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1

 

제 7 장

1

 

려객렬차가 철산역 홈에 서서히 들어서고있었다. 승강대에 바투 나섰던 한남준은 기차가 채 멎기도전에 훌쩍 뛰여내렸다. 그통에 꽛꽛한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어깨에 걸치였던 멜가방이 잉어뜀을 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한남준은 바람처럼 달려가 차표를 내주고 나들문으로 빠져나왔다.

《아! 이거 한동무!》

사택거리로 곧장 나가려고 하는데 어깨를 철썩 갈기며 팔을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평양에서 지금 오는가?》

《어?》

한남준은 고개를 돌리였다. 제1광구 운수대에 있는 같은또래 제대군인 오동무였다.

《지금 너희 집에서는 큰 소동이다. 잔치날이 오늘인데 신랑자가 나타나지 않는다구.》

《그래? 나대신 너라도 가면 될게 아니야?》

《에익 익살군!》

《흐흐흐.》

머리와 어깨를 야단스럽게 흔드는것도 볼만하지만 그의 눈에서 뿜고있는 거만스러운 빛 그리고 온 세상 모든것을 제압해버릴것 같은 그 기세는 참으로 대단하였다. 평양이 어떻든가고 재차 묻자 평양은 잠간 거쳤을뿐 자기는 개성에 가있었고 분계선을 넘어 대성동이라는데까지 갔었다는것을 밝히였다.

《그래 쌀을 싣고갔단말이지.》

《여부가 있나. 차에 턱 앉아 야야 다 비켜라 구호물자 실은 무산광산 한남준이 나간다 했지. 그러니 길이 쫙 열리지 않겠어. 양키놈들이 슬슬 길을 비키고 괴뢰군들도 비실비실 피하겠지. 그래 빵빵! 경적을 울리며 냅다 군사분계선을 짓뭉개며 나가는데, 에라 사람이 났던 보람이 있더란말일세!》

한남준은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치기도 하고 손길을 들어 앞으로 쭉 밀고나가는 시늉도 해보이였다. 그는 기분이 잔뜩 떠있었다.

《과연 네가 사내대장부로다. 무턱대고 집을 떠나 평양에 올라가더니 자동차를 받아가지고 남조선에까지 갔다왔으니.》

《여, 여! 그쯤한걸 가지고 뭘 그렇게 비행길 태워.》

잠간사이에 사람들이 모여왔다. 수십명 남녀가 한남준을 구경하는것이였다. 계속해서 한남준이 대성동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잠간 하였는데 기차손님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홀연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 그는 색안경을 훌쩍 벗어 머리우에 내흔들며 《이만합시다. 나 좀 바쁜 일이 있는데요. 내 이제 장가를 가야하니까요. 량해하시오. 다시 만납시다.》라고 하였다. 그통에 군중이 와하- 웃음을 터치였다.

《걸작이군, 그 친구!》

《진짜 저 친구 남조선에 가긴 갔댔는가?》

《아니 텔레비를 못봤어? 구호미를 싣고가는 자동차에 탄 저 친구 얼굴이 나왔다는거야. 판문점으로 나가는 그 수송대에 끼였다지 않아.》

한남준은 언덕길을 따라 올리달았다. 이마에 땀이 번지고 숨이 찼지만 그냥 뛰였다. 그가 자기 집근처에 이르자 콩나물시루를 들고나오던 아낙네 하나가 소리를 쳤다.

《신랑이 왔소!》

《아니, 뭐 신랑이 왔다구.》

《에그나.》

치마에 물묻은 손을 문대는 녀인, 송편을 빚다가 그대로 들고 나온 녀인, 국자를 들고 휘두르는 녀인들이 왁작 떠들어대였다.

《야, 너 정신있니?》

그것은 한남준의 어머니였다.

《정신있게다 잔치날에 딱 맞추어 정시 도착했지요.》

한남준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빙그르르 한바퀴 돈다. 그통에 둘러섰던 아낙네들이 일제히 까르르 웃음을 터치였다.

