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4

 

제 6 장

4

 

상이군인인 창억의 동생 창식은 쌀포대를 등에 지고 디뚝디뚝 걸음을 옮기였다. 팔목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2시이다. 운동화가 감탕판에 빠져 발을 옮겨놓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식구다섯에 50㎏를 받았다. 어떤 놈팽이한테 형이 모욕을 당하지 않았던들 이렇게까지 늦어지지 않았을것인데 생각하면 분하기 짝이 없다. 이북에서 보내온 쌀때문에 벌써 두탕이나 매를 맞았다. 한번은 신문에 난것을 보고 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순경에게 맞았고 오늘 저녁에는 땅에 흘린 쌀을 나누어주다가 맞았다.

국군에 나가 다리병신이 된것만해도 원통한노릇인데 간곳마다 업심을 당하는 형이 불쌍하고 억울했다. 올해 서른두살인 창식은 나서자라 이때까지 가련한 아버지와 형을 보아왔기때문에 누구든 자기네를 깔보고 학대하면 피를 물고 달려드는 기질이 생기였다. 아까 그 안경낀놈을 붙잡기만 했더라면 두개골을 박산내든지 허리를 꺾어놓든지 하는것인데 분하게도 놓쳐버리고말았다. 한 10분 걸었을가 한데 골목길에 나와 기다리던 아버지 심기정이 힘들겠다고 하면서 마대를 부축하였다.

《힘들거나 있어요. 도제 50㎏인데요.》

창식의 말에 아버지는 《한호당 250㎏란건 거짓말인가?》하고 불평조로 물었다.

《누가 그걸 안대요. 한식구당 10㎏씩두 큰맘 먹고 준다는거예요. 북에서 온건 한사람당 하루분식량이래요. 그래서 한㎏씩인데 전두환의 특혜로 그렇게 보충해준다고 했어요.》

《죽일놈의 새끼들, 오자마자 쓱싹해치웠겠지 저희끼리··· 전탕 날강도판이니까···》

이런 식으로 몇마디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덧 자기 집마당에 들어섰다. 창식은 찬장, 이불장 등이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토방돌우에 쌀포대를 내려놓았다. 인적기가 나자 방안에 있던 집식구들이 기름불을 들고나왔다. 정신이 가끔 들며나며 하는 안주인도 《아이 저런!》 하고 혀를 차며 문턱너머로 내다보고 배를 그러잡고 방안에 누워있던 창억이도 억지로 밖으로 나와 《됐다. 성공이다!》 하며 쌀자루를 만져보며 울먹이였다.

《여보!》창억은 한발 늦게 나와 쌀포대가 놓인데로 다가들고있는 안해에게 큰 소리로 웨치였다.

《이걸로 밥을 한가마 짓소. 한 열댓명 먹을수 있게. 빨리.》

그러거나말거나 녀인은 쌀포대의 크기를 가늠해보며 아구리를 헤쳐 한줌 쥐여내였다.

《어머니, 이걸 좀 보세요.》

녀인은 쌀을 한웅큼 쥐고 방안에 누워있는 시어머니에게 내보이는데 벌써 그 얼굴에는 기쁨이 물결치고있다.

《옥백미로구나!》

어머니의 주글주글한 볼이 떨리였다. 그와 함께 기름불이 흔들리면서 각기 제나름의 모습들이 동시에 움직이였다.

《어서 밥을 짓소!》

창억은 다시한번 재촉하였다. 새날이 밝자면 아직 멀었지만 밥을 어서 지으라고 재촉하는 남편의 말에 어떤 뜻이 담겨져있는지 잘 알고있는 녀인은 눈물이 쿡 솟았다. 이 쌀을 달라했다고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으며 또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려온 구호미였던가. 한참동안 쌀을 한줌 쥐여 만져도 보고 입에 넣고 자근자근 씹어도 보던 녀인은 주저없이 바가지로 듬북듬북 퍼내 함박에 옮겨담았다. 그것을 보고있던 창억은 문지방에 의지해 서있는 동생을 불렀다.

《야 창식아! 너 이제 가서 저 형수네 아이들이랑 문정현이랑 다 오라구 해라. 그다음 이쪽으로 돌아오다가 함흥집에도 들리고 또 옥녀네랑 다 오라구 해.》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창식이 일어서는것을 보더니 《야, 또 있다.》하고 손짓을 하였다.

