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

 

제 6 장

1

 

나라가 분렬되여 근 40년만에 북녘인민들의 뜨거운 동포애와 혈육의 정이 담긴 구호물자가 남조선에 넘어가게 된 이 경이적인 사변은 북과 남, 해외동포들속에서는 물론 세계적판도에서 커다란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있었다.

9월 29일 오전 11시 45분부터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인 경기도 파주군 군내면 대성동의 여러 장소에서 쌀과 천, 의약품지함을 부리기 시작하여 30일 오후 4시 구호물자인도인수식을 하고있을무렵 인천항에서는 제1진으로 떠난 배들인 《금수산》호와 《장산》호, 《집삼》호와 《평화》호들이 제3부두와 제4부두에서 한창 짐을 부리고있었으며 남포항과 해주항에서 제2진으로 떠난 《압록강》호와 《관모봉》호, 《수근》호와 《어은청년》호 그리고 흥남과 원산항에서 떠난 《향산》호와 《연풍》호,《염분진》호와 《동해》호가 해상분계선을 넘어 각각 목적지에 속속 다가가고있었다.

이날 해외교포단체들인 《한민통》과 《한민련》은 도꾜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에서 그들은 남조선수재민들에 대한 공화국의 구제조치가 실현된것은 《근 40년의 민족분단력사에서 처음 있은 력사적인 장거》라고 하면서 이번 장거는 비록 근 40년의 세월이 흘러도 우리 민족이 단일한 민족으로서의 뜨거운 민족애에 불타고있다는것을 똑똑히 립증하였다고 소리높이 웨쳤으며 《이번 사변을 계기로 민족의 화해와 긴장완화가 촉진되여 조국통일의 길이 열려지게 될것을 바라마지 않는다.》고 절절한 심정을 피력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세계 각국의 신문, 통신, 방송이 이 경이적인 사변을 경쟁적으로 보도하였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북조선에서 보내는 전례없는 수재민구호물자가 자동차와 짐배들에 실려 남조선으로 들어가고있다고 전했으며 프랑스의 AFP통신은 인천항에 도착한 우리의 배들에서 세멘트부리는 작업을 시작한 소식을 전하였다.

이 소식은 일본에서도 29일 석간신문에 일제히 보도되였다.

《아사히신붕》은 《북조선구호물자 인수시작》, 《판문점에서 순조롭게 짐부리기》라는 표제하에, 《마이니찌신붕》은 《구호물자인계》, 《요미우리신붕》은 《자동차 370대로 쌀과 천》, 《판문점에 제1진》, 《도꾜신붕》은 《구호물자 남북인도인수시작》, 《우선 륙로로 판문점에서》, 《분단후 처음으로 쌀, 천 등 수송》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였다.

《니홍게이자이신붕》,《산께이신붕》, 교또통신과 NHK방송도 앞을 다투어 이 소식을 전하였다. 30일에는 미국의 소리방송도 이 소식을 상세히 전하였다.

하지만 《대동강》호가 조난당한 이후 북에서 어떤 대책을 세우고있는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벙어리가 된듯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한영국은 무엇보다 그 소식이 궁금하였다. 대성동에 온 북측대표는 놀랄만큼 태연한 자세로 예정된 전량을 어김없이 보낸다고 확언해나섰지만 그 사실여부는 오늘 인천에 나가보면 알수 있을것이였다.

인천항에서는 어제아침 7시 30분에 제3부두에 정박했던 북의 《금수산》호로부터 하선작업을 시작하여 제3부두와 제4부두에서 《집삼》호와 《평화》호, 그리고 어제저녁 9시 10분 인천항에 도착한 제2진의 배들인 《관모봉》호와 《수근》호, 《어은청년》호가 부두에 닻을 내리는 즉시로 짐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약 2천여명의 로무자들이 하선작업에 참가했다고 하였다.

그가 취재차로 인천으로 막 떠나려고 하는데 양아버지인 양기섭한테서 급히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한영국은 인천으로 나갈일이 촉박해서 후에 만나면 안되겠느냐고 물었는데 저쪽에서는 잠간만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의향이였다. 그의 요구에서 이전과 다른 그 어떤 심중한 기미가 느껴지기도 했거니와 자기를 친자식처럼 키워준 늙은이의 청을 차마 거절할수 없어 그는 스스로 차를 몰고 양기섭이네 집으로 찾아갔다.

