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제 3 장

1

 

원동의 태고연한 밀림에 봄은 소리없이 깃들었다.

바늘잎나무림의 앙상한 우듬지에도 부드럽고 말씬한 촉감이 느껴지고 혹독한 겨울의 눈서리에 푸른 빛이 시르죽었던 전나무, 잣나무의 까칠한 잎끝머리도 봄입김에 부풀어올라 연록빛이 아스무레하였다.

이국정서를 그윽히 풍겨주는 하얀 봇나무와 사스레나무의 어린 가지도 봄물이 올라 창포물에 감은 처녀의 머리채처럼 함함해졌다. 울창한 수림에는 나무들이 열정적으로 움을 틔우는 정찬 속삭임이 마치 바람결에 실려오는 신비한 지저귐처럼 고즈넉한 정적속에 가득차 울리는듯싶었다.

어디선가 봄정기를 깨우는 대자연의 활기찬 목소리인양 얼음장밑으로 돌돌 흐르는 물소리가 신묘한 음악처럼 들려온다. 바람이 불자 태고연한 밀림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솨―뒤설레였다.

봄바람은 백두산쪽에서 불어오는 훈풍이였다.

하바롭스크로부터 동북쪽으로 150여리 떨어진 야스끄라는 곳에 자리잡고있는 국제련합군의 훈련기지.

북쪽으로는 아무르강이 서켠에서 동켠으로 유유히 흐르고 남쪽으로는 아빠난산이 동서로 힘차게 뻗어갔다. 백두밀영에서 동북쪽으로 뻗어간 백두대산줄기를 타고내리면 중국 동북지방의 완달산줄기를 지나 원동의 아빠난산줄기에 이르게 된다.

백두산밀영에 나가계시던 김정숙동지께서 돌이 갓 지난 아드님을 등에 진 배낭우에 태우시고 국제련합군의 군영이 있는 하바롭스크부근 훈련기지에 도착하신것은 1943년 초봄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벅차오르는 감개무량함을 어쩌지 못하시며 군복웃주머니가 달린 가슴노리를 어루쓰시였다.

두해전 3월, 봄물이 오르는 자작나무우듬지를 배경으로 사령관동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심장이 높뛰는 곳에 간직되여있었다. 사진뒤면에 《타향에서 봄을 맞으면서. 1941. 3. l. B야영구에서》이라는 장군님의 친필이 새겨진 뜻깊은 사진이였다.

그이의 생각은 나래를 펴고 잊지 못할 그 봄날에로 날아가시였다.

 

1941년 봄은 김정숙동지께서 결혼후 맞는 첫봄이였다. 비록 타향의 훈련기지에서 맞는 봄이였지만 혈기방장한 청춘의 가슴에 새로운 희망과 신심을 샘솟게 하는 봄이였다.

워로쉴로브근방에 있는 이 훈련기지를 남야영이라고도 하였고 B야영지라고도 불렀다.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과 항일련군 1로군산하의 부대들이 여기서 겨울을 나며 군정훈련을 맹렬히 벌렸었다.

1941년은 인류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재난을 가져다줄 재난의 해였지만 쏘도전쟁도 태평양전쟁도 아직은 미래의 일이였다.

하지만 천리혜안을 지니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선혁명가들이 시대와 력사앞에, 조국과 민족앞에 지닌 성스러운 임무를 실현할 시각이 바야흐로 다가오고있음을 체감하시였다.

새봄을 맞으면서 남야영은 더더욱 활기를 띠였다.

하바롭스크회의후 김책이 남야영에 와있었으며 주보중도 중요한 협의를 하려고 얼마간 와있었다.

새봄을 맞으며 중요과제는 만주와 국내각지에서의 소부대활동을 적극화하는것이였다.

남야영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의 주요회의가 소집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회의에 참석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해에 들어서면서 정세추이에 대해 언급하시고 나서 이에 대처하여 백두산지구에 꾸린 비밀근거지에 튼튼히 의거하면서 국내와 만주일대에 소부대, 소조들을 더 많이 파견하여 인민들에게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며 그들을 조직화하여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들, 이 사령관이 먼저 소부대를 이끌고나가 백두산동북부와 국내에서 활동할 결심입니다.》

장내엔 흉벽을 치는 심장의 박동이런듯 숨소리가 높았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들이 당장이라도 사령관동지를 따라나설 기세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회의에서 심중한 한가지 문제를 제기하시였다.

