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4

 

제 5 장

4

 

한동안은 김정숙동지께서 뒤에서 따라오시는것 같아 춘옥은 무서운줄 모르고 걸어갔다. 혼자가 아니라 분명히 함께 가고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그이께서 어둠속으로 자기를 바라보시는것만 같았다.

춘옥은 걸음을 다그쳤다. 캄캄한 수림의 품속으로 한발한발 깊이 빠져들어갔다. 그러자 차츰차츰 김정숙동지와 떨어져 혼자 가고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 생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욱더 깊어갔다. 이제는 혼자 가고있다는 의식을 털어버릴수 없었으며 그것은 갈수록 분명하고 또렷해졌다.

어둠은 사방으로부터 갑자기 압박하면서 다가들었다. 눅눅하고 찬바람이 얼굴을 싸늘하게 스치면서 지나갔다. 머리우에서는 나무가지들이 솨솨 소리를 내면서 설레고 보이지 않는 수림의 깊숙한 어느곳에선가 나무가지가 부러지는듯 한 소리가 뚝, 뚝 하고 들려왔다.

춘옥은 등골이 오싹하여 멎어섰다. 그 뚝, 뚝 하는 소리는 가까와오고있었다. 다른쪽에서는 새초숲을 헤치는것 같은 바스락소리가 들리고 솔방울이 가랑잎우로 굴러내리는듯 한 미묘한 음향도 울리였다. 그리고 그 모든것은 자기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오는것 같았다. 춘옥은 땅에서 발을 뗄수가 없었다. 몸은 점점 공포에 가드라들었다. 춘옥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걸었다. 소리는 여전히 자기를 향해 따라오고 어둠은 더욱 빽빽이 죄여들었다. 춘옥은 머리끝까지 신경이 날카로와지고 눈이 자꾸만 사방을 살피게 되였다. 그러면 분명 어둠속에 무엇인가 지켜서있는것 같고 금시 검은보자기를 쓴것들이 후닥닥 뛰쳐나와 덮칠것만 같았다. 갑자기 춘옥의 눈앞에는 희끄무레한 사람의 형체가 저만치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것은 한자리에 그냥 서있으면서 다가오는 춘옥이를 지키고있었다. 춘옥은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빳빳이 일어났다.

(이게 무엇일가?)

춘옥은 두눈에 정신을 집중하고 쏘아보았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가지사이로 흘러드는 달빛이 길섶의 바위를 비치고있는것이였다. 춘옥은 안도의 숨을 후-내쉬고 가까스로 그옆을 지나갔다.

(내가 왜 이럴가? 절대로 겁을 먹어서는 안되는데. 내가 어떤 길을 가고있게! 기어이 이 밤으로 채벌장에 가닿아야 해!)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앞에서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다시 나타나 휘적휘적 팔을 내저으면서 다가오고있었다. 깜짝 놀란 춘옥은 뒤걸음치면서 손이 닿는 나무를 그러안고 돌아갔다. 움직이던 물체는 다가오지 않고 그냥 한자리에서 팔만 내젓고있었다. 춘옥은 쿵쿵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가까스로 부여안고 길바닥으로 나왔다. 그리고 죽을셈치고 흐느적거리는 물체로 다가갔다. 그것은 이슬에 젖은 가둑나무가지에 달빛이 떨어진것이였다. 바람에 가지들이 흔들리면서 그런 무시무시한 형상을 그리고있었던것이다.

춘옥은 이젠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고개를 숙이고 오직 길바닥만 내려다보며 달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문득 그의 앞에서 무엇이 왈칵 뛰쳐일어났다. 머리를 드니 바로 코앞에 두팔을 쩍 벌린 시커먼것이 마주서있었다.

《어마나!》

춘옥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제는 오도가도 못하고 선자리에 멎어섰다. 검은 팔은 천천히 그의 목을 그러안고 윽조일것 같았다. 춘옥은 다가올듯 다가올듯 하면서도 다가오지 않는 그 검은 팔을 주시하였다. 그것은 오랜 고목이 되여버린 허리부러진 진대나무였다.

춘옥의 온몸은 땀에 푹 젖어있었다. 발을 옮기면 땀이 흐르는 다리에 치마자락이 휘감기였다. 춘옥은 몇번이나 치마자락에 휘감겨 넘어졌다. 땅을 내짚은 손바닥은 쓰리고 후끈후끈하였으며 곧 그 감각은 잊어졌다. 다시 일어나 어둠과 싸우며 걷지 않으면 안되였다. 문득 어느결엔가 희끄무레한 공간이 내다보였다. 그것은 새초가 우거진 등판이였다.