벽돌담장이 높이 서있고 유리로 지붕을 해씌운 실험실이 들여다보이는 마당가에 들어서니 양아버지는 마침 찾아왔던 손님들을 바래우는중이였다.

양기섭이또래의 이름있는 학자들인데 학계에서는 제나름대로 《원로》들이라고 자처하는 로장패들이였다. 그들이 다 떠나가자 마당은 휑뎅그렁하였고 왜 그런지 쓸쓸한 기운마저 풍기였다.

한영국은 차를 돌려 실험실모퉁이에 세워놓고 아버지를 따라 현관에 들어섰다. 전에는 흔히 양기섭이 《내 방으로 들어가세.》 하고 유리지붕으로 된 실험실로 들어가군 하였는데 이번만은 서재로 들어갈것을 요구하였다.

현관에도 복도에도 또 서재안에도 실험용화분이 널려있었다.

어떤것은 푸른 잎이 핀것도 있고 또 어떤것은 방금 씨를 묻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사회과학자들인것 같군요.》

한영국은 앞서 들어선 양기섭이 의자에 앉기를 기다리며 한마디 건네였다.

《그래. 신학자도 있고, 철학자, 법학자도 있는데 자기 분야에서는 모두 내노라는 사람들이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별로 용건이란건 없고 두루두루 모이다보니 그쯤 됐고 또 모이고보니 한바탕 쟁론이 있었지. 아무리 악다구니질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걸 잘 알지만 그래도 지성인이라는것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렇게 되기마련이니까.》

《그래 무얼 가지고 쟁론이 있었습니까?》

《허허, 기자가 관심을 가지는건 좋지 않은데.》

양기섭이 장대한 체구를 의자에 싣고 롱담조로 대하였다. 하지만 한영국은 제나름으로 걱정되는바가 있어 정색해지였다.

《요새 사회과학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주사〉에 대한 론의를 하게 되였네.〈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본것을 기본으로 좀 아는체 했더니 또 와야 하고 달려들지 않겠나. 그래 내가 주체사상의 철학적원리, 주체사상의 기초, 이런것을 말했더니만 언제 양씨는 생물학에서 철학으로 돌았는가고 아이로니지···》

양기섭은 농민형으로 생긴 얼굴을 손바닥으로 썩썩 문대며 한영국의 기분을 가늠해보는것 같았다.

《어서 편히 앉으라구.》

양기섭은 정색해서 급히 부른 용건을 내놓았다.

《요새 생활상 뭘 좀 느끼는바가 없나?》

매우 신중한 문제제기였지만 이미 한영국은 체념상태에 있었기때문에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적당히 받아들이였다.

《느끼는바가 하도 많으니까 어느것을 념두에 두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영국은 염낭에서 담배를 꺼내였다. 그렇지만 불은 달지 않고 쓰거운 낯으로 계속하였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적응되지 않으면 사멸한다는것을 내들고 나는 순간순간의 계기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적응되기가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참말 고통스럽습니다. 글을 써도 진실여부에 관계없이 적응되게 쓰고 대인관계에서도 그렇게 하고있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해도 자네가 놀라지 않겠으니 그건 다행이네.》

이렇게 서두를 떼놓고 양기섭은 벌써 2차에 걸쳐 자기 집이 가택수색을 당했다는것과 안기부요원이 나타나서 양자 한영국과 관련한 심문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안기부요원은 한영국의 출생지와 전쟁시기까지 자라난 경위 그리고 그 계보를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하였다는것이다.

이것은 박정희때 온 국민이 몸살을 할만치 들볶던 주민조사의 파편이기때문에 두려울것이 없었다. 전쟁때부터 거리를 방황하던 열여섯살짜리 고아를 양기섭이 데려다가 양자겸 조수로 썼고 그다음에는 학교를 보내 분가시켜 인도적의무를 다했던것이다.

《안기부 요원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한영국이 짚이는데가 있어 물었다.

《나이는 한 30이 되나마나한데 키가 날씬하고 이마가 넓더군. 이름이 리뭐라고 하던데. 저기 내 적어둔게 있네.》

《알만합니다. 리병찬입니다. 그래 어찌겠다고 합디까?》

《그건 알수 없네만 어쨌든 재미없는 노릇이 아닌가. 죄야 그놈들이 만들면 되는거니까.》

태연해지려고 하였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영국은 볼이 처질만큼 혈색이 좋았었는데 금시 얼굴이 하얗게 되고 숨이 차올라왔다.

