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5

 

제 6 장

5

 

남산지하실 5호실에서 한영국은 리병찬과 마주앉게 되였다. 그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안기부 요원들에게 체포되여 련행되여왔다.

《한선생, 미안하게 됐습니다.》

리병찬은 언제나 자기를 얕보는것 같은 한영국을 단번에 눌러놓을 심산으로 첫마디를 떼였다.

《사실은 세종회관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었는데 좀 변동이 생겼습니다. 량해하시오. 거기서는 조용히 이야기해낼수 없을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해서 놀랄것은 없습니다. 몇가지 문의할것이 있어 불렀는데 우리가 한선생을 만나자는 목적은···》

리병찬의 씨벌임에는 관계없이 한영국은 음울한 눈길로 주위를 살피였다. 《남산지하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남산지하실에는 가지 말라》고 할만치 무시무시한곳이다.

한영국이 이 땅굴층계를 밟아보는것도 처음이였다. 방안처럼 보이기 위해 화려한 무늬의 비닐벽지를 발랐다. 한쪽켠에 창문처럼 틀을 끼웠지만 그것은 무대가설물처럼 형광등을 켜서 효과만 보이고있을뿐이다. 나들문은 강도가 센 경금속으로 만들었는데 돌쩌귀에서 매번 삑삑 소리가 났다. 특징적인것은 방안에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벽에 붙인 책상 하나와 들어옮길수 없는 큰 장의자가 놓였을뿐이다. 잉크단지나 재털이 지어 전화통도 없다. 둘러메치거나 집어던질만 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영국의 짐짓 태연한체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병찬은 그를 쏘아보며 모가 진 소리로 씨벌였다.

《다른게 아니고 한선생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알고싶은거요. 우리 피차 생소하지도 않은데 남아답게, 신사답게 대화를 해보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선생의 정체를 말해보란말이요.》

한영국은 라이타를 켜든채 부석부석한 눈을 치떴다.

《내 짐작에는 리병찬씨가 나에 대해 물어볼것이 없을 정도로 죄다 알고있는것으로 보는데.》

《그래요?》

리병찬은 뾰족한 턱을 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때 그의 눈길은 예리하게 번뜩이였다. 하얗고 가느다란, 그래서 지어 우아하게까지 보이던 왼쪽손, 금반지를 끼고 담배를 끼웠던 그 손이 알릴듯말듯 떨리기까지 하였다.

《그렇구만요?》리병찬은 변함없이 존대를 하였다.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보는바와 같이 한영국은 〈동아일보〉기자이고 〈한국〉국민이며 한가정의 호주요. 내 생각에는 설명을 필요로 할것 같지 않는데.》

약간 쓰거운 미소를 지은 그의 내심에는 《될대로 되라.》 하는 반발이 꿈틀거리였다.

《각오가 충분히 되여있다 그 말이지요. 그래 당신은 어째서 자기가 생각하는것과 신문에 써내는 글이 정반대요. 가령 례를 들면 언제인가 당신은 일산고아원을 취재하고 글을 썼는데 취재수첩에는 일산에 있는 고아들이 그 피부색과 마찬가지로 배달족의 피가 혼탁되여가고있고 그것은 불청객에 의한 혈통의 유린이며 망국의 징조라고 했던데요. 그때 글을 보면 인도주의의 꽃이요, 극치요 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단말이요. 왜 표리부동하오?》

얼마간 시간이 흐른뒤에 한영국이 고개를 돌리였다. 그의 시야에 포착된 안기부의 젊은 요원의 얼굴에 검고 번들거리는 흑인아이의 얼굴이 겹놓였다가 사라졌다.

