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2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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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는 이틀만에 산판에서 돌아왔다. 꽁무니에서 낫가락을 뽑아 토방에 올려놓고 종다리를 감은 행전을 풀어 먼지를 털던 강성태는 재간모퉁이에서 돌아가고있는 안해에게 물었다.

《누이는 어디 갔소?》

《돼지물을 이구 옥탄이네 집으루 갔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강성태는 어리둥절하여 안해를 바라보더니 차츰 눈길이 엄엄해졌다.

《여보, 당신 이리 좀 오우.》

강성태는 성급히 신을 벗고 바지가랭이에 발바닥을 문다지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신분단은 영문을 모르고 남편을 따라 문지방을 넘어섰다.

《문을 꼭 닫구 거기 좀 앉소.》

《아니 왜 그래요?》

신분단은 남편의 하는 노릇이 수상쩍어 겁먹은 눈을 들어 그를 지켜보았다. 강성태는 방안을 휘- 둘러보고 문고리를 안으로 건후 안해의 팔목을 잡아 안쪽에 밀어다 앉히였다.

《당신이 아까 한 말을 다시한번 해보우.》

《뭘 말하라는거예요.》

《돼지물이 어쩌구어째, 응?》

강성태는 화가 나서 안해의 눈지방을 쏘아보았다.

《내가 어떤분을 모시게 된다구 그만치 얘길 했는데두 모르겠소. 장군님께서 직접 파견하신 공작원동지를 모시구있단말야.》

《좀 가만가만 얘길 해요. 그건 나두 알아요.》

신분단은 지지 않고 마주 대꾸하였다. 신분단의 생각에는 우선 김정숙동지의 그 절절한 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쩍하면 윽박지르기부터 잘하는 남편의 처사가 섭섭하였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라구 왜 공작원아지미한테 돼지물을 이우고싶겠나요. 원참.》

신분단은 눈물이 글썽해서 눈을 슴벅슴벅하였다.

《아니, 궁상은 왜 떨어. 이런 답답한 사람도 보았나. 사연이 있으면 얘길 해야 할것 안야.》

그 말에 신분단은 정신이 든듯 눈을 훔쳤다. 손등에 묻어난 눈물을 치마자락에 닦으면서 한참동안 말없이 앉아있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참 뭐라구 해얄지, 아지미가 부락아낙네들하구 빨리 사귀여야겠다구 하면서 그냥 돼지물을 이구 나가는걸 어떻게 해요.》

《아무리 그렇기로니 그따위 허드레일을 함부로 내맡긴단말이요?》

강성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언짢게 안해를 흘겨보았다.

신분단은 울상을 하였다. 듣고보니 자기의 처사가 덜퉁하였으며 궁리가 짧았다는 후회가 들었다.

강성태는 한모양으로 그냥 안해를 못마땅하게 흘겨보면서 따져물었다.

《공작원동지는 요즘 무슨 일을 하고계시오. 그냥 험한 일에 몸을 잠그시였소?》

《뭐라고 할지. 아무튼 몸을 조금도 돌볼 차비가 아니예요. 첫날에는 춘옥이네 집에 가서 나무를 패주고 왔어요. 다음날에는 산에 가서 무슨 약초뿌리를 캐가지고 춘옥이네 집으로 또 가셨어요. 유격대병원에서 쓰는 초약인데 허리병에 좋은 약이라고 하더군요. 약을 짓찧어서 로인의 상처에 처매드리구나서 또 저고리까지 지어주었어요.》

《무슨 저고린데?》

《쌍별이가 춘옥이더러 지어달라고 감을 갖다놓은게 있는데 그걸 지었다구 하더군요. 바느질솜씨가 이만저만 아니예요. 그런데 공작원아지미 낯빛은 밝지 못해요.》

《왜 무슨 일이 있었소?》

《부락사람들이 구장누이라구 해서 곁을 주지 않아 그러지요. 춘옥이랑 쌍별이랑 옥탄이랑 모두 아지미를 가까이 대하려고 하지 않아요. 당신이 사람들하구 좀 곰상곰상 굴어야 할것 같아요.》

강성태의 얼굴에는 불현듯 짙은 그늘이 비끼였다. 공작상 적의 《신임》을 얻느라고 한노릇이김정숙동지의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미치고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의 행동방향을 좀 바꾸어야 할것인가? 공작원동지의 사업을 보장하자면 무슨 묘책이 서지 않고는 안될것이다.)

