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2

 

제 4 장

2

 

훈춘현 동흥진 춘하라는 곳을 거쳐 두만강쪽으로 나가느라면 천룡암이라는 고장이 있는데 이 숲속에 조선로인이 살고있는 산전막이 있었다.

후날 력사에 천룡암비밀기지로 명명된 이 산전막은 원동에서 만주로, 국내에로 나가는 소부대들과 소조들의 주요련락지점이였다. 산전막로인은 원래 훈춘특무대에 흡수된 밀정이였다. 그는 이전에 독립군생활도 하고 독립군이 뿔뿔이 흩어진 후에는 형제도 찾지 못하고 가정도 이루지 못한채 뜨내기생활을 하다가 적들에게 걸려들어 밀정노릇을 하게 된 가련한 나배기였다.

두만강연안일대 일제의 《요새구역》에 대한 정찰을 체계적으로 할수 있는 전화도청장치를 설치할데 대한 과업을 받고 1940년대 말경으로부터 훈춘경내와 두만강연안일대에 나와 활동하고있던 박광선소조가 가련한 늙은이를 인정으로 감심시키자 그는 자진하여 그들을 도와나섰다. 늙은이는 훈춘특무대 밀정노릇을 하면서 내적으로는 유격대일을 돕는 두길보기가 되였는데 적들의 동태를 말짱하니 알수 있어 천룡암비밀기지는 안전하고 유리한 유격대소조와 소부대들의 련락거점, 활동거점으로 되여있었다.

1944년초에 방철룡은 이 천룡암기지에서 사령부련락원을 만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련락원으로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도 최봉손이였다. 이게 얼마만인가. 1940년 가을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원동으로 들어갈 때 함께 생사를 같이했던 그들은 원동에 도착하자 인차 헤여졌었다. 최봉손은 무전강습을 받으러 하바롭스크쪽으로 가고 방철룡은 이듬해봄 사령관동지를 모신 소부대와 함께 동만으로 나왔다가 연길지방에서 혁명조직을 복구할데 대한 과업을 받고 떨어졌었다. 그후엔 간백산밀영에 훈련교관으로 가게 되고···

방철룡은 너무 반갑고 기뻐서 최봉손을 부둥켜안고 돌아가며 어쩔줄 몰라하였다. 밤을 꼬박 새우면서 이야길 나누었으나 부대에 대한 그리움, 사령관동지와 김정숙동지에 대한 그리움, 백두광명성에 대한 다반사는 듣고들어도 성차지 않아 그리움의 갈증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최봉손이 전해준 사령부의 지시는 체대 실한 방철룡의 너부죽한 어깨에 산같은 무게로 실리는것이였다.

《첫째로, 북부조선일대에서의 최근 적들의 움직임을 사소한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장악할것. 이를 위해 두만강연안일대에서 전화도청작업을 하고있는 박광선소조와 련계를 맺을것.

첫번째 접선장소- 천룡암 산전막

두번째 접선장소- 온성국수집

둘째로, 서두수수전공사전망과 인부류동실태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최단시일안에 쥘것. 이를 위해 조국광복회 서두수지회 특수회원 유진과의 접선을 용의주도하게 할것.

셋째로, 북부조선일대(연사, 무산, 경흥지구)에서 전국조국광복회책임자들의 회합을 할수 있는 가장 합당한 장소를 선택할것.》

방철룡은 최봉손의 설명이 없이도 이 회합을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국내에 나오시여 지도하시게 되리라는것을 어렵잖게 짐작하였다.

방철룡은 목이 타는감을 느끼며 최봉손에게 물었다.

《김정숙동무는 무슨 얘기가 없었소?》

최봉손은 눈시울이 불깃해지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였다.

《내가 떠날 때 멀리까지 바래주면서 〈내가 가야 할 걸음인데···〉하시며 안타까와하시더구만. 헤여질 때 방철룡동무에게 부디 몸조심하라구 전해달라구 했소.》

《알겠소, 알겠소!》

방철룡은 더 묻지 않아도 김정숙동지의 속마음이 다 헤아려져서 그저 가슴이 뻐근할뿐이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그이께서 나오실 생각을 하신단 말인가. 그저 맡은 임무를 책임적으로 잘 수행해서 김정숙동지의 걱정을 덜어드려야겠다는 한생각뿐이였다. 그는 봉손에게 재삼 당부하였다.

《정숙동무에게 내가 원동으로 들어올 때 미련스레 군걸 용서해달라구 하오. 여기 일은 내 잘 처리할테니 마음놓으라구 전해주우.》

그런 후에도 무슨 긴한 말이 더 있을것만 같아 한동안 바재이다가 급기야 생각이 났는지 품안에서 자그마한 권총을 꺼내는것이였다. 눈여겨보니 나무로 깎은 장난감권총이였다.

