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3

 

제 4 장

3

 

춘옥이는 거름을 찍어내고있었다.

오늘 보리밭에 실어내야 할 거름이였다.

쇠스랑으로 한번씩 찍어낼 때마다 거름우에서는 더운 기운이 풍기고 김이 피여올랐다. 좁은 뜰안에는 시큼하고 털털한 거름냄새가 떠돌았다.

닭들이 헤쳐놓은 거름무지에 뛰여들어 꼬꾸댁거렸다. 아침마다 살구나무가지에 새까맣게 씌우던 참새들도 오늘은 거름더미우에 날아와 덮였다.

마당에 거름기운이 떠돌자 아버지가 누워있는 웃방문이 열렸다. 수염이 부루루한 로인이 방문턱을 부둥켜쥐고 마당을 내다보았다. 요즘 로인은 병세가 눈에 띄게 달라져갔다. 몸져누워 운신을 못하던것이 제손으로 문을 열고 바람도 쏘이고 지나가는 이웃사람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버지, 찬바람을 맞아두 일없겠어요?》

춘옥이는 쇠스랑을 멈추고 걱정스레 말했다.

《거름냄새가 좋구나.》

로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거 쇠스랑을 이리 좀 다구.》

로인은 춘옥이가 내미는 쇠스랑을 받아들고 거기에 묻은 거름을 살펴보았다.

《거름이 잘 썩었니?》

《예, 새까맣게 썩었어요.》

로인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였다.

문설주에 기대앉은 로인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코를 벌름거리였다.

《완연히 봄이로구나!》

로인은 눈을 감은채 중얼거렸다.

《농사군들에게는 바쁘고도 즐거운 계절이다.》

로인의 어깨는 천천히 오르내렸다. 전에는 여위고 누렇게 황이 떠있던 로인의 얼굴에 생기가 조금씩 피여올랐다.

봄, 농민의 봄은 이렇게 거름으로부터 찾아오는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남보다 일찍 봄을 맛보았으며 남과 다른 봄냄새를 맡는것이다. 몇해를 두고 몇십년을 두고 그들은 봄을 이렇게 맞이하였다.

그러나 이해의 봄은 페인이 된 몸인 그에게 한없는 설음과 구슬픔을 가져다주었다.

로인은 백지주가 경영하는 목재판에 끌려가서 통나무를 실어나르다가 절벽에 굴러나 허리를 상하였다. 이젠 일하고싶어도 일할수 없고 즐기고싶어도 즐길수 없었다. 들을 빼앗기고 삶을 빼앗긴 처참한 인생이 되고만것이다.

《거름을 듬뿍 내구 밭을 갈아놓으면 씨를 묻게 되겠구나.》 로인은 푸념처럼 중얼중얼 외운다.

《보리는 거름을 주어 심어만놓으면 김도 안매고 거둘수 있는거다. 다른 곡식보담두 일찍 거둘수 있고··· 보리만 잘되문 빚물구 낟알구경하게 되겠지?··· 올해엔 어찌해서라두 지주집빚을 마련해보자꾸나.》

《아버지, 걱정마세요. 농사만 잘되문 마련할수 있을거예요.》

《그래 그래···》

로인은 연신 고개방아를 찧었다.

《얘, 이 마당에다 소를 좀 내세워라. 그놈을 본지도 오래다.》

춘옥이는 외양간문을 젖히고 겨우내 북데기속에 웅크리고 앉았던 소를 풀어내왔다. 소는 외양간밖을 나서자 얼음판에 들어선것 같이 주저하며 땅을 밟았다.

소를 바라보는 로인의 얼굴에는 웃음이 확 피여올랐다.

《소잔등에 무슨 검부레기가 그렇게 붙었니?》

춘옥이는 모지랑비자루를 들고와서 소의 등어리를 빡빡 쓸었다.

짚검부레기들과 함께 누런 묵은 소털들이 푸수수 떨어졌다. 잔등이 시원해진 소는 허리가 쑥 늘어나게 기지개를 켜고 기분좋게 꼬리를 휘휘 내저었다.