《깜박 잊을번 했구나. 너 〈동아일보〉 한영국선생 알지? 그 집도 오라고 알려라.》

《알아요.》

창식은 부엌에 들어가 랭수를 한바가지 떠서 단숨에 들이키더니 아무말도 없이 뒤골목으로 사라지고말았다. 창억은 마당에 멍청히 서서 주위를 살피였다. 마치 꿈을 꾸는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히였다. 물란리를 만나 가산을 전부 잃어버리고 몸만 남았다는것도 믿을수 없는데다가 북에서 보내온 쌀이 말로써가 아니라 실지 눈앞에 나타나고 그것을 손으로 만져볼 지경에 이르고보니 그것도 또한 꿈속에서 당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오직 한가지 현실적인것은 아까 리병찬에게서 얻어맞았을 때에는 숨이 막히는것같아 허리를 펼수 없었는데 차츰 아픔이 가라앉고 이제는 머리만 뗑하다는것뿐이였다. 마치 이것은 20년도 썩 전에 《국군》에 징모되여 10개월만에 실전훈련을 하다가 지뢰에 맞아 다리가 부러졌던 때와 비슷하다고나 할가 그는 한쪽다리를 끌고 저만치 마당끝에 나가 나무상자우에 걸터앉았다.

담배를 붙여물고 고개를 들었다. 문득 그는 이것이 현실인가, 이북에서 보내준 구호미를 우리가 받아안게 된것이 꿈은 아닐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도 현실을 현실로 믿지 못하는, 오직 무엇이나 의혹과 경계심만을 앞세우는데 버릇된 타성이 습벽처럼 굳어져버린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그는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결국 흰것도 검게, 검은것도 희게 하기를 례상사로 여기는 이 《남한》사회가 인간들을 이렇게 만들고있는것이였다.

《후유-》무심결에 그는 한숨이 나갔다.

《모르겠다. 래일은 어찌되였든지간에··· 젠장.》

그는 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해가 쌀을 일고있는데로 다가갔다. 그때 방안에서 반쯤 일어나앉아 밖을 내다보던 어머니가 《얘야, 너 정신있니?》하고 며느리를 나무랐다.

《그걸로 한달은 살아야겠는데 큰 솥에 한가득 밥을 해서는···》

반소매샤쯔를 입었는데 가느다란 팔이 하들하들 떨기까지 하였다.

《어머니.》

며느리는 딱한 낯을 짓고 남편을 올려다본다. 설명해달라는 눈치이다. 그렇게 되고보니 창억은 공연히 울화가 불끈 치밀어올랐다. 밥 한끼 푸짐히 해먹을수 없는 신세라면 이런 인생을 붙잡고있어서는 뭘한단말인가.

《어머니!》

창억은 문가로 다가가 앙상한 어머니의 팔을 붙잡고 말하였다.

《밤낮 쪼들리는데 한번 밥이라도 실컷 먹어보자는거예요. 온 동네사람들을 청해다놓고.》

《얘야. 먹는건 좋은데 겁이 난다. 무슨 돈으루 쌀값을 갚느냐 말이다. 다 떠내려가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둠속인데도 녀인의 눈은 푸른빛을 내였다.

《자! 이런, 어머니! 이 쌀은요 북에서 보내온거야요.》

《글쎄 나도 들어서 알긴 안다. 그래두 돈이야 물어야지.》

《돈내는거 아니구요 구호미로 보낸거래요.》

《모를 소리다. 이북에 쌀이 강물처럼 흔하다면 몰라두 쌀은 논밭에 심어서 가꾸는건데 그걸 누가 공짜로 주느냐말이다.》

《여보 로친!》

문턱에 걸터앉았던 심기정이 거쉰 소리로 끼여들었다.

《로친네, 이북이 어덴지 알기나 하오? 우리 나라가 두토막으로 갈라졌는데 웃머리가 이북이고 아래도리가 우리가 사는 이남이요. 우리 동포가 북에 산단말이요. 그 사람들이 우리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살려주자고 쌀이랑 옷감이랑 세멘트랑 보내왔다는거요. 그런줄이나 아오.》

《그래두 두고보시우. 이제 돈을 받으러 오지 않나. 난 세상에 나서 공짜를 먹어본적이 없어요.》

《쯧쯧, 소귀에 경 읽기라더니··· 하긴 로친네 말이 일리가 있소. 아무튼 아이애비말대로 래일은 래일이고 시제 당장은 밥이나 실컷 나누어 먹어봅시다.》

《령감 하자는대로 해서는 사흘도 못살아요.》

창억은 주고받는 말들을 들으며 고개를 수굿하고있었다. 딱히 무엇이라고 짚어댈수는 없지만 량편이 다 옳은 말을 하고있는것같았다. 가난이 만들어낸 리치인것이다. 안로인은 자기가 주장해도 소용이 없다는것을 알았음인지 채머리를 흔들며 다시 자리에 누워버리고 심기정로인은 혀끝을 끌끌 차며 공연히 마음을 진정못한채 마당에서 서성거리였다.