《표리부동한것은 사실이요. 그러나 그것은 사실 그대로이기도 하오. 망국의 징조이기도 하고 인도주의이기도 하지요. 배달족의 피가 혼탁되고있다는것은 현장에서 내가 느낀것이고 신문에 써낸 인도주의꽃은 편집국의 요구이며 동시에 당신네 안기부의 요구요. 그것은 그렇다치고 도대체 그것이 무슨 법령에 위반되는가요. 그것때문에 내가 어째서 당신한테서 심문을 당해야 하오.》

《또 한가지.》 하고 리병찬은 잠간 생각을 더듬고나서 다시 계속하였다.

《당신은 구호물자를 나누어주던날밤 망원동 자전거수리방집에 가서 무슨짓을 했지요. 구호물자가 어떻게 되여 왔다구요?》

순간 한영국은 전번날 창억이네 집에서 있은 일을 리병찬이 뒤를 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국에 죄될만 한것이 있는것 같지는 않았다.

《이북에서 보내온 쌀이라면서 밥 한그릇 나누어먹자고 청해서 갔던것이 죄되오?》

《허튼 소리 마오!》

리병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에 표독스런 야수가 된 그는 한영국을 쏘아보며 볼편의 살을 푸들푸들 떨었다. 몇분동안 어깨를 들먹이고있다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치며 반말투로 나왔다.

《그래 안기부가 눈뜬 소경들만 앉아있는줄 알았어? 문정현이와 무슨 쑥덕공론을 했냐말이야? 뭐 구호물자를 보내준것은 이북의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지도자선생이라고? 그리고 또 네 취재수첩은 뭐야, 경제의 고도장성을 떠들던 〈대한민국〉이 〈북한〉에 의해 완전부정··· 〈남한〉의 거지표정? 신성한 〈대한민국〉을 모독해도 분수가 있지. 거지라구. 여직 〈북한〉방송이나 출판물에서도 우리를 거지라고 비방한것은 볼수 없었어. 똑똑히 말하시오. 당신은 전쟁때 〈북한〉공작원한테서 과업을 받았지?》

책상을 짚은 주먹이 계속 우들우들 떨고있다. 약간이라도 비위를 더 거슬리면 아무때고 그것이 코마루나 눈통을 대번에 부셔뜨릴 기세였다.

《여보. 리병찬씨, 그렇게 흥분할거 있소. 오손도손 이야기합시다. 우리같은 얼뜨기는 정신이나 차리겠소. 그건 그렇다치고 한가지 물읍시다.》

리병찬이 격해질수록 한영국은 더 침착하게 응수하였다.

《어서 말하오. 뭐요?》

《그래 문정현씨와 쑥덕공론이란 도대체 뭐요? 그날밤 이웃친지들이 마당에 마주앉아 밤 한그릇 나누어먹은것밖에 없는데 그게 그렇게도 문초받을 죄가 되오?》

《어리숙한체 하지 마시오. 〈동아일보〉의 한영국이보고 천치라고 한다면 서울장안의 수백만 구독자중에 누가 곧이 듣겠소? 그런 말로 꿈때려들지 마시오. 나도 그렇게 어리석은놈은 아니야.》

《좋수다. 그럼 내 말하겠소. 취재수첩으로 말하면 그렇소. 야박한 비유라고 나무라진 마오. 가령 내가 리병찬씨의 애인을 건드리는 꿈을 꾸었다칩시다. 그것을 가지고 당신은 간통죄로 나를 기소할수 있소? 또 내가 전두환〈대통령〉을 저격하는 공상을 했다 칩시다. 그것으로 당신은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 제4조에 걸어 재판할수 있는가말이요? 짝사랑이나 인간의 사색은 자유라고 하지 않소. 내가 취재수첩에 좋게 썼든 나쁘게 썼든 그것은 나의 상념일뿐이요. 나의 행동은 신문에 게재된 기사 그대로요. 그래 내가 무엇때문에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색만 해야 하고 내가 무엇때문에 안기부의 행동요령에 맞는대로만 일기도 쓰고 수첩도 정리해야 하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권리에 속한 분야가 아니요?》

《무엇이 어쨌어?》

리병찬은 정신없이 고함을 질렀다.

