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4

 

제 10 장

4

 

밤중에 동구밖 멀리에서 터져오른 한방의 총소리를 가늠해 들은 사람은 마을에 세명밖에 없었다. 김정숙동지와 강성태 그리고 백지주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백가는 그것이 권용산을 따라갔던 경찰의 총소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었다. 백가는 밤새 경찰을 기다렸다. 쥐구멍만 한 소식이라도 있기만 하면 즉시 가와사끼대좌에게로 달려올라갈 차비를 하고있었다. 토방아래다는 기름을 쳐서 닦아놓은 자전거를 세워두고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렵총에 산탄을 재워서 벽에 걸어놓기까지 하였다.

마을에서 공사가 깨여져나가고 채벌장에서는 인부들이 일제히 파업을 일으켰으며 아라가와대위는 강직되였다.

백지주는 자기가 이전처럼 기미만 보고있을수 없으며 피를 물고라도 마을의 지하조직(백지주는 분명히 지하조직의 존재를 인정하고있었다.)을 들추어내야 하겠다고 강심을 먹었다.

어제밤에는 경찰서에서 내려오자바람으로 함석필을 불러들여 그에게 채벌장 어느 어느곳을 즉시 양도한다는 증서를 꾸며서 내주기까지 하였다. 미끼를 던지지 않고는 일이 잘돼갈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백지주에게는 함석필부부가 분명 돈을 먹고싶어 시키는 일도 제대로 안하는것 같았으며 돈만 퍼넣으면 사생결단하고 덤빌판이라고 생각하였다.

백지주가 함석필에게 꾸며준 채벌장양도증서에는 부록으로 어떠어떠한 일을 해주어야 하며 상기 기록된 내용들이 현실적으로 수행되는 경우 증서는 자기 효력을 가지게 된다고 밝혔다. 내용상으로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없는 계약이였으나 형식으로나마 일보 전진한 그 증서앞에서 함석필 당자의 기분상태는 이전과 같지 않은 뜻밖의 격렬한 흥분상태를 빚어내고있었다.

그는 열흘전만이라도 이 증서를 손에 쥘수 있었고 백가의 보다 확실한 언약이 있었더라면 산판파업같은것도 일어나지 않을수 있었고 부락의 토성공사도 이 모양으로는 되지 않았을것이라고 희떠운 소리를 내지르기까지 하였다.

백가는 그 말을 듣고 후회와 감동에 차서 무릎을 쳤으며 《아무튼 일만 잘하라, 그러면 산판같은건 아주 양보를 할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였다.

백가는 뜻밖에도 일이 잘되여 갈상싶었다. 함석필이나 향옥이가 부락놈들의 뒤공론에 귀머거리모양을 하고있었을순 없다. 이것들만 잘 발동하면 그 무슨 목신님이요, 토신님이요, 룡왕님이요, 별신님이요 하면서 마누라가 떡밥을 해 이고 돌아치며 개울에다도 음식을 뿌리고 동구밖 벼락맞은 고목에다도 절을 하며 하늘의 별을 향해서도 손을 비비는 허망한 노릇을 안해도 되리라고 믿었다.

오늘아침 셋째첩은 집안이 되여가는 꼴을 보고 고양이 무엇을 앓듯 꽁꽁거리다가 인망높은 도사님의 교훈을 받아야겠다고 어딘가로 떠나갔다. 셋째첩은 보매 함석필부부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더러운것을 끌어들여다 술밥을 먹이고 물건을 사다 선사까지 하였다고 장밤 푸념을 하였다.

그러나 백지주는 이것들이 다 세상살이를 모르고 덤비는 계집들이라고 생각하였다. 믿을것은 함석필부부밖에 없다.

백가는 경찰의 통고가 있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가 너무도 감감무소식인 까닭에 한편으로는 의심이 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쩍 호기심도 동하고 하여 함석필을 찾아갔다.