《우리가 장기간 광활한 지대와 훈련기지들에 나가있어야 하는것만큼 지금처럼 무전이나 통신원을 통해 보고를 받아가지고서는 사령부의 작전적의도를 백두산지구비밀근거지들에 있는 동무들이나 각지에 있는 소부대, 소조들에 전달할수도 없고 정황에 맞게 지도할수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유능한 동무를 백두산밀영에 장기적으로 파견해야겠는데 누구를 보냈으면 좋겠소?》

모두 숨을 죽이고 대답이 없었다. 누구나 유능한 정치공작원인 김정숙동지에 대해 생각하였지만 사령관동지의 사업을 몸가까이에서 보좌해드려야 할 그이의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사명을 생각하고는 마른 침을 삼킬뿐이였다.

사령관동지의 우렁한 음성이 다시금 울리시였다.

《내 생각에는 김정숙동무가 합당할것 같은데 다른 의견이 없겠습니까.》

박덕산이 움쭉 일어섰다. 그는 입속으로 웅얼거리였다.

《백두산밀영에서의 사업은 결국 백두산동북부와 전국의 지하조직, 혁명조직들을 총적으로 지도하는 어렵고 중대한 과업입니다. 정숙동무외에 감당할 사람이 없다는걸 알고있지만 그래선 안됩니다. 그를 어떻게 그 먼 험지에···》

김정숙동지께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제가 백두산밀영에 나가있으면서 사령관동지의 의도대로 꼭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말없이 뜨거운 눈길로 그이를 더듬으시며 머리를 끄덕이실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관동지와 소부대원들의 길차비를 해드릴래, 백두산지구에 나가 장기간 사업할 준비를 하실래 매우 드바쁜 나날을 보내시였다.

그이께선 사령관동지 친솔소부대보다 한달 늦어 출발하시게 되여있었다.

사령관동지의 출발날자가 하루하루 다가올무렵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번에 특별히 전령병으로 임명된 전문섭과 김익현을 부르시였다.

그이께선 준비해두었던 바랑을 내놓으시였다.

《이제 며칠후이면 장군님의 생신날이예요. 사령관동지께선 평소에 생일을 쇠신적이 없어요. 하지만 제가 만경대가문의 장손며느리가 되였는데 어떻게 그냥 보낼수가 있겠어요. 그래 뭘 좀 마련했는데 생각뿐이지 변변치 못해요. 생신날 아침식사라도 한끼 지어드리세요.》

바랑안에는 흰쌀이며 찰수수쌀, 팥과 당콩들이 오목오목 들어있는 주머니들과 말린 산나물, 말린 물고기, 통졸임 등 찬거리들이 챙겨져있었다.

그이께선 따로 내놓았던 꾸레미를 바랑에 넣으시며 특별히 당부하시였다.

《이건 감자농마가루인데 형편이 좋으면 국수를 눌러드리세요. 사령관동진 국수를 여간만 좋아하시지 않아요. 통졸임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면 국수분틀로 쓸수 있어요. 조미료랑 양념은 다 준비해넣었어요.》

전문섭과 김익현은 목으로 뜨거운것이 치미는지 울대뼈를 불룩거리며 그저 머리만 끄덕이였다.

《야, 정숙동지두 우리랑 같이 가야 하는건데. 하필이면 왜 누이가 사령관동지와 떨어져서 공작나간단 말입니까?》

김익현이 뿌루퉁해져서 어리광비슷이 하는 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꼭 동생 기송이 모습같아서 빙그레 웃으시였다.

《익현이, 이번에 난 백두산밀영으로 가는 길에 무산지구진공전투때 희생된 김세옥동무의 묘를 찾아보자구 해요.》

김세옥은 익현의 삼촌이며 마국화의 애인이였다. 그는 국내진공작전에 참가하였다가 두만강가에서 희생되였다. 그는 숨을 거두면서 자기는 그래도 조국땅에 묻히게 되였으니 행복한 사람이라고 웃으며 눈을 감았었다. 사실은 그가 두만강을 건너와 중국땅쪽에서 쓰러졌었다.