《어머닌 잘난 아들 뒀으니까 얼마나 행복한가 보라요. 모두가 우릴 부러워하고있어요. 그렇지요?》

《야, 야, 너 기다리노라고 간이 바삭바삭 다 말랐다.》

이렇게 인사차림을 하고나서 그는 방안에 들어가 첫날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지은 옷인데 모두가 고급이였다. 알릴듯말듯하게 줄무늬가 간 모직제낀옷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연한 곤색이였다. 넥타이는 엇가로 붉은줄이 쭉쭉 건너갔는데 손맛이 말큰말큰하면서도 쥐였다놓으면 파딱파딱 일어났다. 구두도 신형인데 앞코가 귀염성스럽게 생기였다. 옷차림이 끝나자 가슴에 달린 붉은꽃을 손가락끝으로 툭툭 건드려보았다. 낯이 화끈 달아오르면서 어쩐지 좀 어색하였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옷차림이 다 끝나자 그는 광산 사무실에 잠간 다녀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아니 얘야, 아버지가 3시에 내려오면 인차 상을 받게 하자고 했는데.》

어머니가 따라나오며 또 무슨 재구를 치지 않을가 념려하였다.

《어머니, 걱정마세요. 여기서 상을 받는 시간은 오후 5시입니다. 이제 내가 사무실에 나가서 정무원에서 오신 고윤학부총리동지를 모시고 오겠어요. 어머니, 아시지요. 우리 약혼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축하를 전달하기 위하여 오셨던 그분말입니다. 내가 이번에 평양가서 고윤학부총리동지의 방조를 받아 구호미를 싣고 남조선에 나갔던겁니다. 오다가 들리니까 여기로 출장을 떠났다고 했어요. 알만하지요?》

《에그. 난 모르겠다. 어떻게나 볶아대는지.》

한남준은 광산사무실로 가기전에 먼저 순희한테 들렸다.

순희네 집에서도 왁작 끓었다. 떡을 빚고 지짐을 지지는것은 물론이고 신부치장이 요란하였다. 넓다란 방 한가운데 순희를 앉혀놓고 젊은 색시와 처녀동무들이 빙 둘러앉았다. 신부에게 손을 대는것은 이곳 미용사들가운데서 제일 솜씨가 있다고 하는 《안경쟁이》였다. 금테안경을 이쁘장한 코등에 살짝 올려놓은 30대녀인은 수십가지 미용도구를 보란듯이 방바닥에 펼쳐놓고 3면거울앞에 앉힌 순희를 장난감다루듯 하고있다. 좀 와디디하게 머리를 부풀게 하라나 아니면 알릴듯말듯 멋을 내면서 인테리풍으로 세련미를 보이라나, 다수가 좋다는대로 하겠다고 토론에 붙이였다. 입은 모두 정당성을 말한다는 격언과 같이 중구난방으로 의견을 내뜨리는데 그것은 혼란에 혼란을 가져왔다. 류행이 어떻다느니 얼굴생김새를 살리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느니 언제나 소박한것이 가장 높은 급의 멋이라느니 등등이였다. 그때 한남진이 나타났다.

《신랑이 왔다!》하고 부엌에서 방안에서 떠드는데 누군가가 신랑이 혼자서 뎅그렁 오는 법이 어데 있는냐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우시군 하나 보이지 않았다. 또 신부를 실어갈 승용차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계없이 한남준은 신부차림을 하고있는 방문을 쩍 열어제끼고 《순희! 나 좀 보자.》하였다. 방안아낙네들이 눈이 둥그래졌다. 정황분별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한남준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보였기때문이다.

잠간 머밋머밋하다가 순희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문밖으로 나갔다.

《순희, 나하구 같이 광산 사무실에 제꺽 갔다와야겠어.》

한남준은 처녀의 팔목을 우쩍 다그어쥐였다.

《건 왜요?》

《가면서 말하지. 시간이 급해.》

《이 모양하고 어떻게.》

《치장을 안해도 곱기만 하다. 한남준이 곱다면 다지 누구 눈치볼거나 있어.》

하는수없이 순희는 방안에 되돌아들어가 대강 몸차림을 하고 한남준을 따라나섰다. 일보러 왔던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정상에서 벗어난 신랑자의 행동을 보며 모두 의아쩍은 표정을 지었다.

한길에 나서자 가고오는 사람들이 모두 신랑신부차림인 그들에게 시선을 보내였다. 한남준은 미광염이 있는데 와서야 순희에게 말하였다.

《순희! 우리 둘이 직접 고윤학동지를 만나 결혼식에 초청하자는거야. 부총리동지를 알만하지?》

《알겠어요.》

순희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거치른 한남준의 행동이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마음을 끄는것이다.

한남준이 행정청사에 들어가 물어보니 고윤학은 방금전에 제3광구에서 진행하는 시험발파현장으로 떠났다고 하였다. 발파현장에 가자면 자동차길로 10리이상 가야 했다.

