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6

 

제 3 장

6

 

물이 날고 발이 성긴 무명수건을 쓴 춘옥이는 드레박으로 물을 퍼서 처음에는 하르르한 명주수건을 쓰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향옥이 빨래함지에 조심히 붓고 다음에는 자기의 빨래함지에 쏟았다. 그들은 한동네에 살면서 작년 한날한시에 가마타고 머리를 얹은 새각시들이였다.

동네에서는 나이도 같고 얼굴생김도 비슷하고 게다가 이름도 옥자돌림인 그들을 두고 새각시쌍둥이라고들 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남편은 서로 판판 달랐다.

향옥의 남편되는 함석필이라는 사람은 올해 나이가 스물다섯이고 보통학교 중퇴생인 멋쟁이지만 춘옥의 남편되는 권용산은 올해 서른다섯되는 힘이 황소같은 장정이고 순박한 농사군이다. 함석필이는 힘에서나 농사일에서나 도저히 권용산을 당해낼수 없는 사람이지만 꾀가 많고 이를데없이 약삭발라서 경찰서에 들락거리며 깡판글도 써주고 대서일도 했으며 한때는 신파영림서에 한자리 본다고 흰 운동화에 목에는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다니며 교섭을 하였다.

권용산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근에서는 물론 한동네에서도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1년에 한번있는 5월단오날에만은 권용산이 씨름판에서 1등을 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군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고작 단오날뿐이고 그다음에는 권용산의 존재를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실 씨름으로 말하면 권용산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마을사람들 성화에 못이겨 해보는것이고 때때로 신파떼군들이 건너와 그를 씨름대상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성실한 권용산의 지게짐이 언제나 높았던데서와 어찌다가 그가 쥐여보는 대사집 떡메소리가 류다르게 우렁찬데서 그의 존재가 잠시 느껴지는 때도 있기는 하였다.

이마전으로 밀려내린 무명수건을 뒤로 젖힌 춘옥이는 동백기름을 바른 향옥의 해빛에 반짝하는 머리를 언뜻 쳐다보다말고 난일에 때가 오른 남편의 갑옷같은 무명고의를 돌우에 올려놓고 방치질을 하였다. 무명고의에서 코끝을 아리게 하는 재물이 역한 냄새를 풍기며 줄줄 흘러내렸다.

맞은편에 앉은 향옥이는 살이 환히 꿰비쳐보이는 하얀 인조와이샤쯔를 세수비누에 살근살근 빨고있었는데 목화송이같은 흰 비누거품이 흘러내리면서 분향같은 향긋한 냄새를 풍기였다.

춘옥이는 이따금 얼핏 눈길을 돌려 향옥이의 부드러운 손끝에서 사각사각 얇은 소리를 울리며 하얀 비누거품을 흘리는 눈덩이같은 와이샤쯔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문득 만져보고싶은, 자기도 저런 와이샤쯔를 빨아보고싶은 생각이 불쑥 솟아올랐고 그러다가 스스로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게 되였다.

그런 생각은 한순간뿐이다. 먹고 입고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어려운 가난한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고는 한숨속에 싸여 고개를 다소곳하고 지어진 운명의 곡절에 묵묵히 자신을 내맡기는것이였다.

춘옥이는 다시는 넘겨다보지 않으리라 굳게 강심을 먹고 일부러 물방치소리를 창창 울리면서 빨래를 하였다. 맞은편에 앉은 향옥이는 춘옥의 그런 내심을 느끼지 못하는듯 빨래를 맑은 물에 헹구고 두벌비누칠을 하였다.

향옥이는 밥술이나 먹는 집 딸이다. 그가 고향서 시집올 때의 이야기를 춘옥이는 한두번만 듣지 않았다. 향옥이는 제나이또래 옥심이라는 처녀와 같은 때 혼사말이 있었는데 향옥이는 승벽내기로 자기의 례장을 꾸렸다. 옥심이가 분홍인조항라적삼을 했다면 향옥이도 같이 했고 옥심이가 송화색에 주주길솜 놓은 깨끼저고리를 했다면 향옥이네도 지지 않았다.

