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4

 

제 7 장

4

 

최성덕은 눈을 떴다. 팔을 들어보니 야광시침은 3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머리가 천근같이 무거웠다. 정량에 비해 배나 먹은 수면제탓도 있겠지만 며칠전부터 생겨난 정신적번민때문에 그런것 같았다.

그는 손을 뻗쳐 탁상등의 단추를 눌렀다. 정신적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반디불색전등이 켜졌다. 모든것이 파르스름하게 물들어버렸다. 탁자우에 놓인 우유빛전화통도 지금은 연한 보라빛으로 보이였다. 그는 침대가장자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켜 안락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탁상등의 단추를 다시 눌러 백열등으로 바꾸었다.

순식간에 방안이 활짝 밝아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지 않고 누워있으면 머리가 더 복잡해지기때문에 무엇인가 공백을 메꿔보려는것이다.

그는 돋보기를 걸고 신간출판물들을 둘러보았다. 탁자우에는 여기 《로동신문》과 영어판《뉴욕타임스》와 《인민일보》,《쁘라우다》, 《아사히신붕》 등이 놓여있었다. 중국이나 쏘련 화보도 있었다.

그는 《아사히신붕》을 집어들었다. 어제 대충 제목정도는 훑어보았던것인데 흥미있는것을 몇개 읽노라면 날이 밝을것이였다. 《전두환의 일본방문결과》, 《이란-이라크전쟁 가일층 격렬화》등의 제목들이 눈에 띄였지만 자연히 시선은 남조선수재와 관련한데로 쏠리였다.

《뚜렷한 징조》라는 1면 하단기사가 눈을 끌었다.

《남조선에 대한 평양의 수재구호물자제공과 관련한 북과 남사이의 성공은 조선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한 뚜렷한 징조.》

일본외무상의 담화이다. 극히 피상적인것인데 어느쪽에도 불쾌나 유쾌의 감정을 유발할 근거를 주지 않기 위한 교묘한것이다.

《요미우리신붕》은 2면에 이렇게 썼다.

《존경하는 김일성주석과 친애하는 김정일선생님께서는 남측의 무성의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구호물자인도와 관련한 남측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도록 하시고 물자를 전달할수 있게 하시였다. 이것은 북측에 있어서는 큰 승리이고 남측에 있어서는 큰 타격이라고 본다.》

도꾜대학 교수의 반영이다.

계속해서 다음 기사에는 이렇게 쓰고있다.

《북조선에서는 원호물자의 수송을 민족분렬후 40년만에 처음 있은 력사적사변이라고 하고있다. 수송대에 따라온 북의 기자는 떠날 때 북의 각지에서는 감격적인 환송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김일성주석과 후계자 김정일지도자의 업적이 국민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남기였다. 그 정치적효과는 대단하다.》

어느 출판물을 보든지 북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고있으며 종전의 관례를 벗어나 극구찬양하고있다.

최성덕은 가슴이 후련하였다. 최성덕은 구호물자에 대해서 찬양하면 기분이 좋고 그에 대해 악담을 했을 때에는 화가 났다. 그것은 구호물자에 도의와 사랑의 선의가 있기때문이였다. 그에 대해 악담하는것은 도의와 사랑과 선의에 대한 우롱이며 모독이다.

흐뭇한 기분에 잠긴 최성덕은 신문장들을 내려놓고 잠시 명상에 잠겨 창유리와 방안벽 그리고 천정을 무심히 올려다보았다.

이제 나는 어데로 가지?

며칠전부터 문득문득 떠오르군 하던 물음이 또다시 뇌리속에 갈마들었다. 집이 있고 안해가 기다리는 워싱톤으로 가야지. 어째서? 어째서라니? 거기에 거처가 있고 안해도 있으니 가는거지. 그것이 이제부터 해야 할 행동리유의 전부인가? 워싱톤에 가서는 뭘하는가?

그의 머리속에서는 이런 식의 자문자답이 계속되였다.

육체가 당장 갈곳은 워싱톤이라고 하자. 하지만 정신적거처는 어디인가? 이남인가? 아니다. 일본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미합중국인가? 그건 더더구나 아니다.

그는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였다.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 꽉 차서 빙글빙글 돌아가고있다. 20대, 30대에는 가야 할 길이 많기도 하고 또 명백하기도 하였다. 때문에 온 중국땅을 달려다니였고 8. 15후에는 서울에 와서 《대한민국》을 받들고 동분서주했다. 전쟁때에는 더욱 뚜렷했던것처럼 여겨진다. 《자유세계를 위하여 공산주의를 섬멸해야 한다.》-맥아더나 리승만의 지론에 별 의심을 품지 않고 공감되여가지고 자기도 뛰고 또 자기와 같이 남들도 뛰게 하였다. 그러던것이 40대, 50대에 와서 정신적동요가 생기였다. 처음에는 새로 돋아나는 맹아처럼 알릴듯말듯 한 미세한것이더니 그것이 차츰 자라 완연히 형체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장관급에서 활약하는 동안에 그는 어제날에는 동료라고 여겼던 많은 사람들이 어느덧 자기에게 적의를 품고있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천도교에 관여하는 가운데 어느덧 그는 여당계렬에서 야당계렬로 넘어서고 나중에는 자기 신변에 테로의 마수가 뻗치고있음을 감수하였다. 하여 그는 일본을 거쳐 워싱톤에 가게 되였던것이다.

