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3

 

제 6 장

3

 

1937년 봄 이해의 동강밀영은 례년에 보기드문 싱싱하고 활기찬 기운으로 끓어번졌다.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가 국내진공작전을 앞두고 동강밀영에서 군정학습을 시작한것이다.

분비, 가문비가 빽빽이 우거진 수림속에서 강대를 찍어내는 도끼질소리가 챙챙하게 울려왔다.

도끼에 맞은 나무의 웃초리들은 푸르르푸르르 떨고 공기가 진동하였으며 거목의 무성한 아지들이 한꺼번에 공중에서 돌다가 천천히 기울어지면서 눈보라의 은빛사태를 일으켰다. 대원들은 떠들썩 웃으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아지를 다듬어서는 귀틀집 장소로 메여날랐다. 사령부와 7련대, 8련대가 들 집들이 하루사이에 일어났다.

한쪽에서는 사격장 전술교련장들이 꾸려졌다. 7련대 4중대가 담당한 사격장에는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나오시여 목표판들을 깎고 사격좌지들을 만드는것을 지도하시였다. 작식대의 녀성대원들은 한달남짓이 거처하게 될 동강밀영에서 무엇보다 샘물터와 빨래터를 꾸리는데 열성을 내였다.

골짝바닥에서는 녀대원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줄곧 들려오고 가는 실개천으로 뿌연 쌀뜨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비서처 일군들도 바쁘게 돌아갔다.

조국진군을 앞둔 대원들의 기세를 고무하는 선전공작을 해야 한다고 사령관동지께서 강조하신것이다.

그이께서는 《3.1월간》특간호도 준비해야겠다고 귀띔하시였다.

비서처가 자리잡고있는 집 뒤뜰안에서는 봇나무껍질을 태우고 애교를 끓이는 냄새가 풍겨났다.

밀영에서 군정학습이 시작된 첫날부터 장군님께서는 여간만 분망한 나날을 보내지 않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주력부대의 국내진공준비를 갖추어나가시는 한편 국내와 동만, 남북만 일대에서의 조국광복회지하조직확대를 위한 거창한 사업을 동시에 밀고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거의 매일이다싶이 국내와 만주 일대에 떠나보내는 정치공작원들을 만나 구체적으로 사업방향을 주시고 밤을 밝혀가시며 국내외의 정세며 혁명의 전망을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마음은 1937년의 이해에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가 국내에 진격하며 국내외의 수백만 군중이 조국광복회조직에 망라되여 미구에 전인민적무장봉기를 일으킬 력사적인 순간이 각일각 다가오고있다는 격동적인 느낌으로 진정할수 없으시였다. 군정학습이 시작되여 보름가까운 시일이 흘러간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군정학습중간총화를 짓고있는 중대들을 한바퀴 돌아보시고 산마루에 오르시였다.

서남쪽에서 부드럽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장군님께서는 얼굴에 스치는 훈풍의 포근한 감촉을 받으시자 걸음을 멈추시고 유정한 감개에 싸이시였다.

봄, 봄이 왔구나!

마음속 아주 깊은 언저리에서 불쑥 튀여오른 생각이 서서히 구름처럼 떠오르시였다. 이해에 들어서 처음으로 느껴보시는 봄이였다. 그리고 봄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이 순간에 벌써 봄은 곁에 와 있었고 어디서나 봄향기를 뿌리고있었으나 늦게야 이 봄을 감수하시는듯 한 류달리 야릇한 감격에 젖으시였다.

이해, 모질게 춥고 힘겨운 겨울에 뒤이어 시작된 이 봄을 남먼저 그리고 때맞추어 감수할만 한 마음의 여유가 장군님께서는 정말로 없으시였다.

얼마나 많고많은 일들과 시름과 격동의 사무치는 순간들이 그이를 둘러싸고있었던가! 장군님께서는 모자를 벗으시고 바람에 이마를 내맡긴채 약간 굽히신 한쪽무릎우에 손을 짚으시였다. 숲에서는 분명 봄누기에 젖어오른 싱그러운 송진내가 풍기고 침엽수의 가지끝에서 바람이 맴돌아치는 가느다란 회파람소리들이 울렸으며 잘 영근 콩알같은 물방울들이 뚝뚝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있었다.

