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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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라고 하지만 장백의 밀림속엔 아직도 장설이 쌓여있었다. 깊은 눈속에 허리를 묻힌 골짜기의 나무들은 난쟁이처럼 작아지고 숲이 성기여진 공지의 작은 관목림은 풀대처럼 웃초리를 내밀고 까뭇거리고있었다.

밀림의 가없는 눈바다는 낮이 되면 조금씩 녹았다가 밤이면 다시 꽛꽛하게 얼어붙었다. 수림은 바람에 가지들을 휘적이며 끝없이 솨- 하고 한산하게 설레이고 그때마다 가지들사이에 굳어붙은 얇은 얼음장이 부서지면서 사방에서 뿌적뿌적 소리를 울리고있었다.

장백에서 무송지구로 행군하던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는 밀림속에 천막을 둘러쳤다. 밀림속 여기저기에서는 고깔모양의 작은 풍막들이 솟아나고 모닥불연기들이 타올랐으며 낟알 익는 구수한 냄새가 떠돌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부대의 작식준비를 하느라 온밤 주무시지 못하고 바쁜 일손을 다그치시였다.

조반을 치르고나자 작식대원들은 노곤해졌는데 금숙이는 벌써 천막한쪽구석에 곤드라져서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금숙이의 어깨우에 솜저고리를 벗어 살며시 씌워주시고 그앞에 조그마하게 모닥불을 피워주시였다.

불똥이 튀여나가 옷을 태워버릴가봐 칼도마를 가져다 불옆에 세워놓고 불그림자가 너울거리는 금숙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시였다. 피곤과 훈기에 노그라진 몸은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가볍게 천천히 들먹거리고 이마에서는 이슬방울같은 땀이 촉촉히 배여올랐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삭정이를 주어오시려고 천막밖에 나가시였다. 앞에서 딱하고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혜숙이라는 신입대원이 죽은 나무가지를 따내고있었다.

《혜숙동무, 거기서 소리를 내지 말라요.》

김정숙동지께서 녀대원을 불러가지고 천막에서 조금 떨어진 골짜기로 내려가시였다.

《금숙동무랑 잠이 들었는데 소리를 내면 잠을 깰수 있어요.》

녀대원은 금숙의 잠든 모양을 넘겨다보고는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지었는데 어깨우에서는 짧은 단발머리가 경쾌하게 뛰놀았다.

《그런데 정숙동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나요?》

혜숙이는 나무에 매달려 삭정이를 따다말고 불쑥 한마디 물었다.

《무송지구로 가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속에 파묻힌 긴 나무가지를 들춰내시며 대답하시였다.

《왜요. 저는 우리 부대가 가까운 시일내에 조국으로 진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조국진군을 위해 무송지구로 가는거예요. 그쪽으로 가서 집중적인 군정훈련을 하여 신입대원들을 단련하게 되여요. 그리고 또한 우리가 무송으로 가는것은 장백일대에 쏠린 적의 시선을 딴데로 돌려 국내진공의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자는데도 그 목적이 있는거예요.》

혜숙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눈빛을 반짝이더니 달려와 김정숙동지께서 들어내고있는 나무가지를 힘껏 나꾸채였다. 나무가지가 갑자기 쑥 뽑혀지면서 일시에 모두 눈속에 풍덩 주저앉았다. 혜숙이는 깔깔 소리를 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정숙동지는 정말 모르는게 없구만요. 나는 정숙동지한테서 총쏘는거랑, 선동하는거랑, 작식하는거랑 그리고 재봉하는거랑 다 배워야 할텐데 어떻게 할가요?》

《곧 배우게 되여요. 우리 작식대에서도 목표를 세우고 훈련을 하게 될테니까요.》

김정숙동지께서는 혜숙이와 함께 나무가지를 끌고 등성이로 오르시였다. 밤새 얼어붙은 눈우에 나무가지 긁히는 소리가 쌔릉쌔릉 울리고 머리우에서는 성에가루들이 떨어졌다. 등성이마루에 올라서자 옆으로부터 해살이 비쳐들었다. 눈덮인 등판은 바늘끝같은 광선들의 반짝거림으로 눈이 시였다.

풍막들에서는 노래소리, 웃음소리, 하모니카소리들이 울려났다. 작식대의 천막에서도 떠들어대는 소리가 났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풍막앞에 나무가지를 끌어다놓고 안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금숙이가 어느새 잠에서 깨여나 꿈이야기를 하고있었다.