그는 정신없이 등판을 향해 달려갔다. 짙은 안개가 넓은 등판에 젖어흐르고있었다. 숲은 여기서 끝나버리고 어느덧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춘옥은 후-안도의 숨을 내쉬고 금방 빠져나온 숲을 돌아보았다. 온밤 악몽속을 헤매고 다닌듯한 숲이였다. 춘옥은 자기가 어떻게 저 숲속에 주저앉지 않고 그냥 헤치고나왔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 순간 저쪽 숲언저리에 대견히 미소를 짓고계시는 김정숙동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해요. 봉녀 아지미.》

김정숙동지께서는 분명 그렇게 말씀하시는것 같았다.

목이 메고 눈물이 맺히였다.

춘옥이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고 쓰러질듯 비척거리면서 새초밭을 걸어갔다.

안개낀 등판의 한쪽끝에서 도끼질소리가 창, 창 여무지게 들려왔다. 발밑에는 베여낸지 그리 오래지 않은 나무그루들이 희끗희끗 보였다. 그러고보니 그것은 등판이 아니고 채벌장인것 같았다.

춘옥은 잘라버린 나무가지들에 치마를 걸채우기도 하고 발을 빠뜨리기도 하면서 소리나는쪽을 향해 다가갔다. 도끼질소리, 톱질소리, 소의 영각소리 그리고 발구가 삐거덕거리는 소리며 사람들이 무어라 웨치고 화답하는 소리들이 뒤범벅이 되여 들려왔다. 간간이 나무가 넘어지며 통나무가 굴러가다 어딘가 텅텅 부딪치는 소리도 들린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자 안개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어릿어릿하고 뻘건 소잔등들이 움씰거리며 말소리, 발구의 삐거덕소리들이 한결 똑똑히 들려왔다.

나무들은 사방에서 우쩍우쩍 소리를 내면서 넘어지고 그때마다 찬바람이 솨- 몰려오며 안개발들이 연기처럼 타래를 지으면서 밀려갔다.

춘옥이는 어느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어야 할가 생각하면서 욱실거리는 사람들의 뒤모습을 여겨보았다. 시꺼먼 토스레적삼을 걸친 한사람이 사람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이쪽으로 걸어왔다.

《아주바니, 말좀 묻자요. 도천리사람들이 어디서 일하는가요?》

그 사람은 갑자기 나타난 아낙네를 한참 신기하게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먼 안쪽을 가리켰다.

사나이는 춘옥이와 헤여져 몇걸음 걷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춘옥은 자기의 몸을 돌아보고 머리를 만져보았다. 그때에야 자기의 주제가 말이 아닌것을 알았다.

발은 언제 그렇게 되였는지 물에 푹 젖고 치마자락에는 먼지가 뿌옇게 달라붙어있었으며 헝클어진 머리는 이마우에 흐트러져있었다.

춘옥은 황급히 치마를 털고 머리를 매만지고 고름끈도 풀어 다시 매였다.

춘옥은 드문드문 곡식낟가리처럼 쌓아올린 원목더미들옆을 지나갔다. 채벌을 끝낸 구역은 가을을 한 밭들처럼 밋밋하고 잘리운 하얀 나무밑둥에서는 송진이 흐르고있었다.

춘옥은 한손으로 치마자락을 걷어잡고 날렵하게 발을 옮기였다.

후미진 골짜기의 성근 숲에서 두사람이 나무밑둥에 장톱을 걸고 량쪽에서 엇바꾸어 잡아당기고있었다. 쌔릉쌔릉 소리가 울리고 하얀 톱밥이 량쪽으로 싸락눈처럼 뿌리워나오면서 그에 따라 톱은 재빨리 나무속을 파먹고 들어갔다.

춘옥은 그들에게 다가가 도천리사람들의 일터를 물었다. 그러자 그중 한사람이 일손을 놓고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등판의 저쪽 끝을 가리켰다. 그 손길을 따라 사람과 소와 발구가 한데 섞여 돌아가는 먼 채벌구역이 바라보였다.

춘옥이는 문득 한숨을 쉬였다. 지주의 산판은 크기도 한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산판에 간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들고일어나면 그것은 큰 사변으로 될것이라고 하시던 말씀의 뜻이 이제야 명백해지는듯싶었다.

