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2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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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는 요즘 토성공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고있었다. 어른아이 할것없이 내몰리여 기초구뎅이를 파고 배수로를 째고 막돌들을 날랐다. 농민들은 씨붙임을 눈앞에 두고 할당된 부역공수를 빨리 줄이기 위하여 밤을 밝혀가며 일하고있었다.

백지주는 공사현장을 떠나지 않고 일을 몰아대였다. 언제 유격대의 기습을 받을지 몰라 불안속에 살고있는 백지주는 놈들의 《안민촌》건설에 일심전력하고있었다. 그는 함석필십가장을 채벌장에 보내여 그쪽 형편도 알아보았다. 산판에서도 일이 잘 되여간다고 하였다. 어제는 마을의 농군들이 채벌한 첫 목재가 마을에 도착하였다.

백지주는 가와사끼대좌며 아라가와대위를 만나 부락의 형편을 보고하고 새 지시도 받고 그들을 술좌석에 초대하기도 할겸하여 경찰서에 올라갔다.

눈석임물에 짓이겨지고 군데군데 동강이 나서 누런 흙탕물이 흐르고있는 행길을 불편스런 마차로 다섯마장이나 달려 경찰서앞에 이른 백지주는 옷에 흙물이 튕긴 자리가 없나 하여 매우 꼼꼼스레 살피고나서 접수구의 경관에게 가와사끼대좌가 집무실에 계신가고 정중히 물었다. 경관은 대답을 하려고 깍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백지주는 경찰서가 이렇게 자기를 존대하며 정중히 대해주는것에 감격을 금치 못하면서 2층 끝쪽방(이전에는 서장실이였고 지금은 가와사끼의 림시 집무실로 된)앞으로 다가가 그곁의 잇달린 대기실문을 열었다.

말쑥하게 정복차림을 한 중위가 두명의 나이든 장교와 마주앉아 미소하면서 낮은 음성으로 소곤소곤 이야기하다가 고개를 쳐들고 백지주를 쳐다보았다. 백지주는 얼른 모자를 벗어쥐고 허리를 굽석하면서 자기가 들어설 자리가 옳은지 아닌지를 몰라 망설이며 방안의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애숭이중위는 가와사끼의 부관이였는데 이야기에 취해 처음은 백지주를 알아보지 못하는듯하더니 다음은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지주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구석쪽으로 조용히 다가가서 의자에 앉았다. 앉고보니 그것은 보라색유단을 씌운 팔걸이의자였는데 그것이 이 대기실에서는 처음보는 고품의 물건이여서 다시금 자기가 앉을 자리가 옳은지 아닌지를 몰라 곁눈을 팔았다. 대기실에는 양탄자, 긴 쏘파, 가죽의자, 원형탁상이 있고 그우에 울퉁불퉁 조각문양이 새겨진 청동빛 물주전자가 놓여있었다. 중위가 차지하고 앉은 의자도 자기가 앉아있는 의자와 꼭 같은것이였다. 얼핏 보아도 경찰서가 품을 들여 대좌의 림시거처지를 꾸렸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 순간에 백지주는 대좌의 직무와 사업상의 중요함을 각별히 느끼게 되였고 그러자 대좌의 앞에서 지니고있는 자기 의무와 그를 이렇게 찾아올수 있는 자기의 영광과 그를 이전보다 더 고귀하게 대해야 하겠다는 전에없던 생각들이 일시에 일어났다.

중위는 아까 하던 이야기를 그냥 계속하였다. 마주앉은 군인들은 심중히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어 무슨 형상을 그려보이면서 응대도 하고 가끔 마주 웃기도 하였으나 일본말로 하는 이야긴지라 한마디도 알수가 없었다.

좋이 한시간 가까이 되였으나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되였고 대좌의 방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백지주는 기다리기가 무료해서가 아니라 조여드는 긴장을 이길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기실을 조용히 나와 경찰서장 능포산과 아라가와대위를 차례로 찾아갔다. 그는 경찰서장보다 지도관을 여러모로 훨씬 더 존대할만 한 인물로 보고있었다.

그래서 백지주는 자기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라가와대위앞에서 굽석거리고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애쓰면서 자기가 대좌를 만나고 내려갈 때에는 도천리에 꼭 같이 내려가주셔야겠다고 례의를 갖추어 정중히 청원하였다.