《···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도 생생한 꿈이겠나요. 우리는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압록강기슭에 서있는데 생시보다두 더 똑똑한 광경이 아니겠어요. 우리가 서있는 이쪽 둔덕은 겨울인데 눈앞에 펼쳐진 조국의 대안은 봄이야요. 나무랑 풀이 새파랗고 진달래며 함박꽃이 막 어우러진 동산이더란말이예요.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새파랗고 압록강물도 새파래요. 조국의 대안에 있는 바위들도 모두 이상하게 새파랗지 않겠어요. 그게 숫돌이랑 방치돌이랑 만드는 청바위라는거예요. 청바위우에는 병풍에서나 보는 그런 고운 다박솔이 우거졌는데 학이 흰 날개를 펼치고 너울너울 날아가는게 아니겠어요? 우리는 너무 기뻐 서로 껴안고 막 울기 시작했어요.》

《야, 그게 꿈이 아니고 생시면 얼마나 좋겠나요.》

녀대원들은 일제히 감격에 넘쳐 부르짖었다.

혜숙이가 삭정이를 동댕이치고 풍막안으로 뛰여들어갔다.

《금숙동무, 내가 거기 있었나요?》

혜숙이는 금숙이의 손을 끌어다 가슴에 꼭 갖다붙이고 안타깝게 대답을 기다렸다.

《있지 않구, 혜숙동무랑 왜 없었겠어요.》

《그럼 장철구어머니도 있었어요?》

《있지 않구, 경숙동무, 복순동무랑 다 있었지.》

이름을 불리운 대원들은 행복에 넘쳐 얼굴들을 활짝 붉히고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대원들사이에 즐겨 끼여앉으시며 유쾌하게 한마디 물으시였다.

《금숙동무, 나도 거기 있었겠지요?》

《정숙동무가요? 가만 좀 있어요.··· 어쩌나, 정숙동무는 없었던것 같애요.》

《내가 없었어요? 그럼 내가 어디 갔을가요? 동무들이 다 있는데 내가 없다니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못내 섭섭해하시였다. 녀대원들이 막 떠들면서 김정숙동지를 두둔하였다.

《금숙동무, 그럴수 없어요. 정숙동무가 왜 없었겠나요? 좀 곰곰히 생각해보라요.》

《생각해봐도 없었어요.》

《원 그럴수 없다니까요.》

금숙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냥 고집을 썼다.

《분명 없었는데 어떻게 하라요. 정숙동무가 빠지는 때가 뭐 한두번인가요? 이제도 나를 잠재워놓구선 슬그머니 삭정이 주으러 가지 않았나요. 그러니 꿈에도 혹시 삭정이 주으러 갔는지 알게 뭐나요?》

녀대원들은 배를 그러안고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즐겁게 미소하시였다.

《금숙동문 린색하기두 해요··· 그래 다음은 어떻게 되였나요. 조국으로 건너갔나요?》

《그다음은말예요. 우리는 떼목을 타고 조국으로 건너가게 되였지요. 탄탄하게 무은 기다란 떼가 기슭에 와닿았어요. 유격대원들이 환성을 올리며 떼에 뛰여오르는게 아니겠어요. 우리도 떼를 향해 막 달려갔어요. 그런데 글쎄 길이 축나주어야지요. 얼마나 안타깝던지··· 우리는 죽어라 달리는데 돌아보면 그냥 한자리에서 달리는거야요. 그렇게 매샘이를 치다가 가슴이 화끈 달아올라 잠을 깨고말았어요.》

《아니 조국에 가지 못하고 잠을 깼단말이예요?》

《그럼요.》

녀대원들은 아쉬워 울상을 하였다.

《금숙동문 잠을 깨지 않을걸 그랬어요. 조금만 참지 왜 깨였나요?》

《글쎄 가슴이 뜨거워 깨였다니까요. 깨여나니 내옆에서 모닥불이 타고있지 않겠어요. 내가 추워한다고 정숙동무가 불을 놓은거야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천만락심해하시였다.

《그렇게 되였나요? 그럴줄 알았더면 불을 놓지 않을걸 그랬군요. 금숙동무가 좀 추워하더라도 불을 놓아주지 않을걸 그랬어요.》

《맞았어요. 그렇게 무책임한 동무인줄 알았더면야 불을 놓아줄리 있었겠나요?》

모두 금숙이를 못살게 굴었다. 행복하고도 즐거운 순간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동무들의 유쾌한 익살에 들볶이고있는 금숙이를 바라보시며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제 며칠 더 행군하면 큰골마을이 나져요. 장군님께서는 마을에 들려 정치공작이랑 하면서 며칠 묵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때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꾸지 못한 꿈을 마저 꾸어요. 금숙동무, 어디 그래줄수 있겠나요?》

《그럼요. 그래주지 않구요. 꼭 꿈을 꾸어서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겠어요.》

녀대원들은 금숙이의 말을 믿었다. 모두들 흥분하여 조국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밖에서 나무패는 소리가 짱짱 울렸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풍막밖을 내다보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방금 끌어온 나무가지를 패고계시였다.

