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7

 

제 5 장

7

 

허담이 정원을 거닐고있을 때 최성덕이 탄 차가 천천히 마당에 들어섰다.

최성덕은 이미 윤숙경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섭섭해하며 걱정했는데 오늘은 당중앙위원회 허담비서가 만나자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몹시 긴장되였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라는 존엄있는 직분때문에도 그러하였지만 부친의 묘를 찾아뵈옵자고 하는 당일, 그것도 시간이 림박한 대목에 만나자고 한것은 범상하게 스쳐버릴 문제가 아니였다.

그는 차에서 내려 맞받아오고있는 허담을 향해 급히 걸음을 내짚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것인가.

《안녕하십니까?》

금속테안경을 끼고 매우 리지적인 얼굴을 가진 50대의 사람이 손을 내들고 다가왔다.

《허담입니다. 그새 건강은 어떻습니까?》

최성덕은 당황해서 허리를 약간 굽히며 손을 맞잡고 인사를 받아들이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직껏 살아오면서 그는 사교계에서도 그렇고 국제적인 모임에서 모모인사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결코 례의범절에 서툴지 않았으며 부자연스러운 점을 나타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자신의 몸가짐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지 리해되지 않았다.

《조선사람은 예로부터 객지에 나오면 고생하기마련이라고 했는데 불편한 점이 많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허담의 근시경안에서 예리한 시선이 번뜩이였다.

《아니올시다. 이곳 사람들의 친절성에 크게 감탄할뿐입니다. 불편한 점은 하나도 없고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라고나 할는지요. 솔직한 감상을 말씀드린다면···》

최성덕은 벗어진 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기면서 다시한번 고개를 숙여보이였다.

허담은 진한 눈섭이 꿈틀할만치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사실이 그렇다면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허담은 한가지 토론할 일이 있다면서 뒤를 이었다.

《오늘 부친님의 묘를 찾아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초 예정으로는 윤숙경동무가 계속 안내하게 되여있었는데 갑자기 몸이 불편해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혹시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안내 겸 동행해드리자는 생각인데 딴 의견이 없겠습니까!》

이때 담배불을 붙이던 최성덕의 손이 꿈틀 흔들리기까지 하였다. 너무나 뜻밖이였다. 때문에 가타부타 대답을 하기에 앞서 온몸으로 놀라움을 나타내였던것이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허담은 계속하였다.

《다른것은 없고 이국땅에서 불원천리 조국을 찾아온 동포가 친척도 친우도 없이 외롭게 성묘를 하게 되는것이 어쩐지 쓸쓸하고 고독해보여 말동무라도 해주자는 생각에서 그랬습니다. 혹 불편하게 여겨질것 같으면 그만두도록 하겠으니 선생님의 뜻대로 하십시다.》

《아! 그렇습니까?》

최성덕은 손가락사이에 끼웠던 담배가 땅에 떨어졌지만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였다.

《감사합니다. 아닌게아니라 외롭고 쓸쓸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는 옆에 서있는 젊은 새 안내원을 흘깃 쳐다보고는 어줍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본인은 윤숙경부인에게도 간단히 말했습니다만 이번에 이북에 와보고 느껴지는바도 많고 분에 넘치는 친절한 환대에 무척 감동되였습니다. 그렇지만 가까운 친지 한사람 없으니 외로운 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눈물을 머금고 이 운명을 감수해야겠다고 다짐했던거지요. 네! 조국이 본인을 버린것이 아니라 본인이 조국을 버린것이기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부친의 령혼도 감격해 맞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성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맺고 고개를 들었다. 허담은 로동자풍의 소탈한 몸가짐으로 몇걸음 나서며 《그러면 같이 가볼가요.》하고 자신의 차로 같이 가자고 손짓을 하였다.

차에 앉은 최성덕은 안절부절해서 생각깊은 눈길로 차창을 내다보다가는 옆에 앉은 허담을 쳐다보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무릎우에 놓인 주글주글한 자기 손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이북에 발을 들여놓은지는 얼마되지 않지만 실로 그동안에 그는 일생에 한번도 목격할수 없었던 새라새로운것들을 보고 느끼며 생각이 깊어졌다. 이제 아버지묘를 찾아 성묘나 하고나면 그토록 가슴 조이며 단행했던 이북방문의 일정도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방문기간에 친절하게 대해주고 생활의 사소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사심없는 성의를 보내준 이북사람들과 다시 헤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는 어떤 알수 없는 애수가 비껴드는듯 하였다.

