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5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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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여나지 못했단말입니까?》

허담의 보고를 받고난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에 수표를 하시던 원주필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이의 책상우에는 아직도 보셔야 할 문건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어제밤 좌초소식을 들으신 때로부터 그이께서는 줄곧 자리를 지키면서 그에 대한 수습대책을 세우느라고 몹시 긴장한 시간을 보내고계시였다. 아직 보셔야 할 문건들은 당사업에서 제기되는 매우 중대한 문제들이 담겨져있는것들이였다. 거기에는 시간을 다투는 긴급한 문제들도 있었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시급하게 결론을 주어 처리하게 해야 할 외사문건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사정을 잘 아는 허담은 윤숙경의 병상태에 대해 보고올리면서도 그이의 귀중한 시간을 떼내는것이 무척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좀전에 한두시간 몽롱한 상태로 되돌아왔댔다는데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최선의 노력을 다하느라 하는데 좀체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병원동무들도 몹시 걱정하며 초조해하고있습니다.》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좀 가봐야겠습니다. 가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제가 다시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지체할것 없이 속시원히 같이 가봅시다.》

그이께서는 서둘러 방을 나서시였다.

병원에 이르자 위생복차림을 한 원장과 몇몇 병원일군들이 전등불이 밝은 현관앞에서 마중을 하였다.

허담은 응접실에 들어서자 곧 윤숙경의 병상태를 간단명료히 김정일동지께 설명해드리라고 귀띔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에 앉지 않으신채 단풍이 한창 무르익은 풍경화를 등지고 서계시였다.

원장은 병력서를 들고 윤숙경의 병상태와 치료정형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환자는 60이 된 나이에 비해 다른 장기들은 예상외로 좋은데 심장만은 든든치 못하다는것을 전제해놓고 수십년동안을 지속해온 환자의 과도한 정신적긴장이 심장신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 식물신경의 부조리를 일으켰고 나아가서 현재는 기능장애정도를 넘어 심장판막에서까지 병조증상을 나타내게 되였다는것이다. 원장의 설명이 지나치게 시간을 끄는것 같아 허담이 입을 열었다.

《원장선생, 그래 환자의 현상태는 어떻습니까?》

원장은 안경을 벗고나서 지금 쇼크상태가 계속되고있다면서 걱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손에 들려있는 병력서가 부르르 떨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장의 몸가짐과 표정을 예리하게 관찰하시였다. 이런 경우 흔히 의료일군의 말보다는 그의 표정이 병의 경중을 보다 더 정확히 감별할수 있게 해주기때문이였다.

원장의 설명이 끝난 다음에도 그이께서는 한참동안이나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창유리를 통해서 금방 어두워진 정원을 내다보시였다. 정원끝에는 철책이 둘러져있었고 철책밖에는 단풍나무와 고로쇠나무 숲이 우거져있었다. 그이께서는 마치 그 숲속에 어떤 의미가 깃들어있기나 한것처럼 그쪽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생각을 더듬으시였다.

원장의 설명은 다 옳고 과학적이다. 그러나 윤숙경의 금번 졸도현상에는 병리학적분석이나 실험실적수치에서는 도저히 걷어쥘수 없는 어떤 정신적인 충격이 주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수 있다는것에 의료진은 주목을 돌리고있지 못한것이다.

《환자를 좀 보여줄수 없겠습니까?》

그이께서는 눈부시게 흰 위생복을 걸치고 원장의 안내를 받아 2층 층계를 오르시였다.

아늑하고 조용한 방 한가운데 침대가 놓이고 그우에 얼굴이 하얀 윤숙경이 잠든듯이 누워있었다. 그옆에 담당의사가 지키고앉았다가 일어섰다. 그이께서는 급히 침대에 다가가시였다.

《윤숙경동무!》

그이께서는 환자의 팔을 잡아흔들며 부르시였다.

