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2

 

제 5 장

2

 

지배인실은 문이 반쯤 열린채 불이 켜져있었다. 그러나 지배인은 자리에 없었다. 경비원의 말에 의하면 방금전에 초급당으로 건너갔다고 하였다. 팔목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늘 이렇게 밤을 새웁니까?》

고윤학의 물음에 경비원은 그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나 전화를 걸다가 한 10분전에 앞문을 통과해나가더라는것이였다.

고윤학은 초급당청사로 건너갔다. 비서방에 불이 환하였다. 그가 현관에 들어서는데 지배인이 달려나와 인사를 하였다.

《무슨 사고라도 났는가요? 새벽까지 모여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초급당비서동무한테 좀전에 전화로 주신 지시집행대책을 토의하던중입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네, 남조선으로 가던 세멘트배가 암초에 걸려서··· 1만 2천t의 세멘트를 여기서 다시 실어내가야 한다고···》

순간 고윤학의 가슴은 전류에 닿은것처럼 찌르르해졌다. 나는 이런 보살핌속에서 일하고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온몸에 신심과 용기가 솟구쳤다.

그는 당비서방에 활기있게 들어섰다. 비서방에는 10여명의 공장지도일군들이 모여있었다. 그는 협의회를 계속하게 하고 창곁의 의자에 앉았다.

참가자들은 1만 2천t의 세멘트를 출하하는데 하루의 시간이 아니라 그 절반의 시간만 들게 하자면 어떻게 조직사업을 해야 하겠는가 하는것을 두고 머리를 짰다. 너무나 시간이 촉박하고 갑작스러운것이기때문에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던것이다. 비가 오는 조건에서 세멘트가 젖지 않게 다루어야 한다. 실을 때도 적시지 말아야 하며 남포항까지 가는 때도 적시지 말아야 한다. 화물차량으로는 반드시 유개차량을 써야 한다. 불시에 어디서 유개차를 끌어오는가?

론의는 여러갈래로 뻗어나갔다. 싸이로에 있는 세멘트를 단시간내에 규격품지대에 포장하는 문제, 그것을 화차에 적재하는 문제, 로력동원문제, 모자라는 로력의 보충문제···

고윤학은 묵묵히 앉아서 열을 올리고있는 일군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불덩이같은 사람들이였다. 그렇게도 엄청난 량의 세멘트를 단 열두시간안에 실어서 남포까지 가닿게 한다는것은 보통의 상식으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였으나 해낼수 없다는 론리를 속에 품고 토의에 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는 말그대로 불가능이 성립되지 않았다.

(한데 나는 지금 어떤가?)하고 고윤학은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기름한 얼굴에 덩실하게 일어선 그의 높은 코마루는 요지간 눈에 띄일만치 더 굴곡이 심해졌다. 벌써 한달가까이 변변히 자지 못하고 뛰여다닌 고윤학이였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였는가? 배는 좌초되고 엄중한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는가? 좌초되는 경우도 있을수 있다는것쯤은 사전에 예견하고있었어야 하며 그에 따르는 방지대책도 미리미리 취해졌어야 했을것이다. 그리고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은 세멘트나 량곡 같은것은 적어도 상당한 량을 예비로 무져놓았어야 할것이였다!

고윤학은 의자의 오른쪽팔걸이에 기대여 회의흐름을 능숙하게 이끌어나가고있는 목이 기름한 당비서의 정력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자신을 모질게 꾸짖고 자책하며 반성하고있었다. 그는 《대동강》호를 좌초시킨것은 암초인것이 아니라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사업을 전개해온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순천을 떠난 고윤학은 날이 채 밝기전에 남포항으로 달려갔다.

몸이 비대해서 헐썩거리는 륙해운부 부부장과 이곳 항장은 현관에서 기다리고있다가 고윤학을 맞이하였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참 고윤학은 사전에 지시한것을 념두에 두고 부부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래 어떻게 대책을 세웠소?》

정도이상 큰 소리가 방안을 울리였지만 부부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권하고 담배를 내놓았다.

