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4

 

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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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13도구 남가반점(음식점)의 뒤골방에 능포산이와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있었다. 언제나 불평과 울적한 심사에 잠겨 말동무도 없이 쓸쓸히 지내는 능포산은 강성태가 올라오기만 하면 늘 끌고오는 이 수수한 단골방에 어느덧 정을 붙여 그 흔해빠진 초물방석 한장 없는 장판바닥에 엉치를 붙이고 앉아 즐거운 술잔을 기울이군하였다.

전기료금미납으로 며칠째 개업중지를 당한 반점에서는 방들에 어유방등이나 혹은 남포등을 들여놓았다.

몸에 후끈후끈 열이 날 정도로 알맞춤히 취해버린 그들은 술상머리에 올려놓은 남포등에 이마를 쪼아가면서 기분이 들썽하여 권커니작커니 하며 술을 들이켰다.

강성태는 요즘 능포산이와 상종하는 일이 많아졌다. 구실은 마을에서 벌어지고있는 일들을 서장에게 보고도 하고 지시도 받고 또 남다른 친분관계로서 두루 만난다는것이였으나 실은 아라가와의 거동을 엿보기 위해서였다.

강성태는 무산에 현지료해를 갔다는 경찰이 무슨 자료를 쥐고 나타나는가 하는것이 문제였다. 조금이라도 적의 눈치가 달라지면 즉시에 김정숙동지를 피신시킬 잡도리를 하고있었다. 집에서는 안해에게 단단히 과업을 주어 어떤놈이 불의에 기습하지 않나 단단히 살피게 하였고 자기자신은 무슨 일거리든 만들어가지고 뻔질나게 경찰서를 나들었다.

강성태에게는 부락에 놈들이 박아넣은 밀정이 있어가지고 어디서나 김정숙동지의 일거일동을 살피고있다는 예감이 항상 있었다. 그것이 어떤놈들인가?··· 그놈을 알아내여 단단히 방비를 세우지 않고는 앞으로 무슨 화단이 미치게 될지 모른다고 그는 굳이 생각하고있었다.

강성태는 놀음으로 마시는 술이 아니고 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들이키는 술이여서 취하지는 않고 갈수록 정신도 새록새록해졌다. 그래서 그는 그저 취한척하면서 혀꼬부라진 소리도 하고 맑은 정신으로 할수 없는 비밀내용도 물었다.

《형님 난 이젠 그만 들겠소.》

《왜?》

능포산은 머리를 들고 짓물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려가서 한잠 붙여야 새벽동원을 시키지요. 요즘은 공사동원바람에 죽을지경이요.》

《구장팔자두 궁상스럽군.》

능포산은 일어나려는 구장의 팔목을 잡아 강제로 꿇어앉히며 혀를 찼다.

《그래두 경찰이 의심만 하는데야 어찌겠소. 기가 막혀서.》

《그게 비상시국이지.》

능포산은 취중에도 잠간 정신을 차리고 강성태를 똑똑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강성태에게 온갖 불평을 헤쳐놓고 간혹 비밀을 조금씩 발설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매양 강성태의 반향을 주의깊이 살피는것을 잊지 않고있었다.

저번에 구장누이의 조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해놓고도 그후의 강성태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엿보았으며 구장누이가 그대로 부락에 머물러있는가를 날마다 세세히 알아보았던것이다.

《아무리 굽어보아두 강구장은 믿을수 있는 사람이야. 누이동생조회를 갔다구 해도 한번 불끈하고는 잠잠해있고··· 그래서 난 구장을 믿지. 구장누이가 딴 녀자라면 벌써 도망갔을게 아닌가?》

강성태는 가슴이 철렁해졌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 잠간만이라도 자리를 떴다면 어쨌을가싶은 생각이 불쑥 치밀면서 머리밑이 서늘해졌다.

《형님, 직업이 사람을 망치겠소.》

강성태는 어깨를 떨면서 껄껄 웃어댔다. 능포산이도 따라 웃었다.

《그래 다 직업병이지.》

능포산은 허공에 손을 홱 내젓고 술을 마셨다. 이렇게 소탈해진 순간에는 좀더 격식없는 질문을 던질수 있다고 생각하며 강성태는 로골적으로 따지고들었다.

《그런데 도대체 내 누이조회를 갔다는 사람은 돌아왔소? 모처럼 수백리길을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면 그게 작히나 싱거운 일이겠소?》

《싱거운 일이지. 그렇지만 싱거운 일이 아닐수도 있어. 기일이 늦어지는걸 보면 좀 끈터구가 생겼는지두 모른단말야.》

《한데 형님, 난 이번 조회가 차라리 나를 평정하는데는 다행이라고 생각한적도 있소. 나한테 앙심을 품은 경관만 아니라면 나는 걱정을 놓겠소. 도대체 누가 내 꽁무니를 캐러 갔소?》

《사까모도 겐지이네, 자네 그 사람을 알지?》

《사법계 뚱뚱보말이요?》

《그래 유도사범말이네. 그놈이 강구장하군 어쩐지 모르겠지만 나하군 엇서려는놈이네. 평소에 맞는 밸풀이를 교련장에서 하군하지. 죽일놈같으니.》

능포산은 단단한 팔뚝을 들어 힘껏 주먹을 쥐여보였다.

