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6

 

제 10 장

6

 

지세경은 권용산의 집뜨락에서 나무를 패고있었다.

혼자손으로 살아나가야 할 춘옥이를 생각하여 무엇이나 도와주려고 산판에서 내려오자바람으로 도끼를 든것이였다.

손바닥이 하도 쓰리여 펴보니 온통 물집투성이다. 지세경은 피가 몰려 붉은반점들이 얼룩덜룩하고 껍질이 밀리여 벗겨진 손바닥을 내려다보다 말고 다시금 그 손에 도끼자루를 잡았다.

권용산의 아귀센 옹이박힌 손에 쥐여져있던 이 도끼가 이제 춘옥이의 손에 쥐여지고 춘옥이의 약한 팔에 무겁게 매달릴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 견딜수 없었다.

그는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는 곧바로 나무에 찍히지 않고 빗나가면서 모래도 찍고 땅바닥도 찍고 돌부리에 맞아 챙챙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래도 지세경은 한본새로 나무를 팼다.

아무리 서툴러도 이 집 뜨락에서 남자의 도끼질소리가 울려야 한다고 굳이 생각하고있는 지세경이였다. 서툰 솜씨면 뭐라랴. 이 손으로 나무를 패고 온돌을 고치고 거름을 뿌리고 이 손으로 창이 난 울바자도 갈아대고··· 지세경은 남자의 손이 미쳐야 할 일이면 권용산이 살아있을 때와 다름없이 남자의 손이 가게 해주어야 할것이라고 굳이 속다짐하였다. 지세경은 자신이 희생된 동지의 정리를 지켜서도 남편을 잃은 춘옥의 마음에 아픔이 깃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일을 하며 로동을 배우며 근로하는 농민의 생활을 익힐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이 손에 장알이 박히고 마디가 굵어지고 금이 가 거기에 로동의 먼지가 끼고 피딱지가 앉고··· 그렇게 험해진 손을 내려다볼 때면 훼손되지 말아야 할 인간의 존엄을 지켜 이 손이 봉사한 그 값의 고귀한 무게를 생각하며 울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는 획획 회파람소리를 울리면서 나무를 팼다.

춘옥이가 발방아간에 나갔다 들어오며 패놓은 나무가 많은데 공연한 수고를 말라고 하였다. 춘옥은 부녀회원들과 함께 방아를 찧고있었다.

쌀겨먼지를 뒤집어쓴 춘옥의 얼굴은 뽀얗고 그때문에 지세경의 눈에는 굴곡이 명백치 않은 어릿어릿한 모습으로 보였다.

《아주머니,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어려워말고 부탁하십시오.

비록 일에 시달려보지 못한 몸이긴 하지만 돌아가신 아주버니를 위해서도 힘을 아끼지 않으렵니다. 이렇게 몇가치 패놓지는 못해도 나무를 팰 일이 있거나 벽을 바를 일이 있거나 하다못해 울바자에 창이 난데라도 있으면···》

《뭐 그러실건 없어요. 내 힘으로 다 할테예요.》

《그러지 마시오. 남자의 손이 가야 할곳이 있으면 아주머니손으로 하느라 하지 말고 알리십시오. 이 집에 남자의 손이 가야 할곳에 녀자의 손이 미친 흔적을 보게 된다면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생각밖에 더 할것이 없지요. 그것은 통분한 생각밖에 불러일으킬것이 없습니다.》

지세경은 말하기에도 힘든듯 더운숨을 내쉬더니 모자를 벗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흰이마에 해빛이 어려 번들거렸다.

그는 바람에 이마를 내맡기고 잠시 멍청히 서있다가 다시금 도끼를 들었다.

《선생님, 념려마세요. 산사람이야 어떻게 살기 마련이지요. 나 혼자가 아니고 옆에 밀어주고 위해주는 동지들이 있는데··· 더구나 우리에게 공작원형님이 있지 않아요. 그 형님이 누구보다 아파하고 슬퍼하는데··· 그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어려움을 참고 견뎌내렵니다.