《아니, 사령관동지께서!···》

장군님께서는 한손에 도끼를 드신채 돌아보시더니 호탕하게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정숙동무가 아주 섭섭하겠는걸, 혼자 조국의 대안을 가보지 못하고···》

《사령관동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수집음과 행복에 넘쳐 그이를 바라보시였다.

《들었소.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요.》

장군님께서는 도끼자루를 놓고 손을 털며 허리를 펴시더니 김정숙동지더러 사령부천막으로 올라가자고 하셨다.

장군님께서는 김정숙동지를 찾아 작식대에 오셨다가 뜻밖에도 금숙이의 꿈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셨다.

장군님께서 앞에 서시고 김정숙동지께서는 조금 뒤에 따라서시였다. 희디흰 백설의 등판우에는 두분의 약간 길어진 그림자가 비꼈는데 장군님께서는 그 그림자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조국, 정말 잊을수 없는 조국이지··· 정숙동무는 몇살때 고향을 떠났소?》

《여섯살땝니다.》

《여섯살!···》

장군님께서는 눈우로 가볍게 걸음을 옮겨가시다가 잠간 멈추시고 말씀하셨다.

《한창 어린시절의 꿈을 키우고있을 나이에 남의 나라 지경에 건너와 숱한 고생을 겪었군. 그렇게 고향과 조국을 떠나 이역의 칼바람속을 헤매는 불쌍한 우리 겨레가 몇만인지 모르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생각에 잠기시여 저쪽 구부러진 수림의 변두리를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셨다.

《이번에 장백에서 새로 입대한 녀동무들중에도 어려서 고향을 떠나온 동무들이 있습니다. 너무 철부지였기때문에 고향모습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안타까와하는 동무가 있는가 하면 고향풍경이 너무도 생생하여 가슴아파하는 동무도 있습니다. 그래서 금숙동무의 꿈이야기를 그렇게 기뻐서들 듣고있었습니다.》

《그럴테지··· 얼마나 가보고싶은 조국이요. 열네살때 압록강을 건너온후 나는 아직 한번도 조국을 잊어본적이 없소. 조국, 고향, 이 다정한 이름을 불러보면 자연히 눈에서 눈물이 흐르오!》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거니시였다. 눈우에는 자주 발을 바꿔디디신 발자국이 촘촘히 찍히였다.

《우리는 이제 조국으로 진군하게 될것이요. 조국을 광복할 력사의 순간이 눈앞에 점점 박두하고있소. 이날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멀고 험한 싸움의 길을 헤쳐왔으며 피와 땀과 눈물을 그 길에 뿌려왔소.

생각하면 가슴에 맺힌 아픔과 잊지 못할 추억이 그 얼마나 되는지 상상으로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지. 그렇지 않소, 정숙동무?》

김정숙동지께서는 목이 메여 대답을 드리지 못하시였다.

《우리는 이제 대부대의 강력한 력량으로 조국으로 나갈것이요. 서강에 들어가 조국진군방침도 토의하고 새로 받아들인 신입대원들도 단련하고··· 그리고 장백지구에 있는 적들을 저 안도와 화룡, 림강의 오지에다 끌어다 팽개치고는 조국으로 나갈것이요. 그때엔 우리 동무들이 꿈에도 가보지 못한 조국땅을 밟게 될것이며 조국동포들과 눈물겨운 상봉을 하게 될것이요.》

장군님의 머리우에는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있었다. 해빛을 받은 수림의 촘촘한 웃초리들은 흔들리면서 은빛의 밝은 빛발을 발산하고있었는데 수림을 등지고 서신 그이의 모습은 후광처럼 비쳐오는 그 산란광때문에 신비한 색조에 싸여있었다.

《장군님, 정말 기쁨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을 슴벅이시며 말씀드렸다.

《하루속히 조국으로 가보고싶습니다. 이봄이 끝나갈무렵이면 압록강을 건느게 됩니까?》

《어쩌면 그렇게 될는지도 모르오. 어쩌면···》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떼시였다. 수림으로부터 가는 바람이 불어왔다. 푸르고 맑은 공간속엔 눈가루들이 반짝거리고 장군님의 군복우에도 눈가루들이 떨어졌다.