결국 그는 북에도 남에도 살수 없는 존재로 되고말았다. 북의 《공산세계》에 대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너무나 죄진것이 많은 전범자의 한사람이였으며 군사파쑈광들이 판을 치는 남의 《자유세계》에서는 단 한시각도 마음놓고 자유롭게 숨쉬고 살아나갈수가 없는 정적의 한사람이였다.

(그래 정신적지탱점은 어데인가. 어데로 가지?)

대답할수 없었다.

워싱톤을 떠날 때만 해도 최성덕의 마음속이 지금처럼 이렇게 공허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때는 비록 적고 보잘것없는 사사로운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향이라는것이 있었다. 북에 가서 부친의 성묘를 하자,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지키자. 이런 지향이 뚜렷하였기때문에 철면피로 몰리든 범죄자로 몰리든 상관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었다. 그리고 목적한 일을 다 보았다.

이제 여기서는 무엇하러 어데로 가야 하는가? 그것이 없었다. 어느 한 시인은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앞날이 없는자는 차라리 죽어버리라.》

과연 이 최성덕이도 그렇게 될 때가 되였단말인가. 종착점, 종말이 왔단말인가.

불시에 안해가 그리워졌다. 지금쯤은 안해가 외출을 했다가도 집에 들어와있을수 있었다. 전화통을 끄당겨 국제전화를 신청하고 자기 집 번호를 대주니 교환에서는 자리를 뜨지 말고 잠간 기다리라고 하였다.

또다시 애수가 비껴들고 마음이 구슬퍼졌다. 자기 인생의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니 복잡다단했던 지난 한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기의 마음이 왜 이렇게도 허무하게 느껴지고 구슬퍼지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전화종이 울렸다. 화닥닥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허둥지둥 달려가 송수화기를 들어올렸다. 마치 거기서 어떤 신통한 대답이 나오기라도 할것처럼··· 그렇게 달려드는것이였다.

《여보시오!》

저쪽에서 《네!》하는 안해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나요. 여기 평양이요.》

《네에? 당신이?!···

안해는 숨이 꺽 막혔는지 뒤말을 잇지 못했다. 한 1분후에 가까스로 숨을 돌려 말한다는것이 《살아계시는군요. 살아계셔요. 분명 흐흑···》하고는 흐느낌소리를 낸다.

《그래 나 최성덕이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소.》

《에그, 사람을 그렇게 놀래우는 법이 어데 있어요.》

뒤이어 또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놀래우다니? 건 무슨 소리요?》

최성덕은 송수화기를 움켜잡고 우정 태연해지려고 애썼으나 안해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저도 물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어쨌거나 다행이군요. 난 떠나간 날부터 지금까지 꼬박···》

그제서야 최성덕은 떠나올 때 적어놓은 쪽지가 생각났다. 미친놈처럼 행동한것이 후회되였다. 그러나 당장에 안해앞에서 자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쳐볼 생각은 나지 않았다.

《다행이라? 하긴 다행이지. 거기 쪽지에 유언을 적은 그 최성덕은 갈데로 가서 지금 이 세상에 없소. 다른 최성덕이 오늘 당신한테 전화를 걸고있소. 나는 다시 태여났소.》

《어쨌든 지금 기분은 나쁘지 않군요.》

그는 차츰 기분을 가라앉히며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래 나쁘지 않을뿐아니라 좋아! 거긴 별일 없나?》

《본에 있는 큰애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우리를 본으로 데려가겠다고요.》

《거긴 못가!》

최성덕은 갑자기 기분이 변하며 목이 꺽 막히였다. 저쪽에서도 그것을 느꼈던지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하였다.

《그다음에는요. 북조선쌀을 2㎏ 샀어요.》

《북조선쌀?》

《그거 왜 있잖아요. 남조선물란리를 구제하기 위해 보낸거.》

《빠르긴 빠르다. 그 쌀이 벌써 미국땅에까지 넘어갔단말이요?》

《네. 가격이 얼만지 알아요. 보통쌀의 10배야요. 그것도 겨우 구했어요. 당신 오시문 한끼 대접하려구.》

《참 당신두, 난 여기서 매일 먹고있지 않소.》

《그것과 같아요?》

《하긴 그렇지.》

《갔던 일은 어떻게 되였나요?》

《어찌될것도 없지만 여하튼 잘되였소. 아버님묘를 보니 그옆에 나란히 눕고싶더군.》

《어머!》

수화구에서는 안해의 비명비슷한 소리가 울리였다. 참말 그것은 자신으로서도 놀라운 일이였다. 워싱톤을 떠날 때만 하여도 그는 아버지의 봉분옆에 눕겠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안해와의 전화가 이루어진 지금 저도모르게 불쑥 기여나온 그 말에 최성덕은 스스로도 놀라왔고 그것이 다름아닌 자기의 솔직한 심정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당신 좀 이상하네요. 무슨 일이 있군요. 틀림없이.》

