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5

 

제 5 장

5

 

쌍별이는 경찰서로 올라가려고 혼자 길에 나섰다. 지세경의 아버지 지석참은 아들이 잡혀가자 리풍우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다고 신파로 건너간후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들이 잡혀간후 심화병으로 몸져누워 일어나지 못하였다.

아들이 풀려나온다는 기별을 받은 지세경의 어머니는 이제 곧 떠난다고는 하면서도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여 쌍별이만을 먼저 올려보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쌍별이는 손달구지를 끌고 갔다.

김정숙동지께서 지세경선생이 몸이나 성한지 알수 없다고 걱정하시면서 손달구지를 끌고 가라고 귀띔하신것이였다.

쌍별은 경찰서의 컴컴한 지붕이 보이고 회색빛 담장우의 둥근 포대가 나타나자부터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이런 일은 아직 당해보지 못한 쌍별이였다.

처녀는 경찰서 정문앞의 기둥밑에다 손달구지를 가까이 끌어다 붙여놓고 접수실로 들어갔다. 좁고 기다랗게 천정이 높은 방이였다. 약간 때가 묻은 양회의 벽이 사면에서 차겁게 처녀를 에워쌌다.

처녀는 알릴락말락 몸서리를 치고 접수구로 다가갔다. 누런 제복을 입은 만주경찰이 무슨 대장인가를 펴놓고 두덜거리면서 철필을 끄적거리고있었다. 쌍별이가 다가가자 경찰은 머리를 들고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뭔가?》

《저··· 사람을 맞으러 왔습니다.》

《사람을 맞으러 와? 죽은놈인가?》

쌍별이는 가슴이 섬찟하여 뒤걸음쳤다.

《죽은놈인가말이야. 요방자에서 왔는가?》

《아니, 도천리에서 왔습니다.》

경찰은 머리를 숙이고 다시 몇자 끄적거리더니 힐끔 쳐다보았다.

《서울공부 하다 온 그놈말인가? 백주사한테 대갈질을 한 그놈말이야?》

쌍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그놈의 녀편넨가?》

《아니예요.》

《눈이 맞아 돌아가는 계집인가?》

《이웃에서 왔습니다.》

《이웃에서라? 흥 이웃에서라···》

경찰은 흘겨보더니 전화를 들었다.

《그따위 불온한놈하구 눈이 맞아 돌아가다간 신세를 망쳐. 반반하게 생긴 계집이 오금이 쑤셔 그따위하고 붙었는가?》

쌍별이는 입술을 깨물고 경찰을 쏘아보았다. 드디여 분노가 솟구친것이였다.

그러자 무서움은 졸지에 사라졌으며 이놈들에게 숱한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닥달을 받았을 지세경이 생각났다. 그러자 지세경에 대한 사무치는 정이 못견디게 끓어올랐다.

접수실의 유리창 저쪽으로 마당에 나서는 지세경이가 보였다.

쌍별이는 나는듯이 접수실을 뛰쳐나가 경찰서의 마당으로 달려들어갔다. 경찰은 앉았던 의자를 넘어뜨리며 뛰여일어났으나 어쩌지는 못하고 어안이벙벙해 서버렸다.

처녀는 지세경의 팔을 부축하고 얼굴의 상처를 살펴보고 눈물이 글썽해하였으며 턱밑의 피자욱을 손수건으로 훔쳐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그를 부축하여 당당히 접수실앞을 지나갔다.

《하, 고놈의 계집이 당돌하기란···》

경찰은 목을 빼들고 내다보았다. 쌍별이는 손달구지를 내다놓고 지세경을 앉히였다.

《자리라도 마련해올걸 그랬군요. 나는 몸이 이렇게 된줄 몰랐어요.》

처녀는 가슴이 아파 울먹울먹하였다.

