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3

 

제 1 장

3

 

춘옥은 남편이 산에 입고갈 토스레적삼을 빨아 가마목에 말리우고 겨우내 선반에 찔러두었던 도로기를 꺼내여 물에 불구어서 주름을 폈다.

산에 가는 사람들의 식량을 백지주가 눅은 변으로 나누어준다고 하기에 지주집으로 가서 좁쌀 한말에 귀밀쌀 두말을 받아가지고 돌아와 밤새 짐을 꾸리였다.

남편은 여물바가지에 물을 떠가지고 부엌봉당에 앉아 도끼며 낫같은 연장들을 숫돌에 갈았다. 허리병을 앓고있는 늙은 아버지는 지간문을 열어젖히고 말없이 담배를 태우며 이따금 맥없이 기침을 깇었다.

《산에 가면 기일은 도대체 얼마나 걸린다더냐?》

《빠르면 두석달이고 늦으면···》

권용산은 낫날에다 손가락을 대여보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두석달을 채벌장에 바치고 농사는 뉘아들놈이 짓는다더냐?》

늙은이는 두손으로 문턱을 움켜잡고 헐썩헐썩 어깨숨을 쉬여가면서 채근해 물었다.

《관동군사령부라는데서 내린 특별지시라고 하니 거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왜, 백지주같이 세도가 당당한 사람도 말 한마디 못해?》

《백지주야 제집 산판에서 상당한 리득을 보는데 마다할 턱이 있습니까. 씨뿌릴 철이 되면 좀 어떻게 마련이 있겠지요.》

《그런 소리 말아라. 곡우가 이제 며칠 남었냐?》

늙은이는 맥없이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륙갑을 짚어보더니 끌끌 혀를 찼다.

방등밑에서 남편의 적삼을 깁다가 숨이 막히는것 같아 밖으로 나온 춘옥은 나물바구니와 호미가 걸려있는 외양간기둥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웃집 복방아네, 인순이네, 옥탄이네 뙤창들에도 불빛이 빤히 어려있었다. 그들도 춘옥이와 같이 남정들을 산판에 보내야 하는 집들이였다. 살아가는 일이 춘옥이네보다 결코 낫다고 할수 없는 궁색한 형편에서 다같이 이 밤을 근심속에 보내고있는것이였다.

부락의 이곳저곳에서 개들이 컹컹 짖어대였다. 골목골목에서 담배불들이 번쩍거리고 이따금 문 여닫는 소리들이 울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정적이 깃들었다. 남편 없이 병든 아버님시중을 들면서 혼자손으로 어떻게 농사를 짓나?··· 하는 막막한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멀리 산판에 가는 사람앞에 함부로 눈물을 보일수도 없고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할수도 없고 하여 답답하고 서글픈 마음을 혼자 묵새기자니 저도 모르게 서러운 생각에 한방울 두방울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려 볼을 적시였다.

춘옥은 남편을 항상 어렵게 대하였다. 권용산은 춘옥이보다 15살이나 나이를 더 먹은 장정이였다. 마을에서는 물론 13도구, 17도구 아근에서까지 그의 힘을 당할 사람이 없을만큼 권용산은 장사였다. 그래서 그랬던지 춘옥은 남편을 태없이 대할수가 없었으며 묻는 말에도 내우를 하면서 겨우 한두마디 대답하군하였다. 그러한 안해를 바라볼 때면 권용산은 늘 답답해하군하였고 꼭 요긴한 일이 아니면 안해더러 묻거나 말을 시키는 일이 없었으며 수걱수걱 제 할일만을 찾아하군하였다. 춘옥은 그것이 한편 마음편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한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같은 철없는 녀자를 만나 속을 태우고있는것 같은 남편이 가엾어지기도 하였다.

부엌문이 열리는것 같아 춘옥은 바삐 일어섰다. 권용산은 여물바가지를 들고나와 마당에다 물을 쏟았다.

안해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낀 권용산은 말없이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들여다보았다. 춘옥이는 무안하여 외양간기둥쪽으로 몸을 돌리였다.

《아버님이 걱정하시는데 당신까지 이러지 마오.》

춘옥은 잠자코 서있었다. 생각하면 눈물이 북받치는 일이였다. 그러나 아무튼 집안이 이 지경이 되고보면 채심을 하고 살아야 할것은 그래도 분명 자기라고 생각되여 춘옥은 강잉히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참았다.

《걱정 말고 좀 쉬세요.》

뜻밖에 부드럽고 여유있는 안해의 목소리를 듣자 권용산은 놀랐다.

녀자의 강단이란 참 무서운것이다. 권용산은 애처롭고 처량한 생각이 들어 다시금 안해의 얼굴을 묵묵히 들여다보았다.

