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4

 

제 6 장

4

 

사령부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경위중대장 리동학을 불러 이번에 국내진공에 참가하는 경위중대원들과 작식대 녀대원들을 망라하여 선전공작대를 하나 잘 무으라는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고 며칠안으로 보충중대에서 많은 대원들이 정식 입대하러 오겠는데 작식대에서 특식준비랑 어떻게 하고있는지 한바퀴 돌아보면서 실정을 알아보라고 귀띔하시였다.

요즈음 리동학은 경위중대에 새로 배치된 신대원들을 데리고 훈련을 하느라고 실정에 좀 어두운편이였다.

리동학은 드문드문 눈이 깔린 산협의 오솔길을 따라 골짜기를 내려갔다.

작식대의 통나무귀틀집이 들여다보이는 골짝바닥에 내려선 리동학은 개울을 건너뛰다가 말고 비탈진 웃쪽을 바라보았다. 기관총소대의 한 대원이 징검돌우에 올라앉아 회파람을 슬슬 불어가면서 빨래를 하고있었다. 약간 경사진 비탈의 자작나무가지우에는 방금 빤 빨래들이 걸려있었는데 바람에 불려 어떤것은 떨어지고 어떤것은 구부러진 가지끝에 매달려 땅에 스치고있었다.

그러나 유격대원은 빨래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회파람만 불어대면서 빨래를 해대고있었다.

《잘은 하는군.》

리동학은 개울가의 자갈을 밟으면서 대원에게로 다가갔다. 문득 회파람을 멈춘 대원은 고개를 돌려 리동학을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찰나에 발밑에서 징검돌이 디뚝거리면서 대원의 몸을 한쪽으로 기울어뜨렸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그는 물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팔을 너펄거리다가 힘껏 몸을 솟구고 개울 저편으로 날아갔는데 그 서슬에 징검돌이 왈칵 뒤집히며 물이 사품쳐올랐다.

리동학한테도 다리에 물방울이 튀여올라 옷이며 얼굴이며 모자에 들씌워졌다.

《이크!》

리동학은 펄쩍 놀라 옆으로 뛰여물러나며 진저리를 쳤다.

《중대장동지, 안됐습니다.》

젊은 대원은 숨이 차 푸푸거리면서 소리쳤다.

《안되고 뭐고 작작 덤비라구.》

리동학은 화가 치밀어 맞받아 소리쳤는데 그는 대원의 몸이 물속에 거꾸로 처박히는줄 알고 등골에 땀을 쭉 흘린것이였다. 그러나 젊은 대원은 물속에 박히기는커녕 신발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개울건너에 날아갔으며 껑충한 다리를 황새처럼 구부리고 중대장이 얼마나 놀랐나 굽어보고있는것이였다.

아무튼 다행이였다.

《헛참, 맹랑한 친구로군.》

리동학은 벌쭉 웃어버렸다.

신입대원시절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기마련이다.

리동학은 모자를 벗어 얼굴의 물방울을 훔치고 땅에 떨어진 빨래를 거두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무슨 빨래를 이렇게 하오?》

《훈련을 하다가 여러 동무들이 옷을 마췄습니다.》

《동무는 빨새솜씨가 엉터리요. 왜 흙물이 채 빠지지 않은걸 널었소.》

《중대장동지, 할수 없습니다. 그이상은 때가 지지 않습니다.》

《왜? 비누가 없는가?》

《그렇습니다.》

《기관총소대가 모두 절품이요?》

《예!》

리동학은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것을 느끼면서 걷어안았던 빨래를 내려놓았다. 그는 훈련바람에 경위중대의 살림이 어떻게 되여가는지 알지 못하고있었는데 대원들이 비누 없는 날빨래를 하게까지 되였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동무가 빨래하는거 사령관동지께서 띠여보시지 않았소?》

《아닙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쪽으로 다니시지 않습니다.》

《한심한 소리, 늘 정해놓은 길로만 다니시는줄 아오? 대원들이 있는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신단말이요. 아무튼 한심하오. 한심해. 상급에 알리지도 않고··· 대책을 세울테니 어서 들어가오. 앞으로는 누구도 이 개울가에서 날빨래를 못한다고 이르오!》

《알았습니다.》

대원은 몹시 송구하여 어쩔바를 모르더니 어느새 개울을 날아넘어 날쌔게 빨래들을 걷어가지고는 껑충거리며 뛰여갔다.

