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3

 

제 5 장

3

 

부락사람들은 춘옥이네 집으로 소구경을 왔다. 백지주한테 끌려갔다가 돌아온 소라고 하여 모두에게 관심사로 되였다. 아침저녁으로 보아오던 그 소였지만 지주집에서 구장누이가 뺏어낸 소라 하여 구경을 오는것이고 바로 그것때문에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는것이였다. 그렇게도 세도가 당당하고 서슬이 시퍼런 지주집, 농군도 한번 들어가면 목숨이 붙어나오기 어려운 그 무서운 함정에서 소작농의 소가 버젓이 살아나온것을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래서 없는 살림이지만 소에게 먹이라고 콩바가지도 가져오고 된장물도 풀어오고 또 어떤 집에서는 귀밀이나 대두박도 가져다가 소구유에 넣어주었다.

사람들은 소구경을 하면서 구장누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희한하게 벌리였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부역이 아니라 밭으로 나갈 움직임을 보이였다. 그중에서도 젊은 청년들이 힘을 얻고 지주와 맞서볼 태세였다.

춘옥이 아버지는 여물을 먹는 소를 쓸어주고 더운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구유통에 손을 넣어 밑으로 흘러내린 콩이며 대두박을 끌어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껌벅껌벅하는 소의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군하였다. 소머리의 치장도 전에 볼수 없던것이 많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늙은이의 심정이 십분 리해되시고도 남음이 계시였다. 늙은이는 토스레옷을 입고 짚신을 신으면서도 소를 치장하기에 있는 정성을 다하였다. 소의 귀밑으로 돌아간 원앙에는 붉은꽃, 누른꽃 백동전을 달아주었으며 목걸이에는 놋방울과 퉁방울을 달아주었다. 밤을 새워가며 삼장을 엮고 닭을 길러 그것을 판 값으로 소의 치장을 하였으며 길마를 사들인것이였다.

소가 여물을 먹고 구유에서 주둥이를 들어올리자 늙은이는 빙그레 웃으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소가 앞다리를 구부리고 엎드려 천천히 새김질을 하며 코김을 내불자 늙은이도 방으로 올라가 자리에 누웠다. 곤한듯 늙은이는 깊은 잠에 들었다. 늙은이에게는 다시없는 행복이였다. 춘옥이의 얼굴에도 노상 기쁨이 물결치고있었다.

《형님, 요즘은 지주가 죽은듯 가만히 있어요.》

춘옥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매일같이 동네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란을 피우는데도 못보는척하니 어쩐 일일가요.》

걱정보다도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러자 쌍별이가 청높은 음성으로 말했다.

《언니두, 그러지 않으면 제가 뭐 어쩔테야. 동네가 웅성웅성하는데 부역에서 소를 떼내여 거름 싣는 사람들두 자꾸 생기구, 이게 다 저한테는 두려운거야.》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웃음을 지으시고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시였다.

《그래요. 그건 지주에게 두려운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쌍별이는 무척 기쁜 표정이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힘이 되구···》

춘옥이와 쌍별이는 기쁨이 찰랑이는 눈으로 마주보았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근심이란게 없어진듯하였다. 래일에는 지세경이도 경찰서에서 나온다는 련락이 왔다. 그래서 쌍별이의 기쁨은 곱절이나 커졌다. 그러나 이렇게 일이 잘되여나가고 놈들이 수세에 빠져들어간 이런 순간에 한편에서는 적이 준동하고있으며 공격을 준비하고있고 그래서 어느때인가는 또 그들이 시련을 겪게 되리라는것을 김정숙동지께서는 알고계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즈음 내내 춘옥이며 쌍별이 그리고 부락사람들의 얼굴에 떠돌고있는 밝은 빛을 보면 보실수록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점점 더 그들의 운명에 대한 남다른 심려가 깊어지시였다.