《혼자손으로 농사를 짓자면 조련치 않을거요. 옥탄이네랑 복방이네랑 같이 품을 어울러서 하오. 올해엔 소도 부릴만하게 되였으니 그래도 우리 집 형편이 좀 낫다고 할수 있소. 밭갈 땐 차억아버님보구 부탁을 해보오. 소 한품에 장정 한품이니.》

《알겠어요. 아무튼 좀 쉬여요. 새벽조반을 드시구 모두 떠난다는데.》

《그럽시다. 아버님 찜질을 해드리고 당신두 좀 누우.》

그들은 방으로 들어왔다. 춘옥은 군불을 때여 물을 덥혀가지고 늙은이의 잔등에 찜질을 해드렸다. 그새 권용산은 조막도끼로 부엌에서 나무를 빠갰다. 그 일이 끝나자 외양간바닥을 쳐냈다. 귀밀집, 콩짚을 섞어가지고 들어와 짚새도 하였다. 안해가 그만 이젠 좀 쉬라고 만류하였으나 물지게를 지고나가 물을 길어다 드무에 채웠다. 그리고나서 모두 자리에 들었다.

춘옥은 어두운 천정을 바라보며 남편을 떠나보내고 살아갈 가지가지 고생스런 일들을 생각하다가 그만 목이 메여 베개에 얼굴을 묻고말았다.

춘옥은 일솜씨가 여물고 깐깐하여 순간도 몸을 쉬우지 않고 팽팽 돌아가며 진일 마른일 가리지 않는 성미였으나 한번도 또 그리고 하루도 자력으로 살아갈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아버지밑에서 그리고 지금은 남편의 보살핌속에서 사는데 습관되여온 그였다.

안해의 그 순해빠진 성미를 잘 아는 권용산은 마치 철부지를 집에 떼여두고 가는것 같은 쓰릿한 생각을 금치못하면서 어둠속에 손을 내밀어 안해의 어깨우를 만져보았다.

이불도 안덮고 입은 옷채로 꼬부리고 누워있었다. 권용산은 조용히 혀를 차면서 손더듬으로 가마목에 개여놓은 얇은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었다. 그때 자기의 팔목을 건드리는 안해의 손길이 느껴져서 권용산은 《왜?》하고 속삭이며 낮추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꼭 가야 하나요?》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요?》

권용산은 쌕쌕거리며 차츰 높아지는 안해의 숨소리를 듣자 마음이 부산스러워져서 견딜수 없었다.

《구장한테 좀 말해보면 어때요?》

《구장이 무슨 권한이 있다고?》

《구장이 권한이 없으면 누가 있어요. 백지주보담두 이런 일엔 구장이 세도를 쓴대요. 인순이네 아버님두 산판채벌인부명부에 이름이 올랐었는데 구장이 빼주었다는군요.》

《모를 소리요.》

권용산은 좀 성가스레 말을 받았다.

《관동군사령부의 명령을 받아가지구 경찰서 아라가와대위가 백지주를 데리구 앉아 동원명부를 만들었소. 구장이 마음대로 넣고 빼고 할 문서가 아니라니까.》

《구장이 왜 못한다고 그래요. 참, 어제 백지주랑 같이 마주앉아서 술추념까지 벌렸다는데 아버님은 구장의 처사가 못마땅하다고 푸념을 하셨어요. 제집일 바쁠 땐 사람을 데려다 험한 일 시키면서도 이럴 땐 아닌보살한다구.》

권용산은 답답해졌다. 공작상비밀로 하여 권용산은 집안사람들 보기에도 구장과 썩 가까운 사이가 아닌듯이 위장을 하고 지냈다. 권용산이 보기에는 안해나 장인이나 다 같이 혁명을 도울만한 강단이 있는 사람들로 생각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부부간에도 비밀을 견지하고 살수밖에 없었다.

《어떻거실래요. 좀 여쭈어보실래요?》

춘옥은 다시금 조심히 남편의 의향을 찔러본다.

《여보, 그만 좀 자오. 되지도 않을 일을 가지구.》

권용산은 퉁을 놓고 돌아누워 자는척해버리였다. 등뒤에서 오래동안 바스락거리며 한숨을 내쉬더니 안해는 조용해졌다.

또다시 멀리에서 컹컹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창밖을 불어 지나가며 붕-하고 문풍지를 울렸다.

권용산은 끝없이 번거로운 생각에 부대끼고있었다. 혼자 남은 안해앞에 많은 일거리를 맡겨두고 가는것도 괴로왔지만 마을의 조직원인 자기가 속수무책으로 떠나가는것이 더욱 괴롭기 그지없었다.

권용산은 성미가 순하면서도 결곡하고 일단 용단을 가지면 무서운 사람이였다. 마을에 조직원이 두사람씩 되여가지고 하는 일없이 적들의 눈이 무서워 눈치만 보고있다가 산판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일종의 량심과 책임감이 그를 무척 괴롭히였다.

