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1

 

제 2 장

1

 

춘옥은 뜨락에서 나무를 패고있었다. 권용산이 톱으로 토막만 쳐놓고 패지 못한 나무였다. 남편이 손만 붙이면 한겻에 족할것을 춘옥은 이틀째나 치마허리를 동여매고 씨름을 하고있었다.

원래 도끼질에 서툰 춘옥이기도 하였지만 나무라는것이 죄다 결이 바르지 않은 옹이박이 이깔이였다. 결이 바른 나무들은 산림간수들이 단속을 하고 벌금을 물리는 까닭에 손을 대지 못하고 배배꼬이고 뒤틀린 나무들만 찍어오다나니 옹이박이투성이였다.

권용산이 집에 있었을 때는 이런 나무들이 불땀이 있어 좋았고 가끔 솔광을 골라내여 신파장에 가지고 가서 푼돈을 만들수도 있었기에 없는 살림에는 그런것도 다행이였다. 그러나 권용산이 없는 지금에는 이 모든것이 춘옥이의 힘에 부치도록 매달렸다.

리필섭로인은 방안에 누워 딸의 서툰 도끼질소리를 듣다가 귀가 아파 지팽이를 짚고 토방에 나섰다.

《얘, 그만 쉬염쉬염 하려무나.》

로인은 도끼밥이 허옇게 널린 외양간문앞으로 지축지축 다가오며 한마디 하였다.

《아버지, 왜 찬바람을 맞으며 나오셨어요?》

춘옥은 치마자락을 뒤집어 얼굴의 땀을 훔치며 말하였다.

《그놈의 도끼질소리를 귀가 솗아 어디 들을수가 있느냐, 나무를 팬다는것이 반은 모태를 찍기만 하니···》

《아버지두, 나무를 패는 사람이 모태쯤은 찍기 마련이지요.》

《원 터무니없는 소리.》

로인은 혀를 끌끌 찼다. 늙은이는 딸의 나무패는 모양을 잠간 지켜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였다.

《네가 내인은 내인이로다. 옹이박이나무를 쩌개자면 옹이를 피해갈것이 아니라 바루 그놈의 옹이머리를 내리찍어야 하는거다. 그렇지 ··· 그렇게!··· 한데 무슨놈의 쇠소리가 챙챙 울리느냐. 그게 빗맞는 문서로구나.》

로인은 딸의 손에서 도끼를 받아들고 날을 만져보았다. 나무는 빠개지지 않고 옹이에 빗맞은 도끼날은 부시처럼 닳아있었다. 로인은 입을 하-벌리고 가엾어하였다. 서툰 도끼질군도, 그 손에 잡히운 도끼도 다 애처로왔던것이다.

《얘, 정 도끼를 받지 않구 맞서는놈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네 남편이 오면 빠개달라구 하려무나. 그새 한두번이야 다녀가겠지.》

《석달량식을 꿍져가지구 떠난 사람이 언제 온다구 그래요.》

춘옥은 치마허리를 묶은 띠를 풀어서 다시 동이고 도끼를 들었다.

이른봄의 새바람이 늙은이의 잔등에 기여들어 전신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로인은 기침을 깇고 숨을 헐떡헐떡하였다. 그냥 앉아있는것도 힘에 부쳤다.

《아버지, 찬바람 맞지 말구 들어가시래두 그래요.》

《괜찮다. 숨이 차서가 아니라 생각이 무거워서 그런다. 내가 허리뼈만 상하지 않았어두 너한테 도끼를 들려 나무를 패게 할테냐.》

로인은 서러워 눈을 슴벅슴벅하였다.

젊은 한시절은 말고라도 몸을 상하지 않았던 몇해전만 하여도 이따위 도끼쯤은 한손에 휘여잡고 낫가락처럼 가볍게 휘두를수 있었다.

그러나 지주의 산판에 가서 육신을 으깨여가지고 돌아와 몸져 병석에 든 후에는 졸지에 온몸에서 기가 빠져버리고 등이 굽어들었으며 가슴도 나날이 꺼져들어갔다. 얇은 이불을 덮고 방바닥에 납작하게 누워있는것을 보면 소름이 끼칠 지경이였다.

