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3

 

제 9 장

3

 

향옥이는 며칠째 자리를 펴고 누워있었다. 천성이 강직하지 못하고 세파에 부대껴보지 못한 향옥에게는 이즈음 당하는 정신적고통을 이길수가 없었다.

백지주의 사랑채에서 《협화회》연사라는것들이 개코망신을 당하고 그렇게 세도가 도도하던 백지주 당자도 아낙네들의 사품에 정신잃고 허겁지겁 도망쳐버리던 일을 생각하면 향옥은 지금도 가슴 한쪽이 서늘하고 그날밤의 무섭던 기세가 일시에 자기를 짓눌러버릴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히는것이였다.

부락을 등지고 살며 남모르는 리속을 차려가지고 맑지 못하게 살아가는 자기들의 검은속을 누가 들여다본다거나 어찌어찌 실수를 하여 그것이 드러나는 때에는 이 동리에서 쫓길것은 물론이려니와 사람사는곳이라고 이름이 지어진 땅에다가는 울짱을 박지 못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갔다.

향옥은 이 답답하고 숨막히는 환경에서 어떻게 탈피하며 량심의 가책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하루라도 편히 살수 있으려나 하는 목마르게 그리는 갈망속에서 매일같이 허덕이고있었다.

한쪽에서는 시어머니가 밤낮으로 손가락을 굽혔다폈다 하면서 동네 가난한 집들에 뿌려놓은 변돈의 리자를 계산하느라고 속으로 중얼중얼하고 다른쪽에서는 함석필이가 지주의 턱밑에서 황금이 떨어지기만 바라면서 아차아차 숨박곡질을 해가며 때론 술이 거나하여 주정도 부리고 백지주를 죽여버릴것처럼 증오도 하고 아라가와를 피에 사무쳐 저주하는 모양을 더이상 참고 볼수가 없었다.

아라가와는 이즈음에도 향옥이를 찾았다.

그는 아프다는 핑게를 대고 만나주지 않았다.

이러다가 향옥은 자리에 몸져 누워버리고말았다. 그새 춘옥이가 두번, 방숙이가 두번 찾아와서 위로도 하고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들은 보매 구장누이의 심부름을 오는것 같았다. 말끝마다에서 구장누이의 이야기가 비치고 그때마다 그들은 존경심을 품고 말하군하였다.

향옥은 구장누이를 중심으로 부락아낙네들이 심상치 않은 일을 꾸미고있다는것을 점점 분명히 느끼고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자기마저, 그 일에,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분명 남편과 이 집을 배반할수밖에 없을 그 일에 끌어들이려 한다고 향옥은 생각하였다.

그래서 향옥은 부락녀자들이 찾아오는 때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만나주지 않았다. 그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를 떨어져 살아보겠다고 독한 생각을 품은 때는 없었다.

녀자가 첫남자를 잘 사귀는것이 백가지복의 근본이 된다고 귀에 길이 나도록 들어온 향옥이였다. 지금같지 않았던 이전에는 그래도 어느 도회에서 온다는 운전사하고 들뜬 한담도 하고 정말 자동차 타고 큰도회 구경을 한번 가봤으면 하는 소원도 있었지만 남편에게서 점점 정을 잃어가는 이즈음에는 오히려 그런 외딴 생각이 전률할만치 무섭고 남편 떠날 생각을 조금도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이상한 병적충동이 자주 일어나는것이였다. 그것은 죽음을 예감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것과 같이 자신도 모르게 가정의 파탄을 예감하게 되는 애달픈 생각이 그것을 발버둥쳐 물리치려는것 같았다.

지금은 조반전이였다. 늙은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지어 상을 차려놓고는 동네에 나갔다. 함석필은 이즈음 거의나 공사판에서 세월을 보내고 집에는 가끔 들어오군하였다. 때식도 집에서 치르는 일이 드물고 대개는 백지주집에서 먹군하였으며 현장에 생겨난 색주가들에게 외상을 대고 며칠씩 붙박여 살기도 하였다.

