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5

 

제 3 장

5

 

연자방아간에서는 동네녀인들이 모여서 백지주의 쌀을 찧고있었다. 해동전에 지주집의 감자나 겉보리를 한두말씩 꾸어가며 지주집 쌀방아를 찧어주었다.

오늘은 춘옥이, 쌍별이, 옥탄이, 방숙이, 복방아 어머니, 인순이네 고모, 첫참이네 아지미 이렇게 일곱이 어울려서 방아를 찧어주게 되여있었다.

방아간에 나오는 차례로 아낙네들은 소를 몰아 연자망을 돌리였다. 방아간 주변에서는 어른들을 따라나온 애들이 뛰여다니고 풀어놓은 포대기속에서 애기들이 봉당으로 기여다니였다.

한쪽에서는 춘옥이와 쌍별이가 연자망을 돌리고 다른쪽에서는 아낙네들이 늘어앉아 키를 까불며 쌀을 선별하고있었다.

해는 소고삐 한기장만큼 솟아올랐다.

소고삐를 잡고 판돌주변으로 돌아가던 춘옥이가 아낙네들을 향해 걱정스레 물었다.

《복방아 어머닌 왜 소식이 없을가요? 해가 저만큼 솟아올랐는데.》

《그러게말이요. 지주가 또 야단을 치지 않을가?》

방숙이가 겁을 내면서 말하였다.

《복방아 어머닌 안나올거야요. 마름하구 기를 쓰구 싸웠는데 나올게 뭐예요. 나같애두 안나오구말겠어요.》

쌍별이가 아니꼽게 쏘아붙였다.

《참 마름하구 연장싸움을 벌렸지. 속이 상해 몸져누웠다는 말을 들었어. 그러니 나올턱이 없지.》

인순이네 고모가 끼여들었다.

《그런데 구장누인 정말 모르겠어요. 생긴거랑 보면 도회에서 살다 온 녀자같은데 일하는걸 보면 그렇지 않아요. 마음두 대가 바르기두하구. 동네에 숱한 사람이 있어가지구 칠봉로인 돼지 찾아줄 생각을 못했는데 구장누이가 함빡 비를 맞으면서 찾아주지 않았나요. 마름하구 맞설 땐 또 어쨌겠나요.》

춘옥이가 소를 세우고 비뚤어진 멍에를 바로잡아놓으면서 말하였다.
《난 모르겠더라. 구장하는노릇을 보니. 새벽마다 양푼을 두드리면서 동네를 돌아가는것만 보아두, 원 사람이 어쩜 그럴수 있을가?》

방숙이가 오꼿잖게 눈을 흘기였다.

《이랴!》

춘옥이는 느리게 새김질하는 소의 고삐를 나꾸채면서 방숙이의 말을 받았다.

《아무튼지 구장누인 좀 다른것 같애요.우리 집에두 벌써 몇번인가 와서 아버님 찜질을 해드리구 나무두 패놓구. 참 접뗀 쌍별이 저고리까지 지었어요. 어디 이것 보지요. 얘가 입고있는 이 저고리가 구장누이 지은거예요.》

아낙네들은 일제히 머리를 들고 쌍별이를 쳐다보았다. 면구해진 쌍별이는 얼굴을 붉히고 섰더니 두팔을 벌리고 돌아가면서 깃이랑 품이랑 동정이랑 어떤가 내보이는것이였다.

《얘, 꼭 맞누나.》

방금 나무라던 방숙이가 키를 뿌리치고 일어서더니 쌍별이의 저고리를 쓰다듬어보고 동정이 꼭 맞는다고 감탄해마지 않았다.

《바늘뜸새는 또 얼마나 고와요. 재봉으루 박은것보다두 더 가쯘하구 매츨해요. 세상에, 난 쌍별이가 별로 이쁘구 탐탁해졌다했지요.》

아낙네들은 웃으며 모두 일손을 놓고 쌍별이에게 모여들어 저고리구경을 하였다.

쌍별이는 아낙네들이 몸을 만지며 간지럽힌다고 깔깔거리며 웃더니 냉큼 뛰쳐나왔다.

《참 구장누이가 저 옷을 지었다니 믿어지지 않는구만.》

옥탄이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못미더워하였다.

《나두 처음은 형님처럼 그랬지요. 구장누이가 찾아오는걸 달가와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묻는 말에 대답두 않구 그랬어요. 그랬더니 우리 아버님은 사람박대를 하면 못쓴다구 하지 않겠어요. 구장누이가 뭐가 답답해 수모를 받으면서 이 집을 나들테냐. 오래비는 오래비구 구장누인 된 녀자다. 아무 소리 말아라 하지 않겠어요. 그래 난 이젠 가만히 있어요. 의지가지없는 몸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것 같기두 하구. 이웃을 사귀는걸 보면 정말 불쌍한 녀자같기두 해요.》

아낙네들은 춘옥이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좀 미타해하는 눈치기는 하였으나 아까처럼 반발하는 아낙네는 없었다.