강성태는 이렇게 생각하고 안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너무 시시콜콜이 파구들지 마오. 함부로 무엇을 묻지두말구.》

《알아요.》

신분단은 퉁명스레 대꾸하였다.

《중요한건 공작원동지가 당신에게 무슨 과업을 주든지 부탁하는 일이 있으면 백사를 제쳐놓고 해놓아야 하는거요. 당신은 요즘 무슨 일을 하고있소?》

《하는 일 없어요. 그럴듯하게 일감을 만들어서 이웃에 자주 드나들게 해달라구 해요. 그리구는 나한테 동네형편들을 깐깐히 물어요. 사람들 성미랑, 지주집 머슴을 사는 칠봉로인에 대해서두 자상히 묻지 않겠어요. 불쌍한 로인이라구 하면서··· 그래 내가 말해주었어요. 안해라는건 열두해전인가 잃구 홀아비루 딸 하나를 데리구 머슴을 살다가 그 딸을 동아일보 신파지국장댁에 양딸로 주었는데 그 애가 커서 가끔 강을 건너 아버지를 찾아와서는 들에서 만나고 들에서 헤여지군한다구. 가끔 아버지의 적삼을 개울에서 빨아 모닥불에 말리워 입히군하는데 그 애가 들에서 빨래하는 물방치소리를 들으면 동네아낙네들이 손맥이 풀려서 일을 못한다구··· 그러니까 영 애처로와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서 다 혁명에 일어서도록 하자고 하더군요.》

《알겠소.》

강성태는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하고 잠간동안 묵묵히 앉아있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우리는 공작원동지를 잘 보살펴드려야겠소. 당신은 눈치가 무딘것이 탈인데 그걸 고치오. 눈치가 무디니까 공작원동지한테 자꾸 일감을 떼운단말이요.》

《나두 당신한테 한가지 말할게 있어요.》

신분단은 좀 못마땅해하면서 말허리를 끊었다.

《뭐요?》

《당신은 코를 좀 골지 말라요. 당신 코고는 소리를 저 복방아네 집에서까지 듣는다는 소릴 못들어요?》

강성태는 꿈칠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 공작원동지가 오신 다음에도 코를 골았소? 전혀 그럴수가 없었겠는데 응?》

《자는 사람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무슨 수가 있어야지, 정말 큰일났어요. 옆방에서 통 잠들수가 없어요.》

강성태는 불현듯 걱정에 싸였다. 공작원동지의 신변과 편의에 대해 마땅히 생각하고있어야 할 자신이 정신없이 자버렸다는것이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잠을 깊이 안들게 하는 방책은 없을가?···

강성태는 곰곰히 생각하였다.

그때 밖에서 삽짝에 달아놓은 방울이 딸랑 하고 소리를 내였다.

《아지미가 와요.》

신분단이 귀뜀하고 바삐 정지간으로 내려갔다.

《오라버니 오셨군요.》

강성태는 토방에 무엇인가 내려놓으며 반갑게 말씀하시는 김정숙동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강성태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엌으로 들어와 신분단에게 무슨 말씀이신가 잠간 하시였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어 김정숙동지께서 웃음을 띠운 얼굴로 웃방에 들어오시였다.