《일이야 무슨 일, 난 거기밖에 갈데가 없으니까 그러지.》

《갈데가 없다니요?》

《···》

《언제 오시지요?》

《오늘낮 아니면 래일아침에 떠나겠소. 여기서 내가 할일은 더 없구려.》

《아니, 당신 목소리가 왜 그렇게 떨려요. 울고있는게 아니예요. 네? 그렇지요?》

《아니, 아니요.》

《분명 울고있어요.》

최성덕은 손등에 눈물이 떨어지는것도 모르고있었다.

《그래, 울고있소. 그러나 나는 지금 슬퍼서 우는건 아니요. 나는 내가 죽어서 누울 자리를 찾은것 같소. 그것이 어데인가? 나의 아버님의 무덤옆이요. 나는 여기에 내 육신을 묻고 내 넋도 묻고싶단말이요. 당신도 알지 않소. 나의 전반생은 내가 넋을 깃들일데를 찾아다니지 않았소? 이번에 나는 여기서 그것을 찾아내였소. 그런데 어찌겠소. 여기는 나를 용납할만한 그런데가 아니거든. 만약 여기서 이 최성덕의 육신과 넋을 받아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여기에 남고싶소.》

너무나 격해서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있는지 정확히 가려낼수 없었다. 하지만 영민한 그의 안해는 혼란을 겪고있는 남편의 심리를 깊이 꿰뚫고있기나 한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았다.

《당신은 정말 한심하군요. 무슨 자꾸 죽는 소리만 하면서 그러세요. 지금 현재 육신과 넋이 그곳에 가있지 않아요. 도꾜에 있는 안재수선생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당신이 〈북한〉에 가있다고 여간만 노여워하지 않아요. 그리고 일전에 돈을 돌려보낸것때문에 몹시 언짢아하는것 같아요.》

《다시 전화가 오거든 그에게 똑똑히 말해주오. 나의 이북방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간참을 말라고. 또한 전번에 돈을 돌려보낸것으로 말하면, 그의 성의를 무시했다면 용서하라고 하시오. 대신 그 어떤 정치적부대조건이 있는 돈은 절대로 받을수 없소. 이전에 안재수가, 아니 야스가와상이 동정하던 그 최성덕은 이미 죽고 없소. 하지만 새로 태여난 최성덕 나는 자기 넋을 깃들일곳을 찾았소···》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전 아무 전화도 하지 않겠어요.》

《그건 왜?》

《너무 휘딱휘딱 뒤집히니 정신을 차릴수 있어요?》

《그래?》

그때였다. 초인종소리가 울리고 뒤미처 려관안내원이 문을 열었다.

《아, 전화중이시군요. 실례했습니다.》

《아니 들어오시오. 그런데 무슨 일로···》

최성덕은 송화구를 손으로 가리우며 돌아서는 안내원을 굳이 멈춰세웠다. 저쪽에서 《여보시오, 여보시오.》하는 안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잠간 기다리라 하고는 현동무를 향해 돌아섰다.

《기쁜 일이 생겨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말씀이 계셨는데 오늘 최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게 된답니다.》

《수령님께서 저를 접견하여주신다구요?》

《그렇습니다. 혹시 오늘 떠날 차비를 할것 같아 이렇게 일찌기··· 실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최성덕은 북받치는 격정을 누르지 못한채 안내원을 향해 진심으로 되는 경의를 표하였다. 안내원은 열시경에 허담비서와 윤숙경안내원이 오겠다고 했다는 말을 남기고는 들어오던 때와 같이 조용히 문밖으로 사라져갔다.

(수령님께서 나를 접견해주시다니?)

이 놀라운 소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제서야 똑똑히 깨달아졌다. 급기야 심장이 쿵쿵 뛰며 가슴이 벅찬 흥분으로 설레이기 시작하였다. 미심결에 허담비서에게 한마디 했던 그 요청이 이렇게도 빨리 현실로 실현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못하였다. 무엄하고 렴치없는 부탁인줄 알면서도 이 나라 인민들 누구나가 그렇게 흠모해마지 않고 례사로이 만나는 그분들이기에 자기의 간절한 심정을 터쳐놓았던것인데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 그걸 헤아려 주석님을 만나뵈옵게 하셨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는 이 기쁜 소식을 안해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송수화기를 거머쥐고 《여보시오, 여보시오!》 하고 상대방을 찾았다. 그러나 순간 이 사변적인 소식을 함부로 터놓아서는 안되겠다는 자제심이 머리를 쳐들었다. 대신 그는 안해에게 간단히 인사말을 전하고는 인차 전화를 끊어버렸다.