《정말 구장누이가 마음이 곱구 일에 치운 녀자라면 박대할거야 없지 않아요. 이웃을 고이구 농사랑 함께 짓자고 한다는데.》

쌍별이가 통통한 저고리 앞가슴을 여미면서 말하였다.

《네가 저고리를 하나 개평받더니 인심이 후해졌구나. 아무렴 제가 구장누이라구 재세하지 않구 이웃을 곱게 고이겠다구만 하면 누가 마다하겠니. 그렇지만 사람은 두고봐야 아는거란다. 이제 두고보렴. 세도있는 구장을 믿구 우리를 업신여길지두 모르니.》

방숙이가 《어디 안그래요?》 하는듯이 아낙네들을 둘러보았다. 아낙네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러는 웃기도 하였다.

《그 말이 옳아, 두고 보아야 안다니까. 우린 구장누이가 어떤지 아직 사귀여보지두 못했으니 말만 듣구야 어디 믿겠어?》

옥탄이가 한마디 더 뚱겨치고 키질을 하였다. 아낙네들도 모두 일손들을 잡았다. 소는 투투 코김을 내불고 느리게 발통을 움직이며 망돌을 돌렸다. 춘옥이가 멍에채 앞에서 고삐를 끌며 《이랴 이소!》하고 소리를 높였다.

《언니, 구장누이가 와요!》

소의 엉덩짝을 때려몰던 쌍별이가 춘옥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디?》

춘옥이는 고삐를 멍에채우에 던지고 돌아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 신분단이와 함께 방아간으로 들어오고계시였다.

《형님네들 수고해요.》

김정숙동지께서 누구에게라 없이 인사를 건늬시였다.

아낙네들은 당황하여 눈치들을 보다가 인사들을 받았다. 방금전까지 구장누이이야기를 한 아낙네들은 아직 그 기분들이 사라지지 않아서 류다른 관심을 가지고 김정숙동지를 지켜보았다.

《구장누이두 연자방아 돌리러 왔어요?》

춘옥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렇게 대답하시고 조용히 미소를 띠우시였다.

《그럼 구장네두 보리감자를 꾸어자셨어요?》

《그런게 아니구 이보라구.》

신분단이가 딱한듯 춘옥이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우리 얌전이 고모가 저 복방아네 몫으로 일을 거들어주자구해서, 지주가 알면 그 아낙이 봉변을 당할판이니··· 그래서 나왔지뭐.》

아낙네들은 놀랍게 김정숙동지를 지켜보았다. 정말 구장누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미처 가늠이 안가는 표정들이였다. 한순간 따분하고도 서먹서먹한 공기가 떠돌았다.

춘옥이가 먼저 주위의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고 입을 열었다.

《구장누이두 이런 일을 해보았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 없이 그저 웃으시였다.

《아무 일이나 잡지요.》

춘옥이는 눈으로 판돌을 가리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겉곡을 한줌 쥐여 비벼보시고 망돌밑에 깔린 쌀을 넘겨다보시더니 손을 터시였다. 아낙네들은 호기심을 품고 그이의 일손을 지켜보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를 내젓는 소의 멍에를 누르고 소를 방아돌안으로 몰아넣으시였다. 그리고 모지랑비자루를 드시고 돌판기슭으로 나오는 쌀을 치우시였다.

춘옥이는 소를 몰았다. 김정숙동지께서 소의 발통에 밟히울가봐 춘옥은 마음을 썼다. 소고삐를 바투잡고 몇돌기를 돌았다.

《형님, 꽤 할만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겉곡먼지를 뽀얗게 피워올리면서 줄줄이 밀려나오는 방아밥을 쓸어넣으시던 손을 멈추고 조용히 웃어보이시였다.

춘옥이도 마주 웃었다. 이젠 안심이 되는것이였다.

쌍별이가 그이의 솜씨를 여겨보다가 끼여들었다.

《좀 쉬여요. 내가 할테니···》

김정숙동지께서는 먼지속에서 반짝거리는 처녀의 생기어린 눈을 보시더니 웃으시며 비자루를 넘겨주시였다.

쌍별은 망돌을 따라 몇바퀴 바쁜 손질을 다그치면서 뛰여돌아갔다. 처녀는 숨을 할딱거렸다.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은 아닌것이다. 쌀은 가녁에 모이기 시작하고 망돌과 판돌이 갉히는 소리가 났다.

멍에가 더욱 삐걱거리고 쐐기는 한결 더 애처롭게 빼액-빼액- 하며 울었다.

《좀 천천히 몰라요.》

쌍별이는 바빠맞아 소리쳤다.