며칠후에는 두 처녀가 똑같이 례장을 받았는데 옥심이 례장에는 커다란 은가락지가 왔다. 향옥의 례장에는 은가락지가 없었다. 그래서 향옥이는 울고 향옥의 어머니는 얽음뱅이 중매로파를 불러다 야단을 쳤다. 중매로파는 부리나케 향옥의 시집을 오르내리며 교섭을 하더니 얼마후 은가락지는 오지 않고 대신 명주 한필을 보내왔다. 향옥이네는 그것을 팔고 거기에 닭 몇마리를 더 팔아 은가락지를 갖추었다.

그래서 향옥이의 손가락에는 반짝거리는 은가락지가 끼이게 된것이였다.

춘옥이는 향옥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기는 향옥이처럼 위해줄 어머니도 없고 재산도 없으며 따라서 그같은 생활은 꿈에도 바랄수 없는 불행하고 불쌍한 처지라는것을 생각하였으며 그 서러움에 남모르는 눈물을 짓군하였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그들은 가까왔다.

문득 향옥이가 비누거품을 개수도랑에 주룩 쏟으면서 생각난듯 한마디 하였다.

《참, 구장누이와 가까이 지낸다지?》

《응.》

춘옥이는 머리를 끄덕이고 빨래를 헹구었다.

《우리 쥔이 그러는데 참 똑똑하드래?》

《그럼, 알뜰한 형님이야.》

《아주 살러 왔다지?》

《그런가봐.》

향옥이는 빨래감에 살근살근 비누칠을 하였다.

《경찰에선 구장누이가 왜 왔나 궁금해하드래.》

《그건 어째서?》

춘옥이는 일손을 멈추고 향옥이의 발깃한 얼굴을 눈여겨보았다.

《도천리를 <안민촌>으로 꾸린대. 그래 외지에서 이사오는걸 달가와 안한대. 시시콜콜이 따져보고 미심한게 없어야 받는다지 않아.》

춘옥이는 불안에 싸이였다. 그는 어쩐지 그이를 위해주고싶은 생각에 따지고 들었다.

《구장누인데 경찰에서 뭐가 못미더워 그런데?》

《글쎄말이야. 우리 쥔이 깡판글을 쓰러 경찰서 서무과에 가니까 그러드래. 능포산서장과 지도관이 주고받는 말을 엿들었대.》

춘옥이는 웬일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때 마을어구에서 자동차소리가 들렸다. 두 녀자는 고개를 들고 저편 황철나무 우거진 동구길을 내다보았다. 해빛에 지붕을 번쩍거리는 자동차 한대가 꽁무니에 먼지를 말아올리면서 곧추 이쪽으로 달려왔다.

《어제 왔던 자동차인것 같지?》

《글쎄···》

자동차는 우물앞까지 내달아와 치직 소리를 내면서 급정거하였다. 아래우 맞붙은 곤색작업복을 입은 어제 본 뚱뚱한 운전사가 애숭이 조수총각을 달고 차에서 뛰여내렸다.

《애이구머니, 범이 제소리 하면 온대드니···》

향옥이는 마주오는 운전사를 눈으로 반기면서 춘옥이를 얼핏 돌아보았다. 춘옥이는 말없이 빨래함지를 옆으로 비켜놓고 운전사의 따거운 눈총을 등뒤에 받으면서 말쑥하게 때가 진 빨래를 비비였다.

《이 아주머닌 사람 반가운줄도 모르나보군.》

운전사는 씩뚝거리며 우물귀틀에 엉치를 붙이고 앉더니 두다리를 쭉 뻗치였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사이가 짜개진 새까만 지하족발을 거들먹거리였다.

《아주바닌 그저 희떠운 소리 잘해.》

향옥이는 운전사를 탓하였다. 그는 집에서 남편이 데리고오는 각색 남자들을 치뤄난터이여서 뜨내기 남자를 대하는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러나 춘옥이는 이웃 남자는커녕 남편대하는것조차 어려워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하는 형편이라 얼굴도 들지 못했다. 조수총각은 부지런히 물을 길어 자동차에 채워넣었다.

《그놈 자동차가 물을 먹기두 하네. 벌써 몇바가지채나?》

향옥이는 조수의 손에서 드레박 나기를 기다리며 한마디 하였다.