그래서 춘옥은 가끔 잠든 로인의 몸을 흔들어 깨워보군하였다. 로인이 눈을 뜨고보면 춘옥의 눈에는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왜 그러냐. 헛소릴 쳤냐?》

《아니, 아니예요.》

춘옥의 눈에 맺힌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러면 로인은 여윈 손을 쳐들어 딸의 얼굴을 만지며 눈언저리를 씻어주군하였다.

《네가 일찍 에미를 여의구 불쌍하게 자랐는데 딱하게두 아비란것이 늙마에 짐이 되여가는구나.》

《그런 말 말어요. 아버지.》

딸은 애처로와 늙은이의 손을 감싸쥐고 쓰다듬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와 딸은 부둥켜안고 오래오래 흐느끼며 울군하였다.

딸은 아버지로 하여, 아버지는 딸로 하여 언제나 마음이 무겁고 걱정을 놓을수가 없었다.

《아버지, 씨앗바구니를 털어 거풍을 시키는게 어떨가요?》

춘옥이는 구슬퍼하는 늙은이의 생각을 돌려보려고 불쑥 말을 꺼내였다.

《씨앗재산이 얼마 된다구 그러냐. 후날 천천히 시키지.》

《그래도 볕이 이렇게 따뜻한데, 옥탄이네는 어제부터 토방에 멍석을 펴구 보리종자를 널었어요. 그 집 할머니가 몽둥이를 쥐고 앉아 멍석앞에서 졸고있는걸 보았어요.》

《참.》

로인은 눈귀에 잔주름을 모으며 처음으로 웃었다.

《그 집 로친이 염체두 없지. 올해 팔순이 아니야?》

《예, 팔갑을 지낸다구 해요. 그런데 왜 염체가 없어요. 복받은 로인이시지. 아버지두 빨리 병을 털구 일어서야 해요.》

《얘, 내 생각은 너무 말아. 벼락맞은 고목이지. 병을 털긴 어떻게 턴다구 그러냐. 나는 그저 네 혼자손으로 농사지을 일이 걱정이다.》

로인은 담배쌈지를 찾느라고 옆구리를 더듬었다.

《아버지, 들어가시자요. 나두 좀 쉬여야겠어요.》

《오냐, 그러자.》

로인은 딸의 부축을 받아 일어섰다. 그리고 장님처럼 똑똑 막대를 휘둘러 내짚으며 문턱앞까지 이른 로인은 딸이 열어주는 문을 네발걸음으로 기여들어갔다.

춘옥은 대통에다 마라초를 꼭꼭 쟁여서 로인에게 내드렸다. 로인은 담배를 받아 몇모금 달게 들이키더니 문턱에 팔굽을 고이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들었다.

《올해엔 우리가 보리농사를 한번 잘 지어보자고 너희내외가 치운 동삼에도 놀지 않고 새벽마다 개똥주이를 하구 산분도 긁어모으구 멍석꼬리랑 틀면서 잡도리를 하였는데 일이 영 기울어지는가 보구나.》

《뭐 기울어지기까지야 하겠나요. 아낙네들끼리 품을 어우러서 씨붙임을 하자구 했어요.》

《얘, 그건 어방두 없는 소리다. 남정들 없이 농사짓는다는건 말같지 않은 소리야. 한데 가만 케를 보니 우리가 너무 어수룩하게 처신하는것 같더구나. 부락에 동원에서 빠진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니까.》

《저두 알구있어요.》

춘옥은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그만 잠잠해졌다.

《그렇다면 왜 구장한테라두 청을 들여보지 못하냐. 내가 지주산판에 가서 페인이 돼 돌아왔다는건 온 동리가 잘 아는 사실인데 동네어른들이 경우가 있게 처신을 해주어야 할게 아니냐?》

《아버지, 제가 왜 가만있었겠나요? 구장한테 청을 들였지요. 처음은 사정을 봐줄것처럼 말미를 두면서 지주한테두 한번 사정말을 붙여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주를 만날가 생각하구있었는데 오늘아침에 길가에서 띠여보구선 아예 그런 궁리는 하지 말라구 하지 않겠어요. 쥔을 보내주지 못한다는거예요. 채벌장인부들을 다스리는 무슨 십장같은 책임까지 지운다면서··· 지주하구 벌써 의논이 있었대요.》

로인은 사뭇 언짢은 기색으로 딸을 쳐다보았다.