《어떻게 하겠소. 부부장동무! 순천에서는 아무 의견 없이 받아물었소.》

언제한번 조급성을 보인적 없었던 고윤학이 성급하게 다그쳤다. 그럴수록 능청스럽게 생긴 부부장은 딴전을 폈다.

《사고현장에서는 몇시간 더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다는겁니다.》

《묻는 말에 대답하시오.》

이쪽에서 더 강경하게 나오자 부부장은 흠칫 고개를 들더니 자세를 바로하였다.

《실태를 보고드리겠습니다.》

부부장은 앞상에 놓인 수첩을 당겨놓더니 천천히 말을 떼였다.

《순천에서 세멘트를 당장 실어온다 해도 지금 항에는 빈배가 한척도 없습니다.》

《뭐요?》

고윤학은 눈살이 꼿꼿해서 공감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 부부장의 랭랭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배가 한척도 없다는거요?》

《예. 여기 있던 배는 어제까지 다 떠나갔습니다.》

《한척도 없단말이지?》 화가 나서 그는 벌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다들 어데로 나갔소? 지금 현재.》

그는 오른쪽벽으로 다가갔다. 벽에는 세계지도가 그려졌고 선박의 움직임을 한눈으로 알아볼수 있게 표식이 되여있었다. 거기에는 인디아양상에 있는것, 아프리카해안에 가있는것 그리고 중국 상해에 가있는것이 보이였다.

《이 위치는 몇시현재요?》

고윤학은 상해에서 떠나 우리쪽으로 향하고있는 배를 가리키며 물었다.

《30분전 위치입니다.》

고윤학은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싸쥐였다. 빈배가 없다면 모든것은 허사이다. 세멘트도 철도수송도 로력조직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구상하신 예비선, 아니 예비가 아니라 기본선이 무너지는것을 의미한다. 그이께서는 벌써 구조작업에 대한 난관을 예견하고 방향을 돌리시였던것이다.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얼굴이 푸르다못해 시커멓게 된 고윤학은 절망에 지지눌려 온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창황중에 빈배에 대해서는 알아보지도 못했던것이다. 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탁자앞에 가서 전화통을 끌어당기였다. 해운부를 불러서 해주와 원산, 흥남 등 항구에 현재 정박해있는 빈배를 알아보았다. 어데도 돌려쓸만 한 배는 없었다. 다만 흥남항에 5천t급 한척이 있을뿐이였다. 그러나 그 배 한척만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뿐아니라 세멘트를 가져가는것이 문제였다.

고윤학은 안절부절못하고 방안에서 서성거리였다.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하고 쓰겁게 웃었다. 지금 설사 다른데 빈배가 있다 해도 그것을 여기까지 끌어오자면 시간이 모자란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근해에 있는 선박들을 하나하나 따지고들었다.

《상해에서 떠났다는것은 틀림없겠소?》

《그렇습니다. 정확합니다.》

《그러면 2시간후이면 여기에 도착할수 있잖소?》

《도착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소금을 실었습니다.》

《그것을 부리자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오?》

《빨라서 2일이나 3일입니다. 그러니 그것도 바랄것이 못됩니다.》

부부장은 난처해하는 기색으로 고윤학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였다.

《배가 있다 가정해도 말입니다. 적재로력이 문제입니다. 부총리동지는 24시간안으로 적재해서 출항시켜야 한다고 하였는데 1만 2천t을 적재하자면 여기 있는 설비를 전부 가동시키는 경우에도 2일간은 걸립니다. 만약 추가적으로 로력을 붙인다면 적어도 500명은 있어야 합니다.

