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5

 

제 7 장

5

 

김정일동지께서는 신미리애국렬사릉 사판앞에 다가서시였다. 실물그대로 축소해서 만든 사판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부감하는 기분을 자아냈다. 며칠전에 착공한 애국렬사릉에 대한 총적규모를 다시금 확정하시려는것이다. 느물느물 물결쳐나간 구릉들과 벌판이 잘 어울리여 한폭의 그림을 보는것 같았다. 그이의 좌우에는 키가 훤칠한 고윤학을 비롯한 책임일군들이 10여명 둘러서있었다.

허리에 손을 짚으신 그이께서는 사판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고계시였다. 장소가 마음에 드시였다. 서남쪽 양지바른곳에 그닥 급하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해서 맥빠지게 지내 펑퍼짐하지도 않는 적당한 경사를 이루었다. 그리고 앞이 활짝 열려 시원한 감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서북쪽으로는 소나무숲으로 둘려있어서 매우 아늑하였다.

《어떻습니까? 위치가··· 이만하면 우리의 애국선렬들을 모실 위치로서는 나무랄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짓고 손을 들어 가리키면서 좌우를 둘러보시였다. 그렇게 되자 모두가 좋다고 동의하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고윤학이 흥분된 어조로 대답을 올리게 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만족하시다니 저희들은 더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한나라, 한민족에게 몇번씩 거듭 있게 되는것은 아닌데 바로 그 영예의 자리에 저희들을 세워주시였기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총리동무의 말이 옳습니다. 이것은 우리모두의 영광입니다. 선렬들을 귀중히 모시고 그 위업을 지키는것은 후대들에게 지워진 신성한 의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도 그렇고 또 세계 여러 이름있는 나라의 릉묘를 다 알아본데 의하더라도 여기다가 릉을 일떠세우면 손색이 없을것 같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설명을 들읍시다.》

이렇게 되여 고윤학은 공사장 첫머리에서부터 반경 약 천m에 달하는 넓은 지대에 펼쳐지게 될 공사내용과 순위에 대해서 설명하게 되였다. 릉문을 세울 위치와 층층이 계단을 지은 비석터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이 과정에 특히 그이께서 관심을 표시하신것은 지대가 넓은 조건에서 앞으로 지형변화가 없도록 해야겠다는것과 주위에 풍치를 잘 조성할데 대한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벽에 걸린 지형도를 보고 하나하나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전체에서부터 국부에 이르기까지, 국부에서 전반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사색과 구상을 펼쳐나가시였다.

《그런데 세멘트로 기초다짐을 하면 몇년동안이나 담보됩니까?》

그렇게 되자 시공을 직접 담당한 책임기사가 활달하게 대답하는것이였다.

《우리는 100년이상 변화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년! 좋습니다. 그런데 만년대계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만년은 가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윤학을 향해 손짓을 하시였다.

《부총리동무, 우리가 이 사업을 펼친것은 참 잘한 일인것 같습니다. 기왕 좋은 일을 하는바에는 마음먹고 잘해야 하겠습니다. 규모에 있어서나 그 내용과 질에 있어서 최고급으로 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의 선렬들은 참으로 잘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조국, 우리 민족의 영예와 슬기를 지켜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애국선렬들을 잘 받들어모시고 그들의 위업을 찬양하고 중요시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번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이 자리에 애국렬사릉을 세우는것은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는데도 큰 의의가 있습니다. 조국강토는 비록 두토막으로 갈라졌고 또 해외에 동포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지만 우리 민족의 넋만은 절대로 갈라지지 말아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통일되여 한가정이 될것은 물론이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들만이라도 한자리에 모여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였습니다. 우리는 당면한 현행사업도 잘해야 하지만 과거에 대한 처리도 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는것과 같은 사업도 해야지만 애국선렬들의 분묘도 잘 만들고 보존해야 하는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붉게 상기된 얼굴을 들고 소나무숲을 형상한데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시였다.

《여기를 릉묘만 뎅그랗게 놓여있는 한산한곳으로 만들지 말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잘 꾸려야 하겠습니다. 사철 꽃이 피고 숲이 우거지게 합시다. 애국애족을 위해 한목숨 바친 선렬들이 꽃밭에서 살게 합시다. 그리고 이 둘레에는 그림에서 보여준것처럼 소나무숲이 우거지게 해야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사람들은 소나무를 장수의 상징으로 보았는데 애국렬사릉 하면 곧 푸른 소나무숲이 떠오르도록 합시다. 애국의 상징, 통일의 상징, 영생의 상징으로 만듭시다.》

그이께서 계속 만족을 표시하면서 지시봉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의견을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는 과정에 어느덧 모두 기분이 들떠버리고말았다. 외형으로 보건대는 요새 흔히 있는 하나의 건설장에 지나지 않았고 축조물로 볼 때도 그 규모가 그닥 요란하다고 볼수 없는것인데 그 의의에 있어서는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심오하고도 고귀한것이 깃들어있었다. 그리하여 이 공사를 직접 책임진 고윤학은 이미 습관된 실무성을 떠나서 어느덧 시인같은 감정에 젖어들어갔다.