우리의 승리가 커질수록 적의 준동도 그만큼 커진다. 적은 어디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올것인가? 지금은 적의 약점을 잡아쥐고 일단 수세에 빠뜨려놓기는 하였으나 여기서 다음 단계의 싸움을 내다보고 적을 짓부셔버릴 력량을 완강하게 앞질러 준비하지 않는다면 필경은 적의 공격에 맞서지 못할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한가지 생각에 온 마음과 넋을 깡그리 바치고계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춘옥이의 얼굴을 바라보셨다.

《봉녀 아지미, 지금은 지주랑 모두 꼼짝을 않고있는데 언제까지 그러고있을것 같아요?》

《글쎄요.》

춘옥은 뜻밖의 물음에 좀 당황해하였다.

《부락사람들이 부역에서 소를 떼내여 거름을 실어나르면 놈들이 이걸 그냥 가만히 놔둘가요?》

춘옥이로서는 언뜻 가늠이 서지 않는 물음이였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그놈들이 어찌겠어요.》

쌍별이가 성급이 끼여들었다.

《아니야, 왜 가만히 있겠니. 놈들이 악이 나면 무슨 일을 저지를는지도 모르지.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악귀같은놈들인데···》

춘옥이는 벌써 민감하게 불안을 예감하고 가슴을 떨었다.

《그래 일이 생긴다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단정한 자세를 하시고 심중히 반문하시였다.

춘옥이는 마른침을 삼키고 허둥거리는 눈길로 김정숙동지와 쌍별이를 번갈아보았다.

《정말 일이 생기면 형님은 어쩔테야?》

쌍별이쪽에서 걱정스레 춘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일이 생기면··· 난 모르겠다. 속이 막 캄캄하구나.》

춘옥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만약에 놈들이 소라두 다시 뺏겠다구 하면 어찌겠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시금 물으시였다.

《소를 뺏기구 어떻게 살아요?》

춘옥은 몸서리를 치며 대답하였다.

《정 악이 치받치면 그럴는지도 모르지요.》

《정말이야요. 그럴수도 있는거야요. 지주는 우리를 눈에 든 가시처럼 볼테니까요.》

쌍별이가 입술을 깨물면서 분해하였다.

《얘, 그런 말 하지 말아··· 형님, 소를 다시 뺏기면 우린 못살아요! 나도 그렇지만 우리 아버님은 하루두 못살거예요. 산판에 간 쥔두 그렇구. 소를 뺏기다니요?》

춘옥이는 절대 그럴수 없으며 또 그래서는 안된다는듯 머리를 흔들었다.

《인정사정 모르는놈들이니 어떤짓 할는지 몰라요.》

《소를 뺏긴다면··· 손에 낫이라두 잡고 나서겠어요. 살지 못할바엔 그렇게라두 하구말테예요. 온 가정이 없어질판인데 내가 왜 가만히 있겠나요?》

불현듯 춘옥의 눈에 불꽃이 튕기고 입술이 떨렸다.

《옳아요. 놈들 목덜미라두 깨물구 늘어져야 해요. 집에 불이라도 처지르던지. 그까짓 겁날게 뭐야요.》

쌍별이가 야멸차게 말했다.

《그렇게나 해서 어찌겠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춘옥이와 쌍별이를 번갈아보시면서 말씀하시더니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무거운 침묵이 에워싸고있었다. 춘옥에게는 답답하고도 지루하며 숨조차 편히 쉴수 없는 압박감이 갈수록 어깨를 짓누르는듯 느껴졌다.

쌍별이도 자주 한숨을 내쉬였다. 그 한숨소리를 듣자 춘옥은 더욱더 가슴이 말라들어 물을 떠마시였다.

《너 물 좀 먹으렴.》

쌍별이는 춘옥이가 내미는 물바가지를 외면하고 그냥 한숨을 내쉬였다. 외양간에서는 소가 새김질을 하며 후후 더운숨을 내쉰다. 눈을 감고 귀를 벌쭉거리면서 방안의 동정을 엿듣는것 같았다.

《정말 이 소를 도루 뺏기면 우린 어떻게 살아.》

물바가지를 놓을념도 못하고 다리가 허청거려 주저앉고말았다. 기울어진 바가지에서는 물이 흘러내려 치마자락을 적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물바가지를 잡으시며 춘옥이의 맥풀린 어깨를 꼭 껴안으시였다.

