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

 

제 4 장

1

 

추석이 왔다.

추석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만나는 날이다. 가신이들을 추억하며 산 사람의 의무를 되새기는 날이기도 하다.

예나제나 다름없이 조국의 하늘은 가없이 푸르고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오곡은 무르익어 설레일것이다. 길섶엔 보라빛, 흰빛의 들국화가 서글프게 웃고 머리우에선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아예는데 가난한 농가들에서도 개다리밥상에 제물을 쟁쳐이고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러 갈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추석을 맞고보니 아직 가보지 못한 만경대집이 더더욱 그리워지고 일찌기 이역땅에 묻히신 시부모님들 생각이 간절해지시였다. 먼곳에서나마 그분들의 명복을 빌고싶으시였다. 만주땅에 묻고온 수많은 동지들을 추모하고싶으셨다.

얼마전에 결혼한 군관들을 위하여 훈련기지주변에 몇채의 도리집을 지었다. 도리집이란 둥그렇게 지은 목조건물인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복도가 있고 복도 좌우편으로 4세대가 살게 되여있었다. 좁은 부엌에 방 한칸씩이였다.

아침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집들이겸 추석겸 겸사겸사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정간부들을 초청하는게 어떠신가고 장군님께 문의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찬성의 뜻을 표시하시였다.

훈련이 끝나자 집에 돌아오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행주치마를 두르고 날래게 만두를 빚기 시작하시였다. 그이께선 요긴하게 쓰자고 저축해두었던 흰 밀가루를 몽땅 털어내시였다. 송편대신 만두를 빚어 찌고 국수대신에 칼제비국을 끓이기로 작정을 하신것이였다. 만두소로는 파랗게 데친 산나물과 연어를 다져 만든 발그레한 물고기소를 미리 준비해놓으시였다.

잽싸게 밀가루반죽을 하시는데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김책이 먼저 들어서는것이였다. 그의 손에는 꿩 두마리가 들려있었다. 김책은 김정숙동지께서 치신 무전문을 받은 때로부터 한달이 지난 며칠전에야 훈련기지로 들어왔다. 그새 드바삐 지내다보니 그이와 마주앉을 기회가 없었다. 아마 그래서 한발 먼저 이렇게 나타난것이라고 그이께선 짐작하시였다.

김책은 방에 들어서자 웃옷을 벗어붙이고 마주앉아 만두를 빚기 시작하였다. 체대 큰 사람이 웅크리고앉아 동글납작하게 뜯어놓은 밀가루덩이를 두세개씩 포개놓고 밀대로 순식간에 밀어내는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였다. 소를 싸는 공정이 딸리자 그 일에 접어들었는데 큰손으로 몇번 만지작거리더니 알뜰하게 빚은 만두가 형타에 찍혀나오듯 련속 빠져나왔다.

《만두빚는 솜씨가 여간 아니군요. 이젠 가정을 이루어야지요?》

김책은 입을 꾹 다문채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신중히 하는듯싶었다.

아니나다를가 그는 정색하여 입을 열었다.

《정숙동무의 무전문을 받고 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난 여기로 오는 한달가량의 행군길에서 자기 일생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잘못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실책을 범할 때도 있는것이지만 령도자를 받드는데서는 단 한번의 잘못도 저질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목숨을 바친다 해도 메꾸기 어려운 죄가 아니겠습니까.》

내성적이면서 진중한 김책은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늘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는 혁명가였다. 아마도 그는 원동으로 부대를 다 데리고 들어올데 대한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제때에 관철하지 못해 허형식, 박길송동무들을 잃은 일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였다. 그는 려단에 도착하자마자 장군님앞에서 자기검토를 진지하게 하였다고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화제를 딴쪽으로 슬쩍 돌리시였다.

《지난 8월 김책동진 마흔살생일을 맞았다지요. 로상에서 생일같은건 생각지도 못했겠는데 생일을 오늘 쇤다 생각해주세요.》

《마흔살이라···》

김책은 소를 싼 만두를 든채 입속으로 외웠다. 아마도 다난한 지난생을 되새겨보는듯 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김책을 처음 만나신것은 1941년 초봄 워로쉴로브근방에 있던 B야영에서였다. l로군과 5군의 일부 부대들이 여기에 집결되여있었다. 사령부친솔부대도 그곳에서 겨울을 났다.