《수고하셨어요. 별일 없었나요?》

《예, 산판에서 이틀밤을 잤습니다.》

강성태는 말하다 말고 문아래턱에 붙여놓은 거울쪼각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새 신분단이 망을 보느라고 뜰안에서 돌아가고있었다. 그는 안심을 하고 말을 계속하였다.

《이번 가보니 채벌장규모가 굉장하더군요. 장백에서 이름있는 신채도라는 목재상하고 함께 운영하는 산판인데 인부들이 수백명이나 되구 감독은 절반이상이 일본놈입니다.》

《가와사끼가 손수 택한 림지고 보면 규모가 그쯤은 되겠지요. 주변농촌들에서 농민들이 모여왔던가요?》

《그럼요. 200명가까이 모여들었습니다. 17도구와 남강쪽에서까지 오면 삼사백명은 되겠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시고나서 심중히 물으시였다.

《올라가보니 어떻던가요. 앞으로 일을 벌리는데 형편이랑 조건이··· 권용산동지하구두 의논해보셨겠지요?》

《예, 산판인부들의 형편은 말이 아닙니다. 돈벌러 왔다가 돈은 고사하고 밥값조차 물지 못해 발목을 잡히워있는 형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를 끌고 왔다가 소까지 떼우고··· 씨붙임을 앞두고 온 농군들은 모여앉아 하느니 농사걱정입니다. 이런 형편이니까 심지를 달기만 하면 화약이 터질판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시자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뭇 흥분하시였다.

《형편은 그런데 우리의 힘을 어떻게 조직할수 있겠는지 그걸 좀 생각해보셨습니까?》

《거기까지는 타산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권용산동무하구 좀 의논해보았는데 하도 규모가 방대하구 놈들의 경계가 어마어마해서 일을 어떻게 벌려야 할지 요량이 되지 않더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이런 일을 전혀 당해보지 못한 조직원들로서는 얼마든지 그럴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시였다.

《그런데 놈들의 경계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는건 대체 무엇입니까?》

《산판에 경찰이 와서 이따금 갑작스레 수색이랑 벌리면서 돌아친다고 합니다. 그리구 감독중에 한놈이 아주 악질인데 이놈때문에 앞으로 무슨 화단이 생길것 같다고 합니다. 인부들속에 밀정같은것도 돌아친다고 하는데 그건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뭔가 좀 복잡한 형편입니다.》

《참말 복잡하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뭇 걱정에 잠기시였다. 산판의 규모는 방대한데 조직원의 력량은 없다. 사처에서 모여든 인부들과 농민들이 붐비고 경찰과 감독, 밀정들이 눈을 밝히고 돌아치는 형편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벌어지고있는 사태로 보아 권용산에게 과업이나 주어 추진시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였다.

《제가 좀 올라가 보면 어떨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강성태의 의향을 물으시였다.

《어디루요?》

강성태는 놀라웁게 반문하였다.

《그런 말씀마시오. 그건 안될 일입니다.》

강성태는 잘라서 말하였다.

《저의 생각을 좀 들어보세요.》

《직접 산판에 올라가는 문제는 아직 이릅니다. 그러니 이번만은 제말을 들어주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강성태의 단호한 태도에 길이 막힌듯 잠시 말씀을 못하시였다.

《지금의 형편에서는 제가 오르내리면서 련락임무도 수행하고 권용산동무를 도와주기도 하면서 일을 밀고나가는게 상책입니다.》

《형편이 그렇기때문에 더우기 제가 가야 합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미 결심을 다지신듯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올라가 산판형편도 보고 권용산동지랑 함께 의논을 하면서 방도를 세워나가는게 옳을것 같아요. 이렇게 먼데 앉아서 무슨 수로 그처럼 복잡한 일을 해내겠나요?》

강성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김정숙동지를 바라보다가 말하였다.