승용차는 어느덧 련못거리를 빠져나가고있었다.

《한가지 물어도 일없겠습니까?》

최성덕은 량해를 구하는듯 한 표정을 지으며 허담을 쳐다보았다. 허담은 안경을 밀어올리며 어서 그러라고 기꺼이 응하였다.

《윤숙경부인은 좀 어떻습니까. 갑자기 병원에 실려갔다던데 병은 무엇으로 진단되였는지요?》

《심장발작이라고 하는데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며칠 안정하면 인차 회복될것 같습니다.》

《무슨 질환이라도 가지고있었는가요? 아니면···》

《글쎄 그걸 질병이라고 하겠는지?··· 그 동문 워낙 심장이 좀 좋지 않았습니다. 선생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구호물자를 싣고가던 우리 배 한척이 좌초되여 뜻하지 않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하, 듣다뿐입니까.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 소식을 듣고 여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조선에 보내는 구호물자는 어떻게 되였습니까? 인도가 끝이 났습니까?》

《전량을 다 보냈습니다. 아마 오늘이나 래일 인도인수가 완료되였다는 보도가 나올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참말 대단한 일입니다. 구호물자의 량도 전례없이 많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가 있은 다음에도 지체없이 예정량을 다 보냈다니 이북의 막강한 힘에 그저 탄복할뿐입니다. 그것을 통해 나타난 동포애는 또 얼마나 크고 숭고한것입니까. 사실을 목격한 저는 기쁨과 감격을 금할수 없습니다.》

애초의 의지와는 달리 찬탄의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오는것을 최성덕은 자기 스스로도 어쩔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한피줄을 이은 남녘동포들의 고통을 얼마간이라도 덜어주고싶은 심정이였을뿐 량도 많지 못하고 성의도 부족한것만 같이 생각하고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최성덕은 손을 흔들어 단호하게 부정하였다. 그는 담배를 한모금 빨고나서 계속하였다.

《본인은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쌀이나 천 그리고 세멘트만을 보낸것이 아니라 놀랄만치 뜨거운 동포애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함께 보내는 거사를 치르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정말 감탄할만한 일입니다.》

《물론 그런것이 없었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우리들 생각의 극히 적은 부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전에 개성을 향해 떠나는 자동차행렬을 구경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스물대여섯살 났을가한 운전사와 잠간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밤잠을 자지 못하며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량심상 큰 가책을 받았습니다. 운전사청년은 거침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쌀이 남아서 처치곤난이 아니다, 그러나 형제가 재난을 입고 한지에 나앉아있는데 가만있을수 있겠는가. 이 짧은 한마디 말속에 얼마나 큰 뜻이 담겨있습니까. 그날밤 본인은 자신을 크게 반성하였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최성덕은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말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그 부인이 정말 안됐습니다. 무척 상냥하고 친절한 부인이였는데···》

《고생이 많은 동무입니다. 자기 가족과 자신의 한생을 조국통일을 위해 바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녀성이지요.》

《그건 무슨 뜻인가요?》

《그는 왜정때에 광주에서 서울로 끌려와 어느 방직공장에서 녀공으로 일했는데 해방후에는 미군의 남조선강점과 리승만독재정권을 반대하여 싸워온 애국자입니다. 그러다가 지리산 〈토벌〉때에 남편을 잃고 그후엔 또 하나밖에 없던 아들과도 생리별을 당한후 카나다에 망명가있다가 몇년전에 우리 조국에 왔는데 자식의 생사여부조차 모르고있습니다. 남편을 잃고 자식과도 헤여지게 되는통에 생긴 병이라는데 그 상처가 웬간해서 아물어지겠습니까.》

《남편은 지리산유격대원이였는가요?》

《지리산유격대 중대장이였답니다.》

최성덕은 숨이 꺽 막히는것 같아 입을 다물어버리고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눈에 비껴들던 거리풍경은 순간 불길속에 휩싸인 산간마을들이며 처처에 나딩구는 처참한 시체들로 변하였다. 그가 한생 잊지 못하고 자주 상기하군 하는 지리산일대의 《토벌》작전때의 장면이였다.