《간백산밀영에서 박달나무토막이 생겨 짬짬이 깎은건데 우리 백두광명성에게 전해주우.》

방철룡은 그답지 않게 어줍어서 귀뿌리까지 빨개졌다. 마음같아서는 새옷도 한벌 장만하고 특색있는 선물도 보냈으면 좋으련만 나무권총을 댕그랗게 내놓자니 자연 마음이 쓰리였다. 그런데 눈치가 여간 빠르지 않은 최봉손은 우정 미련한척 하는지 남의 여린데를 갉아댔다.

《거 만들긴 괜찮게 만들었는데 이게 우리 어린 장군의 마음에 찰가? 어린 장군은 걸음마를 떼자마자 스키를 타고 말을 타고 달리는가 하면 진짜권총으로 날아가는 새도 쏴떨군단 말이요.》

《뭐? 스키를 타고 말을 타?!··· 떨어지면 어쩔려구.》

《흥, 자네가 짜개바지 입고 밥상밑엘 기여다닐 때 같은줄 아나봐. 우리 어린 장군이 벌써부터 범상칠 않네.》

《성산 백두산에서 그 정기를 타고난 백두의 아들인데 범상할수 없지.》

방철룡은 어쩐지 마음이 그들먹해졌다. 어린 장군은 자기들의 미래이며 희망의 별이였다. 어린 장군이 신동으로 무럭무럭 자라고있다는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삶의 의미는 족할것이였다.

방철룡은 산전막에서 나흘을 더 묵었다. 박광선소조원들에게선 아무런 기별도 없었다. 그렇다고 세월없이 예서 기다릴수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맡은 임무가 무거울수록 그는 책임감에 조바심쳤다. 게다가 그에겐 썩은 나무드덜기같은 산전막늙은이가 도무지 정붙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어디론가 나갔다가 저녁무렵이면 사냥물이든가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들어와서는 대충 끓여 퍼먹고 코를 골며 곤드라지기가 일쑤였다.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더 속이 탔다. 훈춘특무대 밀정질을 하며 두길보기를 한다니 더 미심쩍어보였다. 박광선이가 업히우지나 않았는가 하는 의심조차 들었다.

닷새째되는 날 방철룡은 결단을 내려 떠날 차비를 하였다. 두번째 접선장소인 온성국수집으로 가려는것이였다.

벗은 놈의 길차빈 허리띠만 두르면 그만이라고 방철룡도 중태기를 둘러메니 차비가 끝났다.

낚시질갈 준비를 하던 령감이 마뜩지 않게 치떠보며 제법 명령조로 말했다.

《눌러앉아 몸이나 내게. 기다리라는 지시야.》

방철룡은 피식 웃음이 나갔다.

《어랍쇼, 벙어리는 아니였군요. 그게 도대체 누구의 지시요? 령감의 지신가요?》

《〈고마재〉의 지실세.》

《고마재》라면 박광선소조의 접선암호가 분명하였다. 온성국수집에 가서도 《고마재》를 찾게 되여있었다. 《고마재》란 박광선의 대호인지도 몰랐다.

방철룡이 조급해서 《대체 〈고마재〉가 언제쯤이면 나타날 심산입니까?》하고 마당으로 어정거리며 나가는 령감에게 소리쳤다. 령감이 제법 결패있게 돌아섰다. 왕년의 독립군의 서슬이 다 빠진건 아닌듯 싶었다.

《임자 유격대밥을 도대체 얼마나 먹었나?》

《10년두 더 먹었수다.》

《십수년 혁명밥을 먹었다는 사람이 기다릴줄도 몰라.》

(이것 봐라, 령감이 제법인데···)

방철룡은 어째서인지 마음이 안정되고 푸접없는 령감에게 정을 느끼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람은 순간에 자기 본색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방철룡은 무작정 령감을 따라나섰다.

령감은 두만강가에 나가더니 얼음구멍안에 낚시를 드리우고앉은 후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뒤따라온 방철룡을 마뜩잖게 흘겨볼뿐 응대를 하지 않았다. 낚시대가 흔들렸으나 나꾸채려고도 하지 않는것을 보니 물고기를 잡으려고 나온것도 아닌것 같았다.

방철룡은 돋아난 검은 바위처럼 강가에 까딱 움직이지 않고 박혀있는 로인곁에 모닥불을 피워주고 더운물도 끓여주었다.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여 맛있는 어죽을 끓여 저녁상에 놓았더니 령감의 나무드덜기같은 면상에 비죽이 웃음같은것이 피였다.