《조국으로 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요. 그저 강을 건너가 왜놈의 뒤통수를 답새기고 돌아온다면 몰라도 이번의 조국진군이 조국광복위업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되게 만들어야 하겠기에 일이 많은것이요. 우리의 매개 지휘관, 매개 전사들이 해야 할 몫이 크오. 정숙동무도 큰일을 맡아주어야 하고···》

어느덧 풍막앞으로 오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장풍자락을 들치시고 김정숙동지를 앞세우고 안으로 들어서시였다.

바닥에서 빨간 모닥불이 이글거리고있었다. 모닥불주위에는 짧은 통나무의자가 두개 놓여있었는데 장군님께서는 그 하나를 김정숙동지께 내주시며 불앞에 가까이 다가앉으라고 말씀하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슴앞에 더운 열을 안고 앉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나무가지로 불무지를 헤집어놓으시였다. 그리고 한쪽무릎우에 손을 짚으시고 상반신을 약간 앞으로 굽히시면서 김정숙동지를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정숙동무가 두만강연안유격구에서 적구공작을 하던 때가 아마 33년 봄이였지?》

《예, 사령관동지께서 남만에 진출하셨다가 돌아오신후였습니다.》

《그래 그때였소. 그해 적통치구역으로 나간 공작원들은 아주 잘 싸웠소. 팔구공청에서 올라온 보고에는 김정숙동무가 최희숙동무랑 같이 적후에서 대담하게 활동한 자료들이 적혀있었소, 동무들은 동신평, 구수하쪽으로 나갔었지?》

《예, 동신평, 구수하, 영창동, 신흥동, 태평구 일대와 룡수평서구일대에 나갔댔습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나는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하군하오. 그때 우리 혁명은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엄중한 시련을 겪고있었지. 그래도 적구에 파견된 공작원들은 활동을 참 잘했소. 그런데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지금 많은 정치공작원들이 국내와 만주의 넓은 지역에 나가 우리 혁명을 줄기차게 앙양시켜야 할 절박한 과업이 제기되고있소. 이를테면 조국광복회지하조직을 전국적판도에서 시급히 확대하고 2천300만 조선인민을 반일의 기치아래 튼튼히 결속시키는 중대한 사업을 수행하여야 하는거요.》

김정숙동지께서는 추억과 명랑함에 잠겨있던 표정을 지우시고 가벼운 긴장에 싸여 장군님을 바라보시였다. 자신께서 그 규모의 방대성을 리해할수 없는 중대한 사변들이 시작되고있으며 그 일이 이제는 자신과 철저히 관계된 운명적인 사변으로 되리라는 느낌이 드신것이였다.

《바로 그래서 정숙동무를 불렀소.》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당분간 동무는 부대를 떠나 어려운 지하사업을 하게 되오. 33년의 그때 일과는 전혀 다르며 방법도 내용도 보다 방대한 그런 일을 동무가 하게 되는거요.》

예감은 틀림없이 들어맞은것이였다. 그리하여 심장은 말할수 없이 빠르게 높이 고동쳤다.

장군님께서는 통나무책상우에 지도를 펼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생이가 닳아서 희슥희슥 보풀이 인 지도의 한쪽 모서리를 잡으시고 걷잡을수 없는 흥분에 싸여 들여다보시였다. 그것은 조국광복회공작원들의 파견지대를 붉은 연필로 표시한 지도였는데 국내와 만주일대를 뒤덮은 무수한 붉은 반점들이 한눈에 부감되는 순간 그이께서는 불현듯 가슴에서 일어나는 감격과 환희의 격동적인 충격을 누르실수 없으시였다.

력사적인 동강회의가 있은 때로부터 한해, 정확히 따지면 한해도 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조국광복회의 지하조직은 전조선과 만주대륙을 뒤덮고 혁명의 세찬 불길을 지펴올린것이였다.

이날을 위하여 장군님께서 헤쳐오신 로고, 그이께서 기울이신 정력적인 탐색과 눈부신 활동의 규모와 심도가 헤아려지시였다.

무송과 장백지구의 밀영들에서 림시로 꾸린 천막에서, 혹은 눈보라속의 행군길에서 떠나보내고 맞이하시고 또다시 떠나보낸 수많은 정치공작원들··· 조국광복의 대강을 안고 대지에 뿌려진 그 씨앗이 지금 줄기를 뻗치고 가지를 자래우며 바야흐로 무르익은 열매를 만들고있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자신도 이제는 그 많고많은 정치공작원들중의 한사람이며 그리하여 미구에 장군님께서 짚어주시는 한구간, 조국땅의 한 지점에서 혁명의 씨앗을 키우는 거창한 사업을 하게 되리라는 눈물겨운 생각에 잠기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붉은 연필을 드시고 김정숙동지께서 공작하시게 될 압록강연안의 넓은 구간을 그려보이시였다.