겁에 질려 떨고있는 사병들을 쏴보며 그는 주먹을 흔들었다.

《공산주의가 이 땅에 있는 한 배달족은 편안할수 없고 번영할수도 없다. 공산주의〈폭도〉들을 소멸하는데 어느놈이 주저하고 겁을 먹느냐. 나서라!》

그가 노려보며 하나하나 짚어나가던 검은 얼굴들, 명령을 받은 사병들의 광기어린 살륙에 너저분히 쓰러진 시체들··· 그 시체들속에 녀인의 남편도 있었을런지 모른다. 아마 그래서 녀인은 그와 같이 비행장에서 들어오는 차안에서 별로 곁을 주지 않고 침묵해온것인지도 모른다.

최성덕은 몸을 후두두 떨면서 진땀이 내솟은 이마를 훔치였다.

《혹시 차멀미를 하는거나 아닙니까?》

허담은 낯빛이 창백하게 질려가는 최성덕을 돌아보며 운전수에게 차를 천천히 몰라고 하였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는 애써 몸가짐을 고치고나서 다시 물었다.

《부인은 나를 모르지 않겠는데요.》

《물론 알고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선생을 안내하는데 방해로 될건 없습니다.》

《리해안됩니다.》

최성덕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제가 꼭 그 부인의 남편을 어쨌다고 볼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봐도 저에 대한 반감쯤은 있을수 있지 않겠습니까?》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날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선생이 우리 나라에 온 손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체 개인적인 감정을 공적인 사업에 개입하는것을 금물로 여기고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공적인 사업에 개입하는것을 금물로 여긴다?)

최성덕으로서는 선뜻 리해되지 않는 세계였으나 무엇인가 뜨겁고도 세찬것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말이였다. 이때 웬일인지 구호물자를 싣고가던 운전사청년의 웃음어린 얼굴이 떠올랐다.

그도 이 비슷한 말을 했었다. 쌀이 처치곤난해서 보내는것이 아니란 말은 결국 자기보다 남을 먼저 위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이북 공산주의자들의 생활관이라면 여기엔 확실히 새로운것, 인간다운 인내천의 세계가 있다는것을 말하는것이 아닌가.

최성덕은 생각이 깊어져 입을 다물었다.

차는 어느덧 룡성거리를 지나고있었다. 풍치 아름다운 솔밭이 나졌다. 길가에까지 나왔던 장끼 한마리가 울긋불긋한 꽁지를 땅에 끌면서 황겁히 숲속으로 들어간다.

얼마간 마음을 가라앉히고난 최성덕은 차창밖을 내다보고있는 허담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한가지 또 물어도 일없겠습니까?》

허담이 고개를 돌리자 그는 나직이 말을 계속하였다.

《본인은 여기 도착하자 인차 건강이 좋지 못해 적십자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요?》

허담은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최성덕은 《아니, 다른것이 아니구요.》 하고 일단 의혹을 막아놓고 뒤를 이었다.

《그때 본인은 이런 광경을 목격한 일이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입니다. 본인을 담당한 의사 양선생은 올해 41살이라는데 집에서 어린애 둘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는 7살이고 하나는 5살이라고 합니다. 그애들이 아버지를 만나서 이런 말을 하고있었습니다. 간밤에 어머니가 공장에서 돌아오지 않아 뻐스정류소에 나가 서있었다고 합니다. 비가 쏟아지는데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차를 세우고 타라고 해서 공장에까지 가서 어머니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놓고 본인이 알고싶은것은 여기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게 있을수 있는 일로 되여있는가 하는것입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허담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최선생! 제가 구태여 거기다 설명을 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목격하신 그대로인데요.》

계속해서 그는 껄껄 웃고나서 한마디 더 보태였다.

