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3

 

제 3 장

3

 

마을에 나가다가 칠봉로인이 봉변당한 이야기를 들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황급히 부락을 벗어나시였다.

컴컴한 수림으로 둘러막힌 구불구불한 외통길로 습기를 머금은 눅눅한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우에서는 수림의 우듬지에 닿일듯말듯 낮추 드리운 구름떼가 떠가고있었다. 별들은 반짝거리며 잠간씩 나타났다가는 급급히 사라졌다. 하늘은 시커멓게 낮아지기 시작했으며 먼 지평선의 어느 가녁에서 소리없는 번개의 흰 섬광이 번쩍거렸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수림의 자드락에 들어서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디선가 울리는 외마디 긴 웨침소리를 들으시였다.

《어-허, 어-허!》

아까보다 분명히 또렷해진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랜 산생활에 습관되신 익숙한 몸가짐으로 입가에 손을 오그려 붙이고 《어-허!》 하고 길게 화답을 하시였다. 그러자 저쪽에서 마치 그 목소리를 오래 기다리고있기라도 한듯《어-허, 어-허, 어-허》하고 연거퍼 소리를 울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길에서 벗어나 발길에 휘감기는 수풀을 가로질러 소리나는쪽을 향해 경황없이 가시였다. 무엇인지 희끄무레한것이 수풀을 헤집고있었다.

《아버님 아니세요. 어서 손을 잡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눅눅한 땅바닥에 한손을 짚으시고 힘껏 허리를 굽히시였다.

칠봉로인은 그이의 손에 매달리다싶이하면서 힘들게 기여나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억울하고도 분한 생각을 금치 못하시며 로인을 부축하셨다.

《어서 들어가시자요. 몸조차 불편하신 로인님이 이 밤에 어디 가서 돼지를 찾는다고 이렇게 나오셨는가요.》

《아니여유, 찾아야 해유.》

로인은 안타까와하였다.

우르릉!

갑자기 머리우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고요하던 숲의 여기저기에 후둑후둑 굵은 비방울이 떨어져내렸다. 순식간에 수림은 단조로운 소음으로 꽉 찼다.

《비가 쏟아지는데 어떻게 돼지를 찾겠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소연한 비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안타깝게 말씀하셨다.

《비가 떨어지는게 차라리 좋아유. 비가 와야 돼지란놈이 멀리가지 않아유.》

칠봉로인은 어둠속에 팔을 뻗쳐 비를 받아보며 안절부절 못한다.

《아버님, 그럼 여기 계세요. 제가 찾아드려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홀연 비속으로 나서시였다.

차거운 비줄기가 그이의 얼굴에 들씌워졌다. 땅은 미끄럽고 가파로왔다. 발길에는 나무그루터기며 돌부리들이 귀찮게 걸채였다.

《뚤 뚤 뚤 뚤!···》

김정숙동지께서는 돼지를 찾으시며 이 숲에서 저 숲으로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오락가락하시였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이 넓으나 넓은 숲속에서 어디 가 돼지를 찾겠는가?···

옷은 이미 함빡 젖어버리고 머리우에서는 락수물을 뒤집어쓰신듯 비물이 흘러내렸다.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젖은 치마자락이 다리에 휘감긴다. 선뜩거리는 차거운 나무가지들이 얼굴을 스친다. 가시줄기와 나무가지들에 할퀴운 손등은 쓰리고 얼얼하였으며 이따금 풍덩풍덩 잠겨드는 웅뎅이속에서 발을 접지르며 넘어지기도 하셨다.

그이께서는 마을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을 생각하면 뼈마디까지 스며드는 아픔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악독한 지주놈,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아니고야 불쌍한 늙은이에게 이같이 모진 고통을 들씌울수 있단말인가!)

그러나 놈들이 제아무리 발광하고 인민들을 못살게 구박해도 그이께서는 불행에 처한 이 인민모두를 한사람한사람 받들어올려 혁명의 길에 내세우시려는 그 한가지 열망을 안으시고 숲속을 헤매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안깐힘을 쓰시고 일어서시여 다시 숲속을 헤매이시였다.

뚤 뚤 뚤 뚤··· 그이께서는 여기저기 어두운 숲의 캄캄한 언저리에 안타까운 소리를 울리시고 무슨 기척이 들리지 않나 하여 잠간씩 귀를 기울이시였다. 그러면 간혹 가다 뚤뚤하고 어디선지 마주쳐오는 미묘한 소리가 들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와락와락 숲을 헤치고 나가신다. 그러면 그 소리는 곧 사라지고 그 자리엔 비의 단조로운 소음이 들어찬다.