하바롭스크회의에 참가하셨던 장군님께서 회의를 마치자 김책과 함께 B야영으로 오시였다.

그때 그이께선 장군님의 소개로 김책과 수인사를 나누시였다. 벌써 앞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한 김책은 은근한 눈빛으로그이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생각지 않았던 인사말을 하였다.

《우리야 오랜 벗이라 할수 있지요. 난 정숙동무얘길 너무 많이 들어서 아동단시절부터 같이 지낸것 같습니다. 장군님친솔부대에서 온 동무들이 얼마나 동무얘길 하던지.》

김정숙동지께서도 짝지려 하지 않으시였다.

《그건 제가 하자던 말인데 선손을 뺏겼군요. 나에게도 김책동진 오랜지기예요. 김책동진 레닌선집을 계속 가지고다니며 학습한다는것, 책뚜껑이 해져서 처음에는 유지로 표지를 씌웠다가 그것도 나들나들해져서 아예 양초를 두텁게 먹여 번들거리는 책을 가지고 다닌다지요. 퉁소불기를 좋아하고 분노했을 때는 목소리가 더 낮아진다는것···》

김책은 두손을 들고 휘손질을 하였다.

《아, 그만하시오. 내 손들었습니다.》

그날 김책은 장밤 자기의 인생사를 털어놓았다.

10살에 고향을 떠나 동북의 연길현에 와서 목동이 되던 일, 20살때 장가를 들었으나 북받치는 향학열을 어쩔수 없어 집을 떠나 연해주로 갔던 일, 해삼위에서 고용로동도 하고 조선사람동네에서 소학교 교원노릇도 하면서 사회주의사상이 싹텄다는 이야길 자상히 하였다. 다시 만주로 나와 친구의 소개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지역 한 당세포에 가입했는데 그 덕으로 서대문형무소신세를 졌다 한다. 출옥후에 북만 녕안현에 있는 형네 집에 가있었는데 녕안현 당비서로 사업하다가 또 감옥신세를 졌다 한다. 감옥에서 나와 카륜회의소식을 듣고 김일성동지를 찾아가려다가 또 붙잡혔다. 처음엔 할빈감옥, 다음엔 봉천과 길림감옥을 전전하면서 장군님을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 몰랐다고 한다.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스승을, 령도자를 모신다는것이 얼마나 절박한 문제이고 크나큰 행복인가를 그때처럼 사무치게 느낀적은 없었다고 하였다. 북만에서 싸우면서도 늘 동만동지들을 부러워했다고, 늘 장군님을 그리워하고 만나고싶어 애를 태웠는데 이제는 정말 최석천이 말하다싶이 평대원을 해도 좋으니 장군님곁에서 싸우다 백두산에 묻히고싶노라고 하였다.

김책은 소부대를 이끌고 다시 만주로 나가시게 될 장군님의 신변안전호위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면서 자기가 직접 소부대인원을 선발하고 중대장으로는 류삼손을, 정치지도원으로는 박덕산을 제의하였다. 소부대가 떠나기 전날 밤에는 류삼손과 박덕산, 전령병 전문섭을 불러놓고 장군님을 잘 모실데 대해 재삼 강조하면서 전문섭에게는 그이곁에서 단한발자국도 떨어지지 말라고 다시금 그루를 박았다.

사령관동지께서 소부대를 이끄시고 만주로 나가신 후 김정숙동지께서도 한창봉, 한태룡동무들과 함께 정치공작임무를 받고 백두산지구로 나가시였다. 뒤이어 김책도 북만에서 활동하는 소부대들을 지도하기 위해 만주로 나갔다.

국제려단창립을 전후한 시기 A야영으로 들어오라고 수차 련락했으나 늦어진 리유는 적들에게 체포된 박길송을 구원하려는 일념에서였다고 한다.

김책은 허형식, 박길송의 희생을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받들지 못한 자신의 불찰로 여기며 번뇌속에서 뒤채였던듯 심각한 자기반성을 하는것이였다.

《지금 사령관동지곁에는 김혁, 차광수 같은 혁명가들이 있어야 한다는 정숙동무의 무전문을 받고 나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뜬눈으로 며칠밤을 지새웠습니다.