함석필네 집은 수라장이 되여있었다. 문들은 죄다 내붙인대로 열려져있었고 갈기갈기 찢어진 와이샤쯔를 걸친 함석필이 이방저방으로 돌아가며 안해를 부르고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어디에 숨어있는거야. 이 당장 쳐죽일것이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난 살인자가 아니다. 어서 나와, 어디루 도망가려고, 죽여버릴테다. 죽여버리겠다!》

함석필은 빈집안을 발칵 뒤집으며 돌아쳤다.

《이사람, 석필이!》

백지주가 고함을 쳤다. 이놈이 갑자기 돈맛보고 실성하지 않았나하여 백지주는 신발 신은채로 방안에 뛰여들어 따귀를 후려쳤다. 어찌나 세게 갈겼던지 함석필은 방바닥에 코를 박고 곤드라졌다. 백지주는 함석필의 덜미를 잡아 휘뜩 뒤로 잡아젖히였다.

《이놈, 비밀사업을 한다는 녀석이 이 무슨 소동이야, 네편네는 어디 갔어?》

함석필은 피흐르는 코언저리를 손바닥으로 훔치면서 백지주를 멍청히 올려다보더니 넋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나는 살인자가 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그게 무슨 소리냐? 사람은 어디서 죽었다고 그래?》

《권용산이 죽었소. 당신이 권용산을 어떻게 했소? 누가 권용산을 죽였소?》

함석필은 얼빠진 소리로 그냥 중얼중얼 외웠다. 백가는 가슴이 덜컥하였다. 일은 끝내 터지고야만것이다.

《권용산, 이놈이 분명 나쁜놈이였군. 권용산을 따라갔던 경찰은 어디 있어?》

《난 모루, 난 모루 누가 권용산을 죽였소?》

백가는 잡아들고있던 함석필의 덜미를 잡아흔들며 흥분하여 소리쳤다.

《이놈아, 마을에 큰 지하조직이 있다. 이걸 빨리 가와사끼대좌에게 알려야겠다. 권용산두 구장두 춘옥이두 다 나쁜것들이다. 틀림없는 지하공작원들이야. 어서 경찰에 달려올라가라.》

《난 모루. 난 안가겠소. 난 사람을 죽이지 않겠소.》

《이놈아, 지하조직이 발각이 났는데두 알리지 않겠어. 이 답답한놈, 얼빠진 소리를 말고 얼른 경찰서에 올라가라!》

《안가겠소, 난 안갈테요. 당신이나 어서 가오!》

백가는 미친것처럼 돌아치는 함석필의 덜미를 내뿌리고 밖으로 뛰여나왔다.

《강성태 네놈두 지하조직원이지, 춘옥이 네년두 공작원이구. 다 구장누이 꼬드김을 받았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산판에서 소동을 부린것두 다 네놈들이지, 아라가와두 너희들손에 결국 결단났다. 어디 보자. 한놈도 도망가지 못한다. 한놈도!》

백가는 미친듯 혼자소리로 웨치며 함석필네 마당을 달려나왔다.

이미 김정숙동지로부터 지주의 행동을 살피라는 과업을 받은 방숙이가 놈이 날치는것을 보고 바삐 줄달음쳐 갔다.

권용산의 시신을 강성태에게 맡기고 뒤일이 걱정되여 달려내려오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방숙이의 전달을 받으시고 그만 백지주놈이 모든것을 눈치챘으며 지하조직이 일순간에 놈들의 타격을 받을수 있게 되였다는것을 깨달으시였다.

한편 백가는 기동을 엿보려고 강성태며 춘옥이, 지세경, 쌍별이네 집들을 돌아치다가 누구도 집에 없는것을 알고 벌써 도망가버리지 않았나 하는 위구에 정신이 희뜩 뒤집혀가지고 한달음에 중대문안으로 뛰여들어와 방에서 렵총을 벗겨메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는 부리나케 동구밖을 벗어나 수림속의 한길에 나섰다.

백지주가 경찰서로 올라가는것을 띄여보신 김정숙동지께서는 급히 지름길에 들어서시여 길목을 지키고계시였다. 백가가 나타났을 때 홀연 김정숙동지께서 그놈앞에 나서시였다. 엄엄하고 대담한 눈으로 백가를 쏘아보시며 침착하게 다가오시였다.