《뭐?··· 애인을 간통···》

와닥닥 달려든 리병찬은 한영국의 멱살을 거머쥐더니 주먹으로 내질렀다. 한영국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앞에서 번개불이 가로세로 날았다. 얼굴을 싸쥔 손가락짬으로 딸기물같은것이 뚝뚝 떨어져 제낀옷 앞섶을 적시였다.

《낫살은 건사했지만 법에 대해선 병아리야.》

련속타격이 가해질것 같았는데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너는 악독한 공산주의자야. 너같은놈은 두툼한 가면을 쓰고 사탕을 바른 마약을 사람들의 심장에 야금야금 밀어넣고있단말이다. 이번에 인천에 갔다와선 어떤 글을 썼지? 무슨 사진을 찍어내보냈냐말이야. 그러고도 목숨이 붙어있기를 바래? 이 지독한 빨갱이!》

《그러니 이 한영국은 지금 빨갱이로 체포되였다는거여?》

《체포라!》

리병찬은 갑자기 세모눈을 치뜨고 그를 쏘아보았다.

《좋도록 생각하오. 필요하다면 검사의 구인장을 보여드릴수도 있는데 피차간 잘 아는 사이인데 그런 거치장스러운 수속을 거쳐야 하겠소?》

《알만하다. 그러면 판사에게 구차한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해 범죄라는 제품을 합영해서 만들어야지.》

《야유하는가?》

리병찬은 좀전에 가져다놓은 그라프트지봉투를 왈칵왈칵 소리가 나게 헤치더니 그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훌쩍 던지였다.

《이에 대해 설명하오. 솔직하게. 그거야 당신이 관제라고 말할 건덕지가 없겠지.》

한영국은 고개를 들어 리병찬이 내대든 사진을 건너다보았다. 대성동에서 찍힌 사진이였다. 《태백산》호 운전사인 한남준에게 시계줄을 넘겨주는 장면이 포착되였던것이다. 한남준은 웃고있었고 한영국자신은 불안스럽게 뒤를 돌아다보고있었다. 과시 정보관답게 중요한 계기를 포착한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카가 받아든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리지 않았다.

《아주 좋은 기념이 될수 있는 사진이구만. 력사적이라고도 할수 있고 운명적이라고도 할수 있는거요.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이때 취재에 선의를 보여준 이북운전수가 떨군 라이타를 주어주었을뿐이요.》

《거짓말 마시오. 우린 거기서 당신의 표정이 왜 그렇게 불안한가 하는것을 묻는거요. 넘겨준것이 라이타일수도 있고 또 그 어떤 다른것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차후문제요. 말해보우. 왜 도적고양이처럼 뒤를 돌아다보고있는가? 당신도 지성인이니까 그런 정도의 심리분석을 해야 할것 아니요? 말해보오. 우리가 다른 수단이나 방법을 리용해서 받아내지 않도록 편의를 보아주오.》

이것은 강박이며 로골적인 위협이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 주눅이 들 그가 아니였다. 응대를 해보았대야 소용이 없겠기때문에 한영국은 딴눈을 팔고있었다. 벽에 말벌 한마리가 기여오르고있었다. 몸뚱이가 알룩달룩한 그놈은 아무때라도 날아오를 차비인지 죽지를 잔뜩 들어올리고 부지런히 기여가고있다. 저것도 요원들에 의해 차에 실려왔단말인가, 이 남산지하실에.

《그래 말 안하겠소?》

한영국은 숨이 차서 씨근거리는 젊은 요원을 쳐다보는 한편 사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였다.