그 500명도 순천에서 오는 세멘트를 부리는정도이지 다시 그것을 배에 옮겨싣자면···》

《여보! 부부장동무!》 하고 고윤학은 손을 내들었다. 《이거 듣기가 거북하구만. 응, 마치 이방인과 장사흥정을 하는것 같지 않소. 우린 지금 남조선에 구호물자를 보내자고 하고있단말이요. 당신도 애국심이 있다면 될수 있는 구멍을 뚫어야지. 그렇게 미궁으로 끌고가서는 어쩌자는거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고윤학은 부부장의 타산이 옳다는것, 전혀 과장이 없는 실태그대로라는것만은 인정하게 되였다.

(그러면 출로는 무엇인가?)

그는 자문해보았다. 가슴이 옥죄이고 목이 타들었다. 그는 담배를 붙여물고 방안을 거닐었다.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린 고윤학을 지켜보고있던 부부장은 이제 엄격한 명령이 떨어질것이라고 짐작하고 선자리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고윤학은 담배 한대를 다 태우면서 생각해보았다. 이 실태를 당에 보고드리자. 그래서 결론을 받아 처리하자. 그런데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안이 있어야 할것이 아닌가. 막연하게 이것은 이래서 곤난하고 저것은 저래서 불가능하다고 말할수야 없지 않는가. 좌초문제를 해결하는 원칙과 방도는 이미 결론되였다. 순천에서 1만 2천t을 날라다 다른 배에 싣는것이다.

손이 저절로 전화통있는데로 뻗어갔다. 그러면 입술을 사려물고 제지시켰다. 떨리는 손을 우정 염낭에 밀어놓고 방도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리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또 손이 뻗어가군 하였다. 그렇게 세번이나 거듭되였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송수화기를 집어들고 중앙당교환을 찾으라고 하였다. 이마에서는 송진처럼 진득한 땀이 솟아올랐고 송수화기를 들어올린 손은 와들와들 떨렸다. 그러나 마음은 평온하였다. 실태를 그대로 보고드리자고 결심한것이다.

한 1분 지났을가한데 수화구에서 《고윤학동무요?》 하는 귀익은 음성이 들리였다.

《네! 고윤학이 말씀올립니다. 지금 남포항에 와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갔던 일은 어떻게 되였습니까?》

《그것을 보고드리겠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순천은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남포에는 배도 없고 적제할 로력도 모자랍니다.》

이렇게 서두를 떼고 자신이 료해한 남포항실정을 사실대로 보고하였다.

《그러니 결국은 장산곶에서는 배가 암초에 걸리고 동무는 남포에서 암초에 걸린 셈이 아닙니까?》

무엇이라고 대답을 올릴수 없어 침묵을 지키였다.

《그러니 동무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것입니까?》

《저의 생각은 1만 2천t만은 3일간 지연된다는것을 남측에 통고하는것이 어떨가 합니다. 상해에서 오는 〈순천〉호를 기다려 소금을 부리우고 거기에 싣자고 합니다. 그러자면 빨라서 3일간은 더 걸려야겠습니다.》

《3일간을?··· 그렇게는 못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이미 세상에 공포한거야 이틀이 아닙니까.》

《···》

그렇다. 그렇게는 못한다. 그래서는 안된다는것을 알면서 부득이해서··· 고윤학은 가슴을 움켜쥐였다. 가슴이 찢기는것 같이 아팠다.

《좀 기다리시오. 〈대동강〉호가 나왔으니 거기와 먼저 통화하고 봅시다.》

전화가 끊어졌다. 고윤학은 송수화기를 든채 그자리에 서서 기다리였다. 이때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동강》호를 타고가던 적십자대표 안창후와 통화를 시작하시였다. 증폭장치를 한 수화구에서는 방안이 울릴만큼 목소리가 크게 들리였다. 그이께서는 책상우에 놓인 송화구에 대고 사람들의 건강은 어떤가, 부상당한 사람들은 없느냐고 다시금 물으시였다.