최성덕은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온몸의 힘이 발끝으로 모두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그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준비를 하였다.

세면장에 나가 깐깐히 면도를 하고 내의도 전부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접견석상을 상상해보니 꼼꼼히 생각해두어야 할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첫 인사를 어떻게 드려야 할것인가. 그런 후에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는가. 또 이러저러한 물음이 있을수도 있겠는데 그에 대해서도 즉흥적인 대답으로 되여서는 안될것이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명백하고 절실한것, 지어는 운명적이라고까지 할수 있었던것이 걷잡을수 없을만큼 모호하고 차요적이고 애매한것으로 생각돼가는것은 무엇때문인지.

그는 넥타이를 매려고 거울앞에 마주섰다. 손이 자꾸 떨려서 넥타이가 제대로 매여지지 않았다.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하거나 겸손을 부려서가 아니라 공정한 립장에서 투시해볼 때 어느 모로든 자기 최성덕이라는 인간은 김일성주석님의 접견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이런 영광이 자신에게 차례질수 있게 되였는가. 이곳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미루어보면 민족과 인민의 어버이이신 주석님께서는 한평생 인민들속에서 인민과 고락을 같이 하며 지내오시였기에 그이를 만나뵈옵는것이 별로 특이할것이 없는 평범한 일처럼 돼있다지만 최성덕의 경우에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것이다.

최성덕은 거울앞에서 목깃과 넥타이를 다시 꼼꼼히 만지고나서 방안을 거닐었다. 폭신한 연두색 주단을 밟을 때마다 상쾌한 기분이 온몸에 피여오른다. 다른한편 머리속에서는 그와 정반대로 죄스러운 감정이 지지누르고있다.

화합해낼수 없는 두개의 감정, 환희와 죄책이 몸을 불덩이처럼 달구면서 심장의 박동을 배가해주었다. 귀를 기울이면 박동소리가 풀떡풀떡 들리기까지 하였다.

그는 옷차림을 다 하고나서 진정제약을 먹었다. 그리고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방안을 천천히 거닐다가는 창가에 다가서서 무심히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눈을 내리감고나서 지난 생애를 더듬기도 하였다.

10시가 되자 려관으로 허담과 윤숙경이 찾아왔다.

《어이구, 이게 누구요!》

최성덕은 윤숙경의 손을 잡으며 환성을 질렀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병문안도 못하고 렴치없이 제 볼장만 보았습니다.》

최성덕은 천연스럽게 인사말을 하고있었지만 내심에는 칼로 어이는듯한 아픔을 느꼈다. 내키는대로 한다면 그앞에 펄썩 엎드려 《나를 죽여주오. 내가 당신의 남편을 살해한 장본인이요.》 하고 고백하고싶었다.

그런데 이런 내막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숙경은 전날과 다름없이 웃는 낯이였다.

《제가 오히려 미안합니다. 그간 안내를 해드리지 못해서···》

윤숙경은 살눈섭을 들어올리며 웃어보이였다. 며칠사이에 완전히 딴사람처럼 변한 최성덕을 보니 마냥 기뻤던것이다.

시간을 얼마간 지체한후에 그들은 목적지로 향하였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 그닥 넓지 않은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한껏 맑고 푸르러진 대동강물이 마당 한끝에서 흐르고있었다. 마당가녁에 길이 넘게 자란 산대추나무에는 빨간 열매가 조롱조롱 달리였는데 바람이 불적마다 무르익은 과일향기가 취할만치 강하게 풍기였다.

한 젊은이가 급히 다가오더니 수령님께서 루각에 계신다고 하면서 길안내를 하였다. 최성덕은 걸음을 멈추고 옷매무시를 살핀 다음 앞으로 꼿꼿이 걸어나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한순간전만 하여도 수령님께서 아직 꽤 멀리에 서계시리라고 생각하였었는데 불현듯 몇걸음앞에 나타나시여 최성덕을 향하여 손을 내들고계시지 않는가?

최성덕은 달리다싶이 다가가 그이의 손을 움켜잡았다.

《반갑습니다.》

우렁우렁한 음성이 머리우에서 들리였다.

《이국만리에서 찾아왔다니 수고했겠습니다.》

최성덕은 그이의 손을 꽉 잡아쥔채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잠시후에 그는 고개를 들고 인사를 올리였다.

《주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같은 사람을 친히 불러주시니 무엇이라고 인사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문안을 드립니다.》

그는 자세를 바로하고 크게 절을 하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팔을 잡아 등나무의자 있는데로 데리고가시였다.

《여기 앉아 이야기나 좀 나눕시다.》

굳이 앉기를 사양하고있는 그를 자신의 옆에 앉히신 수령님께서는 탁자우에 놓인 담배갑을 밀어주시였다.