《그게 헛말이 아니라면 밤새 구장이 맘을 달리 먹었구나. 이런 답답한노릇이 어디 있냐. 구장이 우리 사람하구 척진것두 없지 않느냐.》

춘옥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까닭을 알수 없는 노릇이였다.

구장이 자기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길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재작년 그러니까 춘옥이가 권용산이와 혼사말이 있어가지고 잔치준비랑 할 그때까지만 하여도 강성태와 권용산의 사이는 자별하다고 할수가 있었다. 두사람은 형제처럼 다정히 어울려다니면서 때로는 구장댁에서 때로는 자기 집에서 밤참을 지어먹기까지 하였으며 밤늦게 어디로 나가서는 새벽녘에 돌아오는 때도 있었다.

어디를 나다니느냐고 물으면 투전을 논다고 하였는데 놀음을 한다는 사람이 돈을 따는 때도 없었고 잃는 때도 없었다. 그래서 춘옥은 권용산이가 구장을 따라다니면서 개평돈으로 마장쪽이나 쳐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후 두사람사이는 이상하게 멀어졌다. 권용산은 구장댁에 삯일이나 있어야 하루이틀 품을 팔아주었으며 그외에 따로 들리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구장역시 그렇게 제집 나들듯하던 문지방에 그림자도 얼씬 비치지 않았으며 간혹 부역동원으로 남편을 데려내갈 일이 있을 때만 들리군하였다. 춘옥은 분명 남편이 투전판에서 구장하구 단단히 엇선 일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남편이나 구장의 거동을 보면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고보면 그들은 리유가 없이 멀어졌는데 이전에 자별히 가까왔던 그때를 념두에 두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주 범상한 보통 이웃들사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도저히 까닭을 알수 없는 이 의문스러운 일들은 내내 춘옥의 마음을 무겁게만 하였다.

아버지와 딸이 근심과 불안에 싸여 끝없는 곡달과 답답한 생각으로 마음을 쓰고있을 때 이 집을 향해 김정숙동지께서 오고계시였다.

신분단이가 빌려간 춘옥이네 키를 옆게 끼시고 조용히 걸음을 내짚으시여 삽짝밖에 이르신그이께서는 한손을 싸리울바자우에 얹으시고 뜰안을 들여다보시였다. 비록 처음으로 찾아오는 걸음이건만 혁명동지의 집이라고 생각하시니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이시였다.

지난해의 낡은 박넝쿨이 말라붙은채로 있는 지붕은 낡고 고삭아서 군데군데 우무러들고 처마는 깊이 처져내렸는데 그때문에 벽과 문들은 그늘속에 가리워있었다.

토방이 없는 장지문앞에는 뜰안의 먼지가 앉은 늙은이의 짚신이 놓여있었다. 그옆에는 손에 다스려지지 않은 구부러진 회나무지팽이가 넘어져 반나마 검불에 묻힌채 참새들의 발에 밟히우고있었다. 겨우내 바깥출입을 못하고 집안에서 병고에 시달리고있었다는것이 그 먼지 낀 짚신과 다스려지지 않은 지팽이에서도 충분히 알려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가슴속으로 날아드는 아픈 생각을 금치 못하시며 삽짝을 밀어젖히시고 뜰안에 들어시시였다. 문앞으로 조용히 다가가신 그이께서는 검불과 먼지가 날아들어간 늙은이의 짚신을 털어놓고 지팽이를 들어 벽에 세워놓으시였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새들이 날아왔는지 뜰안팎에서 새들의 우짖음소리가 귀를 아프게 하였다. 그이께서는 소리없이 손을 들어 새들을 쫓으시고 도끼밥들이 하얗게 널려있는 외양간 문앞으로 가시였다. 패놓은지 오래지 않은 장작가치들옆에는 통나무에 박아놓고 뽑지 못한 도끼가 있었다. 통나무들은 모두 결이 바르지 못한 옹이박이들이였다.

