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

 

제 5 장

1

 

현지시찰에서 돌아온 아라가와로부터 도천리일대의 공사형편과 주민들의 사상동태를 세세히 료해한 가와사끼는 《안민촌》건설이 실로 가능하며 여기서 동변도치안공작대강의 실현을 보게 되리라는 신심을 가지고 사까이에게 출장지의 상세한 보고를 하였다.

두시간이 지난후 사까이로부터 관동군사령관에게 제출할 구체적인 상보를 만들어가지고 즉시 올라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가와사끼는 자못 흥분하여 바삐 서두르면서 떠날 차비를 하였다. 한쪽에서는 아라가와며 서장이며 각 계장들이 총출동하여 대좌의 서면보고를 만들고있었고 대좌자신은 리발과 목욕을 하였다. 심신이 거뿐해진 가와사끼는 시간이 있게 되자 눅눅한 숲변두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한낮인데도 정원의 나무가지들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있었다.

문을 열어놓은 2층발코니에서는 애숭이중위가 솔을 들고 여러날 입지 않은 대좌의 누른빛 고급모직군복을 쓸고있었다. 이무렵에 강성태는 가와사끼를 만나려고 경찰서를 올라오고있었다. 소를 빼앗긴 백지주가 소동을 일으키기전에 먼저 선손을 써서 놈들을 다시금 수세에 빠뜨리기 위하여 김정숙동지께서 대담한 구상을 펼치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벌어진 사태를 두고 뒤일을 심히 걱정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있는 강성태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지주가 경찰서에 올라가기전에 한발먼저 올라가 대담하게 가와사끼를 만나십시오. 백지주가 경찰을 끌고와서 춘옥이네 소를 빼앗고 아낙네에게 손찌검을 한것때문에 부락이 매우 험악해졌다고 하십시오. 만약 이 소식이 산판에 전해지면 권용산은 말할것도 없고 다른 농민들도 일제히 채벌을 거절하고 마을로 돌아올수 있다고요. 그래서 할수없이 림시 묘책으로 소를 돌려주고 소동을 가까스로 눌러놓았는데 지주가 그냥 소를 빼앗아낼 잡도리를 하고있으니 이제는 부락일을 책임질수 없다고 하십시오. 겨우 사람들을 부추겨서 공사를 내밀고있는데 지주가 자꾸 화단을 일으키니 공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말입니다. 적들에게는 이것이 용이치 않은 일입니다. 가와사끼가 분명 겁나할것입니다. 그러니 선손을 써서 놈들의 목을 죄여들어가야 합니다. 백지주가 춘옥이네 소를 뺏어가지 못하도록 지령을 떨구며 지세경청년도 석방시켜달라고 주저없이 요구를 제기하십시오.》

그때 강성태는 다소 주저하지 않을수 없었다. 너무도 대담한 구상이기때문이였다. 무엇이라고 딱히 집어 말할수 없는 불안이며 걱정이 무겁게 가슴속에 갈마들었다. 혹시 아무 소득없이 놈들에게 의심이나 사게 되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미 품으신 결심을 조금도 달리하지 않으시였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문제는 혁명군중을 장악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근본문제와 관련되여있습니다. 그러니 용감하게 육박하여 놈들을 꺼꾸러뜨려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가와사끼는 소동을 일으키지 않고 〈안민촌 모범부락〉을 건설하려고 꾀하고있는놈이니 신축성있게 처신할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적들이 우리를 검열해보려는 기도를 품는다 해도 그들이 력량을 포치하고 죄여들려면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최대한 리용하여 우리는 일을 빠르게 전진시킬것이며 이렇게 장성한 혁명력량은 두번째, 세번째 적의 공격을 좌절시킬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대담성과 림기응변의 지략으로 적들과 맞설 때입니다. 어떻습니까? 해낼만합니까?》

《해내얍지요. 해내겠습니다.》

강성태는 거듭 말을 곱씹으며 저으기 흥분한 빛을 내보였다. 신심과 열정이 북받친것이였다. 앞길이 내다보이고 믿음도 더없이 강해졌다.