김혁이 감옥에서 희생된 후 감옥의가 그가 입고있던 명주바지저고리를 몰래 뭉그려내왔는데 동정안자락에 혈서가 있었습니다.

〈놈들이 녕안현당비서(김책)의 뒤를 추적하여 한별을 찾으려 한다. 한별을 지키라. 조선혁명 만세!〉

김혁은 그 소식을 바깥에 내보내자고 시뻘겋게 단 난로를 그러안고 자기 생명을 서둘러 끊었던것입니다.

나는 차광수를 만나 이 소식을 듣고 김일성동지를 만나려던 당초의 결심을 바꾸어 북만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의 사상과 로선, 투쟁방략을 받들어울린 총성이 북만땅에 메아리칠 때 장군님을 찾아가려 했습니다. 추석을 맞고보니 김혁의 생각, 그 유서의 구절구절이 더 가슴에 파고듭니다.》

그는 곱게 빚었던 만두를 불미스런 자신이기라도 한듯 으스러지게 움켜쥐였다.

《김책동지, 전 정말 김책동지같은분이 사령관동지곁에 계시는게 기뻐요. 어련하겠지만 김혁동지가 되여주십시오. 그분도 구천에서 기뻐할겁니다.》

밝게 웃으시는 김정숙동지를 점도록 바라보는 김책의 근엄하던 얼굴에도 화기가 돌았다.그이의 봄빛같은 미소, 따뜻한 말씀이 근엄한 김책의 얼어든 가슴도 녹여주었는지 몰랐다.

김책은 밀가루묻은 손을 툭툭 털더니 가지고온 레닌선집을 그이앞에 밀어놓았다. 정말 뚜껑에 양초를 먹여 번들거리였다.

《나한테 정숙동무가 백두산밀영에서 탐독하던 사령관동지 저작들을 좀 빌려주시오. 내 정히 보고 돌려드리겠소.》

《원참, 김책동지두···》

김정숙동지께서는 하얀 이속을 드러내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정말 눈부신 봄빛같은 미소였다.

 

×

 

혈기방장한 장정들이 들어와앉으니 좁은 방안이 당장 터져나갈듯 하였다. 종일 훈련하다 오는터여서 땀에 젖은 얼굴들이 벌겋게 달아있었다. 방가운데 놓인 두리상에는 만두가 무드기 담긴 너부죽한 접시와 양념종지들이 놓였다.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만두에서 맛있는 내가 풍기여 모두 목젖이 오르내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새크무레하게 익은 풋절이김치를 상우에 가져다놓으며 난색을 지으시였다.

《차린게 없어서 어쩔가, 귀한분들이 오셨는데···》

그이께선 한없이 정찬 시선으로 일동을 둘러보시였다.

김책, 최석천, 안길, 최현, 박덕산, 서철, 김경석···

정말 화약내 스민 체취를 풍기며 이 방안에 스스럼없이 와앉아있는 사람들이 어떤 동지들인가. 십수년의 간고한 항일전쟁의 피바다, 불바다를 헤쳐온 백전로장들이며 소금에 절고 피에 절고 포연에 절며 온갖 허접쓰레기들을 다 태워버리고 금강석같은 알맹이만 남은 참인간들이 아닌가. 중중첩첩의 고난과 시련속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혁명가들, 태양의 주위를 돌고도는 불변의 위성들이였다.

그들을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진수성찬을 차린들 족하랴만 너무나 서거푼 상을 내놓고 난스러워하는 그이의 심정을 헤아리셨는지 장군님께서 슬쩍 능쳐주시였다.

《풋절이김치가 다 있구. 이만하면 성찬이요. 하지만 이제 해방된 조국에 돌아가면 더 잘 차려야겠소.》

그러시고는 고뿌를 가져오라고 손짓, 눈짓을 하시였다.