그는 마을에서 혁명하기가 어려워지면 신파 벌사촌 로동자들속에라도 들어가서 동지를 규합하고 조직같은것을 내오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여 강성태에게 자기 의향을 비쳐본 일이 있었다. 그때 강성태는 백색테로가 심해지는 조건에서 자칫 잘못 움직이다가는 탄압을 받을수 있으니 형편이 완화될 때를 기다리자고 하였다. 강성태의 생각은 그때 자기 마을 일도 해내지 못하는 립장에 신파 벌사촌에까지 손을 뻗칠 힘이 있는가. 그리고 권용산이 잘 아는 신파 벌사촌《형제계》 두령인 주창범이라는 벌사는 아무에게나 고분고분 휘여들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되여 그쪽 방면의 사업은 아예 단념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혁명을 하자면 인정에 매여서는 안된다. 권용산이 아무리 친형제같이 믿고 지내는 사이라고 해도 혁명하는 사람의 립장에서는 동지를 옳게 고르고 대하여야 한다. 주창범은 너무 사납고 드센 벌사이니 동지로 사귀기에는 고려할바가 있다고 강성태는 좋은 말로 충고를 주기까지 하였다.

권용산은 지금 그때 일을 생각하고있었다. 충고는 그렇게 받았어도 모든것이 석연하게 풀리지는 않았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이란 무엇일가?···

권용산은 혼자생각에 골몰해있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잘살게 만드는것이 혁명이다. 그렇다면 벌사촌의 주창범같은 사람이 혁명을 못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성미가 사납고 우락부락한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은 눈물겹게 어진데도 있는것이다. 주창범같은 사람은 사나와서 혁명을 못하고 자기 안해같은 녀자는 너무 온순해서 혁명을 못하고(권용산은 춘옥에 대해서는 굳이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면 혁명할 사람이 어디 있단말인가?···

안해는 소리없이 일어나 조반을 짓기 시작하였다. 남편의 잠을 깨우지 않을 양으로 방등도 켜지 않고 아궁에 조심히 불을 지펴 넣으면서 가만가만 동자질을 하였다.

권용산은 다시금 안해의 일로 마음이 부산스러워졌다. 그는 밖으로 나가 기울어진 울짱도 곧추 세우고 뚫러진 개구멍도 틀어막고 터갈라진 굴뚝담에 흙매질도 하였다. 그리고 산판에 가지고가려고 새파랗게 갈아놓은 도끼를 들고 나무를 패기 시작하였다.

밤새 뜬눈으로 밝힌 늙은이가 웃방문을 열어젖히고 사위가 나무패는 광경을 내다보고있었다. 춘옥은 새벽바람에 탈을 만날가봐 늙은이의 잔등에 하불을 씌워드렸다.

이윽고 조반을 치르고난 권용산은 안해가 꾸려주는 짐을 지고 집을 나섰다. 춘옥은 남편의 연장중태와 점심보자기를 들고 따라나섰다. 여기저기 골목골목에서 사람들이 밀려나왔다. 아낙네들과 아이들, 늙은이들이 하얗게 따라나왔다. 지주집대문앞의 연자방아간공지에 소와 달구지,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돌아갔다.

지주집에서 술밥을 먹고 밤을 지낸 아라가와대위가 백지주와 함께 채벌장인부들을 바래워주려고 방아간모퉁이에 나와있었다. 그들은 자못 흡족한 얼굴들을 하고 서성거리며 담소하고있었는데 가끔 농군들에게 말을 걸고 치사를 하는가 하면 누구에게는 욕질을 하였다.

강성태는 붐비는 사람들속을 헤치고 돌아가며 소와 달구지, 연장중태들을 깐깐히 살펴보고 명단에 적힌 이름들을 호명하였다. 이름을 불리운 사람들은 한쪽옆으로 물러나 줄을 짓고 구미(작업조)를 짰다. 매 조마다에는 책임자가 선발되였다. 강성태는 사람들에게 산판채벌림지를 알려주고 조별 작업량을 할당하였다. 일을 초과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사여사한 상금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작업기일을 늦춰지게 된다고 말하였다. 마지막으로 아라가와대위가 연설하였다. 그는 제국의 시책을 받들고 도천리일대의 수십개 부락에서 일제히 벌리게 될 《안민촌》건설을 위하여 공사용목재를 찍으러 가는 의의를 재삼 설명하고 일에서 태공을 부리거나 자그마한 소요라도 일으키는 경우에는 엄중처벌이 있을것이라고 위협하였다.

느릿느릿 대렬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람과 소와 달구지들이 일제히 붐비면서 먼지를 피워올렸다. 대렬의 량쪽으로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몰려가면서 왁작 떠들어대였다. 춘옥은 무엇엔가 자주 발을 걸채이면서 경황없이 남편의 옆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