백가는 김정숙동지를 발견한 순간 그이의 몸전체에서 풍기는 이름 못할 위압적인 그 무엇을 느끼며 급급히 자전거를 세웠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가?》

백가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면서 그이의 얼굴을 황황히 마주보았다.

철빛으로 굳어진 얼굴에서 찌르는듯 한 날카롭고 번뜩이는 시선이 날아오고있었다.

수림속은 고요하였다. 사방 인적기라고는 느낄수 없었다. 백지주는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것을 감촉하였다.

《경찰서로 가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엄한 목소리로 재차 따져물으시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런데 구장누이는 도대체 누구요?》

백가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하였다.

그이께서는 낮으나 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너희들이 찾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하공작원이다.》

그 순간 백가는 자전거를 넘어뜨리면서 풍덩 땅에 주저앉았다. 이제는 틀림없이 죽었고나 하는 생각이 아찔하게 머리를 때렸다.

《함께 떠난자가 있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날카롭게 물으시였다. 백가는 턱이 떨려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저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다가오시더니 어깨에서 렵총을 벗기시고 수림속으로 깊이 들어가시였다. 백가는 오금이 저려 겨우 발을 짚으며 뒤따라 들어왔다.

자작나무와 개암나무들이 꽉 우거진 등판에 멎어서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엄한 눈길로 곧추 쏘아보시더니 저고리 안섶에서 권총을 뽑아드시였다.

백가는 깜짝 놀라 헉 하고 바람을 삼키며 뒤로 벌렁 자빠졌다.

《네놈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는가? 조국으로 진군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앞길을 막아나섰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을 광복하시기 위해 백두산에 나와계신다. 나는 장군님의 령을 받들고 파견된 공작원이다. 네가 감히 누구의 앞길을 막으려 했는가? 장군님께서 어떻게 마련하신 조국진군길인데 감히 너같은것이 저항하려고 했는가? 말하라!》

김정숙동지께서는 백가놈의 가슴노리를 꼿꼿이 겨누시고 죄여드시였다.

《어이구, 사람살려요. 한번만 용서해주시오.》

백지주는 수렁이처럼 온몸을 까드라뜨리고 벌벌 떨면서 부르짖었다.

《너도 목숨이 아까운줄 아는가? 네놈은 간악하기 그지없는 원쑤다. 악착한 지주로서만 아니라 일제의 앞잡이로서 동족을 살해하는 저주받을 원쑤다. 네놈을 어떻게 처단해야 마땅한가?》

김정숙동지께서는 권총자루로 나무밑둥을 치시였다.

백가는 두손을 짚고 넙적 엎디여 저고리앞자락을 화들화들 떨었다.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나는 권용산이가 그런 사람인줄 몰랐소이다. 정말 몰랐소이다. 이건 내 실책이 아니올시다. 순전히 가와사끼 그놈이···》

김정숙동지께서는 참담한 빛을 띠우시고 서리발같은 눈길로 놈을 쏘아보시였다.

《나라를 잃고 고향을 버리고 살길을 찾아 이역의 거친 산야를 표류하는 불쌍한 동족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착취하고 억압하며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 살인까지 감행하는 네놈을 어찌 그대로야 묵인해둘수 있겠는가. 네놈은 즉석에서 인민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놈이다!》

《아니, 이 무슨 일이시오?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요구하는걸 다 들어줄터이니 목숨만 살려주시오!》

백지주는 엉엉 울음을 터뜨리면서 네발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여왔다.

《다가오지 말라!》

그이께서는 추상같은 목소리로 놈의 앞길을 막으시였다.

《네놈이 지은 죄를 따진다면 백번죽어 마땅하며 그 죄는 천추에 도저히 씻지 못할것이지만 오늘은 우리의 사업을 위해 네놈을 살려둔다.》

《예? 저를요!》

백지주는 환장을 한듯이 기뻐 눈물을 좔좔 흘렸다.

《그러나 똑똑히 기억해두라. 네놈이 우리를 해치려든다거나 그런 기미라도 보이는 때에는 즉시 처단해버린다는것을··· 알겠는가?》

백지주는 대답을 못하고 절만 굽석굽석하였다.