《담배를 피우시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방안보다 여기가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허담과 윤숙경의 쪽을 향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네들은 이미 최성덕선생과 상면도 여러번하고 이야기도 많이 했겠는데 어떻습니까. 이번에 최선생이 우리한테 와서 볼일을 다 보도록 잘 도와드렸습니까? 부친의 묘에랑 같이 가보았습니까?》

허담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하려고 하자 그이께서는 손을 들어 앉으라고 하시였다. 그러자 그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인사를 차린 다음 말씀을 올리였다.

《성의껏 노력하느라 했습니다만 불편한 점이 많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부친의 묘에는 저도 같이 갔었습니다.》

《최선생!》

수령님께서는 최성덕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다시 그에게 말씀을 건네시였다.

《혹시 나무라운 점이 있어도 량해하시오. 주인구실을 잘못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본의는 아니고··· 》

《아니올시다. 이렇게 되면 저는 송구해서 앉아있을수가 없습니다. 만족합니다. 과분합니다. 사실말로 본인은 이 땅을 밟을 자격도 없고 체면도 없는 한갖 죄인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벌써부터 눈덕이 벌겋게 물든 최성덕은 의자의 팔걸이를 꽉 붙잡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저의 감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계시는 수령님앞에 머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북체제와 이북사람들 앞에 지은 죄로 해서 특히는 주석님앞에 서있을 자격이 없는 인간입니다. 이것은 과장한것도 아니고 부러 꾸민것도 아닙니다. 본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법에 따라 최고형을 받아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관용을 바란다 해도 용서받을수 없는것이라는것을 본인은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이렇게···》

그는 목이 메여 더 이상 뒤를 이어대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한껏 숙이였던 머리를 들어올릴수 있었다. 가슴속에서 오래동안 괴롭혀오던 떳떳치 못했던 과거와 순간에 결별한것 같았다. 이것이 70이 된 그의 한생의 총화였다.

《너무 이러지 마시오.》

수령님께서는 의자등받이에 허리를 기대면서 담배에 불을 다시였다.

《무엇때문에 우리가 유쾌하지 못한 과거를 헤집을 필요가 있습니까. 내가 오늘 최선생을 만나자고 한것은 지나간것을 묻고 따지자고 해서가 아니라 서로 만난김에 조선독립을 위해 한생 전력해오신 최영호선생에 대한 회포도 나누고 또 앞날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어볼가 해서 그랬던것입니다. 어쨌든 최선생은 자기 조국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가있다가 우리를 찾아온 손님입니다. 그래 손님을 맞는 주인이 자기 도리를 하는것이 그게 무슨 대단한것이겠습니까. 이왕 또 말이 난김에 한마디 한다면 우리앞에서 죄악이요 뭐요 하는데 그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크고 중하다 해도 이미 과거의 일이니 오늘이나 앞날의 일보다 더 중요할수는 없다는것입니다.》

최성덕은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수령님의 안광이 번개불처럼 번쩍번쩍 빛을 내뿜었다. 숭엄한 감정에 사로잡힌 최성덕은 다시 숙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이의 말씀에 귀기울였다.

《누구나 사람은 나서부터 한생을 보람있게 뜻이 있게 살기를 바랄것입니다.》

수령님의 말씀은 계속되였다.

《그러나 세상일이 다 뜻한대로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20대까지, 또 어떤 사람은 30대나 40대까지, 또 다른 사람은 한생을 다 보낼 때까지 보람과 뜻이 없이 사는수가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다 뜻하는대로 되지 못한다 해도 인생말년에 이를수록 반드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것은 마지막 부류에까지 속하는 사람으로는 되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는것을 나는 기억하고있습니다. 거짓말이 필요하다는것은 하루에도 몇번씩 느끼고 살아가지만 진리가 필요하다는것은 한생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말 말입니다. 우리는 한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것을 베고 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단 하루라도 진리에 의해 살았다는것으로 해서 이전의 모든것을 용서해야 할뿐아니라 지어 찬양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잠간 말씀을 끊으시고 최성덕을 쳐다보더니 그다음에는 윤숙경이와 허담을 차례로 둘러보시는것이였다.

최성덕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옳은 말씀이시였다. 론의할 여지없이 지당하시였다.

(그렇다면 나도 절망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바로 저기에 나의 생을 이어나갈 실마리가 있지 않는가.)

최성덕은 눈을 차츰 더 빛내이며 수령님을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러 쳐다보았다.