눈은 남쪽 경사면을 따라 골짜기로 갈수록 얇아지고 거밋거밋해졌으며 가끔 창이 나서 락엽이 들여다보이는 웅뎅이에서는 해빛에 반짝거리는 물이 들여다보였다.

장군님께서는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시였다. 맑은 시내물소리가 들리고 새들이 낮추 떠서 숲사이를 재빠르게 날아다녔다. 새들의 젖은 날개에서는 해빛이 령롱하게 어리여 부시고 어린 나무가지들이 간단없이 여기저기에서 튀여오르고 눈깔린 오솔길에 물방울이 튕기였다.

《봄이 왔구나!》

장군님의 가슴은 다시한번 말 못할 감격으로 충만되시였다.

이 세상에 긴긴 겨울의 속박에서 벗어나 향그럽고 신선한 봄의 향기에 취해보고싶은, 봄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그 얼마나 많을가마는 유격대원들처럼 이 봄을, 화창한 이 자연의 세계에 한껏 몸을 맡겨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은 다시 없을것이다.

봄, 적들의 집요한 동기《토벌》을 이겨내고 봄을 맞기만 하면 유격대원들은 언제나 새 희망과 용기를 가다듬고 투쟁의 새 전구를 향해 떠나군했었다. 35년겨울도 36년겨울도 다 힘들었지.

장군님께서는 깊은 감회속에서 돌이키시였다.

봄이 왔다. 부대안에서도 봄이 왔다는것을 제일 기뻐할 동무들이 누굴가? 장군님께서는 발목이 빠지는 부근부근한 락엽을 밟으시며 생각하셨다. 그것은 틀림없이 작식대원동무들일것이다. 대원들의 찬거리를 마련하느라고 언제나 걱정을 놓지 못하는 동무들이였다.

순간 장군님께서는 지금은 먼 적후에서 이 봄을 맞이할 김정숙동지의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부대안에서 누구보다 제일먼저 봄을 느끼는 사람은 김정숙동지시였다.

산에 눈이 하얗게 깔리고 쌀쌀한 바람이 통나무 귀틀벽에 서리를 풍기는 겨울철에 대원들은 뜻밖의 봄나물국을 맛보며 놀라는 때가 있었다.

지난해 겨울, 그때에도 장군님께서는 눈보라가 아우성치는 어느날 작식대에서 끓여드린 나물반찬을 보시고 놀라 물으시였다.

《웬 나물반찬이요?》

그러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시며 말씀드렸다.

《산에는 눈이 하얗게 깔려도 땅밑은 봄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하도 놀라와 손수 창문을 여시고 밖을 내다보시였는데 정말 새파란 하늘 중천에는 봄의 서기가 어린듯이 뿌옇고 아스름한 그 무엇이 보이시였다. 그러나 그것은 봄의 서기가 아니라 공간에 날려올라간 눈가루들의 은빛나는 광선이며 그 음영들의 미세한 어울림이였다.

《웬 봄이겠소, 저것 보오. 바람에 불린 눈가루들이 공간에 꽉 찼소.》

그렇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상에는 여전히 나물반찬이 올랐으며 싱싱한 햇나물의 달큰한 향기가 방안에 찼다.

장군님께서는 사뭇 즐거웁고도 뿌듯한 감개에 싸이시여 《참 별수 없군, 봄이라고 생각할수밖에···》 하고 유쾌히 말씀하시였다.

생각하면 김정숙동지께서는 언제나 눈무지를 헤치고 봄을 찾아내였으며 눈밑의 봄을 안고 대원들에게로 달려오군하시였다. 그리하여 유격대원들은 그이의 손에서 눈빛에서 얼굴표정에서 봄을 느꼈으며 봄맛을 감수하군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뿌듯한 감회에 싸여 락엽무지를 헤치시였다.

