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5

 

제 1 장

5

 

행군은 이틀째 계속되였다.

어둠속에서 꼭 수만마리의 괴물이 달려드는것만 같은 사품치는 산골강의 드센 흐름을 밀어젖히고 송라며 머루, 다래, 칡넝쿨이 얽혀 장벽처럼 막아서는 칠칠 어둠도 박차며 대오는 전진하였다.

맹산툰에서 잠시 휴식하고 신선동의 높은 산인 삿갓봉에 당도해서야 숙영구령이 내렸다.

그 자리에 털썩 쓰러져 헐떡거리는 대원들의 몸에선 김이 문문 피여올랐다.

이틀간의 행군에서 대부분 대원들의 신발이 거덜났다. 하루밤에 백여리나 되는 천고의 밀림을 헤쳐왔으니 로동화나 짚신감발이 견딜리 없었다. 신발도 문제였지만 더 급한것은 식량이였다. 식량이자 대원들의 생명이며 행군속도였고 부대의 화기였다.

조치삼과 김홍수가 멀지 않은 채바퀴골로 식량공작을 떠났다.

삿갓봉에 올라 지형을 고삿고삿 여겨보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망원경을 들고 다가서는 방철룡소대장에게 물으시였다.

《소대장동무, 저― 락타봉골짜기에 할바통하로 흘러드는 지류가 있지요?》

《있소. 왜 그러오?》

《저 강 버새벼랑밑에 깊은 소가 있는데 그곳에 밀가룬지 강냉이가룬지 가루포대가 있을거예요. 언젠가 7련대가 락타봉아근 목재소를 치고 로획한 가루포대를 마차에 싣고오다가 적들이 추격해와서 그 소안에 집어던진 일이 있잖아요?》

방철룡은 눈이 번쩍 뜨이는 소리에 짙은 눈섭을 쭝긋하고 치떴으나 인차 미타한듯 두툼한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게 언젠데··· 아직 그대로 있을가? 있다 한들 먹을만 하겠소?》

《그대로 있기만 하면 아무 일도 없을거예요. 가루포대는 물속에 던져넣어도 겉층만 약간 젖을뿐 속엔 물이 스며들지 못해요. 산골물은 이가 시리게 차니 변할리도 없구요.》

그른데 없는 말씀이여서 방철룡은 큰 눈을 슴벅거리며 그이를 감심하여 바라보는것이였다.

하긴 짐승을 사냥하여 산골물에 담그어두면 온 여름내 생생한 고기를 먹을수 있다. 그래서 산골내물을 유격대의 랭장고라고도 한다.

방철룡은 사령관동지께 말씀드려보기로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채바퀴골로 내려간 조치삼이네보다도 수확이 더 클수 있겠다고 하시면서도 이 추운때 찬물속에 자맥질해들어가 가루포대를 건져내올수 있겠는가고 걱정하시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방철룡이 나섰으나 사령관동지께선 두메산골태생인 동무가 웬걸 자맥질을 배웠겠는가고 손을 저으시였다.

그때 생각지도 않았던 리준상이 선듯 앞으로 나섰다.

《내가 가겠습니다. 난 바다가마을에서 나서자라 헤염을 잘 칩니다.》

《당신이?》

방철룡의 우툴머툴한 얼굴엔 놀라움보다도 랭소같은것이 얼핏 스쳐지났다.

《국제당에서 보내온 〈손님〉을 찬물속에야 어떻게··· 됐소, 우리 일은 우리가 하겠소.》

《소대장동무, 우리란건 누구구 나는 또 뭐요? 혁명가들사이에 이건 무슨 편견이요?》

《혁명가?···》

《아, 됐소. 준상동무에게 그런 재간이 있었소?》

사령관동지께서 말총을 쏘려는 방철룡을 제지시키며 리준상의 편을 들어주시였다. 리준상의 창백해진 얼굴에는 늘 자기를 그닥잖게 여기는 방철룡에게 실천으로 자신을 보여주려는 결연한 빛이 어려있었다.

결국 김정숙동지께서는 리준상과 함께 버새벼랑밑 소로 떠나게 되셨다.