《그런데 강구장, 내 이것만은 단단히 믿고 하는 말이니 채심해 듣게.》

능포산은 얼굴에 자못 엄엄한 표정을 담고 말하였다.

《무엇인데요?》

강성태는 손에 들었던 술잔을 놓고 침착한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마을에 아라가와가 박아넣은 사람이 있다는걸 알구 일해야겠네. 나는 강구장을 동생처럼 믿는 사람이니 화를 당하지 않기를 바래서 하는 소리네.》

《고맙소 형님.》

강성태는 취중에도 고맙다는 뜻으로 머리를 숙였다.

《한데 그게 어떤 놈팽인지 그건 모르겠소? 나하구 척진놈이면 야단 아니요?》

《십가장중에 있네. 그렇게만 알게.》

능포산은 한마디 슬쩍 비치고나서 손을 홱 내저었다.

강성태는 천천히 입술을 훔쳤다.

십가장중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함석필이밖에 없다. 눈치있고 약삭바르고 얼간질을 잘하는 시세에 치여난 사람이다. 요즘은 백지주의 품에 들어서 낡은 자전거도 하나 선사받고 아라가와하고도 각별히 가까이 지낸다. 이놈이 틀림없는가?··· 그렇다면 이놈만 아니라 향옥이까지도 경계하지 않을수 없다.

강성태는 13도구에서 내려오자바람으로 신분단을 시켜 춘옥이를 불러왔다.

《요즘 향옥이가 야학에 나가오?》

강성태는 눈에 근엄한 빛을 담고 물었다.

《예, 나가요.》

《며칠이나 되오?》

《사흘짼가 나흘짼가 되여요.》

강성태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향옥이 듣는데서 무슨 비밀한 소리를 발설한건 없소? 야학에서 각성없이 지주를 욕한거라던지.》

춘옥이는 대답대신에 까닭을 알수 없는 불안을 드러내고 강성태를 쳐다보았다.

《십가장중에 나쁜놈이 박혀있다는 정보를 받았소. 십가장중에 있다면 그건 십중팔구 함석필이요.》

춘옥은 갑자기 가슴을 들먹거리면서 눈길을 어디다 둘지 몰라 허둥거렸다.

《그게 확실한 소식이예요?》

《그래, 확실한 정보요. 아무에게두 말하지는 마오. 혼자만 알고있으면 되오. 어디 말해보오. 향옥이한테 건을 잡힐 건덕지가 없는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지주가 나쁘다는거야 야학에서는 늘 하는 말이고··· 그게 건이라면 건이지요.》

《야단이군.》

강성태는 눈을 껌벅거렸다. 그는 자못 긴장하여 낮게 기침을 하면서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지금은 김정숙동지께서 마을에 계시지 않았다. 17도구를 다녀와 며칠을 묵으시고는 다시 요방자로 떠나가시였다. 그러니 어디 의논할데도 도움을 청할데도 없었다.

강성태는 오래동안 생각에 골몰해있다가 드디여 결심을 가진듯 입을 열었다.

《향옥이더러 야학방에 나오지 못하게 하오. 이전처럼 데리러 다니거나 가까이 사귀지두 말구 자연스럽게 떼버려야겠소. 야학방에서는 순시를 돌게 하구. 엄격히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부락이 녹는판이요. 알만하오?》

《알겠어요.》

춘옥은 대답하고나서 가볍게 입술을 떨었다.

《그저 그렇게만 하면 되겠어요?》

《당분간은 그렇게 하오. 공작원동지가 오시면 다음문제를 토론하겠소. 한시도 경각성을 잃지 마오. 백지주가 온 부락을 시루에 쪄내겠다고 날치는판이니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오. 지금 산판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구 토성공사가 잘 진척되지 않는데두 놈들이 가만히 있는것은 케를 보기때문이요. 마을에서 움직이는 지하조직의 낌새를 렴탐하려구 한단말이요. 알겠소?》

춘옥은 대답대신에 마른침만 삼켰다. 이제는 입술만이 아니라 온몸을 후둘후들 떨기 시작하였다.

《왜, 겁이 나오?》

《놀라와서 그래요. 그런 일을 향옥이 남편이 한다고 생각하니···》

《남편만이 아니라 향옥이까지도 걸려들었을지 모른단말이요.》

《글쎄 그러니까 떨려 못견디겠어요. 사람들이 어쩌면 그럴수 있어요?》

강성태는 성가스러운듯이 손을 내저었다. 적들은 만만찮게 죄여들고있었다. 한쪽에서는 경찰을 파견하여 공작원동지의 신분을 캐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을 박아 지하조직의 낌새를 알려고 발광하는것이다.

《동무들은 우리가 적후에서 혁명을 하며 계급투쟁을 하고있다는걸 알아야겠소. 혁명을 하려면 인정에 매달려 근본을 그르치는 일이 없어야 하오. 내가 부탁하고싶은건 이거요!》

강성태는 사방으로부터 육박해오는듯 한 긴장을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면서 마디마디에 힘을 넣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