그가 끓인 음식이 령감의 손이 간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배부르면 입이 열린다더니 마라초를 태우던 령감이 돌문같은 입술을 벙싯거렸다.

《〈고마재〉네들은 더운 음식이나 먹는지···》

방철룡은 제꺽 말꼬리를 물었다.

《박광선소조를 오래전부터 아십니까?》

《난 이름은 몰라.》

로인은 대통에 재운 써레기담배를 뻐끔뻐끔 빨더니 굴뚝같은 연기를 내뿜었다. 철룡은 돌문이 닫길세라 얼른 말뚝을 들이밀었다.

《〈고마재〉네가 41년도부터 이 지구에 나와서 활동하였지요?》

《응, 그무렵일세. 내가 곧은 골어귀농막에서 예로 옮긴게 그때였으니까.》

곧은골어귀농막이라면 무산지구전투후 부대가 올기강류역에 틀고앉아 두만강연안일대를 강력한 혁명의 보루로 꾸릴 때 리용하던 련락장소였다. 곧은골이란 올기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를 따라 곧게 뻗은 골짜기이름인데 곧은골령을 넘어서 매골쪽으로 떨어지면 두만강을 도하하는데 매우 유리한 삼장면 하륙소와 중륙소대안에 이르게 된다. 당시 올기강과 두만강사이의 모든 골짜기들에 있는 농막들은 국내와 깊은 련계가 있는 농막들이였다.

《그러니 로인님은 그때부터 유격대일을 도우셨군요.》

《아닐세. 난 그때두 왜놈들의 밀정질을 했네.》

방철룡은 아연해서 입을 딱 벌리였다. 방등불밑에 앉은걸보니 더구나 두억시니처럼 보이는 령감이였다. 이 령감의 인생전환엔 극적인 사변이 있을상싶었다. 그것이 몹시도 듣고싶고 알고싶었으나 함부로 물을수도 없었다.

《임자, 왜 묻지 않나?》

《뭘 말입니까?》

《왜놈의 개질을 하던 나배기가 어째서 유격대를 돕는가구 말일세.》

《그야 로인님이 얘기하고싶어질 때 하겠지요.》

방철룡은 아닌보살을 하였다. 아닐세라 령감이 제 먼저 말보따리를 풀었다.

《임자 아나? 사람이 오래 살면 귀신이 돼. 귀신이야 냄새만 맡아도 사람속을 알아내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빤드름히 알리더란 말일세. 여기 와서도 훈춘특무대에 코를 꿰여 살았지. 뭐 수상한자가 나타나면 보고하라나. 그무렵에 〈고마재〉네 소조가 여기루 왔어. 왜놈군복을 입구 나타났는데 두만강연안에 설치된 전화선을 검열한다나. 오장인지 한자가 을러메더군. 〈령감, 우리 일을 할 생각이 없는가?〉후에 보니 그가 소조책임자였어. 난 시끄러워서 훈춘특무대 증명서를 내보였지. 오장의 낯빛이 달라지더군. 나도 그때야 이 사람들이 왜놈같질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앞이 아찔했네. 그들이 유격대라면 날 죽여없앨건 뻔한 일이였으니까.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런 일은 생기질 않았네.

아무 일 없는듯 저녁에 나갔다가 날밝을무렵이면 물에 흠뻑 젖어서 돌아와 산막에서 낮동안은 쉬더군.

난 어느날 밤 그들의 뒤를 몰래 따라갔네. 눈여겨보니 어둠속에서 왜놈의 주요군용전화선이 지나간 전주대밑에다 20센치메터 두터이로 땅을 파더니 사방 100메터되게 전화선을 묻더군. 전화도청장치를 설치하는게 분명했어. 또 어떤 날에는 두만강철다리밑에서 배를 타고 군용전화선 도청을 하기도 합데. 유격대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유격대가 일본놈들한테 쫓겨 일망타진되였다고 적들이 떠들어댔지만 실은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원동으로 들어갔다던데 저들이 혹시 그런 유격대가 아닐가 하는 의심도 들더군. 하여간 모르쇠를 하고있었네. 그런데 하루는 조장이 나한테 말하더군. 우린 김일성장군의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왜놈의 개질을 하겠는가 아니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는가. 그래서 나도 진속을 터놓았어. 난 군복천으로 기운 담배쌈지를 그들에게 내보였어. 담배쌈지엔 진달래꽃 한송이가 수놓아져있었지. 그랬더니 그들중 준수하게 생긴 젊은이가 안주머니에서 제 담배쌈지를 꺼내더군. 신통히도 꼭 같았어. 그 젊은이가 소리치더군.