《봉녀 아지미, 내 오늘 비밀을 한가지 말하겠는데 지켜줄수 있겠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침착하시고도 결심을 품으신 눈길로 춘옥이를 바라보시였다. 춘옥이와 쌍별이는 사뭇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그이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건 우리 세사람밖에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될 비밀이예요.》

그이께서는 다시금 다짐을 두시듯 말씀하셨다.

《형님부탁이면 뭘 지켜내지 못할게 있겠나요.》

《우린 춘옥언닐 믿어요. 부락에서 입이 제일 무거운 녀자예요. 나도 아무 소리나 막 하는 녀자가 아니구요.》

《그래두 제일 가까운 사람에겐 말이 나갈수 있어요. 부모에겐 안나가두 남편에게든지 애인에게 나갈수도 있지 않을가요.》

춘옥이와 쌍별이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노라고 다시금 맹세하였다.

《부부간은 일심동체라는 말도 있지만 이 비밀만은 지켜줘야 해요. 쌍별이도 그렇구.》

춘옥이와 쌍별이는 심중한 얼굴이 되여 이번에는 머리만 끄덕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천천히 가슴을 들먹이시며 한동한 숭엄한 표정에 잠기시더니 춘옥이와 쌍별이의 손을 굳게 갈라잡으시고 한번 힘주어 흔드시였다.

《놀라지들 마세요. 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파견하신 유격대공작원이예요. 내 본 이름은 김정숙이구요.》

《예?》

부디 놀라지들 말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깜짝 놀라 땅에 주저앉았다. 착실하고 무던하고 부지런하기만 하던분이, 례절이 밝고 인정이 깊어 누구도 흠없이 지내게 한 이분이 유격대공작원이라니, 어느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였다면 몰라도 그이께서 하신 말씀이니 믿지 않을수도 없었다.

그들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온 녀자들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은 석달천기를 내다보신다.》, 《축지법을 쓰시고 종이장 하나로 강을 건느신다.》, 《웃으실 땐 백두산천지에 오색무지개가 서고 노하실 땐 백두산천지에서 번개가 일어난다.》

그들은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이 거느리신 유격대원들은 옛말에서 나오는 장수들처럼 칼차고 말을 탄 아주 위엄스러운 사람들인줄로만 알고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처럼 얌전하고 유순하신분이 유격대원이라니?··· 더구나 김일성장군님께서 파견하신 녀성유격대원이라니···

이 순간 김정숙동지의 마음속에도 말 못할 뜨거운 생각과 내심의 깊은 소용돌이가 일어나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렇게 빨리 자신에 대해 말씀하게 되실줄은 모르시였다. 좀더 눈을 띄워주고 투쟁속에서 단결을 시키고 그들이 복잡한 사태하에서도 동요없이 일을 할만하게 될 그즈음에 가서 말씀하게 될것이라고 짐작하시였다.

그러나 생활은 그렇게만 되는것이 아니였다. 착실히 구상을 무르익히고 주도세밀한 작전에 의해 일을 하려던 당초의 계획이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림기응변의 지략으로 일을 처리하며 위험을 무릎쓰고 단행하지 않을수 없는 사태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리하여 매양 가슴을 조이며 숱한 사람들의 운명이 걸려있는 바로 그 일, 누구에게도 호소할수 없으며 누구와도 부담을 나눌수 없는 그 모든것을 한가슴에 그러안으시게 되시였다.

지금도 김정숙동지께서는 당초의 계획을 미루시고 서둘러 새로운 구상을 펼치지 않을수가 없으리라는것을 의식하시였다.

춘옥이며 쌍별이··· 그들에게 힘을 주고 고무를 주며 그들을 통해 혁명군중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혀야 하며 우리가 바로 김일성장군님의 지도를 받고있는 사람들이라는것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오직 그것만이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신심을 줄것이며 적의 준동을 박차고 나갈수 있는 지혜와 결단성을 안겨줄수 있을것이라고 그이께서는 다시한번 굳게 확신하시였다.