(아버님의 말이 옳다. 죄는 놈들이 만들면 되는것이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뿌리를 캐는가. 북에 간 형에 대한 어떤 실마리라도 잡았단말인가. 아니면 기자활동에서 어떤 약점이라도 드러났단말인가? 누가 모함해서 밀고라도 했는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대성동에서 《태백산》호자동차 운전수에게 넘겨준 시계줄밖에 짚이는것이 없었다. 그러나 시계줄에 대해서는 근심할 필요가 없는것이다. 그것은 단독으로 한것이기때문에 리병찬이 띄여보았다해도 증인이 없어 뻗대면 되는것이다.

《아버님! 전 가보겠습니다. 오늘 인천에 갔다가 다시 와서 의논하겠습니다. 별일 없을줄 압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양기섭은 한길어구까지 따라나와 살아남기 위해 적응되여야 하는데 거기서는 도리나 리치를 가릴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아무튼 조심하게. 내 낌새를 보니 좋지 않아.》

어쨌든 한영국은 좋지 못한 징조라고 보았다.

올가미가 각일각 조여들고있다. 제일 좋기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 올가미를 벗어내치는것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이 정도로 정지시키는것이다. 가령 제3국으로 내빼면 어떻게 될가. 그러다가 기회를 보아 북에 있는 형을 만나러 갈수도 있는것이고···

한영국은 조향륜을 꽉 틀어잡고 탄탄한 도로를 내다보고있었다. 그는 이때 자동차가 아니라 자기 운명을 운전하고있는것처럼 생각되여 갈림길이 나질 때마다 이를 사려물고 방향을 잡아 인천을 향해 달리였다.

거리를 빠져 항구로 들어가니 항구둘레에는 엄중경계를 펴고있었다. 기자증명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세군데에서 조사를 하였다. 부두는 온통 가리워져있었다. 지함과 양철로 부두하역작업을 볼수 없게 둘러쳤고 주민들은 썩 앞에서부터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하였다. 그는 재빨리 적십자대표들이 있는 사무실로 찾아들어갔다.

《북에서 추가적으로 보내게 된것이 다 도착했습니까?》

한영국이 묻는 말에 《당신은 누구요?》 하고 검은 안경이 마뜩지 않게 쳐다보고있다.

《나 〈동아일보〉 기자요.》

《기자라는게 왜 어투가 그 모양이야.》

《그래 좌초에 의한 추가분은 보도금지요?》

《점점 한다는 수작이, 누가 보도금지래? 응?》

이때 이곳 적십자사대표인듯 한 반백의 사나이가 적당히 중재를 해서 그 정도로 그만두었다.

한영국은 화가 치미는것을 간신히 참고 밖으로 나와 사위를 둘러보았다. 하선작업은 이미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었다. 부두에 정박한 배들에서는 기중기들이 긴팔을 휘저으며 분주스레 돌아가고 세멘트지대를 실은 짐함을 꿰찬 지게차들, 화물차들이 서로 엇바꾸며 오가고있었다.

그러나 하선장은 어쩐지 썰렁하고 랭랭한 기운이 풍기고있었다. 이남의 로무자 2천여명이 동원되였다고 하는데 예상외로 한적하고 조용한것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곳곳에 여러가지 차단표식판이 세워지고 여기저기에서 통행감시자들이 어슬렁거리고있었다. 심지어 3부두앞에는 물자인도인수규정을 위반하는 사람은 엄단한다고 써붙인것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민족의 혈맥이 이어지고 감격의 선풍이 회오리쳐야 할 부두는 사실상 자동차와 기중기들의 동음을 내놓으면 죽은 부두라고 할만치 괴괴하였다. 북에서 보내오는 구호물자를 받게 된것은 이제 와선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부두에서의 하선작업마저 이다지 비밀을 지키며 엄단할 까닭이 어디 있을가싶은 의혹이 들자 한영국은 본능적으로 당국의 처사에 대한 반감이 치밀어올랐다.

