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7

 

제 4 장

7

 

한남준은 조향륜을 억세게 틀어잡고 차를 몰았다.

광장에서부터 송신립체교를 지나 세우물에 이르기까지 도로 량옆에 평양시민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환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가던 자동차들도 모두 멈춰서서 바래주었다. 남새밭에서도, 강냉이밭에서도, 과수원에서도 사람들이 환송해주었다.

《잘 다녀오세요!》

《구호물자를 꼭 넘겨주고오라요.》

《안부를 전하라요.》

중화를 지나 흑교로 넘어가는 령길에 이르니 유치원아이들이 산놀이를 하다가 길가로 달려나왔다. 귀여운것들이 손을 흔들며 발을 구르고있다.

《아저씨! 안녕!》

《잘 갔다오세요.》

눈굽이 뜨끔해나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병아리같은것들이 너무나 가까이 다가드는바람에 속도를 한껏 죽여야 하였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길복판으로 더 가까이 나섰다. 경적을 울리건만 소용이 없었다. 하는수없이 차를 세우고 교양원을 도와 아이들을 길섶에 내세우고 다시 떠나야 했다. 인도에는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모여들군 하였다. 운전사들은 계속 창유리를 내리우고 손을 내젓지 않을수 없었다. 넓고 탄탄한 포장도로우에는 아무것도 거칠것이 없었다. 그러나 한남준은 이마에 내돋은 땀을 연방 훔쳐가면서 차를 몰아야 하였다.

어느덧 자동차행렬은 사리원, 평산을 지나 개성에 이르게 되였다. 우리 조상들이 여기에 고려의 수도를 꾸린후 수수백년 세월이 흐르는동안 크고 요란한 별의별 사건이 다 있었고 따라서 사람들이 떨쳐나는 일이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이때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떨쳐나서기는 처음이라 한다. 걸을수 있는 사람은 걸어서 나왔고 걷지 못하는 사람은 부축을 받아서 길가에 나왔다. 자동차행렬은 집결장소까지 미처 대지 못하고 멈춰서야만 하였다.

방송차가 요란한 소리로 길을 비키라고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노래소리와 구호의 웨침소리가 거리에 메아리쳐갔다.

한남준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꽃다발이 연방 날아와 차창을 때리는가 하면 짐칸에 쌓이기도 하였다. 글줄이 드리운 오색테프는 자동차기관부를 거미줄얽듯 하였고 꽃보라가 하늘을 덮으며 날아올랐다가 흩어지군 하였다.

《아! 이거 정말 대단한데.》

한남준은 정신이 얼떠름해졌다. 의용군출신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간 위로해줄수 있을것이라고 객기를 부렸던것이 이토록 굉장한 전인민적행사의 참가자, 목격자로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보고듣는 모든것이 실로 뜻밖이였다. 그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입을 벙글써한채 다물줄 몰랐다. 초점을 잃어버린 그의 시선은 끝없이 방황하고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군중들의 틈새로 어느 한 할아버지를 띄여보게 되였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학생들의 부축을 받아 한남준의 차곁으로 다가왔다.

《자네 이남에 가거들랑》

할아버지는 손을 엉거주춤 들고 숨을 헐썩이며 띠염띠염 말했다.

한남준은 차문을 열고 할아버지앞에 내려섰다.

《할아버지, 전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할아버지는 말을 못하고 그저 머리만 끄덕인다.

눈은 벌써부터 짓물려 게슴츠레하였고 한껏 성글어진 머리카락은 흩어져있었다. 잔주름이 한벌 덮인 얼굴을 보아서는 우는것인지 웃는것인지 표정을 가릴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꺼슬꺼슬한 손으로 한남준의 얼굴을 쓸어만지였다. 처음에는 관자노리를, 그다음에는 볼을 또 그다음에는 푸릿푸릿한 턱을 쓸고 또 쓸어주었다. 얼마나 그 동작이 굼떴던지 고속촬영테프를 돌려보는것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조용히 한마디 하였다.

《꼭 전하고 오너라. 남에는 내 막내딸과 외손주가 있어.》

《할아버지, 념려마십시오. 꼭 전하겠습니다.》

떨리는 소리로 대답한 한남준은 손등으로 눈물을 뻑 문대고 운전칸에 올랐다.

이윽하여 교통지휘대와 학생들의 도움에 의하여 얼마간 질서를 잡고 차들은 다시 움직이게 되였다.

앞차가 자리를 드티자 한남준은 변속을 주면서 제동을 풀었다. 차가 흠칫하고 굴러나가려는데 《앗!》 하는 여러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남준은 급히 제동기를 꽉 밟았다. 누군가 그의 차앞으로 성급히 달려오다가 푹 꼬꾸라지는것이였다.