고윤학은 그이앞으로 한걸음 나서면서 평상시보다 한음계 높은 음성으로 말을 떼였다.

《인간의 영생이란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일것입니다. 예수교에서는 천당,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가 있다면 이런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그럴수도 있습니다.》하고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짓고 높이 들린 남쪽하늘이 내다보이는 창문으로 시선을 날리시였다.

《우리는 인간이 영생한다는것을 복잡하게 생각지도 않고 또 신비하게도 보지 않습니다.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영생하는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우리는 여기에다 영원히 보존할수 있는 화강암으로 비석을 세우자고 하는것입니다. 비석에는 이름을 깊이 새겨놔야 합니다. 그러니 여기를 영생하는 인간촌이라고 불러도 무방할것입니다. 영생하는 인간촌, 다시말해서 영생촌! 하하하.》

불쑥 떠오른것이였지만 아주 비유가 적절하다고 생각되여서인지 크게 웃으시였다. 그통에 방안사람들이 모두 따라웃게 되였다.

《묘지가 아니라 영생촌!》하고 제각기 마음속으로 외웠다.

바로 이무렵에 최성덕은 허담의 안내로 만수대창작사라는 평양에서 이름있는 창작기관을 방문하게 되였다. 미술작품창작을 전문한다는 이 기관은 말그대로 어느 문화궁전에 못지 않게 잘 꾸려져있었다. 안내하는대로 따라나가면서 전시된 미술작품들을 감상하였다. 그는 이전에 영국의 국립미술박물관도 본적이 있었고 세계적으로 손꼽힌다는 프랑스의 루브르미술박물관도 보았었다. 다른데 미술작품이라는것은 년대도 오래고 금은으로 장식한 화려한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두 인민대중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특권층의 향유물이였거나 그들의 취미에 맞는것이였다. 그러나 여기는 그림 한폭, 조각품한점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모든 근로대중과 직접적으로 련관돼있는것들뿐이였다.

담담하면서도 민족적슬기가 느껴지는 조선화들, 섬세하면서도 민족의 의지와 재능이 잘 나타나있는 수예품들 그리고 고려나 리조시기의 전통을 그대로 살린 청자기, 백자기들, 조각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미술창작기관의 의도와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진렬품들을 흥미있게 보아나가면서도 최성덕은 한가지 의문만은 지워낼수 없었다. 왜 애국렬사릉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왕청같은데로 끌고오는것인가. 렬사릉과 미술이 어떤 련관을 가지고있단말인가?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지내온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여기서는 항상 상상이 미치지 못하는 일들이 례사롭게 벌어지군 하기때문이다.

말이 적고 침착한 허담은 별로 최성덕에게는 관심이 없는것처럼 보이였다. 그도 안내원의 해설을 주의깊이 들으면서 때로는 감탄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통쾌하게 웃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순서를 따라나갔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안내원처녀가 실내것은 그만하고 밖에 나가 대형미술품들을 보자고 하였다. 뒤문을 열고 안마당에 들어서자 최성덕은 입을 딱 벌리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너무나 크고 요란한 석재가공이 진행되고있었기때문이다. 축구경기장만 한 넓은곳에 형상과정에 있는 각종 조각품들이 널려있었다. 착암기소리도 나고 뚝딱뚝딱 마치소리도 나고 석재를 절단하는 기계소리도 났다. 황홀경에 사로잡힌 최성덕은 정신없이 용해공을 형상하는곳에도 가보고 중년녀성이 아이를 들어올린데도 가보았다.

《최선생님! 이쪽으로 가십시다.》

허담이 손짓해서 걸음을 돌리니 그쪽에서는 그쪽대로 굉장한 광경이 벌어지고있었다. 그곳에서는 비문을 새기고있었다. 길이가 한m반이나 되는 비석들을 눕혀놓고 석공들이 글을 쫏고있다. 모두다 색갈이 좋은 화강석이였다.

허담은 안내원과 잠간 이야기를 나누더니 최성덕앞으로 다가갔다.