《그러면 최선생이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주장하는 진리를 한마디로 말해줄수 없는가 라고말입니다. 우리는 기탄없이 대답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리는 별로 복잡한것도 없고 또 오묘한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망국노의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데 의해서 얻은것으로서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중시주의, 인간중심주의라고 할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세상의 모든것중에서 사람을 제일 귀중히 여기고 인간을 사랑하라, 자기 민족을 사랑하라 그것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군사도 외교도 모두 인간을 사랑하고 동질의 인간집단인 민족을 사랑하는데서 출발하고 그것을 위한데로 귀결되여야 한다는것입니다. 우리는 3년간 미제를 물리치기 위한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때도 인간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인간과 민족을 맨 웃자리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자인 동시에 애국주의자이며 공산주의자입니다. 우리가 공산주의를 하는것도 구경에는 인간과 민족을 위한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사회에서 인간의 자주성이, 모든 사람들의 참다운 인간다운 권리가 최대한으로 보장될것으로 믿고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사회야말로 민족의 전체 성원이 누구나 다 고르롭게 잘살수 있다고 믿고있습니다. 우리 민족성원중에 잘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못사는 사람들도 있다면 그게 얼마나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일입니까. 우리는 민족을 떠난 공산주의를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민족이 있고야 공산주의도 가치있는것이지 민족을 무시하고서야 그게 무슨 소용있습니까. 민족을 무시한다는것은 우리자신, 자기자신도 무시해야 한다는것인데 자신을 무시하는 주의를 해선 뭘하겠습니까. 자고로 세상에는 수많은 사상과 주의주장과 리념이 있었고 또 있습니다. 그가운데서 신앙만 놓고봐도 예수교, 이슬람교, 불교도 있고 최선생과 적지 않은 조선사람이 신봉하는 천도교도 있습니다. 숭상하는 대상이 무엇이든, 표방하는 주장이 어떻든 그 모든것이 실천적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자기 민족을 사랑한다는 원칙을 배반하면 우리는 반대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그 존엄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손잡고 나아갈것입니다. 인간은 발로 서는 시대로부터 멀리 발전하여 이제는 머리로 산다고 주장할만치 높아진 리성의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누구든 높은 리성과 량심에 지배되여있다면 우리가 진리로 믿고있는 바로 그 리념에 대하여 깨닫게 되리라고 믿고있습니다. 자신이 인간이면서 인간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 인간을 증오하면서 물질을 숭배하거나 동물을 숭배하는것이 옳다고, 그것이 진리라고 한다면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은 마땅히 물질숭배(여기에는 경제숭배, 금전숭배 같은 개념이 다 포괄될것입니다.)나 동물숭배가 아니라 인간숭배, 인간애를 진리로 삼아야 합니다. 그밖에 다른 진리란 있을수 없습니다. 안그렇습니까? 그래 과연 인간이 물건이나 돈이나 짐승의 노예로 되는것이 진리일수야 없지 않습니까. 만물의 령장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허허허.》

수령님께서는 두손을 쩍 벌리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아무러한 수식도 없이 솔직하고 기탄없이 토로하시는 그 말씀에 최성덕은 그저 황홀해지기만 했다. 이분이야말로 실로 인간애의 화신이며 민족애의 화신이며 또한 진리의 화신이라는 느낌이 심장에 마쳐왔다. 70평생 그 어디에서도 이토록 사랑에 뜨거우신분, 진리에 명철하신분을 대한적 없는 최성덕이였다. 그 심장의 열도와 그 명철한 견해의 진리성앞에서 스스로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는 최대최고의 절세의 매혹적인 위인이 배달민족가운데서 배출되였음을 어찌하여 이리도 뒤늦게야 알았던가?!

최성덕은 그이를 황홀하게 쳐다보면서 자기가 어떤 좌석에서 어떤 몸가짐을 하고있는지 깡그리 잊고있었다. 다만 이때 그가 의식한것은 자기자신이 너무나 왜소하다는것, 또한 자기는 너무나 청맹과니였으며 또 지금껏 너무나 캄캄한 암흑속에 살고있었다는것이였다. 그는 세상을 직시할수 있는 눈이 비로소 생기는것 같이 느껴졌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허탈상태에 빠진 공간을 메꾸고도 남을수 있는 하나의 싹이 순간에 돋아났다. 그것은 인간의 위대한 태양이시며 민족의 아버지이신 김일성주석님을 모시고 따르면서 그 어떤 우상이 아니라 산 인간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여생을 바치는 애민, 애족, 애국의 길이 인생말년에나마 다행스럽게 찾은 진리의 길이라는것이였다.

이제 앞날이 한해가 될지 혹은 두세해가 될지 그것은 알수 없지만 그 길을 걷는다면 잘못 걸어온 길에서 잃어버린 모든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크나큰 보람이 있을것이였다.

최성덕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년륜이 뚜렷한 주름진 얼굴이 불그스름해지면서 티없이 맑고 순결한, 아무런 꾸밈도 없는 웃음이 피여난것이다.

그러나 그 미소는 한순간뿐이였다. 곁눈으로 윤숙경의 모습을 보게 된 순간 얼굴에 활짝 피여올랐던 미소가 홀연 지워지고말았다.

최성덕은 스스로 놀라며 주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갑자기 비장해진 목소리로 수령님께 말씀올리였다.

《주석님! 관대하신 주석님께서는 저의 과거를 모두 용서하여 주시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자리에서 또하나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기 앉아있는 저 윤숙경부인에게 본인이 직접 용서를 빌지 않을수 없습니다.》

최성덕은 무릎을 꺾으며 땅에 엎드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허담과 윤숙경이 재빨리 한쪽팔을 하나씩 붙잡았다. 그렇게 되여 엉거주춤하게 허리를 굽히게 된 최성덕은 지지눌리는 소리를 내였다.