그는 우선 제1진으로 들어온 배들부터 취재하기로 마음먹고 지금 한창 짐을 부리는 《금수산》호로 다가갔다. 갑판에 오르니 마침 이남의 로무자들 몇이 창구앞에 몰켜서서 기중기의 다래끼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한영국은 그중에서 퍽 나이들어보이는 유순하게 생긴 한 짐군을 붙들고 자기를 소개한 다음 구호물자를 받게 되는 감상이 어떤가고 물었다.

《감상이요?》

그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위험한 인물이 없다는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그를 보며 어줍게 웃었다.

《글쎄 뭐라고 했으면 좋겠는지··· 〈동아일보〉기자라지요?》

《예.》

하고 한영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이크를 들이댔다. 그러자 그 사람은 마이크를 손으로 밀어내고는 《선생은 진실을 듣자는것이겠지요?》하고 물었다.

《물론 그렇지요. 보도에서는 어디까지나 진실이 중요하니까요.》

짐군의 얼굴에 숙연한 빛이 비껴갔다.

《좋수다. 한마디로 북에서는 구호물자준비를 아주 정성들여 잘했수다. 나는 이 항에서 잔뼈가 굵어오며 세계 수십개 나라에서 온 화물선의 짐을 싣고 부리웠지만 세멘트지대를 이처럼 가로세로 줄을 맞춰서 싣고 그우에 포장지까지 덮은 배는 처음 봅네다. 우리가 처음 짐칸에 들어가 포장지를 벗겨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진줄 아시오? 줄맞춰 정성들여 쌓은 그 세멘트지대를 보며 모두들〈야!-〉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거기에는 북에서 보내오는 물자를 보고 감동을 표시해서는 안된다고 엄포를 놓던 안기부에서 온 사람까지도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낼 정도였단말이우다. 정말 이북동포들의 그 정성에 깊이 머리가 숙여집니다.

한피줄을 나눈 동족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할수 있겠수.》

《아, 그렇군요!》

한영국은 깊이 감동되였다. 겉으로 보기엔 랭랭한 기운이 풍기는것 같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굽이치고있었다.

《이북에서 온 사람들도 더러 만나보았습니까?》

《만나다뿐입니까. 아무래도 배의 주인은 그 사람들이니 배에 설치된 상하선설비의 조작법을 손에 익히자면 이북의 로동자들과 공동작업을 하지 않을수 없었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어떻게나 친절하고 례절이 밝은지··· 이북에서 온 한 기중기운전공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디다. 분단이래 근 40년만에 북과 남이 구호물자를 주고받는것도 처음이고 북과 남의 로동자들이 한일터에서 어깨를 들이밀고 서로 도우면서 일하는것도 처음있는 경사라구요. 그러면서 비록 이렇게 만나기는 처음이나 북과 남으로 뜨겁게 흐르는 동포애야 어디 가겠느냐고 하지 않겠수. 참말 꿈만 같수다. 이렇게 자꾸 만나면 가까워지고 통일도 그만큼 당겨질것같은 생각이 드웨다.》

짐군의 감동깊은 이야기는 그이상 더 들을수 없었다. 숙연한 생각에 잠겨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사람이 갑자기 낯빛이 굳어지더니 《옵니다. 기자선생, 내 말을 신문에는 내지 마시우.》하고 귀속말로 이르고는 제 동료들에게로 급히 사라져갔다. 선수갑판쪽에서 눈꼬리가 사납게 생긴 잠바입은 한 사나이가 로무자들의 행동거지를 흘끔흘끔 살펴보며 유유히 다가오고있었다. 몸집도 통통하고 목도 밭은것이 리병찬이와는 생김새가 판판 달랐지만 소름이 끼칠만큼 랭혹스런 표정이라던가 밤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오는 얄미운 행동거지만은 신통히도 한족속이라는것이 알려졌다.

한영국은 그따위 족속들과는 애당초 마주서고싶지도 않아 얼른 세멘트지대를 헐어내리는 창구안으로 들어갔다. 짐군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짐은 이미 반나마 부리웠는데 실내등이 환하게 켜져있고 창고의 한쪽끝에 가로세로 줄맞춰 쌓아놓은 세멘트지대들이 보이였다. 세멘트를 부리우는 작업장이지만 먼지 한점없이 깨끗하였다. 그는 거기서 또 몇사람을 만나 담화하였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입을 모아 북조선을 찬양하고있었다. 세멘트의 질도 좋지만 적재작업을 정성스레 하였다는것이 일치한 견해였고 감동이였다. 특히 하역작업시에 포대가 상할것을 고려해서 여분지대를 짐칸마다 몇백장씩 넣은것을 보고는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한 로무자는 그에게 내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세멘트작업을 하면서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대를 이렇게 정성들여 차곡차곡 쌓아놓으니 다루기도 좋고 세멘트가루를 날릴 걱정도 없지요. 그러니 이것은 이남의 우리 인부들을 도와주는것이라고 볼수 있지요.》