《괜찮소. 나는 걸어라도 갈수 있으니 아무 걱정 마오.》

《걸어가다니요. 그 몸으루?··· 잠간만 여기 좀 있어요.》

처녀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새초를 걷어안고 뛰여왔다. 그것을 달구지안에 정성스레 깔고 그우에 앉혀놓았다. 그리고나서 수건으로 치마허리를 질끈 동이고 달구지를 끌기 시작하였다. 달구지는 딸딸 소리를 울리면서 멀어져갔다.

경찰서를 멀리 떠나 행길에 나섰을 때 쌍별이는 잠간 달구지를 세우고 돌아보았다.

《몸이 울리지 않아요 예? 상처가 쑤시지 않아요?》

《괜찮소, 아무렇지도 않소.》

지세경은 감격과 슬픔에 찬 표정을 짓고 쌍별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좀 더 가면 길이 더욱 험해요. 비가 내린 뒤에 굳어졌거던요. 참고 견딜수가 있겠어요?》

지세경은 지그시 눈을 감고 머리를 끄덕였다. 달구지는 다시 굴러갔다. 처녀의 발자국소리가 자박자박 울리고 바람을 안고 부풀어오른 치마자락이 펄럭거렸다.

한동안 그들은 말없이 갔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흘끔흘끔 그들을 살펴보았다. 한낮때인지라 길에는 나다니는 사람들이 띠염띠염 늘어서있었다. 쌍별이는 아무 주저없이 고개를 들고 길복판으로 달구지를 끌고갔다. 앞에서 마차나 소달구지가 마주오는 때면 길섶에 비켜서서 침착히 기다렸다가 다시 길에 나섰다.

《점심은 드셨나요?》

쌍별이는 생각난듯 물었다.

《먹었소.》

지세경은 진심으로 나직히 대답하였으나 쌍별이는 안심하지 못하였다.

《내가 무엇을 좀 꾸려가지고 오는걸 그랬어요, 그저 헤덤비면서···》

쌍별이는 못내 자기의 행동을 후회하였다. 올 때와도 더 다른 중하고 애틋한 감정이 솟아올라 그의 가슴을 얼얼하게 만드는것이였다.

쌍별이는 또 한참동안 말없이 갔다. 호젓한 들길에 울리는 달구지소리와 처녀의 발자국소리가 이상하게 세경이의 심중을 구슬프게 자극하였다.

나는 무엇때문에 경찰에 잡혀왔었는가? 그리고 무엇때문에 무지한놈들에게서 매를 맞으며 곡경을 치르어야 했는가?··· 그러나 아무런 주장도 항변도 없이 나는 묵묵히 맞기만 했었지. 나는 깡그리 모든것에 패하고 돌아오는 인간이다.

참으로 정당하고 아름다운 모든것은 무지와 강권앞에 짓밟히우고 사랑과 애무의 순결한 감정은 비탄의 눈물에 젖어 얼룩져있고··· 지세경은 생각할수록 분하여 울고싶었으며 굴러가는 이 자그마한 달구지바퀴에라도 치여죽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이렇게 살아서는 무엇하나? 이렇게 짓밟히고 빼앗기고 도륙을 당하고 눈물속에 인생을 후회하며 천년을 산들 무엇하겠는가? 그것은 생이 아니라 고역이지, 길든 짧든 그것은 고역이다.
지세경은 눈두덩까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반쯤 쓰러진 자세로 몸을 눕혔다. 그는 뼈까지 상한 사람은 아니니 걸을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 아파 걸을수가 없다. 힘을 가다듬고 앉아있을수도 없어 이렇게 반몸을 눕힌것이다.

《우리 집 형편은 어떻소. 본시 화목하지 못한 집안이니··· 수라장일터이지?》

쌍별이는 숨을 돌릴겸 대답도 해야겠고 하여 멎어섰다. 지세경의 얼굴은 이쪽을 향하고있었으나 눈길은 처녀의 어깨를 넘어 먼 허공으로 날아가있었다. 그 초점없는 먼 시선이 처녀의 가슴에 아픔을 주어 쌍별이는 얼굴을 이그러뜨렸다.