법랑고뿌나 군용밥통뚜껑이 매 사람앞에 놓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고뿌마다에 워드까를 조금씩 부으시였다. 그리고 좌중을 둘러보시며 유정한 추억에라도 잠기신듯 생각깊으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오늘이 추석입니다. 만주에서 싸울 때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추석만은 잘 쇠였습니다. 사슴이나 노루를 잡아 교즈도 빚고 중국사람들이 각별히 좋아하는 월병도 장만하고···

오늘 원동땅에서 추석을 맞고보니 생각이 깊어집니다. 우린 숱한 동지들을 만주땅에 묻고왔습니다. 쏘만국경을 넘을 때 아까운 동지들을 어쩔수없이 저 땅에 묻고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듯 아팠습니다. 아마 그래서 김책동무도 훈련기지로 다시 들어오라는 련락을 받고도 선뜻 떠나지 못했을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류다른 심뇌로 목이 메이시는듯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들고계신 고뿌를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컴컴하게 질린 강마른 얼굴을 짓숙인 김책도 심한 충격을 묵새기는것인지 볼편이 푸들푸들 떨리였다.

장군님의 갈리신 음성이 다시금 조용히 흘러나왔다.

《지금도 가슴아픈 희생이 계속 나고있습니다. 소부대활동을 하러 만주로 다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동무들도 있고 정찰을 나갔던 동무들중에서도 돌아오지 못한 동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지난해엔 국내 경흥군에 나갔던 김학송동무가 전사하고 올해 3월엔 김혁철동무가 라진일대정찰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다가 홍의일대에서 희생되였습니다. 며칠전엔 국내정찰 나갔던 손태준동무가 잘못되였다는 소식이 왔는데 오늘은 또 잡지 〈태평양〉에 김홍수동무의 최후에 대한 소식이 실렸습니다.》

마지막순간에 김홍수는 《조선혁명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불렀다고 잡지는 전하였다고 한다.

김정숙동지께선 속이 떨리고 피가 얼어드는것 같으셨다.

꼬마신랑 김홍수, 신랑쟁이라고 놀려주면 얼굴이 수수떡빛이 되여 애들처럼 뾰로통해지던 귀염성스럽던 대원, 착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무슨 일이건 제몸을 아끼지 않아 사령관동지께서 무척 사랑하시던 대원이였다. 병아리처럼 품안아 키운 사랑하는 전사를 잃으신 장군님의 심중이 오죽 아프시랴. 모두 비분에 가슴들을 풀떡거렸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창문을 열어젖히시였다. 시원한 바람이 숲향기와 함께 아무르강의 물비린내를 싣고 불어들어왔다. 좁은 창문을 통해 비쳐드는 하늘에선 철새가 끼륵끼륵 울며 남쪽으로 찾아가고있었다. 방안엔 모진 아픔에 갈가리 찢기우는 심장들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만이 참을수 없는 분노와 복수를 다짐하고있었다.

분노와 의분에 사무치신 장군님의 격앙된 음성이 방안을 진동하였다.

《희생이 아무리 가슴을 찢는다 해도 우린 해방을 안고 조국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희생된 동지들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동무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싸우다 희생된 유명무명의 영령들앞에 기어이 조국을 다시 찾을 우리의 맹세를 다집시다.》

모두 비장한 심정으로 묵상을 하고 고뿌들을 비웠다.

김정숙동지께선 눈물이 왈칵 쏟아지여 얼른 부엌으로 나오시였다.

망국은 순간이요, 복국은 천년이라더니 이제 또 얼마나 피를 흘리고 얼마나 많은 희생을 내야 바라던 조국해방의 종착점에 닿을가 하는 생각이 그이의 가슴을 모질게도 아프게 물어뜯었다. 그이께선 칼제비국수를 만들자고 버무려놓은 반죽을 힘주어 치기 시작하시였다.

방안에선 장군님의 평온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중국 동북도 그러하지만 여기 원동에도 조선사람의 피와 땀, 생명이 수없이 깔려있습니다.