또 다른 로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대세멘트 수천t을 두부모처럼 줄을 맞추어 쌓는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짐칸에 지대를 예비로 수백장씩 가지고왔는데 참 훌륭한 일이지요. 아마 지대가 터지면 바꾸어넣어 수재민들에게 보내달라는것이겠는데 얼마나 세심하고 아름다운 마음씨입니까.》

한영국은 구호물자를 대하는 이남민중의 열렬한 감동을 첫 순간부터 벌써 뜨겁게 느낄수 있었다. 대성동에서 쌀을 인수할 때와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분위기가 또 달랐다. 그때도 쌀이나 천, 약품을 두고 감탄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 여기서처럼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 북을 찬양하지는 못했었다. 구호물자를 받게 되면 물자 몇천 몇만t이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몇배나 더 무서운 《적색물》이 흘러든다면서 피눈이 되여 갖가지 모략을 꾸미던 당국자들의 당황상이 이제 비로소 똑똑히 리해되는듯 하였다. 확실이 《적색물》은 흘러들고있었다. 북에 대한 찬양, 북에 대한 동경, 북에 대한 선의··· 이것은 북을 적으로 규정하고 절대로 화합할수 없는 이질적인 타민족, 이방지대처럼 여겨온 《국가보안법》에는 분명 저촉되는것으로서 《반공법》에 걸려 류치장이나 교수대로 끌려가기가 십상인 《반국가적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영국은 어째선지 북에 대한 그들의 찬양의 목소리에 반감을 느끼게 되지 않았고 도리여 그 견해에 공감하게 되는 자신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당국자들이 《적색물》이라고 하는것은 결국 동포애와 혈육의 정이였으며 둘로 갈라질수 없고 하나로 합쳐야만 한다는 통일에 대한 열망이였다. 그렇다면 이 민족의 숙원, 겨레의 갈망을 막아나서는 당국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것인가.

그는 배에서 내리였다. 가능한껏 북에서 온 배들을 다 돌아보고싶었고 또 여러사람들을 만나보고싶었다. 다음배로 넘어가다가 자동차옆에 어깨가 쩍 버그러지고 근육이 잘 발달된 30살가량의 청년이 세멘트지대우에 앉아있는것을 보자 또 그를 붙잡았다. 집이 어딘가고 물으니 어름어름하다가 인천시의 중앙거리로 나가다가 2층집 《아리랑면옥》 뒤골목에 있다고 하였다. 북에서 보내온 세멘트질이 어떤가고 물으니 그는 한영국의 팔에 두른 《기자》라는 완장을 곱지 않은 눈길로 흘깃 쳐다보고나서 속비뚤어진 소리를 하였다.

《질이요? 이런건 고층건물은 못짓고 변소간공사나 하기에 알맞춤하지요.》

한영국은 흠칫 놀랐다. 이게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그렇다면 이제껏 그가 취재한것은 거짓이였고 또 그가 목격한것도 진실이 아니란말인가. 이야기를 하던 사나이는 벌떡 일어나서 기중기에서 내려놓는 세멘트포대를 대강 쌓아놓고 한영국에게로 다가왔다.

《질이 말이 아닙니다. 실물을 하나 보겠습니까. 기자선생.》

사나이는 저쯤 놓여있는 저울앞으로 그를 끌고갔다.

《공산주의자들의 협잡이란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그리구 세멘트가 배마다 다 다릅니다. 밑천이 없는걸 박박 그러모으다보니 빵자가 난거지요.》

한영국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였다. 처음부터 미심쩍다고 보았는데 안기부에서 박아넣은 놈팽이가 틀림없었다. 이런자들이 도처에 박혀있어서 취재에 지장을 주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기자들을 감시하는것이다.

그는 그곳 하선장을 떠나 어제밤에 도착하였다는 《어은청년》호로 옮겨갔다. 청년호란 배이름처럼 거기에는 젊고 팔팔한 선원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한 스무살 되였을가한 북조선 선원을 하나 불러세웠다.