《이젠 마당둘레를 한바퀴 돌려라.》

로인은 제법 신수가 헌헌해졌다.

그전처럼 목소리도 높았다.

춘옥이는 갑자기 달라진 아버지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춘옥이는 소를 끌고 마당을 돌기 시작하였다.

소는 코김을 내뿜으며 다리를 내짚었다. 눅눅한 땅바닥에 소발통이 꾹꾹 찍히고 대가리를 뻣뻣이 든 소는 때때로 《음메-》 하고 길게 영각을 한다.

그러면 굵은 목에 힘줄이 쭉 뻗쳐오른다.

로인은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얘, 한바퀴 더 돌려라.》

로인은 만족하여 문턱을 떡떡 두드렸다. 로인의 눈앞에는 누런 소잔등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온 마당안에 가득히 차서 움씰움씰 돌아간다.

《얘, 소여물이 익었으면 한버주기 퍼내오너라.》

《예, 그러지요.》

춘옥이도 마음이 들떠 부엌에 뛰여들어 소리쳤다.

춘옥이는 김이 문문 나는 버주기를 들고 마당으로 뛰여나갔다.

《이리 가져오너라.》

아버지가 손을 흔들었다. 춘옥이는 뜨끈뜨끈한 버주기를 문턱밑에 가져다놓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로인은 버주기에 손을 넣어 여물을 주물러본다.

훈훈한 김이 피여올라 로인의 목밑에서 감돌았다. 로인은 재채기를 하였다.

《어이 시원하다. 그놈의 주둥이를 이리 가져다붙여라.》

춘옥이는 소를 끌고 왔다. 토방이 없는 집인지라 소는 방문밑까지 들어왔다. 낮은 초막은 소가 대가리를 쳐들기만 하면 이영이 날아날판이다. 그러나 로인에게는 세상에 이 소밖에 없었으며 이 소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소를 어떻게 키웠는지 알기나 하니?》

로인은 좀 희떱게 춘옥이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이태전에 벼랑밑에서 이걸 얻어가지구 달려올 땐 숨이 붙어나리라구 믿지 않았었다. 지주어른도 믿지 않았었지. 소가 살아나거든 자네거루 하라구 말씀까지 하셨단다. 정말 믿지 않았거던. 지주어른은 갓난 송아지가 다 죽은걸루 알구 버려두라구 하신거란다. 소죽음두 죽음이니 송장치기가 께름직했었지. 난 그때 가져다가 품에 안아 길렀다. 처음은 강아지만큼 했었다. 그런데 크질 않겠니 그러구보니 소는 소더란말이다.》

로인은 옛말처럼 구수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벌써 열번도 더 들은 이야기지만 춘옥이는 무슨 신기한 옛말처럼 넋을 팔고 들었다.

《올해엔 이 소루 보리밭을 갈아야겠다. 보탑을 그저 내가 잡았으면 좋으련만··· 너 아침먹구는 일찍 지주어른한테 다녀오너라. 이 소루 밭을 갈겠다구.》

춘옥이는 금시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소야 우리가 기른건데 뭘 승인받기까지 하겠어요?》

《그래두 일은 그렇지 않은거란다. 지주어른이 승낙은 하겠지만 그래두 사람이 인사는 차릴줄 알아야 한다.》

즐겁던 분위기는 다소 움츠러들었다.

춘옥이는 소를 끌고 외양간으로 갔다. 로인만이 그냥 즐거운 기분에 잠겨 무엇인가 중얼중얼 혼자소리로 외우고있었다.

춘옥이는 지주놈에게 승인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늙은이의 요구를 마다할수 없어 지주집으로 갔다. 중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고간쪽으로 열쇠뭉치를 들고 나오던 백가와 마주쳤다.

《춘옥이가 왔구나.》

백가는 유별나게 반가와하며 춘옥을 넘겨다보았다.