《체통 보구려. 그 큰배를 다 채울라니···》

운전사는 손수건을 꺼내 목을 문지르다 말고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세수나 하고 갈가?》

《집은 어데 두고 여기와 세수예요?》

《안사람 없다고 말하지 않았소?》

《괜히 홀애비래디···》

향옥이는 기름냄새에 눈살을 찌프리면서도 드레박으로 물을 퍼서 머리에 드리워주었다.

《우리 동내에 왜 왔시요?》

《백주사네 콩포대 실으러 왔지 왜 왔겠소?》

《콩포대라니, 잭년 이맘께도 실어가지 않었나요?》

《그러니 또 싣는게 아니갔소. 일본 가 공부하는 아들 학비를 마련한다나?》

《학비가 얼마게 자동차로 실어날라요?》

《다달에 보내주는게 백여원, 게다가 가끔 뭉치돈까지 보내준다오.》

《아이구머니···》

향옥이는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학비로 써요.》

《그러니 부자지.》

그 말엔 춘옥이도 소스라치듯 놀랐다. 백지주의 땅을 얻어부치고 살면서 단돈일전 허투로 써보지 못한 춘옥은 세상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다고 생각조차 못해보았다. 더구나 1년내내 소작인들이 피땀으로 가꾼 콩을 팔아 얻은 그 거액의 자금이 한사람의 학비에 충당되고 향락에 팔릴것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무섭기까지 했다. 하늘아래 머리를 들었다고 다 같은 인생인것은 아니다. 자기와 향옥이와의 차이만 하여도 엄청난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향옥이와 배지주와의 차이는 그보다 더 까마득하여 말할 형편이 아닐 정도로 그렇게 엄청난 하늘땅의 차이를 이룬다.

나와 향옥이, 향옥이와 백지주, 백지주보다 더한 부호도 있을가. 세상은 참말 천층 만층 구만층이다. 아마 이게 인생인 모양이지, 이게 세상인 모양이다 하고 춘옥이는 생각하였다.

운전사는 반짝반짝 윤이 도는 새파란 쎄루로이드빗을 들고 하이칼라머리를 빗어넘기더니 《아주마니들, 내 자동차 타고 도회구경 안갈라오?》하고 히죽 웃었다. 춘옥이는 물론이려니와 그렇게 고분고분 잘 휘여들던 향옥이도 시무룩하여 대꾸를 안했다.

운전사는 회파람을 휙휙 불며 자동차에 오르더니 부르릉 발동을 걸었다. 자동차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백지주집 커다란 대문통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구, 내 신세는 왜 이꼴일가.》

향옥이는 한숨속에 부르짖었다.

《일본 가 공부하는 진사댁 아들은 인물도 잘났다지?》

춘옥이는 그저 피씩하고 웃어줄수밖에 없었다.

《지주어른은 그렇게 많은 재산 갖구서두 또 산판경영을 늘굴 작정이래. 하루 세끼 돈만 씹어먹는대두 어금이 아파 못먹을거야. 셋째첩은 우리하구 나이가 어상반한 새파란 색시라지. 피양(평양)녀학교를 졸업하고 기생강습소를 나와 써비쓰가 사내 간장 녹인대. 거기 들어가는 돈만두 한해 수천원이라구 해.》

《세상이 그런걸···》

춘옥이는 무심히 대답해버리였다.

향옥이는 처음으로 세상의 리치를 발견한듯 황홀하게 부르짖었다.

《내 처녀적에 일본 가 공부하는 청년하구 혼사말 났드랬어. 그래 우리 이모가 남편 공대하라고 일본내지 토장국 끓이는 법하고 내지 반찬 멫가지, 거기다 녀학교시절에 배워둔 얼치기 양료리하는 법을 알려주기까지 했었지. 근데 그 청년하군 혼사가 안됐지, 방학때 고향와서 정미소집 체네하구 난봉을 피웠다구 우리 부친이 딱 잘라버렸어. 지금 생각하문 공연한짓이야, 남자들 난봉질하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지. 저 운전사같은 사람도 우릴 꾀여가지고 놀아볼 속심을 드러내는데···》

《얘, 그만 가자.》

춘옥이는 일어섰다. 그들은 나란히 우물귀퉁이를 돌아 골목길에 들어섰다. 향옥이의 숨소리는 확연히 높아졌다.