《정숙동무는 여기, 장백현일대와 국내 신갈파지구에서 활동하게 되오. 이 국경지대가 동무의 지하활동거점이 되오. 험한 산악지대이면서 도로망이 발달된곳이요.》

장군님께서는 한손으로 지도의 복판을 꾹 누르시고 신파에서 량쪽으로 갈라진 혜산, 중강방향의 도로를 가리키시였다. 그다음은 약간 옆으로 몸을 돌리시고 장진고원과 부전고원, 풍산고원의 허리를 횡단하고 지나간 동해안방면의 도로를 가리키시였으며 압록강물길로 신의주까지 통해있는 련락선의 통행구간을 짚어보이시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이곳은 적들의 〈토벌〉무력이 항상 류동하고 집결되는곳이요. 장백으로 들어오는 〈토벌대〉의 많은 수가 이 지대를 통과하고있소. 우리가 이곳을 혁명화하면 형세는 어떻게 될것인가?

우선 국경일대에서 일제군경들의 〈토벌〉기도를 제때에 알아내여 적들을 호되게 답새길수 있고 원군물자들도 대대적으로 해결할수 있소.

그뿐이 아니지. 우리가 신파지구의 산악지대를 장악하면 국내혁명운동을 발전시키는데서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오. 이것 보시오!》

장군님께서는 랑림산맥일대의 산악지대인 신갈파와 후창, 중강 일대에 크게 원을 그려보이시더니 동해안의 원산계선까지 죽 선을 내려그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지도에 낮추 허리를 굽히시고 희망에 넘친 눈길로 들여다보시였다. 혈맥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높은 산맥과 험한 령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장군님께서는 랑림산줄기를 따라 북으로는 부전령산줄기와 함경산줄기, 서쪽으로는 묘향산줄기를 가리키시고 남쪽으로는 산맥들과 련결된 태백산줄기를 짚으시였다.

《여기를 보시오.》 하고 장군님께서는 침착하게 김정숙동지를 지켜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랑림산을 중심으로 하여 묘하게 련결된 하나의 거대한 산악지구를 내려다보시였다. 순간 그것은 어떤 거창한 발견처럼 그이의 의식에 번개같이 비쳐들었다. 거기서부터 미지의 폭풍같은 사변이 움틀것 같은 예감이 맹렬히 꿈틀거리였다.

그이의 시선은 다시 압록강연안에서 굽이쳐나간 붉은 산맥들의 세세한 부분을 밟아나갔으며 그러자 점점 명료해지는듯한 하나의 생각에 집착하시였다.

랑림산줄기를 중심으로 펼쳐진 조선의 북부와 중부, 서부와 남부의 방대한 산악지대가 우리의 작전구역으로 될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사령관동지께서 랑림산일대에 혁명기지를 꾸리고 국내의 광범한 지역에서 유격활동을 하려는 방대한 구상이라도 하신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점점 못견디게 가슴이 뛰였고 호흡이 높아졌으며 얼굴에는 홍조가 피여올랐다.

《사령관동지, 혹시 이곳에 우리의 작전기지가 생기는게 아닙니까?》

《그렇소. 우리의 국내활동거점이 꾸려지게 되오. 우리는 북부조선일대를 군사적으로 제압하고 백두산근거지를 랑림산맥일대에로 확대할 결심이요. 그리고 여기에 의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것이요. 그런즉 김정숙동무는 무엇을 하게 되는가? 바로 국내에 백두산근거지와 같은 하나의 혁명기지를 꾸리는 거창한 사업을 하게 되는것이요. 알만하오?》

장군님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힘과 무게와 담력이 느껴졌으며 행복하고 기쁨에 찬 감동이 어려있었다. 그리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목메이는 환희와 고마움에 가슴이 뛰였으며 그와 함께 그토록 중대하고 거창한 사업을 감당해나갈 앞날의 불안과 걱정으로 하여 가슴이 조이는것을 느끼시였다.