《너는 자기 언약을 무엇으로 보증하겠는가?》

《저 비밀을 말씀드립지요. 함석필이가 가와사끼의 밀정입니다. 향옥이도 아라가와의 밀정이였는데 한번도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산판에도 밀정들이 있는데···》

백가는 바빠맞은통에 가와사끼가 박아놓은 산판밀정들의 이름을 다 대주었다.

《네가 말할수 있는 비밀이 그뿐인가? 일전에 네놈들이 연사라고 끌어왔던 늙은이들은 어디서 굴러온 협잡군들인가?》

《그건 저 사실은 협화회에서 농군들을 속이려고 계교를 꾸민것인데 한사람은 호떡집주인이구 다른 한사람은 행력수를 보는 점쟁입니다.》

《너절한놈들,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자들이냐. 그놈들은 지금도 장백일판을 돌아치면서 기만선전을 늘어놓고있다. 우리는 이제 지체없이 그놈들의 정체를 까밝히고 협화회놈들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벌릴것이다. 그러니 명심하라.

네놈이 가와사끼의 밀정망을 다 불고 연사라는것들의 정체까지 밝혔으니 그것만 들장나도 살아있지 못할것이다. 설사 그것이 아니라도 지하조직을 고발하고 무사히 배겨낼수는 없다. 지금 장군님의 령을 받고 활동하는 지하공작원들은 수백수천명이다. 어디든 네놈의 목을 조일 지하조직이 있으며 어디서든 네놈을 감시하는 인민의 눈이 있다는것을 알라. 도대체 이 장백땅 일판이 어딘가? 여기는 김일성장군님의 기본작전구역이다. 장백땅에서 유격대의 손에 처단된 악질지주가 한둘이 아니라는걸 너도 잘 알지 않는가?》

《압지요, 알다마다요. 그걸 모르는놈이 이 장백아근에는 없지요.》

백가는 넋을 잃고 황황히 대답하였다.

《안다는놈이 이따위 망동을 부렸는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찌르는듯 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문하시였다. 놈은 풍덩 땅에 엎드려 다시 벌벌 떨었다.

《오늘은 아라가와란놈이 목이 날아났지만 래일은 가와사끼가 목이 떨어질것이다. 네놈은 상상도 못할것이지만 두고 보라. 그것은 오래지 않았다. 두달이냐 석달이냐 하는 아주 가까운 시일의 일이다. 네놈은 이것을 똑똑히 보게 될것이다!》

《후-》

백지주는 단숨을 내뿜었다. 머리우에 곧추 철추가 내려지는듯 한 그이의 준렬하고도 예리한 타격에 온 육신이 가드라들었다. 너무도 놀랍고 무시무시하여 일시에 온 정신이 희뜩 뒤집혀버릴듯 한 경악스러운 순간을 백지주는 가까스로 지탱하고있었다. 놈의 온몸은 땀에 푹 젖어 이마에 물을 드리운듯이 땀방울이 좔좔 떨어졌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것이 인간이라기보다 한갖 추한 버러지로밖에 더 보이지 않는 백지주의 등어리를 노한 기상으로 짓누를듯이 그냥 내려다보시며 마디마디 힘을 주어 말씀하셨다.

《나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으로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처자와 친척친우들을 그냥두고 고향도 버리고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조국의 광복전선에 총들고나선 혁명가들이다. 우리는 개인의 귀중하고 소중한 모든것을 버리고 혁명에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밖에는 남은것이 없다. 우리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기어이 조국을 광복하고 인민이 잘사는 세상을 세우고야말 사람들이다. 너같은 추하고 더러운 일제의 앞잡이가 조선인민혁명군의 이 숭고한 지향과 리념을 다 알수야 있겠는가! 그러나 한가지만은 명심하라.