《지리산유격대를 〈토벌〉할 때 본인은 군부에 있던 사람입니다. 윤숙경부인을 불행하게 만든 죄가 저에게 있습니다. 이자리에서 본인은 그 죄의 용서를 빌면서···》

목이 메여 다음말을 잇지 못하는데 온몸이 와들와들 떨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데 놀라신 수령님께서는 손짓을 하여 최성덕을 제지시키시였다.

《최선생, 과거이야기는 그만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와서 그것을 뒤져봤대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이라지 않습니까. 보다 중요한것은 앞날입니다. 그만하고 우리 점심이나 같이 합시다.》

지나치면 안되겠다는것을 깨달은 최성덕은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윤숙경의 표정이였다. 그는 이미 이 모든것을 알고있고 초월하고있었던 모양인지 아무런 충격도 나타내지 않았다. 다만 처음 만났을 때나 처절한 장면이 펼쳐진 지금에나 변함없이 선량한 미소를 짓고 《선생님, 이러지 마세요.》 하고 조용히 타이를뿐이였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려문 입술이 꽈리알처럼 충혈돼있다는것이였다.

서쪽으로 치우친 산기슭에 초대소의 아늑한 방이 있었다. 원탁에 점심이 차려졌다.

모두다 자리에 앉게 되였을 때 수령님께서 술잔을 들어올리시였다.

《자! 듭시다. 이 잔을 우선 최영호선생의 명복을 빌어 듭시다. 최영호선생은 화전이나 무송에 계실 때부터 조국광복을 위해 많은 로고를 기울인 애국렬사입니다. 자, 듭시다.》

최성덕이 들어올린 잔이 후두두 떨었다. 그이께서 하신 말씀이 너무나 강하게 가슴을 쳐서 팔이 사시나무떨듯 하였다. 최성덕은 주석님께서 먼저 드시기를 기다렸다가 잔을 가까스로 입술에 댔다. 불덩이같은것이 명치끝을 지지며 흘러내려갔다.

《유감스러운것은 강토의 허리가 끊어져 우리 민족이 아직 둘로 갈라진채 있는것입니다. 선렬들은 땅속에서도 우리를 몹시 꾸짖을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최성덕은 빈잔을 옆으로 밀어내놓고 말을 이었다.

《저같은 민족반역자가 있었기때문에 선렬들의 피를 헛되게 하였습니다. 맹세합니다.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을것이며···》

그는 숨이 꺽 막히고말았다.

난처해진 이편의 심리를 예민하게 감촉하신 수령님께서는 최성덕의 손을 잡아주며 흥분을 진정시키시였다.

《최선생! 이젠 이런 말은 그만하고 그동안 지낸 이야기나 들읍시다. 집을 떠나온지 퍼그나 됐는데 집에서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최성덕은 수령님을 경건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을 떼였다.

《오늘아침에 처하고 전화련락이 있었습니다. 집에다 전화를 걸었더니 로친이 하는 말이 북조선에서 보낸 쌀 2㎏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값은 보통쌀의 10배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쌀인데 그렇게 팔립니까?》

수령님께서는 의아해지셔서 물으시였다.

《다른게 아니고 여기서 남조선에 수재민구호물자로 보낸 쌀이 벌써 미국에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렇소?》

수령님께서는 상체를 뒤로 제치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방안이 찌렁찌렁 울리였다. 참말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통일념원이 알알이 스민 이야기이다. 그런 민족이기때문에 반드시 창창한 미래를 당겨올수 있다는 믿음으로 해서 그이께서는 명쾌한 웃음을 터치신것이였다. 그이의 웃음은 좌석의 모든 사람들을 휘말아넣었다.

《자!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합시다.》

수령님께서는 저가락으로 콩나물을 집으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가 이번에 남조선의 수재민에게 보낸 구호물자인도인수사업은 성공적으로 잘된것 같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모두 기뻐하고있습니다.》

그러자 최성덕이 말씀드리였다.

《저의 미흡한 생각에도 이번 그 사업은 우리 민족사에 특기할만 한 사변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단 40년어간에 첫 일로서 통일도상에 놓인 하나의 징검돌이라고 생각됩니다. 온 세계앞에 자랑할만 한 미거라고 보아집니다. 따라서 이북은 천금같이 귀중한 도덕적승리를 이룩하였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요.》

수령님께서는 손을 흔들어 최성덕의 말을 부정하시였다.