 

삿갓봉을 내릴 때 물기를 머금은 재빛구름이 낮추 드리웠던 하늘에서 진눈까비가 푸득푸득 떨어졌다. 준엄한 겨울을 예고하는 이해의 첫 눈이였다.

리준상은 묵묵히 앞서걸었다. 불신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였다. 산을 내려 골짜기의 고샅길에 들어섰을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야기를 붙여볼양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서시였다. 리준상은 기다렸던듯 반색하며 제먼저 말꼭지를 떼였다.

《우리가 가는 소의 웃쪽벼랑을 왜 버새벼랑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옛날인지 근세인지 어쨌든 한 농부가 사둔집 환갑연에 가느라고 노새를 타고 떠났답니다. 농부가 기분이 흥 떠서 사둔집에서 노새 한마리쯤이야 잡았을테지 하고 혼자말을 하였는데 노새란 놈이 아이쿠, 도살장으로 가는 길이구나 하고 지레짐작하며 그 벼랑턱에서 앙버티며 움직이질 않았답니다. 주인이 화가 나서 채찍질을 하였더니 노새는 벼랑밑 소로 풍덩 뛰여들었다질 않습니까. 농부는 기가 막혀 〈에잇, 버새같은 놈!〉하고 욕지거리를 했다던지.》

노새는 암말과 수하늘소 새끼이고 버새는 수말과 암노새의 교잡종인데 그닥 령리하지 못한 짐승이였다.

《어떻게 그 일화를 다 아는가요?》

《예, 추수폭동을 전후해서 나도 이 고장에 왔던적이 있답니다. 다부산자를 입고 폭동을 선도했지요. 글쎄 방철룡의 말대로 내가 길을 잘못든 버새인지도 모르지요.》

그는 여유있게 껄껄 웃어대였다. 방철룡에 대한 일종의 야유인지도 몰랐다.

《소대장동문 유격대초창기부터 총잡고 싸운 단련되고 검열된 충직한 지휘관이며 성미는 덜렁거려도 좋은 동지랍니다. 그가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데는 그나름의 아픈 사연이 있어서 그래요.》

그이께선 두사람의 버성겨진 사이에 윤활유를 쳐주고싶으셨다.

《감정때문이 아닙니다. 리론상문제랄가, 정치적안목의 차이때문이지요.

지난 9월 도이췰란드, 일본, 이딸리아의 3국조약체결은 세계진보적력량앞에 무엇을 시사했습니까. 〈방공협정〉의 연막으로 가리워졌던 파쑈국가들의 군사정치적동맹이 드디여 면사포를 벗어던졌지요. 세계의 재분할을 확정한 이 조약체결후 히틀러는 발광적으로 침략전쟁을 전개하여 동유럽 전령토를 강점했으며 바야흐로 공격의 화살을 대쏘침공으로 겨누게 될것입니다. 한편 일제는 전략자원이 무진장한 남태평양지역에 대한 침공을 준비하면서도 씨비리에 여전히 군침을 흘리고있지요. 미국 역시 일본을 대쏘침공에 내몰려구 획책하구요. 세계정세의 이러한 추이는 반파쑈력량의 조속한 결속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여직껏 조선혁명은 반일이라는 투쟁의 공통성으로 하여 중국혁명과 한맥락속에서 흘러왔습니다. 조, 중, 쏘 세 나라 혁명력량이 하나로 되여 일제의 대쏘침략전쟁을 저지시킬뿐아니라 종국적으로 멸망시키는것은 대세의 흐름입니다. 이 흐름을 타야만 조선혁명의 승리도 있고 조국해방도 이루어지리라는 선견지명쯤이야 있어야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에서 돌이 철렁 떨어지는듯 하시였다.

《그건 국제당의 견해인가요, 아니면 동무자신의 생각인가요?》

저으기 랭정하게 울리는 그이의 음성이며 신중해진 안색이 서름했던지 열변에 달아올랐던 리준상이 얼떠름해져서 되묻는다.