지난밤에 뜬눈으로 밝히며 동무해주셨어요. 그저 남편에게만 매달려살던 이 몸이 난관에 주저앉지나 않을가 념려하시면서···》

춘옥은 눈을 슴벅슴벅하면서 목이 메여 말을 못했다.

《아주머니, 진정하십시오.》

지세경은 괴롭게 이마를 찌프리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전 슬퍼서 그러는게 아니예요. 믿어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고 그래서 그러는거예요. 나보다 더 큰 슬픔을 겪은분이 많아요.

공작원형님만 보더래두 그래요. 일찌기 아버님을 여읜 공작원형님은 어머님과 올케를 간도 토벌때 왜놈들에게 또 잃으셨다구 하셨어요. 그리고 오빠는 지하공작중 희생되구 동생 한분있었는데 유격구 방위전투때 잃었다구 하셨어요. 조카애는 어디 갔는지 소식조차 알길 없구··· 저는 공작원형님에게 그렇게 큰 신상의 아픔이 있는줄 몰랐어요. 그렇지만 형님은 그 모든 아픔을 다 묵새기며 혁명을 하면서 살아가자고 했어요. 저는 형님의 가슴에 엎어져 울고말았어요.》

한방울의 눈물이 무릎우에 포개얹은 춘옥의 손등에 떨어졌다.

지세경은 한참동안이나 얼없이 춘옥이를 지켜보았다. 그는 안정을 잃은듯이 서성거리며 뜰안을 돌아갔다. 가끔 멎어서서 눈앞의 한점을 잡고 깊이깊이 들여다보면서 입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머리를 들었다.

《아주머니, 그 맹세를 잊지 말고 모든 슬픔을 박차고나가 혁명을 합시다. 나도 혁명을 하렵니다. 어떤 고난에도 어떤 신고에도 굴하지 않고··· 나의 심장이 고동을 그만두지 않는한 혁명의 불새가 되여 퍼덕일터입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 말하는것은 느끼는바가 새롭고 또···》

지세경은 입술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할말은 가슴속에 가득한데 무어라고 표현할길이 없었다.

《선생님의 심정을 알겠어요. 저도 끝까지 혁명을 하겠어요. 공작원형님을 믿고 따르면서말이지요. 그분은 보통분이 아니지요. 선생님?》

《그렇습니다. 보통분이 아니지요. 아주머니와 같은 순박한 녀성들만 아니라 나같이 복잡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까지 그분을 따르고있으니,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도 못가지면서 그분의 인정과 포옹력에 끌려서 한걸음한걸음 걸어왔지요. 이제는 많은것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세계가 더 크지요. 저는 그분의 신심과 열정이 부럽습니다. 그 신심, 그 열정이 어디서 생겨나는것인지 그것이 부럽단말입니다.》

《참 그 말씀은 옳아요. 저도 혁명이 뭔지 채 알지도 못하면서 그분을 따라왔어요. 성품에 반해서 말이지요.

그래 저는 묻지 않았겠어요.

〈나는 형님과 약속을 하구 형님한테 정을 붙이구 혁명을 하는데 형님은 누구하고 약속을 하고 어디에 정을 붙이구 혁명을 하게 되였느냐고?〉》

그 순간 지세경의 얼굴은 상혈되였으며 얼굴표정과 눈빛이 자못 심중해졌다.

춘옥은 말을 계속하였다.

《형님은 질문을 받고 한참 생각하더니 〈봉녀 아지미, 유격대원들은 모두 장군님을 믿고 장군님께 의탁하여 혁명을 하는거예요. 누군 누구겠어요. 장군님이시지. 난 혁명을 알기전에 장군님부터 알았어요. 유격대원들은 장군님께 정을 붙이고 그다음 혁명에 정을 붙인 사람들이예요. 혁명이 무엇인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다는 몰라도 장군님이 어떤분이신지는 잘 알아요.〉하지 않겠어요. 난 형님의 말씀이 옳다구 생각했어요. 그리구 유격대원들이 장군님 정을 잊지 못해서도 혁명을 버리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세경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춘옥이를 지켜보았다.

(아, 이것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보고있는가? 나는 어떠한 력사적순간에 서있는가?···)

지세경은 넋없이 중얼거렸다.