맨먼저 도착한것이 《함흥집》이라는 별명을 가진 구두쟁이네였다. 나이 오십인데 벌써 허리가 굽고 언제나 퀴퀴한 가죽내와 구두약내가 풍기는 사람이였다. 머리는 반백이고 턱엔 구두솔같이 수염이 많이 났다. 서대문형무소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큰 창고가 있는데 그 담벽에 간신히 붙여놓은 판자집에서 산다. 이들도 한강다리밑 빈민촌출신인데 전쟁통에 외가집으로 피난온것이 길이 막혀 이 신세가 되였다. 《함흥집》이라고 해서 함흥에 산것도 아니고 철원에 살았는데 고향 함흥자랑이 대단해서 그렇게 별호가 붙었다.

《아니, 무슨 일이 생겼소? 난 첨에 아이녀석이 너무 급한 소리를 하기에 혹시 할머니가 어찌되지 않았나 했는데 이건 난데없이 밥을 잡수러 오시래요 하지 않겠소. 그래 야, 나도 굶지는 않았다 하니 이북쌀로 지은 밥이래요, 이북밥 합데다. 그녀석은 딴데 들릴데가 있다면서 힝하고 사라져 자세히 묻지도 못하지 않았소. 어쨌거나 미안하웨다. 물란리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문안도 못하고···》

사나이는 이집 로인부부에게 인사를 깍듯이 하고 마당에 쭈그리고앉아 담배를 붙이였다. 그다음에 나타난것이 문정현이다.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진 중년사나이가 느릿느릿 걸어오더니 심기정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집 식구들과 《함흥집》사람까지 다 찾아 인사를 하였다. 분위기를 보고 짐작을 하게 된 그는 아무말없이 마당 한쪽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부엌문앞에 양철통을 만든 솥걸이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면서 늄솥뚜껑으로 김을 내불고있다. 매캐한 곰팡내만 풍기던 마당안에 구수한 밥내가 흘렀다. 《함흥집》사나이는 킁킁 코를 울리며 냄새를 맡고있다가 구슬픈 소리로 말을 하였다.

《세상사란 참말 모를 일이지요. 우리가 어쩌면 이북에서 보내는 쌀을 받아먹게 되오. 창억이, 자네로 말하면 이북공산당을 이 세상에서 없앤다는 〈국군〉에 나갔던 사람인데, 말하자면 적한테서 구호미를 받아먹는거라. 허허, 참 방송이요 텔레비요 신문이요 연설이요 반상회요 전부 이북은 모두 굶고 넝마를 걸치고··· 이러댔는데 허참, 이제 쌀을 준담에 옷감도 준단 말이 있소. 세멘트도 주고 약도 준다고 하고. 모르겠거든, 모르겠소.》

그는 시꺼먼 턱을 들고 우중충하니 흐린 미명의 하늘을 쳐다보며 긴 탄식을 하였다. 한당대 길목을 지켜 가고오는 사람들의 신발만을 여겨보는동안 목덜미가 굽어든 그가 하늘에서 무엇을 찾아보기라도 하려는것처럼 살피고있다. 그러나 지꿎게 흐려진 공간은 말끔히 개일만한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고있다.

《하긴 이보우. 자네.》

심기정로인이 《함흥집》을 불렀다.

《자네는 이북에 나서 자랐으니까 이북에서 보내온 쌀로 지은 밥을 먹자면 감회가 더 새롭겠지.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임자가 생각나서 초청해온거야.》

《함흥집》이 감격한 얼굴을 짓고 대답하였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사실 고향이 그립지요. 우리 고향사람들도 인심이 후합네다. 사람들이 무척 좋아요. 나만 봐도 그렇지요. 난 함흥이 고향입니다만 누구한테 손해끼친 일이 없수다. 구두손질한것만큼만 돈을 받았지 맹탕 남의 돈에 손대지 않았지요. 어쨌든 북에서 쌀이요 천이요 세멘트요 하는걸 보내오고 또 그걸 우리가 받게 되였으니 나도 꿈만 같수다.》

《옳거니. 옳거니.》

심기정의 거쉰 목소리는 마당에 깊이 잦아든 새벽공기를 흔들었다.

