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3

 

제 6 장

3

 

자기의 마지막 분노와 하소마저 다 쏟아놓고난 박만호는 평온한 기분에 잠겨 잠든듯이 누워있었다. 이따금씩 눈을 떠서 두리번두리번 살피였지만 그것은 딱히 누구를 찾는다기보다 의식이 몽롱한속에 그저 그래보는것 같았다.

리병찬은 환자를 혼자 버리고 갈수 없어 잠간 머리맡에 눌러앉아있었다.

방금전에 구호미를 가져오겠다며 그예 밖으로 뛰쳐나가던 인옥의 새파래진 모습이 다시 상기되자 그는 까닭모를 울기가 뻗쳐올랐다.

12시전에는 구호미를 내주지 않는다는 자기의 말을 믿지 않는것도 괘씸했지만 북에서 보내온 구호미를 기어코 타다가 아버지에게 대접하려는 인옥의 심사가 더욱 그의 비위를 상하게 하여 울화를 돋구게 했다.

그는 수천척 낭떠러지 한끝에 서있는것 같은 위태위태한 불안을 안고 한동안 웅크리고앉았다가 무작정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밝아서 동사무소에 들렸던 기억을 더듬어 그쪽으로 다그쳐갔다. 골목을 몇개 지나니 사람들이 웅성거리였다. 보나마나 아까 본 구호미를 타러 온 그 수재민들일것이다.

장사진을 이룬 줄에는 아낙네들이 태반인데 두간두간 남정들도 끼여있었다. 맨앞에 나가보니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제끼였는데 쌀을 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한 청년을 붙잡고 물어보니 밤 12시에 준다는 말도 있고 새벽 5시에 준다는 말도 있다고 하였다. 기자풍의 사나이가 나타나자 줄에 섰던 사람들이 저마끔 한마디씩 던지였다.

《이왕 좋은 일 할바에야 낮에 주지 왜 한밤중에 이러는지.》

《여기 녀석들은 물란리를 겪지 않았으니까 배짱이 든든할밖에.》

《쌀에 공산주의가 묻어올리는 없는건데.》

《쌀은 쌀이고 천이랑 세멘트는 언제 준다나.》

리병찬은 누가 자기를 알아볼것이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이였다.

앞에서부터 훑어나가며 인옥을 찾았으나 인차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가 렬의 맨끝머리에서 인옥을 발견하였다.

《인옥씨! 갑시다.》

무작정 팔을 잡아 끌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옥은 팔을 뿌리치며 항거하였다.

《아버지의 소원인데 물러날수 없어요.》

《나서라는데, 이래서는 안되오.》

당기고 밀치고가 몇번 거듭되였다. 그통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청춘남녀가 싱갱이질을 하는것이 구경할만 하였던 모양이다.

정황이 복잡해지자 리병찬은 한걸음 양보해서 인옥을 얼리였다.

급히 할말이 있다고 해서 인옥을 끌어낸 리병찬은 어둑어둑한 골목에 이르러 속심을 털어놓았다. 당국의 사정때문에 12시가 넘어서 쌀배급을 주게 된다는거며 이북출신이라는것을 내놓고 말할만 한것이 못되는데다가 림종에 이르러 그예 북의 쌀을 먹어보겠다는 아버지의 마지막소원을 애써 풀어준다는것은 남들이 아는 경우에도 별로 좋을수 없다고 하였다.

《글쎄 그게 왜 나빠요?》

어둠속인데도 인옥의 눈에서는 서리찬 빛을 내뿜었다.

《하필이면 왜 북에서 보낸 구호미를 먹는것이 최후의 소원인가 말이요?》

《그런들 그것이 왜 나쁜가말이예요. 죽는 사람의 마지막 소원이 제 고향땅의 쌀을 먹어보고싶다는건데.》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오. 지금 배급을 밤중에 주는것도 다 까닭이 있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예요. 정말!》

《그럼 이렇게 합시다. 쌀엔 주소가 없는것이니까 아무거나 가져다···》

《그렇게는 못해요. 그건 량심이 허락치 않아요.》

더 들어보았대야 어떤 정치적고려때문이라는것외 다른 말이 나올수 없다고 본 인옥은 리병찬을 피해 다시 아까 섰던 그자리를 찾아 끼여섰다. 렬에서 말썽이 일어났다.