그는 순희를 앞세우고 구배길을 걷다가 그쪽으로 올라가는 중량차를 잡아탔다. 두루두루해서 한 30분은 실히 걸렸는데 현장에서는 벌써 준비가 끝나고 시험발파에 대한 설명을 하고있었다. 폭이 약 4m, 높이가 2m나 될 직관물앞에 아버지 한영도가 지시봉을 들고 서있었다. 그 두리에는 숱한 사람들이 새까맣게 둘러서서 설명을 듣고있다.

사방에서 나팔소리가 나고 봉우리마다에서 붉은기를 들고 신호를 하였다. 고성기에서는 어느 지점에서 대발파가 있으니 어느 작업장, 어느 구역, 어느 통로들에서 30분간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해야겠다고 하였다.

한남준도 차에서 내려 비탈진 버럭더미로 급히 달려내려갔다. 정작 현장에 와보니 자기네 결혼식따위는 문제가 아니고 이 철광산의 기술혁신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판가리대목이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배려에 의해서 다시 시작한 지향성발파가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것이 결판이 날 시각이였다. 한영도는 그간 많은 고심을 했었다. 몇해를 두고 막대한 로력과 재정을 써가면서도 계속 실패를 거듭하던것이 이번에는 어떻게 될것인가.

한남준은 휴대용확성기를 들고 설명을 하고있는 아버지를 똑똑히 바라보기 위해 맞은켠언덕에 올라섰다. 아버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랭철한 음성으로 또박또박 한점씩 짚어나갔다.

《···때문에 이번 지향성시험발파에서 우리가 시도한것은 두개의 방향으로 폭발물을 옮겨가자는것입니다. 제1방향은 박토 1만t인데 현재 우리가 선 위치에서 동쪽웅뎅이고 제2방향은 광석 9만t 그것은 반대쪽웅뎅이입니다. 총량은 10만t, 오늘 이것은 사실상 대발파라고는 할수 없고 정확히 구분하면 중발파정도라고나 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성공하면 30만이나 그이상의 것도 가능하다는것이 실증되게 됩니다.》

한영도는 말하는 과정에 차츰 열이 올라 옆에서 지키고있는 고윤학에게도 신심을 안겨주었다.

고윤학은 설명을 다 듣고나서 그러면 곧 발파를 해보자고 재촉하였다. 그렇게 되자 이곳 지배인은 이 뜻깊은 발파의 스위치를 고윤학이 눌러야겠다고 제기하였다.

고윤학은 들고온 스위치를 한영도에게 넘겨주며 정색해서 말하는것이였다.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이건 전적으로 기사동무의 몫이요. 난 여기에 끼울 자격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한영도는 두세번 거절하였다.

《그러니 결국 동무는 이번에도 신심이 없어 그러는거나 아닙니까?》

고윤학은 우정 걸고드는 투로 말했다.

한영도는 피뜩 고윤학을 쳐다보고나서 대답하였다.

《신심이 있기때문에 권하는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남몰래 해치울것입니다.》

그것은 진심이였다.

둘러섰던 사람들이 모두 고윤학에게 권고하였다. 군중의 요구에 못이겨 고윤학은 스위치통 있는데로 한영도를 끌고가더니 스위치를 어떻게 돌리면 되는가고 물었다. 한영도가 설명을 하자 고윤학은 개페기손잡이를 삑 돌려놓았다.

그 순간이였다. 요란한 폭음이 울리였다. 산봉우리 한옆이 동쪽으로 뭉청 떨어져나갔다. 그와 함께 메아리가 철산봉을 두드리는데 두번째의 폭음이 또 일었다. 이번에는 반대쪽이 떨어져 웅뎅이로 훌쩍 옮겨앉았다. 그것은 불과 몇초 사이에 벌어진 변화였다. 스위치통옆에 지키고섰던 한영도가 차츰 앞으로 기울어지더니 끝내 중심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망원경을 들기는 했지만 그것을 쓰지 않고 줄곧 한영도만 지키고있던 고윤학이 당황해서 손을 뻗치였다.

그때였다. 주위에 모여섰던 사람들이 만세의 환호성을 지르는것과 함께 《성공이다!》하고 웨치였다.

그때에야 고윤학이 고개를 들었다. 대피했던 사람들이 산봉우리마다에 올라서서 손을 흔들고 발을 굴렀다. 이번에는 사람들의 감격이 폭발한것이다. 환호성은 철산봉정수리를 후려치고 속새골쪽으로 파도쳐나갔다. 두번, 세번, 네번 물결쳐나갔다.