이같이 소중한 지향과 철석같은 신념을 지닌 조선인민혁명군의 앞길을 그 어떤자도 감히 막지 못한다는것을··· 네가 이것을 명심하지 못한다면 너의 목숨이야말로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과 같은것이다!》

《예예, 알겠습니다!》

백지주는 눈물이 더벅한 낯짝을 들고 거듭거듭 말씀의 의도를 따르겠노라고 맹약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앞으로 목숨만 보존시켜달라고 애원하는 지주놈을 끌고 길에 나서시였다.

위기는 일단 지나갔다.

그러나 권용산의 희생으로 인한 막막한 아픔과 상실의 고통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으시였다.

장군님의 조국진군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해드릴 귀중한 동지가 희생되였는가. 진정 이렇게는 가버릴수 없으며 이렇게는 가버려서도 안되는 그 길을 아까운 동지가 가고만것이다.

춘옥이며 쌍별이며 강성태가 따라오며 못간다고 그렇게 말리던 산자락의 들, 혁명전에 피를 뿌리고 쓰러진 동지의 시신이 누워있는 그 들 한끝을 바라고 걸음을 옮기시는 그이의 눈앞은 흐리여 보이지 않으시였다.

온밤 그리고 지금토록 쓰러진 동지를 붙안고 안타까이 가슴을 쥐여뜯으신 그이시였건만 권용산의 희생을 도저히 사실로 믿으실수가 없으시였다. 분명 이것은 꿈이고 이 꿈에서 깨여나기만 하면 권용산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신파에 다녀온 이야기랑 하면서 함께 사업을 의논할수 있을것 같은 생생한 환영이 자꾸만 떠오르는것이였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어언듯 가슴에 품은 권총의 무게를 느끼시고 넋없이 개울을 차고 넘어선 젖은 버선이며 젖은 치마자락이며 그리고 끝없이 풀을 쥐여뜯으시여 파랗게 풀물이 든 손바닥을 내려다보실 때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며 다시 깨여볼수 있는 딴세계란 도저히 있을수 없다는 생각에 젖어드시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록 길지는 않았으나 그처럼 열렬히 혁명에 뛰여들었으며 생활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변혁의 새 세계를 사랑하였던 진실한 동지를 잃은 슬픔에 다시금 몸이 찢기는듯 하시였다.

그렇게 일찍 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으며 그자신도 그것을 예감할수 없었다. 참으로 그자신이 얼마나 소박하고도 격동적인 꿈을 안고 열렬히 살았던가. 남달리 조급할 지경으로 장군님을 만나뵈옵고싶어하였고 유격대원이 되고싶어하였다. 하다못해 유격대에 련락이라도 다녀올수 없겠느냐고 묻기까지 했었지. 이루지 못한 소박한 념원과 그 뜻을 남에게 크게 알리지도 못한채 갔다고 생각하니 하염없는 눈물이 앞을 가리우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길을 가시다가는 한참씩 넋없이 서계셨다.

춘옥이, 이제 이 어린 녀성은 생활상의 이 크나큰 비애를 어떻게 감당해내겠는가? 혁명을 알자 너무나 일찍 가혹한 시련에 부닥친 춘옥이를 생각하면 그냥 뼈마디까지 저려오는 아픔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권용산에 대하여 추억할수 있는 그 모든것을 추억하며 오래오래 잊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시였다.

그것은 쓰러진 동지를 위하여 그리고 그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들인 춘옥이와 그의 아버지를 위해 응당 해야 할 혁명가의 의무라고 생각하시였으며 이렇게 하느라면 그들이 당하는 고통도 어느만큼 가벼워질것 같이 느껴지시였다.

《조직은 뜻밖의 첫 상실을 당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딛고 반드시 일어서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우시였다.

한사람한사람 손잡아 혁명의 첫 걸음마를 떼여주던 그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어찌보면 그보다 더 어려울수도 안타까울수도 있으며 혁명의 준엄한 상실을 겪었기때문에 복잡해질수도 있는 청소한 대오를 이끄시고 비록 불속의 단련은 적게 겪었지만 앞으로 수없는 난관을 박차고 그리고 수없는 희생이 가로놓인다 해도 굴함없이 승리를 향해 돌진할 그 미래를 확신있게 내다보시며 한발두발 걸음을 내짚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