《왜 요꼬도리하는가?》

뒤에 선 50쯤 돼보이는 녀인이 째지는듯한 소리를 질렀다.

《방금전까지 섰던거예요.》

인옥이 뒤에 대고 변명하였다.

《고 기름쥐같은년 끌어내라.》

《아유 참!》

뚱뚱한 녀편네 하나가 뒤에서 나타나더니 인옥의 브라우스앞자락을 움켜잡아 끌어낸다. 정의와 정직성을 위해서도 물러서서는 안된다고 본 인옥은 녀인의 가슴을 떠밀쳤다. 뚱뚱한 녀편네는 맥없이 땅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저년이 사람 친다.》

어떻게나 고함소리가 요란했던지 마당에 운집했던 군중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였다.

《아이구, 사람 죽는다. 사람 살리오.》

우정 땅우에서 허우적이며 아부재기를 치고있다. 앞뒤에 섰던 사람들사이에 싱갱이가 벌어졌다. 처녀는 잘못이 없다는 사람, 어쨌거나 웃사람을 자빠뜨렸으니 잘못이라는 사람들이 서로 악다구니질을 하고있다. 인옥은 독기를 품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도 달려들기만 하면 쥐여박고 물어뜯을 기세였다. 기름쥐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별의별 쌍욕을 다 해도 좋다. 그러나 림종에 있는 아버지의 소원을 풀지 못하게 된다면 목숨을 내대고라도 해볼 결심이다.

그때 리병찬이 또 나타났다. 그는 비닐봉지에 넣은 쌀을 들고있었다.

《인옥씨, 갑시다. 여기 쌀이 있소.》

그러거나말거나 인옥은 사람들틈에 끼여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나마 아버지를 속이는 불효자식이 될수 없었다. 보나마나 리병찬은 싸전에서 아무쌀이나 샀을것이다.

《어서 나오우.》

《난 여기서 기다리겠어요.》

그때였다. 앞에서 웅성웅성하였다. 구호미배급이 시작된다는것 같았다. 창고문앞에 빈 도람통 하나를 와릉와릉 소리를 내며 굴려다세우더니 그우에 와이샤쯔바람에 검은테안경을 낀 키꺽다리사나이가 훌쩍 올라섰다.

《여러분! 조용하시오.》

사나이는 배를 쑥 내밀면서 손을 내뻗쳤다.

《이제부터 쌀을 주겠습니다. 북조선방송에서는 한가구당 250㎏씩 돌아가게 보냈다고 하였는데 그건 거짓말이요. 선전이란말입니다. 우리 동에서 받아온건 식구 한사람당 10㎏되나마나 하오. 그리 아시오.》

군중들속에서 항의가 일어났다.