고윤학이 땅에 주저앉은 한영도를 들어일구고있을 때 한남준이 달려왔다.

《일어나오. 성공이요!》

고윤학이 목메여 웨치는데 한영도는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떨면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한남준이 달려들어 팔을 들어일구려고 하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고윤학은 한남준을 밀어내였다.

《가만 놔두오. 너무 감격해서 그러는것 같소. 울어도 좋고, 웃어도 좋고, 이런때는 가만둬두는것이 제일 좋소.》

그러나 군중들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젊은축들이 달려들어 공기돌 다루듯이 공중높이 들었다놓군 하였다. 한참동안 그러고있는데 꽃을 든 사람들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꽃걸이를 목에 걸어주더니 다음에는 꽃다발을 가슴에 안겨주었다. 그다음에는 연방 꽃다발이 날아들어 온몸이 꽃에 묻히고말았다.

한남준이와 순희는 넋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있었다.

경보해제나팔소리가 나고 고성기에서 10만t시험발파가 성공됐다는 소식이 울리였다.

모여섰던 군중들이 다 흩어지고 실무일군들만 몇명 남게 되였다.

그때 얼굴이 시뻘겋게 된 한남준이 고윤학이앞으로 다가갔다.

고윤학은 그때에야 그를 알아보고 어깨를 철썩 갈기며 소리쳤다.

《잘 다녀왔나? 이 비위때기, 발파에 성공하고 또 결혼식, 복이 한꺼번에 막 쏟아지누만. 축하하오. 부디 행복하시오.》

20여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였다. 뭇사람들의 시선이 코가 큼직한 한남준에게 쏠려있었고 한영도는 아들옆에 어색하게 붙어있었다.

한남준은 거듭 머리를 숙이면서 손건사를 하지 못해 앞으로 맞잡았다. 뒤로 가져갔다 하였다. 그러다가 고윤학이 인사차림을 끝냈다고 보아질무렵 고개를 번쩍 들고 말을 떼였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둘이는 결혼식에 부총리동지를 초청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간절한 부탁입니다. 꼭 참석해주십시오.》

한남준은 처녀의 팔을 툭 건드리고나서 먼저 머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였다. 뒤이어 처녀가 또 같은 식으로 인사를 하였다.

《감사하오. 감사해. 그런데 어찌겠소. 솔직히 말하면 사업이 바빠서 약속을 못하겠는걸.》

《우리는 밤을 새면서라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소? 이렇게 축하하면 되지. 난 밤 10시차로 평양에 올라가야 하니까.》

《그렇습니까, 사정이 정 그러시다면 할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데서나 인사차림을 해야겠습니다.》

인사차림이란 도대체 어떤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지켜보는데 한남준은 바지뒤주머니에서 삼로주 한병을 훌쩍 꺼내였다. 이발로 마개를 뽑아치운 그는 염낭에서 유리잔을 꺼내 순희에게 넘겨주었다. 한남준은 인삼이 들어있는가를 확인이나 하는것처럼 병을 들어 비쳐보더니 순희가 들고있는 잔에다 부었다. 눈치빠른 순희는 긴살눈섭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잔을 고윤학이앞에 들어올리였다.

《신랑신부가 드립니다. 이 잔을 들고 건강하십시오.》

《허어!》

고윤학은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좌우를 둘러본다. 모두다 들어야 한다고 손짓을 하며 야단이다.

《한기사동무! 동무는 정말 훌륭한 아들을 두었소. 나는 얼마전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구호물자를 실은 자동차들이 분계선을 넘어가는 장면실황중계를 보았댔소. 그때 한남준동무가 자동차를 모는 장면을 본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르오.》

고윤학은 유리잔을 높이 들고 어깨를 흔들었다. 그통에 술이 넘쳐나 손목에서 뚝뚝 떨어졌다.

《축하를 받아야지요.》

《쭉 마시십시오.》

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덩달아 한마디씩 하였다.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게 된 고윤학이 술을 쭉 들이켰다. 얼굴이 장미꽃처럼 활짝 밝아진 순희에게 잔을 돌려주자 한남준은 또 병을 기울이였다.

《이제 두잔 더 들어야 책임량을 하게 됩니다.》

한남준은 또 드리라고 순희를 꼬드기였다.