《이봐요. 너무 상심하시지 말아요. 전보다두 더 조용히들 지내요. 불행이 닥쳐오면 마음은 더 가까와지는거예요.》

지세경은 대답이 없었다. 후- 하고 단숨을 내뿜고 눈시울을 푸들푸들 떨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하면 그는 사회에도, 이웃에도, 부모에게도 불효막심한 자식이다. 아무 가치없고 리득을 주지 못하며 소란과 걱정만을 안겨주는 존재인것이다.

쌍별이는 한동안 자기를 잊고 물끄러미 세경이를 내려다보았다. 내심 크나큰 고통을 안고 허덕이는 이 사람이 자기에게 얼마나 귀중하고 애틋한 존재인지 쌍별이는 새삼스레 그것을 느껴보는것이였다.

그는 달구지안에 손을 넣고 가생이로 밀려나온 새초를 안으로 밀어넣고 세경이의 옆구리가 버주기에 부딪치지 않도록 치마허리를 동인 수건을 풀어 받쳐주기까지 하였다. 세경이는 처녀의 보살핌에 몸을 내맡기고 고분고분 순종하면서 고르롭게 숨을 내쉬였다.

다릉다릉 몸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달구지가 굴러가기 시작한것이였다.

달구지의 진동은 크지 않았으나 그대신에 쌔근거리는 쌍별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세경에게는 갑자기 세상이 자그마하고 불그레해졌으며 상처입은 육신의 한귀퉁이가 천천히 잦아드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맥없이 감고있던 눈을 이따금씩 떠보군하였다. 그러면 세상은 넓고 거칠어지며 상처의 아픔도 더한층 쑤셔나는듯하였다.

다시 눈을 감으면 세상은 작고 안정되고 망막을 가리운 눈까풀에 해빛이 어려 세상이 불그레해지는것이였다. 마치 붉은 노을속으로 자그마한 수레가 가고 그우에 자신의 몸도 실려가며 자기와 함께 쌍별이가 가고있는 구슬프면서도 분명 행복이며 사랑인 바로 그것이 가고있다는 생각이 드는것이다.

쌍별이는 지세경에게 있어 등불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 거칠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쌍별이라는 애틋한 존재마저 없다면 지세경은 무엇을 믿고 어디에 의지하고 살아가랴.

지세경은 경찰서에서 겪은 일들을 생각하였다.

그는 류치장에서 꼬박 며칠밤을 형사에게 취조를 당하였다. 놈들은 그를 무슨 정치범같이 다루었으며 학교에서 출학처분을 당한 연고도 캐여묻고 공산당의 어느 연줄을 타고 지주에게 폭력을 가하라는 지시를 받았느냐고 따지기도 하였다.

지세경은 아마 오래동안 이놈들의 손에서 풀려나지 못할것으로 알았다. 그는 크나큰 비감에 싸여 고민하였다. 경찰의 채찍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들과 맞설 사상과 의지의 힘이 없었던 까닭이였다.

그리하여 지세경은 전혀 자신을 지탱할수 없는 허탈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렸으며 참담한 비애와 우울에 잠겨 묻는 말의 의미도 똑똑히 깨닫지 못하였다. 놈들은 그것을 인테리의 나약성으로 알고 내놓고 조롱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놈들은 갑자기 나를 풀어놓았는가. 여기에 무슨 음모가 있는가? 아니면 나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페인으로 알았던 모양인가?···

《어때요. 그냥 몸이 쑤셔요?》

쌍별이가 달구지의 속도를 늦추면서 심심히 걱정담아 물었다.

《괜찮소, 내 걱정은 조금도 말라니까.》

쌍별이는 한동안 머리우에 시선을 멈추고 측은히 굽어보더니 달래듯 조용조용 말하는것이였다.