(이러니까 사령관동지께서 중대를 한바퀴 돌아보면서 실정이랑 좀 료해해보라고 귀띔하셨는지도 모르지.)

그러자 리동학은 한결 더 마음이 무거워지고 우울해졌다.

(작식대에도 무슨 일이 있으면 야단이다.)

리동학은 사뭇 근심에 싸여 작식대마당으로 들어섰다.

문득 유쾌한 칼장단소리가 작식대의 부엌안에서 신바람나게 들려왔다. 녀대원들의 명랑한 말소리며 웃음소리도 간간이 울려났다.

(여기서는 일이 잘되는 모양인가?)

리동학은 일종의 희망과 기대를 안고 작식대의 부엌으로 성큼 들어섰다.

《작식대는 언제봐야 허풍이란말이야.》

리동학의 걸걸한 목소리를 들은 작식대원들은 한꺼번에 입을 모아들고 일어났다.

《작식대가 왜 허풍이란말입니까. 중대장동무에게 의견이 있습니다.》

《의견은 무슨 의견, 작식대밑천이야 내가 뻔히 아는건데 괜히 칼장단소리를 울리면서 허풍을 떠니 그렇지.》

《알긴 뭘 압니까. 우린 중대장동무에게 한턱 잘 낼텐데요.》

녀대원들은 깔깔 소리를 내여 웃었다. 나이 많은 작식대 녀대원 장철구만이 소리없이 미소를 짓고 의미있게 쳐다보았는데 찬찬하지 못한 리동학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한테 특식을 낸단말이요? 소가 웃다 꾸레미터질노릇이군. 흰소리 그만하고 랭수나 한그릇 주오.》

《그러다 정작 차려드릴 땐 어찌겠나요. 그걸 안잡숫고 일어설 중대장동지가 아닐텐데요? 안그래요?》

금숙이가 리동학의 턱밑으로 바싹 육박하면서 기세좋게 따지고 들었다.

(가만있자, 이게 영 허풍은 아닌 모양이군.)

리동학은 눈을 껍적거리면서 흠흠 숨을 깊이 들여 냄새를 맡아보았다.

부대에서 귀가 밝기로 소문난 리동학이였지만 코도 남만 못지 않게 발달한 감각을 가지고있었다.

그래서 리동학은 자기의 귀와 코는 사령부의 안녕을 지켜가는 경위중대장의 위력한 무기이며 이것은 하늘이 알고 점지해준 큰 재부라고 희떠운 롱담을 하군하였다.

분명 리동학의 코에는 아주 싱싱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왔다. 그는 마치 위험을 느낀 산토끼가 귀를 쫑긋 세우고 긴장하여 주위를 살피듯이 갑자기 흠흠소리를 내면서 부엌안을 살펴보았다.

《가만 이게 뭘가? 무슨 냄새가 나는데··· 아주 싱싱하고 달콤한··· 그렇지 산나물, 산나물이로구만.》

《아야!》

녀대원들은 그만 감탄하면서 끓어올랐다.

《중대장동문, 어쩌면 그렇게두 코가 좋아요?》

《하, 이 동무들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거요? 전에는 내가 산마루에 올라앉아 가만히 귀기울이면 10리밖으로 지나가는 왜놈의 구두발소리를 듣군했었소. 그런데 이제는 놈들의 배낭에서 풍기는 건빵냄새랑 다꽝냄새까지 알아낸단말이요.》

녀대원들은 허리를 그러안고 웃어대였다.