서툰 도끼질군이 그냥 짓조겨서 머리통에 도끼자국이 수없이 박힌 통나무를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시고 도끼자루를 만져보시였다. 남편이 채 패지 못하고 간 이 옹이박이나무들과 씨름을 하면서 춘옥이가 탄식속에 눈물을 지었을 광경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쩌르르 가슴이 울려나시였다. 혁명이 무엇인지,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춘옥에게야 이 모든 일들이 얼마나 힘겹고 서러운 부담이 될것인가를 생각하면 그냥 저저히 밀려드는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팔에 지그시 힘을 주어 나무에서 도끼를 뽑아드시였다. 그리고 춘옥이의 일손을 도울양으로 나무를 패기 시작하시였다.

방안에서 난데없는 도끼질소리를 들은 늙은이는 춘옥에게 물었다.

《저게 누구냐?》

《쌍별이가 온 모양이예요.》

춘옥은 심상하게 대답하였다. 도끼질소리는 아주 여무지게 짱짱 울렸다. 몇번 내리치지 않아서 이깔나무토막이 빠개지는 소리가 뿌득뿌득하고 들렸다.

《쌍별이가 일군이다.》

로인은 치사를 아끼지 않았다. 쌍별이는 열아홉살먹은 처녀인데 춘옥이하고는 사촌자매간이다. 성미는 시원시원하고 일솜씨는 걸쌌다.

《저것 보렴. 네가 하는 도끼질하군 소리부터 아예 다르지 않느냐. 네 도끼질소린 애처로와 듣질 못하겠더라.》

로인은 신명이 나서 껄껄 웃었다.

《참, 그래요. 저 애를 데려갈 지세경선생은 호사를 치르게 됐어요.》

《난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 서울 가서 무슨 운동을 하다가 왔다는 사람이 밤낮 하는 일 없이 들판만 싸다닌다니 그게 꼴이 되였느냐?》

《아버지, 서울 가서 공부하던 사람이 갑자기 출학을 당하구 촌에 구겨박히니 애가 타서 그러지요. 저 지주집 머슴군인 칠봉로인이 지주집산판에 가서 한다리를 잃고 고생하는거랑 보구선 애처로와서 어쩔바를 몰라해요. 량심은 곧은 사람이예요.》

로인은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모를 일이다. 아무리 그렇기로니 사람이 일없이 망탕 돌아칠수야 있느냐. 한데 저 애가 우리 집 장작을 다 패줄 잡도리로구나.》

로인은 귀맛좋게 울리는 세찬 도끼질소리에 정신이 팔려 방금 나무라던 지세경의 생각은 자취없이 잊어버렸다. 도끼밥이 부엌문아래에 날아와 텅텅 부딪친다. 어떤것은 개구멍짬으로 튀여들어와 허연 속살을 드러내며 부엌봉당에 딩굴었다.

《그것참, 사내들 솜씨 한가지라니까. 얘 문이라도 좀 열어보지 않아 되겠냐?》

《저 애는 혼자 내처두어야 일을 잘해요. 전날에 저고리 한감 맡겨두고 간것이 있는데 어쩌나. 아직두 못지어서. 아마 저고리 찾으러 온것 같아요.》

《그렇다면 얼른 지어야지 아무리 형제간이래두 요긴한 부탁은 들어주어야 하는거란다.》

춘옥은 웃방에 올라가 반짇고리에 담아둔채로 있는 저고리감을 들어내였다. 쌍별이 들어오기전에 다 짓지는 못해도 마름이라도 해놓아야 봉변을 면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춘옥은 저고리를 벗었다. 그것을 본으로 놓고 마름을 시작하였다.

쌍별이는 춘옥이보다 허리통이 좀 굵다. 그래서 허리품을 손가락 하나 더 잡고 품을 도린 다음 저고리 팔소매며 깃, 지게를 말구었다. 그리고 겨드랑밑은 좀 느슨하게 팠다. 그러나 이것이 쌍별이의 마음에 들지 안들지 몰라 다시 이리저리 굽어보았다.