《괴로와 말아요. 부락일은 다 잘돼가고있어요. 내 이제 이야기할테니 들어보아요. 그새 부락에선 글쎄 이런 일이 있지 않았겠어요.

지주가 뺏어간 소를 도로 뺏어왔어요. 춘옥언니네가 빼앗겼던 소를 도루 찾아왔단말예요.》

《그게 무슨 소리요?》

《요전날말이야요.》

쌍별이는 지세경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동네사람들이 하얗게 모인 가운데 글쎄 구장누이가 지주집에서 소를 빼앗아왔어요. 백지주도 처음은 펄펄 기를 쓰면서 달려들었대요. 그렇지만 뭐 제따위가 어쩔테야요.》

《구장누이가 소를 빼앗았소? 어떻게? 그게 정말이요?》

지세경은 달구지 버주기를 움켜잡았다.

쌍별이는 소를 뺏은후에도 가와사끼에게 슬그머니 압력을 가한 사실을 말하였다.

《그러니 가와사끼라는놈두 겁나지 않겠어요. 부락사람들이 왁 들구일어나면 제가 어쩔테야요. 도천리를 〈안정촌〉으로 꾸린다구 내려와가지구 여기서 소동이 일어나면 제 위신두 문제구 관동군사령부라는데서 받아가지고 온 임무는 어떻거겠어요. 그러니 울면서 겨자먹기루 두손을 든거지요.》

쌍별이는 말하고나서 방싯 웃었다.

《그건 누가 하는 소리요. 분명 쌍별이의 의식으로 말하는건 아닐테지?》

《구장누이가 하는 말이지요.》

쌍별이는 너무도 응당한 일이라는듯 생기를 띠고 대답하였다.

《구장누이 이야길 들으니까 우리두 뭔가 눈앞이 트이는게 있지 않겠어요. 구장누인 말하기를 부락사람들이 한마음한뜻으로 뭉치면 이보다 더 큰일도 할수 있다, 놈들이 아무리 강한것 같애두 단결된 인민의 힘보다는 못하다, 이제 지세경선생까지 야학에 나와서 농민들을 가르치구 부락사람들을 위해 힘을 합친다면 그땐 어떤 강적도 우리를 당해내지 못할거라구 했어요. 힘이 나지 않아요 예? 우리같이 아무것두 모르는 녀자들두 성수가 나서 래일부터 보리씨붙임을 일제히 하자구 다짐들을 했어요. 부락은 이렇게 술렁술렁하는데 어떡하시겠어요, 야학에 좀 나와주시겠어요?》

쌍별이는 눈빛을 빛내며 희망을 안고 물었다.

지세경의 얼굴은 철빛으로 굳어지고 반쯤 내려뜬 눈시울은 긴장으로 하여 푸들푸들 뛰였다.

충격은 너무나 큰것이였다.

그러나 사변의 의의며 목적이며 지향이며 하는 그 모든것은 아직 그의 뇌리에 석연히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한것이였다. 가와사끼가 부락사람들의 기세에 겁을 먹었다는것도 더 명백해지고 따라서 사람들을 계몽하여 그들을 단결시켜야 할 필요성도 좀 더 절박하게 안겨와야 그의 심장도 격렬히 고동칠것이였다.

그래서 지세경은 스스로 안타까와 가슴을 태우면서 자기가 나아갈바, 해야 할바를 모색하는 고민을 계속할수밖에 없었다.

야학을 해달라고? 부락사람들의 눈을 띄워주기 위해 야학을 해달란말이지.

야학!···

얼마나 거절하기 어려운 눈물겨운 청원을 매양 마다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괴롭구나, 정말 괴롭구나. 이 지루한 괴로움이 언제 나에게서 떠나갈 때가 있겠는가?)