쇄국정책이 우심하던 우리 나라 근세에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는 사람들에게 사형이 언도되였소. 그러나 기미년 대기근때 6진일대의 형편은 더 극심해서 백성들은 살길을 찾아 목숨걸고 도강하지 않을수 없었소. 구사일생으로 원동에 당도했지만 집이 있나, 식량이 있나. 기한에 떨고 기근에 쓰러져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사람들은 억척스럽게 이 일대에 삶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황무지를 개간하여 눈물과 함께 씨를 뿌렸고 땀으로 걸구어 신한촌(울라지보스또크), 쌍성자(워로쉴로브), 소성, 추풍 등을 일떠세웠습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 신한촌은 나라의 독립을 위한 애국지사들의 책원지로 되였습니다.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사살하고 려순감옥에 갇혔을 때 로령에 거주하는 조선사람들은 수만루블의 의연금을 모아 로씨야, 영국, 네데를란드의 변호사들을 초청해 려순법정에 보냈습니다. 류린석, 리상설이 일본왕에게 항의문을 보내고 수만명의 의병을 일으킨 곳도 신한촌이고 리동휘네가 광복군을 조직한것도 여기 원동입니다.

청소한 쏘베트국가에 14개 무력간섭자들이 달려들 때 일본군은 씨비리에 출병하였습니다. 그때 리동휘네들은 붉은군대와 손잡고 일제와 싸웠습니다. 그들은 이런 기회에 일제와의 전면전쟁을 선포하고 국내에 돌입하여 독립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1만명의 병력을 집결하여 훈련을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1920년 4월 일본군이 연해주를 점령하자 수십명의 지도자들이체포되고 독립운동도 흐지부지되고말았습니다.

이해 10월에 청산리대전을 겪은 만주의 독립군 3천여명이 원동지역에 집결하였는데 일부는 일본군의 강세에 밀리워 아무르강변으로 이동하고 일부는 붉은군대에 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독립군들이 일본군의 공세에 몰려 원동에 들어와 재편성되고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는 때였습니다. 이무렵 흑하사변이 일어났습니다. 상해파와 이르꾸쯔크파간의 무장충돌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고 동족의 피가 강물이 되여 흘렀습니다.

력사는 우리에게 지난날의 교훈과 함께 오늘이 제기하는 문제를 풀기 위한 지혜를 줍니다.

여기 원동땅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의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장군님께서 가슴이 뻐근하신듯 말씀을 끊으시자 방안엔 사람 하나 있는것 같지 않게 고즈넉한 정적이 깃들었다. 누구나 이 땅에 인찍혀진 민족수난사에 억이 막히는듯 하였다.

이윽하여 김책의 짓눌린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나도 그무렵에 여기 연해주에 와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사람입니다. 민족수난사이자 갈길을 몰라 내 인생이 헤매야 했던 가시밭길이였습니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사느냐, 죽느냐하는 운명적문제는 혁명의 진로를 밝혀주는 령도자를 단결의 중심으로 받드는것이라는것을 리론이 아니라 인생체험으로 체득한 혁명가들이 여기 모였습니다. 내 오늘 자기검토를 좀 하려고 합니다.》

《가만, 김책동무, 최현동무는 그 수난사의 목격자이고 참가자요. 그의 얘길 들어보는게 어떻소?》

최현은 젖은 눈길을 들었다. 우러르는 그 눈길은 독립군이였던 아버지와 자신의 한을 풀어주신 장군님에 대한 흠모로 절절했다.

장군님께서 신중하면서도 여유있는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내 오늘 동무들에게 꼭 말하고싶은것은 남에게 의거해서는 절대로 조선독립을 이룰수 없다는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행자들이 이 원동의 하늘과 초원에 피로써 찍어놓은 교훈입니다.》

장군님의 잘 울리는 우렁한 음성엔 아픔과 안타까움, 강렬한 호소가 슴배인듯 듣는 사람의 가슴을 쩡 울려주었다.

《속담에 남의 집 금덩이보다 제 괴춤에 있는 강낭떡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올해 정초에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열고 조국광복을 위한 대일최종작전방향인 조국해방3대로선을 확정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제 오늘 생각한게 아니고 항일무장투쟁 전기간 생각해오던것이고 원동으로 들어오는 행군길에서 더욱 무르익힌 조국해방구상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한다면 조국해방3대로선이라는것은 조선인민혁명군총공격과 그에 배합한 전인민적봉기, 배후련합작전으로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한다는것입니다.》

별안간 박수소리가 울렸다.

《장군님 , 3대로선이 내 마음에 꼭 듭니다. 여직껏 항일을 십수년해왔지만 길없는 밀림속을 헤치다가 대통로에 나와선듯 앞이 환해졌습니다.》

평소에 뚝한 최석천이 그답지 않게 흥분한 목소리로 속을 터놓았다.