따뜻하고 포근한 해빛이 땅에 낮추 허리를 굽히신 그이의 잔등을 비치고있었다. 가까운 어느 눈밑에서 물이 슴새여 나가는 쪼르륵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무엇인가 풀썩풀썩 꺼져내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공간을 흔드는 가벼운 진동이 미쳐오기도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두손으로 락엽을 헤치시다가는 가끔 고개를 드시고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머리우에 낮추 드리운 나무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무엇인가 알수 없는 음향을 울리고있었다.

그러나 소리는 거기서 들리는것이 아니였다.

낮은 산마루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는 그지없이 고요하고 포근하여 얼핏 알아들을수 없는 자연속의 미묘한 가락들이 일시에 작은 금선을 튕기듯이 솟아나와 섬세하고 복잡한 리듬을 울리고있는것이였다.

그것은 봄을 맞이하여 부풀어오른 땅이 가라앉고 개울가에 눈들이 허물어져내리며 얇은 얼음장이 돌바닥우에 긁히며 지나가고 나무가지에 달라붙은 얼음고드름이 굴러나면서 락엽들이 버스럭거리는 오직 봄에만 있는 소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갈수록 흥겹고 부풀어오르는 감격에 싸이여 락엽을 파내시였다. 시큼시큼한 뜬 냄새가 나고 푸석푸석 흙토로 변해버린 오랜 락엽의 굳은 껍질들이 하나하나 벗겨졌다. 땅은 축축하고 훈기가 있었으며 손끝에 부딪치는 연약한 싹들의 촉감이 알려졌다.

《그렇지!》

장군님께서는 조심히 힘을 가하여 잔등이 약간 터갈라진 딱딱한 땅껍질을 한거풀 들어내시였다. 그러자 해빛을 보지 못한 하얀 닥지싹이 불쑥 튀여나듯이 솟아올랐다.

《허, 이것보지!》

장군님께서는 한쪽 무릎을 굽히시고 한참동안 그것을 들여다보시였다. 조심히 한손을 내미시여 끝이 약간 구부러든 통통하고 싱싱하며 생에 충만된 강하고 탐스러운 어린싹을 만져보시였다. 손에 마치는 촉감과 손끝에 흐르는 생생한 감각을 거치지 않고서는 그 진미를 알수 없는 소중한 느낌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문득 김정숙동지가 눈속을 헤치시고 새싹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쁨과 희열에 넘쳐 그 소중한 싹을 지켜보았을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그러자 불쑥 숲의 어느 언저리에서 나물을 뜯으며 기뻐하는 그이의 맑은 목소리며 웃음소리가 금시 들려올듯싶으시였다.

《좋은 동무지··· 전우들을 위해 먹을걸 안먹고 입을걸 안입고 숱한 고생을 하는 성실한 동무지.》

장군님께서는 이제 앞으로는 김정숙동지가 끓여주시는 나물국을 이전처럼(그때에도 범상하게는 생각지 않으셨지만) 대하실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나무가지를 꺾어드시고 닥지싹뿌리를 캐시였다. 작식대원동무들에게 보여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싶으시였다. 퍼그나 시간이 걸려 닥지싹을 한웅큼 캐신 장군님께서는 목소리를 극력 낮추시여 노래를 부르시면서 봇나무숲과 작은 관목림을 지나 작식대로 가시였다.

눈이 녹고 딴딴해진 작은 마당은 해빛이 들어 환하였다.

먼지가 올라 거무스레해진 녹다만 눈이 드문드문 깔린 작식대마당끝에서는 김이 피여올랐으며 까치들이 뛰여다니고있었다.

큰새, 작은새의 발자국이 빽빽이 찍힌 젖은 땅은 복잡한 문양이 어른거리는 검은 우단같았다. 장군님께서는 그리로 가시여 찬찬히 땅을 굽어보시였다. 새들이 땅에서 무엇인가 쪼아먹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가볍게 흥분되는 마음을 누르시고 문앞으로 가시였다.