《최선생! 최영호선생의 비문을 현재 새기는중인데 아직 며칠더 있어야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보시겠다면 저쪽으로 가십시다.》

허담은 매우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석재들이 널린 짬을 빠져 한참이나 걸어나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최성덕은 가슴이 쿵쿵 울려 걸음을 제대로 옮길수 없었다. 벌써 이마와 관자노리에 땀이 솟고 눈앞이 뽀얗게 흐려졌다. 70평생을 살아와도 비석을 미술작품의 부류에 포함시키는것을 처음 보는것이다. 더구나 아버지 최영호가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화강석에 이름을 쪼아박게 되리라는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아! 이것이 현실이란말인가?》하고 최성덕은 혼자소리를 질렀다. 벌써 여기서는 아들인 최성덕이 성묘를 위해 여기에 오겠다는 결심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이 사업이 벌어진것이 틀림없다. 이런 일은 한두달어간에는 이루어질수 없고 적어도 몇해는 걸려야 하는것이다.

착잡한 생각에 잠긴채 최성덕은 허담이 서있는 비석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반들반들하게 연마된 비돌 웃면에는 《고 최영호렬사의 묘》라는 먹글이 씌여져있었다. 최영호라는 이름자까지는 정으로 쪼았고 그밑은 먹글씨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갑작스럽게 손님을 맞이하게 된 30대의 젊은 석공은 최성덕에게 인사를 하고 옆으로 비켜섰다.

안경을 낀 최성덕의 시선이 글자 하나하나를 톱아나가더니 마지막에 가서 딱 멎어섰다.

《최영호렬사.》

최성덕은 입새로 한마디 흘리였다. 그 순간 뚜렷하던 그 글자들에 허상이 생기면서 느물느물 흔들리였다.

그것이 깜박 사라지자 그 다음에는 38선을 넘어가야겠다면서 뒤를 돌아보던 아버지의 얼굴이 우렷이 나타났다.

최성덕은 팔을 벌리고 비석우에 털썩 엎어졌다.

《아버님!》

그의 목소리는 비틀어짜는것 같았다.

《불효자식 여기 왔습니다. 최성덕이 왔습니다.》

아무런 감각이 있을리 없는 화강석우에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얼굴은 시퍼렇게 이문것처럼 색이 변하였고 비석을 그러안은 팔이 와들와들 떨었다. 차디찬 비석우에 눈물이 고이였다. 그것은 마치 돌짬에서 금방 솟아난 이슬같이 보이였다. 거기에는 저물기 시작한 해빛이 강하게 반사되였다. 처절한 광경을 지키고있던 허담의 가슴에도 비애라고 할지 감격이라고 해야 할지 종잡을수 없는 충격이 일어났다.

허담은 이때 최성덕이라는 사람은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 눈물을 흘리고 넉두리를 할수 있는 기회라도 가질수 있지만 자기는 서울에 두고온 가족의 생사여부도 알지 못하는것으로 해서 가슴이 북북 찢기는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런 생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였다. 가볍게 도리머리를 젓고난 허담은 최성덕의 팔을 잡아일으켰다. 놔두면 언제까지나 그러고있을것만 같았다.

《최선생! 그만하십시다.》

《아! 정말 인생이 야속스럽군요.》하고 최성덕은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버렸는데 여기서는 그 아버지를 천금같이 귀중히 여기고있습니다. 참말 놀랍습니다. 나는 주체사상에서 인간을 귀중히 여기고 인간을 끝없이 믿고 사랑한다고 한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참뜻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선생님의 리념과 인품에 다시한번 크게 감동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성덕은 이렇게 웨치다싶이 말해놓고도 아직 자기의 본심을 다 내놓지 못하는것이 못내 안타까와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이것이 우리 천도교에서 주장하는 지상천국이 아닌가싶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기원하는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김일성주석님, 김정일선생님은 민족의 어버이시며 진정 민족의 한울님이십니다.》

최성덕은 눈물을 훔치고나서 연방 손을 내흔들었다.

《오! 한울님!》

허담은 다음 시간이 바쁘기때문에 재촉하였다.

《최선생! 그만합시다. 이제 한 15㎞ 나가면 애국렬사릉건설장이 있습니다. 교외에 인차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아니올시다, 허담선생! 나는 이제 더 보지 않겠습니다. 더 볼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진심입니다.》

그것은 진심인것 같았다. 하는수 없이 허담은 로정을 변경하게 되였다. 기왕 떠난김에 모란봉에 올라가 시내경치라도 관망해보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승용차는 곧 모란봉 최승대를 향해 달리였다. 최성덕은 줄곧 생각에 잠기였다.

종심의 깊이를 알수 없는 이 나라, 이 제도가 전률할만치 고맙고 숭고하였다. 그것을 직접 창조하고 령도하고계시는 김일성주석님, 또 그 위업과 전통을 계승하고있는 젊은 지도자 김정일선생! 그이앞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