그는 안해에게 불만이 있어하였다. 첫째는 자기에게 정을 붙이지 않는 안해에 대한 불만이고 둘째는 아라가와에 대한 질투에서 오는 불만이였다. 함석필은 자기의 사나와져가는 성미가 순전히 안해때문은 아니고 보다는 자기가 빚어낸 불행의 탓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자기도 포함한 그 전체를 타매하며 짓뫃아버리고싶은 충동에 휩싸여버리는것이였다.

집을 영 잊어버리는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아침에 들어왔다. 늙은이는 없고 제손으로 밥을 찾아먹는 성미도 아니고 하여 향옥이는 떨리는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일어나앉았다. 대충 머리를 비다듬고 잠자리옷을 갈아입고 벽을 짚으면서 가까스로 아래방에 내려갔다.

함석필은 안해의 파리하고 창백해진 몰골을 보자 이마를 찌프리고 담배를 붙여물었다. 향옥은 상을 차렸다. 찬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들이 들어오지 않는 때이면 늙은이는 국도 끓이지 않고 콩을 조금 둔 노란 조밥에다 막장을 찍어먹었다.

향옥은 남편의 시간이 얼마나 급한가 묻지도 않고 국을 끓이려고 아궁에 불을 지폈다.

《점점 세상돼가는 꼴이란.》

함석필은 밑도끝도없이 푸념을 하였다.

《오늘은 공사판이 텅텅 비였소. 시라소니같은 늙은 연사들이 깨죽을 쑤어놓고 도망치는통에 녹았단말이야. 백주사라는건 낯짝이 까매서 돌아가지. 아라가와라는 녀석은 되지도 않게 누구더러 을러메지 않나 더러워서.》

향옥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귀로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그의 말을 들었다.

《한데 문제는 이 부락이 심상치 않게 놀아나는 꼴이란말야. 부역을 태만해도 분수가 있고 세력가들하구 맞서두 분수가 있는 법이야. 무슨 작당들을 하고 덤비는지 모르겠단말야. 무슨 코를 떼우자고, 그렇지 않아도 가와사끼대좌가 곧 현지시찰을 하겠다구 백지주한테 련락을 보내오기까지 하였는데, 한데 녹는건 부락만이 아니야. 드러워서 돈 바라고 하던 노릇이 목숨까지도 갖다 바치게 될지도 몰라.》

함석필은 분명 향옥이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오손도손 말해주게는 안됐고 그렇다고 사태의 진상들을 알려주지 않을수 없고 하여 푸념처럼 외우고있는 모양이였다.

그래도 향옥은 꼼짝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머리우에 함석필의 노한 눈길이 활촉같이 날아와 박히는듯 한 따가운 느낌을 받았으나 입술을 깨물고 대척을 하지 않았다.

동네 일을 가지고는 이러니저러니 따질것이 없다. 그래봐야 점점 이 집이 망해가는 꼴밖에 볼것이 없다고 향옥은 생각하였다. 부락을 상대해서 주먹질을 해대는것처럼 이제는 가소로운것이 없었다. 향옥은 백지주나 아라가와나 무슨 가와사끼라고 하는것들까지 소동을 벌린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 않으리라 마음을 굳게 가졌다.

자기 하나가 자꾸 동요하고 마음을 걷잡지 못하게 되면 함석필이도 망하고 자기도 망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대로는 정말 살수가 없다. 향옥은 떨리는 다리를 짚고 일어나 사품치며 끓어번지는 가마에 간장을 풀고 산나물을 썰어넣었다.

《당신 거기 좀 앉우.》

함석필은 드디여 안해에게 정면으로 말을 걸었다.

《오늘은 좀 시비를 따지면서 할말이 있어. 게 앉으라니까.》

《할말 있으면 하지요.》

향옥은 야멸차게 쏘아붙이고 아찔해지는 머리를 들고 그를 보았다. 함석필은 어처구니 없었던지 입을 하-벌리고 지켜보더니 단단히 어떻게 잡도리를 할것처럼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오늘 내앞에서 똑똑한 말 않다간 경칠줄 알라구.》

향옥은 그저 마른침을 삼키며 원망에 차서 함석필을 보았다.