《세옥동무는 자기가 조국땅에 묻히는걸로 알고 숨졌어요. 얼마나 소원이였으면··· 조국해방에서 기본은 국내 혁명조직들을 더 잘 꾸리고 전민항쟁준비를 잘하는것이라고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셨어요. 빨리 나라를 찾고 세옥동무랑 이역땅에 누워있는 전우들을 조국으로 데려와야지 않겠어요.》

김익현은 더 말을 못하고 아구리를 조여맨 바랑끈만 쥐여뜯을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여벌로 만들었던 신발깔개도 두 동무에게 나누어주시고 군모를 깊숙이 눌러쓰시였다.

그때 방문이 펄쩍 열리더니 녀대원들이 문지방에서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였다.

《여기선 뭘 하고있어요. 온 야영이 떨쳐나 사진찍느라 야단인데.》

《최현동지가 이제 헤여지면 언제 또 만나겠는가고 하면서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사진기를 구해왔대요.》

《아니야, 쏘련사진사를 데려왔대.》

《어쨌든 지금 지휘관들이 사진을 찍고있는데 우리 녀대원들도 사령관동지와 함께 사진찍자요. 정숙동무가 청을 좀 말씀드려줘요.》

그이께선 녀대원들에게 끌리워 밖으로 나가시였다.

잠풍하고 상쾌한 봄날이였다. 뽀잇한 서기가 어린 하늘에선 부드러운 볕을 뿌리는 해가 방그레 웃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금방 사진을 찍으셨는지 흰빛이 수려해지는 자작나무곁에서 안길과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녀대원들에게 에워싸여 그쪽으로 오시는 김정숙동지를 띄여보자 최현이 반색하며 달려왔다.

《어― 정숙동무도 사진 한장 찍소, 사령관동지와 나란히···》

《아니, 아니, 그런게 아니구···》그이께서 질색을 하시며 손을 흔들자 녀대원들이 모두 함께 그이의 등을 밀어대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허궁 떠밀려 자작나무앞으로 나서시였다.

《어마나.》

활짝 웃으시며 장군님곁에 선 순간에 사진기샤타가 잘칵거렸다.

《야― 꽃이 웃는것 같구나. 정숙동무가 참 이쁘지.》

산들바람에 어느 녀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냥 두볼이 화끈거려 도망치듯 달려가시였다.

타향의 봄날에 찍은 사진은 이렇게 력사에 남았다. 그것은 두분께서 처음으로 함께 찍은 사진이였다.

장군님친솔소부대가 쏘만국경을 넘어 아직 눈이 한길이나 쌓인 산속을 행군해가는데 사령관동지께서 별스레 발이 후끈후끈해와서 신발을 벗어보셨는데 바닥에 머리칼로 만든 깔개가 깔려있었다.

그제서야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이가 전에없이 방안에서도 군모를 벗지 않고 지내던 일이며 머리칼을 군모안에 뭉그려넣고 사진을 찍으신 가슴저린 사연을 알게 되셨다고 한다.

하여 사진은 사령관동지와 김정숙동지께는 물론이셨고 우리 인민에게 더 소중한것으로 되였다.

 

5월초에 김정숙동지께서는 B야영지를 떠나시였다. 그이의 배낭에는 책이 가뿍 들어있었다. 두터운 일로사전도 있었다.그이께선 백두산밀영에 나가계시면서 로어와 일본어를 자습하실 작정이셨다. 외국어를 하나 떼면 한개 나라를 통채로 아는것과 맞먹는다는데 그이께선 로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떼시려는것이였다.

왕청현 쟈피거우림시비밀근거지에서 그이께선 사령관동지를 만나 그간 훈련기지에서의 사업정형을 보고올리고 친솔부대와 함께 묘령산줄기를 넘어 안도현 한총구에 도착하시였다. 그곳에서 사령관동지로부터 앞으로 백두산밀영에 나가 하셔야 할 일에 대해 자상한 가르치심을 받으시였다.