쌍별이는 어깨가 실팍하여 늘 겨드랑밑이 터지군하였다.

그런데다 쌍별이는 덜렁거리는 성미에 비해서 옷맵시를 여간만 깐깐히 보는 성미가 아니였다. 그는 가슴 앞자락이 조금씩 들릴지경으로 팽팽한 저고리는 군말없이 입어도 잔등이 약간이라도 붙지 않거나 동정이 조금만 이가 맞지 않으면 뾰로통하여 선자리에서 벗어버리군하였다.

그래서 춘옥은 겨드랑밑을 다시 조금 죽여서 가위질을 하였다.

《얘, 저 애가 누구냐?》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던 로인이 갑자기 의아쩍게 물었다.

《누구말예요?》

《저 나무 패는 애가말이다.》

《누군 누구겠어요. 쌍별이지.》

춘옥은 생각없이 대답하였다.

《아니다. 암만 봐야 그 애가 아니구나.》

《예?》

춘옥은 가위를 든채 문을 약간 지치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니?!》

그 순간 춘옥의 손은 문고리에 얼어붙은듯 굳어지고말았다.

《누구냐?》

로인이 물었다. 춘옥은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그저 놀란 가슴을 누르고있었다.

《구장누이예요.》

《뭐? 어제 징검다리에서 만났다던 구장누이란말이냐?》

《예.》

《모를 소리다. 구장누이가 하필 우리 집에 와서 나무를 패줄게 뭐냐?》

아버지와 딸은 도저히 영문을 알수 없어 어리둥절하였다.

그들은 조금 열려진 문틈으로 한참동안이나 김정숙동지께서 나무를 패시는 광경을 바라보고있었다. 춘옥이가 한겻이나 씨름을 하여 몇통 패지 못한 옹이박이나무들을 어느새 반이나 죽여놓고 소대가리같이 험상하게 생긴놈을 한창 빠개고있었다. 그이께서는 한발을 약간 앞으로 내짚으시고 허리를 조금 굽히신채 머리우에 도끼를 들어올렸다가 순식간에 내려찍군하셨는데 그때마다 쩡쩡 소리가 나면서 누런 속살이 드러나군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벌려진 틈사리에다 쐐기를 치시고 거꾸로 돌려놓더니 다시금 아까와 같은 동작으로 연거퍼 세네번을 찍으시였다. 도끼날은 한자리에 정확히 들어박혔다. 그러자 어느 한순간에 통나무는 두쪼각으로 쩍 갈라지고 험상하게 들어박힌 옹이뿌리들이 해빛에 번들거렸다.

로인은 입맛을 쩝쩝 다시였다.

《여간한 솜씨가 아니로구나. 네가 사람을 잘못보았겠다. 구장누이일게 뭐냐. 얼른 나가 인사라두 차려라.》

춘옥은 일어나 부엌봉당에 내려갔다. 문을 지치고 나가려다 말고 물동이를 옆구리에 끼였다. 정말 까닭을 알수 없는 일이였다. 구장누이가 왜 이 집에 와서 나무를 패며 나무 패는 솜씨는 또 어쩌면 저렇게도 여무진가?···

춘옥은 밖으로 나갔다. 문소리를 들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모태우에 도끼를 눕혀놓고 허리를 펴시였다.

얼굴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내돋고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이마를 반나마 가리우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머리를 쓸어넘기시며 더운 숨을 내쉬시였다.

《안녕하세요? 우리 형님이 키를 돌려드리라구 해서 왔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외양간문앞에 세워놓으신 키를 가리키시며 눈웃음을 지어보이시였다. 다정함과 류다른 애착의 따뜻한 정이 어린 그이의 눈이며 얼굴표정을 마주 대하게 된 춘옥은 까닭모를 당황함에 휩싸여들면서 밑도끝도없는 말을 얼버무렸다.

《어떻게··· 이런 일을···》

《달리 생각마세요. 나무에 도끼가 박혀있더라니··· 주인은 산판에 가셨다지요?》

《예.》

춘옥은 옆에 낀 물동이를 쓸어만지면서 그냥 김정숙동지를 눈여겨보았다.