방황이 컸던 그만큼 환희도 컸다.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무산자의 혁명이 어떠한 로정을 거쳐 승리할수 있겠는가? 지세경은 이 사상의 루각을 언제나 의심하였다. 이 사상의 확고부동한 승리를 그는 언제나 의심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리해한상싶다. 위대하고 성스러운 인간들을 따라가는것이 혁명이다. 하다면 이 혁명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춘옥이가 그러하였고 쌍별이가 그러하였으며 자기자신도 바로 그러하였던 그 세계, 그것이 바로 혁명인것이다.

지세경은 눈물이 났다.

그러고보면 이 혁명의 확고부동한 승리를 믿지 않을수 없다. 장군님께 먼저 매혹되고 그다음 혁명에 매혹되고··· 장군님을 따라 가느라면 혁명가가 되고 혁명이 완성되는 이 세계, 인류가 알지 못하는 위인의 력사를 눈물없이 대할수 있겠는가?··· 아마 이 세상에는 공산주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많아도 김일성장군님을 따르지 않을 사람은 없을것이다. 김일성장군님을 따름으로써 그이의 사상의 필연적인 승리도 이룩될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라면 나는 기꺼이 믿으련다.

지세경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희망과 환희에 넘친 지세경의 얼굴은 이름 못할 아름다움의 광채에 싸여있었다. 인간이 신념을 찾는 순간처럼, 생활의 철리를 깨우친 순간처럼 그렇게 생동하고 빛나는 때는 없다.

삽짝밖으로 뛰여나왔다. 머리우에는 푸르고 맑은 하늘이 펼쳐져있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광막한가!

저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느라면 눈뿌리가 저려날 지경이다. 그토록 무한한 우주의 공간은 신비하고 장엄하며 거룩한것이다.

지세경은 한때 들을 방황하면서 세상에 저 장엄한 푸른 공간을 마음껏 바라볼수 있는 인간은 가슴속에 숭고한 리념을 받아안은 큰 인간이 아니면 안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럴진대 나는 가슴속에 숭엄한 리념을 받아안은 복받은 인간이다. 이 신념, 힘들게 깨치고 힘들게 받아안은 이 생활의 넋을 영원토록 뼈속에 간직하리라.

지세경은 휘적휘적 길을 걸어갔다. 갑자기 어디선가 터져오른 이 웃음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옥탄이네 방아간에서 부녀회원들이 수수를 찧고있었다. 그것은 오늘밤 산으로 들어갈 식량이다.

방아간에서는 웃음소리에 뒤이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소리가 울려왔다.

 

동무들아 어서 빨리 일어나거라

일어나 총을 들고 칼을 잡아라

잃었던 우리 자유 우리 권리를

우리의 손으로 기어이 찾자

 

지세경은 넋없이 멎어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생활의 고역과 참담한 가난속에서 하늘의 별조차 보지 못하고 살아온 아낙네들이 희망의 불빛을 안고 혁명의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듣노라면 가슴에서 피가 끓고 주먹이 스스로 쥐여지는 노래다. 저 노래를 부르며 아낙네들은 구차한 생활의 괴로움을 잊고 한번 사람답게 번듯이 살아볼 미래를 그리며 싸움의 불씨를 키우고있는것이다.

방아는 껑충껑충 하늘로 솟아오르고 아낙네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른다. 방아확에서는 새하얗게 껍질을 벗은 수수쌀들이 돋아올랐다.

사내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걸싸게 키질을 하던 옥탄이가 휘뚝 고개를 젖히고 노래의 다음절을 시작하였다.

전사들이 흘리는 신성한 피는

그러자 얌전하게 생긴 필순네 새색시가 챙챙한 목소리로 얼른 받아외웠다.

민중의 각성을 불러일으켜

 

아낙네들은 다리에 꾹꾹 힘을 주어 방아다리를 밟아대면서 일제히 목소리를 합쳐 따라불렀다.