쌍별이는 한숨을 쉬였다. 또다시 밑창없는 번민속으로 빠져들고있는 지세경을 대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쌍별이는 마음을 다잡았다. 자기도 안타까왔지만 세경이는 더욱 괴로와하는것 같았다. 허나 이렇게 쓰라린 괴롬의 고비를 넘어 오늘을 옛말처럼 외우며 살게 될 때가 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처녀는 달구지채를 잡고 안깐힘을 쓰며 끌었다. 래일을 바라고 가는 처녀의 마음에는 그래도 공상의 무지개가 피여올랐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갔다. 멀리 마을의 집들이 보였다. 길섶의 가까운 밭둔덕에서는 연기가 피여올랐다.

《이봐요. 저길 좀 보아요.》

쌍별이가 주춤거리면서 말했다. 지세경은 고개를 들고 어수선해지는 마음에 눈의 초점마저 잃어가면서 뿌잇한 공간을 내다보았다.

황혼이 비낀 언덕밭우에서 화토불이 타오르고있었다. 해가 진 저쪽 지평선은 거무스름하고 그보다 좀 밝은 암청색 하늘에는 락조의 후광을 받아 빛나는 구름쪼각들이 떠있는데 그 사위여가는 구름송이들에 빛을 보내주려는듯 화토불은 선명한 빛을 발산하면서 타오르는것이였다.

화토불두리에는 두사람이 마주앉아있었다. 불빛을 받고있는 얼굴이며 가슴앞은 태양의 후광과도 같은 밝은 빛에 싸여있고 잔등은 들과 산, 하늘과 지평선의 아득한 그 한끝까지 하나의 우단으로 감싸고있는 황혼 즉 암갈색 어둠과 잇닿아있어 흙이며 밭둔덕이며 하는 그것과 조금도 구별할수 없었다.

그들은 이따금씩 삭정이를 던져넣어 화토불을 지피고있었다. 수천의 빨간 불티들이 공중높이 날아오르면서 암청색공간으로 잦아들었다. 그러면 하늘우의 구름쪼각들은 그 불티들에 타는듯 한결 더 빨갛게 진홍색으로 물들어가면서 가장자리의 창백한 흰빛을 잃어가는것이였다.

달구지는 바퀴소리도 없이 다가갔다. 지세경은 그 화토불두리의 임자들이 누구들인지 그것만이 관심이였으며 그들을 알고싶은 까닭모를 욕망에 휩싸이는것이였다.

《이쪽은 칠봉로인이 아니예요?》

《응?··· 아, 그런것 같소.》

지세경은 흥분하였다.

《저쪽은요?》

《참순이겠지. 참순이요. 신파에서 딸이 건너온 모양이요. 들에서 로인의 옷을 빨아주려고···》

《아니예요. 참순이가 아니예요.》

쌍별이는 속삭였다.

《아니면 누구요?》

《구장누이같아요!》

《구장누이가 무엇하러 여기 나와있겠소?》

《구장누이일거예요. 며칠전에두 칠봉로인의 잃어버린 돼지를 찾아주느라고 온밤 비오는 산속을 헤맨 일이 있어요. 구장누이가 아니였더면 로인은 산속에서 어떻게 됐을는지 몰라요.》

《그런 일이 있었소?》

《예, 그날 구장누이는 로인의 덞은 적삼을 깨끗이 빨아드리자고까지 하였는데 지주에게 경을 칠가봐 로인은 그냥 부득부득 가버렸어요. 그때문에 구장누인 얼마나 가슴아파했는지 몰라요.》

《후-》 하고 지세경은 더운숨을 내쉬였다. 그다음은 묵묵히 입을 다물고 다가오는 화토불만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칠봉로인과 마주앉아있는 녀성은 참순이가 아니라 구장누이였다. 구장누이는 모닥불우에 젖은 적삼을 말리고있었는데 그 한끝을 로인이 잡고있었다.