《요새 네 아버지는 좀 어떻니?》

《그저 그만해요.》

《안됐구나. 하긴 늙은 육신이란 그러는 법이야. 뼈골이 한창 싱싱할 때야 그만한걸 병이라고 하겠니. 너무 상심말아. 그럭저럭 일어나겠지.》

백가는 눈을 껌적거리며 춘옥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래 무슨 일루 왔느냐?》

춘옥이는 소를 가지고 보리밭갈이를 하려 한다고 말하였다.

《뭐, 보리밭을 갈겠어?》

지주는 방금전의 기색과는 달리 어성을 높였다.

《밭갈이는 고사하고 온 동네가 떨쳐나서 토성을 쌓아야겠다. 방금전에도 경찰서 아라가와지도관님이 왔다갔다. 토성공사용 목재를 빨리 채벌하라구 독촉을 하고 갔단말이야. 그러니 너의 집에서두 소를 공사판에 내보내야겠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못하다니. 그건 무슨 당치않은 소리냐?》

《급한게 밭갈이인데··· 땅을 묵일수는 없어요.》

지주놈은 희뜩 눈을 뒤집고 쏘아보더니 소리쳤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통 모르는구나. 토성을 쌓아야 유격대의 습격을 막구 안정촌을 만든다는걸 몰라?》

《그러기에 우리 주인이 목재판에 가있지 않습니까?》

《주인이 문제냐. 온 식솔이 다 떨쳐나서 토성 쌓는 일에 일심전력을 다해야 해. 공사판에 소를 낼테냐 안낼테냐?》

《소를 내지는 못하겠어요.》

《좋아! 어디 소의 잔등에다 거름바리만 얹어봐라. 당장 소를 잡아끌어오지 않나. 온 동네가 소, 사람 할것없이 총동원을 하고있는 때에 너희집만이 때이른 농사타령이야. 응, 이 비상시국에···》

백가는 힝하니 대청으로 올라갔다.

춘옥이는 마음속에 한가득 근심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때를 맞추어 씨앗을 묻지 못하면 보리농사를 영영 망치고 만다. 농사군이 농사를 망치면 1년내내 무엇을 먹고 살며 병약한 아버님은 무엇으로 위해드리겠는가···

그새 집에서는 뜻밖의 광경이 벌어지고있었다. 외양간문밖에서 아버지가 후치와 가대기를 내다놓고 손질하고있었다.

뿔이 가느다란 소의 긴 얼굴이 로인의 머리우에서 천천히 새김질하며 코김을 내불고있었다.

체소한 허리가 꼬부장한 늙은이는 앙상하게 말라 불쑥 솟아오른 두다리사이에 머리를 틀어박고 무엇인가를 조이면서 끙끙 갑자르고있었다.

작은 파리들이 외양간문앞에서 돌아치고 땅에 드러누운 검둥이는 따뜻한 해빛에 털을 데우면서 꼬리를 흔들어대고있었다.

이따금 소가 《음메-음메-》 하고 부드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오냐, 가락이를 끌구서 밭으로 가보자. 올해는 영낙없이 풍년일게다.》

로인은 소와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그는 깔고 앉았던 새초를 한웅큼 쥐여 소의 입에 대여주었다.

푸른 피줄이 툭툭 삐여진 로인의 손이 소의 입술기를 척척 두드리고 소는 푸른 눈망울을 껌벅이며 로인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춘옥이는 삽짝에 등을 기댄채 넋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행복에 취한 늙은이를 에워싸고 작은 뜨락이 부풀어있었다.

춘옥이는 부엌문앞으로 걸어갔다. 다리가 꺾이며 저절로 맥없이 주저앉았다. 한겨울동안 깊은 잠을 즐기고있던 개미들은 양지바닥 대돌밑 굴어구에 머리만 내밀고 작은 뿔을 휘둘러서 굴밖의 대기를 살피고있었다.

《춘옥이가 왔구나.》

문득 아버지의 기쁜 목소리가 춘옥이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래 지주어른을 만나보았더냐. 무슨 말을 하더냐?》

《아버지, 만나지 못했어요. 들에 나가고 없더군요.》

《벌써?》

로인은 툭툭 손을 털고 염낭에서 담배지갑을 끄집어냈다.

