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5

 

제 4 장

5

 

분사식대형려객기는 평양시가 내려다보이는 상공에서 천천히 기수를 숙이더니 아무런 충격도 없이 활주로에 들어섰다.

최성덕은 저도모르게 후유 길게 한숨을 내쉬며 주먹에 불끈 힘을 주었다. 드디여 목적지에 도착하였다는 안도감과 함께 착잡한 생각이 구름처럼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제 사다리를 한걸음만 내짚으면 언제인가 쳐칠이 말한 《철의 장막》속의 세계, 생소한 공산치하의 이북세상에 첫발을 들여놓게 된다고 생각하니 자연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북에서 자기를 어떻게 맞아주겠는지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일단 그의 입국을 승인한 조건에서 첫 대면에서는 외견상으로나마 례절있게 대해주리라는건 의심할바 없었다. 그다음부터가 숙제거리였다.

《지옥》에 들어서는 《신곡》의 주인공의 심정이 어떠했던지 기억이 삭막했지만 어쨌든 최성덕은 문득 단떼가 생각났다.

여느때는 죽음을 초월한지 오래다, 나에게는 공포나 명예의식이 없다 하고 장담하고 체념했던것인데 정작 생소한 세계의 문어구에 서고보니 인간본연의 감정이 머리를 강하게 쳐드는것이다.

좌석의 진동이 천천히 멎더니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내 고성기에서는 약간 억양이 센 평양말씨가 들리였다.

《손님여러분,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베이징발 평양행 국제정기항로는 5시 20분 정시 평양에 도착하였습니다···》

최성덕은 눈을 감고 등받이를 붙잡고있는 자기 손등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머리가 휙 도는것 같았다. 멀미가 나는것 같지는 않은데 모든것이 빙빙 도는것처럼 보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손님들은 각기 서로 다른 언어들을 써가면서 나들문쪽으로 밀려가고있었다.

이윽해서 그도 선반에서 트렁크를 내려들고 사람들틈에 끼워섰다. 베이징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숙소에 들자고 약속한 조선족 청년이 트렁크를 들어다주겠다고 하였다. 다행히 걸음을 내짚으며 사전에 려권을 꺼내들수 있었다. 사다리밑 땅바닥에서는 려권을 대조하고있는것 같았다.

그는 잠간 걸음을 멈추고 유리창이 번들거리는 공항건물을 거쳐 먼산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서쪽에 기울기 시작한 태양이 한껏 푸르른 대지를 비치고있었다. 그것은 매우 상쾌한것이였다. 그는 가슴을 벌리고 심호흡을 하였다. 온몸이 서늘해지는것 같았고 그 무슨 밝고 청신한 기운이 피부에 와닿는것 같았다.

《앞으로 조이시오.》

뒤에서 독촉이다. 고개를 돌리니 베이징젊은이가 내려서라고 손짓을 한다. 아닌게 아니라 앞사람이 통과하고 자기 차례가 되였는데 정신없이 먼데를 바라보고있었던것이다.

푸른 제복을 입은 청년이 언뜩 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나직이 말하였다.

《미국 워싱톤에서 오시는 손님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저쪽 나들문에서 사람이 기다리고있습니다. 저기 저 왼쪽나들문입니다. 푸른색자동차가 보이지요. 그쪽입니다.》

(누굴가? 웬 사람이 나왔다는걸가?)

《나를 기다린다구요?》

《네!》

청년은 다시한번 길을 가리켜주고나서 다음 손님과 대화를 하고있다.

최성덕은 트렁크를 받아들고 불안하게 걸어갔다. 푸른색자동차가 차츰 가까와왔다. 나들문쪽에 비켜섰던 치마저고리차림의 나이지숙한 한 부인이 다가왔다.

《미국에서 오시는 최성덕선생이지요?》

금속테안경을 낀 그 부인은 상냥한 웃음을 보였다.

《네!···》

그의 목소리는 부르르 떨렸다.

《먼길에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저는 윤숙경이라고 합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에서 일하고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이거 참 감사합니다. 괜히 페를 끼치게 되여 죄송합니다. 아무데나 적당한 숙소만 알려주면 되겠습니다.》

목소리가 갈리였다. 최성덕은 부인에게 례의를 지키고나서 베이징에서 온 청년을 찾아보았다. 마침 멀찍이 서서 그가 지켜보고있기때문에 최성덕은 그에게로 되돌아가서 마중나온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고는 악수를 하고 다시 돌아왔다. 녀인은 대기시켜놓고있는 승용차 있는데로 그를 데려갔다.