〈이 쌈진 분명 김정숙동무 솜씬데 이게 어떻게 령감님한테··· 그러니 로인님은?〉

난 자주색저고리에 깜장치마를 입은 젊고 고운 애기네가 올기강류역에서 연사로 드나들 때 나루배로 태워드리군 했네. 분명 혁명가라고 짐작했네. 어찌나 인정많고 살뜰했던지 그 애기네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살았지. 그 애기네가 나에게 기워준 담배쌈질세. 떠날 때 조국이 해방되는 날까지 부디 몸성히 계시라고 절을 하더군.》

《그러니 로인님은 김정숙동무가 연사지구정치공작을 할 때 키워낸 조직원이였군요.》

《조직원까지야 뭘. 난 혁명이란 무언지 리치는 모르나 그저 임자네들에게 정에 끌려 위한다네.》

방철룡은 혁명의 리치에 대하여, 이제 국내정치공작에서 자기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겠는가에 대하여 새삼스레 생각이 깊어졌다. 멀리 떨어져있어도 늘 몸가까이에 느끼는것이 김정숙동지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로인의 말에 의하면 지금 박광선소조는 어려운 전투를 하고있었다. 이미 설치한 전화도청장치는 사람에 의한 피해, 자연피해 등으로 자주 보선작업을 해야 했고 적들의 수색을 피해 도청장소를 자주 옮겨야 했다. 소조원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러나 도청작업을 한시도 중지할수 없었다.

두만강연안의 전화선들은 라남19사단을 비롯한 일제의 정예부대들의 전화선이였는데 국내에만 통해있는것이 아니라 화룡, 안도, 연길 등지의 관동군부대들, 쏘만국경연선의 일본군부대들과 련결되여있어 격변하는 정세에 따라 수시로 움직이는 군내부동태를 탐지할수 있는 요진통이라 할수 있었다.

새해에 들어와 적들은 두만강류역의 군용전화선에 대해 감시와 통제를 매우 엄격히 하고있었다. 두만강류역은 평균 500메터당 하나의 초소가 있을 지경으로 경비망이 삼엄하였다. 산전막로인이 낚시질을 나가는것도 전화선경비를 서라는 훈춘특무대의 지령에 의해서였다.

이런 삼엄한 경계속에서 박광선소조는 새로운 전화도청지점을 정하고 배선작업을 하고있었다. 지상에서는 전화도청작업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물속에서만 전화도청작업을 할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전화선에 연추를 매달아 물속에 끌어들이는 작업을 해야 하였다. 강추위속에서 물속배선작업을 한다는것은 그야말로 생사를 판가름하는 전투였다.

사정을 알고보니 방철룡은 더운 방에 누워 잠을 잘수 없었다. 태평스레 기다릴것이 아니라 그들을 찾아가 함께 배선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잡한 생각에 궁싯거리며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말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왜놈의 악청이 귀따갑게 날아들었다.

《천령감, 비상시국에 썩어질 잠이나 자는가? 문 열라.》

령감이 방철룡에게 부엌아궁이쪽을 눈짓했다. 아궁이에 숨으라는 의미였다.

방철룡은 얼른 일어나 아궁이속으로 기여들었다. 구들곬으로 해서 빠지는 통로가 있다고 했었다.

령감이 한참 우물거리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헌병대어른들이 어떻게 새벽에 우리 집엘 오셨수? 저런, 온통 얼음버캐군요. 어서 몸을 녹이시우. 내 얼른 장작을 지피리다.》

령감이 갑작스레 녹신녹신해져서 수다를 떨며 갑삭거렸다.

《몸이나 녹일새 없다. 두만강물속에서 전화도청장치가 발견되였다. 혁명군이 이 강추위속에서도 물속에 들어가 우리 염통을 뽑아가고있단 말이다. 비상소집이다. 두만강연안 총수색작전이 시작된다.》

방철룡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박광선소조에 위험이 닥쳐왔다. 그들에게 위험신호를 보내 일단 철수시켜야 했다. 그들이 없으면 방철룡의 임무수행은 생각도 못할 일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적들보다 먼저 그들에게 가닿을수 있을것인가? 그들을 어데서 찾을것인가? 그들은 분명 두만강류역에 있을것이였다. 밖에서 말울음소리가 들렸다. 저 말을 타고 먼저 두만강류역을 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령감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지 아궁이안이 환해졌다. 비상통로로 빠지라는 신호일것이였다.

비상통로로 산전막을 빠져나온 방철룡은 마당의 말뚝에 매여놓은 말을 잡아타고 달리였다.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말을 달리면서 방철룡은 박광선소조가 지금쯤은 두만강을 가로질러간 철교에 가설된 전화선에 대한 도청장치를 하고있을것이라고 타산했다. 로인이 남양-도문간철교에서 그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알려주었던것이다.