《당신 야학에 꼬박꼬박 나갔다는게 그게 진정으로 하는 말이였어. 엉? 다른 사람앞도 아니고 자기 남편앞에서 꼭 그래야 마땅한가? 어서 그것부터 말하라구.》

향옥은 금시 쓰러질것 같은 다리를 가까스로 짚고 서있었다.

《말하라니까. 화단은 거기서부터 일어난거야, 녀자가 시집을 왔으면 남편하는 노릇에 고분고분 따를것이지 동네에 군서방이라두 차리구있어? 맘은 엇따두구 뒤발질이야. 녀자가 제멋에 놀아나면 패가망신을 하는거야 어서 말하라구. 야학에 몇번이나 갔댔구, 가서 뭐뭐 배웠고 야학방공기가 어떻더라구?》

향옥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 서러움이 북받쳤다. 자기가 어쨌다고 이렇게 남편앞에서까지 문초를 당해야 하겠는가?

《그냥 입을 봉하고있을터인가. 집안이 두쪽이 나두 그냥 독하게 맞설터인가말야. 내혼자 잘먹구 잘살자구 이 노릇하는것두 아니구 남들이 돈냥이나 있다구 거들먹거리는걸 보지 못해? 놀아나는꼴 보지 못하는가?》

함석필은 금시 주먹을 휘두를것처럼 흥분하였다.

《난 당신더러 내 걱정을 하라구 하지 않았어요. 난 이 노릇이 싫어요. 당신의 처사가 미워서 못견디겠어요.》

《아니 이것보지.》

함석필은 기가차서 지켜보았다. 안해는 똑똑하고 야멸차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우물쭈물하였다면 엄포라도 놓을것이지만 이렇게 똑똑하게 맞서는데야 무슨수로 굽히겠는가? 함석필은 이 지경에 이르고보면 자기의 약삭바른 속심이 안해에게서도 너무 여지없이 드러나 모멸을 당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는 기막힌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 하는 노릇이 싫으면 어쩔터인가. 돈이 싫으면 어쩔터인가말이야?》

《남처럼 왜 정정당당하게 벌지 못해요. 자신도 떳떳치 못하게 생각하는 그 일을 부디부디 할것은 무어란말예요.》

《그렇게 해서 돈이 생기는가? 백지주랑 하는걸 눈뜨고 보지 못해?》

《난 싫어요. 난 돈이 이렇게 치사한줄 몰랐어요. 곱게곱게 번돈이 아니면 나는 싫어요. 베치마 입구 똥통 메구 농사짓는게 차라리 편하지요.》

향옥은 울먹거렸다. 남편의 적삼자락을 붙들고 이제라도 마음을 돌이키라고 애원하고싶었다. 그러나 그 남편은 자기가 얼굴을 묻고 눈물이라도 뿌릴만큼 사내답지 못하였다. 령상에 칼을 들고 나앉은 강도에게라도 계집이 쓰러져 울만한 믿음은 있으련만, 이건 강도보다 못한, 강도보다 떳떳치 못한 인간이 아니냐. 부락을 해치고 사람들을 해친다면 이것이 강도보다 나은것이 무어란말인가.

향옥은 드디여 눈에 피발이 섰다.

《당신이 정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부락을 등진다면 난 이 집을 뛰쳐나구말겠어요. 그만두어요. 제발 그만두어요.》

《뭐? 제가 뛰쳐나 어디가 살것 같애. 아라가와가 가만둘줄 아는가?》

《내가 살기를 어디가 살아요. 치마를 뒤집어쓰고 강물에라도 처박힐테야요.》

향옥은 풍덩 쓰러져 얼굴을 손으로 싸안고 몸부림치며 울기 시작하였다.

함석필은 문짝이 짜개지게 후려닫고 밖으로 나왔다. 실은 향옥이를 권용산의 집에 보내여 기동을 엿보라는 백지주의 지령을 받고 집에 들린것이였다. 이제는 이 일에 향옥이를 발동하기는 글러먹은것이였다. 함석필은 자기가 직접 가보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지금 권용산은 집에 와있었다. 어제밤 산판에서 내려와가지고 장작을 패고있는걸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다.