춘옥은 한달음에 도천리 채벌장에 가닿았다. 한사람한사람을 눈으로 세여넘기던 춘옥은 개가죽등거리를 입은 장대한 사나이가 발구를 끌고 경사지를 벋디디며 내려오는것을 보았다. 소는 발목까지 느침을 흘리고 사나이는 짚신발을 높이 들어올리면서 나무그루를 뛰여넘고 뒤로부터 밀리는 짐을 떠밀치느라 한쪽어깨를 멍에채에 들이박고있었다.

그는 권용산이였다. 춘옥은 반가와 마주 뛰여갔다. 권용산은 피끗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으나 안해를 알아보지 못했다.

발구와 사람과 소가 뒤범벅이 되여 잡관목을 마구 깔아뭉개고 흙을 파뒤집으면서 아래로 줄달음쳐 내려갔다. 춘옥이는 발구밑채에서 뿌리워나오는 흙과 나무가지를 피하느라 몸을 옹송그리면서 발구를 따라 달려갔다.

평평한 골짝바닥에 내려선 권용산은 그제사 안해를 알아보고 다급히 《와와》 하고 소리를 치면서 소를 세웠다.

《아니? 당신이 어찌된 일이요 엉?》

춘옥은 남편의 앞에 서자 간밤의 긴장이며 피로가 씻은듯 물러가고 금시 마음이 가벼워지는것을 느꼈다.

《심부름을 왔어요.》

《누구 심부름을?···》

권용산은 헐떡거리는 소의 목에서 바줄을 늦춰주고 다가왔다.

《구장누이가 좀 심부름을 해달라기에···》

《뭐?》

권용산은 성급히 꽁무니에 도끼를 찌르더니 긴장한 눈으로 사방을 한번 휘-둘러보았다.

《당신이 구장누이 심부름을 왔단말이요?》

《예, 당신더러 전하라는 편지가 있어요.》

권용산은 안해의 손목을 잡고 다래넝쿨이 우거진 바위뒤로 돌아갔다. 그는 까닭을 알수 없는 눈길로 안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봅시다. 무슨 편지기에 당신이 가져왔소?》

그는 안해의 얼굴에서 그냥 눈길을 떼지 못하면서 그가 내미는 조그만 봉투편지를 받았다.

《중한 편지예요. 당신한테 가져가면 딴분에게 전한다고 하더군요.》

《알겠소.》

권용산은 안해의 물에 푹 젖은 발이며 치마자락이며 땀에 뜬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조막도끼를 뽑아들고 다래넝쿨을 번쩍번쩍 찍어넘기더니 그것을 발로 다져서 평평하게 만들고 거기에 안해를 앉혔다.

《그래 동무해주는 사람도 없이 밤길을 혼자 왔소?》

춘옥은 방싯 웃고 대답을 안했다.

권용산은 참말 모를 일이라는듯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포대산줄기를 타구 이리떼가 내리는곳인데 무섭지두 않았소?》

《모르겠어요. 어떻게 왔는지···》

《모를 일이군.》

권용산은 다시 고개를 흔들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편지봉투를 쥐고 어디엔가 한참 갔다오더니 새까맣게 피딱지가 앉은 손으로 무릎을 짚고 엉거주춤한채 안해를 내려다보았다. 물에 함빡 젖은 춘옥이의 발에서는 김이 피여오르고있었다. 그는 안해의 발치에 꿇어앉아 젖은 발에서 피껍질을 풀어버리고 신을 벗겼다.

《버선도 벗소.》

《이건 내 혼자 벗어요.》

춘옥은 권용산의 손에서 냉큼 발을 뽑아내고 돌아앉아 허리를 꼬부리고 꽁꽁 갑잘랐다.

《젖은 버선이 그렇게 벗어지나?》

권용산은 물속의 고기를 잡을 때처럼 두손바닥을 벌리고 이리저리 피하는 안해의 발을 잡으려고 하였다. 춘옥은 또다시 냉큼 돌아앉았다.

권용산은 손바닥을 털고 일어나 삭정가지를 모아다 모닥불을 피웠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가끔 안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있었다.

춘옥은 죽을 고생을 하여 버선을 벗었다. 권용산은 말없이 안해의 버선을 집어들어 모닥불옆에 놓았다.

《여보, 내 당신더러 한가지 묻겠는데 대답해주겠소?》

권용산은 사뭇 심중한 표정을 하고 춘옥이를 굽어보았다.

《무엇인데요?》

춘옥은 눈이 동그래지며 남편을 마주보았다.

《저 구장누이하구 당신은 어떻소. 꽤 가까운 사이요?》

《그건 갑자기 왜 물어요?》

《당신이 이 밤길을 혼자 왔으니말이지?》

《부탁을 하는데 어떻게 안들어줄수 있나요?》

춘옥은 남편의 눈덕이 한번 풀떡 뛰는것을 보았다.