잘 먹이고 잘 훈련된 말은 새벽어둠을 밀어제끼며 질풍같이 달리였다.

훈춘을 지나 도문이 가까와오는 산속에서 방철룡은 갑자기 적잠복초소와 맞다들렸다.

《서라!》

박차를 가하자 말은 차단봉을 훌 넘어뛰였다.

기관총련발사격이 몰방으로 터졌다. 적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아오고있었다. 앞쪽에서도 말을 탄 놈들이 마주달려오고있었다.

남양-도문간철교는 멀지 않은곳에 있었다. 박광선소조에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졌음을 알리자면 여기서 총소리를 내야 하였다. 방철룡은 앞뒤의 적병을 쏘아눕히며 접전을 벌리다가 배허벅이 뜨끔해나는것을 느끼며 말우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는 강기슭에 내려가붙어 총을 쏘다가 커다란 얼음이 둥둥 떠있는 강물속으로 들어갔다.

강기슭에 온 적들은 한참이나 물속에 대고 총질을 하더니 더는 뒤쫓아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얼음장우에 기여오른 방철룡은 필사의 힘을 다하여 얼음장을 강대안으로 몰아갔다.

살아야 했다. 살아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박광선소조를 기어코 만나야 했다. 그러나 생명은 각일각 빠져나가고있었다. 붙안은 얼음장이 피로 물들고있었다.

강대안이 멀지 않았다. 눈덮인 그 땅은 조국땅이였다. 그 땅에 안기고싶었다. 그러면 어머니조국은 상처입은 아들을 살뜰히 안아 따뜻이 품어줄것만 같았다.

김정숙동지께서 어린 장군을 목마태우고 손저어 부르고계시였다. 목마를 탄 어린 장군의 손엔 그가 만든 권총, 박달나무로 정성다해 깎은 권총이 쥐여져있었다.

《철룡아저씨, 기운내라요. 빨리, 빨리요.》

어린 장군은 고사리같은 손을 내밀고 안타까이 흔들고있었다.

방철룡은 마지막기운을 다하여 얼음장우에 우뚝 일어섰다. 그는 물우에 둥둥 떠돌며 부딪치는 얼음장들을 껑충껑충 뛰여넘어 강대안으로 가까이 갔다.

한발자국만 더··· 한자욱만 더···

그는 얼음버캐가 들쑹날쑹한 강기슭을 기고 또 기였다. 마침내 그는 어린 장군의 손을 잡아쥐였다. 마음이 훈훈해지고 만시름이 다 풀리는것 같았다. 방철룡은 두팔을 뻗치였다. 어린 장군을 한번만 품에 안아보았으면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을상 싶었다.

비로도같이 보들보들한 손이 그의 뺨을 어루쓸었다. 젖냄새같은 달큰하고 향긋한 내가 물씬 코를 찔렀다. 이게 봄냄새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는 페부 가득히 봄향기를 들이키며 미소를 머금었다.

방철룡이 움켜쥔것은 따버들의 통통 부풀어오른 버들개지였다. 흔들거리는 버들가지사이로 모래불을 차며 달려오는 감발한 다리들이 얼찐거렸다.

 

총소리를 듣고 달려온 사람들은 박광선소조의 한창봉과 손장춘이였다. 방철룡은 그들의 등에 업혀 남양뒤산에 있는 바위굴아지트로 갔다. 거기서 그는 응급처치도 받고 소조책임자 박광선과 만났다.

사령부의 지시를 전달하자 박광선은 자기들도 이미 무전으로 과업을 받았노라고 하며 그간 사업정형에 대하여 보고하였다.

《우리 동무들을 서두수지구에 보냈는데 수전공사는 계속되고있었고 공사가 중지된다는 소린 헛소문이라는 정보를 얻어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수전공사에 투자를 한 노구찌재벌의 대리인이 한 말이여서 믿음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린 상반되는 소문의 정확성여부를 더 확인하기 위해 온 겨울 강추위속에서 전화도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얼마전에 관곡군마보충부에서 요시다란자가 조선북부지구헌병대에 지시하는 전화를 도청하게 되였지요. 내용은 서전공사(서두수수전공사)가 중지된다는 소문을 돌리는자를 무조건 잡아들이고 엄중처벌하라는것과 서전공사중지문제를 절대비밀로 하라는것이였습니다.》

방철룡은 벌떡 일어서려다 상처의 모진 아픔에 전률하며 배를 그러안고 주저앉았다. 했으나 터져나오는 욕지기를 참기가 어려웠다.