강성태는 한달음에 경찰서에 올라가 우선 아라가와대위를 만났다. 아라가와대위는 경찰서의 뜰 한쪽에 강성태를 세워놓고 다급히 가와사끼앞으로 뛰여왔다. 가와사끼는 처음은 아주 심상히, 지어 무관심에 가까운 표정으로 듣고있더니 다음은 급기야 날카로운 기상으로 변하여 무엇인가를 오래동안 캐물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잠시동안 안절부절못하다가 강성태를 불러 비물에 약간 눅눅해진 정원의 의자에 앉히고 다시금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그가 제기해온 문제는 심중하고도 심각한 사변이 아닐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기해온 강성태자신은 그보다도 더 심중히 고찰하지 않을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문득 가와사끼의 머리에는 도천리 등판에서 들려주던 강성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것은 조선의 개척민들이 산에 불을 지르고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짐승들의 성화에 부대끼던 이야기였다. 민간야화로서는 그이상 훌륭한것이 없으리라고까지 감탄하였던 그 신기하고도 무시무시한 야생적인 일화는 드물지 않게 가와사끼의 기억에 되살아나군하였는데 그럴 때면 의례히 마을의 변두리에 달아맨 소금주머니아래에서 피투성이싸움을 벌리던 짐승들의 끔찍한 광경과 땅에 흩어진 피와 고기점들이 똑똑히 보이고 사처에서 양푼을 두드리며 짐승을 몰고있는 농군들의 새된 울부짖음과 아우성소리들이 귀에 쟁쟁히 끓어오르는것 같았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가와사끼는 까닭없이 스며드는 무시무시하고도 신비로운 인상에서 헤여나지 못하면서 강성태와 가까이 지내보고싶은 이상한 병적인 충동에 사로잡히는것이였다.

강성태는 누군가? 우리편인가, 아니면 유격대편인가?··· 가와사끼는 지금도 이 의문에서 헤여날수가 없었다. 대담하고 용의주도하게 사태를 옳게 식별할줄 아는 사람만이 단행할수 있는 그런 문제를 들고 나타난것이다.

적이든 아군이든 아주 쓸모있는 사람이다, 하고 가와사끼는 생각하였다.

(좋아, 그렇다면 이 기회에 구장을 시험해보자.)

가와사끼는 일단 마음을 그렇게 질정하고나서 《강구장, 나는 언젠가 당신에게 친구로 사귀고싶다고 한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있소. 강구장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소. 당신은 충실한 황국신민이요.》 하고 정색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가와사끼는 강성태를 보내고 아라가와를 다시 불렀다. 그는 아라가와더러 급히 도천리에 내려가 군중동향을 알아보며 마을에 밀정망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가와사끼는 이번의 사건으로써 쓸모있는 친구를 한사람 얻든지 아니면 유능한 지하공작원을 체포하게 될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였다.

강성태는 마치 날개가 돋친 사람마냥 펄펄 날아 마을로 돌아오고있었다. 한창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며 새잎을 펼치기 시작한 혁명에 서리를 뿌리려던 검은 구름은 쪼각나 흩어졌다. 모든것이 광풍에 휘몰려 뒤집히고 흩어지고 상처를 받아 피를 흘리게 되리라던 당초의 캄캄한 생각들은 졸지에 사라졌다. 조금만 주저하거나 당황하기만 하여도 무섭게 기울어질수 있었던 혁명사업을 김정숙동지께서 받들어세우시였다.

지주는 기세를 잃고 마을사람들은 신심을 가질것이며 이 기회에 혁명사업은 빠르게 앞으로 줄달음쳐나갈것이다. 아, 얼마나 좋은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역경을 오히려 순경으로 전환시키시였다.

강성태는 눈물이 날만큼 기뻐 고무신허리를 묶었던 피나무껍질이 어디서 끊어져 달아났는지도 모르고 다리를 높이 들어올리며 기세좋게 마을에 들어섰다. 그가 김정숙동지를 찾아 춘옥이네 집으로 갔을 때는 마침 그이께서 수건을 풀어 치마허리를 잘룩하게 동이고 돼지우리안에 들어가 쇠스랑으로 바닥을 찍어번지고계셨다. 한번씩 쇠스랑이 땅에 박힐 때마다 잘 썩은 거름이 푹푹 뒤번져지고 김이 물씬물씬 피여올랐으며 구수한 거름냄새가 뜰밖으로 흘러나왔다.