《아니, 이래서는 안돼, 이제 곧 해야 할 회의가 파탄돼.》

《축하를 하다가 마는 법이 어데 있습니까. 죽은 사람도 술은 석잔이라는데 어서 드십시오.》

《동무 정말 냅다 미는데는 불도젤 한가지야. 그럼 동무네 결혼식과 함께 의용군가정에 행복이 있기를 바래서 들겠소. 조국통일을 위해서 들겠소.》

고윤학은 연거퍼 두잔을 다 받아마셨다.

신랑도 신부도 그리고 한영도도 목구멍으로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잠시 말을 못하고 서있었다.

《감사합니다.》

한남준이 두발을 모으고 경례를 하였다. 이렇게 되여 아닌밤중에 홍두깨식 《결혼축하》가 있은후 모두 사무실로 내려갔다.

한껏 마음이 흡족해진 한남준은 점점 더 범잡은 포수처럼 기세를 올리였다. 자기 집에 달려간 그는 둘러리를 앞세우고 아버지도 같이 가자고 하였다.

《야,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가는데 아버지가 같이 가는 법이 어디 있니.》

한영도는 손을 내흔들었다.

《아버지! 법이야 사람이 만드는거 아닙니까. 친척이 가야 한다는데 하나도 없는 친척을 어데서 데려옵니까. 가십시다. 의용군가정에 행복이 있으란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의용군 본인이 가는것이 왜 나쁩니까?》

《옳다. 네 말도 비슷하다. 가자.》

이렇게 되여 케케묵은 격식이 깨지고말았다. 온 무산거리가 들썽하게 3대의 승용차가 줄지어 빙빙 돌았다.

해질녘에 신부를 데려온 한기사네 집에서는 밤이 깊도록 노래와 춤이 그치지 않았다.

손님이 점점 불어나 방안에서 마당으로 나왔다. 추녀끝에 전등을 가설하고 춤을 추었다. 손풍금수가 거나하게 취해서 4분의 3박자를 멋들어지게 살려내고있다.

《쿵짝작, 쿵짝작.》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

 

신랑신부가 한복판에 나왔다. 원래 순희는 무용소조원이였다. 매미날개같은 치마가 민틋한 허리와 아래도리를 휘감고 돌아가면서 한송이 꽃같은 그의 얼굴을 황홀하게 부각하고있다. 앵두알같은 입술이 전등불에 비치고 행복에 취한 눈이 자기 짝 한남준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고있다. 그러나 신랑은 그와 정반대였다. 꽛꽛한 팔다리는 춤이 아니라 보건체조동작 비슷하게 움직이였다. 하지만 제딴에 흥에 겨워 《윽윽》 소리를 치는데 그것만을 뚝 떼여서 듣는다면 포수를 도와주는 몰이군이 메돼지를 모는 소리와 흡사한것이였다. 그는 땅이 꺼지게 뛰였다 떨어지기도 하고 팔다리를 비비꼬면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한기사네 령감로친네도 끌어내였다. 한영도는 음악도 좋아안했고 춤도 추어본 일이 없었다.

《좋다! 좋지!》

로축들이 팔을 들어 흔들며 한영도에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흠뻑 취해서 허리건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영도가 입을 크게 벌리고 팔을 휘두른다. 그통에 절반이상 빠져 달아난 번대머리가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두팔이 건덩건덩 흔들리고있다. 비척거리며 사람들틈으로 걸어나가던 그가 앞으로 꼬꾸라지려고 할 때 그의 안해가 허리를 덥석 그러안았다. 그렇게 되여 부부가 함께 땅에 굴렀다. 구경군들이 박장을 치며 웃어대였다. 그러나 한영도는 다시 일어나 《행복이란 이런것인가?》하고 입속말로 혼자 중얼거렸다.

이때 한바탕 춤을 추고난 한남준이 땀을 씻기 위해 손수건을 꺼냈는데 그속에서 반짝거리는 시계줄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무심결에 시계줄을 집어들게 된 그는 문득 대성동에서 만났던 《동아일보》기자를 회상하게 되였고 그가 마지막으로 부탁하던 말이 떠올라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기자는 이걸 그에게 넘겨주며 꼭 아버지한테 전하라고, 그러면 아버지가 기뻐할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한남준은 그가 황황히 도망치듯 사라진 다음에야 무엇인가 뇌리를 치는 예감에 흠칫 놀라 눈이 둥그래졌다. 혹시 그 《동아일보》기자가 그토록 소식몰라 애타게 그리워하는 삼촌이 아닐가. 그는 다급한 마음으로 그 기자를 다시 찾아보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혼탁이 되여 돌아가는속에서 종시 그 사람의 행적을 찾을수 없었다. 그때야 비로소 한남준은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다.