《정신을 차리시오. 정일이 왔습니다.》

연거퍼 두번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였지만 환자는 잠든듯이 누워있을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원장선생! 어떻습니까? 이런 경우에 그냥 둬두어 저절로 깨여나게 해야 합니까, 아니면 흔들어서라도 깨워야 합니까?》

《어떤 방법으로라도 의식을 빨리 회복할수록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동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소생시켜야 합니다. 말그대로 조국통일을 위해 한몸을 바친 녀성입니다. 통일의 그날을 보기전에 심장이 멎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혁명앞에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진찰을 하고 주사를 놓을 때에도 윤숙경의 팔목을 잡고 놓지 않으시였다. 그의 가슴에서 울리는 박동을 감각하지 않고는 안심이 되지 않으시였다. 팔목시계는 저녁 8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의식을 잃은지 벌써 스무시간가까이 지나고있었다.

그이의 안색은 몹시 흐려지시였다. 어제밤을 꼬박 새우고 오늘 낮에도 줄곧 긴장한 시간을 보내신 그이시였다. 실로 어제밤과 오늘낮에 있은 그 한시간한시간은 평소의 열흘, 스무날, 한달과 맞잡이로 긴장한 순간의 련속이였다.

허담은 몇번이나 주저하다가 그이의 건강을 념려하여 말씀올리였다.

《제가 지키겠습니다. 좀 편히 나앉으십시오.》

《내 걱정은 마시오. 난 이렇게 하고있는것이 더 편합니다.》

그러나 원장을 비롯한 이곳 성원들이 너무 절절히 권하기때문에 그이께서는 잠시 의사실로 자리를 옮기시였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옆방에 나갔던 최동무가 급히 들어와 그이께 조용히 보고를 올리였다. 남포항에 나갔던 고윤학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는데 늦어도 래일저녁까지는 《순천》호를 떠나보낼수 있을것 같다는 소식이였다.

《보충되는 세멘트의 상선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있다니 됐습니다. 아마 그 동무들이 몹시 힘겨운 전투를 하고있을것입니다. 마감단계에서 사고가 없도록 잘하라고 강조하시오.》

《알았습니다.》

최동무가 나가자 그이께서는 창밖에 시선을 보내신채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한명의 전우가 생사의 계선을 넘나들고있는것이다.

창가에서 돌아서신 그이께서는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방안을 거니시였다. 입원실쪽에서 누군가의 웨침소리가 들리였다.

《허담동무!》 하고 부르신 그이께서 놀라운 표정을 짓고 물으시였다.

《윤숙경동무가 지금 뭐라고 헛소리를 치고있는게 아닙니까?》

《좀전부터 헛소리를 하는데 배가 바위에 걸렸다고 하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천정을 올려다보시였다. 이때 흰바탕뿐이여서 아무런 의미도 나타낼수 없었던 천정에는 출렁이는 바다가 언뜻 나타났다.

《알만합니다. 지금 구호물자를 실은 배가 좌초된것을 두고 하는 소리일것입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구급치료사업이 일단 끝나고 시간경과를 재고있는 의사들틈을 가르고 환자앞으로 다가가시였다. 머리맡에 놓인 쪽걸상을 옮겨놓고 무릎을 꺾더니 방바닥에 앉으시였다. 그렇게 해야 환자의 귀에 대고 말하기에 편리할것 같으시였다. 베개우에 반듯이 누운 윤숙경의 머리를 한손으로 감싸안고 귀에 대고 속삭이시였다.

《윤숙경동무, 내 말을 들으시오. 좌초는 무사히 수습됐습니다.》

그린듯이 누운 환자는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좌초를 무사히 극복했다는것을 두번 세번 반복하시는것이였다. 처음에는 조용히 말하고, 그 다음에는 좀더 크게, 나중에는 웨치다싶이하면서 베개를 흔드시였다. 온 넋을 한데 모아 불러주시는 그이의 음성이 병실의 침울한 공기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이 자신께서도 이렇게 하는것이 환자를 위해서나 또는 치료사업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시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좋고 나쁨을 가리기전에 그렇게 하소해보지 않을수 없으시였던것이다.