도천리에 함께 가달라고 간절히 소원하는것은 지주가 자기를 존대하여 한턱 단단히 내겠다는 말이라는것을 알아차린 아라가와는 대단히 흡족해하였다.

백지주는 한시간후에 대좌의 호출을 받고 그의 집무실에서 약 반시간동안 담화를 하였다. 그가 함석필십가장을 보내여 알아본데 의하면 산판채벌장으로 간 인부들이 일을 잘하고있으며 한달이내에 공사용원목을 운재터까지 하산할수 있고 그 시간이면 도천리에서 한창 벌어지고있는 돌채취, 자갈운반, 기초구뎅이파기와 같은 일들도 많이 진척되며 금년 10월전으로는 집단부락 토성을 완전히 쌓을수 있다고 하였다.

대좌는 전에없이 엄격히 눈알을 굴리면서 자못 심중하게 주민들의 사상동향에 대해서 물었다.

백지주는 자기의 체면과 대좌의 기분을 고려하여 자기가 전혀 확신할수 없는 그 문제에 대하여 바로 어느 다른 문제보다도 더 자신있게 대답하였는데 주민들은 고분고분하고 소요를 일으키지 않고 유격대의 기습을 막기 위한 토성공사에 전력하고있다고 하였다.

대좌는 그것을 죄다 흡족히 믿는 눈치는 아니였으나 그래도 어느만큼은 믿는것 같았다.

《중요한것은 주민들의 동향이요. 토성공사가 아니고 동향이란말이요.》 대좌는 주머니에서 가죽뚜껑을 해씌운 수첩을 꺼내들고 분주히 무엇인가를 찾았다.

《여기 있군.》

그는 드디여 수첩장에 시선을 집중하고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좋지 않아. 대단히 좋지 않아. 당신에 대한 감정도 나쁘고 작년여름에는 유격대에서 모연금을 징수할데 대한 통지서도 내려오지 않았는가? 당신은 신파로 도망을 쳤다지, 그새 창고는 털리우고 모연금의 두배나 되는 량곡을 빼앗기고···》

《각하, 그것은 유격대가 한 일이 아니라 유격대의 이름을 도용한 강도단이···》

《강도단은 무슨 강도단, 유격대요. 지금도 마을에는 유격대와 내통하는 놈들이 분명 있단말이요. 산판에 간 놈들을 당분간이라도 거기에 눌러앉히고 산판에서도 부락에서도 일체 소요가 없도록 하오. 장정들을 부역에 내몰고 아낙네들끼리 농사를 지으라고 강박하면 다른 화단이 일어나지는 않겠는가?》

《념려 마십시오. 지금까지는···앞으로도 제가 전적으로 힘을 써서 각하의 구상이 열매를 맺도록···》

가와사끼는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출입문이 열리고 아까 대기실에 있던 두명의 군인이 들어왔다.

가와사끼는 그들을 흘깃 바라보고나서 백가에게 마을에서 시급히 해야 할 일들과 놓치지 말고 극복해야 할 구석들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였다. 그리고 아라가와대위가 자기를 대신해서 당분간 일을 볼터이니 그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라고 하였다.

돌아올 때에 백가는 볼품이 없는 자기 마차를 버리고 돈을 들여 경편마차를 불렀다.

중국인마부가 다루는 조그마한 창문이 달린 낡은 유개마차에 백가는 아라가와대위와 나란히 올랐다. 백가는 이전에는 그렇게 어렵고 조심스럽던 아라가와 사이에 이상하게도 친지다운 정리가 싹트기까지 하는것을 의식하였다.

그는 경편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내맡기고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고있는 아라가와를 곁눈질해보았다. 그러자 돈을 좀 들이더라도 중국인 경편마차가 아니라 승용차를 구할것을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와 함께 안속으로는 시급히 토성을 빨리 쌓고 아낙네들을 내몰아 농사도 알쭌히 지으며 산판인부들을 늘이고 자금을 투하하여 목재수입을 시급히 늘구어야 하겠다고 속다짐하였다. 첫째도 둘째도 재산이였다.