《공작원동무가 산판에 올라간다면 첫째로 위장이 문젭니다. 무슨 수로 위장을 하겠습니까. 채벌인부로 가장할수도 없지 않습니까?》

《너무 막지 마세요. 그 심정이야 왜 모르겠나요. 그렇지만 우리는 일을 생각해야지요. 산판에서 놈들의 기도를 꺾구 군중들을 단합시켜야 우리의 투쟁에서 앞길이 열립니다. 일을 하자고만 하면 위장같은게 무슨 큰 문제겠나요.》

강성태는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김정숙동지 아니고 자기나 권용산의 힘으로 산판일을 해나가기는 실로 어려웠다.

적들의 《안민촌》정책을 파탄시키고 도천리를 중심으로 한 장백현일대를 빨리 혁명화하여 국내혁명의 믿음직한 발판으로 만들자면 투쟁을 전격적으로 벌려나가야 하는것이다.

《알만합니다. 거기 대해선 더 고집을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어떻습니까? 사람들속에 발을 붙이기 어렵지 않습니까?》

강성태는 안해에게서 들은 말도 있고 하여 심중히 물었다.

《아직은 첫 시작이니까 뜻대로 되여주지 않습니다.》

《구장누이라고 하여 공작원동지를 멀리하겠지요. 앞으로도 그렇게 되면 문제입니다.》

강성태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조용히 그를 살피며 물으시였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내려오던 길에 경찰서에 들려보니까 아라가와지도관놈이 도천리에 내려와서 토성공사를 다그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공사를 벌리면··· 구장이 부락사람들을 얼마나 들볶아야 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자연히 구장에 대한 원성이 높아질것이고 그 여파는 그대로 공작원동지한테 미쳐서 사람들을 장악하는 일이 여간만 어려워지지 않을거란말입니다. 그건 아마 지금정도가 아닐것 같습니다.》

《그건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구장일을 제대로 안해서야 안되지요. 지회장동지는 적들속에 들어간 유일한 조직성원입니다. 적들의〈신임〉을 얻고 그들의 내부에 깊이 침투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저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마십시오. 어느 정도 짐작도 했고 또 각오도 한 일이니 견딜수 있습니다.》

강성태는 불안에 잠긴 눈을 들어 그이를 이윽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사람들을 장악하는 일에서 난관이 생긴다면 마을에서 지하조직을 꾸리고 투쟁을 벌려나가는 일들이 죄다 암초에 부딪칠것이며 종당에는 어떤 일을 빚어낼지 모르는것이다.

《거기 대해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것이 없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을 다잡지 못하고 부산한 심경에 싸여있는 강성태를 보시자 다짐을 두시듯 말씀하시였다.

《지회장동지는 놈들앞에서 구장으로서의 〈신임〉을 얻을뿐아니라 경찰서장 능포산이를 장악할 공작을 벌려야 하겠습니다. 놈들의 모략에 맞서 앞으로 투쟁을 크게 벌려나가자면 적들의 기도를 알아낼수 있는 연줄을 쥐고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미부터 면식이 있는 경찰서장하구 자주 술놀이도 하고 뢰물같은것도 찔러주면서 가까이 나꾸어야 합니다. 장군님의 조국광복구상을 받들고 도천리를 발판으로 하여 국내 신파지구를 우리의 혁명기지로 꾸려야 하는것만큼 전망을 크게 내다보고 일을 설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너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면하게는··· 마을에 야학을 내오고 군중들을 대중적으로 계몽할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게 중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서울에서 출학처분을 당하고 내려와있는 지세경청년을 야학선생으로 인입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강성태는 얼굴에 심중한 빛을 띠우고 그이의 말씀을 귀담아들었다.

당면하게 발을 붙이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훨씬 멀리 벗어나 상당한 규모에서 투쟁의 구획을 만들고계시는 그이의 구상을 대하자 그는 자기 주장을 고집할수가 없어졌다.

불안은 여전히 털어버릴수 없었으나 그것을 극복하고 나가지 않을수 없는 투쟁의 규모와 전망을 명백하게 내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