춘옥이는 김정숙동지께서 찍어번진 거름을 걸이대로 담아서 목책밖으로 내던지고있었다.

강성태는 춘옥이가 걸이대를 거름더미에 깊숙이 박았다가 냉큼 뒤로 젖히면서 들어올려가지고는 몸을 앞뒤로 흔들고 목책밖으로 허리를 쭉 펴면서 내뿌리는양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아침나절에 소를 빼앗기고 부엌봉당에 쓰러져 울고있을 때는 처량하여 볼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팔팔하게 생기가 어려 일하고있는것이였다.

쌍별이는 복방아 어머니와 함께 우리에서 파제낀 거름을 다시 들것에 담아서 외양간모퉁이에 날라갔다. 우리에서 놓여난 돼지는 좁다하게 뜰안을 돌아치면서 목책주위를 파제끼고 목책에 앞발을 걸고 뛰여오르기도 하였으며 닭을 물려고 죽기내기로 달리기도 하였다.

복방아 어머니가 들것을 내치고 돼지를 따라가며 족쳐댔다.

《요놈아, 닭은 왜 물어?》

김정숙동지께서는 천천히 허리를 펴시고 복방아 어머니에게 물으시였다.

《형님, 지금까지 파놓은 거름이 몇바리나 될가요?》

《열바리는 되겠지.》

《그러면 보리밭을 걸구고도 남겠구만요.》

《아무렴, 백지주가 방해한다구 농사를 짓지 못할가?》

《그럼요. 잘 익은 보리밭을 보구 시샘이나 말라지요.》

아낙네들은 일제히 까르르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강성태는 삽짝을 활짝 열고 뜰안에 들어섰다.

《구장아주버니가?》

복방아 어머니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그다음 춘옥이가 알아보고 웨쳤다.

《형님, 형님.》

김정숙동지께서는 땅에 쇠스랑을 박아놓으신채 고개를 드시였다. 강성태는 두다리를 넓게 벌려디디고서서 의미있게 웃고있었다.

손더듬으로 목책을 연신 바꿔잡으시며 긴장에 싸여 주시하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만 안도의 미소를 지으시고 춘옥이를 돌아보시였다.

《가셨던 일이 잘된것 같구만요. 우리 오라버니 얼굴 좀 보지요.》

《잘되다마다, 가와사끼가 소를 뺏지 말라고 명령을 했다. 세경이도 하루이틀 지나 돌려보낸다구 하구, 쌍별이가 좋겠다. 얼마나 좋겠냐?》

《에이그머니!》

쌍별이는 비명을 지르며 굴뚝담뒤로 줄행랑을 놓았다.

《형님!》

춘옥이는 김정숙동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아낙네들은 한쪽에서는 웃고 한쪽에서는 눈물을 머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춘옥이의 등을 쓰다듬으시며 자신의 볼을 비비시였다.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어요. 이젠 됐어요, 됐구만요. 정말 기뻐요!···》

춘옥이는 눈물이 그냥 쏟아지는 얼굴을 들었다. 그이의 인자하신 모습을 보려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으나 눈앞은 그저 뿌옇고 가슴은 진정되지 않아 다시 그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이젠 백지주에게 가와사끼의 명령을 전달해야지.》

강성태는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골목길을 걸어나갔다.

아낙네들은 강성태를 이전과 같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놈들의 강요에 못이겨 부락사람들을 토성공사에 동원하기는 하였지만 구장도 구장누이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며 도와주려 애쓰는 어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것이였다.

《형님, 그런데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수 있어요. 저놈들이 무슨 맘을 먹구 이러는지 곧이 믿어지지 않아요.》

춘옥이가 눈물을 씻으면서 말하였다.