《안녕하십니까?》

한영국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접근해갔다.

《이 배는 어디서 떠났습니까?》

《해주에서 떠났습니다.》

순박한 청년은 덧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동아일보〉사 기자올시다. 잠간 이야기를 나눌수 있겠습니까?》

《어서 말씁하십시오.》

청년은 수집음을 타면서 웃었다.

《이 세멘트는 어데서 만든겁니까?》

《해주세멘트공장에서 만들었습니다.》

《마르까가 얼마나 되는지요? 이걸로 고층건물도 지을수 있습니까?》

《물론 지을수 있습니다. 우린 이 세멘트를 동남아시아나 유럽시장에 내다팔고있습니다. 난 과학은 잘 모르는데 50층높이까지는 문제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수재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보내는것이기때문에 질이 어떻다고 자랑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이 나서 집이 떠내려갔다면 그건 모두 빈곤한 사람들일테니까 말입니다. 그들이 50층이나 100층짜리 집을 지을 그런 강질세멘트야 필요하겠습니까. 혹시 우리 이 세멘트를 당국자들이 빼돌리고 나쁜것을 나누어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좋건 나쁘건 관계없이 우리가 보내는 쌀과 천, 세멘트가 그냥 그대로 수재민에게 가닿기를 바랍니다. 기자선생! 신문에 글을 낼 때 똑똑히 밝히십시오. 우리는 물품자랑을 하자는것이 아니고 동포들이 받고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것입니다. 하기야 뭐 수재민 한 세대에 쌀 250㎏씩 해당된다니까 량도 적은것이 아니지요. 몇달은 먹을수 있지요.》

아직 솜털도 벗지 않은 애숭이청년이 어쩌면 그렇게 사리에 맞게 그리고 떳떳하게 말하는지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더 이상 말해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정이 자꾸 끌려 몇마디 말을 더 해보고싶었다.

《세멘트이야기는 그만하고 여기 인천항에 온 감상은 어떻습니까?》

《감상이요?》 하고 청년은 잠간 망설이다가 말하였다. 《감상이란 별거 없습니다. 우리 무역선은 세계 어느 나라나 못가는데가 없었는데 오직 우리 조국땅인 남조선에만 못왔댔습니다. 그런데 정작 와보니 사람들도 다 좋고 우리와 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있던데요. 나라를 통일하는것이 좋겠다고들 합니다. 기자선생, 내 노래 하나 부를테니 들어보겠습니까?》

청년은 차츰 더 대담해져서 손을 잡고 끌어당긴다. 자그마한 눈이 반짝반짝 빛나더니 노래를 시작하였다. 목청은 생김새와는 판이하게 저음이였다.

 

반만년의 피줄을 이어온

우리는 하나의 민족

백두산의 줄기가 내리여

이 땅은 하나의 강토

갈라져 몇 해더냐

헤여져 몇 해더냐

겨레여 나서라 통일의 한길로

조선은 하나다

 

순박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떤 주입에 의해 형성된것이라고 해야 할지 알수 없으나 어쨌든 이 정도의 자부와 대담성을 가지고있는데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한영국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물러섰다. 해를 가늠해보니 벌써 저녁녘이였다. 서둘러야 하였다. 부두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가보니 한창 밥을 먹는중이였다. 녀성봉사대성원들이 자동차에다 밥곽을 실어왔다. 자동차둘레에는 하역작업을 하던 짐군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흰옷에 누런색조끼를 입고 비닐채양모양자를 썼기때문에 멀리서도 가려볼수 있었다.

그는 부두를 뒤에 두고 재빨리 적십자대표들의 연회장으로 되여있다는 올림프스호텔로 달려갔다. 남북적십자대표의 명의로 된 연회를 차린다고 하는데 뒤골목에서는 벌써 《새치기》를 하는 모양인지 술추념이 벌어지고있었다. 호텔주인에게 《누구들인지 만날수 있을가요?》 하고 물으니 안기부 요원들이라고 하였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장신자가 하나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세멘트질이 형편없다고 비난하던 그자였다. 제편에서도 기자를 보기가 어색했던지 고개를 돌리고 위생실로 훌쩍 들어가고말았다.