《난 언제문 시골신세 면할가.》

향옥이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린다. 그러나 춘옥이의 마음은 평온하였다. 그게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의 생활이고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딴세상 사람들의 놀음이거니 하고 굳이 생각해버린 까닭이였다.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김정숙동지께서 와계시였다. 늙은이의 적삼자락을 등뒤로부터 말아올리고 더운물찜질을 해주고있었다.

《형님 오셨군요.》

춘옥이는 빨래함지를 냉큼 내려놓고 젖은 손을 치마자락에 문지르며 그답지 않게 덤비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웃음을 짓고 물기가 차겁게 어린 춘옥이의 손을 감싸잡으시였다.

《지나가던 길에 들렸어요. 올봄엔 아버님이 자리 털고 일어나셔야 할텐데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춘옥이는 늙은이의 좁고 앙상한 잔등을 눈더듬으로 살피며 어느덧 오랜 병에 시달려온 활기없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 손을 써보자요. 안될게 없어요. 약도 구해드리구 간병을 잘해서 아버님이 마실방에라도 나다니게 하자요.》

늙은이는 반쯤 눈을 감고 헐썩헐썩 숨을 쉰다.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들이 송송 돋아오르고 목침너머로 내뻗친 검스레한 손등에도 땀이 번들거렸다.

《찜질이란게 큰 약재야. 한데 이건 늘 사람이 옆에 붙어가지고 시중을 들어야 하니, 어 참 시원하다.》

김정숙동지께서 더운 수건을 갈아댈 때마다 늙은이는 후후 입바람을 내불며 즐거워한다.

《아버님 좋으시다면 찜질이야 못해드리겠나요.》

김정숙동지께서 더운물에 붓고 단기에 쐬인 불깃한 손으로 잔등에 놓인 수건귀를 꽁꽁 눌렀다.

《형님이 이렇게 수고해주니 난 딱하기만 하군요.》

춘옥이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사뭇 얼굴을 붉히였다.

《원 별소릴 다 해요.》

찜질을 끝내신 그이께서는 늙은이를 반듯이 자리에 눕히시고 무릎을 주물러드리시였다.

고르롭게 숨을 쉬는 늙은이의 눈빛은 전에없이 밝아졌다. 쑤시던 동통이 멎고 온 심신이 가벼이 둥둥 떠오르는것 같은 기분에 잠기는것이였다.

《오랜 병에 효도가 없다고는 했다만 이젠 이놈의 병이 그 약손에 머리를 숙이는가보다.》

늙은이는 떨리는 손으로 김정숙동지의 손등을 한참동안 쓸어만지더니 곧 잠들었다.

춘옥이는 깊은 후회와 감명에 싸여 잠든, 오래간만에 편안히 잠든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늙은이는 노상 자리에 누워있는지라 육신이 쑤시고 뼈마디가 저려 틈있는대로 춘옥이더러 다리를 두드려달라고 하였다. 춘옥이는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세월이 흐르니 자연 무관하게 대하게 되는 때도 없지 않았다. 컴컴한 방안에 앉아서 늙은이의 다리를 두드리노라면 적적하고 갑갑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늙은이를 섭섭하게 해드린 때도 있었다. 그렇던 아버지가 지금은 얼마나 편안히 누워 고르롭게 숨을 쉬고있는가!

《봉녀 아지민 참 좋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 부러움에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이께서는 춘옥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그의 언니의 딸애인 봉녀라는 조카애 이름을 따서 봉녀 아지미라고 존대해 부르시였다.

《저한테 뭐가 좋을게 있나요?》

춘옥이는 그이의 말씀이 새삼스럽고 게다가 지금은 류다른 좋은 일도 없고 하여 생각없이 말하였다.

《좋지 않구요. 심청이처럼 아버님께 효도를 드릴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그럼 형님은 아버님이 안계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알릴락말락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곡진하게 말씀하셨다.