《뭐가 잘못됐는가요?》

《아니, 그저··· 공불 많이 했는가부지요.》

《예, 세상을 알고싶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읽었습니다. 중학교때 〈공산당선언〉을 읽고 얼마나 흥분했던지. 그 난해한 〈자본론〉도 읽고 또 읽었지요. 난해한데 심오성이 있는것 같았지요. 맑스를 얼마나 숭상했던지 사자머리를 한 사상가들은 다 우러러뵈더군요. 난 이렇게 공산주의에 매혹되였습니다.》

그는 그 시절이 그리운지 기껍게 껄껄 웃었다.

《그랬군요.》그이께선 별로 속터놓고 얘길 나눌 기회가 없었던 그에 대해 흥미를 느끼셨다.

《그래서요?》

《어렸을 땐 헤그의 만국평화회의에 갔다가 비명에 간 리준선생을 숭배했습니다. 그가 고국을 떠나기 전에 지은 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지요.

 

사람이 죽는다는것은

무엇을 죽는다 이르며

사람이 산다는것은

무엇을 산다 이르는가

 

우리 아버지는 을사오적 리완용과 같은 성씨인것을 분개하면서 이 나라에 리준선생같이 나라생명의 피가 되는 애국자가 많아야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수 있다고 골백번 외우셨는데 아버지의 애국의 혼이 어린 나의 골수로 되였는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나는 나라위한 큰 인물이 돼야 한다는 강렬한 지향속에 성장했습니다.》

그의 잘생긴 얼굴엔 애수같기도 하고 향수같기도 한 구슬픈 빛이 어렸다.

《내 얘기가 진부하지요?》

《아니, 흥미있어요. 리준으로부터 맑스라··· 대단한 비약이군요.》

《리준의 무의미한 희생이 애통했습니다. 안중근의사의 경우도 그렇고··· 애국지사가 많다 한들 제나름의 죽음이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공산당선언〉이 희망의 등대로 여겨졌는지도 모릅니다.》

리준상은 열적게 웃더니 그이께서 귀담아들으시는 기미를 느끼자 마음의 문을 좀더 열어젖혔다.

《포부가 컸던 그 시절엔 자본의 철쇄를 부시는 일이 조선처럼 좁고 우리 민족처럼 순하고 암매한 사람들속에선 불가능해보였습니다. 난 가정을 하직하고 상해로 갔습니다. 거기선 또 손문의 삼민주의에 반해버렸지요.》

《쏘련에 가서는 레닌에게 반했겠군요?》

《물론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녀자에게 자꾸 반한다는데 난 위인숭상증에 걸렸던것 같습니다.》

《그야 뭐 탓할게 있겠어요. 길가는 사람은 좋은 길동무를 만나야 걷기 쉬운 법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겐 좋은 벗이 있어야 세상살이가 쉬운 법이라질 않습니까. 인생에는 위인이 있어야지요.》

《참 지당한 말씀입니다. 내 오늘 좋은 길동무를 만났는가 봅니다.》

그이께선 리준상의 밝아진 모습을 바라보며 상그레 웃으시였다.

《하지만 손문은 중국의 손문이고 레닌은 로씨야의 레닌이지요.》

그이께서 넌지시 던진 말씀의 의미를 리준상은 제꺽 리해하였다.

김일성장군님은 제가 이미전부터 존경해온 위인이십니다. 반〈민생단〉투쟁때 절감했지요. 이번에 처음 그분을 가까이 모시게 되였는데 듣던바보다 더 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군님께선 저더러 이번 행군길에서 얘길 많이 나누어보자고 하시더군요.》

아마 사령관동지께선 국제당이나 쏘련의 의사에 전적으로 의거하는 그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깨우쳐주려고 하신 말씀일것이였다.

그이께선 리준상의 인간상을 다소라도 파악하신것이 다행스러웠다.

피바다, 불바다를 헤쳐온 항일혁명 십수년, 수십수백번 소금에 절고 피에 절고 상상할수 없는 시련속에서 허겁쓰레기는 다 씻어버리고 알맹이만 남은 우리 대원들에 비해보면 어딘가 딴세계의 사람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성정이 깨끗하고 솔직하고 가식이 없는 인간임에 분명하였다. 그이께선 다소 마음이 놓이셨다.

