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3

 

제 7 장

3

 

이튿날 아침.

김정일동지께서는 금수산의사당으로 향하시였다.

아침해빛이 눈부시게 차창을 비치였다. 길가에 늘어선 단풍나무들은 벌써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푸를 때는 푸른대로 여름정취를 한껏 풍기였는데 단풍들 때는 또 그대로 이채로운 가을정취가 넘치고있는것이다.

차는 서서히 금수산의사당 정원어구에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를 급히 세우라고 하시였다. 저쯤 바라보이는 숲속에서 수령님께서 때마침 아침산책을 하고계시였던것이다.

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수삼나무가 우거진 숲을 향해 걸어가시였다. 얼마쯤 가셨는데 수령님께서 걸음방향을 이쪽으로 돌리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발을 다그치시였다. 몇걸음앞까지 접근한 그이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산책은 계속되였다. 그닥 넓지 않은 길로 두분이 나란히 걸으시였다. 소나무와 수삼나무 숲이 엇바뀌여 나졌다. 맑은 공기가 흘러들면서 피부에 상쾌한 감을 주었다. 어데선가 송진내가 향긋이 풍기였다. 풀숲에는 이슬이 함뿍 맺혀있었다. 깔깔한 속새풀잎 한끝마다에 진주알같은것이 맺혔는데 거기에 해빛이 와닿아 찬란하게 무지개빛을 반사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먼저 무산광산실정에 대해서 말씀드리시였다.

《무산광산에서 철광석생산을 늘이는 문제가 점차 풀리기 시작한것 같습니다. 고윤학부총리동무가 현지에 내려가서 알아보고 아까 전화를 해왔는데 여러대의 착정기를 새로 들이밀수 있는 준비가 이미 끝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향성발파법이 성공되여 드디여 생산에서 은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떼놓고 그이께서는 그곳 당위원회에서 정치사업을 잘하여 생산을 높여나간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라고 하면서 몇가지 생동한 실례를 드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매우 흥미있는 일이라며 그 일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무산광산당위원회가 생산자대중을 일반적으로 대하지 않고 계층별, 부류별로 그리고 개별적대상별로 나누어 정치사업을 전개한것은 매우 좋은 경험이기때문에 그것을 생산단위의 당위원회들에서 일반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시였다. 동시에 현시기 당사업에서, 특히 생산단위 당사업에서 중요한것은 리론이나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제시된 리론이나 방법을 실천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는것이 결함이라고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남반부출신인 채광기사를 내세우고 그를 도와주어 의용군으로 총을 메고 혁명에 나섰던 그 길을 지금에도 줄기차게 걸어나가도록 한것은 전당이 모범받아야 할 미거라고 하시였다.

《우리가 왜 여기에 관심을 돌려야 하는가?》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두손을 앞으로 내드시였다.

《우리 조국은 이렇게 둘로 갈라져있소. 40년 가까이 갈라져있거든. 남북 3천리에 7천만이 사는데 어느 누구, 어느 가정 할것없이 조국이 분렬되였다는 이 비운으로 해서 고통받지 않는 사람이 없소. 이 고통과 불행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 다시말해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 여기에 우리는 모든것을 집중시켜야 하오. 강철 한t을 늘이는것도 벽돌 한장을 생산하는것도 모두 여기에 귀착되며 또 귀착시키도록 하여야 하는것이요. 의용군출신기사가 새 발파법연구를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마음에서 출발했다는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요. 이런 동무들을 모범으로, 전형으로 내세우고 찬양해야 하오.》

수령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사업을 더욱 심화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당사업을 계층별로, 부류별로 또는 개인당 건당으로 하는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가한 본인이나 그 가족과 후대들은 백두산에서 내뗀 광복의 길을 끝까지 걷도록 해야 하며 해방후 민주건설시기에 투쟁한 사람들이나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쟁참가자나 그 가족과 후대들은 그때의 그 기백으로 부모나 형제들, 남편이나 오빠, 언니들이 걷던 그 길을 지금에도 계속 딛고나가게 해야 한다, 남반부출신은 부모처자, 형제를 두고 집을 떠날 때 다진 그 맹세와 각오를 잊지 말며 그 길을 통일의 날까지 계속 가도록 하여야 한다.