《그런 허풍은 떨지두말아요. 10리밖의 소리랑 냄새랑 어떻게 알아요?》

《챠 이것참, 그게 수준차이라는거요. 동무들이 내가 이따금 가만히 앉아서 저혼자 싱긋벙긋하며 입을 다시는걸 못보았소?》

《보았어요. 하지만 그거야 우스개를 잘하시는 중대장동무니까 그렇지요.》

《아니요. 거기에 바로 연고가 있지. 이따금 가만히 앉아서 귀기울이면 어느 부락에서 훈장늙은이가 애들 종아리를 걷어붙이고 딱딱 회초리를 치면서 〈하늘천 따지〉를 외우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늙은 내외가 부엌앞에 마주앉아서 웃방에 맞아들인 새며느리자랑을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깨가 쏟아지는 신살림에 사랑싸움을 하고나서 콜짝거리는 젊은 아낙네의 울음소리에다 소의 새김질소리며 벅벅 팥죽가마를 젓고있는 밥주걱소리까지 들린단말이요. 그러니 보고싶은것, 먹고싶은것이 얼마나 많겠소. 실은 그래서 혼자 웃고 군입질까지 해보는거라오.》

녀대원들은 또 한번 떠들어대며 웃었다.

《참, 그럴수밖에 없겠어요. 이제는 진짜로 믿어야 할가봐요.》

《린색하군. 하긴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요. 오늘 믿지 못하면 래일은 믿게 될테니까··· 그건 그렇고 동무들이 어디서 산나물을 뜯었소?》

리동학은 기쁨에 겨워 얼굴이 활짝 밝아지더니 산나물이 있는 토방밑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다가앉은 리동학은 산나물을 한웅큼 집어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고맙소, 동무들 산나물을 이렇게 뜯어오다니··· 나는 아직도 한겨울인가 하고 눈이 녹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산나물이군. 사령관동지께서 신입대원들의 식찬을 걱정하시더니··· 됐소. 이제는 됐소!》

리동학은 눈구석에 눈물이 맺히는듯 한 감격을 느끼며 작식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녀대원들은 시무룩하여 응대가 없었다.

《어쩐 일이요. 왜들 울상을 하고있소?》

《중대장동무, 어쩌문 좋아요. 우린 1년내내 자책속에서 살게 되였구만요.》

금숙이가 팔소매로 눈굽을 누르면서 울먹거렸다.

《그건 무슨 소리요?》

리동학은 놀라 다그쳐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요? 어서 말하오.》

《사실은 저희들이 산나물을 뜯은게 아니고··· 장군님께서 먼저 뜯어오시지 않았겠나요. 눈밑을 헤치고 락엽밑을 들여다보시니까 닥지싹이 돋았더라고 하시면서말이예요. 그래 작식대동무들에게 기쁨을 주자고 가져오셨다는거예요.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듣고 남석골짜기를 파헤치니까 햇싹이 올려밀지 않았겠나요.》

리동학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하 벌렸으나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이렇게 난감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어디에 있는가?

너무나 뜻밖의 순간에 상상할수 없는 실책과 과실을 통감한 리동학은 절로 오금이 꺾이여 되는대로 나무가리에 주저앉았다.

《우린 사령관동지께서 다녀가신 다음 얼마나 큰 자책속에 있었는지 몰라요. 김정숙동무가 작식대에 있을 땐 눈속을 파헤치고 햇싹을 뜯어다 장군님의 식찬을 마련하군했는데 우린 봄이 문턱에 걸터앉은줄도 모르고 마른 머루잎만 훑어왔으니···》

밖에서는 뚝뚝 락수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마당을 지나가는 새의 그림자들이 창문에 어리였다.

녀대원들은 안타까와 어쩔줄 모르고있었다.

《정말 잘 안되였소.》

리동학은 언짢은듯이 한마디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작식대에 중대한 과업을 주셨는데 이번 일을 잘해서 과오를 씻어야겠소.》

녀대원들은 눈물을 씻고 일제히 리동학을 쳐다보았다.

《동무들도 들었겠지만 보충중대에서 신대원들이 오오. 사령관동지께서는 련대들에 입대하는 그 동무들을 위해서 사령부작식대가 특식을 준비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셨소. 어려운 일인데 해낼만 하오?》

작식대원들은 뒤일은 어떻든 자신있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모두 일을 잘해 사령관동지를 기쁘게 해드릴 생각뿐이였다.

녀대원들은 활기를 띠였다. 모두 자기들이 생각하고있는 방안을 하나씩 내놓았다.

우선 산나물을 뜯고 칡뿌리를 캐서 농마도 만들고 개울에서 물고기도 잡고 산짐승잡이도 하고···

이렇게 할수 있는 일을 다하여 감을 마련한 다음에 음식가지수를 결정하자고 하였다.