《혼자손에 얼마나 힘이 부치겠나요. 일이 생기면 어려워말고 도움을 청해요.》

춘옥은 대답을 않고 고개를 숙이였다. 동이를 쓸어만지는 춘옥의 손은 안정을 잃은듯이 허둥거렸다. 춘옥은 소리없이 돌아서더니 삽짝을 향해 총총히 걸어나갔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울바자모퉁이를 경황없이 돌아가는 춘옥이를 바라보시며 자신도 모르는새 그를 따라 몇발작 내짚으시였다.

말못할 어떤 아픔이 그이의 가슴을 허비기 시작하였다. 한손으로 외양간문설주를 짚으시고 춘옥이가 사라진 모퉁이를 그냥 지키고계시던 그이께서는 조용히 옷매무시를 보시고 문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아버님 계십니까?》

그이께서는 나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을 향해 찾으시였다.

방안에서 밖의 동정을 엿보고있던 로인은 바삐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문을 열고 들어서시며 허리굽혀 친절히 인사를 드렸다.

《구장 사촌누이입니다. 아버님 병환이 중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안을 드립니다.》

《원 이렇게···》

로인은 난처하여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방 한자리에 누워서 두해동안을 줄창 앓아오지만 누구 한사람 이렇게 찾아와 깍듯이 병문안을 해본적이 없다.

《지주의 산판에 가서 허리를 다치셨다구 하더군요. 성성하신 몸이 그지경이 되느라니 곡경이 오죽하셨겠습니까? 약은 어떻게 지어쓰십니까. 느릅나무껍질 하나로야 치료가 되겠습니까?》

《느릅나무껍질두 고작이오다. 애들 정성에 살아가는 몸이니··· 한데 초면인사루 나무를 패게 했으니 사람사는 구실을 못했소.》

《별말씀을 하십니다. 아버님, 남정들이 산판에 원목 찍으러 갔다는 이야기랑 들었습니다. 올해 씨뿌리기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손포가 딸리면 어려워 마시구 부탁을 하십시오.》

김정숙동지께서는 진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아닌게아니라 씨뿌리기가 걱정이요. 저애 혼자 손으루야 어떻게 땅에 씨앗을 묻소. 그래도 난 구장어른이 집사정을 좀 돌봐줄줄 알았는데 아주 막무가내구려.》

《글쎄요. 경찰에서 하는 일이니 어떻게 하기가 어려웠던게지요.》

로인은 사뭇 섭섭해하였다.

《아무리 그렇기로니 사람사는 동네에 법도가 없을수야 있겠소. 다 죽어가는 늙은이를 두고 집사람을 뽑아가다니 이런 허망한노릇이 어디 있단말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옷고름을 만지작거리시며 잠시 말씀을 못하시였다.

늙은이의 섭섭한 마음이 노여움으로 번져졌다.

《나는 구장어른을 그렇게는 보지 않았더랬소. 한데 일사를 치르는걸 보니 성미가 모질거던. 하긴 그래야 구장도 지낼 일이긴 합니다만 이웃간의 정리를 그렇게 물리쳐선 안되는거라오.》

《아버님, 그래도 무슨 변통이 있겠지요.》

《변통은 무슨 변통이요. 어제는 우리 애를 보고 사정을 좀 봐줄것처럼 하더니 오늘아침엔 딴전을 부리면서 그런 생각을 아예 말라고 하더라는데, 사람이 그래서는 못쓰는 법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문득 깊은 한숨을 내쉬시였다. 로인의 정상이 가긍하시였다. 이런 가정을 두고 산에 가있는 권용산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우랴, 그래도 혁명을 하겠다고 선뜻 나선 그 심정은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나 집안의 기둥을 뽑히웠다고 이렇게 마음괴로와하는 로인을 보고도 실토정을 못하시는 그이의 가슴은 저리시였다. 혁명을 위해 장인에게도 안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산판으로 간 권용산이와 본의아니게 늙은이의 노염을 사고있는 강성태며 그리고 자신도 포함하여 아직은 로인의 마음을 풀어드릴수 없으며 앞으로도 어느만큼 이런 고통을 더 끼쳐야 할지 그것마저 알수 없는 김정숙동지께서는 그저 말못할 안타까움에 가슴만 죄여드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냥 끝없이 중얼중얼 계속되는 로인의 푸념을 언제까지 들으실양으로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고 앉아계시였다. 로인이 그렇게라도 노염을 쏟고나서 마음이 다소 가벼워진다면 그이상 더 기쁨이 없을듯싶은,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밖에 로인을 위해드릴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 그이의 온 의식을 지배하고있었다.