국권수복의 뜻을 품고 상해림정을 찾아갔다가 본의아니게 중국혁명의 소용돌이에 깊숙이 빠져든 그였다. 손중산의 국민혁명에도 참가하고 황포군관학교물도 먹은 그는 장개석이 국공합작을 깨버리고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학살을 감행할 때 관내를 탈출하여 북만에 갔는데 그곳에서 항일련군 4군과 7군을 주동이 되여 꾸렸었다.

《내 조선혁명에 더 잘 이바지하려면 백두산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것이 최춘국이 가져온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접했을 때지요.》

장군님께서 마음을 사로잡는 추억에 이끌려 뒤를 이으시였다.

《사실 조국광복회가 조직된 후 그 산하조직이 장백일대는 물론이고 국내각지를 그물망처럼 덮었드랬지요. 혜산사건만 아니였다면 조국광복대사변을 좀더 빨리 당겨왔을텐데. 39년 6월 국사봉회의에서 조국광복회운동이 걸어온 로정과 성과를 총화하고 연사지구를 비롯한 두만강일대를 거점으로 조국광복회운동을 확대발전시키기로 하였는데 지난 여름 국내에 나가 료해해보니 우리가 취한 방침이 옳았다는것이 증명됐습니다. 연사지구를 거점으로 조국광복회조직들이 전국에 뻗어나갔구 그 조직들이 무장봉기조직으로 발전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천명의 로동계급이 밀집된 서두수수전공사장, 벌목장, 류벌장들에 군사적거점이 마련되고 방대한 무장봉기력량이 꾸려져있었습니다. 전민항쟁준비가 착실히 무르익고있더란 말입니다.》

안길이 흥분된 어조로 각지 무장봉기조직들의 준비정형을 보고하고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씨앗을 뿌리면 움트고 자라 열매를 맺기마련입니다. 연사지구야 정숙동무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린 고장이지요.》

장군님의 열띤 음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전민항쟁에 의한 자력독립, 이것이 우리가 10여년의 피어린 무장투쟁의 전과정에 일관하게 지향해온것이고 걸음걸음 피를 뿌리고 생명을 바치면서 톺아온 정점입니다. 총력을 다해 전민항쟁준비를 완결해야겠소.》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강조하고나서 부엌쪽에 대고 소리치시였다.

《정숙동무, 이젠 모두 식욕이 부쩍 올랐는데 만두도 더 가져오고 석천동무에게 맛보이겠다던 국수도 어서 들여오오.》

《네- 들어갑니다.》

김정숙동지께선 마냥 마음이 기꺼우시여 쟁반에 만두접시랑 콩국에 만 칼제비국수랑 담아들고 날듯이 방으로 들어가시였다.

밀가루반죽을 되게 하여 얼마나 잘 치다렸는지 칼제비국수오리가 가늘면서도 농마국수처럼 질기고 졸깃졸깃하였다.

《연어로 속을 넣은 만두가 별맛이라 했더니 이 국순 천하별미로구만. 혀까지 넘어가겠소.》

모두들 치사를 아끼지 않으며 반반히 해치운 국수그릇을 내밀며 곱배기를 요청하는데 최현이만은 여전히 고개를 짓숙이고 먹는둥마는둥이였다. 오히려 넋없이 국수를 들던 최석천이 웃음기도 없이 수다를 부리는것이였다.

《별일은 별일이구만. 중국사람들은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를 우동이라고 하는데 이건 분명 밀가루칼국수인데 우동맛과는 딴판이란 말입니다.

내가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접했을 때도 그랬지만 여기 원동에 와서 김일성동지를 만나뵙고 조국해방3대로선을 접하고보니 혁명의 맛이 다르더란 말입니다.》

쭝깃해서 듣고있던 김책이 팔굽으로 최석천을 쿡 찔렀다.

《내 당신을 잘못 봤소. 무관인줄 알았더니 철학자였구만.》

최석천은 웃지 않았다. 그는 정색해서 철학자다운 말을 또 한마디하였다.