리동학은 생전처음 녀대원들과 마주앉아 음식만드는 문제를 놓고 장시간 머리를 썼다.

(이런 일은 김정숙동무가 있어야 잘하는건데···)

리동학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생각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작식대에 계실 때는 그저 간단히 지시를 주면 그만이였고 간혹 자기가 생각을 미처 돌리지 못하는 때에도 빈틈없이 일을 해놓군하시였다.

리동학은 멍청히 손맥을 놓고 김정숙동지를 회상하였다.

즐거움과 기쁨속에 추억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지난해 겨울 백두산밀영에 있을 때의 한가지 일이 먼저 뇌리에 떠올랐다.

그때 국내조직에서 중대한 지하공작임무를 맡고있는 귀한 일군이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밀영에 들어와 며칠 묵고있었다.

어느날 사령관동지께서는 리동학을 불러 밀영에서 총소리를 내지 않고 노루 한마리 잡아올수 없겠느냐고 하시였다. 리동학은 장군님의 말씀을 듣고야 정신이 번쩍 들어 옹노를 가지고 재등으로 달려올라갔다. 노루가 다니는 길목에 코를 걸고 등마루로 터벌터벌 내려오던 리동학은 그만 무엇인가 발목에 휘감기는바람에 공중제비로 딩굴었다.

어깨며 잔등이며 허벅다리며가 온통 얼벌벌하고 머리가 뗑하였다. 겨우 눈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발목에 웬 옹노가 걸려있었다.

《헛참 이건 중대장을 홀쳐갈셈인가?》

리동학은 어이없어 혼자 껄껄거리며 웃었다.

누가 한수 앞서 산짐승을 잡겠다고 코를 놓은것인데 가만보니 짐승잡이를 전혀 해보지 못한 햇내기 솜씨라는것이 제꺽 알렸다.

우선 산세를 보아 노루같은 짐승이 다닐곳이 아니였고 옹노를 걸어놓는 방법부터도 아주 서툴렀다.

《누굴가?》

리동학은 띠끔띠끔 쑤셔나는 발목을 잡고 앉아 주위에 찍힌 발자국을 들여다보았다. 리동학의 손으로 장뽐 하나도 안될 녀자의 발자국이 촘촘히 찍혀있었다.

그 발자국은 작식대가 있는 산아래 경사면으로 곧추 올라왔다가 다시 돌아내려갔는데 얼마나 다녔는지 작은 외통길이 반반히 나있었다.

《김정숙동무 발자국이로구만.》

리동학은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요즘 부대에서는 대원들에게 신발을 나누어주어 일제히 새 신을 신었는데 김정숙동지만은 낡은 신을 기워신고 다니시였던것이다. 그러고보면 신창이 반반히 닳아버린 작은 발자국이 틀림없이 김정숙동지의것이였다.

《여간한 동무가 아니야. 언제보나 부대의 살림을 두고 아글타글 애쓰거던.》

리동학은 방금 육신이 쑤셔나던 아픔은 죄다 잊어버리고 뿌듯한 기쁨이 솟아올라 가슴이 들먹거려졌다.

《한데 여기에 노루가 걸리지 않겠으니 어떻건다?》

리동학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왜놈잡이는 잘해도 짐승잡이는 영 할줄 모르거던. 그러고보면 역시 녀자는 녀자지. 이걸 다른데 옮겨놓을가? 아니면 내가 노루를 잡아올테니 걱정말라고 일러둘가?》

그러나 리동학은 이것도 저것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봐야 노루는 잡을것이지만 김정숙동지를 즐겁게 해주고싶은 자기 욕망은 성취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러자 리동학의 머리에는 다른 한가지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작식대에서 누가 볼세라 제꺽 일어나 옹노를 걸어놓고 넘어진 자리를 씻은듯이 메워놓은 다음 회파람을 불면서 다른 길로 돌아내려왔다.

이튿날 재등에 올라간 리동학은 자기가 놓은 코에 걸려 밤새 꽁꽁 언 중노루를 보고 환성을 올렸다.