흐흐흐··· 돼지 울음대신에 굶주린 승냥이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손더듬으로 나무줄기를 찾아 거기에 등을 기대시고 숨을 돌리시였다. 맹랑하고도 막연한 일이였다. 잠간동안 그이께서는 아무 방비도 없이 어둠속에 몸을 내맡기시고 얼굴에 떨어지는 비방울을 고스란히 맞으셨다. 아무 생각도 아무 타산도 떠오르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다시 힘을 가다듬으시고 허리를 펴시였다.

얼굴의 물방울을 훔치시고 비에 젖고 흘러내린 머리를 만지시며 젖은 치마자락을 뭉그려 물을 짜시였다. 그리고 또다시 뚤뚤뚤 하고 숲을 헤치며 나가시였다.

불현듯 어느 순간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발이 앞으로 미끄러지며 온몸이 허공으로 날아떨어지셨다. 공교롭게도 그이께서는 벼랑에 굴러나신것이였다. 칼날같이 예리한 그 무엇이 등어리에 부딪치고 어깨를 내지르는 강한 타격을 느끼며 의식을 잃으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사뭇 쓰려오는 다리의 아픔과 허리의 진통을 느끼시며 정신을 차리시였다. 그때 아주 가까이에서 꿀꿀거리는 돼지소리가 들리시였다. 착각이 아닌가?··· 부질없이 귀가에서 맴돌이치며 안절부절 못하게 하던 그 소리다. 기쁨과 함께 불안부터 앞서는 그 음향인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차거운 땅에 그냥 등을 붙이신채 까딱않고 그 소리를 가늠해 들으시였다. 찬비를 피해 숲속 깊이 들여박힌 돼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꿀꿀거리는 소리다. 그 소리는 김정숙동지께서 쓰러지신 바로 우쪽낭떠러지아래의 우묵한 숲속에서 울리고있었다. 이번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시고 무릎걸음으로 기여가시였다. 갑자기 맞은편에서 무엇인가 버스럭거렸다. 그이께서는 숲을 어루더듬으며 손을 저으시였다. 꿈틀 하고 놀라는 돼지몸뚱아리가 만져졌다. 그것은 크지 않은 돼지새끼였다. 비에 젖은 몸뚱이는 우들우들 떨고있었다.

《이놈의 돼지야, 여기 있었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너무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에 눈물이 나시였다.

이제는 됐다, 칠봉로인이 얼마나 기뻐하랴.

그이께서는 돼지새끼를 안고 서둘러 일어나시였다. 발목이 시큰하였다. 벼랑에 굴러날 때 상한것이였다. 발목이 쑤시고 발등이 팅팅 부어나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발목을 부여잡고 주저앉으시였다.

어느덧 비는 멎고 수림의 우듬지들과 밋밋한 벼랑의 륜곽이 약간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누군가 자갈을 흘리며 벼랑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오지 마세요. 낭떠러지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황급히 소리치셨다.

다가오던 발자국소리는 딱 멎고 그대신 겁질린듯 한 목소리가 울렸다.

《거기 누가 있소다? 누가 있게 그러오?》

그것은 칠봉로인의 목소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반가와 마주 소리치셨다.

《아버님, 구장누이예요.》

그러자 로인은 이상하게 아무 응대도 없었다. 꼼짝않고 서서 아래만 내려다보는 모양이였다.

《돼지를 찾았어요. 여기 돼지가 있어요.》

한참후에 골짜기아래에서 숲을 와삭와삭 헤치며 칠봉로인이 나타났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함빡 비에 젖어가지고 경황없이 다가온 로인은 턱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구며 김정숙동지 앞에 멍청히 서버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함빡 젖은 가슴에 돼지새끼를 꼭 부둥켜안고 새벽추위에 이발을 쪼으면서 로인을 마주 바라보시였다.

《어허-》

로인의 입에서는 감탄인지 한숨인지 알수 없는 기막힌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다음순간 로인은 번쩍 고개를 들고 쌍엽장을 높이 쳐들었다.