《부림소들도 몇짝 산판에 더 올려보내야겠다. 소가 없으면 인력으로라도 거름을 지여나르지 않으리, 쌍것들같으니라구.》

백가는 공연히 속으로 누구에겐가 화풀이를 하면서 치부에 점점 숨가빠져서 마차의 낡은 창유리를 들어올리고 달아오른 얼굴을 밖에 내밀었다.

아라가와는 마을에 도착하자 우선 공사현장을 돌아보겠다고 하였다. 백가는 자기에게 속을 내주지 않고 줄곧 야릇한 표정을 짓고있는 아라가와의 기분도 기분이니만치 약주나 한순배씩 하고 나오자고 하였으나 아라가와는 그냥 고집이였다.

백가는 하는수 없이 마차를 돌려보내고 질적거리는 땅에 내려서서 마을변두리를 한바퀴 돌았다.

남자들, 녀자들, 늙은이, 아이들 할것없이 모두 밀려나와서 한데 붐비며 공사를 하고있었다. 십가장들이 공사판 십장역할을 하고있었는데 그들은 아라가와일행을 보자 급히 다가와서 자기들 십가에 할당된 부역공수를 어떻게 동원하고 공사는 어떻게 진행하고있다는 등 세세한 보고를 하였다. 아라가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들중에 의뭉스런자가 없나 하여 그들의 얼굴과 손짓, 옷이며 그리고 소와 사람과 달구지들이 한데 어울려 북적거리고있는 일판을 번갈아살펴보았다. 그는 두개의 공사구간에서 동원된 로력들이 파제낀 성토량이며 강과 산기슭에서 날라온 막돌무지들을 계산해보고 경찰에서 파견한 일본인기술자를 불러다 작업량을 확인하였다. 그는 손수 한 농민의 손에서 삽을 받아들고 약 10분가량 기초구뎅이를 파면서 작업량과 시간을 측정하고나서 이런 속도로 하루 10시간, 12시간 일한다면 얼마나 할수 있겠는가 하고 예비타산을 해보기도 하였는데 농민이 하고있는 일이 결코 수월치 않으며 여기서 무엇을 더 짜낸다는것은 실로 어렵다는것을 알자 가벼운 걸음으로 현장을 떠났다.

아라가와는 함석필네 십가가 담당하고있는 배수로굴착장에 와서 한결 더 기분이 맑아졌다. 좁고 깊은 구뎅이속에서 흙과 탕수에 매닥질이 된 새까만 몸뚱이들이 비비닥거리며 일제히 소란하게 삽소리를 울리고있었다.

아라가와는 한 다리를 약간 앞으로 내짚고 그우에 허리를 구부리며 배수로를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개미떼처럼 엉켜붙은 새까만 사람들이 십가별로 할당된 작업구간에 따라 배수로바닥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다. 한조에서는 배수로바닥에 기다란 말뚝을 박아놓고 그옆에 좌우로 선회할수 있게 곁가지를 붙여 목조기중기를 만들어놓았는데 짝지발같은 목조기중기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면서 두터운 멍석으로 튼 커다란 중태에 흙을 담아 배수로 뚝우에 날라가고있었다. 뚝우에는 두사람이 마주서서 올라오는 멍석중태를 거의 온몸으로 받아 흙망태와 죽기내기로 씨름을 하면서 한쪽 유측으로 밀고갔다.

아라가와는 만족하여 백지주를 칭찬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그를 기쁘게 하며 만족스럽게 하는 농군들의 토역공사는 갈수록 자주자주 나타났다.

어기영, 어기영.

목도군들이 단조로운 소리를 질러가며 거기에 맞추어 팔과 다리를 일제히 움직이면서 커다란 돌을 날라오고있었다. 해빛에 타고 땀에 번들거리는 청동빛의 몸뚱아리들은 크고작고 각이하였는데 어깨우에 가로질린 굵은 목도채에 머리를 젖히고 한결같이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마지막 구간인 막돌쌓기공사판에 왔을 때에는 이미 해가 떨어지고있었다. 거기서는 몇명의 농군들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무어라 떠들썩 고아대다가 바삐 뛰여 일어났다. 그들은 일을 안하고 씨뿌릴 걱정들을 하면서 백지주를 욕하던참이였다. 그러나 아라가와는 그들이 공사를 위해 중대한 의논들을 하고있었던것으로 오인하였다.

《요로시, 요로시》

아라가와는 그들의 옆을 지나가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