그때 오른쪽골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나더니 한영국이 나타났다. 검은 바지에 흰 와이샤쯔를 입었고 역시 같은 색의 캪을 올려놓아 어둠이 들어찬 골목에서도 인차 알아볼수 있었다. 키는 큰편이 아니였지만 허리가 굵어서 동작은 민첩한 축이 못되였다. 그는 마당에 들어오는 길로 두릿두릿 사위를 살피다가 창억을 발견하고 그리로 갔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나무상자에 올라앉아있던 창억은 한쪽손으로 배를 그러잡은채 손짓을 하였다.

《기자선생, 왔군그래.》

낯을 잔뜩 찌프렸지만 그것이 보이지는 않았다.

《여보게, 창억이!》

급히 다가간 한영국은 허리켠으로 손을 가져가며 《어떤가? 또 한탕 맞았다면서.》 하고 물었다.

《그저 그렇지. 걱정말게.》

창억은 고맙다는 인사로 한영국의 손을 잡아흔들면서 뒤를 이었다.

《내 몸뚱아리는 늘 그렇게 돼먹은건데 뭘 그러나. 찢기고 밟히고 얻어맞고. 그러나 난 누데기같은 이 육신을 끌고다니면서라도 살아야지 죽지는 못하겠어. 왜 그런고 하니 아! 그렇지. 거기 좀 걸터앉으라구. 방안에 들어가야 아직 퀴퀴한 냄새밖에 나는거 없어.》

그는 자기앞에 있는 나무상자를 당겨놓으면서 자리를 권하였다. 그러나 한영국은 이집 가장인 심기정로인이며 아직 자리를 펴고 누워있는 안로인과 부엌에서 분주히 돌아치는 창억의 안해에게 찾아가 깍듯이 인사를 한 다음 이쪽에 모여앉은 손님들쪽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는 지성인답게 모두에게 인사를 차리는데 턱에 수염이 시꺼먼 사나이는 누구인지 알수 없었다. 그러나 어림짐작으로 위로의 말을 건늬였다.

《큰물이 져서 얼마나 놀랐습니까. 참말 고생이 많겠습니다.》

어두워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느낌으로서는 자기보다 분명히 네댓은 우라고 보이였다. 한영국은 처음 이 집에서 어째서 한밤중에 급히 와달라고 청했는지 알수 없었다. 창식이가 불쑥 나타나 《우리 형이 급히 와달랍니다. 이제 곧.》 하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구호미로 밥을 지어놓고 온 마을사람들을 초청했다는것이였다. 그래 급한 마음으로 달려와보니 과연 분위기가 여느때없이 흥성거렸다.

이때 심기정로인이 밥을 짓고있는 며느리에게 소리쳤다.

《얘야, 어지간히 됐으면 밥을 퍼라. 오는 족족 먹을 판이지 인사치레는 필요없는거구.》

《네. 곧 돼요.》

녀인은 코가 메서 멍멍한 소리를 내였다. 밥은 되였건만 찬거리는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선량하기 그지없는 녀인은 마치 그것이 자기 잘못때문이기나 한것처럼 송구해하였다. 그러다보니 공연히 눈물이 쏟아졌다. 언제한번 눈이 뜨이게 푸짐한 끼니가 있었던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에는 밥상에 찌개나 무치개 같은것도 있었고 국도 갖출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우정 찌개를 갖추느라고 그럴 필요가 없다지만 그래도 맨밥이야 어떻게 내놓겠는가. 솥뚜껑을 여니 뜨거운 김이 올리솟으면서 밥내가 확 풍기였다. 대번에 군침이 돌았다. 밥죽으로 스적스적 풍겨서 사발에 듬뿍 담았다. 시아버님은 언제나 골숨하니 담으라고 하였지만 이번에는 듬뿍이 가려올리였다. 그다음에는 그릇이 없기때문에 법랑그릇에 담았다. 물에서 건져낸 소반은 다리가 하나 온전치 못했지만 그런대로 상이라는것을 차려야 하였다. 밥 한그릇, 된장 한접시 그리고 랭수 한사발에 수저, 그것이 전부였다. 상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는데 창억이가 《여보!》 하고 소리쳤다.