《봉녀 아지민 병드신 아버님을 조금이라도 노엽게 하지 말아요.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아오신분인가요. 한평생 락이라곤 못보시고 뼈빠지게 일만 하시다 골병이 드셨는데 마음이라도 편안하도록 우리가 시중해드려야 하지 않아요?》

춘옥이는 방바닥에 처져있는 아버지의 갈퀴같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득한 그 시절에 안해를 여의고 어린 딸 하나를 이 손에 키워온 아버지의 흘러가버린 과거와 그 과거의 참담한 고생살이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딸 하나를 위해 젊은시절을 고독속에 보냈고 고스란히 생애의 말년을 맞이하였으며 지금은 삶의 넋이고 행복의 전부이기도 한 자기 얼굴에서 애오라지 희망을 찾고 기쁨을 누리며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있는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 어떤 감회에 싸이시여 창밖을 내다보신다. 그이께도 잊지 못할 생활의 연연한 추억이 있었는지, 아니면 춘옥이의 마음속에 굽이도는 쩌릿한 회억들이 그이의 마음속에도 흘러들어 남같지 않은 살뜰한 정을 불러일으켰는지 춘옥은 알수가 없는것이였다.

어느덧 춘옥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소리없이 손끝으로 눈굽을 훔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춘옥이와 함께 외양간에서 짚새를 하시였다. 춘옥이가 작두를 밟고 김정숙동지께서 짚을 먹이시였다. 봄씨붙임을 앞두고 소를 가진 집들에서는 정성이 이만저만 아니다.

어떤 집에서는 입쌀죽을 쑤어먹인다, 콩을 삶아먹인다 하며 야단이였지만 춘옥이네는 귀밀짚에 콩깍지를 섞어 여물을 끓였다. 그것만도 춘옥이네같이 가난한 살림에는 어려운 노릇이다.

김정숙동지께서 치마폭을 접어 허리를 잘룩하게 동이시고 앉아 귀밀짚에 콩짚을 섞어 작두날안쪽에 꼭꼭 먹이시였다. 뒤창을 뚫고 활촉같이 날아들어온 해빛이 어두운 외양간벽을 돈잎만큼 비쳐주고있었다. 그 어둠속 한구석에 이마에 누런 놋장식을 붙인 소가 앞다리를 꿇고 엎드려 느리게 새김질을 하면서 푸른 눈망울을 껌벅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있다.

춘옥이는 귀밀짚먼지가 코끝을 간지럽혀 재채기를 하였다.

《형님은 짚새도 참 잘해요.》

춘옥은 숨을 할딱거리며 감탄하였다.

《힘들면 바꿔 디뎌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웃으시며 일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산자로 엮어올린 수수짚 마른 이파리가 버스럭거리는 외양간 천정에 매달린 바줄오래기를 잡으시고 몸의 중심을 가늠하신 다음 《자요!》하시며 작두를 들어올리시였다.

《아이, 빠르기두···》

땀을 씻고있던 춘옥은 신이 나서 짚새를 먹이였다.

썩둑 썩둑 썩둑···

작두날이 오르내릴 때마다 귀밀짚은 푸들푸들 요동치고 외양간안벽쪽으로 잘린 짚새가 후룩 후르륵 뿌리워나갔다. 그러면 귀밀짚, 콩짚에서 흩어지는 구수한 냄새가 풍기고 겨우내 짚동가리에서 잠잔 곡식먼지들이 떠오른다. 그것은 건강을 해치지 않는 신선한 로동의 먼지이며 훈향이다. 닭들은 곡식냄새를 맡고 기여들어 날개를 푸득푸득하며 돌아친다. 어떤놈은 소잔등에도 뛰여오르고 번쩍거리는 작두날어방에도 왔다가 작두날바람에 놀라서 꼬꾸댁하며 내뺀다.

좁은 외양간인지라 소와 닭과 사람이 짚새를 한벌 들쓰고 붐비고있었다.

춘옥은 맥이 쑥 빠진 손목을 주무르며 풍덩 퍼더버리고 나앉았다.

《아이, 형님, 그만해요.》

《그만하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삼태기로 짚새를 담아 여물가마에 안치시였다. 춘옥이는 텅빈 쌀독 안쪽에 깊이 꿍져넣었던 좁쌀을 꺼내서 씻었다. 없는 살림이지만 좁쌀밥이나마 지어 그이를 대접하려고 한것이다. 그는 겨우내 잠을 자서 납작하게 된 나무동가리에서 가둑나무 한단을 뽑아가지고 들어와 불을 지피였다.