《얘 그만두어라. 괜히 소대가리에 옆구리를 받기우겠다.》

《쌍별아, 이마에 땀을 훔쳐라.》

아낙네들은 떠들며 즐겁게 웃어댔다. 그들은 쌍별이가 다급하게 뒤따라오는 멍에를 피하느라 쩔쩔매는 꼴이 우스웠던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아밥을 한줌 쥐여 손바닥에 비벼보시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물기가 설말라서 몰리는군요.》

쌍별이를 두둔하여 하시는 말씀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쌍별이앞에서 판돌에 밀려난 쌀을 재빨리 처리해나가시였다. 아낙네들은 그이께서 날렵하게 팔을 휘저어 방아밥을 밀어넣고 배꼽을 따내고 높은 풍구재에 쌀박을 쏟는 솜씨를 놀랍게 구경하였다.

《얌전이 고몬 정말 못하는 일이 없소그래.》

눈섭에 쌀겨가 하얗게 붙은 인순이네 고모가 한마디 했다. 쌍별은 호기심과 부러움에 차서 김정숙동지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춘옥이한테서 듣기보다는 더 알뜰하고 인정이 있고 또 일솜씨가 여간 잰 형님이 아니였다. 그러니 고생은 얼마나 하였을가··· 구장누이라고 하여 처음에 품었던 서먹서먹한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남달리 친숙한,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있은듯이 정이 쏠리는것을 느끼였다.

《우리 얌전이 고몬 일곱살때부터 지주집 연자방아를 돌렸다오. 그러니 무슨 일인들 못하겠소.》

신분단은 키질을 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청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 저런 우린 아무리 가난해두 일곱살에야 방아를 찧었댔나?》

인순이 고모가 혀를 찼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소곳하고 눈웃음만 지으시였다.

《아니, 아무리 악착한 지주기로서니 일곱살짜리를 연자방아일을 시키다니, 생벼락을 맞을놈이지···》

옥탄이가 한마디 하였다. 아낙네들은 벌써 새로운 눈으로 그이를 바라보면서 그런 지주도 있다거니, 세상에 못할짓을 하는게 지주라느니 하면서 떠들썩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허리를 펴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동네에 욕심이 하늘같은 그런 지주가 있었어요. 지주는 처음에 말새끼만한 노새에게 멍에를 메워 망돌을 돌리게 했어요. 눈을 싸맨 노새는 하루종일 발통을 통통 구르면서 망돌을 돌리고 어머니는 뒤시중을 했어요. 그런데 지주는 돈을 뫃는 재미에 그 노새를 팔아버리고 우리 집 식구더러 그 일을 하라고 했답니다. 빚진 몸이니 어찌겠나요. 우리는 할수없이 어머니, 오빠, 나 셋이서 멍에채에 매달려 방아를 돌렸어요. 하루에 세가마니, 네가마니,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여섯가마니씩 찧기도 했답니다.》

아낙네들은 정어린 눈으로 그이를 살펴보고있었다. 둔중한 망돌이 침묵속에서 스르륵스르륵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세상에··· 지주란 모두 짐승보다 못한놈들이지··· 쯧쯧··· 그래 어머님은 어데 계시우?》

옥탄이가 묻는 말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 말씀이 없으시자 신분단이 한숨속에서 입을 열었다.

《어머니두 오빠두 다 세상을 떠나고 지금 저렇게 홀몸이라오.》

《아이구 참 불쌍두 하지.》

인순이 고모가 설음에 겨워 눈에 눈물을 지었다. 아낙네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신세를 두고 한탄하였고 구장누이도 자기들과 꼭같은 처지에서 자랐고 고생속에서 일을 배운 불쌍한 녀성이며 또 보살펴주고 의지하고 살아야 할 녀성이라고 생각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소털이 누렇게 묻은 방아간기둥에 손을 얹으시고 아낙네들을 둘러보시였다. 얼마나 인정있고 다정한 녀인들인가. 방아간 봉당으로는 애기들이 기여다니며 병아리를 쫓고있었다. 햇강아지들이 애기들의 겨묻은 볼을 핥으려고 꽁지를 들까불며 돌아갔다. 소는 숨이 찬듯 코김을 내불기도 하고 쉬파리를 쫓느라고 목을 내저으며 발통을 옮겨놓고있었는데 기다랗게 드리운 침이 주둥이밑으로부터 아래로 둥둥 드리워있었다. 춘옥이는 소를 쉬우려고 고삐를 당겼다. 그때 멀리 행길 한끝에서 먼지를 뽀얗게 달고 자동차가 달려오고있었다. 이윽고 자동차는 지주집대문앞에 와서 빵빵 두번 경적을 울렸다. 운전사가 모자채양을 뒤로 훌렁 밀어붙이고 차에서 내려 방아간을 기웃거리더니 휘파람을 휙휙 불면서 지주집 뜰안으로 들어갔다.