《그렇게 각자 할거나 있소. 큰 두리반에다 챙기오.》

녀인은 어쩌지 못하고 선채로 망설이는데 한영국은 그래도 아버님것은 따로 드리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한영국은 디뚝거리며 마당안팎을 분주스레 드나드는 창억의 벙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다. 그는 이집 식구들이 어찌하여 구호미로 밥을 차려놓고 여러사람을 청해들이였는지 짐작이 되였다. 무뚝뚝한 창억이, 어데가나 천덕꾸러기인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지금 어느 시인보다 못지 않는 뜨거운 감정과 정서가 끓고있는것이다. 그가 두번에 걸쳐 봉변을 당했다는것도 그렇다. 그는 어떤 리념이나 사치한 정치적목적 또는 그 무슨 선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지 몸에 미쳐오는 생활상 요구에 의해서 《이북에서 보내겠다는 쌀을 받아야 한다》라고도 했고 《자! 이북쌀 구경이라도 하시오.》하고 땅에서 주은것을 나누어주었던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창억은 이북의 쌀을 받고 그것을 혼자 먹을수 없다는 단순한 리유로 한밤중에 친지들을 불러들이고있는것이다. 창억의 처가 마당 한가운데 가마니를 펴고 큰 두리반을 내놓았다. 밥상복판에 대야만한 늄그릇에 수북이 담긴 밥그릇이 놓이고 그 량옆에 된장그릇과 소금접시가 놓이였다. 숟가락이 세개, 그다음에는 싸리비자루를 끊어서 자작만든 저가락이 놓였다. 옆에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있던 문정현이 《함흥집》과 한영국을 상앞으로 끌어들이였다. 바로 그때에 사람들이 또 나타났다. 창억의 형수가 두 아이를 데리고 나타났고 그와 함께 아이어른 네댓이 또 뒤따랐다. 처음에는 역시 무슨 일이냐고 놀라다가 내막을 알게 되자부터 마치 잔치집에라도 온것처럼 떠들썩하였다. 심기정로인은 밥상에 마주 앉았다가 일어나 아이어른들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두리반 하나에는 앉을수 없게 되였다.

《사정이 이쯤 되였으니 선 사람은 선대로, 앉은 사람은 앉은대로 시작합시다.》

창억이 기분이 좋아서 롱삼아 말하였다. 얼굴마다에 웃음이 담기였다. 아이들은 공연히 덩달아 좋아했고 어른들은 이북에서 보내온 쌀밥구경을 하면서 떠들썩하였다.

《쌀알이 정말 실하기도 하네.》

《옥백미 옥백미 하더니 이게 정말 옥백미로구만. 이북의 쌀은 썩어 냄새난다고 하더니 다 개수작이야.》

이때 문정현은 밥그릇을 든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여있었다.

《심기정아버님! 창억형님 그리고 여러분!》 그는 컴컴한 마당에 웅기중기 모여앉은 사람들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내 이 기쁜날에 말 한마디 합시다. 이 쌀은 이북에서 온거요. 그리고 이제 옷감도 오고 세멘트도 온답니다. 나는 이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아요. 그저 이 밥을 염낭에 넣고다니며 하루에도 몇번씩 보고싶습니다. 그러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것 같아요. 아! 우리는 살았어요. 우리가 굶는지 먹는지 지켜보는이가 이 세상에 있단말이예요.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계십니다. 굶으면 쌀을, 헐벗으면 옷감을, 집이 없으면 세멘트를, 앓으면 약을 보내주어요. 거룩하고 거룩하다는 하느님도 우리를 구제하지 못했지만 북에 계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시였단말입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아요. 우리에겐 우리편이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살아갈수 있어요···》

억센 사나이는 머리를 흔들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을 토로하고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턱에 맺히였다. 그는 계속하였다.

《우리 이 밥을 먹고 기운을 냅시다. 그래서 김일성장군님께 은혜갚음을 합시다. 두토막으로 갈라진 나라를 이어붙이고 우리도 장군님의 정치를 받도록 합시다. 그리고 한가지 알아둘것이 있어요. 김정일지도자선생님께서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구호물자를 보내는데 크게 힘을 쓰셨답니다. 이것을 놓고 지금 온 세상이 떠들썩해요. 아시겠습니까?》

문정현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것 같았지만 목이 꽉 잠겨 계속하지 못하였다.

마당안에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숭고한 감정이 습한 공기를 타고 천천히 감돌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후덥게 하였다.

그때 심기정로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야, 평양이 어느쪽이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로인에게로 쏠리였다.

《어디는 어디겠어요. 북쪽이지. 저바루.》

창억이 엉성한 벽쪽을 가리키였다. 로인은 그쪽을 향해 섰다.