《정신을 차리시오. 구호물자는 다 넘어가게 되였습니다. 윤숙경동무, 듣습니까?》

방안에는 그이의 애끓는 감정이 꽉 차있었다. 한마디한마디 힘을 주어 그러면서도 환자가 알아들을수 있도록 귀에 대고 웨치기도 하고 혹은 속삭이기도 하는 애절한 목소리가 침대머리를 감돌다가 차차 번져서 사람들의 페부속으로 스며들었다.

원장과 의사, 간호원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섰다. 60을 넘긴 대머리진 원장은 여태 수많은 사람의 림종도 겪었고 또 그때마다 혈육과 또는 동지를 잃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목격하였으며 그로 해서 인간이 얼마만한 크기의 슬픔을 가지고있는가를 잘 알고있었으나 지금 이때처럼 한 환자를 두고 그렇게도 절통하게, 그렇게도 크고 깊게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것 같은 아픔을 보여준 례는 여직 보지 못했다.

원장은 이미부터 환자의 청각을 자극해서 의식을 소생시키는것과 같은 기적을 믿지 않았지만 그이께서 그토록 절절하게 부르며 환자의 소생을 바라시는걸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참말로 저 부르심에 환자가 펄쩍 깨여났으면 얼마나 좋으랴싶었다. 한나라의 지도자께서 돌보아야 할 긴급하고 중대한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매일밤을 새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지방 각지에서 계속 편지가 올라오는데 중앙당본부에 있는 일군들이 전체 당원들의 념원과 소망을 헤아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밤을 새우시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였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한 녀당원의 병때문에 이토록 가슴을 태우고계시는것이다.

원장은 보건일군으로서의 할바를 다하지 못한 자책과 그것을 해결할 길이 없는 안타까움으로 하여 얼굴을 들수 없었으며 속은 숯덩이처럼 꺼멓게 타들었다.

《윤숙경동무! 정신을 차리시오. 정일이 왔습니다.》

그이께서는 환자의 머리며 가슴을 흔들며 웨치시였다.

그래도 환자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원장선생!》하고 그이께서는 옆에 서있는 원장에게 시선을 돌리시였다.

《이 환자를 살리자면 무엇이 요구됩니까? 원장선생은 이 녀동무를 잘 모를수 있는데 이 동무는 30살에 로파로 가장하기 위해 생이를 다 뽑아버린 혁명가입니다. 자기 아들이 서울거리에서 거지로 되여 돌아다닌다는것을 알면서도 찾아보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나야 했던 녀인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서야 되겠습니까? 남조선에 구호물자를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도 기뻐한것이 이 동무입니다.》

숨을 죽이고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던 원장이 흠칫 놀랐다.

《눈을 떴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고개를 돌렸을 때는 벌써 앞서와 마찬가지로 눈이 또 감겨있었다. 그러나 원장은 벌써 한순간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하여 환자의 대뇌피질에 어떤 반응이 생겼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지도자동지! 환자가 깨여나기 시작한것 같습니다.》

《윤숙경동무, 정신을 차리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같은 말을 또 반복하시였다. 그러나 그린듯이 누운 환자의 눈까풀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거듭 소리치시였다.

《정신을 차리시오. 내가 왔습니다. 정일이 왔습니다. 나를 보시오.》

그 순간이였다.

긴장이 풀린채 차분히 내리덮이였던 환자의 눈까풀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살눈섭이 꿈틀하면서 눈동자가 나타났다. 흑진주같은 동공에서는 푸른빛이 내뿜었다. 눈동자는 좌우로 몇번 움직이다가 멈춰섰다. 그와 함께 볼이며 미간의 근육이 함께 움직이다가 정지되고말았다.