《뭘 말하라는거요? 당신네가 알고싶어하는것은 이 사진자체가 잘 설명하고있을텐데···》

《능청을 떨지 마오. 왜 불안해하는가. 그걸 말하라는거요. 떳떳치 못하기때문에 그러는게 아니겠소. 예, 한영국선생!》

《왜 불안해하느냐고? 그렇다면 이왕 말난김에 솔직하게 기탄없이 말하지. 다른 사람의 경우는 모르겠소. 그러나 나 한영국이라는 사람은 매 순간을 불안하게 보내고있소. 그때문에 나의 생활에서 어느 계기를 포착했든 관계없이 매번 이런 불안한것이 나타날것이요.

왜 매 순간을 불안하게 살고있는가? 만약 그것을 묻는다면 그것도 솔직하게 말할수 있소. 그러나 그 설명은 한두시간에는 도저히 해낼수 없고 적어도 며칠은 걸려야 하오. 이야기가 너무 외진데로 달아는것 같아 다시 이 사진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라이타를 집어주면서 혹시 이것을 보는 어느 누가 비밀정보를 넘겨준다는 혐의를 들씌우지 않겠는가 해서 불안했던것이요. 그런데 오늘 당하고보니 그때 내가 짐작했던것이 과히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오.》

《그것 참 흥미있는데? 좋소. 당신은 지금 나를 심히 야유하고있지만 참겠소. 그대신 나의 물음에는 다 대답해야 하오. 그래 어째서 매 순간을 불안하게 살아가고있소? 당신은 이제 장시간에 걸쳐 실존철학을 풀수도 있고 인간은 불안과 고독의 존재라고 운운할수도 있는데 그렇게 멀리 에돌 필요가 없소. 시간도 없고 빤드름한걸 가지고 억지를 쓰지 말란말이요. 알겠소? 그래 당신의 친형 한영도는 어데로 갔지요? 당신의 불안한 그 심리의 밑바닥에 형 한영도에 대한 생각이 깔려있지 않는가요? 어때요?》

《형 한영도?》

한영국은 저도 모르게 입이 허 벌어졌다. 그리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것 같았다. 뒤이어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뜻밖인데다가 깊이 묻어두었던 비밀이 낱낱이 드러난것 같은 불안에서 오는 공포가 생기였던것이다. 머리가 핑 돌았다. 처음에는 책상이 기울떡거리는것 같더니 그다음에는 방안이 빙글빙글 돌았다. 금시 쓰러질것 같았다. 하지만 한영국은 이를 사려물고 참았다. 그러자니 호흡이 가빠지며 기침이 터졌다. 그는 손으로 입을 싸쥐고 컬럭컬럭 기침을 하였다. 눈물과 코물이 나왔다.

《나의 형 한영도가 있었던것은 사실이요.》

한영국은 겨우 기침을 멈추고나서 수건으로 눈굽을 훔친 다음 말을 떼였다.

《그런데 전쟁통에 어데 갔는지 알수 없게 되였소. 그후 수십년동안 찾았지만 소식을 알수 없어 나는 끝내 고아의 신세를 면할수 없었던것이요. 만약 자기 혈육을 그리워하는 나의 심정이 생활에서 고독으로 오는 불안으로 표현되였다고 하면 나는 그것을 흔연히 긍정하겠소.》

《정 이러겠소. 당신 형은 의용군에 참가했다가 북으로 넘어가 빨갱이가 되였단말이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해주겠는데 북에 간 형한테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마오. 북에서는 이남출신 의용군이나 월북인사들을 거지반 다 없애치웠소.》

《그렇다면 우리 형도 없어진것으로 보아야 하오?》

《그렇게 생각해도 랑패가 없을것이요.》

《감사하오. 그렇다면 이 한영국은 요시찰대상자가 아니라 당국의 보호를 받아야 할 특류급시민이 되는게 아니요. 이북의 공산주의자들한테 형을 잃었으니말이요.》

리병찬은 이발을 사려물고 잠시 한영국에게 눈총을 쏘더니 얄팍한 입술에 비양조의 랭소를 지으며 그라프트지봉투를 다시 뒤지며 그안에서 자그마한 책자 하나를 꺼내였다.