김일성장군님!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쌀을 받아 우리 집식구들이 지금 밥을 먹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로인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무엇인가 계속해서 말하는것 같은데 그것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로인은 두팔을 머리우까지 들어올리였다가 아래로 내리면서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다.

《장군님, 의지가지없는 이 늙은 백성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가마니우에 엎어진 로인은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흐득흐득 어깨를 떨고있다. 아이들까지도 숨을 죽이고 할아버지를 지켜보았다.

로인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줄곧 주시하고있던 한영국은 밥을 떠올렸던 저가락을 상우에 놓고 고개를 숙이였다. 밥 한그릇을 놓고 70을 넘긴 로인이 지금 울고있는것이다. 코마루가 저려나서 눈을 질끈 내리감았는데도 그의 시야에는 하얀 쌀밥덩이가 보이는것이다. 아이들이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 처량한 광경도 눈에 삼삼하였다. 오늘 이 나이까지 좋으나 궂으나 그도 하루세끼 밥을 먹고 살아왔던것이다. 가난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조선민족은 밥을 먹는데 습관되여있고 그것으로 체질화되여있는것이다. 그런데 지금 로인은 그런 밥 한그릇을 놓고 울고있다.

한영국은 눈굽이 뜨거워 손가락으로 훔치였다. 그렇다. 나도 지금 울고있다. 울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울고있는지 자기자신도 알수 없는것이다.

(가련해서. 아니면 숭고해서.)

물신숭배가 인간을 사로잡았던 몽매시대가 아니며 또 그런 미개인이 아닌데 최현대 문명대야의 한복판에 놓였다는 이 《한국》땅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있는가. 이것이 동포애이고 이것이 조국애가 아니고 무엇인가. 둘로 갈라져 오도가도 못하는 동포, 혈육, 형제들의 정이 얽힌 쌀, 기다림, 그리움이 모이고 슬픔과 고통으로 굳어져 이제 더는 참아낼수 없는 분노와 울분으로 되여 결정체를 이룬것이 아니란말인가.

생각할수록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한강다리에서 헤여진 형, 꼭 돌아온다던 약속으로 손에 쥐여준 시계줄, 그것을 받아간 조카애 운전수, 그런데 이런 사연때문에 한생 숨도 크게 못쉬고 숨기고 살아야 하는 신세, 가슴에서 뜨거운것이 뿌듯이 치밀어올라 목구멍을 메웠다. 그는 가슴을 붙잡고 기침을 하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창억이가 그의 무릎을 흔들며 속삭였다.

《자네는 우리보다 아는것도 많은데 한마디 하게나. 이런 때에 우리들이 알아듣게 뭔가 일깨워줘야 하지 않겠나.》

그도 울었는지 눈굽이 벌겋게 젖어있었다.

한영국은 다시한번 충격을 느끼였다.

《그렇게 알고있으면 되지 내가 무슨 말을 할수 있겠나.》

《영국이, 김일성장군님의 년세가 오래지 않아 80이 되여온다지.》

《그렇네.》

《아! 늙지 말고 계셔야겠는데, 참 그런데 김정일지도자에 대해서 뭐 좀 들은게 없나? 김정일이란분이 장군님의 후계자로 추대되셨다는것이 사실인가?》

《사실이네. 훌륭한분이네. 후에 내 책을 하나 가져다주지.》

《아! 그러니 우리는 앞날도 걱정할것 없군 그래.》

《바로 그렇네.》

얼마후 그들은 악수를 하고 헤여졌다. 심기정로인과 동갑나이 창억이네 부부가 골목길까지 나와 바래주었다. 한영국은 려명이 깃들기 시작한 거리를 걸었다.

동쪽하늘이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차츰 어둠을 밀어내고있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언제나 가스내가 역하게 풍기던 서울바닥인데 이때만은 신선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물안개가 걷히면서 차차 하늘이 트이였다. 그러다가 문득 피빛으로 물든 하늘을 찢으며 지글지글 끓는 불덩이가 불쑥 솟아올랐다. 어둠은 서둘러 총퇴각을 시작하였고 해빛은 그것을 추격해서 어데라없이 따라갔다.

그는 그 빛을 타고 끝없이 가고싶었다. 그렇게 자꾸 가노라면 제 아무리 큰 고통, 제 아무리 큰 비극이라도 말끔히 가셔낸 새 세상이 나질것만 같았다. 그는 가슴을 쑥 내밀고 힘있게 걸음을 내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