처마끝에서는 락수물이 똘랑똘랑 떨어져내리고있었고 부엌에서는 무엇인가를 빻는 소리가 콩콩 들리고 구멍이 뚫린 작은 창문으로 김이 새여나왔다.

장군님께서는 닥지싹을 움켜쥐신 손을 등뒤에 감추시고 작식대의 부엌으로 들어가시였다. 여기저기서 작식대원들이 황급히 일어났다.

《동무들, 나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어디 좀 맞혀보오.》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시고 명쾌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작식대원들은 뜻밖의 기쁨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장군님을 바라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 무슨 냄새가 나겠습니까?》

《아니, 진기한 냄새가 날거요. 맞혀보오.》

《납니다. 이깔나무냄새가 납니다.》

혜숙이가 장군님의 곁에 슬그머니 와서 챙챙한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유쾌하게 웃으시며 고개를 저으시였다.

《틀렸소, 어디 다른 동무가 말해보오.》

《시큼시큼한 냄새가 나는것 같습니다. 무슨 술냄새 같은게말입니다.》

녀대원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사령관동지, 그건 엉터리소립니다. 밀영에 무슨 술이 있겠다고···》

금숙이가 앞서 말한 작식대원의 말을 반박하였다.

《아니 영 틀리지는 않소, 그건 절반은 맞는다고 볼수 있소. 내가 썩은 락엽을 주물렀거던.》

《야, 그렇습니까?》

녀대원들은 손벽을 마주치면서 감탄하였다.

《그럼 정말 뭘가요. 절반은 맞는다고 하셨는데···》

《그러게말이요. 동무들이 궁금해하니 나도 궁금해지는군.》

장군님께서는 입맛을 다시기까지 하시였다.

《자, 어서들 대보시오!》

장군님께서는 독촉하셨다.

그이께서는 이제는 절반은 대준것인데 그래도 알아내지 못하면 아주 섭섭한 일이라고 하셨다.

장군님께서는 이 순간이 그지없이 기쁘신듯 흡족하신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보시다가 시치미를 떼시고 한마디 하시였다.

《동무들이 정 알아내지 못한다면 섭섭한대로 돌아가는수밖에 없군.》

《사령관동지, 그리셔서야 되겠습니까?》

녀대원들은 정말 장군님께서 실망하시고 돌아가실것 같아 조바심을 치면서 와짝 끓어올랐다.

그들은 절반은 떼를 쓰고 절반은 어리광을 부리면서 생각나는대로 마구 말씀올렸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대답에 한결같이 고개를 저어 부정하시다가 그만 웃음을 참으실수 없으신듯 호탕하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엉터리군, 엉터리거던, 이제는 별수 없이 내보여야겠군.》

장군님께서는 산나물 쥔 손을 불쑥 앞으로 펼치시였다.

《아니 이게 닥지싹이 아닙니까?》

《그렇소, 닥지싹이 돋았소.》

장군님께서는 크고도 명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녀대원들은 환성을 올리며 그이의 손에 매달렸다.

그들은 닥지싹뿌리를 집어들고 냄새를 맡아보고 씹어보기도 하고 볼에 마구 비비기도 하면서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역시 봄을 그리는 작식대원들의 감격은 각별한것이다. 긴긴 겨울이 끝장나고 햇풀이 돋아오르는 싱싱한 봄이 돌아온것이다.

봄이 돌아왔다!

전우들의 식탁을 푸짐하게 만들수 있고 부대의 살림을 풍성하게 꾸려갈수 있는 봄, 꿈속에서조차 그리던 그 봄이 돌아온것이다.

닥지싹뿌리를 만져보는 녀대원들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여 반짝거리고 수집고도 행복에 넘친 밝은 홍조가 눈물젖은 얼굴들에 아름답게 피여올랐다.

장군님께서는 유쾌하고 기쁨에 넘친 표정으로 문밖을 나서시였다. 그리고 자작나무와 봇나무의 어린가지들이 한낮의 해볕에 유난히 반짝거리는 숲속의 좁은 외통길을 따라 사령부로 돌아오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