《이걸 보고나면 감히 자신을 당국의 특별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하는따위의 뻔뻔스러운 말장난은 못할거요.》

책자가 툭 소리를 내며 책상우에 떨어졌다. 그것은 책가위에 한영국이 자필로 《장수법》이라는 가짜제목을 써넣은 비밀책자였다.

《설마 이것을 모른다고야 하지 않겠지?》

리병찬은 자못 통쾌하다는듯이 책상우에 엉뎅이를 올려놓고 다리를 거들거들하고있다.

한영국의 온몸에 소름이 끼치였다.

《어서 펼쳐보우. 한영국의것이 옳은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을 깊이 해부해보기 위해 가로 돌고 세로 돌고 했는데 역시 짐작했던대로 매우 요령이 있고 위장술에 능한 사람이라는것이 확증되였소. 자! 어서 안이랑 다 펼쳐보고 확인을 해야지.》

한영국은 책자를 들어 자필로 쓴 《장수법》이라는 세글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런후에 그는 속가위를 펼쳤다. 새하얀 속표지에는 선홍색으로 찍힌 《김정일》이라는 세글자와 그밑에 까만색으로 찍힌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여덟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물론 이것은 나의것이다. 양기섭아버님에게서 넘겨받아 며칠전에 창억에게 준 책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양아버지에게 넘겨씌울수는 없다.)

《흥, 이게 누구거지?》

한영국은 눈덕을 들어올려 의기가 양양해서 코웃음치는 리병찬의 야멸찬 모습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더는 놈의 손탁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자 그는 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와 같은 체념이 밀물처럼 엄습해오며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평온해졌다.

《왜 말을 안하오? 한선생것이 옳지요?》

《그렇소.》

한영국은 기꺼이 수긍하였다. 리병찬은 재미가 있다는듯 살살 눈웃음치며 바투 다가앉았다.

《어디서 났지요?》

《···》

《출처가 어딘가말이요?》

《그건 나에게서 한마디도 못들을거요.》

《뭐야, 개자식!》

리병찬은 갑자기 째지는것 같은 소리를 지르고 책상에서 뛰여내리면서 주먹으로 또 한영국의 코언저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한영국은 의자에서 떨어져내려 콩크리트바닥에 곤두박히였다. 눈앞이 아찔해지고 머리속이 흐리멍텅해졌다. 다음 순간 그는 내장이 벌컥 뒤집히는것 같은 울분을 안고 얼굴을 싸쥐며 콩크리트바닥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눈에서 불이 일었다. 이 개같은자식을 한때나마 동정해서 경찰들의 추적을 피해가며 보호해주고 치료해준 일이 있었다는것이 믿기 어려울만큼 통분하였다.

《어때? 아직도 말재간만 부리겠소. 한선생!》

리병찬의 세모눈이 교활하게 웃고있는것을 보자 한영국은 화산이라도 터뜨릴만한 분노를 안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얻어맞은 볼편이 튀여올라 얼얼해왔으나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로 하여 아픔조차도 느낄수 없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정신을 가다듬고 놈을 쏘아보았다.

《그래, 이젠 질문에 응할테요?》

《듣기 싫다. 이 개자식아!》

방안이 찌렁 울린만치 목소리가 커졌다. 눈이 올롱해진 리병찬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하, 그래, 반항이 없는 심문처럼 싱거운것은 없으니까. 괜찮아 한선생, 그러면 어서 대답해보시오. 이 책이 어디서 났지요?》

《거듭 말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나에게서 한마디도 들을 생각 말아. 대신 너에게 꼭 할말이 있다. 우선 네가 어떤놈인가 하는것부터 말하자. 네가 그래도 신문에 글 한편을 싣기 위해 나를 찾아와서 〈한영국선생!〉하고 불렀을 때는 한결 사람다웠다. 그때 너는 인간이였고 대신 나는 〈개자식〉이였다. 그러나 네가 방금 나더러 〈개자식!〉이라고 했는데 그 순간부터 너는 개가 되고 나는 인간으로 환생했다. 이놈아, 똑똑히 들어둬라. 인간이 된 이상 나는 모든것을 죄다 말하겠다. 진실을 말해야겠단말이다.