그런데 그 시계줄에 대한 생각이 이제 비로소 되살아난것이다. 그는 시계줄을 줌안에 넣고 술기운이 거나해서 마당가에 나와 서있는 한영도에게로 다가갔다.

《아버지, 나좀 봐요.》

한영도는 그가 이끄는대로 마당 한쪽옆으로 따라나왔다. 한남준은 아버지에게 손에 들고온 시계줄을 내보였다.

《이걸 좀 봐요.》

《그게 뭔데?》

《이번에 구호미를 싣고갔던 기념품입니다.···》

한영도는 아들의 손바닥우에 놓인 시계줄을 잠간 들여다보다가 그것을 덥석 움켜쥐면서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이거 너 어디서 났냐?》

《나와 만난 남조선 〈동아일보〉기자라는 사람이 이걸 아버지한테 갖다주면 기뻐할거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뭐라더랴, 한영국이라고 하지 않더냐?》

《옳습니다. 한영국이라고 했습니다.》

《네 삼촌이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그래 할머니소식은 물어못봤냐?》

《저··· 그건··· 삼촌인줄 몰랐기때문에···》

한남준은 말문이 막혀 눈이 퀭해졌다. 삼촌이란 생각이 뒤늦게야 들어서 미처 인사말 한마디 똑바로 못한것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는데 아버지가 수십년 세월이 흐르도록 자나깨나 그리워하는 할머니소식조차 알아보지 못했으니 이게 무슨 실책이란말인가.

한영도는 시계줄이 들어있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그러쥐고 머리를 두드렸다.

《영국아! 영국아! 네가 지금도 살아있다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아! 세월도 무심하지. 너와 헤여진지 벌써 서른해가 넘었구나. 그런데 영국아, 어머니는 어찌되였느냐? 어머니는 어찌되였어? 어? 말하려무나.》

그는 너무나 격해서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입술은 타들고 미간은 한껏 좁아졌다. 기쁘다고 해야 할지 통분하다고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어쨌든 가슴속에서는 불길이 일고 목으로는 그 열기가 내뿜기는것 같았다.

이런 기이한 일도 있을가. 동생은 살아있다. 확실히 살아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찌되였을가. 남준이가 제 조카라는것을 알았다면 어머니소식도 전했음직하련만 아무말도 없었다는것이 불안하고 가슴을 에이는 아픔을 주었다.

그는 시계줄을 볼에 대고 자꾸 문대였다. 동생의 체온이 스미고 어쩌면 어머니의 체취도 슴배여있을것만 같았다. 그는 종시 울음을 터치였다. 50을 넘긴 사나이는 꺽꺽 숨을 갑자를뿐 제대로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삼촌과 조카가 서로 만났어도 안부 한마디 똑바로 전하지 못했다니 세상에 고통이 있다면 이이상 더 큰 고통이 또 어데 있겠는가. 부모자식이 갈라지고 형제가 갈라져서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모르는 고통, 사람의 허리를 두동강내고 뼈를 부서뜨리는듯한 이러한 고통을 신의 조화인들 만들어낼수 있단말인가. 그것도 30년이상, 아니 이제도 얼마나 더 오래고 긴것으로 될지 알지 못하는 고통···

《영국아! 어머니는 어찌되였느냐? 한생 가난에 쪼들리고 눈물마를 날이 없던 어머니가 어찌되였니? 살아계시거들랑 이 불효자식의 이름으로 매일 위로를 해드리고 만약 돌아갔다면 철이 바뀔 때마다 무덤에 찾아가 내 이름으로 밥 한사발씩 떠놓아주렴, 그리고 영국아! 내 동생아! 풍파사나운 그 땅에서 아무리 살기가 힘들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통일은 되고야만다. 그날까지 살아있어야 한다. 통일되는 그날에 우리 반드시 다시 만나자!》

시계줄을 움켜쥔 한영도는 그냥 소리없이 흐느끼며 마음속으로 웨치고 또 웨치였다.

밤이 깊어 손님들이 다 돌아갔다. 안해가 방에 들어가자고 하였지만 그대로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지쳐버린 그는 새벽녘에 굴뚝모퉁이에서 잠들어버리였다.

날이 밝자 눈물자욱이 뚜렷한 그의 볼에 새날의 빛이 어리였다. 그통에 봉당에 오목오목 패운 눈물자국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