젖은 적삼에선 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고있었다. 희끄무레한 김이 로인의 턱밑으로 스쳐지나갈 때마다 로인은 턱이 간지러운듯 팔소매를 쓱쓱 문질렀다. 껄껄거리는 대단히 흥겹고 성수가 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달구지를 세우오.》

지세경은 손을 뻗쳐 달구지채를 잡았다. 그리고 온몸이 쑤셔나는 아픔을 이기고 길바닥으로 내렸다. 다리가 허둥거려 얼핏 한손을 땅에 가져갔으나 용케 넘어지지 않고 벋디뎠다.

《왜 그래요?》

《나를 좀 부축해주오. 저리로.》

지세경은 마주쳐오는 바람에 숨을 헐떡이면서 걸음을 내짚었다. 쌍별이는 지세경의 한쪽 겨드랑밑에 어깨를 받쳤다. 푸실푸실한 밭이랑흙이 발끝에 걸채여 먼지가 일어났다.

《언니!》

쌍별이는 챙챙한 맑은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이쪽을 보시였다.

《아니, 지세경선생이 오시는군요. 아버님, 지세경선생이 오셔요.》

《뭐?》

김정숙동지께서는 말리우던 적삼을 안은채 달려오고 칠봉로인은 쌍엽장을 집느라 허둥대며 돌아갔다. 지세경이와 쌍별이도 기뻐 어푸러질듯 허청거리며 마주 다가갔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그놈들이···》

김정숙동지께는 달려오시던 자세로 멎어서시여 세경이의 아래우를 살펴보시며 기뻐 어쩔줄 몰라하시였다. 지세경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는 다함없는 고마움의 뜻으로 머리에서 모자를 벗었다.

《저번에 징검다리에서 한번 보구선··· 그때도 미안하였는데 이번에···》

《무슨 말씀을··· 그런 말씀을 마세요.》

김정숙동지께는 눈을 슴벅이시며 뒤따라온 칠봉로인을 부축하여 지세경앞에 내세우시였다.

《이사람아!》

로인은 세경이의 가슴에 푹 꼬꾸라졌다.

지세경은 로인의 어깨를 꽉 부둥켜안고 깊이 머리를 숙이였다. 그 옛날 아득한 소년시절에 맡고는 기억에서 삭막해졌던, 로동의 고역에 시달리고 가난에 전 육체의 다시없는 쩌릿한 체취가 페부를 가르고 스며들었다.

《이사람, 나는 자네가 집에 내려와있는줄 알면서도 찾아가지 못했네. 어려웠어. 이렇게 만나게 되리라구는 생각지도 못했지.》

《로인님, 저를 용서하십시오.》

지세경은 더욱 낮추 고개를 숙이고 땀에 전 로인의 어깨에 머리를 비비였다.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았으나 행동으로는 이 늙은이를 하대해온듯 한, 남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규탄을 한대도 항변할수 없는 실책의 아픈 생각이 가슴을 훑어내렸다.

《참, 보구싶었다니까. 자네 어릴 때 모습이 그냥 눈에 매달리면서···》

늙은이는 험한 손에 세경이의 얼굴을 싸안고 들여다본다. 지세경은 순순히 아이처럼 그 손에 얼굴을 내맡기고 서버렸다. 흘러가버린 옛시절이 떠올랐다.

푸른 들, 짙어가는 황혼, 해종일 장난에 지쳐 잠든 사내애, 달려드는 모기떼를 다박솔가지로 휘휘 날려주던 로인의 모습, 어둠은 점점 사위를 감싸고··· 그러면 잠든 사내애의 머리우에서는 담배불이 반짝거렸다.

《이제는 가야 할가부다, 이녀석아!》

들은 로인의 목소리를 받아 사방에서 속삭였다. 《가야 할가부다. 가야 할가부다, 가야 할가부다.》 하고.

세경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사람, 자네 날 버리지 말게. 난 세상에 정이 그리운 사람일세.》

《로인님. 제가 로인님을 버리다니요?!》

지세경은 두번다시 아픔이며 뉘우침이며 고통이라 할수 있는 그 쩌릿한 생각을 감수하면서 머리를 저었다.