춘옥이와 쌍별은 마치 처음으로 보기나 하는것처럼 김정숙동지를 놀람과 경탄과 부러움이 담긴 눈으로 오래동안 바라보았다. 벅찬 흥분이 가라앉고 가슴이 조금 진정되자 춘옥이가 물었다.

《형님, 유격대원들은 다 형님같은분들인가요. 예?》

김정숙동지께서는 다함없는 애무와 진정에 넘쳐 춘옥이며 쌍별이의 어깨를 어루만지시였다.

《유격대원들은 원쑤들에게는 호랑이처럼 사나운 장수들이고 인민들에게는 양처럼 유순한분들이예요. 세상에 유격대원들처럼 인정있고 례절이 밝으며 소박한 사람들은 다시 없어요. 모두 봉녀 아지미나 쌍별이처럼 가난한 집 자식들이예요. 그만큼 인민을 해치고 인민을 못살게 구는 일본놈과 지주, 자본가놈들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는 무서운 사람들이예요.》

춘옥이와 쌍별이는 동경과 환희, 희망이 한데 어린 령롱한 눈으로 그이를 우러르며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김일성장군님의 탁월한 지략과 위대하신 풍모, 고매한 덕성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하시였다.

《형님!》

《언니!》

그들은 김정숙동지의 가슴에 얼굴들을 묻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였다.

《우리는 신심을 가지고 놈들과 맞서싸워야 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춘옥이와 쌍별이의 어깨를 한품에 따뜻이 품어안으시고 그들의 머리우에 볼을 비비시며 말씀하셨다.

《그럼 어떻게 싸워야 할가요. 한두사람의 힘으로는 이기지 못하고 한사람이 낫을 들고 지주한테 달려들어서도 이기지 못해요. 우선 놈들과 맞서 싸우자면 인민들을 묶어세워야 해요. 온 부락사람들이 한마음한뜻으로 뭉쳐 들고일어나면 놈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우리를 당해내지 못해요.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는 사람들을 교양하여 묶어세우는 일들을 하자요. 할수 있을것 같애요?》

《하지 않구요!》

《그걸 왜 못해요!》

춘옥이와 쌍별이는 신심과 결심이 어린 얼굴을 들고 일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을 이끄시고 조용한 마당모퉁이에 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한테 마을형편도 이야기해주고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조국광복회 10대강령도 설명하고 백지주의 계책도 밝히시였다.

《그럼 쌍별이는 지세경선생을 야학에 나오도록 하는 일을 맡아주어야겠어요. 래일은 지세경선생이 경찰서에서 나오는데 마중가세요. 지금 지세경선생에게는 쌍별이 이상 가까운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구 잘 일깨워서 우리한테로 돌아서게 해야 해요. 그리고 봉녀 아지민···》

김정숙동지께서는 잠간 말씀을 멈추시고 춘옥이의 흥분된 얼굴을 주시하시였다.

《봉녀 아지민 좀 급하고 중대한 일을 먼저 해주어야겠어요. 이밤으루 산판에 가닿을수 있겠나요?》

《산판에요?》

춘옥은 달아오른 입술을 움직여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편지 한장 줄테니 그걸 주인아주버니에게 좀 전해주어요. 산판에두 우리 조직원이 있어요. 그 편지를 아주버니더러 전하라구만 하세요. 그러면 조직원한테 편지가 넘어갈거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산판에 마을의 소식을 급히 전하여 그곳 인부들과 채벌에 끌려온 농민들에게 힘을 주고 채벌반대투쟁을 벌리기로 계획하시였다.

군중을 장악하고 핵심들을 단련시키며 조직을 꾸리는데서 이번의 사건은 큰 충격을 주리라고 확신하고계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권용산이더러 마을의 소식을 알려주고 일을 급속히 벌려나가도록 세세한 내용을 지시문에 쓰시였다. 그리고 일부 농민들은 마을로 돌아와 씨붙임에 착수하도록 하라고 하시였다.