《적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교활하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니요.》하고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시였다.

《적들은 우리 내부에서 분해작용을 일으키려고 갖은 음모를 다하고있소. 남반부출신들, 일본이나 해외에서 온 교포들, 복잡한 군중들을 우리 당두리에서 떼내려고 갖은 술책을 다 꾸미고있소. 적들은 심지어 과학자, 기술자, 인테리들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동요케 하려고 별의별 꿍꿍이를 꾸미고있거든. 우리가 당사업을 심화시키지 않는다면 극히 적은 세부에 의해서도 동요가 생길수 있고 구경에는 사회주의건설에 장애가 생길수 있소.》

이 대목에서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더는 심려하지 않으시도록 당사업의 현실태를 구체적으로 보고드려야겠다고 결심하시였다.

《그렇습니다.》하고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였다. 《그러나 우리 당은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추호의 빈틈도 없이 짜고들고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늘 말하는것이지만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외세요. 우리 조국이 분렬된것도 외세때문이며 조국통일의 장애도 역시 외세때문이요. 우리가 하나로 철통같이 단결하면 외세를 이길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현상태가 언제까지 연장될지 알수 없소.》

수령님께서는 계속해서 외세에 의한 불행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지구상에는 현재》하고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이때 그이의 눈에서는 번개불같은것이 날리였으며 반백이 된 머리카락은 세차게 흔들리였다.

《분렬로 인해서 고통받는 민족이 몇개 있소. 제국주의자들이 총포탄을 울리며 지나간 자리에는 민족적수난과 불행이 생겨나고있소. 그가운데서도 우리 조선은 가장 첨단에 서있다고 볼수 있을것이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과 식민주의 등 첨예한 갈등들이 우리에게 집중되여있어서 그것이 언제 힘의 대결로 전환될지 알수 없소. 전쟁의 뢰관은 항상 가열상태에 있소.

미제국주의자들은 20세기의 중심이 구라파였다면 다음세기의 중심은 아세아라고 찍어놓고 그에 대한 전략을 벌써부터 펼치고있소. 또한 그들은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저들의 방파제로 우리 조선과 일본을 써먹으려고 하고있소. 때문에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남조선을 내놓지 않으려고 하고있으며 이 점에서 그들은 필사적이요. 그러면 이런 립장에서 우리 나라의 통일전망은 어떠한가. 비관적인가? 가능성이 없는가? 이런 질문이 자연히 제기되고있소.》

잠간 동안이 생기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때 빛나는 시선으로 수령님을 바라보며 말씀을 올리였다.

《그에 대해서 우리는 이번에 좋은 본보기를 마련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옳소, 나도 바로 그 점을 중시하는거요.》

이렇게 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미 작정했던 다음순서의 보고를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시였다. 9월중순에 시작되였던 남조선수재민구호물자인도사업이 10월 4일까지 성과적으로 완전히 결속됨으로써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의 남조선동포형제들에 대한 혈육의 정이 얼마나 뜨겁고 절절한가 하는것이 세계 만방에 남김없이 표시되였다고 하면서 이 사업과 관련한 국제적반향에 대하여 보고올리시였다. 일본의 어느 한 신문은 《어떠한 외교적말공부도 사상선전도 이와 같은 호의와 동정의 표시와는 대비할수 없다. 아무리 완고하다 해도 북조선이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구호물자를 보내준것을 통해서 북조선의 능력을 세계에 과시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라고 론평하였으며 중국의 《인민일보》는 《이것은 쌍방이 오해와 불신을 가시고 더 많은 령역에서 접촉과 교류, 합작을 진행하는것이 전적으로 가능하며 또 이러한 교류와 합작을 발전시키는것이 서로의 리해를 더욱 증진시키고 기타 분야에서의 오해와 불신을 없앨수 있게 하리라는것을 말해준다.》고 하였다.