(아니, 저 애가?!)

한남준은 황황히 뛰여내렸다. 중학생교복을 입은 열둬서너살난 단발머리처녀애였다. 당황해난 그는 처녀애를 안아일으켰다. 요행 다친데는 없었다. 움직이는 차에 뿌리쳐 넘어졌던것이다.

《야가 이거 정신있나!》

《움직이는 차에 달려들다니?》

《전할게 있으면 섰을 때 전해야지.》

처녀애는 말을 못하고 울기만 한다. 한남준은 그애가 떨군 꾸레미를 풀어헤치였다.

양복천 한감이 나오고 할머니들 옷감비슷한 양단천이 얼마간 있었다. 종이쪽지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해주세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손녀 리옥란 드림.

                개성 남문중학교 3학년》

 

그것이 전부였다.

한남준은 보꾸레미를 가슴에 부둥켜안았다.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목이 꽉 메게 한다.

기자들이 달려와 련속 샤타를 눌렀다. 촬영기의 렌즈가 서서히 돌아가며 력사적인 이 광경을 화폭에 담았다.

 

이날 저녁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담과 고윤학을 비롯한 몇몇 간부들과 함께 구호물자수송과정을 수록한 텔레비죤화면을 심중한 안색으로 지켜보고계시였다. 수백리 연도에서 열광적으로 환영하는 수십만군중이 물결치며 춤을 추는 광경이 그대로 재현되여 흘러나왔다. 꼬리를 물고 잇달아 지나가던 수송차들이 인파에 막혀 잠시 멈춰서면 길섶에서 손들어 바래워주던 환송군중들이 삽시에 수십명씩 차도로 뛰여나와 꽃보라를 뿌려주기도 하고 영예로운 사명을 지니고 떠나가는 운전사의 손을 한번 쥐여보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매달리기도 한다.

감격의 선풍은 수백리 연도의 곳곳에서 회오리치고있었다. 문득 자동차를 세운 한 운전사청년이 어린 처녀애의 부탁을 받으며 련속 고개를 끄덕이고있는 모습이 화면에 비쳐졌다. 청년은 체구가 름름하고 담차보였다. 코는 뭉툭하고 눈이 서글서글하게 생겼는데 열광적인 군중의 환영과 처녀애의 간절한 부탁을 들으며 노상 싱글벙글하고있었다.

그 청년을 눈여겨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웃몸을 약간 일으켜세우며 고윤학을 돌아보시였다.

《아니, 저 동무가 낯이 익지 않소?》

《그렇습니다.》

고윤학이 무척 반기는 기색으로 대답하였다.

《무산광산 한기사의 아들입니다.》

《저 동무가 어떻게 수송대렬에 끼여있습니까?》

그때는 이미 화면이 휘딱 바뀌여 장사진을 이룬 자동차행렬의 원경이 비쳐지고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윤학은 며칠전 정무원 접수실에 나타났던 한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말씀드렸다. 그가 조국통일문제를 가지고 부총리와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찾아와서는 구호물자수송대성원으로 속하게 해달라고 떼질을 썼다는 고윤학의 말을 듣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조국통일문제라, 하긴 조국통일문제라고 할수도 있지. 어쨌든 걸작입니다. 그 패기가 좋습니다.》

이때 선두차의 근경이 포착되여 흥청흥청 흔들리는 한남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모자는 약간 한쪽으로 기울어졌는데 잠바를 입은 웃도리는 단정했으며 목은 꼿꼿이 세우고있었다. 얼굴에는 거만해보일 정도로 긍지가 어리였고 눈은 앞을 예리하게 쏘아보고있었다.

《저 동물 보시오. 어떻게나 긴장했는지 눈에서 불이 이는것 같습니다. 아무튼 기쁜 일입니다.》

그이께서는 한껏 만족해지시였다. 수백리 연도에 나온 인민들의 열광적인 환영도 좋았지만 한영도의 아들 한남준이 구호물자를 실은 차를 몰고 분계선을 넘어 남으로 나간다는 사실이 새로운 의미로 파도쳐오며 그이의 가슴을 더욱 후덥게 하는것이였다.

《저것이 우리 인민들의 민족애이고 통일열망입니다. 남조선당국자들은 분단 40년이래 우리 민족이 이질화되였기때문에 갈라져 살아야 한다고 떠들고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도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다 해도 반만년을 내려오면서 하나로 살아온 우리 민족의 혈연성, 동질성은 절대로 변해질수 없습니다. 저 인민들의 열렬한 환영이 그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옆에 있던 허담과 고윤학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텔레비죤화면은 이미 남포와 해주, 원산과 흥남항에서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내줄 세멘트상선작업을 방영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