《그런 일이 항다반사로 있는 일이라고 말할수는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그닥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먼데서 실례를 들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엊그제는 최선생을 안내하던 윤숙경동무의 병이 위독하다는것을 아신 그이께서 친히 병원을 방문하여 환자의 병구완을 하시였습니다.

그러고보면 비오는 밤에 어린것들을 위해서 시간을 얼마간 지체하셨다는것은 십분 있을수 있는 일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최성덕은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이고있다.

두대의 승용차는 솔밭속을 누비고나간 오불고불한 길을 따라나가다가 민틋하게 드러누운 언덕에서 멎었다.

일행은 안내원을 따라 송림속에 자리잡은 묘지에 도착하였다.

최성덕은 이끼가 한벌 내돋은 묘비앞에 멈춰섰다. 그는 비문을 내리읽었다.

《고 최영호의 묘 1961년 9월 16일 사망. 묘주 장남 최성덕》

앉은키 하나만 한 소박한 묘비 웃머리부터 맨밑의 대돌에 이르기까지 두세번 훑어보던 그의 몸이 순간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머리를 잔디판에 눌러댄 그는 허리를 비틀면서 끅끅 숨을 삼키였다.

《아버님! 아버님!》

처음에 이렇게 시작하는것 같았는데 다음은 무엇이라고 설분을 터치는지 옆에서도 잘 들을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솔밭속으로 바람이 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그러나 잔디판을 덮었던 코트자락이 펄럭이고 얼마 남지 않은 뒤통수의 희여진 머리카락이 스산하게 날리였다.

허담은 70에 이른 늙은이가 어린애처럼 울고있는 모습을 처량한 눈길로 바라보며 서있었고 안내원은 지함을 헤치고 제물을 꺼내였다.

최성덕은 이마를 땅에 굴리면서 잔디를 북북 쥐여뜯었다. 가슴에 고이고 맺혔던 오열이 목으로 뿜어올랐다. 그와 함께 수십년동안 언제나 머리속에 지꿎게 매달려있던 가지가지 어지러운 추억들이 심장을 흔들어놓았다. 그가운데서도 뚜렷한것은 아버님의 강의한 초상이다. 너그러움이란 어데도 깃들 구석이 없는 표표한 얼굴에는 조국광복이라는 기상으로 만주로 상해로 달음쳐다니는 과정에 만들어진 록록치 않은 의지가 새겨져있었다. 1948년 3월 바람이 몹시 부는 스산한 날밤 최영호는 아들에게 자기는 북으로 가겠다고 선포하였다.

《북으로요?》

최성덕은 무의식중에 반문하였다. 그러나 그는 부친의 마음이 북에 쏠리고있다는것을 이미부터 알고있었다.

《내가 북에 가는것은 각 정당, 사회단체들의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거나 어떤 용무가 있어서만 아니다. 여기 남조선이 돼가는 꼴을 보니 내가 이미부터 가려던 그 길이 아니야. 나는 북의 김일성장군을 따르련다.》

《그러니 공산주의를 하시겠다는건가요?》

《아무주의든 나는 김형직선생과의 의리를 버릴수 없고 또 지금 김일성장군을 따라 3천만이 나가는데 나도 그속에 끼우려는거다. 나는 죽어서라도 평양땅에 묻히겠다. 그게 소원이야.》

최성덕은 아버님의 걸음을 멈춰세울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나도 《국군》련대장이니까 과히 구차하지 않을 정도로 살수 있고 앞으로는 점차 더 나아질것이라고 말하고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때문에 살틀한 말 한마디 못하고 영영 헤여졌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수십년동안 주먹을 부르쥐고 달렸지만 방향도 목적도 없다보니 무한정 큰 반원을 그리면서 그거나마 물에 뜬 나무잎처럼 흘러서 여기에 온것이다.

그동안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이룩하였는가. 아무것도 없는 빈손, 공허인것이다. 공수래공수거가 인생이라고 하였지만 이렇게 허무할수가 있는가. 그러나 아버님 최영호는 자기 지조대로 바로 자신이 바라던 이 땅, 이 언덕에 편안히 누워있는것이다.

《아! 아버님!》

그는 주먹을 들어 땅을 두드렸다.