《모두 건강합니다. 무사합니다.》 안창후의 목멘 소리가 들려왔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면목이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곳 상태는 어떻습니까?》

《이제 두시간후면 결과를 알수 있습니다. 군대동무들이 필사적으로 구조작업을 진행하고있습니다.》

계속해서 안창후는 암초에 걸린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드리였다.

남포항을 떠나서 일기는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남서풍이 10m이상 불고 비가 쏟아졌다. 해상에는 안개가 짙어 100m앞도 내다볼수 없게 되였다. 배는 서서히 움직이였다. 그러다보니 백령도가 바라보이는곳에 이르렀을 때는 한시간이상 예정보다 지연되게 되였다. 안창후는 선장과 토론하여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인천도착시간을 지연시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여 백령도와 장산곶 새짬을 빠져서 질러가기로 하였다. 장산곶을 무사히 벗어났는가 했는데 배는 차차 파도에 밀리여 소용돌이한복판에 들어섰다. 순간 둔중한 음향이 선체를 쿵 울리더니 차츰 선미가 들리고 중심을 잃게 되였다. 배는 앞뒤로 흔들리면서 전진하지 못하게 되였다. 안창후는 육감으로 배가 암초에 걸렸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보다는 구조작업정형을 알고싶습니다. 어떻게 하고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시오.》

그이께는 사고경위에 대한 료해보다 당장 수습대책을 세워줘야 할 일이 더 긴박하였다.

《현재까지 좌초요소를 알아보았습니다. 위치와 각도가 확정되였기때문에 지금은 끌배를 가져다가 바줄을 걸고있습니다. 그런데 파도가 높고 앞이 보이지 않아 애를 먹고있습니다.》

《그래 인차 빠져나올것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이제 끌어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꼭 끌어내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은 이러했지만 그 어조는 확신이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태는 점점 더 험악해진다는것을 아실수 있었다. 길길이 높이 뛰는 산같은 파도, 암초에 걸려 오도가도 못하는 선체, 벌써 깨진 배밑창으로는 바다물이 슴새들어오고있는지도 모른다.

불시에 수화구에서 무엇인가 부서지고 깨여지는 소리가 우지직 쾅 하고 들려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화구에 바투 다가서며 다급하게 물으시였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선체가 밀리는 소리입니다. 바위우에 올라앉은 선체는 좌측으로 약 30˚각으로 기울어졌다고 하는데 파도에 밀려 올리솟았다가 내리꼰질 때 그런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알만합니다.》

사실 배는 매우 위험한 형편에 처한것 같았다. 구조작업에만 매달리지 않고 별도로 순천에서 남포로 세멘트를 실어오도록 긴급조치를 취한것이 얼마나 옳았는가! 그러나 그것을 실을 배가 없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풀기 어려운 난관으로 앞을 가로막아나서고있다.

그이께서는 연필끝으로 책상을 다독이면서 통화를 계속하시였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배를 구출하는 한편 우선 사람들을 다른 배에 옮겨태우도록 하시오. 동무도 〈대동강〉호에서 빠져나와 다른 배에 옮겨타야 하겠습니다.》

《아니, 그럼?···》

《구체적인것은 후에 또 지시를 주겠습니다. 지금은 사람을 먼저 구원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이만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둘러 통화를 끊고 다시 남포항의 고윤학이와 련결하시였다.

《부총리동뭅니까?》

《고윤학이 전화받습니다.》

《안창후동무와 통화가 있었는데 〈대동강〉호 구조작업이 신통치 않습니다. 사태가 더 엄중해지고있습니다. 어떻게 하나 다른 수습책을 찾아야겠습니다. 아무래도 배는 바다에 있기마련이지 여기 평양에는 없습니다.》

《이곳 남포항에는 지금 세멘트를 실을만 한 빈배가 없습니다.》

《신의주나 해주에는 알아봤습니까?》

《예, 거기는 모두 기껏해서 천t급내외여서 타산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니 달리는 방법이 없다는건데···》

잠간 통화가 중단되였다. 빈배가 없다면 순천에서 세멘트를 가져오는것도 공연한 헛수고로 될것이다. 실상 48시간동안에 1만 2천t의 세멘트를 기차에 상차하여 수백리가 넘는 남포항까지 운반해다 그걸 다시 배에 싣는다는것은 조련치 않은 일인데 당장 짐실을 빈배가 없다니 참으로 딱한 일이였다. 《대동강》호구조작업의 전망이 밝지 못한 지금 이미 세상에 공포한대로 구호물자전량을 보내자면 다른 선박을 구해야 한다. 그러자면 어떤 일이 있어도 서해에서 배를 구해야 한다.