요즘 산판에서는 인부들이 일삯을 올리라는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일으켰다. 산판에 갔던 농민들의 한떼가 또 마을로 돌아왔다. 그래서 급해맞은 백지주는 뻔질나게 산판을 오르내리면서 함석필에게는 권용산네 집에 단단히 주목을 돌리라고 일렀다.

백지주는 권용산에게 주목을 돌린지 오랬다. 구장누이와 춘옥이네가 소를 뺏어내가고 마을 아낙네들을 휘동해서 씨붙임을 하는거랑 보면 이것이 권용산의 처사와 관련되지 않을수 없다고 인정하였다. 그래서 권용산의 일거일동을 주의깊이 살펴야 하겠다는 속심을 가졌다.

함석필은 권용산의 집으로 갔다. 권용산은 힝힝 코바람을 울리면서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있었다. 춘옥이는 남편이 패놓은 장작을 안아다가 외양간모퉁이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함석필은 울바자모퉁이에 붙어서서 잠간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들은 지세경이와 쌍별이가 비둘기처럼 다정히 좋아지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있었다. 권용산은 지세경을 칭찬하였다. 춘옥이는 쌍별이를 내세웠다. 부부사이에는 제법 유쾌한 말싱갱이가 벌어졌다. 문을 제쳐놓은 장지문앞에는 이 집 늙은이가 담배를 피워물고 앉아서 대견히 젊은이들을 내려다보고있었다.

함석필은 기침을 하여 인적기를 내면서 삽짝을 밀고 들어갔다.

《형님 오셨군요.》

《응. 자넨가?》

권용산은 여전히 도끼질을 하면서 대꾸하였다.

《며칠 있을 차비루 내려오셨나요?》

《건 왜?》

권용산은 나무에 도끼를 박아놓고 허리를 폈다.

《형님네 십가에서 토성공살 하지 않아서 내가 그냥 추궁받는 형편입니다.》

《자네가 어찌된 일인가. 그야 우리 십가가 책임질 일이 아닌가?》

《내가 형님네 십가까지 책임을 맡았거던요. 형님이 왔으니 동원을 좀 시켜주시오.》

《이사람, 그럴 시간이 없네. 오늘은 신파장엘 좀 가야겠어. 》

《장에는 왜요?》

《이 신발을 보게.》

권용산은 창이난 한쪽신발을 들어보였다. 그는 김정숙동지의 지시를 받고 주창범을 만나기 위해 두번째로 벌사촌으로 갈 차비였다. 함석필은 자못 딱한 기색을 짓고 서있다가 돌아섰다.

《이사람 석필이, 자네한테 한마디 귀띔해두 좋겠는가?》

《하지요. 뭘 어려울게 있습니까?》

《난 딴맘 먹구 하는 소리가 아니니 들어두게. 자네 듣자하니 공사에 사람동원하느라구 몹시 부산을 핀다는데 부락 인심을 너무 등지진 말게. 농사군이 씨뿌릴철에야 응당히 씨를 묻고봐야 할게 아닌가?》

《그런데 어디 경찰서가 사정을 보게 합니까?》

《세상에 시키는 일 다하구 죽은 무덤은 없어. 사람이란 머리우의 강권은 받아넘겨두 옆구리 인정은 물리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네.》

함석필은 자못 딱한 기색을 짓고 망설였다.

《백지주한테 사정드려 보지요.》

《백지주가 뭐 발이 저린다고 자네 청을 들어주겠는가. 지주야 아낙네들이 농사를 짓고 남정들이 산판에서 채벌을 하고 이러면 횡재를 하는판인데.》

함석필이 보려니까 춘옥이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있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어떤 모욕처럼 느껴져서 지탱하고있기가 힘들었다. 그는 바삐 삽짝을 밀치고 나와버렸다.