《야, 이제는 됐다.》

그는 제꺽 노루를 둘러메고 불이 번쩍나게 달려내려와 김정숙동지께서 놓은 코에다 죽은 노루의 목을 걸어놓았다. 그리고는 꿈쩍 작식대어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낮이 되자 작식대에서 노루를 잡았다는 소문이 퍼졌다.

리동학은 시치미를 떼고 작식대에 노루구경을 갔다.

《작식대에서 노루를 잡았다면서?··· 참 재간들이란말이야. 보나마나 이거야 김정숙동무 솜씨겠지.》

리동학은 너스레를 떨며 돌아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쁨이 함뿍 어린 령롱한 눈으로 리동학을 찬찬히 올려다보시였다.

《경위중대장동문 성미가 뚝뚝한것 같애도 이런 때 보면 얼마나 사근사근한지 모르겠군요.》

《뭐 내가 사근사근하단말이요?》

《그럼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방끗 흰이를 드러내고 웃으시였다.

《헛참 이게 좋지 않은 징조군. 작식대가 비행기를 태울 땐 늘 정신이 어질어질하거던.》

리동학은 의문스럽게 김정숙동지를 넌지시 살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소를 짓고 마주보셨는데 그 눈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깃들어있는것 같았다.

리동학은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정말 이게 들장이 난게 아닐가 하고 생각하였다.

리동학은 서둘러 자리를 뜨기로 작정하였다.

김정숙동지의 그 눈에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어렸는데 멍청히 그 눈을 들여다보고있다가는 제풀에 주저앉고말것 같았다. 그래서 리동학은 돌아섰다. 그리고 먼산을 바라보면서 한바탕 더 너스레를 떨었다.

《작식대가 아무튼 재간은 재간이야. 남자들이 못잡는 노루를 척척 잡아놓지 않나. 이제는 사내들이 얼굴이 뜨끈뜨끈해서 작식대앞을 어떻게 나다닌다?···》

리동학이 몇걸음 휘적휘적 걸어나오는데 김정숙동지께서 불러세우시였다.

《중대장동무, 하나 물어보자요?》

《뭔데?》

《왜 발을 접니까?》

《이 발을말이요? 개울을 건너뛰다가 그렇게 됐소. 내가 개울저편에서 허리를 난딱 까부리고 힝 날아넘어오는데말이요···》

리동학은 진작 허리를 납작 까부리고 두팔을 날개처럼 펼치면서 금시 나는듯 한 형용을 하였다.

《그러는데 글쎄 조약돌 하나가 발밑에서 날쌔게 달아나면서 뻥소리를 내는게 아니겠소. 그 순간에 육중한 몸이 아차아차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땅에 철썩 부딪치더란말이요. 아찔하더군. 겨우 육신을 놀려 일어나니 발이 상했더란말이요. 나는 덜컥 겁을 냈더랬소. 사령관동지께서 아시면 영낙없이 후방병원으로 보내실테니말이요. 그러나 그건 공연한 걱정이였소. 걸어보니 아무렇지도 않은걸 가지고···》

《참 놀랐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명랑하게 웃으시며 눈짓을 하시였다.

작식대원들이 우- 달려들었다. 리동학은 꼼짝 못하고 작식대원들에게 잡혀 땅에 주저앉았다.

《아니 동무들 왜 이러오?》

리동학은 바쁜 소리를 내지르며 엄살을 피웠다.

《겁낼것 없어요. 발을 고쳐드리자고 그래요.》

금숙이와 혜숙이가 리동학의 량쪽에서 팔을 잡고 김정숙동지께서 발목을 잡아뽑으시였다.

으득으득 뼈마디가 어기는 소리가 나며 무릎까지 저려났다. 리동학은 작식대가 사람을 죽인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고함을 지르고나자 발목은 기막히게 편안해졌다.

리동학은 뛰여일어나서 땅을 구르며 힝힝 몸을 솟구어보았다.

아픔이 말끔히 가셔진 몸은 공중에 날아오를듯이 가벼워졌다.

《허참 작식대가 드세긴 드세단말야. 발목을 잡아뽑는 기술까지 가지고···》

리동학은 신이 나서 홀개바람으로 걸어갔다.

일은 그렇게 락착되는줄로 믿었다. 그러나 그날저녁 사령부성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드시던 장군님께서는 리동학을 보시더니 《경위중대장이 걸작이거던.》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옆에는 국내조직에서 온 동지도 앉아있었는데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 장군님께서 내놓고 말씀하시였다.