그때는 《쏘일중립조약》이 체결된 직후였다. 가는 곳마다에 이 소식과 함께 일본군은 중국전선에서 계속 승리하고있다, 조선인민혁명군은 고립되였으며 바다에 뜬 좁쌀과 같다, 독립할 가망도 없는데 투항하라는 내용의 삐라가 산과 들에 하얗게 널려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정세가 복잡해질수록 자기 나라 인민의 힘을 믿고 자체의 힘으로 혁명을 끝까지 수행할 의지와 신념을 굳게 가져야 한다시며 이런 준엄한 때에 백두산밀영에 나가 해야 할 사업을 다시금 상세히 알려주시였다.

김정숙동지소조가 압록강을 건너 소백수물곬을 따라 백두산밀영에 들어선것은 초여름에 잡힐 때였다.

그곳에서 이미 밀영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한창봉소조와 반갑게 상봉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밀영에 오신 후부터 2명, 3명의 소조들이 밀영을 떠나가고 밀영으로 찾아오는 부단한 움직임으로 활기를 띠였다. 그것은 그이께서 오신 이후의 백두산밀영의 새 풍경이였다.

그이께서는 국내조직과 련계된 소조, 소부대들을 통솔하셨을뿐아니라 자신께서 몸소 적구로 나가시였다.

그해 9월초 김정숙동지께서는 연사, 무산지구의 조직들에서 《쏘일중립조약》체결후 혁명의 전도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다는 보고를 받게 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분연히 적구로 떠나시였다. 그 몸으로 어떻게 가시겠는가고 만류해나서자그이께선 나직이 말씀하셨다.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는 사령관동지의 뜻을 받들지 못하고 혁명의 전도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는데 이 김정숙이 밀영에 가만 앉아있는다면 김정숙이 아니지요.》

그이를 맞이한 무산, 연사지구, 서두수수전공사장 조직원들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1942년 2월, 시련에 찬 겨울을 밀어제끼며 광복의 새봄이 태동하던 그 아침, 백두산밀영에서 일대 경사가 났으니 밀영의 소박한 귀틀집에서 빨찌산의 아들이 탄생하신것이였다.

밀영에는 식량도 얼마 없었고 산나물마저 귀하였다. 풍성한것은 하염없이 쏟아지는 흰눈이요, 천리수해에 눈부신 서리꽃이였다.

대원들이 속내의를 모으고 저고리솜을 덜어내여 아기옷도 짓고 쪽무이포단도 만들었으며 기저귀감도 장만하였다. 산모의 첫 국밥인 강냉이죽에 말린 산나물소금국을 떠올리다가 소리내여 울고만 녀대원, 눈물을 씻어주며 그이께서 하시던 말씀.

《울지 말아요. 이 모든게 다 후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될거예요.》

모성이 된 후에도 김정숙동지께선 여가가 없으셨다.

어째서인지 그이에겐 어데를 가나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많고많은 일이 더미로 쌓이군 하였다. 장백과 국내에서 활동하는 소부대, 소조들이 수시로 그이의 조언을 바랐고 북부조선일대의 혁명조직들에서 예상치 않은 정황이 발생하여 그이를 기다리였다.

근한 실농군의 손에서 곡식이 잘 자라듯 그이의 손길에서 혁명조직들은 성장해갔고 전민항쟁력량은 숲처럼 무성해갔다.

어리신 아드님께서도 건강하게 자라시였다. ···

국제련합군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그이를 기다리실지.

김정숙동지께서는 등성이우에서 속료량을 하며 다감한 심정으로 훈련기지를 내려다보시였다.

여러갈래로 흘러내린 산발에 에워싸여 아늑해보이는 분지에 자리잡은 훈련기지에 어둠이 깃들고있었다. 연기가 퐁퐁 솟구치는 굴뚝만이 유표한 반토굴식병영들이 늘어선 넓은 분지에는 벌써 하얀 천막들이 나타나 바람에 펄럭이고있었다.

칠칠한 어둠의 장막우에 처음으로 봄소식 안고 온 제비의 지저귐인양 취침나팔소리가 은은히 울려퍼졌다.