《중간에서 쓱싹하는거 아니요?》

《여보, 빨리 주기나 하오. 질질 끌다가 한밤중에 이게 뭐요?》

《돈은 받지 않겠지. 구호미니까.》

도람통사나이가 손벽을 치며 떠들지 말라고 하고나서 계속하였다.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쌀에 혹시 이상이 있으면 곧 동사무소에 통고하시오. 쌀에 모래나 짚검불이 있다거나 밥을 해먹고 속탈이 났다든가 하면 곧 알리시오. 그리고 소문을 자꾸 내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북에서 온 쌀이 좋다는둥 얼마가 왔다는둥 하지 마시오. 그런 선전하는 사람들은 조사해서 혼내우겠소. 당국에서 제일 꺼려하는것이 쌀에서 나오는 선전이니까 그리 알고 타가시오. 이제 혹시 외국신문기자들이 집에 찾아갈수 있는데 그때는 적당히 대답을 하시오. 북에서 쌀이 온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두끼 맛이나 보았지 살림에 보탬은 된것이 없다. 그렇게 하시오. 그리구 한가지 이 쌀을 매매해서는 안됩니다. 다른데서 보면 이북출신들이 고향쌀 먹어본다면서 십배, 이십배를 주고 바꿈질도 하고 돈도 준다는데 그러면 법에 걸립니다. 폭리죄에 반공법, 알만하지요. 그리구 또 하나 어제 우리 동에 일본 〈아사히신붕〉기자가 왔었는데 제34반에 있는 박애기라는 로친네가 한심한 소리를 했소. 구호미가 오기는 왔다는데 아직 주지 않아 기다린다, 주겠거던 빨리 주면 좋겠다. 이렇게 됐단말입니다. 무시하라요. 무시, 있으나 마나한것으로. 자, 그만치 알았으면 렬을 서서 리재민증명서들을 내보이고 타가시오.》

사나이는 도람통에서 훌쩍 뛰여내리더니 전등불을 환하게 켠 창고안으로 사라졌다.

리병찬은 인옥의 팔목을 잡아당기였다. 인옥은 팔을 뿌리치려고 하였지만 사나이의 힘을 당해낼수가 없었다. 마당 한끝까지 끌려나온 인옥은 발을 버티고 서버렸다.

《인옥씨! 갑시다.》

《못가겠어요.》

《그래 인옥씨는 지금 이 리병찬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있는지 알고있겠지?》

《그건 몰라요. 그러나 난 아버지를 속일수 없어요. 지금 당장 구호미를 주겠다는데 그걸 타지 않고···》

인옥의 눈에서는 푸른 불이 이글거렸다. 언제나 웃음을 담고 매혹적으로 빛나던 눈이 적의에 차서 번뜩이고있는것이다. 리병찬은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래 어떤 일이 있어도 북조선쌀을 가져다 먹여야겠다. 그 말이지.》

사나이는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어요. 나는 량심을 버릴수 없어요.》

《량심!》

순간 리병찬은 인옥의 따귀를 후려쳤다. 인옥은 눈앞에 번개불이 번쩍하고 귀가 멍멍해져서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그는 두손으로 볼을 싸쥐며 땅에 펄썩 주저앉았다.

《네년의 속을 이제야 알았다.》

인옥은 볼을 싸쥔채 고개를 들었다. 내가 무엇때문에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말인가? 온몸이 사시나무떨듯 하였다. 그러나 인옥이 고개를 들었을 때 리병찬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분개한 사나이들의 목소리가 귀전을 울리였다.

《이자 그 기생오래비같은 자식 어디 갔어?》

《야만이야 야만! 녀자를 때리다니!》

《아가씨, 어서 일어나시오.》

인옥은 가까스로 오금을 놀려 자루들을 든 녀인앞에 가 끼워섰다. 입안이 쯥쯜해서 수건에 뱉어보니 피가 묻어났다. 오열과 함께 그는 그것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왜 다른 쌀은 먹을수 있는데 북에서 온 쌀은 먹어서는 안되는가. 북조선쌀이라는 그 하나의 리유때문인가. 북조선출신때문에 북의 쌀을 먹어서는 안되는것인가. 죽어 숨지는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인데 왜 그것을 먹어서는 안된단말인가.

《앞으로 조이세요.》

멍청히 서서 땅바닥만 내려다보고있는데 뒤에서 잔등을 떠밀었다. 와뜰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앞사람과 퍼그나 간격이 나있었다. 앞으로 몇걸음 다가선 인옥은 가래를 톺지 못해 헐썩거리는 아버지를 생각하였다. 빈방에 혼자 누운 아버지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을가. 내가 쌀을 타가지고 나타나기를 기다리고있겠지. 나는 아직 나이 어려서 고향이 그렇게도 귀중한줄을 모르고있는것이겠지. 이제라도 아버지를 해주에 모셔갈수 있다면 몇해는 더 살수 있지 않을가? 그렇게 못하는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휴전선이란건 어째서 생겨났는가. 그 저주스러운것은 왜 생겨서 사람이 오도가도 못하는것일가. 하긴 그래서 대학생들이 조국통일을 위해 시위를 하고 분신을 하고 언젠가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었지.