무거운 근심에 눌려 얼굴이 까매지고 입술이 초들초들 마른 춘옥이를 내려다보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이 씌이며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놈들은 부락사람들이 들구일어날가봐 겁을 내고있어요. 가와사끼란놈은 여기에〈안민촌〉을 꾸릴 임무를 받고 내려왔어요. 그런데 인민들이 들구일어나서 소동을 피운다면 〈안민촌〉이 되겠나요. 그래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거지요. 이걸 알아야 해요.》

《그래요?!》

아낙네들은 일제히 그이의 얼굴을 지켜보며 놀라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다고는 꿈에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아낙네들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여겨보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놈들이 아무리 강한것 같애두 그보다 더 강한것은 하나같이 뭉친 인민의 힘이랍니다. 나무가지 하나하나는 꺾기 쉬워도 백가지로 묶은 나무단은 꺾지 못하는것과 같이 인민이 뭉치면 그 힘은 누구도 꺾지 못하는거예요. 그러니 모두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살아가자면 어떻게 해야겠나? 온 부락이 한사람같이 뭉쳐서 일어서는거예요. 올해의 씨뿌리기를 제철에 하자구 해두 우리는 일심단합을 해서 씨뿌리기에 나서지 않으면 안돼요. 근심만으로야 씨앗이 뿌려지나요.》

《옳아요. 구장누이 말이 옳다니까.》

복방아 어머니가 기세를 올렸다. 캄캄한 암흑의 바다에서 가난과 학대에 시달리고 짓눌리며 세상을 모르고 살아온 녀인들이였으나 그이의 말씀은 샘물처럼 가슴에 스며들었다.

아낙네들은 활기를 띠였다. 모두 밭에 거름을 내고 씨뿌릴 생각에 몸달아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정겨운 눈길로 아낙네들을 여겨보시였다. 모두 다섯명이였다. 지금은 많지 않은 다섯명이였으나 머지않아 그들의 두리에는 수십, 수백명의 마을사람들이 뭉쳐지게 될것이라고 굳게 확신하시였다.

 

×

 

토성공사장에 나가있던 강성태는 들 저쪽으로부터 왁작 떠들어대는 아낙네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해가 떨어진 어둑시그레한 들길로 한무리의 아낙네들이 달구지를 따라 걸어오고있었다. 모두가 치마허리를 잘룩하게 동이고 시뻘건 종다리를 무릎까지 드러낸채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면서 어깨우에 둘러맨 연장들을 부딪쳐 쟁쟁 쇠소리를 울리고있었다.

아낙네들은 난벌에 거름을 부리우고 돌아오는 참이였다.

공사장의 농민들은 그들을 보자 술렁거렸다. 강성태는 아낙네들속에서 김정숙동지를 알아보았다. 춘옥이, 복방아 어머니, 쌍별이, 옥탄이, 방숙이가 그이를 둘러싸고있었다.

강성태는 공사장의 기분을 가늠하느라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농민들은 점점 열기를 띠고 흥분한 빛을 나타내였다. 그들은 아낙네들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쳤다. 아낙네들은 새된 목소리로 화답하고는 활기있게 소리내여 웃었다. 소방울소리가 왈랑절랑 들길에 울려퍼졌다. 달구지는 울퉁불퉁한 길우에서 찌그덕거리고 튕겨오르면서 거름냄새를 풍기였다.

춘옥이가 아낙네들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농민들을 향해 걸이대를 저으면서 소리쳤다.

《아주버니들, 어서 이 거름들을 실어내시라구요. 밭을 밟아보니 푸석푸석한게 당장 씨뿌릴 차비를 해야겠어요.》

목소리는 정답게 눅눅한 저녁대기를 울리면서 울려퍼졌다.

농민들은 껄껄 웃고 감탄을 내뿜기도 하고 부러워 입을 다시기도 하면서 떠들썩하였다.

《지주가 빼앗아간 소를 다시 찾아다 거름을 실어내는군. 희한한 세상도 있어. 지주가 꼼짝못하다니.》

강성태는 농민들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김정숙동지를 하염없이 지켜보고있었다. 농민들은 정신없이 아낙네들을 보고있었다. 희끗희끗한 흰 저고리들이 서로 어울리며 멀어져가더니 곧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덜커덕거리는 바퀴소리, 부딪치는 연장소리, 아낙네들의 챙챙한 말소리들이 한데 뒤섞인 즐거운 소음이 점점 멀어져가면서 간간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