이때 윤숙경은 한껏 의혹에 잠겨있었다. 망막을 통해서 받아들인것은 숱한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고있다는것이였다. 이것은 전에도 몇번 겪은 일이여서 그닥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정일이 왔습니다.》 라는 말소리와 함께 그이의 영상이 자기를 지켜보고있는것 같은 환각에서 놀라 어리둥절했다. 끊임없이 고막을 울려주는것이 꼭 귀익은 그이의 음성같은데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얼굴모색도 그이같기만 하니 도대체 이건 어찌된 일인가.

윤숙경은 환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을 감고 잠시 있다가 다시 떠보았다.

그러나 눈앞에 뵈는 모습은 역시 틀림없는 그이의 영상이였다. 숙경이 자못 놀라와하는 눈길로 잠시 쳐다보는데 그이의 얼굴이 갑자기 확대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자가 의식을 회복했다는것을 확인하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면서 물으시였다.

《누군지 알아볼만 합니까?》

윤숙경은 머리를 쳐들며 입새로 간신히 《내가···》 하고 한마디 흘리였다.

그이께서는 환성을 올리면서 두손으로 윤숙경의 손을 싸쥐시였다.

《됐습니다! 소생했습니다!》

《아!》

윤숙경은 손이 허공을 붙잡으려는것처럼 차츰 뻗어올랐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윤숙경은 바작바작 마른 입술을 떨면서 감격에 젖은 소리를 내였다.

《참 용케 이겨냈습니다. 아주 장합니다.》

저력있게 울리는 그이의 활기띤 음성이 아직도 약간 몽롱한 상태에 있던 윤숙경을 완전히 정신차리게 했다.

윤숙경은 숨을 크게 내쉬며 눈덕을 치켜올렸다. 그러자 하나가득 고였던 눈물이 주르르 관자노리로 흘러 베개우에 떨어졌다. 그것을 본 의사와 간호원들이 일시에 모두 고개를 돌리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어깨가 높이 흔들리고 헉헉 숨을 들이긋는 소리도 들리였다.

처음부터 이 시각까지 마냥 입을 다문채 지켜보고만 있던 허담은 목구멍으로 불길이 솟아오르는것 같은것을 느끼였다.

(아! 사랑의 힘이란 이토록 위력한것인가!)

허담은 벽을 등진채 방안을 살피며 숭고한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물을 가져오라고 하시고는 손수 고뿌의 물을 숟가락에 떠서 환자의 입에 흘려넣어주시였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가슴이 후련하지요?》

그이께서는 숟가락을 간호원에게 넘겨주며 나직이 물으시였다.

《정신이 듭니다. 일없습니다.》

윤숙경은 입술에 매달린 물방울을 손끝으로 훔치고나서 천천히 뒤를 이었다.

《참말 미안합니다. 바쁘시겠는데 이렇게···》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윤숙경은 웃몸을 일으켜세웠다.

《누우십시오. 안정해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부축하시였다.

《일어나 앉겠습니다. 아, 정말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담···》

윤숙경은 후유 한숨을 내쉬고나서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나서 그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그이를 향해 돌아앉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죄송합니다. 걱정을 끼쳐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왜 자꾸 그런 말을 합니까, 건강에 해롭습니다. 진정하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자의 팔을 잡아 가볍게 눌러주며 살틀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윤숙경은 입술을 한번 감빨고나서 다시 계속하였다.

《배가 잘못되였다던데··· 그게··· 그게 어떤 배라구···》

《걱정놓으십시오. 다 수습됐습니다. 지금 안창후동무는 무사히 다른 배에 옮겨탔습니다. 구호물자는 예정대로 전량이 목적지에 가닿을것입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윤숙경은 놀란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절망이 비끼였던 그의 눈에 한쌍의 환희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러나 선뜻 믿기가 어려운듯 병색이 짙은 얼굴에는 미묘하면서도 착잡한 빛이 물결쳐가고있었다.