그이께서는 려명이 비껴오는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언제나 정기있는 그이의 두눈에서 불시에 번쩍 불꽃같은것이 일었다. 그이의 뇌리에 번개처럼 번쩍이는 한줄기 생각이 비껴든것이다.

《가만 부총리동무, 〈순천〉호가 몇시에 들어온다고 했습니까?》

《두시간후면 여기에 도착합니다.》

《거기에 소금이 얼마나 실렸습니까?》

《2만t가량 된답니다. 그것을 부리자면 빨라서 이틀은 걸린다고 합니다.》

《〈순천〉호의 총적재량은 얼마입니까?》

《5천t입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순천〉호가 도착하는 즉시로 소금을 부리지 말고 그우에 세멘트를 덧실읍시다.》

《예?! 소금우에 말입니까?!》

그것은 놀람이라기보다 거의 환성에 가까운 웨침이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틀이란 시간을 단축할수 있지 않습니까. 소금을 부리고 또 그만한 시간을 들여 세멘트를 싣느라 그러지 말고 그우에 세멘트를 그냥 싣자는것입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됐습니다. 이젠 풀렸습니다!》

고윤학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흥분된 어조로 대답하고는 갑자기 목이 갈리여 입을 다물었다. 옆에서 누군가가 《부총리동지, 됐습니다! 됐습니다!》 하고 목멘소리로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아까 곁에 있다던 부부장의 목소리인것 같았다.

《동의한다니 그럼 됐습니다. 그러면 남은것은 로력인데 그건 어떻게 해결할 생각입니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로력문제는 제가 풀겠습니다. 남포시민들에게 호소하겠습니다. 남조선에 보내는 구호물자라면 그들은 너도나도 하고 한사람같이 떨쳐나설것입니다.》

《옳습니다. 남녘겨레에 대한 사랑의 힘은 큰 산이라도 순식간에 〈순천〉호에 실어보낼수 있을것입니다. 그럼 성공을 바랍니다. 수고하시오.》

그이께서는 통화를 끊으시였다. 창밖에는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갑자기 현훈증이 일었다. 너무도 긴장한 시간을 보내신 까닭인가. 그이께서는 창가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였다. 신선하면서도 쩡한 맑은 공기가 집무실로 흘러들었다. 대번에 마음이 상쾌해지고 기분이 거뜬해지시였다. 하지만 그이의 사색은 줄곧 실마리를 끊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있었다.

(어려운 전투는 이제부터다. 이제까지는 행정적조치에 불과했지만 그걸 실천적으로 옮기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다. 《대동강》호가 불의에 좌초된 정황하에서 48시간이내로 그걸 보충하여 약속된 지점에 다량의 물자를 날라간다는것은 우리 인민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감히 감당할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순수 1만 2천t의 세멘트문제가 아니라 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인민의 일심단결된 위력의 검증이며 남조선수재민들의 고통을 자기것으로 감수하고 고락을 같이 나누고싶어하는 동포애의 열도문제이다. 우리 인민은 해낼것이다! 반드시 해낼것이다!)