앞사람이 나서는대로 한걸음씩 내떼면서 인옥은 전에는 전혀 관계치 않았고 별로 생각해보고싶지도 않았던 조국의 분단과 통일문제를 자기자신의 운명과 결부해서 생각해보게 되였다. 지금까지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것이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몸치장을 해서 남성의 눈을 끌게 하는것이였다. 그속에 삶이 있고 꿈이 있고 그가 바라던 모든것이 있다고 믿어왔었다. 그러나 지금에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것이 있다는것을 그는 알게 되였다.

마침내 인옥의 차례가 왔다.

《두식구니까 20㎏!》

책상에서 서류를 번지던 사나이가 인옥을 쳐다보며 눈을 찡긋해보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인옥은 머리를 숙인채 자루를 내밀었다. 《스르륵》 하는 소리가 자루목에서 나더니 향긋한 쌀내가 코를 자극하였다. 그 순간 인옥은 코마루가 뜨끔하더니 눈물이 콱 쏟아졌다.

인옥은 허둥지둥 골목을 빠져 자기 집마당에 이르렀다. 인적기가 없는것으로 보아 리병찬은 어디론가 가버린것이 틀림없었다. 부엌문을 거쳐 방안에 들어가니 아버지는 베개에서 떨어져 머리를 휘두르고있었다.

《아버지!》

인옥은 머리를 들어옮기며 다정하게 불렀다.

《쌀을 받아왔어요. 꼭 황해도쌀같아요. 어쩌면 해주쌀일수도 있어요. 자. 보세요.》

그는 쌀자루에서 한웅큼 쥐여내서 수염이 꺼슬꺼슬한 턱앞에 가져다대였다.

《해주쌀이지요? 눈처럼 흰 옥백미! 내 이제 곧 밥을 지어드리겠어요.》

인옥의 갸름한 얼굴은 기쁨에 물들기 시작하였다. 이 정도로써도 얼마간 소원을 이룩했다고 볼수 있어서 그의 가슴에서는 환희가 샘솟는것이였다. 이제 밥을 지어 몇술 떠넣기만 하면 곧 아버지는 기운을 내여 일어날것으로 믿어졌다.

박만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앞에서 어른거리는것을 여겨보고있었다. 자기 딸이 나타났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가쁜숨을 헐떡 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인옥은 재빨리 아버지의 팔을 붙잡았다. 그런후에 그는 자루에서 쌀을 꺼내서 아버지의 손에 쥐여주었다. 박만호는 인옥이 쥐여주는 한줌의 쌀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그것을 코밑에 가져다대였다. 쌀내를 맡아서인지 아니면 거기서 고향 해주에 대한 어떤 향수라도 느낄수 있었던지 고뇌에 얼어들었던 그의 얼굴에는 야릇한 기쁨이 피여났다.

《인옥아! 그만둬라···》

가래끓는 소리에 섞여 겨우 알아들을수 있었다.

《아버지! 내 이제 곧 밥을 지을게요. 10분이면 돼요, 10분.》

이때 박만호는 딸의 팔을 붙잡았다.

《얘야.》 숨이 차서 가슴이 펄럭거린다. 《그만두어라.》

《아니, 왜 그래요. 아버지?》

눈이 올롱해진 인옥은 다그쳐 묻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것이다. 고향쌀로 한끼라도 밥을 해먹으면 평생 소원이 풀릴것이라고 하더니 왜 이러시는가?

《아버지, 어째 그래요. 네?》

인옥은 아버지의 가슴을 흔들어주며 애타게 부르짖고있다. 박만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딸애의 애처로운 정상을 잠시 바라보고있다가 고개를 돌리였다. 그러자 눈굽에 하나가득 괴였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 베개우에 떨어져내렸다.

《리병찬이 이제 말하더라. 내가 그 쌀을 먹어서는 너한테 나쁠거라고···》

그제서야 까닭을 알게 된 인옥은 새파랗게 질려 웨쳐대였다.