너는 내가 대성동에서 이북운전수에게 무엇을 줬느냐고 물었지? 그것은 시계줄이였다. 형과 나와 헤여질 때 형이 다시 돌아오겠다고 기다리라면서 약속의 표시로 나에게 주고간 기념품이였다. 공교롭게도 북에서 나온 그 운전수를 취재하는 과정에 그가 나의 조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너희들이 이북에 가서 따돌림받거나 처형되였으리라고 한 그 형이 살아있을뿐아니라 그렇게도 끌끌한 조카까지 자라나 친애하는 김정일지도자의 축복속에 약혼식까지 하였다는 뜻밖의 소식까지 듣게 되였단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조카로 짐작되는 그 청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것을 속히워왔고 그것을 어쩔수 없는 〈인간의 숙명〉으로 여겨온 나였기에 이 세상에 그런 정의 세상, 인간다운 참세상이 있다는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북에서 보내온 대성동에서의 구호물자인수때와 인천으로 실어온 세멘트를 보고, 더우기 장산곶앞에서 좌초된 배를 대신하여 실어온 이북인민들의 정성이 담긴 그 세멘트를 보며 나의 기존관념은 산산쪼각이 났다. 그것은 쌀과 천, 세멘트나 약품이 아니라 우리 7천만이 일구월심 갈구해마지 않는 통일의 열망이 대하가 되여 하나로 이어지는 첫 순간이였고 수십년간 높이 쌓아올린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져내리는 파구였다.

그런데 너희 당국자들은 도대체 무슨짓을 했느냐? 구호물자를 받겠다고 거짓공포를 하고는 온갖 모략과 오그랑수를 써서 통일열망에 불타오르는 우리 민족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었지?》

《닥치지 못해. 이 빨갱이야!》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리병찬이 권총을 빼들며 발작적으로 부르짖었다.

《당장 쏘아죽일테다!》

《두렵지 않다.》 한영국은 안깐힘을 써서 비척비척 일어나 리병찬의 앞으로 두세걸음 다가섰다.

《나는 수십년동안 량심과 정의를 가슴속에 깊숙이 묻어둔채 어떻게 하나 이 사회에 적응돼보려고 애써왔다. 적응되지 않으면 사멸되고만다는 생물학의 원리에 따라 그렇게 생을 유지해보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살수가 없는것이 이남세상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너희들의 편이였다. 이를테면 〈대한민국〉편이였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나는 주체사상의 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는 인간이라고 한 그 한마디에 나는 매혹되였다.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수십년동안 글을 썼고 정력을 쏟아부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진실을 묻어두고 거짓글을 쓰는것도 서슴지 않았다. 나의 일기에 적은것과 내가 쓴 기사가 서로 다른것은 그것때문이다. 나는 소위 〈대한민국〉의 이 제도, 이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모든것을 다바쳤다. 그러나 그것이 무모한것이며 어리석은짓이라는것을 이제야 알게 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고 야수야. 주체사상은 인간에게 최대의 영예와 긍지를 안겨준다. 〈북한〉의 김정일지도자는 인간을 사랑하는 화신이다. 우리 민족의 앞날을 밝혀주는 홰불이야. 알고나 있는가, 인심은 너희들을 외면했다는걸. 〈남한〉민중이 밥을 해놓고 평양을 향해 감사하다고 절을 하고있는 실태를 너희들이 아는가말이다. 경찰, 안기부 암만 날쳐도 막지 못해. 분계선에 콩크리트장벽을 쌓았지만 북으로 향해지는 남쪽민심을 막지 못해. 때문에 나는 이 책의 저자인···》

그는 책상에 놓인 책자를 가리키며 한음계 더 높은 소리를 질렀다.