백지주집에 오니 마침 지주가 셋째첩이 재워주는 약담배를 태우면서 함석필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집에 가니 안해가 여직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뜨락밖에도 출입을 못할 형편이여서 제가 대신 갔다왔노라고 하였다.

《그래. 그 사람은 갑자기 무슨 일로 부락에 왔다던가?》

《그건 모르고 왔지요.》

《그걸 모르고 와?》

백지주는 기상이 도도해졌다. 요즘 함석필을 대하는 지주의 태도는 이전같지 않았다. 강권으로 누르려는 기세가 헨둥하고 여차하면 뺨이라도 후려칠 잡도리다. 안팎으로 일은 안되고 게다가 량주가 나서서 부락의 렴탐군노릇을 맡았다는것이 소득을 가져다주는것이 없고 하여 뒤틀릴대로 뒤틀린것이였다.

《아니 자네가 무슨 임무를 띠고 다녀왔는데 그것도 몰라?》

《직판 왜 왔느냐고 묻기도 어색하고, 그래 며칠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그건 왜 묻느냐고 따지질 않겠어요.》

《그걸 따져?》

《그래서 며칠 있게 되면 공사동원을 좀 해달라고 했습지요.》

《그러니 뭐라고 해?》

《창이난 신발을 들어보이면서 신파장에 가야겠다구 하더군요.》

《아니 산판일이 얼마나 급하게 그따위 일루 제가 가? 고현놈같으니, 그런데 이사람.》

백지주는 눈에 자못 엄엄한 기상을 싣고 함석필을 노려보았다.

《가만 보니 자네가 이즈음 하는 행실이 탐탁칠않아. 자네 녀편네가 하는짓 봐두 그렇구. 부락이 소란한건 어디서나 뵈는 일인데 자네들 눈에는 그게 영 안뵌다니 이게 고약한 노릇이 아닌가?》

함석필은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달아가지고 서있었다.

《난 그래두 자넬 똑똑한 신식청년으로 알구 좀 부락의 중대사를 맡겼던것인데 일본새가 이러하다면 생각을 달리 가질수밖에 딴도리가 없는거네. 산판에서 자네 몫으로 떼돌리겠다고 약조한 채벌지는 딴사람에게 넘겨야겠구 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주사님이 그렇게 채근하면 저에게도 할말이 있습지요. 저는 이 일을 순전히 돈보고 한 노릇도 아니고 주사어른께서랑 대좌님의 믿음이랑 저버릴수가 없어 시작한 노릇이지요.》

함석필은 속심은 빼돌리고 전혀 생뚱같은 소리를 하고있었다. 백지주같이 롱간질하는 사람앞에서는 량심따위를 뽑아버리고 알량하게 협잡을 해서 욕될게 없다고 생각하였다.

백지주는 자못 놀라와하는 기색이였다.

《자네 그게 진마음을 먹구하는 소린가?》

《진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할것이 없어 궁상스런 이런 일에 발목을 잡히겠습니까? 돈도 돈이지만 의리루 해드리는줄 아십시오.》

《그것 참!》

백지주는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수 없으나 자못 감격한 모양을 내보였다.

《그렇다면 내 실언을 했군. 아무리 아래사람이기로 실언을 했은즉 사과를 해야겠네.》

백지주는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령감님은 언제나 성급하셔. 함십가장, 노여워말구 좀 올러오시구래. 약주나 한잔 드시고.》

셋째첩이 치마자락을 움켜쥐고 하얀 버선발을 내짚더니 총총히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함석필은 돌아서나왔다. 백지주는 막지 않았다. 그는 벌써 다른 일로 신경을 쓰고있었던것이다.

(권용산이 신파장엔 왜 간다는거야. 이사람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겠는가 미행을 붙여봐? 헛일 세움치고, 그래 파출소 경관 하나를 띄워봐야지. 술 한잔 공으로 떼울셈치구.)

백지주는 셋째첩을 불러 곧 파출소로 올려보냈다. 이런 일은 제살점같은 셋째첩이 아니고는 본댁네도 믿지 않으려는 백지주였다. 령감의 신의를 잘 알고있는 셋째첩은 부랴부랴 나들이차림을 하고 파출소로 떠나갔다.