계속해서 김정일동지께서는 남조선주민들속에서의 반영도 말씀올리시였다. 서울 관악구의 한 주민이 《우리가 받은 구호품을 보통 쌀이나 천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북에서 보내온 쌀은 옥단지에 넣고 옷감은 비단보에 싸서 소중히 보관하여 대를 이어 물리겠다.》고 한 말을 비롯하여 이와 류사한 반영을 몇건 더 말씀드리고나서 서울의 어느 한 신문기자는 《민족분단 40여년만에 처음 있은 력사적대사변》이라고 말하고 《이 사건으로 해서 전국민에게 상상하기 어려울만치 큰 정치적효과를 주었다.》라고 첨부하였다는 소식도 말씀드렸다.

김정일동지의 말씀이 끝나자 수령님께서는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며 말씀하시였다.

《수고했소. 수고했소.》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소나무숲속을 찌렁 울리였다. 그와 함께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두세번 끄덕이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돌파구가 열렸소! 돌파구가! 아무리 분단의 장벽이 두껍고 견고하다 해도 구멍은 뚫렸소. 이제 그 장벽은 무너지고야말것이요. 당에서 이번에 큰 일을 했소. 지난 기간 수십차례에 걸쳐 시도했지만 끝내 달성할수 없었던것을 이번에 실현시켰소. 이런것을 두고 기적이라고 하지.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전환시킨것을 기적이라고 하니까.

이런 사실을 두고 통일문제도 비관적이 아니라 락관적이라고 말할수 있소. 다시말하면 암운이 비꼈던 통일도상의 앞길에 푸른 하늘이 비끼기 시작한셈이요! 푸른 하늘이 비끼였소!》

하고 격정에 넘쳐 감회깊게 외우시던 수령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누구나 다 알고있는 일이지만 남조선의 력대통치자들은 례외없이 통일을 반대하고있소. 현재 전두환을 제5대라고 하지만 그들모두가 그렇고 대가 넘어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있소. 리승만보다 박정희가 더했고 박정희보다는 전두환이 더 악질적으로 조국통일을 반대하고있소. 그러나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괴뢰들의 의사와는 달리 인민들의 통일열의는 쉬임없이 앙양되고있으며 이제는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수 없게 강렬해졌소. 그 물질적증거가 이번 수재민구호물자인도인수에서 나타났던것이요. 앞으로 있게 될 통일도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것은 뻔하오. 남조선집권자들은 마지막순간까지 한사코 반대할것이요. 그러나 자주적으로 살려는 전체 조선인민의 통일열망을 막지 못할것이요. 물론 이번에 우리가 보내준 구호물자는 우리의 마음에 비하면 많지 않소. 국제적십자사의 어느 누군가가 말했듯이 적십자사가 생겨서 한세기가 넘는 어간 이번처럼 구호물자량이 많아보기는 처음이라고 했지만 전례는 어떻든간에 우리가 보낸것은 결코 많은것이 아니요.

우리는 다만 같은 겨레로서 동족이 입은 재난을 성의껏 도와주자고 했을뿐이요. 우리는 오직 쌀과 천, 세멘트를 보내면서 혈육의 정과 동포애를 생각한것외 아무것도 없소.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의도한대로 된것 같소. 난 만족하오.》

수령님께서는 다시한번 오른손을 들었다놓으며 온 얼굴에 웃음을 지으시였다. 수령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명심해듣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물기가 도는 눈길을 아래로 숙이시였다.

걸음은 다시 계속되였다. 아침해빛은 숲속을 엇가로 꿰지르며 나갔다. 희고 투명한것이 나무그루사이에 직선을 그어놓았다. 땅우에서는 물안개가 천천히 피여오르면서 소나무잎에 달린 물방울을 어루만지고있다. 물방울들은 무지개빛이 령롱하였다.

수령님께서 한걸음 앞서시고 뒤에 김정일동지께서 따라가시였다. 오래동안 계속된 침묵을 깨치며 김정일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당에서는 앞으로 조국통일문제를 더욱 적극 벌려나가려고 합니다.》

《좋소. 찬성이요.》

수령님께서는 이때도 말로 표현하는것에 비해 몇배, 몇십배 웅심깊은 구상이 있다는것을 간파하고 흔연히 동의를 표시하시였다. 그리고 계속하시였다.