《그걸 왜 사령부에 인차 보고하지 않았소? 그게 얼마나 급한 문젠지 모른단 말이요? 서두수에 모인 수천명로동계급이 흩어진다는건 십여년 품들인 전민항쟁준비에서 중요모퉁이가 뭉청 떨어진다는걸 의미하오. 오죽 안타까웠으면 간백산에 있던 나를 또 여기로 보냈겠소.》

《그걸 왜 모르겠소. 공교롭게도 무전기가 고장나서···》

《무전기고장이면 사람이라도 띄웠어야지.》

《그럴 생각이였소. 그런데 그런 절대비밀의 지시를 준 관곡군마보충부의 내막을 알아야겠기에 시간이 지체됐소.》

《관곡군마보충부란 뭘 하는데요?》

《명색은 군마를 길러 관동군에 보내거나 일본 본토로 실어가는 곳인데 내 직감으로는 무슨 특무기관이 틀고있는것 같소.》

박광선은 다년간 지하공작과 정찰활동을 한 침착하고 기민한 사람이였다. 그의 정찰소조는 이 몇해째 참으로 중요한 정보를 수없이 수집하여 사령부와 25집단군 정찰국에 보내주었다. 하면서도 실수가 없었으나 희생은 막지 못하였다. 사람을 보내자고 해도 지금 두만강의 차디찬 얼음물속에서 도청작업을 계속하는 세사람중 누구 한사람도 떼여낼수 없다는것을 방철룡은 너무나 잘 알았다.

《내가 두만강을 넘겠소.》

《그 몸으로 어떻게 간다고 그러오. 아무래도 내가 가야겠소.》

《동문 안되오. 박동문 소조책임자인데다 중어, 로어, 일어를 다 아는 사람인데 동무가 없이 어떻게 도청작업을 한다고 그러오. 동무같은 인재는 죽을 권리가 없소. 도하지점이나 알려주오.》

방철룡은 그가 더 가타부타 말을 못하게 강경한 어조로 요구하였다.

《우린 룡당거점을 리용하고있소. 그곳 나루터에 우리 성원이 사공으로 있는데 나루배, 고무배가 준비되여있소. 고무배를 부르는 밤암호는 성냥불을 켜들고 두번 원을 그리는것이요. 낮암호는 흰 수건으로 두번 원을 그려야 하오. 하지만 지금은 해토무렵이여서 배를 리용할수 없소. 얼음장이 다소 녹을 때까지 상처를 처치하며 기다립시다. 그사이면 청학에 있는 우리 사람이 군마보충부의 내막을 손에 쥐게 될거요.》

방철룡은 또다시 벌떡거리며 버럭 화를 내였다.

《기다린다는게 말이 되오? 한시가 새로운데 다른 방도는 없겠소? 여기서 두만강을 건너 훈춘에 갔다가 거기서 쏘만국경까지 가자면 시간이 걸리오. 지금은 그쪽에 일제가 철통같은 경비진을 두겹세겹 치고있소.》

박광선은 잠시 생각하더니 지도를 펼쳐놓았다.

《좋기는 두만강을 건너 곧장 쏘련땅에 들어서는거요. 홍의에서 하싼으로 두만강을 건느는 통로가 있소. 오백룡소조가 그 통로를 리용하고있소. 그런데 년초에 정찰나왔던 김혁철동무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가다가 홍의에서 잘못되는 바람에 적들의 경계가 이만저만이 아니요.》

《혁철이가 희생됐소? 어쩌다 그리 됐소?》

방철룡은 같은 기관총수로서 김혁철과 각별한 사이였었다. 김혁철은 도천리에서 입대한 사람인데 방철룡처럼 체대가 크고 힘이 장사였다. 그는 고난의 행군때에 늘 척후로 뽑혀 길을 내군 하였다. 한길이나 되는 눈속에서 길을 내느라 옷이 찢기고 벌건 살이 눈겉층에 생긴 칼날같은 얼음에 베여져 피가 흘렀지만 억척같이 앞으로 전진했었다. 그 사람이 어쩌다가···

통분함은 원쑤들에 대한 증오로 끓어올라 방철룡은 안깐힘을 쓰며 몸을 일으켰다. 아픔으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으나 고집스럽게 내뱉았다.

《난 당장 떠나야겠소.》

방철룡의 결심을 막을수 없음을 안 박광선은 그를 무사히 강을 건너보내고 돌아오라고 한창봉과 손장춘을 따라보내였다.

방철룡은 왜놈장교군복을 입고 손장춘은 하사관군복을 입었으며 한창봉은 말몰이군행색을 하였다. 일본군부상병을 싣고가는 마차로 가장하자는것이였다. 한창봉은 청학에서 조직원을 만나 관곡군마보충부의 내막을 전달받게 되여있었다.