《불효자식 이제야 왔습니다.》

가을비에 한껏 젖은 눅눅한 땅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있건만 그는 한사코 땅을 쳐서 령혼이라도 깨워볼것처럼 안타까이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이윽해서 안내원은 최성덕을 부축해서 제상앞으로 데려왔다. 옻대우를 낸 검은 소반에는 술잔이 놓이고 몇개의 접시에 육편과 과일이 챙겨졌다.

접시를 고인 사기잔에 술을 붓자 최성덕은 그것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제단에 올린 다음 머리를 숙여 큰절을 하였다.

뒤이어 허담은 준비해갔던 국화꽃 한묶음을 제돌에 올려놓고 머리를 숙이였다.

이것으로 최성덕이 수십년동안 소망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여 가슴에 옥맺혀있던 성묘라는 아들로서의 도리를 지키는 하나의 행사는 끝난셈이였다.

그러나 하나의 원이 풀리자 이번에는 그보다 더 큰 그 무엇이 순간에 생겨났다. 지금까지는 부친의 성묘가 생의 말년에 품은 가장 큰 소원이였으며 따라서 그것은 최성덕을 추동하는 강한 힘이기도 하였다. 한데 그것이 풀린 이제는 무엇에 의탁해서 살며 무엇을 위해서 생을 이끌것인가? 공허와 허무를 메꿀 그 무엇도 이제는 없단말인가? 어째서 나는 선조의 유골이 묻힌 이 땅을 등지고 며칠후에 외국만리로 떠나가야 하는가. 무엇이 나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는가? 여직까지 끌어온 무목적, 무방향을 그대로 고스란히 앞날에도 유지해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제상을 다 거둔 후에도 최성덕은 잔디판에 앉은채 일어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묵묵히 앉아있었고 다음에는 담배를 태우며 시간을 끌었다. 그 다음에 그는 소담하게 자란 잔디풀을 뜯어날리며 묘지기처럼 서있는 키가 한길이나 되는 노가주나무를 쳐다보았다. 이제 일어나 한걸음 내떼면 그때부터는 어디에 가닿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어야 할것이 아닌가. 워싱톤에 가기 위해 걸음을 내떼야 하는가? 이 세상에 천갈래 만갈래의 길중에 내가 내짚을 길이 과연 하나도 없단말인가.

그는 시뻘겋게 피가 진 눈을 들어 《그만하고 일어서지 않겠습니까?》하고 재촉하며 서있는것 같은 허담을 쳐다보았다. 그는 끝내 가슴에 뭉쳤던것을 터치고야말았다.

《남조선 전〈국방군〉장성의 아버지 최영호의 묘를 왜 파헤치지 않고 이렇게 둬두었습니까?》

이때 최성덕의 얼굴은 검푸른 빛이였고 입술은 파르르 떨었다.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그러나 도전하고싶을만큼 정의롭고 순결한 처사에 의문을 붙여보는것이다. 그런데 허담은 이쪽사정과는 정반대로 전혀 사색을 거치지 않고 쉽게 대답하는것이였다.

《최영호선생은 우리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한 공민이며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를 충성으로 받든 애국인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상에 꽃을 얹어주는것입니다. 아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최영호선생은 자신이 이룩한 사업을 통해서 우리들의 존경을 받는것입니다.》

《그건 그렇다칩시다. 그런데 당신네들은 왜 나같은 인간에게 이토록 선의를 베푸는것입니까? 왜 당신들은 나에게 과거를 사죄하라는 말 한마디 없고 북에 와보고 느낀 점에 대해서 세상에 공개하고싶은 말이라도 없는가 하고 묻지도 않습니까? 당신들의 말없는 행동은 도리여 나를 나날이 괴롭히고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허담은 놀라움을 보이면서 자기 팔을 붙잡고있던 최성덕을 가볍게 밀어내고나서 계속하였다.