《적극적으로 내밀어볼 필요가 있소. 그리고 천리길도 한걸음씩 떼서 간다는데 참을성있게 해야 하오. 그건 그렇고. 미국에서 왔다는 교포 최성덕이 지금 뭘하고있소?》

《시간이 있다면 오늘 만나실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에 앉아 집무실로 향하시였다. 가로수들이 언뜩언뜩 지나갔다. 이미 습관된대로 이제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동안에 있을 일에 대하여 쭉 더듬어보시였다. 아침에 간단히 책임일군들과의 협의회를 하고 낮에는 평북 락원기계공장으로 떠나갈것이며 밤에는 평북도당에 들려 당사상사업을 개선할 방도를 탐구해야 할것이였다. 사색은 광야를 내닫고있었다. 구름처럼 피여오르는 사업대상에 대한 환상과 함께 차창유리에 수령님의 얼굴이 언뜩 나타났다. 《수고했소. 만족하오.》 하고 말씀하시던 그때의 영상이였다. 어떻게 하면 그런 기쁨을 자주 그리고 영원히 안겨드릴수 있을가. 이번 사업은 당건설과 사회주의건설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가운데서 결코 큰몫을 차지한다고 볼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갈라진 조국을 하나로 합치는 성스러운 위업에 직접적으로 련결되여있다는것으로 해서 그렇게 기뻐하시는것이다. 궂은비 내리는 날밤 옷을 흠빡 적시면서 정원을 거닐으시였다. 남조선동포들이 당하게 될 재난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던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 심려를 얼마간이라도 덜어드린것으로 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셨다.

지금 세계에는 200에 가까운 크고작은 나라가 살고있다. 매개 나라와 민족들은 자기에게 지어진 운명을 따라 살아가면서 모지른 생활파고를 타고넘으며 각기 제나름의 흥망성쇠의 양상을 보이고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동방일각에 자리잡은 고구려의 후손, 조선민족은 인류가 당한 온갖 고통과 압제를 다 맛보면서 뚜렷한 하나의 력사적흔적을 남기였다. 동방근대사의 초점은 항상 조선문제를 둘러싸고 이루어졌으며 현재에 와서도 역시 그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청나라, 아라사, 일본간에 끊임없이 일어난 열전, 분쟁, 대립, 마찰, 분규와 혹은 동맹, 련합, 련계는 언제나 조선을 누구의것으로 하는가를 놓고 만들어지군 하였다. 때문에 자주성을 잃어버린 조선은 예속, 종속이 아니면 사대를 하면서 살아야 했었다. 특히 무능부패했던 리조 500년간은 치욕에 치욕을 거듭하면서 살아야 했었다. 그러나 통치배들의 유약성에 반하여 인민들은 자기 민족의 존엄과 자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전대미문의 애국애족의 정신을 발휘하였다. 그가운데서도 일제식민지통치를 쳐물리치기 위하여 20년간의 혁명전쟁과 그를 조직적으로 령도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업적은 조선민족사상에 특기할만 한 업적으로 된다. 그런데 그 조국광복의 성업은 중도에 끊어진채 아직 이어지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수령님의 얼굴에는 항상 시름이 어려있으며 방금전처럼 기뻐서 웃으시는 경우에도 그 어느 한구석에는 고뇌의 빛을 감추지 못하시는것이다. 그런 과정에 머리는 반백이 되였다. 어떻게 하면 그 심려, 그 고뇌를 완전히 지워드릴수 있을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에서 고개를 돌려 무릎우에 시선을 떨구시였다. 비록 큰것은 아니였다 하더라도 오늘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남조선수재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주었다는것을 놓고보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며 그것으로 해서 수령님앞에 죄스러운 점이 더 크게 자리잡고있는것이다. 그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큰 일을 더 많이 할수는 없었단말인가. 조국통일을 크게 한걸음 내딛게 할수는 없었는가···

그이께서 고개를 들었을 때 이번에는 어린 시절에 마지막으로 뵈옵던 어머님의 얼굴이 언뜩 떠오르시였다. 뒤이어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조국광복을 끝까지···》라는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듯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슴이 섬찍해서 손을 거기에 가져다대시였다. 그와 함께 눈굽이 뜨거워나서 견딜수 없으시였다.

《좀더 빨리 갑시다. 오늘 일과가 긴장하니까.》

승용차는 살같이 거리중심을 향해 내달았다. 손잡이를 다그어쥔 그이의 줌안에는 땀이 질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