《이 봄에야 왜 안그러겠니. 숨가진 물건이야 다 바쁘지.》

로인은 얼른 담배를 말아물고 또다시 뚝딱거리며 쐐기를 치기 시작하였다.

춘옥이는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아버지, 제발 이젠 그만해요. 그러다 병도지면 어찌겠어요?》

《모르는 소리. 하고싶어하는 일은 병을 고친다.》

로인은 도저히 굽어들지 않았다. 춘옥이는 부엌에 들어서자 어깨를 떨며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어디에 터뜨릴수도 하소할수도 없는 분함이 온몸을 괴롭혔다.

아버지가 이 일을 아시면 어찌하실가? 그때의 그 고통에 병약하신 몸이 견디여내실가?··· 아니 아버지는 견디여내지 못할거야.

《얘, 춘옥아.》

아버지의 부름소리가 다시 들렸다.

춘옥이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씻고 부엌문을 젖혔다.

《내 한가지 깜빡 잊었댔구나.》

로인은 손에 든 망치자루를 회회 내저으며 말하였다.

《지주어른보고 보리종자를 좀 마련해달라고 할걸 그랬다.》

《보리종자는 해서 뭘해요?》

《너 무슨 소리냐?》

로인은 펄쩍 뛰였다.

《이 애, 우리 집에 씨앗밑천이라군 겉수수밖에 더 있느냐?》

《아버지!》

춘옥이는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왜 그러냐. 할말이 있으면 하려무나.》

로인은 무엇이든 너그럽게 받아들일 심사다. 거기에는 의혹도 편견도 불신도 없다. 모든것을 용서하고 모든것에 자비를 베풀어줄 마음만이 깃들어있는것이다.

춘옥이는 아버지의 망치자루를 빼앗았다.

《제발 이런 일 마시라고 몇번이나 말했어요.》 춘옥이는 목이 메여 부르짖었다.

《그래 그러자 어서 그러마. 여기 거적때기를 하나 갖다놔다구, 좀-다리 펴구 누워보련다.》

로인은 새초우에 다리를 폈다.

《난 이 해빛을 덮구 자겠다. 오죽 좋으냐. 그전날 고향에 있을적엔 밭일하다 탁배기나 마시구는 이렇게 밭이랑에 누워서 자군했다. 좋았지. 코구멍에 개미가 기여들어가도 몰랐댔다.》

로인은 거적때기에 반듯이 등을 붙이고 눈이 시게 해를 바라보며 웃고있었다.

춘옥이는 공포에 가까운 놀라움을 머금고 로인을 바라보았다.

로인은 환희에 찬 눈길로 허공을 쳐다보며 말한다.

《봄하늘은 저렇게 뽀얗게 돼야 하느니라. 보려무나. 서기가 어렸거던. 종자를 묻으문 보름안팎에 싹이 돋을게다.》

로인은 하품을 하였다. 그것은 어찌나 부드럽고 어진 모습이였던지 춘옥이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가슴을 저미며 가엾은 생각이 밀려들었다.

얼마나 들이 그리웠으면, 얼마나 일이 그리웠으면 저러실가? 어떤 위험이 다가오는지도, 어떤 불행이 드리웠는지도 모르고 로인은 하품을 하자 곧 잠들었다.

춘옥이는 잠든 아버지의 옆에 애수에 잠겨 앉아있었다.

기막히게 늙어온 인생이 잠든 로인의 얼굴에 비껴있었다.

저 수만갈래로 얽힌 한가닥한가닥 주름살들에는 세상의 가장 무서운 가난과 고역을 겪어온 다난한 생활의 자취가 력력히 깃들어있는것이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기꺼운 환희와 만시름을 놓아버린 평온도 함께 어려있었다.

그것은 난생처음으로 자기 소를 가지고 떳떳이 밭갈고 씨를 뿌리게 되였다는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진때문이리라.

훈훈한 소의 코김을 맡으며 부드러운 소의 영각소리를 들으며 로인은 점점 깊이깊이 잠에 취해버렸다.

《아니 이러고있을 때가 아니다.》

춘옥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