《사람이 제일 견디기 어려운게 배고픔이라고 하지만 난 고독이라고 말하고싶소. 인간의 리성이 그 어떤 지지점을 발견하지 못하면 마음은 텅 빈것처럼 공허해지거던요. 사람은 배도 차야 하지만 마음이 차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듭니다. 난 오늘 배도 차고 마음도 찼습니다.》

좀처럼 웃지 않던 최석천은 빈그릇을 김정숙동지께 내밀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모임이 파하여 모두들 돌아갔으나 안길과 최현만은 뿌리가 박힌듯 일어날념을 하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 긴히 말씀드릴것이 있는듯싶었다. 하긴 장군님께서 돌아오시길 애타게 기다려온 최현이였다.

안길이 떡 버티고앉은 최현에게 온곱지 않은 눈총을 쏘았다.

어린애처럼 철없이 굴지 말라는 충고일것이였다.

최현은 어쩔수 없는지 움쭉 자리를 일어 곰처럼 어기적어기적 도리집을 나섰다.

사령관동지께선 김책을 바래우느라 봇나무가 듬성듬성한 소로길을 천천히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김책과 마주서면 화제가 끝이 없으신 그이이시였다.

장군님께서 쉬이 돌아서실것 같지 않아 안길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조심히 물으시였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국내에 나가있는 박광선소조가 방금전에 보내온 보고에 의하면 일제가 서두수발전소건설을 중지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돈다고 하오. 동무도 알다싶이 서두수수전공사장지구에 강력한 전민항쟁력량이 집결되여있는데 공사가 중지되면 그 력량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텐데 이게 야단이 아니요. 빨리 보고드리고 대책을 취해야겠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철렁하시였다. 그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그이께선 마음이 조급해져 안길을 떠밀어 김책과 담소하시는 사령관동지께로 보내시였다.

안길이 소로길로 뛰여가는 모습이 창문으로 내다보였다. 그가 여전히 거닐고계시는 사령관동지께 급히 보고올리는 모습도 보였으나 인차 강쪽으로 가는 굽인돌이로 사라져버렸다.

김정숙동지께선 창곁에 그린듯이 서계셨다. 어언 창밖에 저녁어스름이 내리고 뒤이어 어둠의 장막이 내려덮였으나 장군님께선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밤이 되자 날씨는 차졌다.

그이께선 군복웃저고리를 벗겨드시고 소로길에 나서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아침저녁으로 세면을 하시는 강녘에까지 와서 사위를 두릿거렸으나 그이모습은 보이지 않으셨다.

《정숙동무요?》

장군님의 우렁하신 음성이 개버들이 무성한 곳에서 울렸다. 김책도 안길도 보이지 않았다. 서두수일때문에 몹시 심뇌하시는듯싶었다. 그이께선 무어라 말씀드렸으면 좋을지 몰라 그저 덤덤히 어깨우에 군복저고리를 걸쳐드리시였다.

장군님께선 마디마디 꺾고있던 버들가지를 강물우에 던지더니 일어서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선 아까부터 품고있던 생각을 말씀올리시였다.

《서두수문제는 제가 수습해볼가 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선 그이쪽을 흘깃 돌아보셨지만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한참후에야 사실여부부터 정확히 확인해보자고 하시며 문득 물으시였다.

《참, 최현동무가 왜 그러오? 고개를 짓수굿하고 첫날색시처럼 먹는둥마는둥하니··· 어디 편치않은게 아니요?》

《최현동지가 장백과 국내쪽에 나가신 사령관동지께서 돌아오시길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가 강급처벌을 받은것때문에···》

그이께선 최현의 부탁도 있고해서 절절히 말씀드리셨다.

《강급처벌엔 내가 동의했소.》

《네?!···》

《일제와의 최후결전은 유격전이 아니라 현대전이요. 사상과 지혜의 대결인 동시에 현대적인 무장장비의 대결이기도 할거요. 우리가 자동총대대를 가지게 된다면 최후결전때 얼마나 큰 은을 내겠소.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주다니.》

사령관동지께선 속이 타시는지 더 말씀이 없으셨다.

김정숙동지께선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시였다. 장군님의 심중을 진작 헤아리고 대책을 취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뼈아픈 자책으로 그이의 가슴은 달군 쇠테로 윽죄이는듯 한 아픔을 어찌할수 없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