한창봉이 끌어온 마차를 타고 일행은 날밝기전에 떠났다.

국경경비대, 주변경찰들, 경방단까지 동원되여 산을 참빗질하듯 훑고있었다. 놈들도 곳곳에 우등불을 피워놓고 날밝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무슨 낌새를 채고 수색작전을 펴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담대하기 그지없는 한창봉은 행길에 나서더니 마차를 질풍같이 몰아대였다. 무사히 경원군지경을 벗어나는가 하였는데 사달이 나기 시작하였다. 검문소에서 헌병대놈들이 증명서검열을 하고있었던것이다.

한창봉이네는 각종 증명서를 다 갖추고있었으나 방철룡은 미처 증명서를 준비하지 못하였다.

손장춘은 증명서를 요구하는 놈에게 방철룡이 덮고있던 군용외투를 획 제껴보였다. 배에 피범벅이 된 붕대를 감고있는 부상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헌병대놈은 무슨 이상한 기미를 느꼈는지 다른 놈에게 가서 수군덕거리였다. 방철룡은 왜놈군복안에 오진실이 떠준 조끼를 입고있었다. 이젠 낡아서 실로 호아매기도 하고 천을 대고 덧깁기도 한것이였다. 일본군장교가 공급받는 속내의대신 그런 헌 누데기를 입고 다니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놈들이 수상한 기미를 챘다는것을 안 손장춘은 한창봉과 눈을 맞추었다. 제끼자는 신호였다. 극악무도한 특무부대인 헌병대놈들의 손에 걸린다는것은 재미적은 일이였다. 그자들은 자기보다 군사관등급이 3등급이나 높은 일본군인도 체포할수 있었으며 제멋대로 긴급처벌을 가할수 있는 무제한한 권한이 있었다.

손장춘과 한창봉이 눈을 맞추는 순간 두 총구에서 불줄기가 날아가 헌병대 두놈이 동시에 어푸러졌다. 그러자 검문소곁에 멈춰서있던 호화로운 유개마차안에서 녀자의 째지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창봉은 말고삐를 힘껏 잡아챘다. 말은 껑충 뛰여오르더니 앞에 있는 유개마차를 밀어던지고 질풍같이 내달렸다.

도하지점어귀에 무사히 당도한 한창봉은 철룡과 장춘을 절간에서 기다리라고 이르고는 마을쪽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지하조직원을 만나 관곡군마보충부의 상세한 내막을 전달받게 되여있었던것이다. 초저녁에 떠났던 한창봉은 새벽녘에야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여 돌아왔다. 읍에 내려가 접선장소인 국수집에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검문소에서 유개마차에 탔던 계집년과 맞다들렸다는것이였다. 그년이 이 지구 《애국부인회》회장년이였다고 한다. 그년이 경찰에 알렸는지 적들이 달려드는 통에 접선도 하지 못한채 들구뛰였는데 온밤 적들을 따돌리느라고 이제야 왔다는것이였다.

시주를 받으러 나갔던 절간의 중도 허겁지겁 달려와 지금 적들이 특별수사포치를 하고 군대, 경찰, 경방단, 밀정놈들까지 다 동원하고 지어 《애국부인회》까지 끌어들여 피눈이 되여 날뛰니 제발 떠나가달라고 사정하는것이였다.

방철룡이네는 곧 그곳을 떠나 두만강쪽으로 향하였다. 철룡의 부상처는 곪기 시작했는지 걷기가 무척 힘들어했다. 그들은 몽덕산 소나무밭에서 하루를 숨어지내며 날저물기를 기다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일행은 산을 내려 동귀골어귀를 빠져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물을 뽑기 위해 만들어놓은 철길밑 암거에 들어갔다. 암거에서 밤을 지낸 다음 적들이 졸음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새벽녘에 두만강을 넘자는것이였다.

새벽녘에 동태를 살피러 나갔던 한창봉이 돌아와 적들이 암거주변에 포위진을 좁혀들고있다고 하였다. 온밤 그들을 추격하던 적들이 아마 무슨 징후를 발견한 모양이였다.

《여기서 결사전을 해야겠구만.》

손장춘이 범상히 말하더니 총창을 떼여내여 암거천정을 긁어서 홈을 파는것이였다. 글자가 새겨졌다.

《일본 필수멸망》

《조선독립 만세!》

여기서 희생되더라도 후날 동지들과 인민들이 와보면 자기들이 최후의 순간까지 지조를 굽히지 않고 꿋꿋이 싸우다 갔다는것을 알리고싶어서인지도 몰랐다.

방철룡은 새삼스럽게 마지막결사전의 시각이 왔음을 절감하면서 뜨개옷의 앞자락을 움켜쥐였다.