(저한테는 얼마든지 노염을 쓰십시오. 다만 후날에 아버님이 우리를 리해하고 혁명을 돕게 되는 그날이 온다면 이런 괴로움을 얼마든지 당할터입니다. 그날이 언제일가요. 그날을 하루속히 앞당기기 위해 저는 있는 힘껏 아버님을 돕겠습니다.)

측은함과 동정, 아픔과 괴로움 서린 표정으로 김정숙동지께서는 로인을 지켜보고계시였다.

《허 내가 말이 지나쳤던가보군.》

그이의 얼굴에 떠오른 류다른 표정을 보자 로인은 불현듯 입을 다물고 급급히 자기를 돌이켜보았다.

《보아하니 구장누인 어진 아낙 같은데 오라버니 한 노릇을 누이한테 치탈할거야 없지. 우리 동네에 아예 살러 왔다니 하는 말이지만 오라버니처럼 부락인심을 지우군 못사오.》

《알겠습니다. 아버님.》

김정숙동지께서는 진심에 넘쳐 로인의 말을 받아들이시였다.

《저도 외로운 몸인데 아버님댁에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많이 돌봐주세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우물가에 갔던 춘옥이가 쌍별이와 함께 삽짝을 밀고 들어섰다.

《구장누이 갔어요?》

《응, 방금 떠났다.》

《우리 집엔 왜 왔을가요?》

《키를 돌려주려구 왔다구 하지 않더냐?》

춘옥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물동이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쌍별이만 마당에 남아있었다.

《큰아버지, 이게 구장누이 팬 나무예요?》

《응, 그렇단다.》

쌍별이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패놓은 장작무지를 내려다보았다.

《산판에 사람을 끌어갈 땐 어떻게 끌어가구 장작을 패준다는거예요. 동네인심이 무섭긴 무서운게지?》

《얘, 인심이 무서워 그랬을가?》

춘옥이가 젖은 손을 치마에 문다지며 밖으로 나왔다.

《그렇지 않으면 뭐가 답답해서 나무까지 패겠어.》

《아직은 뭐가 뭔지 까닭을 모르겠구나.》

로인은 지축지축 방안으로 들어갔다.

춘옥이와 쌍별이는 김정숙동지께서 패놓은 나무들을 외양간 처마밑에 가리였다.

《언니, 내 저고리를 지었어?》

쌍별이가 불쑥 물었다.

《언제 그럴 경황이 있었니?》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 저고리감을 인줘요. 인순 엄마한테 부탁해볼래요.》

쌍별이는 속상해 옆으로 돌아앉았다.

《감을 말궜는데두 가져가려니?》

《감은 말궜어요?》

쌍별이는 쌩긋 웃었다.

《그러면 그렇다고 할거지. 언니, 품이랑 깃이랑 좀 꼭 맞게 해요.》

《얘, 난 재간이 없다. 지으면 군소리없이 입기나 해라.》

《그건 또 무슨 소리나.》

쌍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상해있는 춘옥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언니, 그게 정말이야, 어디 한번 간지럽혀서 봉당에 대굴대굴 굴게 해줄가?》

《너 정신 있니, 혼자손에 죽을지경이란다. 생각해보려무나. 아버지 병시중도 내 손이 가야 하구 씨뿌릴 차비두 내 손이 가야 해. 소두 내 손으로 멕여야지, 어떻게 살려니.》

춘옥은 한숨을 짓고 눈을 슴벅였다. 그러자 장난기가 어렸던 쌍별의 눈에는 하염없는 구슬픔과 애처로움이 떠올랐다.

그들은 말없이 오래동안 마주 앉아있었다. 앞으로 부닥칠 생활의 고역에 그들은 가슴이 얼어드는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