《악당들, 협잡군놈들.》

연방 악에 받친 소리가 쏟아져나왔지만 한영국은 목을 지그시 누르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 나서는데 마침 판문점 회담장에 나갔을 때 만났던 《서울신문》의 민기선이 마주오고있었다. 구척장신자인 그는 오늘도 여전히 시꺼먼 색안경을 끼고 거뜰거뜰 걸어오다가 한영국을 보고

《오, 한선생도 이곳에 나타나셨구려. 그래 쎈세이숀을 일으킬 보도감을 취재하셨소?》하며 싱거웁게 손을 들어 반겨준다. 그를 여기서 또다시 만나니 한영국이도 어지간히 반가왔다.

《민선생은 좋은 소잴 잡았소?》

서로 악수를 하고나자 한영국은 빙긋 웃었다.

《말마시오. 참 골치거리요. 벌써 어제부터 이틀째나 헤매는데 들리는건 전부 북에 대한 찬양과 동경뿐이니··· 그거야 어디다 내놓겠소. 목이 열개라도 못견디거든. 당국이 요구하는 소재는 어디도 없으니··· 내 이러다가 밥탁이 떨어지지 않겠는지 모르겠소.》

《우는소리 마오. 민선생 재간에 그까짓 원고지 몇십장 메꿀 기사 하나 가지고 뭘 그러오. 만들면 되는거지, 소재라는게 별 뾰족한게 있소?》

한영국은 우정 비꼬는투로 이렇게 말해놓고는 씩 웃었다. 민기선이 때로 당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얼토당토않는 글을 써낸적이 없지 않았던만큼 그걸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다. 그러나 이번만은 민기선이도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정색해서 중얼거렸다.

《아니, 그렇게는 못하겠소. 다른건 몰라도 이번만은··· 내게도 동족의 피가 뛰고있고 이 땅에서 나서자란 생명인데 그것만은··· 차마 거짓말을 못쓰겠소.》

《그럼 〈대동강〉호가 조난당하여 세멘트 전량을 못가져온데 대해 쓰구려. 거기에 살을 좀 붙이면 당국이 요구하는 그 무슨 〈글〉이 되지 않겠소?》

민기선이 그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뻔히 쳐다보았다.

《선생은 그게 무슨 소리요?》

《민선생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만, 북에서 오던 배 한척이 좌초되여 세멘트 전량이 못들어오게 됐다는거요. 이걸 두고 당국에서는 하늘이 도왔다고 쾌재를 부르고있소.》

민기선이 갑자기 고개를 젖히고 껄껄 웃었다. 한영국은 어리둥절해졌다.

《〈동아〉의 난다긴다하던 한선생이 이번만은 왜 그러시오? 여직 깜깜이시구려. 그 조난당한 배를 대신해서 〈순천〉호와 〈룡남산〉호란 배 두척이 보충되여 세멘트를 싣고 오늘아침 9시경에 해상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수역에 들어섰다는거요.》

《뭐요? 그게 사실이요?》

한영국은 얼른 믿어지지 않아 눈동자가 굳어졌다. 좌초됐다는 때로부터 불과 몇시간이 지났는가. 넉넉히 잡아 36시간이다. 그동안에 세멘트 1만 2천t을 수백리길 륙로와 철도로 운반하여 배에 실어 지금 이 시각에는 남측수역으로 넘어와 인천항을 향해 오고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기적이 아니고서는 이것을 현실이라고 믿기가 어려웠다. 이때 그의 머리속으로는 대성동 구호물자 인도인수장에서 북측대표가 하던 말이 다시금 생생히 떠오르며 가슴속이 쿵 울리는것이였다.

민기선의 말은 거짓이 아니였다. 이튿날 아침 《순천》호와 《룡남산》호가 인천항에 도착하였다. 먼저 《룡남산》호가 8시 40분에 부두에 와닿았고 뒤이어 9시 20분에 5만t급의 대형선박인 《순천》호가 들어와 닻을 내렸다. 이로써 인천항으로의 6만 5천t에 대한 세멘트 전량의 수송이 완료되였다. 그보다 앞서 북평항에서도 이미 3만 5천t이 수송되여 하선작업이 마감단계에서 진척되고있었다.