그러나 그는 분명 혁명가로서나 인간으로서나 정바른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이였다. 하고보면 그는 오래동안 혁명을 해왔다고 하지만 후방밀영에서 만났던 산과의사와 다를바 없었다. 방철룡의 질시가 다소 리해되시였다. 우리야 장군님을 따르는 길이 혁명승리의 길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이께선 마음을 가다듬으시고 화제를 이으시였다.

《동무는 화상으로 산전막에 오래 누워있다보니 잘 모르는것 같구만요. 사령관동지께선 쏘련이 동서협격을 받을 위험이 증대되는 조건에서 만주에서 활동하는 무장부대들이 작전행동을 그만두고 원동지구로 철수할데 대한 국제당과 쏘련정부의 요구에 대해 충분한 리해를 표시하면서도 남의 나라 혁명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보시고 우리 무장력 전체가 원동에 철수하는 제의에는 응하지 않으셨답니다. 다만 혁명군의 핵심력량을 보호하고 육성강화하기 위하여 원동에 새로운 기지를 두는것은 찬성하시였어요. 올해 가을에 하바롭스크에서 진행하는 조, 중, 쏘 세 나라 군사지휘관들의 회의에 참석하라는 국제당의 련락을 다시금 받고 사령관동지께서 부대를 데리고 원동으로 들어가시게 된것은 우리 혁명의 요구와 국제당의 요구가 일치했기때문이랍니다.

어떤 환경, 어떤 조건에서도 조선혁명은 조선의 혁명가들과 조선인민의 단합된 힘으로 해야 한다는 장군님의 주체적립장에는 드팀이 없으시답니다.

난 어째서 동무가 중국혁명과 조선혁명을 한맥락에서 보는지, 더구나 쏘련에 의거해야 조국해방의 위업을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리해할수 없어요.》

너무나 사리정연하고 빈틈없는 론리에 말이 막혀서인지 리준상은 묵묵히 걷기만 하였다.

화제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눈발은 갈수록 더 세차졌다.

버새벼랑가까이에 이르니 뜻밖의 정황이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벼랑우에서 적들이 포대공사를 하느라고 야단법석이였다. 놈들이 연방 소에 내려와 모래도 퍼올리고 물도 길어가느라 복작거리였다.

하는수없이 눈구뎅이에 엎드려 날 어둡기를 기다려야 했다.

좀처럼 다시 입을 열것 같지 않았던 리준상이 소에 들어가는것이 불가능해보였던지 불쑥 침묵을 깨뜨렸다.

《대평구 계수촌에 내 고향 라진서 온 이모네 집이 있는데 거기 가면 식량을 변통할수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같은 때 여유식량이 있는 집이 어데 있겠어요. 인차 어두워질거예요.》

《···》

침묵이 견디기 어려워 그이께서 일상생활얘기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참, 결혼은 했는가요?》

《예. 아니···》

리준상은 왜서인지 황황히 얼버무렸다.

화제는 또 동강이 났다.

어둠이 깃들자 공사장은 사뭇 조용해졌다. 하지만 밤에도 공사를 계속할셈인지 벼랑우에 모닥불을 피워놓아 주위가 대낮처럼 밝았다. 다행스럽게도 등잔밑이 어둡다고 그 모닥불때문에 벼랑밑은 더 캄캄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지고온 갈구리달린 바줄을 허리에 동여매며 명령조로 말씀하시였다.

《내가 소에 들어가 밀가루포댈 건질테니 동문 여기서 망을 보세요.》

《그것도 말이라고 하시오. 녀성을 찬물속에 들여보내고 망을 본다는게 어디 남자가 할짓이요. 장군님을 무슨 체면으로 다시 뵙겠소. 방철룡이 알았다간 이 리준상을 주리를 틀자고 할지도 모르오.》

리준상은 펄쩍 뛰며 그이의 허리에서 갈구리달린 바줄을 풀어내려 하였다. 그이께선 바줄을 꽉 움켜쥐며 안타까이 말씀하시였다.