그이께서는 시련이 중중첩첩히 가로놓여 조국의 운명이 위험에 처했던 후퇴의 간고한 나날 저 멀리 불타는 락동강가에서 수천리 사선을 헤쳐온 나어린 병사가 어둠속에서 어디로 가느냐는 장군님의 물으심에 최고사령부를 찾아간다고 확신에 넘쳐 대답했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56년 내외의 원쑤들이 반혁명적공세를 악랄하게 감행하고있던 그 어려운 시기 강재 1만t만 더 있으면 나라가 허리를 펼수 있겠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6만t능력의 압연기에서 12만t의 강재를 뽑아내여 조선로동계급의 본때를 보여준 강선 압연공들의 숭엄한 모습도 눈앞에 어리시였다. 가장 어렵고 시련이 겹쌓일 때 장군님을 따르고 당을 따른 사람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였다. 락원의 10명 당원, 태성할머니, 장산리녀인들, 1만t프레스를 만들어낸 룡성의 로동계급들··· 꼽자면 이루 헤아릴수 없다. 이들이 바로 우리 인민들이고 오늘의 조국을 빈터우에서 일떠세운 사람들이다. 당과 함께 걸어온 우리 인민들의 자랑찬 로정을 더듬어보시는 김정일동지의 결심은 더욱 굳건해지시였다.

 

바로 그 시각 고윤학은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부부장을 향해 《동무는 여기서 대기하면서 〈순천〉호를 빨리 부르시오. 곧 세멘트가 도착할테니. 난 이제 나가 로력을 해결하겠소.》

그리고는 현관을 나와 차에 오르며 운전수에게 시당으로 가자고 하였다. 부부장은 활기에 넘쳐 기운차게 밖으로 나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급히 무전실로 들어가 《순천》호를 부르라고 지시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시당에서 나온 석대의 방송차가 제련소와 유리공장 그리고 전극공장쪽으로 갈라져나가면서 새벽정적에 잠긴 시내의 거리를 들썩하게 흔들어놓았다.

《남포시민 여러분! 남포시민 여러분!

지금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낼 세멘트를 배에 실을 긴급과제가 제기되였습니다. 항에서는 지금 일손이 딸립니다. 거듭 알립니다. 남포시민 여러분!···》

그로부터 한시간후 남포항의 정문앞거리에는 벌써 수천의 시민들이 떼지어 밀려와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었다. 차도가 막혀버리고 전차들도 모두 멎어버렸다. 겹겹이 몰켜선 군중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불어나 시당앞 광장까지 뻗어나갔다. 남녀로소 할것없이 온 거리가 떨쳐나온듯 하였다.

고윤학은 우리 인민들이 의례히 이러리라고 짐작은 했어도 정작 사람사태를 이룬 이 장쾌한 광경을 보게 되니 가슴이 뭉클해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남포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속으로 몇번이고 이 말을 외우고 또 외우며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인민들의 힘에 의거해야 한다고 하시던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되새겨보았다.

 

×

 

이날 아침 윤숙경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간밤에 잠을 잘 잤기때문일것이다. 밤마다 불면증때문에 고생하였는데 어제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었다. 그는 아침식사를 대강 치르고 경대에 마주앉았다. 치장을 하자는것은 아니지만 초라한 꼴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최성덕으로 말하면 별의별 인생세파를 다 겪은 사람이기때문에 웬간해서는 그를 속여낼수 없는줄 안다. 그러나 그앞에서 적의를 품은 감정을 로출시킨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미세하게나마 고민을 하거나 우울한 빛을 나타내서는 안된다. 때문에 한동안은 말 한마디, 걸음 한발자국 조심히 내뗐던것인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흘러보낼수 있었다. 아마 그것때문에 간밤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한참이나 여겨보았다. 볼꼴없이 꺼져들어간 눈자위이지만 눈빛은 밝았다. 머리를 가뜬하게 틀어올린 그는 오래간만에 양복차림을 하였다. 그것은 그것대로 간편하고 기분이 상쾌하였다.