려단지휘부에 잠시 들렸던 김정숙동지께서 나오시자 넓은 운동장으로 대원들이 달려오고있었다. 녀대원들의 청아한 목소리가 기쁨과 반가움의 물결우에서 은구슬처럼 부서지는듯 하였다.

《김정숙동무가 왔대요.》

《아드님을 배낭우에 태우시고 오셨대.》

훈훈한 산들바람이 하들하들 떨며 밀려오는것처럼 화끈 단 녀대원들이 날듯이 달려와 그이를 에워싸고 얼싸안는다.

《정숙동무.》

《어디 좀 보자요, 우리 빨찌산의 아들을.》

귀에 익은 음성, 귀에 선 목소리···

김정숙동지께서는 누구라없이 얼싸안으며 손들을 꼭 쥐여흔드시였다.

《가만가만, 배낭부터 벗겨드려요.》

누군가 소리치더니 어깨에서 배낭이 훌 벗겨져나갔다.

《어이쿠, 무슨 배낭이 이렇게 무거워? 금덩이가 들었나?》

귀익은 챙챙한 목소리가 엉너리를 친다.

《그 배낭우에 우리 희망의 별이 타고왔은즉 천하룡마라 할가.》

《백두광명성 만세―》

일시에 환호성이 터지고 저마끔 아드님을 안아보려고 두손을 한껏 뻗치며 안타까이 발돋움을 한다.

《날씨가 찬데 어쩔려고들 그래요. 다들 천막으로 들어가자요.》

또다시 챙챙한 귀익은 음성이 들려오더니 모두들 그의 말대로 첫번째 천막으로 향하였다.

천막안은 후끈하고 밝았다.

난로에서 봇나무장작이 빠직거리며 활활 타고있었다. 가운데로 복도가 나고 량옆으로 마른 풀을 깐 나무침상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김정숙동지를 가운데 모시고 녀대원들은 량쪽침상에 걸터앉았다. 모두 반가움에 환해진 얼굴들이였다. 그이께서는 그 빛나는 눈동자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보시였다. 낯익은 모습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그이의 맞은켠에는 가느스름한 눈에 눈물이 그렁한 한경순이 품에 아드님을 꼭 껴안고 볼을 비벼대며 하염없이 들여다보고있었다. 그옆에는 보름달처럼 환한 녀대원 김옥성이 그에게서 아드님을 빼앗아안아보지 못해 몸달아하고있었다. 삼도만에서 공청사업을 같이한 한경순이도 오랜 벗이였지만 옥성이도 아동단생활을 할 때부터 인연깊은 동무였다. 그는 년초에 불의에 달려든 일제《토벌》대놈들과 결사전을 벌리다가 체포된 북만 3로군의 12지대장 박길송의 애인이였다. 옥성은 왕청에 가서 연예대활동을 하면서 그곳에서 아동단국장을 하던 박길송과 알게 되였다. 장군님께서 2차북만원정을 떠나신 후에 적들에게 체포되였던 박길송은 탈주하여 옥성과 함께 장군님을 찾아 떠났었다. 그들은 험준한 로야령을 넘어 헤매다가 북만의 한 부대를 만나 그곳에서 입대하여 싸워왔었다.

옥성이도 그랬지만 많은 동무들이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는 그리웠던 전우들이였다. 생각같아서는 얼싸안고 그사이 쌓이고쌓인 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싶으셨지만 그이께선 애써 자제하시고 뜨거운 눈인사만 보내시였다. 구면인 동무들보다 초면인 녀대원들이 더 많았기때문이였다. 이제 그들과도 한집안식구가 되여야 할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을 가슴노리에 모아쥐고 자기 소개부터 하시였다.

《제가 김정숙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여 정말 반갑습니다. 동만에서 함께 싸운 녀대원들과는 잘 아는 사이지만 북만에서 싸운 여러 동무들과는 오늘 처음 만납니다. 우리 통성부터 하는게 어때요?》

그이께선 다소곳이 머리를 숙여 모두거리로 인사를 하시였다.