《제말을 믿지 못하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간밤 좌초소식을 들은 때부터 지금까지 취해온 긴급조치들을 간단히 설명하며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시였다.

윤숙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환희로 불타오르던 그의 눈빛이 다시 흐려졌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그 어떤 절망적인 빛이 아니라 고뇌와 자책이 어린 눈빛이였다.

허담이 보다못해 한걸음 다가서며 배가 좌초되여 다소 혼란은 있었지만 그이께서 긴급대책을 세우시여 인차 일이 바로 잡히게 되였다는것을 다시 확인시키려고 하였다.

윤숙경이 처절한 낯빛으로 김정일동지를 우러러보았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가 그 말씀을 믿지 못해 그러는게 아닙니다. 그 일을 바로 잡으시자니 로고가 얼마나 많으셨겠습니까. 제가 안창후를 대신해서 사과를 올립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환자가 흥분하면 안됩니다.》

윤숙경은 앉은 자세를 바로 잡고 그이께 사죄의 인사를 올리려 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급히 그를 만류하시였다.

그리고는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며 그를 진정시키려고 하시였다. 윤숙경은 손을 그이께 맡긴채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젖은 목소리로 떠듬떠듬 뇌이였다.

《일군들이 어떻게 일을 쓰게 못했으면··· 그런 사고를 저지르게 했겠습니까. 누구보다 당을 받들고··· 당의 의도를 관철하는 길에서··· 책임적으로 일해야 할 창후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걸 안창후동무의 책임으로만 볼수 없습니다. 그를 너무 나무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를 나무라워서만 그러는게 아닙니다. 저는 서울에 있을 때부터 수령님을 통일의 단상에 높이 모실 그날을 바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일제통치때보다 더 오랜 시일이 흘러서 수령님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리였습니다. 조국통일위업을 여직 성취시키지 못한채 환갑이 가까워오고보니 한이 되는것도 많고 수령님앞에 죄스러운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국에 귀국하여 기쁘게 생각하고 한가닥 위안이 된것은 창후 그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지니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업을 몸가까이에서 보좌해드리고있다는 사실이였습니다. 그는 저와 친형제는 아니라 해도 저에게 있어서는 살붙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도 나를 친누이처럼 따르고 보살펴주기에 우리는 여직 친남매간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나라가 분단되여 40년만에 처음으로 실현되는 구호물자수송사업에서 그런 불상사를 저질러 당에 큰 근심을 끼쳤다고 생각하니 금시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 같고 온갖 기대가 산산이 부서져내리는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가 안타깝고 절통하고 괴로운것은 바로 이때문이였습니다.》

윤숙경은 빛나는 시선으로 그이를 우러러보다가 눈덕을 내리깔았다. 처음보다는 한결 침착해지고 흥분도 가라앉았지만 파릿해진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만은 걷잡지 못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녀인의 가슴속에 고여있는 절절한 심정이 낱낱이 헤아려지시였다. 그가 혁명을 위해 생이를 전부 뽑아버리고 늙은이로 가장했다는 말을 들으셨을 때도, 서울거리에서 헤매는 어린 자식을 보고서도 밀정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못본척 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그것이 영원한 생리별이 되여 일생 가슴 저미는 한으로 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시였을 때도 그의 혁명가적 고결한 풍모와 강의한 의지를 두고 깊이 탄복하였지만 오늘 또다시 비단결같이 부드럽고 순결한 혁명전사로서의 충성스러운 마음의 일단을 엿보게 되니 충격이 크시였다. 이 녀인은 백번 쓰러진대도 굽힘이 없고 모진 풍랑이 몰아쳐온대도 변함이 없을 우리 당의 혁명전사였다.

《알겠습니다. 내 오늘 그 말을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안창후동무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누님의 심정을 깊이 리해할것입니다.》

그러시고도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참이나 더 남아계시면서 환자를 위로하고 안정시킨 다음에야 자리를 뜨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