편지를 받아든 춘옥은 일어나 치마끈을 단단히 죄였다. 그는 비녀를 뽑아 다시금 머리를 단단히 풀어쪽지고 수건을 썼다. 방에 올라가 버선을 갈아신고 신발에 피나무껍질을 감았다. 그리고 외양간으로 들어가 구석을 더듬더니 낫가락을 잡고 나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그가 하는양을 굽어보시였다. 가슴이 찌르르 울리며 눈굽이 더워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춘옥이와 함께 밖으로 나오시였다. 희미한 달이 비치고있었다. 대기는 눅눅하고 선들선들 바람이 불었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어깨에서 수건을 풀어 춘옥이의 목에 감아주시였다.

《새벽엔 싸늘해요.》

춘옥은 사양을 않고 고분고분 그이의 손에 몸을 내맡기고있었다. 숨소리만이 조금 높았다.

춘옥이는 삽짝을 밀고 행길에 나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춘옥이의 손을 잡으시고 한동안 말씀없이 걸으시였다.

《혼자 밤길을 갈수 있겠어요?》

《가야지요!》

춘옥은 굳이 가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앞으로 이런 일이 수없이 많을거예요. 그렇지만 힘들어도 이겨내야 해요. 혁명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수가 없어요. 백지주놈을 기어이 굽혀놓자요. 그놈의 등쌀을 우리가 어떻게 견뎌내요. 그놈들이 없는 세상을 세워야 우리가 살아갈수 있는거예요.》

《형님, 우리 주인두 그전에 그런 이야길 자주 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그러나 이제는 좀 알겠구만요. 소를 뺏기구, 지주하구 싸워이겨보구, 그리구 다시 그걸 뺏길 생각을 하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말 못할 애무를 담아 춘옥이의 손에 꼭 힘을 주시였다.

《기뻐요. 난 봉녀 아지미가 이렇게 빨리 눈뜨게 된것이 기뻐요. 이제 옥탄이, 복방아 어머니, 인순이네 고모, 칠봉아바이··· 이렇게 가난하고 천대받는 불쌍한 사람들을 모두 눈띄워 함께 손잡고 혁명을 하자요. 칠봉로인만 보더라두 얼마나 불쌍하구 가엾은 로인이예요. 아버지와 딸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나라지경에 갈라져있고 딸이 들판으로 찾아와 아버지의 옷가지를 빨아드리고 헤여지군한다니 가슴이 저려 견디지 못하겠어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은 혁명하는 길밖에 없다는걸 명심하고 굳세게 살아주세요.》

《예!》

춘옥은 길복판에 멎어섰다. 어느덧 컴컴한 수림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형님, 그만 들어가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메여 어둠속에 낫을 움켜쥐고 서있는 춘옥이를 하염없이 들여다보시였다.

어질고 순박하기만 하던 어린 이 녀성에게 얼마나 결곡하고 비장한 의지의 힘이 생겨났는가?

지주에게 지지리 뜯기우고 눌리우고 업심을 당하며 세상의 한끝, 고역의 나락에서 헤매던 이 녀성에게 이토록 강의한 결심이 생겨나다니···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밤, 농촌의 순박한 한 녀성을 혁명가로 키워 장군님께 보내시는것 같은 말할수 없는 감격에 목이 메이시였다.

이렇게 한사람 두사람 손잡아 이끌어 장군님의 주위에 묶어세우고 그이의 사상과 의도를 받들고 싸워나가게 한다면 조국의 광복은 드디여 이룩될것이며 바로 그것을 위하여 그처럼 심혈을 기울여오신 장군님의 념원이 조국땅에 밝은 해빛으로 넘쳐나게 되리라는것을 굳게 확신하시였다.

그날은 멀지 않았다. 그날은 가까이 다가오고있었다.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으로 개선할 력사의 순간은 밝아오는 새날처럼 그렇게 똑똑히 가까와오고있는것이였다. 그것을 위함이라면 설사 이 거친 이역땅에 한줌흙으로 묻힌다 해도 무슨 유한이 있으랴.

《봉녀 아지미!》

김정숙동지께서는 와락 팔을 뻗쳐 춘옥이의 어깨를 꼭 그러안으시였다. 그 순간 그이의 눈에서는 한줄기 더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