《왕옥환입니다.》

걀쑴한 얼굴에 키가 큰 녀대원이 일어서 두손을 모아쥐고 중국식 절을 하는것이였다. 말을 타고 질풍노도처럼 내달리며 칼을 휘둘러 적들을 요정낼 때는 헌헌장부 울고갈 지경이라더니 정작 마주서고보니 규방녀인처럼 수줍음을 타는 아련한 녀성이였다. 그는 북만 탕원유격대의 조직자인 최석천의 안해였다.

《옥환동무, 얘길 많이 들어서인지 구면같군요.》

《김정숙! 그 이름 나도 자주 들었어요. 사격솜씨가 대단하다던데···》

그이께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시였다.

《아니아니, 소문이란 항상 사실보다 과장되는 법이예요. 북만동무들은 기마술이 대단할뿐더러 말타고 달리며 사격하는 솜씨가 놀랍다고 하던데 난 동무들에게서 배우자고 생각해요.》

다른쪽에서 얼굴이 둥글넙적한 무던하게 생긴 녀대원이 일어나 법석떠들어대는 좌중을 진정시키였다.

《길고 짧은건 대봐야 한다구 차차 사격경기두 하구 말타기경기두 하기로 하고 지금은 통성부터 하고보자요. 제 박경옥입니다. 기마술은 보통이지만 무전치는데선 보통보다는 조금 높은편입니다.》

무전치는 솜씨가 누구보다 뛰여난다는 박경옥의 소박한 자기소개였다. 그의 뒤를 이어 녀대원들이 겨끔내기로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였다. 재봉대출신들인 허창숙, 장희숙동무들, 간호원 전성희동무, 맨 나중에 일어선것은 얼굴이 두리두리한 녀대원인데 아주 걸작이였다.

《내 이름은 김성옥이라 합니다. 생긴대로 두리뭉실한게 뾰족한 재간은 없습니다. 나는 유격대생활 초시기부터 장군님친솔부대에 백발백중의 명사수인 녀장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어왔습니다. 적들이 사령부로 몰래 기여들다가도 량손에 권총을 들고 연방 불을 뿜어대는 녀장수의 손에 걸려 묵사발이 되군 한다는것이였습니다. 그래 나는 늘 그 녀장수를 그려보며 만나길 고대해왔습니다. 나는 사실 그 녀장수가 키도 구척이고 몸집도 크고 부리부리한 눈에 불이 황황 타는 헌걸찬 녀장부일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나보니 이렇게 아담하고 얌전하고 이쁜 녀성일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마도 나의 녀성관에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도 너스레와 반죽이 여간 아닌 김성옥에게 맞장구치시였다.

《북만유격대의 유명한 싸움군이고 배짱군인 최용진동무가 성옥이란 녀대원한테만은 꼼짝을 못한다던데 그런 녀성을 녀장부라 해야 하지 않을가요.》

《아이구, 말도 말아요. 그 사람 그림자속에 가리워서 성옥이란 녀잔 존재가치를 상실했어요.》

《그림자속에 가리웠지만 영웅호걸을 실제로 움직이는 녀걸은 성옥동무가 아닌가요.》

김성옥은 지레항복이라는듯 두손을 높이 들어 휘손질을 하였다.

《총만 잘 쏘는줄 알았는데 입담도 안되겠네. 그렇지만 사격경기는 해보자요. 우리 북만엔 귀신같은 사격솜씰 가진 나나이족출신 리계향동무가 있어요. 나나이족사람들은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천성적으로 사격술이 높거던요. 계향동문 정숙동무와 겨루어보는게 소원이랍니다.》

《좋아요. 북만동무들은 모두 말을 잘 탄다는데 말을 타고 달리면서 나는 새를 떨구어보자요.》

모두 와― 하고 환성을 올리며 아이들처럼 기뻐하였다. 그이께서는 화기에 넘친 분위기가 마련되자 이야기를 제곬으로 돌리시였다.

