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4

 

제 2 장

4

 

저녁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하는 신파장안에 부드러운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해 자그마한 목조지붕을 쳐들고 정수리에 십자가를 인 교회당에서 울리는 《미사》종소리였다. 푸른 솔잎사이로 검은 법의를 입은 수도사들이 저녁기도를 올리고 커다란 앞치마를 두른 중국인료리사가 양푼같은 그릇을 들고나와 염소의 가슴에서 젖을 짜내는 모습이 보이였다.

교회당의 뒤울안 개나리가 꽉 우거진 길로 올라가면 목책을 두르고 조그마한 검은 대문을 닫아둔곳에 먼저 간 수도사들의 잡초묵은 무덤이 있고 《1918》 등등의 년대를 보여주는 이끼낀 비석이 놓여있다.

크지 않은 국경대안의 이 작은 읍거리, 화전과 류벌로 근근히 살아가는 극빈한 사람들의 거처지에 교회가 들어오고 지구의 한끝에서 출생한 수도사들이 이 땅에 묻혀 무덤에는 벌써 잡초가 덮이고 흰 대리석비석에 푸른 이끼가 돋기 시작하였다.

이 고요한 목조건물에서는 조선 모시두루마기에 바지저고리를 입고 대님까지 맨 조선의 개명한 유지들과 양복입은 신문명사회운동가들까지 함께 붐비고있었다.

그들은 일제에게 빼앗긴 조선을 찾기 위해 인민을 계몽하고 나라를 계몽하려는 이른바 계몽주의자들이였으며 이 땅에 조폭한 일본의 문명대신 서양문화를 서식시켜보려는 신식계몽운동가들이였다.

어슬어슬 황혼이 스며들기 바쁘게 이곳저곳 송림사이로는 흰 두루마기와 양복입은 운동가들이 교회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밤엔 남자들보다 녀자들이 대부분이였으며 녀자들치고도 부인들이 거의 전부였다. 그들은 촉수낮은 전등이 머리우에 낮추 매달려 불그레한 광선을 발산하고있는 교회당 강당에 들어섰다. 사방에서 널마루를 밟는 소음이 삐걱삐걱 울리고 거기에 회장의 정숙을 지키려고 애쓰는 낮은 기침소리, 가만가만 속살거리는 말소리들이 섞여 강당안은 마치 뽀얀 먼지들이 꽉 들어차서 서로 붐벼대면서 수없는 미세한 음향을 퍼뜨리는것 같았다.

사람들은 빽빽히 자리에 앉았다. 무대에는 물론 창문들에도 검은 비로도장막이 드리워있었다. 강당에서는 이제 잠시후면 신파읍이 생겨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어머니 날》행사가 거행되는것이다.

각이한 지체와 각이한 옷차림의 녀성들, 그중에는 가슴에 흰꽃을 달고온 녀자들이 있는가 하면 붉은 꽃묶음을 안고있는 녀자들도 있었다. 어떤 녀인들은 흰 손수건을 눈에 가져다대고 깊은 수심에 잠겨있기도 하였다. 누구는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곳으로 왔고 또 누구는 리별당한 산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 《어머니 날》모임에 온것이였다.

이 기이하고 구슬픈 행사에는 지세경도 참가하였다. 그는 리풍우지국장을 만나기 위해 오늘 신파로 들어왔다가 이리로 가면 리풍우를 만날수 있다고 하기에 그를 찾아왔던길에 우연히 그가 주관하는 이 모임에까지 참가하게 된것이였다.

부드럽고 구슬픈 음악이 검은 장막이 드리운 무대 저쪽에서 은은히 들려왔다. 막이 서서히 걷히였다. 무대에는 푸른색 등이 켜져있었다. 사람도 연탁도 없는 빈 무대는 깊은 수궁처럼 어스름히 들여다보였다.

장내뒤쪽에서 박수가 터져올랐다. 《어머니 날》모임의 주관자들이 장내 뒤에서 들어오며 환영을 받고있는것이였다.

지세경은 한껏 머리를 돌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리풍우는 세번째자리에 서있었다. 그들은 회장의 절반쯤되는 상등관람석에 가앉았다. 리풍우만이 무대로 나갔다.

풍금소리는 한결 길고 구슬프게 울렸다. 좁은 회장안은 어떤 신비한 음악적환상의 세계에 젖어든듯이 금시 몽롱해졌다.

《여러분.》

리풍우가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가 열게 되는 이 〈어머니 날〉은 살아계신 어머니의 사랑을 감사하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은공을 추억하는 날입니다. 이 〈어머니 날〉이란 사람이 세상에 태여난 때부터 마땅히 있어야 할 날입니다. 세상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을 감사하며 그 은공을 생각하며 일년에 한번 〈어머니 날〉을 특별히 정하고 이렇게 맞이하기 시작한지는 오래지 않습니다. 이것은 유감이며 우리의 불행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어머니 날〉을 늦게나마 시작할수 있었던 그 감격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이날을 지키게 된 유래라고 할지, 하여간 그 력사를 먼저 알리는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리풍우의 얼굴에서 안경이 한번 번쩍하였다. 다시 풍금이 울렸다. 낮고 웅근 목소리로 리풍우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아메리카주의 웨스트 벌시니아에는 안나 자삐쓰라는 녀자가 살고있었습니다. 안나의 어머니는 믿음이 두터운 기독교인이였습니다. 그는 26년동안을 계속하여 그곳 감리교의 주일학교의 선생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신앙가인 어머니를 가진 안나는 집에서뿐아니라 주일학교에서도 종교적교육을 받았습니다.