최성덕은 차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 앞에 앉은 부인을 눈여겨 살펴보았다. 옷차림과 몸가짐이 세련되고 기품이 느껴지는 녀성이였다. 인상적인것은 동그스름한 얼굴과 어딘가 수심이 비낀듯 한 물기어린 눈이였다.

푸른색 《벤즈》는 잘 포장된 고속도도로를 따라 경쾌하게 미끄러져나갔다. 최성덕은 창밖에 눈길을 준채 묵묵히 앉아있었다. 녀인도 처음의 앉은 자세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은채 묵묵히 앉아있었다.

승용차는 어느덧 수도의 번화가입구에 들어섰다. 자동차가 꼬리를 물고 달리였고 인도에는 오가는 사람들로 꽉 찼다. 고층건물들이 량옆에 일떠섰다.

《어!》

최성덕은 허리를 펴고 차창유리에 머리를 대고 내다보았다. 건물들밑은 모두 상점이고 5층, 6층집이 균일하게 들어섰는데 드문드문 초고층이 끼워있다. 남조선이나 미국의 선전물에서 보아온 평양거리와는 너무도 차이가 있었다. 사진이나 출판물 또는 텔레비죤에 비쳐주는 평양은 3∼4층이상은 없었고 그것조차 초라한것이였다.

그는 온몸이 싸늘해질 정도로 리성이 랭철해졌다. 첫눈에 띄는것이 이렇게도 차이가 있는것이라면 이곳 인간들, 이곳 체제에서도 듣던바와는 상당한 정도의 차이가 있는것이 아닐가.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종심으로 더 깊이 뚫고들어가보아야 한다.

그가 눈살이 꼿꼿해져서 밖을 내다보고있는데 앞에 앉았던 윤숙경이 백옥같은 흰이를 보이며 말을 걸어왔다.

《번잡한데를 피해서 조용한데 숙소를 정했는데 어떻습니까. 안산려관이라고 그저 쑬쑬합니다.》

녀인의 입술사이에는 류달리 하얀 옥같은 이가 반짝이였다. 기껏해야 한 50정도 나보이는 녀인이였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실례입니다만 부인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에 계신다고 하셨는데 거기선 무슨 일을 보시는지요? 실례되는줄 압니다만 이왕 사귀게 된바엔 알고싶어서 묻는거니 량해해주시오.》

여직 서로 침묵이더니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였다.

《실례될건 없습니다.》

하고 윤숙경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아, 조국통일! 통일성업을 이룩한다는것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사활적인 문제지요. 그곳에서 일한지는 오랜가요?》

《아닙니다. 취업년한으로 말하면 불과 몇해 되지 않습니다. 저도 본래는 서울에서 살다가 오타와에서 십년나마 해외생활도 했댔습니다.》

《서울이요?》

최성덕은 흠칫 놀라면서 안경을 벗었다.

《그러니 우리는 초면이라고 볼수 없겠군요.》

《최성덕선생이 서울서 장관을 하실 때 신문에서도 가끔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아! 그렇군요. 그러니 본인은 이모저모로 부인한테 완전히 포로된 셈입니다. 하하하.》

최성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저쪽의 반응을 알아보았는데 녀인은 어째선지 웃음기 하나없이 창밖에 꼿꼿이 시선을 준채 잠자코 앉아있었다. 70을 넘긴 인생행로에 별의별 경우를 다 당해본 그였지만 녀인의 당당한 저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뜻 짐작이 가지 않았다.

승용차는 보통문을 옆에 끼고돌더니 빙상관앞에서 숲이 우거진 보통강기슭으로 들어갔다. 그때 최성덕의 눈을 강하게 자극하는 하나의 《사건》이 생기였다. 저쯤 바라보이는 큰 건물앞에 사람들이 모여 와짝 떠들고있었다. 삐라라도 뿌린것인지 종이장을 하나씩 집어들고 야단들이다.

(아, 여기도 반체제시위쯤은 있는 모양이지.)