《동문 화상자리가 채 아물지 않아 물에 들어가면 안돼요. 그러다 상처가 성을 내면 어쩌겠어요.》

《상처구 뭐구 정숙동무를 찬물속에 들어가게 한다면 난 평생을 두고 자신을 용서치 못할거요. 제발 그러지 마시오.》

그의 요구는 절절하고도 완강하였다.

《이보세요, 통신원동무.》

그이의 어조는 흥정할 여지가 더는 없다는듯 딱딱하고 실무적이여서 리준상은 흠칫 놀라기까지 하였다.

《동무는 왕청현경까지 가서는 우리와 헤여져 북만으로 가게 되여있지 않습니까. 지난해 위증민에게로 가던 통신원들이 적들에게 체포되였다는 소문이 있어 취한 조치란걸 동무도 알지 않나요. 북만에서 활동하는 허형식, 박길송동지들에게도 무모한 희생을 피하고 귀중한 혁명동지들의 보존육성을 위해 원동의 새로운 기지를 활용할데 대한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전달하는건 매우 중대한 임무가 아닙니까.

우린 김일성동지를 곧 조선혁명이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사령관동지의 구상과 의도를 관철하는것이 조선혁명의 길이며 조국해방을 이루는 길이라고 우린 확신하고있어요. 제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혁명에 나선 조선의 혁명가라면 삶의 좌표를 응당 자기 령도자의 사상과 로선에 일치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준엄한 요구에 비해볼 때 남자의 체면이나 인격이 무슨 큰것이겠어요.》

리준상은 쇠몽둥이에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듯 뻥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가 손쓸새없이 재빨리 소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시였다.

《아니? 정숙동무!》

《론쟁은 돌아가는 길에 마저···》

그이께선 우스개소리처럼 말씀하시며 손을 흔드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속을 배밀이로 살살 기여 소가까이에 다가붙자 갈구리를 살며시 물속에 떨구시였다. 아무리 요리조리 훑어도 걸리는게 없다. 누가 먼저 선손을 쓴것이나 아닌지 등골이 서늘해지셨다. 몇번이나 갈구리를 다시 던지고 휘둘렀으나 여전히 허사였다.

그이께서는 겉옷을 벗어 눈속에 밀어넣은 후 바줄 한끝을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에 비끄러매고 갈구리가 달린 다른 한끝을 허리에 동인 후 물속으로 뛰여드시였다.

뼈시리게 찬 물속에 몸을 잠그는 찰나 무슨 기미를 챘는지 벼랑우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얏?!》

뒤따라 불뭉치가 일제히 벼랑아래를 내리비쳤다.

그이께선 물속에서 숨을 죽였으나 갑자기 불빛휘황한 무대에 홀로 나선 느낌이였다. 순간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졌다. 뜨거운 탄알이 쉑쉑거리며 앞뒤, 좌우에 우박처럼 쏟아진다. 총알소나기가 차츰 뜸해지더니 자지러진 총소리가 멀어져갔다. 리준상이 적들을 유인해가는 모양이다. 그가 무사해야겠는데··· 그이께선 움츠렸던 몸을 쭉 펴셨다. 그찰나 발끝에 물큰하는 촉감이 오셨다.

(있구나!)

심장은 엄청난 기쁨에 터질듯 하셨다. 물우에 떠올라 깊은 숨을 톺고난 그이께선 다시 자맥질해들어가면서 바닥에 갈구리를 쿡 박으셨다. 다시 솟구쳐올라 바줄을 살근살근 당기니 가루포대가 물우로 떠오른다. 그렇게 두포대를 건져내신 후 바줄 량끝에 동여매여 언덕우로 끌어올리시였다.

가까스로 리준상과 헤여진 곳에 이르시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눈구뎅이엔 둘둘 만 그의 솜저고리가 있을뿐이였다. 아마 적을 유인해가면서 몸이 젖었을 그이를 위해 벗어놓았을것이다. 젖은 몸에 그 솜옷을 걸치시니 금시 훈훈해난다. 마음도 따뜻해나는듯싶으셨다.