백지주는 권용산이와 관련해서 구장의 눈치도 좀 살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권용산이와 구장은 이전부터도 자별한 친동기같은 사이다. 구장이라는 사람이 워낙 농사일에 미립이 트지 못한 사나이고 훌훌 떠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사귀여 놀음이나 잘하는 사람인데(백지주의 눈에만 아니라 일반의 평가가 그러하였다.) 그래서 권용산은 구장네 일을 제집일처럼 도맡아해주었다.

권용산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구장에게도 일이 있는것으로 된다. 백지주는 그렇게 생각하고 강성태를 찾아갔다. 강성태는 마침 공사장을 돌고 들어와 늦은 아침상을 받고있었다.

《진사어른 오셨소?》

강성태는 두어숟갈 뜨다 만 밥상을 그대로 물리고 토방에 나왔다.

《구장이 수고가 많소구려.》

백지주는 손잡이에 쇠가 달린 적목지팽이를 짚고서서 강성태의 부석부석한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그래. 공사형편이 어떻습디까? 오늘두 이웃부락 농군들만 일하고있나요?》

《뭐 형편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소.》

《고현놈들, 경찰서에 잡혀가 주리를 틀어봐야 정신들 차릴터인가?》

강성태는 대척을 않고 담배를 피웠다.

《곡우가 언제요. 날거리는 왜 이리두 따스한지 원.》

강성태는 애매한 소리를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날거리가 이렇게 좋으니 농군들이 씨뿌리지 않을수 없다는 태도다.

《토성공사일루 본다면 이건 구장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아니겠소?》

《아니, 백진사어른은 어떻거구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구 그러오?》

《구장이야 경찰이 전적 신임을 하구 낸것이구, 게다가 부락민들이 …》

《그런 말씀 마시오. 신임은 말뿐이구 아라가와대위는 노상 진사어른댁에서 묵구 일사를 벌리더군요. 그래서 난 아예 토성공사는 상관을 않고있지요. 가와사끼대좌앞에서두 난 신임이 없을뿐더러 따라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립장이요.》

강성태는 상당히 불만을 가진 사람으로 행세하였다.

《그건 무슨 소리요. 책임을 느끼지 않겠다니?》

백지주는 벌컥하였다. 가와사끼앞에서 강성태가 책임을 피한다면 전적으로 자기에게 짐이 실리지 않을수가 없다. 기실 아라가와가 강성태모르는 속심을 늘 비치고있는것도 사실이고 함석필부부를 렴탐군으로 집어넣은것 같은 일은 강성태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백지주는 다소 황급해났다.

《그렇다면 구장이 사람단속만이라도 똑똑히 해야지 팡가쳐두어서야 되겠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권용산은 왜 산판에서 내려왔소?》

《아니, 그런 일이 있었소?》

《그런 일이 뭐요. 그 사람이 오늘 신파장에 간다는데 그것도 모른단말이요?》

강성태는 자못 긴장하였다.

(이놈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가. 권용산은 신파 벌사촌으로 공작을 들어가는데 이놈이 무슨 낌새라도 맡으면 야단이 아닌가?)

《참, 진사어른은 공연한 신경을 쓰고계시오. 권용산이 왔다면 량식쌀 가지러나 왔겠지. 장은 무슨 장이겠소?》

《함석필이 직접 가보고 왔는데도 내가 공연한 소리요?》

《아하, 일전에 그런 일 있었군. 권용산 그 사람의 발이 도둑놈발이 아니요. 지하족 두개를 잘라서 하나를 기워야 발에 꿰는 사람인데 며칠전에 발에 맞는 신발을 자비루 구하겠다구 말한바 있소.》

백지주는 좋지 않은 기색을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보면 자기가 공연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경관들이란것이 조건이 없어 술소리를 못하는놈들인데 이제 장마당구경을 하고 돌아와서 술처먹겠으니 야단이 아닌가.)

그러나 백지주는 한편으로 강성태의 말을 그대로 다 믿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