《정숙동무, 일은 대단히 어려울것이요.》

장군님께서는 저력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동무를 믿소. 정숙동무가 이곳에 파견되면 신갈파를 중심으로 한 랑림산맥일대는 우리의 국내기지로 될것이요. 정숙동무는 국내공작을 위해 먼저 도천리일대에서 발판을 닦고 시급히 신파로 들어가야 하오. 신파에 들어가되 조국광복회조직을 꾸리고 혁명적군중지반을 튼튼히 마련해야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일대 앙양에로 이끌기 위한 기틀이 준비되는것이요. 어떻소. 감당할만 하오?》

조용히 그러나 아주 주의깊이 바라보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정채가 넘쳐 번쩍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고개를 드시고 똑바로 자세를 바로잡으시였다. 얼굴은 땀에 젖은듯 축축해졌고 약간 고동빛의 긴장한 색조에 물들어있었으며 힘껏 움켜쥐신 단단한 작은 주먹은 허리아래에 드리워 꼭 붙어있었다.

《장군님 믿음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김정숙동지를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몸가짐은 반석같은 믿음과 충만된 힘에 넘쳐계셨으며 불그레 혈조가 피여오른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떠돌고있었다.

장풍천정이 바람을 안고 펄럭거렸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치기 시작하였다. 장풍우로 눈가루들이 스치며 날아가는 소리가 쌔릉쌔릉 울렸다.

장군님께서는 장풍자락을 들치고 밖을 내다보시였다. 온 밀림이 갑자기 눈사태속에 파묻히고 눈보라의 은빛세계가 끝간데없이 펼쳐져있었다. 열기와 흥분이 피여올랐던 그이의 안색은 흐려지시였다.

《적후활동을 하기는 어려운 계절이요.》

장군님께서는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이제 큰골마을에 들리면 며칠 휴식하면서 그쪽 방면의 자료도 연구하고 행군준비랑 단단히 해가지고 떠나오.》

장군님의 마지막음성은 바람에 날려가 들리지 않았다.

행군이 시작되였다. 사흘밤, 사흘낮이 지나갔다. 유격대의 긴 대오가 뿌연 눈보라속에 온통 휘말려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작식대와 함께 걸으시였다.

부대를 떠나 중요한 공작지로 가셔야 할 김정숙동지를 생각하시여 가까이에서 동무해주시며 우리 혁명이 어떤 피의 로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마디마디 눈물을 삼키고 오열을 씹으며 그리고도 견딜수 없으시여 가슴속으로 조용히 울어가시며 그이의 말씀을 들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슬픔과 고통, 아픔과 비애의 가장 높은 절정우를 걸어오시였다. 인간이 당할수 있는 온갖 슬픔, 인간이 겪을수 있는 온갖 수난을 장군님께서 겪으시였다.

조국과 혁명, 이것이 아니라면 장군님께서 이처럼 모진 시련을 겪으실수야 있었겠는가?

《우리는 인간의 의지로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 그런 준엄하고 시련에 찬 혁명의 길을 걸어왔소. 무엇때문인가? 우리는 조국을 광복하기 위해서였소. 그리하여 우리는 그 무수한 희생과 모질고도 모진 온갖 비극과 상실의 아픔을 씹어삼키면서 오직 조국을 광복하는 력사의 시각을 준비하여온것이요. 바로 그날이 오고있소. 그 력사의 시각이 다가오고있소.》

장군님께서는 흥분하여 말씀하시였다.

대오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행군하였다. 태양은 행군종대의 뒤에서 엇비스듬히 비치고있었는데 울바자처럼 빽빽이 다가붙은 그림자들이 눈우에 진하게 떨어져 대오와 함께 가고있었다. 해빛이 총창이며 총신들우에서 반짝거렸다. 눈가루와 함께 세차게 몰려오는 바람은 총끝에서 회파람소리를 울리며 맴돌았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어린 눈으로 그 모든것을 바라보시였다. 숲처럼 솟아오른 무수한 총창 하나하나와 그것을 받들고선 유격대원들의 군복어깨를 잠시라도 무심히 대할수 없으시였다.