《저기 보이는 저 건물은 무슨 관청입니까?》

최성덕이 물었다.

《관청이 아니라 청류관이란 료리집입니다. 레스트랑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래도 저기서 군중들이 모여 시위를 하잖습니까. 삐라도 뿌리고요.》

《삐라라니요?》

녀인은 퍽 놀라와하더니 쓰겁게 웃는다.

최성덕은 좀 어리둥절해졌다. 뜻밖의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여서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윤숙경은 잠간 지체하더라도 차를 돌려세워달라고 하더니 군중들속으로 뚫고들어갔다. 잠시후에 윤숙경은 신문 한장을 들고 되돌아왔다.

《오늘호 신문들을 사느라고 저렇게 운집을 했군요.》

《네? 신문을요?》

《전에는 볼수 없었던 일입니다. 남조선에 구호물자를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실렸다구 모두들 저렇게 신문매대앞에 모였습니다. 곧 구호물자를 인도해줄 사람들과 자동차들과 배들을 떠나보내게 됐다는군요.》

윤숙경은 풀어진 고름을 매면서 《평양신문》을 최성덕에게 넘겨주었다.

최성덕은 특호활자를 찾아보았다. 어디도 그런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유심히 살피니 1면 하단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활자로 제목을 단 기사가 하나 실려있었는데 거기에는 구호물자 전량을 이달안으로 남측에 넘겨주게 될것이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성명이 실려있었다.

(아, 판문점회담에서 크게 암초에 걸렸으므로 실현불가능할것이라고 관측했던 일이 휘딱 뒤집혀졌군. 놀라운 일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걸 가지고 와짝 끓고있구나. 그런데 나는 반체제시위로 보았었지.)

순간 최성덕의 가슴은 섬찍해났다. 높은데서 떨어져내릴 때처럼 강한 충격이 왔다. 그는 신문장을 가슴에 눌러댄채로 눈을 감았다. 눈앞에 별찌가 가로세로 날았다. 숨이 차고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했다.

어느새 승용차는 안산려관 현관에 멎었다. 화려한 달린옷을 입은 처녀들이 트렁크를 받아들기도 하고 최성덕을 부축하기도 했다. 그는 승강기를 타고 3층 3호에 안내되였다.

최성덕은 침대에 앉았는데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였다.

《차에서 멀미를 했는가보지요?》

《아니요. 좀 안정하면···》

말소리가 떨리였다.

윤숙경은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한 10분후에 소독약냄새가 물씬 풍기기에 눈을 떠보니 눈부시게 흰 위생복을 입은 녀의사가 청진기를 꺼내들고 다가왔다.

《아! 괜찮습니다. 이제 곧 진정이 되겠지요. 좀 피곤했던가 봅니다.》

최성덕은 손짓을 하며 거절했지만 의사의 친절성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우리에게 온 손님은 우리 나라를 벗어날 때까지 우리가 건강을 책임지게 됩니다.》

청진이 끝나자 그는 우정 만성취장염이 있어서 때때로 고통이 온다고 말하였지만 의사는 현재로서는 어떤 심리적충격이 주되는 증상이라고 하면서 진정제주사를 놓고 약을 주고 나갔다.

날이 저물었다. 침상에 누웠지만 정신은 새록새록 맑아졌다. 불안으로 온몸이 굳어진 하루도 끝나가고있다. 몇시간밖에 안되는 사이에 두세번이나 깜짝깜짝 놀랐다.

억센 사나이대신 상상도 할수 없었던 친절한 녀인의 출현, 내눈으로 직접 본 평양, 반체제시위가 아니라 동포에게 보내는 구호물자때문에 사람사태가 난 《오늘호신문매대》, 려관에 든 손님의 건강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의사.

아! 나는 지금 어디에 와있는가. 나는 지금 그 어떤 엄청난 《연극》을 보고있는것이나 아닐가? 만일 내가 보고있는것이 연극무대라면 여기서는 무엇때문에 이런 엄청난 《연극》을 꾸밀 필요가 있겠는가. 나, 최성덕이에게서 환심을 사려고? 그것은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그러나 두고봐야지. 진속은 항상 깊숙이 숨어있거나 여러겹의 외피를 쓰고있기 마련이니까.