자기의 딸뿐만아니라 남의 자녀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며 예수의 말씀을 가르쳐주기에 힘쓰던 안나의 어머니는 나이많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녀사의 죽음을 애석히 여겨 교회당에서 추도회를 열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안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뜻으로 카네이숀 한묶음을 가지고 와서 그 어머니의 교훈을 받던 청년들과 아이들에게 한송이씩 꽂아주었습니다.

그후 안나양은 〈어머니 날〉의 필요를 선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그의 희생적사랑을 감사하는 뜻으로, 또한 우리의 어머니가 벌써 돌아가셨으면 그의 크신 은공을 추억하는 뜻으로 일년에 한번이나마 날을 정하고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을 기념하자고말입니다.

안나양의 지성에 공명한 이름난 백화점왕 와나메이커씨가 1908년에 수천의 점원들과 그 어머니들을 모아놓고 〈어머니 날〉을 지켰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신 자녀들은 붉은 꽃송이를 가슴에 꽂고 어머니를 여읜 사람들은 흰꽃을 가슴에 꽂고왔습니다. 바로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과 력사를 가진 〈어머니 날〉, 이 필요한 사회적모임이 왜 조선에서는 아직 광범히 열리지 않고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먹고살기에 쪼들려서만 아니고 세계의 문명으로부터 아득히 떨어진, 쇠약한 민족정신의 소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머니 날〉을 정상적으로 기념하게 될것입니다. 지난해 경성시내 녀성단체들의 련합간친회가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열렸는데 그 석상에서 〈어머니 날〉을 사회적으로 기념할것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방의 녀성단체들과 련락을 취하고 언론기관을 비롯한 각 방면의 후원을 받아서 이 뜻깊은 사회적명절을 기념하게 되였습니다. 문명하고 개화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봉건적락후와 세습을 털어버리고 시대의 흐름에 보조를 맞춥시다.

여러분, 저는 오늘 모인 여러분가운데 붉은 꽃송이를 안고오신분이 많은것을 축하합니다. 더우기 어머님을 모시고온분들이 많은것을 기뻐합니다.

흰꽃을 꽂으신분들은 마음속으로 어머님을 추억하듯이 정성을 다하여 그 은혜를 감사하기 바랍니다.

이제 저희들이 준비한 짧은 순서는 여러 어머님들을 위해 준비한것이니 모성애의 아름다움을 다같이 축하하며 여러분이 여기서 돌아가신후에는 자기 어머님을 위해 도와드리고 멀리 계신이를 위하여는 은혜를 감사하는 편지를 써보내시고 어머님을 여윈 가엾은 동무들을 위해 위로를 아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리풍우의 연설이 끝나자 장내에는 박수가 터져오르고 이어 소복단장을 한 녀성중창단이 무대에 나타났다. 악사들이 들어앉은 무대앞의 복스에서 구슬픈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이상하게 떨고 흐느끼는 선률이였다. 무대는 분홍빛의 몽롱한 색등속에 장식되고 중창단의 눈같은 소복들은 그 분홍빛에 물들어 신비로운 풍경을 그려주고있었다.

 

어머니, 내 노래를 불러

당신의 품속을 자랑할수 있다면

이 목소리 다할 때까지

아름답고 고운 노래 부르리이다

 

시랑송과 노래가 시작되였다. 찬송가와도 같이 길게 마디없이 뽑는 연약하고도 비애가 차넘치는 노래였다. 장내의 여기저기서 가느다란 흐느낌이 터져오르기 시작하였다. 녀자들은 기구한 자기들의 설음, 곡절많은 인생의 구슬픈 하소연에 목메여 눈물을 뿌리기 시작한것이였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 나라 사람들치고 그 누구에게 가슴저린 슬픔이 없으랴.

어머니! 그 자애로운 이름을 불러보며 누구는 평생 락이란 말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가난속에 쪼들리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고 누구는 고향과 어머니를 생으로 리별하고 소식조차 알수 없는 혈육의 그리움때문에 울었으며 또 누구는 어머니의 얼굴조차 모르는 고아의 신세때문에도 울었다. 타향의 설음때문에도 그들은 울었다. 부유한 착취자의 안해와 딸들은 남편의 축첩, 실련당한 사랑의 상처때문에 눈물을 짰다. 장내는 눈물의 바다로 변해버렸다.

 

초불마저 꺼져버린 세상거리로

자애로운 나의 어머니···

 

노래와 시랑송이 계속되고 악사들이 구슬픈 선률을 짜내기에 애를 쓰고있었지만 구태여 그러지 않아도 녀자들은 울것이였다. 그들은 노래의 가사나 시구들을 들을수 없었고 음악선률조차도 가늠할수 없었다. 그들은 딴 세계에서 울었으며 또 딴 생활을 안고 몸부림쳤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대목에서 녀자들은 울음소리를 높였다. 이제는 음악도 시도 죄다 들을수 없었다. 악사들도 슬픔에 잠겨버렸던지 선률을 놓쳐버렸다. 검은 연미복을 입은 지휘자의 팔도 지향없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페회사도 없이 모임은 끝나버렸다. 주최자들은 장내의 격조된 감정을 흐트릴 필요가 없어 자연스레 모임을 마치기로 한것이였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실컷 울고 설음을 쏟아버린 녀자들은 다소 가벼운 기분으로 총총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