 

용감하게 싸우는 고함소리에

우리들의 더운 피를 더 끓게 한다

 

지세경은 한손으로 울바자를 짚었다. 그것은 투쟁과 신념이 가져다준 즐겁고 유쾌한 생활, 삶의 목적과 의의를 깨달은 사람들의 희망에 넘친 생활인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혁명의 길에 들어선 녀성들인가. 세상에 가장 불쌍하고 약하고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움속에서 허우적이던 녀성들, 세상에 가장 불행하고 약한자 누구냐 하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손을 들어 가리킬수 있는 녀성들, 이들이 어디서 이같이 힘차고 성스러우며 약동하는 삶의 계절에 들어선 행복한 녀성들로 되겠는가···

나는 한때 서울거리에 넘쳐흐르는 허영에 뜬 신식녀자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 일이 있었지. 만약 이 거리의 유한 녀성들이 다 농촌으로 나가서 굵은 베치마에 짚신을 신고 절구질을 하고 오줌동이를 이고 누에를 치고 무명을 짜고 삼을 삼아 베를 짓고 부엌에 들어가 밥을 지으며 그리고도 자녀를 가르치는 녀성이 된다면, 아니 그렇게 될 생각이기라도 한다면 조선의 앞길에는 희망이 있다. 하고··· 그러나 나는 그 소박한 희망마저도 잃었던 인간이 아니였던가. 나에게 삶이 충만된 이 생활을 누가 가져다주었는가. 나를 소생시켜주신 이 그 뉘신가? 감사하다. 참으로 감사하다.

지세경은 발이 내키는대로 걸었다. 어느덧 그의 눈앞에는 들이 펼쳐졌다. 지세경은 어디엔가 경사지의 둔덕우에 앉았다. 그는 감격한 눈으로 들을 바라본다. 참으로 오래인 시간을 이 벌에서 탕진하며 번민속에 허덕였던 그때가 생각키운다.

찬란하고 별이 가득한 들, 땅에서는 물기 담은 흙내가 솟아오르고 조금 고개를 들면 눈이 아물아물해지며 혼미해지는 봄, 나는 이 봄의 훌륭함, 이 봄의 갈망, 이 봄의 환희도 모르고 살았지.

지세경은 다시 벌떡 일어섰다. 너무도 밝고 찬란하며 일시에 해방된 노예와도 같이 허청대며 걸어보고싶은 마음이다.

정으로는 뼈까지 스미고 의라면 살을 베일 모든 감격이 풍부한 이 봄, 건설도 되며 갱생도 되며 충성과 의분에 튀고 타는 성화가 난 봄.

이 봄에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생활과 신념, 혁명과 동지를 얻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세계를 얻었다!

지세경은 모자를 벗어 주먹안에 움켜쥐였다. 이마를 가리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너풀거리며 코언저리를 간지럽혔다. 그는 허청거리며 걸었다.

(아, 장군님을 뵙고싶구나! 얼마나 위대한 위인의 력사가 이 땅에 시작되고있는가!

장군님께 매혹되고 그다음 혁명에 매혹되고··· 장군님을 따라 가느라면 혁명가가 되며 혁명이 완성되는 세상, 이 위대한 시대가 우리에게 왔다!

장군님 아니라면 이 거창한 시대가 인류앞에 펼쳐질수 있었겠는가. 세계는 김일성장군님을 알므로써 비로소 공산주의를 리해할것이다! 모두 손잡고 나오라. 우리 웃으며 장군님 따라 혁명에 참가하자. 설혹 이 길에서 죽어 한줌 흙으로 변한다 쳐도 우리는 생의 보람, 생의 기쁨을 맛보고 죽는것이니 인간으로 태여나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 오, 공산주의 그것이 무엇이냐, 나는 다시는 그 사상의 루각을 해부하려고 정열을 소비하지 않을것이다. 나는 우리 장군님의 사상만을 믿는다. 이것이 나의 공산주의이다!)

지세경은 불현듯 풀밭우를 내달리다가 벌렁 넘어져 아이처럼 딩굴었다. 그리고는 또 뛰쳐일어나 정신없이 내달아갔다.

도저히 기쁨을 참아낼수가 없었다. 행복을 억제하고있을수 없었던것이다.

 

-> 이 도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적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