어떻게 마련되여온 우리 혁명인가? 어떻게 받들고 모셔야 할 우리 장군님이신가? 장군님의 앞길에는 천만산악도 막아설수 없게 하고 조약돌 하나라도 밟히지 않게 해드려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목메여오는 뜨거운 마음을 달랠길 없어 그냥 눈을 슴벅이시면서 적후에 가서 하여야 할 일들을 생각하셨다.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그동안 만난을 극복하고 조선혁명의 주체적력량인 조선인민혁명군대오를 장성시켰기때문에 대부대의 강력한 력량으로 조국진군을 단행할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이제 각계각층의 반일력량을 묶어세워 일제를 반대하는 전 민족적인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전선이 남아있는데 이것을 김정숙동무와 같은 지하공작원들이 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조국광복의 두 전선중의 한 전선, 그 한 고리를 바로 동무가 맡게 된다고 거듭거듭 믿음과 고무의 말씀을 들려주신것이였다. 어떻게 하면 이 한 전선의 복잡하고도 어려운 임무를 감당하여 장군님의 기대와 신임에 어긋나지 않게 해낼수 있으며 그이의 로고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릴수 있을것인가?···

그러자 이 순간 이상하게 머리속이 복잡해지면서 마음도 또한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 도천리일대의 조직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있다는 통보를 받으셨다고 하셨다. 그와 함께 장군님의 음성에서 울리던 불안이 다시금 생생히 떠올랐으며 근심은 곱절이나 커갔다. 마치 도천리일대의 조직에 난처한 사건들이 벌어진것 같았고 하루속히 도움을 바라는 급한 일이 놓여있는것 같아 견딜수 없으시였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였다. 장군님의 조국광복위업에 장애가 되는 조그마한 일도 발생하여서는 안되는것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몇개의 골짜기와 수림과 등성이를 경황없이 지나가시였다. 앞에서부터 대오가 갑자기 술렁대며 들레기 시작했다. 큰골마을이 가까와지고있었던것이다.

발구가 삭정이를 흘리며 지나간 자리가 있고 방금 떨어진 소똥에서 김이 오르고있었다. 유격대원들은 그것을 보고 환성을 질렀다.

장군님께서도 대원들을 향해 즐겁게 한마디 하시였다.

《동무들, 힘을 내오. 고개 하나를 넘으면 마을이요. 저것 보오. 개짖는 소리가 들리는군.》

순간 대오는 고무줄처럼 팽팽해지면서 고개마루로 치달아올랐다. 작식대원들도 기세를 올리며 달렸다. 금숙이가 맨앞에서 껑충거리고 그뒤로 혜숙이가 달팽이처럼 굴러갔다. 장철구도 《정숙동무, 왜 이러구있어요. 빨리 달려요.》 하며 금숙이를 따라 뛰여갔다.

《예, 어서 가요. 곧 따라갈테니요.》

그러나 김정숙동지의 마음은 벌써 경황이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장군님 앞으로 나아가 잠시 주저하시다가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저를 공작지로 떠나게 해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요?》

장군님께서는 놀라웁게 반문하셨다.

《마을에 다 왔는데 그러지 마오. 아무리 임무가 중요하더라도 동무를 여기서 떠나보내지는 못하겠소.》

장군님께서는 김정숙동지의 등을 가볍게 떠미시며 앞으로 걸음을 떼시였다.

《사령관동지, 저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그곳에 피치 못할 난처한 일이 벌어진것 같애 그럽니다.》

장군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냥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팔도구에서 적구공작을 할 때 일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그때 하루만 늦게 가도 바로잡지 못할 일을 때마침 가서 바로잡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틀을 늦게 가서 능히 할수 있는 일을 못하고 안타까와 울던 일도 있습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어떻게 키워오신 우리 혁명이기에 제가··· 잠시라도···》

김정숙동지께서는 목메여 끝가지 말씀을 드리지 못하셨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리고 추위에 얼어 선홍빛이 된 김정숙동지의 얼굴을 오래오래 들여다보시였다. 문득 조용히 소리없는 긴 한숨을 내쉬시였다.

《고맙소, 동무의 심정이 고마와!》

장군님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갈리시였다. 그다음은 말씀없이 그이의 등을 미시고 산마루까지 오르시였다. 해빛은 떨어지고 산정에는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평퍼짐한 골짝바닥에서 부락의 등불이 반짝거렸다. 개짖는 소리,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푸르스름한 저녁연기가 떠돌았다.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게 되는 마을의 광경인것이다.

《마을이요, 정숙동무!》

장군님께서는 하염없이 마을을 내려다보시다가 조용히 입속말로 외우시였다.