권용산은 생각에 잠기였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구장누이가 무산서 이사왔다는건 사실이요?》

춘옥은 불현듯 가슴이 콩콩 뛰였다. 남편앞에 무엇이라 대답해야 옳을가? 딴말을 한다면 이 무던하고 용한 남편에게 죄를 짓는것 같고 바른말을 한다면 그것은 김정숙동지와의 약속을 어기는 일로 되여 그것도 큰 죄같이 느껴지는것이다. 이 순간 춘옥이의 귀에는 부부간은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 비밀만은 꼭 지켜줘야 하겠다고 하시던 김정숙동지의 목소리가 쟁쟁 울리였다.

춘옥은 마음을 다잡고 대답하였다.

《무산이 고향은 아니래요.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시구··· 하니까 무산에 있는 먼 친척집에서 살다가 이리루 건너왔대요. 늘 마음이 쓸쓸하다구 우리 집에랑 자주 놀러 와요.》

《그게 정말이겠소?》

《정말 아니문요?》

《그렇소?》

권용산은 뚫어지게 안해를 지켜보았다. 춘옥은 아무리 마음을 굳게 다지긴 했으나 남편의 눈길을 똑바로 마주볼수가 없어 고개를 숙였다.

《그것참, 난 당신이 그렇게 대답할줄은 몰랐소.》

그 순간 권용산의 얼굴에 말 못할 기쁨과 감격이 어리고 그가 어쩔바를 몰라하는것을 춘옥이는 보지 못했다.

권용산은 김정숙동지의 편지에도 사연이 있었고 하여 정말 이 사람이 혁명의 비밀을 지켜낼수 있을가 하여 시험해본것인데 안해는 그의 마음을 너무도 흡족하게 해준것이다.

권용산은 안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도 이제 이 산판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며 도천리만 아닌 린근부락 여러 마을에서 온 숱한 농민들과 각처에서 온 인부들이 이 싸움에 합류하게 된다는것을 말해주고싶은 욕망을 억제할수 없었다.

권용산은 안해가 마른 버선과 신발을 신기를 기다렸다가 주머니에서 분지나무가지를 꺼냈다.

《이속에 구장누이에게 보내는 쪽지가 있소.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면 절대로 안되는 쪽지요. 무슨 말을 하는지 알만하겠소?》

《예!》

춘옥의 목소리는 전에없이 똑똑하였다. 춘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가려오?》

《가야지요. 기다릴텐데요.》

《아니 좀 앉소.》

권용산은 안해의 손을 눌러앉히였다.

《당신한테 뭘 주어보내야 할것두 있고 당부할것도 있소. 당신은 무슨 일이 있더라두 비밀을 지켜야 하오. 설사 죽는한이 있어두 비밀은 지켜야 한단말이요. 구장누이를 돕는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요. 사람에겐 의리가 있어야 하는거요. 구장누이를 믿고 따랐다면 끝까지 따라야 하오. 정성을 다해 구장누이를 돕소!》

《알겠어요!》

춘옥은 대답하면서 남편을 유심히 살폈다. 춘옥은 남편도 자기에게 감추는 무슨 비밀을 가지고있다는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게 무엇일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있을가?···

춘옥은 홍조를 띤 아름다운 얼굴을 들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권용산이도 안해의 얼굴에서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얼마나 곱고 대견한지 몰랐다. 밤에는 혼자서 문밖출입도 못하던 사람이 그 험한 밤길을 왔으며 내처 돌아가려 하고있는것이다. 권용산은 이 순간처럼 안해가 사랑스럽고 미더웁고 정이 씌여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는 안해에게서 점도록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 땀줄기가 말라붙어 소금꽃이 핀 얼굴이며 희슥희슥 조갈이 든 입술이며 먼지와 검부레기들이 달라붙어 뿌얘진 헝클어진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찌르르 울리였다.

그가 이 산판으로 떠나올 때 동구밖 멀리까지 눈물이 글썽해 따라오던 안해가 생각났다.

이 연약한 안해의 손에 병든 아버님과 농사일을 맡겨놓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랴, 참으로 빛을 볼수 없는 막막한 앞날에 탄식을 쏟으며 밤새 다 패놓지 못한 장작때문에도 마음이 걸려 자꾸만 그 옹이박이통나무와 씨름을 할 안해의 손과 자그마한 어깨를 끝없이 내려다보게 되는 그 순간의 아픔도 동시에 살아났다.

그렇던 안해가 그 무서운 생활고를 이기고 일어났으며 혁명이라는 이 놀랍고 격동적인 생활에 뛰여들지 않았는가?