《글쎄 우리 경위중대장동무가 얼마나 엉뚱한가 보십시오. 작식대동무들이 손님식사가 변변치 않다고 노루잡을 생각을 한 모양인데 그것을 안 경위중대장이 자기가 코를 놓아 잡은 노루를 작식대의 옹노에 슬그머니 걸어놨다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천연스레 작식대에 노루구경까지 가서 그 동무들을 슬슬 춰주기까지 했다는군요.》

리동학은 급해났다.

《아닙니다. 사령관동지, 저는 다만 김정숙동무가 아글타글 애쓰는 그 마음이 하도 고마와서···》

《알만하오. 아무튼 동무는 걸작이야.》

장군님께서는 허리를 젖히시고 또 한번 크게 웃으시였다.

리동학은 등골이 지지는듯 달아올라 밖으로 뛰여나왔다.

밤이였는데 밝은 달이 흰눈을 밝게 비치고있었다.

그는 발이 내키는대로 나무들 사이를 한정없이 걸었다.

그 밤은 얼마나 좋았던지···

리동학은 눈을 슴벅슴벅하면서 손가락으로 눈구석을 눌렀다.

《아니 왜 그래요. 갑자기 왜 우시는거예요?》

롱담을 즐기는 금숙이가 눈을 깜빡거리면서 캐여물었다.

《눈물이 아니라 기쁨이요. 참 동무도 알겠군. 지난해 백두산밀영에서 노루잡던 사건말이요!》

《예?!》

금숙이는 갑자기 대굴대굴 굴러가면서 웃어대기 시작했다.

《참 중대장동진 엉터리였어요 죽은 노루를 협잡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하긴 엉터리야. 한데 동무들도 엉터리요. 그걸 사령관동지께까지 루설할건 뭐요.》

《참 그래요. 사령관동지께서 모르시는 우리들 사이의 비밀도 좀 있어야 할텐데요.》

《맞았소. 동무가 언제보나 내 마음을 좀 알아준다니까.》

리동학은 웃었다. 추억은 생생한 즐거움을 가지고 가슴을 얼얼하게 하였다. 지금은 김정숙동지께서 안계신다. 위험한 적후에서 홀로 힘겨운 싸움을 겪으며 가끔 이곳 일을 추억할지 모른다. 그래 추억할지 모르지···

리동학은 눈을 슴벅거리면서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았다.

《드문 동무야, 혁명을 위해 태여난 동무지··· 지금은 누구도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여기에 없어, 없지···》

그러자 리동학은 김정숙동지 없이 사령부의 작식일을 원만히 해나가기는 정말로 어려울것이며 경위중대에서 뭇게 되는 선전공작대도 제구실을 하자면 어방없이 힘이 딸릴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압록강연안에 나가 사령부선전공작대가 특별히 선전을 질한다고 부대에 소문을 낸것도 따지고보면 김정숙동지의 활약이 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고 선동연설도 잘하시였다. 19도구, 지양개, 신창동, 천상수, 갑산덕··· 어느 마을에서나 김정숙동지의 선전활동은 눈부시였었다.

부대가 마을을 떠날 때면 사령관동지께서는 늘 리동학을 불러 김정숙동지를 대오의 뒤에 세우라고 하시였다. 처음은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었지만 한 마을을 떠나고 두 마을을 떠나자 그 말씀의 진의도를 알수가 있었다.

마을을 떠날 때면 늘 그사이에 김정숙동지와 친숙해진 사람들이 달려나와 혼잡을 이루면서 그이와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만약 김정숙동지를 대오의 앞에나 중간에 세운다면 대오가 온통 혼란에 빠질판이였다.

리동학은 김정숙동지와 함께 대오의 제일 뒤에 떨어져 따라오는 마을사람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고는 부랴부랴 다그쳐 걷지 않으면 안되였다. 힘들었으나 그것은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 추억인지 모른다.

(김정숙동무가 없이는 사령부선전공작대가 제구실을 하기는 곤난하다. 작식대일도 그렇지···)

리동학은 드디여 자기의 결심을 확정하고 장군님께 부대의 고충을 말씀드려야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