한영국은 우선 《순천》호에 올라가보았다. 섬같이 크고 거창한 배였다. 이남당국자들이 입버릇처럼 외우던 《이북경제의 취약성》이라던지 이북에는 큰배는 없고 발동선같은것뿐이라고 한 비난들이 너무도 엉터리없는 거짓말이였다는 사실에 그는 노엽기에 앞서 허거픈 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당국자들에 대한 조소였고 또한 아직 그네들의 어용나팔수로 살아온 자기자신에 대한 혐오감이기도 했다. 짐도 1진이나 2진으로 들어왔던 배들과 똑같이 두부모처럼 규모있게 쌓여져있었다. 조난당한 선박을 보충하기 위해 화물을 급하게 실었겠는데도 흠집하나 찾아볼수 없는 그 사실앞에서 한영국은 무어라 한마디로 말할수 없는 복잡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지구라는 이 행성에는 크고작은 나라가 많고 그 나라들중에는 원자탄이요, 수소탄이요 하는 핵무기들을 휘두르며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는 나라도 적지 않지만 세계 그 어디에도 이북과 같이 이처럼 무서운 힘을 보여준 나라는 없을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있어 2천만을 헤아리는 이북동포들 모두가 하나로 뭉쳐 이다지도 놀라운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는것일가. 이것이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이 있기때문일가. 참, 이 사업의 맨우에는 김정일지도자가 서계신다고 했었지.)

그는 창고에서 나와 이번에는 선원실로 들어갔다. 한방에 두명씩 들어가있는 방인데 아늑하고 화려한 그 방에는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지도자의 초상화가 가지런히 모셔져있고 그 옆벽에는 붉은 색바탕에 흰색으로 쓴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구호가 나붙어있었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한영국은 그 구호에 눈길을 박은채 입속으로 조용히 외워보았다. 그 순간 그의 뇌리속에 무엇인가 번개처럼 번뜩 스쳐가면서 심장이 흥분으로 세차게 뛰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다! 모든것을 자기 식대로 사고하고 자기 식대로 행동하는 바로 여기에 이북이 그 무엇과도 비길수 없는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비결이 있고 세상사람들을 놀래우는 기적을 창조하는 힘의 원천이 있는게 아닐가. 이 기저에는 인간옹호의 사상으로 꽉 들어찬 주체사상이 깔려있는것이다.)

한영국은 두분의 초상화를 다시금 우러러보았다.

대성동에서 우연히 만났던 조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약혼식을 김정일지도자께서 축하해주시고 어머니와 자기를 그리워하는 형님의 마음을 헤아려주셨다고 했었다. 판문점에 왔던 북측대표는 자기들의 맨우에 그분께서 서계신다고 하였다. 그렇기때문에 북에서는 리병찬이 하늘이 도왔노라며 쾌재를 부르던 그 난관을 단호히 이겨내고 구호물자 전량을 여기 이곳에 보내온것이다.

위대한분들이시다. 우리 민족사의 5천년력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위인들이 오늘 이북에서 해와 별로 높이 솟아 7천만 우리 겨레의 가슴에 희망을 안겨주고있으며 근 40년간의 분단의 장벽을 뚫고 동포애의 정이 대하처럼 굽이쳐흐르게 하시였다. 그분들이 창시한 주체의 휘황한 빛발은 우리 겨레, 우리 동포들뿐아니라 세계만방에 찬란히 빛을 뿌리며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주고있다.

(형님, 난 형님이 부럽소. 인간다운 참생활이 있는 그곳, 형님의 생활이 부럽소!)

한영국의 눈에서는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눈물을 닦을념을 안했다. 리병찬이따위의 안기부 요원들아, 볼테면 봐라. 내가 이곳으로 떠나올 때 양아버지는 적응해야 한다고, 그래야 생명을 보존할수 있다고 걱정스레 당부했지만 좋다! 그까짓 생명이 대수냐. 누구든 인간이란 한번은 죽기마련인데 좀더 일찌기 사라진다 해서 무엇이 두려우며 아까울게 있으랴.

그는 연거퍼 샤타를 눌렀다. 두분의 초상화를 화폭에 담았고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구호도 렌즈속에 잡아넣었다.

이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인천항에서 십리나 떨어진 《자유공원》이란곳에 들리여 구호물자를 싣고온 이북배를 보러 나온 인천사람들을 만나 이남민중의 반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취재하였다. 그곳은 당국자들이 각종 차단물로써 사방 막아놓은 인천항을 내려다볼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