《형님, 접때 섭섭하게 해드린걸 다 잊어버려요.》

춘옥이는 불쑥 밑도끝도 없이 말을 꺼냈다.

《뭘 새삼스레, 그런 말 말아요. 봉녀 아지미랑 이렇게 생각해주니 난 기뻐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진정을 담아 말씀하셨다.

《내 어제 복방아 어머니를 만났댔어요. 형님이 방아간에 나왔던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해요. <구장누이가 왜 우리 일을 해준단말이요?> 이러면서말이지요. 오늘쯤은 형님앞에 빌고싶은 생각뿐일거예요. 성미가 좀 사나와 그렇지 마음은 고와요.》

《나두 그렇게 생각해요. 얼마나 고생스럽게 살아온 형님인가요. 나는 그 형님이 불쌍한 생각만 들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한숨을 내쉬시였다. 춘옥이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불붙는 아궁을 들여다보았다.

《형님, 우리 동네에 아주 살러 왔다는게 정말이나요?》

《그럼요.》

《무산엔 안가구요?》

《아주 살러 왔다니까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밝게 미소를 지어보이시였다.

《난 언니가 이러다가두 훌쩍 떠나버릴것 같아요.》

《내가 가길 어딜 가겠어요. 이렇게 좋은 동무들을 두구.》

《정말이예요?》

《정말아니구요. 정말이예요.》

《그럼 약속해요.》

춘옥은 김정숙동지의 두손을 꼭 마주잡고 흔들면서 놓지 않았다.

《형님, 정말 내내 떠나지 말고 우리와 같이 있어줘요.》

《그러자요. 내내 함께 있자요!》

그 순간 김정숙동지의 눈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피여오르며 목이 메이시였다.

얼마나 많은 고충과 안타깝고 지리한 순간을 지나 이 말을 들어보는것인가? 뜬눈으로 몇밤을 새우며 견디기 어려운 번민과 모대김으로 남모르는 몸부림을 겪으셨던 그 모든 일들이 세세히 한순간에 떠오르며 걷잡을수 없는 감회와 기쁨과 말못할 환희를 불러일으키는것이였다.

부엌은 훈훈해졌다. 낟알익는 구수한 냄새가 풍기고 밥이 잦는 소리가 들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하시고 일손을 잡으시였다. 아궁안의 불을 모아놓고 때다남은 나무를 구석쪽에 안아다 놓으시였다. 그러시고 비자루를 들고 부엌바닥을 깨끗이 쓰시였다. 그다음 여물가마를 여시고 박죽으로 한번 휘젓고 뚜껑을 닫으시였다. 자꾸만 일하고싶으시였다. 기쁨을 누를래야 누를수 없으시였다.

《한소끔 푹 띄우면 속살까지 익겠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밝은 미소를 그리시고 말씀하셨다.

춘옥은 쌩긋 웃고 신이 나서 그릇들을 부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밖에 나가 한참동안 구구하고 닭들을 불러 외양간안에 몰아넣으시였다.

《형님두 참, 일밖에 몰라.》

춘옥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잔걱정을 하였다.

갑자기 이상하게 마당이 조용하였다.

《이 형님이 무얼하시나?》

춘옥은 부엌문을 젖히고 마당을 내다보았다. 춘옥은 문밖을 나갔다.

《형님, 형님 어디 있어요?》

춘옥은 외양간, 재간, 굴뚝담쪽을 돌아가며 분주히 찾았다. 어디서든 보이지 않았다. 춘옥은 황황해났다. 이 형님이 어디 갔나, 춘옥은 재빨리 삽짝을 젖히고 뛰여나가 뒤울밖의 돌배나무둔덕을 쳐다보았다.

그때 한팔을 내저으며 둔덕을 넘어가시는 김정숙동지의 뒤모습이 보였다.

《형님, 형님이요!》

춘옥은 소리치며 뒤따라갔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신듯 경쾌히 흘개바람으로 복방아네 물버들울바자모퉁이를 돌아가시였다.

춘옥이는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어쩐 일인지 가슴이 허전해지고 눈구석이 뜨끔해졌다.

《형님두 참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