《그런 물음이 무엇때문에,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당신은 자기 조국과 자기 선친을 찾아온 우리 동포손님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과거를 따져묻거나 어떤 사정에 빙자해서 우리에게 유리한 선전적인 말을 받아내자는것은 도리에도 어긋나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최선생은 앞날에도 지금처럼 안심하고 일을 보십시오. 우리는 변함없이 끝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허담의 진정이 어린 말을 듣고있는동안 최성덕은 그의 미소를 띤 얼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아! 당신네들은···》

최성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신네들은 무서운 사람이요!》

실지 무서움을 타서 그랬는지 감동이 되여 그랬는지 그는 공포에 질린 사람처럼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최선생의 심리가 지금 좀 복잡한것 같은데 이러지 마십시오. 이러시면 년로한분이 건강에 해롭습니다.》

허담이 그를 붙들어 일으켜세우며 위로하였다.

《내 건강에 대해서는 걱정마십시오. 난 이미 건강같은것은 초월한 사람입니다. 그건 아무래도 일없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내가 이 이야기만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최선생의 건강을 돌보고 생활을 잘 도와줄데 대해서는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말씀이 계시였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이의 뜻을 받들어나갈뿐인데 선생이 이래서야 됩니까.》

《네?!》

최성덕은 흠칫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서버렸다.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그이께서는 최영호선생은 옛날 수령님께서 화전에 계실 때부터 혁명사업을 많이 도와주었고 남조선에서 들어와서도 건국사업에 성심성의를 다한 애국인사라고 하시였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성덕은 눈물이 글썽해져서 거듭거듭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였다. 여직까지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에 대한 가지가지 감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다. 민중속에서 나서 민중과 더불어 살며 민중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그것을 풀기 위해 고심참담한 노력을 기울이시는데 대한 고매한 덕성이야기들을 수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자기, 최성덕 이외의 대상에게 베풀어지고 미치는 사실들이였다. 한데 그러한 사랑의 손길이 자기자신을 위해 직접 자기의 피부에 와닿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 그렇다! 바로 이렇기때문에 전체 조선인민이 그이를 그토록 우러러 받들고있는것이며 또 그것이 응당한것으로 되여있는것이다. 그러기에 조선사람모두는 김일성주석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위대한 어버이로 높이 받들어 모시는것이며 그이의 후계자인 김정일지도자를 덕망높으신 친애하는 지도자로 친근하게 섬겨모시고있는것이다.

이 진정하고 순결한 감정은 조선사람이 되여보지 않은 사람은 체험할수 없는 신비할만치 고상하고 참된것이다.

최성덕은 말없이 걸음을 옮기면서 줄곧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윽해서 승용차를 세운 언덕에 이르게 되였다. 저녁해빛이 눈부시게 송림속을 내리비치였다. 푸르른 나무가지사이로 흡사 명주필을 드리운것 같은 해빛이 비껴내리였다.

최성덕은 벌써 아득히 멀어진 하나의 무덤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마뜩지 않게 찌프리고서서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송림속에서 달려나오며 손저어 부르는것 같은 환상이 떠올랐다. 그렇게 되자 갑자기 또 코마루가 저려나면서 눈앞이 뽀얗게 흐려졌다.

순간 그는 결연히 고개를 쳐들고 차에 몸을 실었다.

승용차가 골짜기에서 빠져나와 한길에 들어섰을 때 최성덕은 허담의 팔목을 잡고 빛나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비서선생! 한가지 미안하고 외람된 청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나라를 위해서는 역적이고 인간으로서는 도리를 훨씬 벗어난 불효막급한놈이 감히 용기를 내서 말씀올리겠습니다.

저같은 인간은 김일성주석님이나 친애하는 김정일지도자를 만나뵐수 없을가요. 두분중 어느분이든 좋습니다. 외람된 청입니다. 제가 직접 만나야 할 용무라는것은 이렇다할것이 없습니다. 다만 한생을 잘못 살아온 죄를 그이앞에서 솔직히 토설하고 용서를 빌자는것뿐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성원이면 누구나 다 만나주시고 은정을 베푸시는 민족의 어버이시라는것을 늦게나마 깨닫고 감히 소원을 말씀드립니다.》

허담은 대답을 하지 않고 최성덕의 팔목을 힘주어 잡았다. 근엄하면서도 희열이 번진 그의 얼굴에서 최성덕은 이름할수 없는 신심을 느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