《구장누이가 구장누이가···》

로인는 눈을 슴벅이며 자초지종 설명을 다하지 못했다.

김정숙동지께는 난처하신듯 어쩔바를 몰라하시다가 화토불이 꺼진다고 하시면서 불무지로 가시였다.

지세경은 말 못하는 로인의 심정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힘주어 로인의 손을 꽉 잡고 늙은 나무의 린편같이 터갈라진 손등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내가 이 로인을 위해 해준것이 무엇이 있었는가, 할수 있었던것은 또 무엇이 있었고?··· 생각뿐이였지 행위로 옮겨놓은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생각조차도 불행한 그 운명에 대한 울분의 폭발로 그치지 않았던가? 죄송하고 미안하기 그지없는 마음, 지세경은 비록 가슴을 헤치고 열어보일수는 없으나 량심이라고 할수 있는 그 새빨간 피덩이를 갈라본다 해도 거기에는 영영 버릴수 없는 애정과 애달픈 운명의 하소연이며 울분으로도 가라앉힐수 없는 사무치는 동정의 세계가 살아있으며 다시 이렇게 아픈 충격으로 깨우쳐진 그 자각,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온 그 강한 의식은 영영 소멸되지 않으리라는것을 확신하였다.

《로인님, 제가 이제부터는 로인님을 보살펴드리렵니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었던 마을사람들을 위해서도 무엇인가 하구요. 구장누이가 로인님을 위해서, 부락사람들을 위해서 아글타글 애쓰는데 가만히 보구만 있지 못하겠군요.》

지세경은 로인과 함께 화토불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쌍별이의 부추김을 받지 않아도 몸의 중심을 유지하고 걸었다. 정신상의 무위와 고독을 어느만큼 털어버릴수 있었던 세경은 육체의 기력마저도 회복한듯싶었다.

김정숙동지께는 영민한 청년의 눈빛과 약간 혈조를 띤, 탄력마저 느껴지는 그 모습을 보시자 기쁨을 금치 못하시며 전혀 새사람을 맞이하듯이 반기시였다.

《선생님이 이렇게 나오시니 이젠 됐어요. 부락에 사람이 없어 애가 타더니, 사람들을 가르치며 이끌고나갈 주인이 없는게 제일 고충이였어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주인까지야 되겠습니까?》

《그래두 마을엔 선생님만큼 공부하신이가 없고 또 부락사람들 형편이랑 다 잘 알고 진심으로 위해주실분은 선생님밖에 없지요!》

지세경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영채도는 눈으로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마을에 야학을 열어주십시오. 글을 몰라 안타까와하는 사람들에게 글을 배워주고 세상의 진리도 가르치고요.》

《협화회야학인데 진리를 가르친다는게 어디 쉽겠습니까?》

《선생님, 마음 가지기탓이지요. 명색이 협화회야학이라 해도 옳은 말씀만 들려주시면 그만입니다. 사람들은 선생님에게서 진리를 배우려고 하지 놈들의 선전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청년은 눈에 띠게 흥분하였다.

《해보지요, 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지세경의 흥분은 단순히 할수 있다는, 가능하다는 그 사실의 발견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한낱 기초에 불과하였다. 지세경은 야학이나 무슨 계몽운동같은것으로 세상의 변혁을 이룩할수 있다고는 굳이 믿지 않았던 사람이였다. 그래서 실상은 그의 정신상의 방황이 시작되기도 한것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이 부락사람들의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것을 부디 마다할 용기는 없어졌다. 그는 사상의 루각을 보기전에 봄빛처럼 가슴에 스며든 인간의 정리를 들여다보게 된것이였다. 사람들을 위해 힘을 바치며 뜻을 다하고있는 김정숙동지의 그 아름다운 세계를 외면할수가 없었다. 그것을 외면한다는것은 칠봉로인을 외면하며 춘옥이며 쌍별이를 외면하며 그리고 숱한 부락사람들과 등져살아야 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지세경은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