김정숙동지께서 사람을 키워주셨구나. 얼마나 많은 힘과 정력과 사랑과 보살피심이 이 사람에게 부어졌을가. 공력이 없이, 바친 수고가 없이야 이처럼 사람이 성장할수가 있단말인가!

권용산은 목이 메여 돌아섰다.

그는 초막에 올라가 커다란 나무목침을 들고나왔다. 그것은 보통 목침의 두배나 되게 큰것이였다. 강성태가 부탁한 목침이였다.

강성태는 원래 잠에 들면 험하게 코를 골아대며 세상모르게 자는 사람이였다. 안해에게서 지금 귀한분을 모시고있는 어른이 무슨 코를 그렇게 고는가고 핀잔을 듣고나서 강성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하였다.

(내가 진작 이 무슨 정신인가? 장군님께서 보내신 공작원을 모시고도 예전처럼 코를 골아대며 잠을 자다니. 이래서야 내가 무슨 그분의 신변을 책임진 지회장이라고 하겠는가? 얼토당토않은 일이지. 잠을 이렇게 자서는 안된다. 절대 깊은 잠을 자서는 안된다.)

이렇게 생각한 강성태는 목침을 높이 고이면 잠을 설잔다는 말을 듣고 채벌장에 있는 권용산이한테 목침을 크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한것이였다.

권용산은 이 목침을 깎으면서 강성태의 혁명가적인 량심이며 의리며 의무에 대한 높은 충실성들을 생각하였다.

권용산은 그때 목이 메였으며 지금도 이 목침을 바라보려니 새삼스레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는 춘옥이앞에 목침을 내밀면서 말하였다.

《이걸 강성태형님에게 갖다드리오. 전부터 부탁하던걸 이제야 만들었소.》

춘옥은 그것을 받아놓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건 무엇에 쓰는거예요?》

《목침이요.》

《무슨 목침이 이렇게 커요? 이걸 어떻게 베고 눕는다고 그래요.》

《아무 말 말고 가지구 가오. 당신도 후에는 알게 될 때가 있소. 어쩌면 이제부터는 나도 이런 목침이여야 잠잘는지 모르오. 이래뵈두 여물가마에 삶아서 송진을 빼구 재물에 두번이나 다시 삶아낸 자작나무 목침이요. 다른 사람들이야 이 목침의 값을 알수가 없지.》

춘옥은 미타해하면서도 할수없이 머리에 이였다.

강성태가 이 목침을 보면 권용산이를 도끼목수라고 나무랄것 같았다.

춘옥은 한낮이 조금 기울어 마을에 도착하였다. 김정숙동지께 련락쪽지도 드려야겠고 또 목침도 전할겸하여 강성태의 집부터 들렸다.

강성태는 마침 집에 있었는데 공사장에 나온 왜놈기술자하고 마주앉아서 산판을 튀기면서 무슨 계산인가를 맞추고있었다.

춘옥은 마치 신분단에게 일이 있어 들린척하고 부엌에 들어갔다. 잠시후 강성태는 왜놈기술자를 돌려보내고 부엌문을 열었다.

그는 처음으로 춘옥의 손을 꽉 잡아흔들었다. 말은 없어도 그 손의 억센 힘으로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왔다.

《사고가 없었소?》

《예.》

《주인이 주는 물건이 있으면 인주.》

춘옥은 쪽지가 든 분지나무가지를 내주고 좀 미타해하면서 수건에 감싸가지고 온 목침을 내놓았다. 강성태는 무슨 보물이라도 받은듯 두손에 받아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게 깎았군. 이게 진짜 목수야!》

강성태는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참으로 영문을 알수 없는 일이였다. 분명 도끼목수라고 나무랄줄 알았던 강성태가 뜻밖에도 만족해하면서 손으로 자꾸만 쓸고 만지고 하면서 어루더듬는것이였다.

강성태가 그렇게 기뻐하는것을 보자 춘옥이도 기뻤다. 그는 김정숙동지께서 보이지 않아 자주 방안을 살피였다.

자신도 믿을수 없는 그 일을 뜻밖에도 쉽게 해제낀 자기의 모습을 그이께 보이고싶은 간절한 욕망이 불쑥 솟아올랐다.

《얌전이 고모는 어디 계시나요?》

《칠봉로인의 옷을 빨아드리려고 들로 나갔소.》

《참, 형님두.》

춘옥은 감개와 함께 스며드는 이상한 안타까움을 걷잡지 못하면서 문밖 멀리 등판쪽을 살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