《원동으로 들어올 때 고생이 많았지요?》

어딘가 생김새며 깔끔한 성미가 한경순과 비슷해보이는 북만출신 녀대원 박경숙이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 소부대는 철려현안배하기지를 떠나 갖은 고생을 다하며 초겨울에 쌍차이부근 흑룡강에 이르렀는데 강을 건느기가 난감했어요. 마침 강변에 낡은 초막이 있어서 그걸 헐어 떼를 무었지요. 떼를 타고 강복판에 이르렀는데 적들이 집중사격을 퍼붓지 않겠어요. 성한 사람들은 물속에 뛰여들어 헤염을 치면서 떼를 밀었답니다. 그때 세 동무가 희생됐습니다.

마침내 원동땅에 올라선 우린 만주의 산과 들을 바라보며 목놓아 울었답니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얼마나 많은 전우들을 그 땅에 묻었는가 하는 생각에 북받치는 눈물을 어쩔수 없었어요.》

박경숙은 목이 메여오는지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한경순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간고한 길을 헤쳐 와닿은 걸음인데 쏘련국경수비대가 무기까지 회수하고 푸대접하니 정말 견디기 힘들더군요. 그래 우린 소리쳤어요.

〈우린 김일성장군 빨찌산이다. 김일성사령관께서 우리를 확인할것이다.〉

그런데 며칠후에 쏘련군관이 통역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어요. 그 군관은 간특한 왜놈들이 간첩들을 만주빨찌산으로 가장하여 들이밀기때문에 심사를 엄격히 한다고 량해를 구하고나서 이분이 누군지 아는가고 하며 사진 한장을 꺼내보이는게 아니겠어요.

사복을 입으신 김일성장군님사진이였습니다. 우린 사진을 들고〈김일성장군님이시다! 우리 사령관이시다!〉하고 웨치며 소리쳐 왕왕 울었습니다. 소금물에 백번도 절고 피눈물에 천번도 더 씻긴 우린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사령관동지품에 마침내 안겼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저 자꾸만 울음이 치받쳐올랐습니다.》

모두 상봉의 기쁨과 다함없는 감회에 잠겨 웃고들 있었지만 벌개진 눈들에선 눈물이 글썽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말 못할 사무친 정이 초면인 그들과 자신을 한동아리로 칭칭 동이는듯싶으셨다. 대다수가 20대 청춘들이지만 얼마나 기막힌 상실의 아픔과 억이 차는 고통을 가슴에 묻어두고 피어린 험산준령을 헤쳐 여기까지 왔던가. 그들은 준엄한 항일혁명의 전장에 피여나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유격대의 꽃들이였다.

그이께서는 녀대원들에게 친혈육같은 따가운 정을 느끼시며 오래전부터 함께 싸워온 전우들처럼 느껴지는 그들모두를 한품에 그러안을듯 따뜻하고 다감한 어조로 마음속을 터놓으시였다.

《우린 참 멀고도 어려운 길을 걸어 여기 와 모였습니다. 그 길에 무슨 일인들 없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묻고온 동무도 있고 제살붙이를 모질게 떼여놓고온 동무도 있습니다. 여기 한경순동무는 제 살점같은 자식과도 아픈 리별을 했고 남편의 처절한 최후도 눈앞에서 목격하였지만 그 모진 고통을 씹어삼키며 장군님의 품을 찾아왔습니다. 무척 힘들고 무척 괴로웠지만 우린 희망을 안고 예까지 왔습니다.》

시내물처럼 잔잔하였지만 멀기치는 격랑처럼 가슴을 치는 그이의 말씀에 녀대원들은 헤쳐온 시련의 길을 뒤돌아보는듯 생각에 잠겨있었다. 정적속에 장작이 타는 소리만이 빠지작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류다른 정적을 깨뜨리시며 화제를 돌려 소탈하게 물으시였다.

《어때요? 정규군인생활이 힘들지요?》

그러자 녀대원들은 빨래줄에 앉아 지지배배거리는 제비들마냥 저마다 하소연을 하였다.

《힘듭니다, 유격전 못지 않게 힘듭니다. 학습과 훈련이 이렇게 베찰줄은 몰랐습니다.》

《난 거 학습이 제일 힘들다니까. 정치학습도 힘들지만 무전원리를 배워줄 때 옴의 법칙이요, 왼손법칙이요, 바른손법칙이요 하는건 아무리 외워도 골에 들어가질 않는단 말이야. 애당초 통신중대가 아니라 간호반에 갈걸 그랬어.》

김성옥의 장광설에 작아도 고추알이라고 간호반의 황순이가 냅다 쏘아대였다.