김정일선생의 편이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김일성주석의 편이다.》

너무나 큰 소리를 쳐서 그랬던지 그는 어지럼증이 나서 비칠비칠하였다. 그러자 악에 받칠대로 받친 리병찬이 뒤로 물러나며 천정에 대고 공포를 쏘았다. 파랗게 질린 리병찬의 살가죽이 경풍만난 사람처럼 파들파들 떨었다.

《죽고싶어!》

그러나 관성을 띤 바퀴를 멈춰세울수는 없었다.

《그래 이젠 죽어도 원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지도자의 편이다. 다시 반복하라는가? 인간과 민족의 사랑의 상징인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지도자선생님의 편이다!》

순간 눈앞에서 또다시 불이 번쩍하였다. 그와 함께 한영국은 밑둥이 잘린 통나무처럼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지다가 방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하지만 한영국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가슴이 후련하였다. 마음속에 뭉치고 엉키였던것을 다 내뱉고나니 온몸이 날아날것처럼 가벼웠다. 나서 자라 이날까지 자기를 드러내놓을수 없었고 진실을 말할수 없었다. 허위와 악덕과 잔인함과 비인간적인것을 보고도 말할수 없고 오히려 반대로 그것이 옳고 거기에 진실함과 선한것이 있다고 거짓을 꾸며야 했던 그 무엇인가 이름할수 없는 두껍고 견고한 피각에 갇히였던것을 순간에 터치고 인간본연으로 돌아온것이 기쁘기도 했다.

한영국은 자기가 벌써 저승의 문턱을 넘어섰다는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순간에 너무나 고결하고 순진한 자아에 도취되여있었다. 하여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고통도 나타내는것이 없었다. 오히려 눈언저리와 푸르러진 입가에 미소가 어린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아득한 저 멀리 지평선 한끝에서 한점의 불꽃이 깜박깜박 명멸하고있는것을 바라보며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속말을 어렴풋이 듣고있었다.

《급소는 아니잖아?》

《가망없소.》

 

그 이튿날 저녁 리병찬은 쉐라톤으로 가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허탈상태에 빠진 그는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을 정도로 앞이 뽀얗게 흐려있었다. 여태 그래도 한쪽에는 인옥이, 또 다른 한쪽에는 직업이 주는 대상인 한영국이 있어서 생활의 균형이 유지되였던것 같다 하던것이 단번에 두개의 지팽이를 집어던진 다리병신처럼 되여 몹시 기울떡거려야 앞으로 겨우 한걸음 내짚을수 있었다. 그래도 인옥은 자기가 나타나기만 하면 한달음에 달려와 안길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있었다. 장미송이같은 얼굴, 민츨한 몸매, 콜콜한 냄새가 나는 머리카락, 그것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래 그는 소나무사이로 휘여돌아간 포장도로를 따라 급히 걸어올라갔다.

쉐라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여의도광장에서 《국군절》을 굉장히 쇠기 위해 몰려들었던 장성들의 놀이판이 되고말았다. 구호물자를 가지고 온 북측 적십자대표를 데려다가 《위압》과 《공포》를 느끼게 하자던 연극이 파탄되자 그들은 공연히 갈개치며 돌아갔다. 낯을 잔뜩 찌프린 리병찬은 이미부터 면목이 있던 접대과 아낙네앞으로 다가갔다.

《아! 도련님 오셨어요?》

젖가슴이 한아름이나 되는 녀인이 괴상한 몸짓을 하며 다가왔다.

《3호실 인옥이를 불러주시오.》

《네, 네, 그러지요.》

녀인은 전화를 걸다 말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쪽지 한장을 내밀었다.

리병찬은 급히 펴서 읽었다.

《리병찬씨, 다시는 저를 찾아오지 마세요. 박인옥은 새 출발을 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는 쪽지를 북북 찢으며 입술을 사려물었다.

《이년, 어디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