《그렇게만 보면 안됩니다. 그것은 우리 의도와는 어긋납니다. 지금 해외신문이나 외신에서 그렇게 보도하고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정확하게 리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소리입니다.》

최성덕은 얼떠름해졌다. 딴에는 진실을 말하노라고 했고 또 객관적반영이나 분석이 틀리지 않았으며 편견없이 이렇게 말해도 과오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있었다. 특히 그가 조심한것은 그이의 면전에서 허세를 만들거나 사실을 과장하는것과 같은것으로 해서 따분한 기분을 야기시키지 말아야 한다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놀라움을 보이고있는 최성덕의 팔을 붙잡고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오. 우리가 구호물자를 누구에게 보냈는가? 남조선 우리 동포에게 보냈습니다. 가령 쌍둥이형제중 어느 하나가 재난을 입어서 이쪽에서 저쪽에 얼마간의 쌀이나 천을 보내주었다면 그것이 자랑으로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의리로 보나 도덕으로 보나 응당한것입니다. 우리가 남조선동포가 아니라 외국에, 아프리카나 남미주나 어느 나라에 보냈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번 일을 놓고 단 한마디의 선전이나 자랑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사랑에는 말이나 선전이 필요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사랑속에 나서자라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어머니도 자기 자식한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게 자랐습니다. 최선생도 아마 그렇게 자랐을것입니다. 자! 이거 이야기가 자꾸 길어지는데 한잔씩 또 듭시다.》

그이께서는 잔을 권하시였다. 최성덕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담성을 발휘하였다.

《주석님! 제가 한잔 붓겠습니다. 주석님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들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좀 정정해서 우리모두라고 합시다. 그리고 또 우리의 소원인 통일,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위하여!》

웃음소리가 넘치는 가운데 쟁가당 하고 잔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허담도 잔을 들었다. 처음부터 줄곧 분위기를 지키고만있던 그였다. 그렇지만 한마디의 말씀도 올리지 못하였다. 그가 보고 듣고 느낀것은 모두 언어로 표현할수 없는 숭고한것이고 가슴이 벅찬것이였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마냥 감격의 파도가 설레였다. 드물지 않게 당하는것이지만 오늘따라 충격이 더 컸던것이다. 최성덕, 그는 오늘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빛발을 받아 캄캄칠야 암흑속에서 벗어날수 있었고 재생의 길에 들어설수 있게 되였다.

오! 사랑의 절정이며 극치인 김일성동지! 그이의 후계자이신 김정일동지! 인간에 대한 사랑의 정수를 사람마다에 안겨주시는 민족의 어버이···

전세기의 어느 한 고명한 유물론자는 생명체란 단백질의 존재방식이라고 정의하였다. 이것이 옳은것이라고 인정할수 있다면 리성물질인 인간의 생명을 사랑의 존재방식이라 말할수는 없을것인가. 생명이 단백질의 물질대사를 통하여 존재하는것처럼 인간은 사랑의 대사를 통해서 살아간다고 할수 있다.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주는것이 인간의 생존방식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인간이기를 그만두는것이며 결국은 초목이나 짐승과 같은것으로밖에 되지 못할것이다. 사랑의 힘, 그가 불러오는 정서, 열정, 의지, 신념 그것은 만능당인것이다. 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은 우리 전체 조선동포를 불패의 덩어리로 융합시킬것이며 철근으로 조밀하게 엮고 고강도세멘트를 다져 키높이 쌓아올린 분계선장벽도 뚫을것이며 무너뜨리고말것이다. 이것은 필연불가피의 법칙이다···

허담과 최성덕은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고 밖으로 나왔다.

승용차를 향해 걸어가던 최성덕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허담을 향해 돌아섰다. 그렇게 되자 허담도 의아한 시선을 보내면서 그와 마주섰다.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최성덕이 말을 떼였다.

《한가지 묻겠습니다.》하고 그는 근엄한 얼굴을 들고 계속하였다. 《방금 주석님께서는 애국렬사들을 위해서 무엇을 꾸린다고 하신것 같은데 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줄수 없겠습니까.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아 묻는것이니 량해하십시오.》

《아, 그렇습니까?》

허담은 안경을 밀어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말씀드리지요. 얼마전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평양에 애국렬사릉을 건립할데 대한 발기를 하시였습니다. 현재 우리 선렬들의 유골이 모두 각지에 널려있습니다. 국내에도 산지사방에 널려있고 또 해외에는 더 말할것도 없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것을 한데 모이게 하자는것입니다. 그 애국렬사릉은 평양교외에 건립하게 되는데 위치도 좋고 교통도 편리한 신미리라는곳입니다. 벌써 애국렬사릉에 모시게 될 선렬들의 명단이 초보적으로 작성되였습니다. 거기에는 최영호선생도 들어있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이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계십니다. 오늘도 애국렬사릉형성사판을 보실 예정이였는데 어찌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참 상상하기 어려운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선렬들을 귀중히 여긴다는것은 벌써 애국전통을 중시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인데 그것은 천만사람의 가슴에 드놀지 않는 지조와 신념을 심어놓게 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더구나 저의 부친이 그속에 있게 된다니···》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말았다.

허담은 미소를 짓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차에 오르십시오. 원하신다면 건설현장에 안내해드릴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보고 갔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최성덕은 눈물이 글썽해서 허담을 피뜩 쳐다보고나서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