《간호반은 뭐 떡 먹긴줄 아나봐. 라틴어공부를 시켜봐야 알겠어. 누워서 떡 먹재도 팥고물이 눈에 들어가는 법이예요.》

《어쨌든 내 말은 원동에 들어오면 좀 편할줄 알았는데 유격대생활 찜쪄먹게 힘들다는거야.》

《편안한델 찾는 그 사상이 글렀어.》

그들은 중구난방으로 왁작 떠들어댔다. 그럴만도 하였다. 지난해 8월 국제련합군이 조직된 후 정규군체계로 개편된 유격부대들은 유격전은 물론 현대전도 훌륭히 수행할수 있게 체계적인 군정훈련에 들어갔다.

《정규군의 군관학교강령에 따라 진행되는 군정훈련이 무척 힘에 부칠거예요. 그 군정훈련을 잘하는것이 이제 우리가 내디뎌야 할 마지막 두어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이께선 자신있는가를 묻는듯 녀대원들을 둘러보시였다. 박경옥이 선뜻 자신감을 나타내였다.

《어렵고 힘든 백걸음, 천걸음을 걸어왔는데 이제 마지막 두어걸음에서 주저앉겠습니까. 군정훈련에서도 녀대원들의 본때를 보여야지요.》

《얼마든지 잘할수 있습니다. 무전치는게 어렵다지만 우린 벌써 몇달새에 송수신법을 파악하지 않았나요. 올겨울에 스키훈련을 하느라 모두 혼쌀이 나긴 했지만···》

김성옥의 말에 화제는 스키훈련으로 번져졌다. 훈련때 있은 갖가지 일화들을 거들며 모두 배가 끊어지도록 웃어대였다.

스키훈련을 하고나면 신다리에 멍울이 져서 앉을수가 없어 별의별 우스운 일이 다 벌어졌다는것이였다.

한참 웃고 떠들어대는데 한경순이 일어나 밤이 깊어가는데 이러단 앉아서 새벽을 맞겠다고, 먼길을 오신 김정숙동지께서 피곤하겠는데 이젠 취침을 하는게 어떤가고 제기하였다. 모두 그게 좋겠다고 일어서는데 아까부터 뒤쪽에서 그이의 시선을 붙들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던 김옥성이 긴급제의가 있다고 소리쳤다.

긴급제의란 소리에 한경순이 쪼각달같은 눈섭을 구핏거리며 옥성을 치떠보았다.

《긴급제의란 다름아니구 정숙동문 우리 천막에서 쉬여야 한다는거예요.》

《그건 왜?》

한경순의 눈초리가 깔끔해졌다.

《우린 아주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거던요.》

《안돼, 나도 할 얘기가 많아.》

한경순은 양보할 잡도리가 아니였다. 그는 제곁에 그이의 침상을 미리 마련해놓고 기다려왔다고 한다. 애인이 체포되였다는 소식에 무척 고민하고있는 옥성이도 애절한 눈빛이였다.

그이께선 지휘관인 한경순에게 량해를 구하시였다.

《경순동무, 래일 다시 만나요. 오늘은 옥성이 소원대로 하자요.》

옥성의 천막에는 대체로 초면인 북만녀대원들이 들어있었다.

경순은 그이의 속생각을 리해했는지 여직껏 꽉 붙안고있던 아드님을 옥성에게 안겨주며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이께선 가슴이 와짝 저려나시여 문지방을 넘어서지 못하셨다. 한경순의 가슴에는 쩍 입을 벌린 생채기처럼 아물지 않은 처절한 아픔이 있었다. 지금도 거기선 피가 방울방울 떨어질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선 옥성이와 날샐녘까지 회포를 나누시였다. 박길송지대장의 체포소식으로 무척 괴로와하던 그는 그이의 품에서 목놓아울다가 살풋이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흐느끼는 그를 꼭 안으신 그이의 마음은 무거우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