아무리 기다려도 리준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것이나 아닌가 하는 걱정에 가슴이 졸아드는듯 하셨다. 혹 눈먼 총알에 쓰러진것이나 아닌가싶어 아근의 눈무지를 샅샅이 뒤지시였으나 허사였다.

푸릿한 서쪽하늘에서 새벽별이 깜빡거렸다. 머지않아 날이 밝을것이다. 날밝기 전에 어떤 일이 있어도 숙영지에 당도해야 하였다.

예상치 않던 정황이 생기면 숙영지에서 만나기로 약조가 되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바줄을 어깨에 걸고 포대를 끌고가기 시작하시였다. 맥이 진하여 쓰러지자 기면서 끄시였다.

젖은 옷은 갑옷처럼 꽜꽜해져 여린 살을 칼질했고 베여진 상처에선 피가 흘렀다. 방울방울 생명이 빠져나가고있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정신도 흐리마리해졌다. 무의식중에 손끝에 닿는 나무가지를 움켜잡으며 있는 힘을 다해 당겼더니 땅이 푹 꺼져들며 무슨 구뎅이에 나동그라지셨다.

구뎅이안은 퍼그나 아늑하여 잠이 소르르 밀려든다. 몸은 한정없는 나락으로 자꾸만 떨어져내린다. ···

정숙동무―

분명 사령관동지의 음성이시였다.

그이께선 소스라쳐 놀라 무거운 눈시울을 드시였다.

(잠들면 끝장이다. 여기서 쓰러져선 안돼. 기어이 가루포대를 가져가야 해.)

김정숙동지께선 필사의 몸부림으로 눈앞의 나무뿌리를 움켜잡고 몸을 솟구시였다. 기고 또 기여가시였다. 그러다 또 의식을 잃으시였다. ···

정신을 차리고보니 서순옥의 무릎에 누워계셨다. 빙 둘러선 전우들이 근심스레 굽어보고있었다. 그이께선 리준상을 애타게 찾으셨으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준상동무는?》

《그 사람이 어떻게 됐소?》

방철룡이 얼굴이 시커매지며 되묻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 같아 웃몸을 일으키시였다. 그이께선 행여나 무슨 글쪽지를 남긴것이 없나 하여 리준상의 솜저고리를 뒤적이시였다. 안주머니에서 차곡차곡 접은 신문 한장이 나왔다. 《만선일보》였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관동군 《위문》차로 만주행을 한 김활란 녀류명사제씨들의 소식이 사진과 함께 실려있었다. 억실한 눈에 애교있는 미소를 띠운 류정연의 모습도 있었다. 그는 일행중의 유일한 젊은 녀성이였다.

리준상이 왜 이 신문을 품고다녔을가? 이들중의 누구인가와 인연이 있는것은 아닐가? 류정연이 무산혁명의 길로 간 애인의 행적을 찾자고 만주행을 했었다고 하였지. 하다면 그들이 혹 련인들은 아닐가? 별안간 뇌리를 치는 생각에 그이께선 벌떡 일어서시였다. 그들의 길이 또 어긋난것이 마치 자신의 불찰이기라도 하신듯 그이께선 다시 떠날 차비를 하시였다.

《정숙동무, 어쩌자고 그러오?》

방철룡이 그이를 막아서며 하는 말이다.

《이걸 놔요. 리준상을 찾아와야겠어요.》

《그만두오.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 정숙동문 다는 모를게요. 언젠가도 말했지만 반〈민생단〉투쟁의 미친 바람이 불 때 동만특위에 있던 종파분자 도투불왕가랑 밀려다니는 리준상을 내 눈으로 봤소. 다부산자를 입고 중절모를 썼댔지만 내눈은 못 속이오. 제 갈길을 갔겠지.》

《제 갈길이란 어디예요?》

《코민테른 7차대회에 문건을 가지고갔던 윤병도 말이요. 룡정에 지하공작 나갔다가 체포되더니 얼른 변절하고 말더구만. 리준상도 뒤집힌 거부기지.》

김정숙동지께선 억이 막히시여 눈앞이 아뜩해지시였다.

(사령관동지께 이 사실을 어떻게 아뢴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