《하루밤 동무들과 함께 언몸을 녹이고 떠나지, 정숙동무.》

《사령관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다음의 말씀을 입밖에 내지 못하시고 고개를 숙이시였다. 이 순간의 장군님의 심정이 어떠하리라는것을 그이께서는 아시고도 남음이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걷잡을수 없는 부산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시였다. 눈앞에는 수백리 눈보라속을 뚫고온 전사가 있고 적후에는 적의 백색테로의 광란속에서 갈길을 몰라 조직의 지도를 기다리는 전사들과 인민들이 있는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온통 눈가루가 푸실푸실 떨어지는 김정숙동지의 옷이며 고드름이 달라붙은 신발을 내려다보시였다. 이 언발, 언몸으로 적후의 수백리길을 돌아서겠다고?··· 하나 어찌하랴. 아무리 따뜻하고 후더운 온돌방에 누운들 이 전사에게 휴식이 될수야 있겠는가?···

든든히 입히지도 못하고 한번 마음편히 쉬우지도 못하고 내내 어려운 일만 맡겨오다가 또다시 이 눈보라속을 떠나보내게 되다니···

순간 장군님의 가슴은 통절한 아픔으로 조여들었으며 이 용서없이 가혹하게 들씌워지는 세례앞에 소리쳐 항변하고싶은 격동이 솟구치시였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사람들을 이렇게 모질고도 모진 사람들로 만들어버렸는가? 무엇이 이 소박한 사람들의 가슴에 그토록 용서없고 무자비한 넋을 안겨주었단말인가? 그리고 무엇이 이 소중한 녀성들의 한몸도 추위속에서 막아줄수 없게 하였는가?··· 그러자 마음속 가장 깊은 언저리에서 하나의 눈물겨운 생각이 솟아올랐다.

조국, 혁명, 이 성스러운 이름만 아니라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모진 사람들로는 살지 않았을것이며 아픔에도 호소하고 고통에도 호소하며 보통사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았을지 모른다.

장군님께서는 목이 메이시였다. 그리하여 그이께서는 김정숙동지의 신발에 매달린 고드름 하나하나가 그토록 마음이 저리시였으며 야속하게 울부짖는 이 눈보라와 이제는 전혀 안정을 줄수 없는 마을의 등불이며가 죄다 크나큰 고통으로 되시였다.

《떠나오. 따뜻한 온돌방에 누운들 동무에게 휴식이 될수야 없지··· 우리앞에 도탄에 빠진 조국이 있고 칠성판에 오른 인민의 운명이 놓여있지 않다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모질게 행동하겠소. 가도 이것만은 잊지 마오. 정숙동무!··· 이제 나라를 찾고 인민의 세상을 세운 다음 오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테지···》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숙이시고 모자를 벗으시였다. 그리고 찬바람속에 하염없이 이마를 내맡기시였다. 하루밤 더운 방에서 언발을 녹이지도 못하고 적후 수백리길을 홀로 가셔야 할 김정숙동지를 생각하시여 함께 추위에 시달리고싶으셨는지도 모른다. 찬바람은 눈가루를 안고 몰려와 그이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몸부림쳤다.

작식대원들이 떠나는 김정숙동지를 에워쌌다.

《정숙동무, 이렇게 가면 우리는 어떻게 해요?》

장철구가 김정숙동지의 어깨를 그러안고 울먹거렸다. 금숙이도 혜숙이도 울고 다른 녀대원들도 울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애써 마음을 누르시고 웃는 낮으로 그들을 만류하시였다.

《동무들, 왜들 이래요. 사령관동지께서 괴로와하시는데 이러지 말아요. 장철구어머니, 작식대일을 잘해주세요. 그리고 금숙동무, 오늘밤 온돌방에 누워서 조국으로 진군하는 꿈을 마저 꾸어요. 돌아와서 꿈이야기를 마저 들을테예요.》

그 말씀에 금숙이는 더욱 괴롭게 어깨를 떨며 흐느끼였다. 꿈속에서 김정숙동지를 보지 못했노라고 말한것이 지금은 그지없이 가슴에 맺히였다. 이럴줄 알았더면 꾸며서라도 좋은 말을 들려줄수 있었던것을··· 이제와서 그것을 후회한들 무엇하겠는가?

금숙이는 손바닥으로 눈물을 씻고 흑흑 흐느끼면서 목도리를 풀었다.

《이거라두 둘러요. 어떻게 이 눈보라속을 혼자 가요.》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목도리마저 사양하시였다.

《나에게는 이제 집도 있고 따뜻한 온돌방도 있고 뭐든지 다 있을텐데요.》

그이께서는 방싯 웃으시며 돌아서시더니 홀개바람으로 걸어가시였다. 골짝바닥에 내려가 산마루를 돌아다보시였다. 황혼속에 둘러선 사람들의 모습이 성벽처럼 꺼멓게 보이고 그 성벽에서 조금 떨어져 맨머리바람으로 서신 장군님의 모습이 검스레한 륜곽으로 보이시였다.

장군님께서 건강하시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시며 아우성치는 눈보라속으로 걸어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