《정말 이게 마지막이란 말이요?》

방철룡은 자기자신에게 소리쳐 묻는것이였다.

《죽음은 두렵지 않소.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죽었는가를 아무도 모르게 될가봐 그게 무섭소.》

손장춘의 갈린 목소리였다.

한창봉이 그를 치떠보며 힐난하였다.

《여보, 우리가 무슨 평가를 받기 위해 싸웠소? 이제는 피값을 하는수밖에 없소.》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오직 동지들앞에서, 장군님앞에서 자신의 혁명일생을 총화하고싶었을뿐이요.》

손장춘의 비장한 말에 모두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마음속으로 사령관동지앞에서 자기 일생을 총화짓는듯싶었다. 성스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몇순간이 흘렀다.

방철룡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렇소. 여기서 우리 자기의 혁명생애를 총화지읍시다. 그것은 죽든살든 대담하게 맞받아나가 포위망을 뚫고나가는거요. 죽어도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임무는 수행하고 죽어야 하오. 그것이 장군님앞에서 자신의 혁명생애를 떳떳이 총화하는것이요.》

방철룡은 몸을 일으켰다. 다가드는 적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세사람은 일시에 달려나가기로 하였다. 누구든 살아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손장춘이 갑자기 약속도 없이 먼저 달려나가며 불시에 총소리를 냈다. 그는 뛰여나가면서 소리쳤다.

《산속으로 빠지라. 내가 저놈들을 끌고가겠다.》

손장춘은 두만강쪽으로 막 달려내려갔다. 일시에 놈들의 사격이 시작되였다. 놈들은 유격대가 모두 두만강쪽으로 빠지는줄 알았던지 그쪽으로 내달리였다. 순간 암거는 경계밖에 놓이였다. 그 틈을 타서 한창봉은 방철룡을 부축하고 반대방향인 산속으로 내달리였다. 마침 안개가 자오록해서 놈들의 등뒤에 대고 사격을 해도 미처 방향을 가늠할수 없는지 그냥 두만강쪽으로 쫓아가고있었다. 적들을 유인하는 손동무의 웨침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 틈을 타서 한창봉과 방철룡은 산속을 빠져 홍의쪽 두만강변에 당도하였다. 물푸레나무가 한그루 서있는 곳에서 직선으로 10메터쯤 내려와 모래불을 파니 고무배가 나졌다. 고무배에 얼른 바람을 불어넣은 한창봉은 배에다 방철룡을 눕히고 뒤에서 떠밀다가 자기도 올라탔다.

그 순간 국경수비대놈들이 산등성이로 총질을 하며 달려내려왔다. 적들을 끌고갔던 손장춘이 어찌되였는지 알도리가 없었다. 한창봉은 배에서 도로 뛰여내려 배를 강복판으로 힘껏 떠밀고는 놈들에게 총질을 하며 강기슭으로 맞받아 올라갔다.

방철룡이 노를 저으며 얼핏 돌아보니 한창봉은 기슭에서 적들과 육박전을 벌리고있었다. 한창봉도 손장춘이처럼 그의 도하를 보장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결사전을 벌리기로 결심한 모양이였다. 가야 했다. 기어이 두만강안에 닿아야 했다. 방철룡은 있는 힘을 다하여 세괃게 노를 저어댔다. 상처에서 걸죽한 피가 쿨럭쿨럭 흘러내렸다. 각일각 생명이 빠져나가고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강복판 국경선을 넘어서겠는데 그 찰나에 눈먼총알이 고무배에 구멍을 뚫었다. 피식피식 바람이 빠지며 고무배가 쭈그러들었다. 이젠 헤염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피는 계속 흘러내리고 기운도 어쩔수없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는 죽을 권리가 없다고 이를 악물었다.

손장춘, 한창봉동무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적들을 끌고간것은 방철룡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살아야 한다. 사령부에 서두수형편을 알리기 전에는 죽을수가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물을 차며 나아갔다.

저편 강기슭이 한치두치 다가오고있었다. 모래언덕으로 달려내려오는 쏘련국경수비대원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의 뒤에서는 한창봉이 수다한 적들과 피의 격투를 벌리고있었다. 차고 받고 메치고··· 적들이 연방 너부러졌다. 한숨 돌리려는 순간 왜놈의 총가목이 뒤통수를 내리쳤다. 정신이 아찔해진 한창봉은 피못이 된 강물에 철썩 넘어졌다. 몸은 돌덩이처럼 가라앉으며 떠내려갔다.

한창봉은 무의식중에 갈줄기를 움켜쥐였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스무레한 강변에 괴괴한 정적이 깃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