《이놈의 짐승아!》

로인은 고함을 치며 돼지를 쳐죽일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쌍엽장으로 짐승을 내려패지는 못했다. 형언할수 없는 감사함과 억울함이 사무쳐오는 비분의 혼탁된 감정이 로인을 억제할수 없는 강렬한 행동에로 추동한것이다. 칠봉로인은 땅바닥에 무릎을 박고 푹 꼬꾸라지더니 구슬프게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아버님 이러지 마시고 일어서십시오. 밤새 얼마나 마음고생이 크셨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목메이는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로인의 어깨를 안아 일으키시였다.

《으흐흐···》

로인의 가슴에선 통절한 울음소리가 터져올랐다.

《구장누인 어쩌면 이리두 고마운 일을 해주시우? 내 죽는 날까지 이 은혜를 잊지 못하겠소. 눈에 흙이 들어가두 이 은혜만은 못잊어···》

로인은 김정숙동지의 젖은 팔소매를 쓰다듬으며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칠봉로인과 함께 길에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나무가지를 지팽이삼아 꺾어드시고 칠봉로인은 쌍엽장을 짚으며 걸었다.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돼지새끼가 강아지처럼 앞에서 달랑달랑 걸어갔다. 엷은 해빛이 구름사이를 뚫고 길을 비치기 시작하였다. 칠봉로인은 눈을 쪼프리고 반쯤 구름에 가리운 태양의 가장자리를 이윽히 바라보았는데 그럴 때면 로인의 입에서는 한숨이 새여나오고 음울하고 낮은 신음소리가 울려나왔다. 돼지를 찾지 못했던들 로인은 미상불 이 아침의 밝은 빛을 보지 못했을는지 모른다. 그것을 생각하면 원통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칠봉로인은 쌍엽장을 놀려 돼지꽁무니를 바싹 따라갔다. 다시는 이놈의 짐승을 놓치고 화를 당하지 않으리라 아득바득 애를 쓰고있었다. 그것은 눈물이 날만큼 측은하였으며 불쌍해보였다. 마을이 가까와지자 로인은 걸음이 빨라졌다. 그는 허리를 까부리고 자주 기침을 깇군하였으며 웅뎅이에 굴러난 허리가 덧맞쳐 끙끙 신음소리를 내였다.

마을어구에 들어섰을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칠봉로인더러 말씀하셨다.

《아버님, 우리 집에 잠간 들려 옷을 빨아입고 가시도록 하세요.》

칠봉로인은 말없이 멍청히 서서 한참동안이나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았다. 불현듯 불안과 걱정에 짓눌린 어두운 빛이 그의 얼굴을 컴컴하게 덮어버렸다.

《그래도 일없을가? 아니 그래서는 안돼유. 지주가 알면 큰 화를 당한다우.》

《옷을 빨아입는데 화를 당하다니요. 그럴수 없어요. 걱정마시고 우리 집에 가시자요.》

그러나 로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가야 해유. 막지 말아줘유. 쫓아내면 어디 가서 살아유.》

로인은 겁을 먹고 허겁지겁 비켜서더니 쌍엽장을 휘두르며 걸어갔다. 물이 고인 길에서 진창이 튀고 비에 젖어 휘줄근히 늘어진 옷자락이 겨드랑밑에서 너펄거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이 아파 차마 그 광경을 보실수 없으시였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시고 밀물처럼 차오르는 울분과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다시 앞을 보시니 그새 까맣게 멀어진 로인의 자태가 길모퉁이에서 까뭇거리고있었다. 로인은 필사의 힘을 내여 시커멓게 입을 벌린 지주집 담장모퉁이를 헤치고 들어갔다.

일생토록 숙명적인 굴종과 구박만을 받아온 불쌍한 로인이 온몸을 통채로 무시무시한 지옥의 나락속으로 던지며 경황없이 돌진하고있는것이다.

김정숙동지의 가슴에선 지지는듯 뜨거운 한숨이 새여나왔다.

(언제면 저 로인의 가슴에도 희망을 안겨줄수 있을가? 언제면 모든것을 빼앗기고 지지리 눌리운 학대받는 인간의 설음을 깨우치고 삶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할수 있을가?

한두사람도 아닌 이 무수한 불행에 빠진 사람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계급의 눈을 주고 처지를 자각하게 만들것인가?)

그것을 생각하시는 김정숙동지의 마음은 이를데 없이 괴로우시였다.

마을어구에 사람들이 하얗게 밀려나와있었다. 그속에는 춘옥이와 쌍별이도 끼여있었다.

《아니 저게 뉘기오다. 구장누이 아이오다?》

방숙이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술렁거리며 다가오시는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