《아버지, 일없어요. 그런말 듣지 마세요. 아무일 없어요.》

뜻밖에 도고해진 딸을 신기하게 바라보고있던 박만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간신히 또 한마디 하였다.

《고맙다. 내 딸아!》

《잠간만 기다리세요. 아버지, 곧 밥을 지을게요.》

인옥은 쌀을 그대로 움켜쥐고있는 아버지의 팔을 이불밑에 밀어넣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석유곤로를 부뚜막에 내놓고 불을 달았다. 쌀을 씻어 자그마한 양은쟁개비에 담고 물을 알맞춤히 부었다. 쌀은 진주알같이 또글또글하여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돌았다. 밥이 되는것이 너무 더딘것만 같아 자주 쟁개비뚜껑을 열어보았다. 쟁개비안은 처음에는 안개가 서리더니 다음에는 불룩불룩 물거품이 부풀어오르고 이윽해서 보글보글 끓어번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찬거리를 만들어야 하였다. 두루 살피였지만 환자의 구미를 돋굴만 한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아버지는 국수를 제일 좋아했고 밥인 경우에는 얼벌벌한 장국을 늘 청하군 했었다. 그래 그는 고추가루를 듬뿍 넣고 토장국을 끓이기로 하였다. 배추와 무우를 다듬고 칼도마에 놓고 듬성듬성 썰었다. 그러는 사이에 쟁개비에서는 보그그 밥잦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 다 됐어요. 이제 곧 올라가요.》

희고 오동통한 팔을 재빨리 놀려 밥바리와 국사발을 가시고 쟁개비뚜껑을 열었다. 김이 확 풍기면서 밥내가 물컥 났다. 입안에서 군침이 돌았다. 인옥은 어떤 귀물을 다루기나 하는것처럼 조심조심히 밥을 떠서 바리에 담았다. 밥이 이처럼 어떤 고가약보다 더 귀중해질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버지! 이제 올라가요.》

그에 대한 대답이기나 한것처럼 방안에서는 기침소리가 났다. 기침이 나서 또 몸을 뒤채고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밥에 국, 김치 또 그다음에는 양념장, 수저, 그래 시원한 랭수도 한사발 놓아야지···

인옥은 이렇게 하나하나 세여가며 상을 차렸다. 한달나마 누워서 밥을 받아넘기였기때문에 상차림같은것은 전혀 의의가 없다는것을 잘 알았지만 인옥은 자연히 그렇게 되여지는것이였다. 상을 들고 방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박만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밥을 지었어요.》

그러나 잠든듯이 누운 박만호는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인옥은 상을 급히 방바닥에 내려놓고 아버지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방바닥에는 쌀알이 널려있었다. 박만호의 입에도 생쌀이 들어있었다. 생쌀을 씹었던것이 틀림없다. 맥없이 늘어진 손에는 흘리다 남은 몇알의 쌀이 그대로 쥐여져있었다.

《아버지!》

인옥은 아버지의 얼굴을 싸쥐고 흔들었다.

《아버지! 밥!》

그러나 박만호는 아무런 응대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우고있다.

《아!》

인옥은 비명을 질렀다. 가슴을 두들기며 꺽꺽 숨을 몰아쉬였다. 아버지의 팔다리는 이미 싸늘하니 식고 가슴만이 아직 생의 흔적을 말하듯이 매지근하였다.

《아버지-》

깊은 밤 새벽 2시, 애처롭게 울리는 인옥의 비명이 습하고 랭랭한 밤공기를 흔들며 수재민거리 한끝 멀리까지 번져갔다. 음산한 서울거리의 밤은 깊이깊이 잦아들면서 한 젊은 처녀의 통곡소리같은것에는 전혀 감각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근처의 늙은이들 몇이 잠자리가 편안치 못해 일어났다가 불길한 소리를 들을수 있었겠는데 그들마저 누구를 동정할 기력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래 몇번 군기침을 한후에 잠잠해지고마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