뒤쪽에서 들려오고있었다. 나무무지를 에돌아가니 아가위덩굴밑에서 누군가 울고있었다.

《거 누구요?》

인기척에 울던 사람이 일어섰다.

뜻밖에도 김정숙동지이시였다. 희미한 쪼각달빛에 눈물범벅이 된 해쓱한 모습이였다.

《정숙동무, 왜 그러오? 제기한게 부결돼서 그러오?》

그러자 그이께선 더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시였다. 최현은 엉거주춤 곁에 앉았으나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공연히 물주리만 뻐끔뻐끔 빨아댔다. 담배연기가 그이의 머리우에 뽀얗게 서려들자 그는 황급히 연기를 쫓느라 손사래를 쳤다.

사내애같은 최현의 순직한 행동이 그이의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에 젖은 두볼을 팔소매로 훔치며 통사정을 하는것이였다.

《최현동지, 난 어쩌면 좋아요. 박광선소조는 희생이 적지 않아 적통신도청임무마저 아름차서 서두수일에 손댈 형편이 못돼요. 사령관동지께선 요즘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잠도 깊이 드시지 못해요. 아무리 정성을 다해 식찬을 만들어올려두 한두절이나 집나마나 하시고··· 서두수일때문에 몹시 고심하시는것이 분명해요.》

《이 미욱한 최현이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르지요.》

《글쎄 장군님께서 속쓰셔야 할 일이 오죽이나 많은가요. 그런데 가까이 있으면서 속생각도 짐작 못하고 걱정 하나 풀어드리지 못하니 내가 무슨 가까운 혁명동지란 말이예요.

정말 그분의 가장 가까운 동지란 어떤 사람일가요? 정말 어떤 사람이···》

최현은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불뭉치같은것을 꿀꺽 삼키며 자신에게 더욱 뚜렷해진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였다.

《사령관동지의 뜻을 말없이도 짐작하고 그이 의도를 받들기 위해서라면 얼음물속에라도 서슴없이 뛰여들고 지구 한끝에라도 한달음에 달려가는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