《저게 무슨 자동차나?》

옥탄이가 때없이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일본 가 공부하는 맏아들 학비 실어가는 자동차래.》

춘옥이가 대답하였다.

《아니, 학비를 자동차로 실어내?》

《콩포대를 실어내다가 팔아서 보낸다니까.》

《아이유··· 기차라.》

아낙네들은 일제히 기절을 한듯 놀랬다. 그다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어 쓰거운 입을 다시였다.

《그자식이 그렇게 돈을 물쓰듯 하면서두 공부는 당나귀꼴이랍디다.》

인순이 고모가 입을 비쭉거리며 한마디 했다.

《작년에두 보지 않았수? 그 꼴에 쪽바리 게다짝을 신은 왜년계집을 달고온걸, 그년때문에 저 머슴사는 칠봉로인이 고생을 했지. 닭을 잡는다, 떡을 친다, 야단을 하고 밤에는 또 원두막에 나가 참외, 수박을 따다가는 우물에 풍덩풍덩 담가두었다가 바쳐올리구··· 그놈은 세상없는 난봉군이구 도박쟁이지. 머리는 망돌같이 둔해서 글 한자 배우는데 백날 열흘이 걸린다는 그 주제에 일본 류학은··· 애구···》

그러자 키질을 하던 방숙이가 생각난듯 말하였다.

《그런데 지세경 그 사람은 어떻겠어요. 서울공부할 때 제손으로 내내 자취를 하면서 신문배달도 하고 전차값이 아까와 남대문통에서 어디까지라든가 망창 20리길을 1년내내 걸어서 통학을 하였다오. 그래두 그 사람이 공부 잘한다구 얼마나 칭찬이 높았소. 얘 쌍별아 너 좀 말해보렴.》

《그래, 그사람 내속이야 우리 쌍별이가 잘 알지.》

옥탄이가 쌍별의 잔등을 툭 건드리며 시까슬렀다.

《아이참, 언니두.》

쌍별이는 얼굴이 꽈리같이 빨개져서 달아나더니 김정숙동지의 등뒤에 가서 숨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처녀의 손을 꼭 잡으시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하시였다.

《세상은 너무도 공평하지 못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낙네들을 둘러보시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집 아들은 돈을 물쓰듯 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뭘 먹고 삽니까. 지주집에서 돼지먹이로 썩여뜨리는 콩알같은 감자를 가져다먹고 장 며칠씩 품을 내주어야 하니.》

《정말 그래요.》

춘옥이가 그이의 말씀을 받았다.

《우린 지주집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빚을 지구 이태째 살아오지만 한푼도 갚지 못하고있어요. 사실 빚이래야 얼마 가져다 쓴것도 없어요. 아버지가 앓으니 약값을 하려구 쌀 한말 빚진것이 얼마 지나는 사이에 리자가 본전을 넘었어요. 쌀은 갚았지만 그놈의 리자때문에 이 고생이지요. 참 따지고보면 그건 억울한 돈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어요. 그런데도 지주는 집이라도 차압을 하겠다고 땅땅 으르기만 하지요.》

그러자 아낙네들은 모두들 한마디씩 가긍하고 억울한 하소연들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형님들, 우린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가요? 이게 도대체 뉘탓일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낙네들을 향해 절절하게 호소하시였다.

《뉘탓이긴 뉘탓이겠소. 제탓이지. 팔자탓이야요.》

인순이 고모가 한숨을 쉬며 대꾸하였다.

《그게 무슨 팔자탓이겠나요, 형님?》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셨다.

《그건 팔자탓이 아니라 저 백지주같이 돈있고 잘사는 놈들이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구박하고 마음대로 부려먹기때문이예요. 내가 무산에 있을 때 거기 야학방선생은 늘 그런 말을 해주셨답니다. 우리두 처음엔 우리가 못사는게 팔자탓이려니만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게 아니더군요.》

《그럼 뭔데요?》

아낙네들은 일제히 호기심어린 눈들을 빛내이며 김정숙동지를 지켜보았다.

《그런 리치는 야학에 나가면 잘 알수 있어요. 여긴 야학이 없나요?》

《없어요. 야학이 있을게 뭐예요.》

춘옥이가 푸념을 하듯이 대꾸하였다.

《왜 야학이 없을가요. 무산에 가면 마을마다 야학이 있는데 이렇게 큰 동네에 야학이 없다니요?》

《동네가 커서 뭘 하나요. 선생이 있어야지요?》

《선생이 왜 없다구 그래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모두들 얘기하는걸 보면 지세경선생이 인품도 있고 지식도 있고 가난하게 공부를 했다니 마을사람들 사정도 잘 알아줄것 같은데요. 그런분이면 야학선생을 하고도 남지요. 이제 야학이 서면 모두 공부하러 나가자요.》

아낙네들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모두 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