하지만 오늘아침 그의 마음이 이렇듯 즐겁고 가벼운것은 비단 그런것때문만은 아니였다. 어제아침 안창후는 구호물자를 싣고 배편으로 인천에 간다면서 우정 집에 찾아왔었다. 면도를 해서 푸릿푸릿한 턱을 만지면서 《누님, 나 갔다와요. 어쩌면 내가 한강다리밑 그 집자리에 가볼수도 있어요.》 하며 웃었다. 그때 윤숙경은 《꿈같은 소리, 그러나 좋은 걸음이요.》 하고는 눈물이 글썽해서 《갔다와요.》 했었다. 그런데 엊저녁 보도 시간에는 텔레비죤에서 남포항을 떠나는 그의 모습과 함께 짐을 만재한 《대동강》호와 여러척의 배들이 출항하는 장면을 방영해주었다.

그것을 보노라니 온몸에 기쁨과 환희가 물결치고 환상은 구름처럼 피여올랐다. 추억은 나래를 활짝 펴고 한강다리밑으로, 독서회를 하던 판자집마을로, 또는 오금이 저릴만치 공포가 뒤따르던 렬차칸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떠나간 안창후가 부두에 떨쳐나온 남포시의 수만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웃고있는 모습이 방영되였다. 지금쯤은 해상분계선을 넘어 남측수역에 들어섰을것이다. 아니 인천항에 거의 가닿게 되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은 개성으로 나간 쌀과 천, 의약품을 실은 자동차행렬이 중앙분계선을 넘어 남측지역에 들어갈것이다.

그는 손가방을 팔에 걸고 현관에 나섰다.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으로는 너무 일렀다. 기왕 집을 나선바에는 안창후네 집에 들렸다가리라 마음먹었다. 거기 가면 밤사이에 안창후가 어데쯤 갔는지 알수도 있을것이였다.

윤숙경은 젊은 녀인들처럼 승강기에서 훌쩍 나오더니 안창후네집 초인종을 눌렀다. 잠간 인적기가 있더니 나들문이 쩍 열리는데 안창후의 처 옥심이가 사색이 되여 내다보고있다.

가슴이 뜨끔해진 윤숙경은 문설주를 잡은채 잠간 말도 못하다가 《아니?》 하고 손가방을 떨구었다.

순간 옥심이는 《누이!》 하고 부르면서 가슴을 들먹인다.

《왜 그래? 응?》

새파랗게 질린 옥심이는 입술을 씹으며 꼿꼿이 서만 있다.

윤숙경은 화를 내면서 옥심이를 떠밀었다.

《왜 그래, 응? 말을 해야 알지.》

이렇게 되여 옥심이는 방금 알게 된 소식을 말하게 되였다. 옥심이는 오늘작업을 위해 고윤학의 처 향주한테 전화를 걸었다. 초물제품을 생산하는 가내작업반 반장이였던 옥심이는 향주더러 아침에 작업장에 나오지 말고 직발 보통강수매상점에 들려달라고 하였다. 용무가 끝나자 향주가 집의 아버지소식을 들었느냐고 물었다. 무슨 소식이냐고 하니 《대동강》호가 바다에서 좌초되였다는 소식이 있다고 하였다. 너무나 뜻밖의 일에 부닥친 옥심은 머리가 아찔해서 더 이상 묻지 못하고말았다.

《그러니 어떻게 됐다는거니?》 윤숙경이 다그쳐 물었다.

《모르죠뭐, 그것뿐인걸.》

《이걸 어쩌나. 그게 어떤 일이라고···》

그 순간이였다. 윤숙경은 웃음을 짓고 서있던 안창후가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환각에 사로잡혔다. 뒤미처 자기도 먹물속같은데로 허우적이며 달려나갔다. 깜박깜박 불꽃이 날아나더니 인차 그것마저 꺼져버리였다.

《누님! 누님.》

옥심이는 복도바닥에 쓰러지는 윤숙경을 안아일으켰다. 입술이 파랗게 되고 손으로는 가슴을 쥐여뜯고있다. 침대에 옮겨눕히고 진정제를 먹이는 한편 구급차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